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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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인간관계와 그 중요성에 대해 숱하게 고민하지만 성공을 약속하는 자기 계발서처럼 나를 위한 이기심에 그러할 때가 대부분이다. 나도 좋고 타인도 좋으면 좋겠지만 그게 참 쉽지 않다.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옆 사람의 맘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요즘의 행복이 각자 자기 충족에만 그치는 건 아닌지 싶을 때도 많다. 점점 더 자기 앞만 보고 내달리게 하는 사회에서 오늘 아침 풍경은 좀 달랐다. 이른 아침부터 투표를 하러 가거나 하고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뒤라 내 맘이 더 복잡한 건지도 모르겠다.

 

 

 

신영복 선생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자유를 되찾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감옥에서 우리 것에 대한 공부를 결심했다. 당시 교도소 규정 때문에 책을 세 권 이상 소지할 수 없어 현실적인 이유로 오래 볼 책을 고심하다 그리된 것이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했다고 하겠다.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선생님.

이 책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으로 고대국가가 건설되는 시대였고 사회에 대한 최초의 담론이 쏟아져 나오며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 변혁기였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석가도 이 시대의 사상가였다. 신영복 선생은 춘추전국시대가 현대 자본주의 체제와 신자유주의적 질서, 무한 경쟁의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은 서양 중심의 질서가 반드시 변화할 때이기도 하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存在論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존재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實體性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 원리를 갖습니다. 그것은 자기 증식을 운동 원리로 하는 자본 운동의 표현입니다.

근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자본의 운동 원리가 관철되는 체계입니다. 근대사회의 사회론社會論이란 이러한 존재론적 세계 인식을 전제한 다음 개별 존재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關係網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서양 근대 문명은 유럽 고대 과학 정신과 기독교의 결합(흄과 칸트의 견해) 이었다. 많은 역사서들은 과학과 종교가 기능적으로 조화된 구조여서 서양 문명이 동아시아에 앞서 현대화를 실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축은 서로 모순된 구조라는 게 결정적 결함이다. 비종교적인 과학과 비과학적인 종교. 과학의 압도적 우위로 진리와 선이라는 서양 문명의 기본 구조는 와해되었다. 종교의 역할 축소와 함께 현재 과학은 자본 축적의 전략적 수단이 되어 사회 변화를 증폭하고 미래에 대한 압도적 규정력을 행사하고 있다. 패권 국가의 일방적 세계 전략은 이러한 모순을 더욱 첨예화하고 있다. 신영복 선생은 서구 문명이 도덕적 근거를 비종교적인 인문주의人文主義에 두는 동양적 구성 원리에 가치를 두었더라면 이러한 모순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같은 위기에 처한 지금, 차이가 아니라 공존을 위한 관계망을 강조하는 이 강의는 현실적인 공론을 제시하고 있다. 21세기를 시작하며 많은 미래 담론들이 나왔지만, 신영복 선생은 그것들이 20세기의 지배 구조를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저의를 내면에 감추고 있다고 보고 새로운 담론을 위해서는 근대사회의 기본적 구조가 아닌 새로운 구성 원리로 바꾸는 담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양 문명뿐만 아니라 모든 사상은 기본적으로 모순 구조를 내장하고 있다. 모든 사상은 대립, 모순, 긴장, 갈등 과정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동양적 구성 원리에서는 그러한 모순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중용中庸)이 특징이다. 인본주의 유가儒家와 자연주의 도가道家의 견제도 그랬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할수록 불변의 진리에 대한 탐구가 절실해진다. 공자가 위편삼절(韋編三絶: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 읽다) 해 읽은 『주역』의 탄생은 그런 배경이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진리의 자리에 정의와 평등과 자유를 두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자의 사상이 서주西周 시대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더라도 현대의 가치 의식으로 재단할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담론(『논어』)에서 보편적 개념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영복 선생은 『자본론』과 『논어』가 사회관계를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동질적인 책이라고 말한다.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을 중심으로 사회적 관점을 정리하는 것이 사회 변혁의 문제를 장기적이고 본질적으로 재편하는 과정이다. 한국의 문제도 바로 이것 아닌가. 경제 발전과 돈을 좇으며 사람을 함부로 대하던 문제가 사회 전반에서 다양한 형태로 목격되고 있다. 무왕불복(無往不復 : 지나간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 『주역』 지천태괘地天泰掛의 효사爻辭)을 우리는 더 참담하게 마주하고 있다.

