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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좋은 책은 질문과 답을 함께 가지고 있다. 기대와 달리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게 아닐 수도 있다. 그 방식은 진열 식도 있고 복잡한 서랍 식도 있지만 문학은 주문 제작식이 아니라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애정을 갖고 찾아보면 누구라도 얻을 수 있는 게 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질문과 답을 찾으니까. 100년 뒤에도 이 소설이 존재하는 이유다. 잘 모르면서 찾는 경우도 있는데, 발견하면 이제껏 이걸 찾았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사랑, 삶이 대표적이려나.
좋은 작가는 질문과 답이 읽는 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잘 안다. 그들은 고치고 또 고치며, 고치는 게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최인훈 소설 <광장>은 증쇄할 때마다 원고를 고쳐서 내용이 정확히 몇 번 달라졌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고 들었다. 그 끝을 다 파악할 수 없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광장>은 한 번쯤 읽어봤을 소설이다. 반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1913년 1권이 출판된 이후 굉장한 역사를 만들어 왔으나, 불행히도 구매자는 있으되 독자는 거의 없다. 읽기 시작하는 것마저 부러움을 사는 기이한 책이 되었다. 어떤 게 더 나은 운명인가. 출발했더라도 독자는 읽는 내내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 마침내 뭔가 알 수는 있는지 곤혹의 연속이다. 아프리카에 갔다고 해서 다 코끼리를 만져보는 건 아니니까.
프루스트의 유일하며 악명 높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에서, 그는 먼 나라 독자들이 느낄 당혹감을 짐작이라도 한 듯 말하고 있다.
˝우리가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옮긴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번역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 불분명한 형태로 그 느낌을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우리를 해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p271)
˝나는 똑같은 감동이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p272)
그렇게 나도 이 책에서 나만의 느낌-종탑을 발견하고 싶었다.
1권의 스토리는 대강 이렇다. 마르셀 일가는 여름휴가마다 시골 콩브레에 사는 레오니 아주머니 댁에 온다. 마르셀이 만나는 공간과 사물, 인물에 따라 이야기는 흐른다. 1권에서 주로 다루는 인물은 레오니 아주머니와 하녀 프랑수아즈, 일가의 오랜 친구였으나 화류계 여인과 결혼해 멀어지게 되는 스완 씨, 사교계에 끼고 싶어 하는 속물적인 르그랑댕 씨, 딸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지만 음악가로선 재능 없는 뱅퇴유 씨와 그의 딸이다. 뱅퇴유 양에 대한 이야기는 좀 충격적인데, 읽지 않은 독자의 재미를 보호하고자 스포일러는 참는다;
1. 종탑과 성탑
초반부터 ˝종탑˝은 중요하게 서술되었다. ˝종탑˝과 ˝성탑˝은 거의 유사하게 다뤄지고 있는데, 화자 마르셀이 콩브레 마을을 바라보는 외적인 중심축이기도 하고, 마르셀과 프루스트가 개인으로서, 작가로서 희구(希求) 하는 내적인 중심축이기도 하다. 몽상가이자 작가를 꿈꾸는 마르셀을 짐작하게 하는 아래 서술을 보자.
˝아! 슬프게도 콩브레에 있는 우리 집 꼭대기에 아이리스 꽃향기가 풍기는 방의 열린 창문 한가운데로 루생빌 성탑밖에 보이지 않았을 때, 나는 그것이 마치 내 첫 번째 욕망들의 속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유일한 상대이기라도 한 듯이, 그 성탑을 향해 어느 마을 아이를 보내 달라고 애원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때 나는 탐험을 시도하는 여행자나 절망에 빠져 자살하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망설이며 정신을 잃고는 창문을 통해 내게로까지 드리운 야생 카시스 나뭇잎 위에 달팽이의 자연스러운 흔적이 덧붙을 때까지 죽음의 길이라고 여겨지는 그런 미지의 길을 내 안에 개척하고 있었다. 나는 헛되이 성탑에 애원했다. 넓은 들판을 내 시야에 가득 담고, 거기서 한 여인을 데려오려고 헛되이 내 시선을 쥐어짰다˝(p275~276)
성탑이 보이는 그 방엔 어머니의 잠자리 키스를 고대하며 성(性)에 눈 떠가는 ˝소년˝ 마르셀이 있다.
그 방을 비추는 마술 환등기에도 성탑 스토리가 있다. 비운의 주느비에브 드 브라방이 성(城)에 갇혀 산 중세 전설은, 이야기를 꿈꾸는 ˝작가˝ 마르셀을 보여준다. 프루스트는 첫 필명으로 ˝브라방˝을 쓰기도 했다.
