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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두려움은 지나치다?

 1. 핵에 있어 테러리스트들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리차드 뮬러 논지는 자의적입니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이미 군사적 목적이 있는데, 외부의 적을 상정하는 저자의 논점이 틀렸습니다. <세상을 구한 남자> 다큐멘터리에서도 보았듯이 냉전 체제에서 소련과 미국이  핵전쟁을 일으킬 뻔 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군요. 트루먼은 이미 일본에 핵무기를 써먹었죠.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위험 요소가 많아요. 전쟁이 일어나면 적국의 무력화를 위해 공항부터 집중 타격하듯이 적국의 원자로 공격 안할 거란 보장 있습니까? 전쟁이 일어나면 곧바로 약점이 될 곳이죠. 2차 세계 대전 때와 다른 타격점을 만들었다고 봐야죠.  911 자살테러처럼 일어날 거라 생각 못한 일을 뒤에 생각해봐야 늦은 일입니다. 핵의 폐해를 생각할 때 핵 사용에 대한 신중함은 결코 지나친 게 아닙니다. 

2. 현재 기술로는 완벽할 수 없는 핵폐기물 저장, 그에 쏟는 막대한 비용도 문제지만, 핵발전소 가동 지역에 주로 발생하는 질병(갑상선 이상 등등)으로 사망자가 계속 나오고 있으며 그곳 주민들은 사는 내내 불안 속에 살죠. 삶의 터전이 거기라 쉽게 떠나지도 못하고요. 그런 보고들은 쉬쉬 되고 있으니 잘 알려지지 않고, 지역이니 국가니 발전 소리가 과연 온당한 걸까요. 대의를 위해 소수의 피해는 감안하자 그겁니까.
독일이 후쿠시마 사태 후 원전 추진을 중지했지만, 다른 나라에서 계속 추진하면 자본주의 경쟁 심리상 그 의지를 고수할 수 있을까요? 개발도상국이 서구 국가와 경쟁하기 위해 가장 탐내는 에너지가 핵 발전소죠. 핵 발전소는 발전이 아니라 탐욕과 경쟁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건 핵발전소에 문제가 크게 발생하면 막을 수가 없잖습니까. 피해는 천문학적이고요. 체르노빌, 후쿠시마 보고도 핵을 안전하게 쓸 수 있다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다니 참 놀랍습니다.

3. 천연우라늄에 대해....한번 시작되면 큰 일이지만 핵반응이 그리 쉽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우라늄 원자가 쪼개져야 하고, 그때 열에너지와 중성자가 나오고 이것이 다른 원자들의 분열을 일으켜 핵분열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미 지구엔 선사시대 발생한 걸로 추정되는 수십 억년 된 천연원자로가 있는데, 지금의 현대 원자로와 같은 방식으로 우라늄 축적 층에 지하수가 덮고 있는 신기한 자연현상이죠. 
이 모든 걸 핵에너지 전문가이고 버클리 물리 교수인 리차드 뮬러 씨가 더 잘 알겠지만, 그는 인간의 인위성과 탐욕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기 보다 공리성에 치중한 인상입니다.

4. 핵발전소를 더더 지을 만큼 그렇게 대단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가 싶습니다. 대체 에너지 개발이 쉽지 않고 또 시일이 걸리는 현황이다보니 그보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핵 에너지를 써먹자 이 심리 있지 않을까요? 산업혁명 시대부터 지금까지 화석연료를 무분별하게 썼듯이.
핵 에너지는 다른 에너지보다 피해가 더 크다는 걸 중요하게 봐야죠. 핵 에너지 활용으로 인한 발전보다 반대급부의 피해를.
북 다이제스터님 서재글(http://blog.aladin.co.kr/713413104/7666226) ,  guiness님 서재글(http://blog.aladin.co.kr/705307136/7869980) 보면, 전기자동차는 오래 전에 사용 가능했으나 석유에너지, 자동차 산업 등 자본가들 압력으로 폐기되었다는 걸 말씀하시고 있죠. 핵 에너지 옹호론도 이런 역학을 무시할 수 없죠. 이미 핵피아는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고요. 음모론이라고 보기엔 신빙성 있는 보고들이 많습니다. 핵 발전소를 국가 사업으로 해외에 파는 시점이니 자본가들과 다르지도 않고요.
물리를 보고 삶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사회가 돌아가는 판을 제대로 보고 물리를 말했어야 하지 않나...리차드 뮬러에 대한 리뷰를 보고 든 아쉬움입니다.

근거 자료를 하나하나 가져오기도 좀 귀찮고; 오늘은 좀 조용히 있고 싶었는데, 리처드 뮬러 주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런 먼댓글로 갈무리한 점 양해바랍니다.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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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8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8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연결고리... 이기적 유전자의 협력

 상상하기 어려운 진기한 생물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괴로운 인간 동물 얘기가 더 많아서 아쉽기도 유익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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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3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1-23 03:19   좋아요 1 | URL
정식 리뷰 다시 써야죠^^
사진을 여러 장 올리려면 들쭉날쭉하지 않게 밸런스 맞추고 사이즈 맞추고 하는 게 번거로운 일이긴 하죠. 그런 것까지 세심하게 살펴 주시다니! 감동요~
글 올릴 생각이 없었는데 겨울호랑이님 글과 연관되는 부분이겠다 싶어서 올리게 됐네요;; 이의제기나 반박처럼 생각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 내용 정리하다 보니 연관된 것이 보였던 것일 뿐^^;;;

책 제목 앞머리글인 ˝공존하려는 인간에게만 보이는 것들˝이란 문장이 멋으로 붙은 게 아니더군요. 여러 생물들에 대한 애정과 그들과 공생하며 겸손해야 할 인간의 자세를 많이 생각하게 했습니다. 요즘 너무 사회가 각박해 이 책이 바라는 환경이 멀긴 하지요..