 

「『노자』의 서술 방식은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설辭說을 최소한으로 하는 엄숙주의가 기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내용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선언적 명제命題에 국한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장자』는 만연체를 기조로 하면서 허황하기 짝이 없는 가공과 전설 그리고 해학과 풍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두 책의 제1장이 그러한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자』의 제1장은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 명가명名可名 비상명非常名’입니다. 이에 비하여 『장자』의 첫 구절은 “북쪽 깊은 바다(北冥)에 물고기가 한 마리 살았는데,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하였다. 그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가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로 시작됩니다."

이 첫 구절의 차이가 사실 노장老莊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자는 도道의 존재성을 전제합니다. 도를 모든 유有의 근원적 존재로 상정하고 이 도로 돌아갈 것(歸)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장자는 도를 무궁한 생성 변화 그 자체로 파악하고 그 도와 함께 소요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지요. 『노자』를 우리는 민초들의 정치학으로 이해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읽었습니다만 『노자』에는 그러한 사회성과 정치성이 분명하게 있는 것이지요. 『장자』에는 이러한 차원의 정치학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장자』의 정치학은 오히려 다른 차원에서 모색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절대적 자유와 소요를 장자의 정치적 선언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패권 경쟁을 반대하고 궁극적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자』와 『노자』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자는 노자의 상대주의 철학 사상에 주목하고 이를 계승하고 있지만 이를 심화해가는 과정에서 노자로부터 결정적으로 멀어져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주의적인 세계, 즉 ‘정신의 자유’로 옮겨갔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도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떻든 노자의 관념화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겸애는 별애別愛의 반대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겸애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평등주의, 박애주의입니다. 묵자는 사회적 혼란은 바로 나와 남을 구별하는 차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나아가 서로 이익이 되는 상리相利의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상리의 관계는 개인의 태도나 개인의 윤리적 차원을 넘어서는 구조와 제도의 문제임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도적·법제적 내용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묵자』에는 겸애와 교리의 제도적 장치에 대해서는 보다 진전된 논의가 없습니다. 애정愛情과 연대連帶라는 원칙적 주장에 머무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학儒學은 객관파客觀派와 주관파主觀派로 나누어집니다. 사회질서와 제도를 강조하는 순자 계통이 객관파로 분류되고, 반대로 개인의 행위를 천리天理에 합치시키고자 하는, 다시 말하자면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는 맹자 계통이 주관파로 분류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후에 기학파氣學派와 이학파理學派로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순자는 예禮에 의한 통치를 주장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덕德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주관파와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주관파에서도 공자의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계승하여 예를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순자의 예는 공자의 예와는 달리 선왕先王의 주례周禮가 아니라 금왕今王의 제도와 법을 의미합니다. 대체로 안정기에는 예가 개인의 수양과 도덕규범으로 해석되고 사회 변혁기에는 사회질서와 제도의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략)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악설을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매우 피상적이고 도식적인 이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性은 선악 이전의 개념입니다. 선과 악은 사회적 개념입니다. 따라서 성과 선악을 조합하는 개념 구성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천과 천명을 부정한 순자의 사상 체계에 있어서 본성이라는 개념이 설 자리는 처음부터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성악설은 인성론이 아니라 순자의 사회학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교육론과 예론禮論, 제도론制度論을 전개하기 위한 근거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사실입니다.