종탑과 성탑은 중세 건축의 대표적 고딕 양식이기도 하다.
2. 가고, 가지 않은 길
1권에서 ˝산책길˝은 이 소설 서사의 중요한 줄기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메제글리즈 쪽이 현실 세계 라면, 주느비에브 드 브라방의 후손인 게르망트 부인 설정에서도 알 수 있듯 게르망트 쪽은 미지(상상과 추상) 세계로 그려지고 있다. 이 책을 읽을 때 그런 상반된 분위기를 음미해보면 좋다. 나는 후반에 가서야 이걸 알게 됐다ㅜㅜ 두 번째 읽을 때는 확실히 느껴 보리라!
3. ˝나˝와 ˝우리˝ 사이의 흐름들
마치 카메라 줌 인아웃을 보는 듯한 프루스트의 서술 방식에 문득 감탄하게 된 것도 후반부에서였다. 마르셀 ˝나˝로 얘기하는 1인칭 단수 시점은 체험을 가깝게 느끼도록 근경을 마련한다면, ˝우리˝로 얘기하는 1인칭 복수 시점은 아련한 과거를 필름으로 보듯 원경을 만든다. 1인칭 복수 시점이 인상적이었던 아고타 크리스토프<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과 비교해봐도 재밌을 부분이다.
4. 분홍빛 축제 시절
읽는 내내 아쉬웠는데, 1권 표지는 분홍색이었어야 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에서 언급된 분홍들을 보라!
콩브레 생틸레르 성당의 분홍빛 종탑, 미래에 스완 씨 부인이 되는 분홍빛 여인의 등장, 르그랑댕 씨가 도취해서 말하는 분홍빛 구름, 분홍빛 미나레트(회교 사원의 첨탑), 분홍색 산사나무 꽃, 분홍 대리석, 분홍색 주근깨 투성이 스완 양에게 사랑을 느끼는 마르셀 등등등.
-내 분홍 예찬론(http://blog.aladin.co.kr/durepos/8075501)에서 발췌
특히 주목할 것은 산사나무 꽃인데, 유럽에서는 `오월의 꽃`이라고 불린다. 다음 서술을 보자.
˝분홍색 산사 꽃 앞에서 더 많은 황홀감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꽃들에게서 축제 분위기가 풍기는 것이 인공적 기교가 아닌 자연에 의해서였기 때문이다˝(p246~247)
분홍은 색 자체도 묘하다. 관능과 순수가 동시에 느껴지는 색이다.
도시에서 자연으로 온 마르셀의 유년 시절 빛깔이기도 하고, 성인이 된 마르셀이 회고하는 ˝콩브레에서의 시간˝에 대한 상징적인 색이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책의 축제 시작을 알리는 색이기도 하다.
5. 향하고 또 향하는~
인문학과 정신분석 쪽으로도 탐구해보고 싶은 게 참 많지만 두 번째 읽을 때를 기약해야 될 거 같다.
다음 권이 있으니 마음이 바쁘다. <게르망트 쪽> 신간 출간 때문에 더 그렇다. 연말에 끄덕끄덕 후후~ 여유롭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겠다는 내 고요한 계획에 날벼락이;;; 이봐, 시험이 아니야... 읽고 싶은 욕망의 불길이 꺼질까 봐 그런다고!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온통 ˝~향하는˝ 소설! 시간처럼, 마음처럼~
6. 내가 1권에서 세 번째로 좋아하는 묘사 부분 - 영화 <인셉션>을 또 떠올렸다!
˝아침 햇살이ㅡ내가 햇빛으로 착각했던, 벽난로 속 마지막 장작불이 커튼 구리 봉에 반사한 것이 아닌ㅡ어둠 속에서 분필로 그리듯 처음으로 하얀 광선을 그려 수정을 시도하자, 창문은 커튼과 더불어 내가 잘못 배치해 놓았던 문틀에서 사라졌으며, 한편 내 기억이 서투르게 놓아둔 책상은 창문에 자리를 내주려고 벽난로를 앞쪽으로 밀어내면서 복도 경계 벽을 허물고 전속력으로 도주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장실이 펼쳐졌던 곳은 작은 안마당이 차지했고, 내가 어둠 속에서 다시 지었던 방은 아침햇살이 손가락을 추켜올려 커튼 위로 그려 넣은 창백한 표시에서 쫓겨나 깨어남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다른 방들에 합류했다˝(p319, 1권의 끝)
* 사진은 민음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태어나지 않았던 어느 해 아침,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