(중략)

순자는 예론에서 예는 기르는 것(養)이라고 했습니다. 순자의 예가 곧 법이 되는 것임은 이미 이야기했지요. 따라서 순자는 법이란 무엇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의 잠재력을 길러내는 것이며, ‘법’이란 글자 그대로 물(水)이 잘 흘러가도록(去)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순자의 「악론」편은 대체로 묵자의 비악론非樂論을 비판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화순’和順입니다. 분계와 법과 규범과 제도라는 각박하고 비정한 것들을 음악으로 화순시키는 것입니다.」

 

 

「불교 사상은 해체 철학의 진보성과 무책임성이라는 양면을 동시에 함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책임성이란 모든 존재의 구조를 해체함으로써 존재의 의미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지요. 마치 언어가 어떤 지시적 개념이듯이 삼라만상이 어떤 지시적 표지標識로 공동화空洞化됨으로써 가장 철저한 관념론으로 전락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든 것에 대한 의미 부여가 거꾸로 모든 것을 해체해버리는 거대한 역설입니다. 실제로 수隋 당唐 이래로 선종 불교가 그 지반을 널리 확장해가면서 이러한 의식의 무정부성이 사회적 문제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그 의미를 규정하고자 하는 송대의 신유학이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중략)

문명의 중심을 자처한 중화사상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불교의 전래와 17세기 이후 서구 사상이 도입되었을 때라고 합니다. 그것은 중국 이외에 문명이 있다는 사실에서 받은 충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민족의 지배 기간인 원사元史와 청사淸史마저도 각각 송宋과 명明을 계승하는 정통 왕조로 규정하는 것이 중국의 중화주의中華主義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망’亡이라 하지 않고 도道가 전해지지 않는 것을 ‘망’이라고 할 정도로 중화주의는 초민족적 세계관이며 문화주의적 세계관이었습니다.

중국이 불교에서 받은 충격은 이러한 중화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난 것입니다. 사이팔만四夷八蠻이라는 세계 인식은 중국 이외에는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며 오만이었습니다.

중국 이외에 다른 문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화주의적 세계관이 무너지는 충격인 것이지요. 불교 철학은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세계관의 변화를 요구할 정도로 대단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불교 사상은 현실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유학을 대신하여 사회의 이념 형태를 규정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굳건한 지위를 점하게 된 것이지요. 특히 불교 사상은 개인주의적이며 반사회적인 해체 사상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신유학의 등장은 불교의 이러한 해체주의적이고 반사회적인 사상 영향으로부터 사회질서를 지키고 통일 국가를 만들어가야 하는 현실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송대 신유학과 관련된 논의 중에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송대 신유학에 이르러 비로소 유학의 철학화가 이루어졌다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철학 즉 philosophy는 어디까지나 서양의 문화 전통에서 비롯된 특수한 문화 아이템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 이후 중세의 스콜라 철학을 거쳐 근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소위 서양 철학은 현실과 이상, 현상과 본질 등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구조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학적 구조라는 것이지요. 존재론적 구조이면서 동시에 신학적 구조라는 또 하나의 특수한 사유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 철학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철학을 인류의 보편적 문화 형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이 됩니다. 따라서 철학이라는 지적 활동을 보편적인 것으로 추인하기보다는 그것을 문화 상대주의적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반론의 요지입니다. 철학은 서유럽 중심의 특수한 지적 활동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송대 유학이 철학화했다는 평가는 서양 철학 고유의 범주와 개념을 송대 유학에 적용하여 바라보았을 때만 부분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중략)

송대의 유학자들에게 불교 사상은 현실의 물질성을 제거하고 사회 제도 그 자체의 존립을 부정하는 지극히 위험한 반사회적 사상이었으며 비윤리적 사상이었습니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 해탈解脫이라는 관념은 그 자체가 일종의 초윤리적이고 탈사회적인 의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탈에는 일체의 사회적 관점이 없습니다. 사회적 책무도 사회적 윤리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사회적 실천과 사회적 업적에 대하여 일말의 의미 부여도 하지 않는 무정부적 해체주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송대 유학자들에게 위기의식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주자朱子로 대표되는 송대 신유학자들로 하여금 시대적 사명감으로 『중용』과 『대학』을 장구하게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大學은 원래 『예기』禮記 제42편이었습니다만 주자가 그것을 따로 떼어 경經 1장, 전傳 10장으로 나누어 주석했습니다. 경은 공자의 말씀을 증자가 기술한 것이고, 전은 증자의 뜻을 그 제자가 기술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대漢代 유가儒家의 공동 저작이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대학』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유가 사상 중에서 가장 깊이 있는 내용이라 평가됩니다. …… 『대학』의 내용을 요약한다면 첫째 명덕을 밝히는 것(明明德), 둘째 백성을 친애하는 것(親民 혹은 新民: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 셋째 최고의 선에 도달하는 것(止於至善)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세 가지를 3강령三綱領이라 합니다. 그리고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가 8조목입니다.

우리는 『대학』의 내용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주자가 왜 『예기』의 이 부분에 주목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장구하고 주를 달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자 이전에도 사마광司馬光이 『중용대학광의』中庸大學廣義를 지어 『중용』과 함께 『대학』을 따로 다루었습니다. 이처럼 『대학』을 주목하게 된 배경이 중요합니다. 『대학』은 일반적으로 대인大人, 즉 귀족, 위정자의 학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대학』은 단지 지식 계층의 학이라기보다는 당대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덕이 있는 사회, 백성을 친애하는 사회, 최고의 선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해탈과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송대 지식인들의 사회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反불교적이고 반도가적입니다. 불교의 몰沒사회적 성격에 대한 비판입니다. 『대학』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평화로운 세계의 건설입니다.」

 

서양철학을 좀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인용을 통해서도 보듯이 동양 사상이 인간 중심의 관계지향적 성찰이라는 게 와닿을 것이다. 동양 사상을 현실적이라거나 논리가 부실하다고 폄하하는 경향도 보는데, 서양철학의 그 치열한 이성 중심주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블랙홀 같다. 신영복 선생은 강의 말미에서 “한 사람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가슴(heart)”이고 사상과 생각을 결정하는 것도 머리(head)가 아니라 가슴이라고 했다.

 

「시와 산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몇 가지 부언해둡니다.

첫째, 사상은 감성의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합니다. 사상은 이성적 논리가 아니라 감성적 정서에 담겨야 하고 인격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성과 인격은 이를테면 사상의 최고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상은 그 형식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의 육화肉化된 사상이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경우에도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은 법제적 정비 수준에 의하여 판단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회 성원들의 일상적 생활 속에서 매일매일 실현되는 삶의 형태로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입니다. 단지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사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말이나 글로써 주장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사상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자기의 사상이 아닌 것도 얼마든지 주장하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삶 속에서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의 존재 형식은 담론이 아니라 실천인 것입니다. 그리고 실천된 것은 검증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 담론의 구조가 아무리 논리적이라고 하더라도 인격으로서 육화된 것이 아니면 사상이라고 명명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책임이 따르는 실천의 형태가 사상의 현실적 존재 형태라고 하는 것이지요. 사상은 지붕 위에서 던지는 종이비행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많은 어지러움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만 문제를 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라고 했던 묵자, “바다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물(水)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성인聖人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은 언言에 대하여 말하기 어려워하는 법이다. 물을 관찰할 때는 반드시 그 물결을 바라보아야 한다(깊은 물은 높은 물결을, 얕은 물은 낮은 물결을 일으키는 법이다). 일월日月의 밝은 빛은 작은 틈새도 남김없이 비추는 법이며,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군자는 도에 뜻을 둔 이상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법”(「盡心 上」)이라 엄정히 말하는 맹자,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상서尙書』,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것으로 미모美貌보다는 건강健康이 더 중요하고 건강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뜻)을 『백범일지』에 쓰고 맘에 새기려 했던 백범 선생처럼 내 맘만이 아니라 많은 맘을 살피는 실천을 잃지 말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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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22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