겨울호랑이 2018-01-23 08: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개인적으로 저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명제에 강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인간을 제외한 어떤 동식물이 이에 대해 동의했는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의문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동물이 이성이 있다, 없다‘를 말하는 문제 역시 어려운 문제겠지요. 일단 AgalmA님과 같은 편임을 인증하고...ㅋ <도덕감정론>의 의의는 다른 것보다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말한 것과 같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같은 자연상태에서 서로 다투는 인간의 본성을 말하기 보다 서로 ‘동감‘하는 인간을 말한다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시장의 질서˝는 <국부론>에서는 말하는 분업과 시장경제보다 이러한 ‘동감‘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러한 기본 전제가 지켜지지 못한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자체가 거짓된 약속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동감‘이라는 주제는 ‘자본주의‘의 알파이며, 오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논의 범위를 넓혀 생물체 전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분석 도구가 필요하겠지요. 유전자와 같은... AgalmA님 덕분에 좋은 책을 알게 되네요.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혼자만의 관점에 매몰되기 쉬운데 이처럼 다른 관점을 알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

AgalmA 2018-01-24 02:11   좋아요 2 | URL
‘동감‘이 생물을 움직이는 중요한 추동체인 건 저도 동의합니다. 제가 올린 본문도 애덤 스미스의 ‘동감‘을 지지하는 견지에서 더 세분화한 분석을 하는 것이지 겨울 호랑이님과 전혀 다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편 받고 저는 팬도 얹어서 돌려 드릴께요~ㅎ

2018-01-23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1-24 01:35   좋아요 1 | URL
5페이지 넘어가니 쓰는 거보다 찍는 게 더 빠르겠더라고요ㅎ 저도 영장류라 나름 계산을ㅎ;;;

2018-01-24 0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부는 폭력일 수도 있는데...

 

"그에게 마르크스 <자본론>을 권한다. 나는 못 읽어 보았지만, 그는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옥스퍼드대 철학과 교수니까" ㅋㅋㅋ 위트 넘치심~^^b

다크나이트 생각나네요. 범죄자들이 탄 배와 일반인이 탄 배 중 어느 것을 구할 것인가. 더불어 사랑이냐 검사(정의)냐를 구하는 선택 기로도 있었죠.
니체가 연민을 그토록 비판했던 것처럼 즉 기부도 최대 효율과 감정적 판단에 좌우되기에 보조적 수단이지 근본을 바꿀 추동의 역할이긴 어렵다고 봐요.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사람들을 바라는 게 아니라고 해도 다수의 기부자가 움직이는 게 그리 잘 되는 일도 아니고.

일전에 권역외상센터 문제를 다룬「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중국집 배달부 아저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실려 왔는데 그 시각 동시에 같이 온 국회의원의 사소한 치료(는 무슨 접대) 때문에 그는 (흠... 제 표현력 부족으로 이런 표현 좀 쓰겠습니다...) 뺑이 돌려지다가 결국 사망하셨죠. 응급조치를 빨리했다면 꽤 달라졌을 텐데 고아라 보호자도 없고 권력도 없으니 누가 신경을 써 줬겠나요. 이 분의 죽음이 더 뼈아픈 건 수입 상당 부분을 여러 사람에게 기부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자기 잘못되면 큰일 난다며 인터뷰했던 장면이 나오는데 아.... 진짜 이 세상을 욕하며 울었어요.

이런 사례만 봐도 기부란 건 얼마나 허점이 많습니까. 실행 과정부터 분배까지 너무도 영세하고 부실해요. 한국이란 나라가 더 그런지도 모르고요.
외국은 그럼 얼마나 나은가? 기부는 이미 사회환원을 가장한 재테크 성격도 있죠. 그래서 시시비비가 왕왕 생기는 거고. 한국이 그런 건 잘 배어와 써먹어 청ㄱ재단 같은 것들이 있죠.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부라는 허울로 이용가치만 더 높아지는 거 아닌가 염려가... 펀드식 기부 체계의 허와 실처럼 말입니다. 최근 다스 주식매입 국민 펀드 참여 운동은 고무적이긴 했지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같이 어깨공무한 한집 살림이죠. 서로가 서로에게 추동체이지만 또 아킬레스건이기도 하죠. 내부가 돌아가며 외부로 많은 것들을 날려버리는 원심 분리기 구조 같달까요. 


공동체주의 사회론 말씀하셨듯이 전 지구적 구조가 짜여야 해요. 차후 EU 공동체처럼 분산되더라도 한 번 그런 결속이 짜이면 제로섬게임까지는 안될 테니까요.

댓글이 넘 길어져서 먼댓글로 처리했어요^^;
지금의 제 생각의 허점을 나중에 다시 좀 들여다봐야겠다 싶어서.
그럼 따뜻한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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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1-05 0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 그분 중국집 배달원 아닌가요, 라고 쓰려다가 이미 쓰셨군요. 눈병이 나고 부터 읽기에 주릐력 결핍이 발생해서..
이 분을 모티브로 한 영화도 나와서 본 적 있습니다.. 영화 자체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최수종 주연이었나 아마 그럴 겁니다..

AgalmA 2018-01-05 09:41   좋아요 0 | URL
방송 인터뷰까지 하신 걸 보면 꽤 알려지신 분 같은데 tv를 안 보니 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분입니다. 영화까지 있었다니 제가 참 어두웠군요;;

2018-01-05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1-05 11:29   좋아요 1 | URL
네. 말씀에 동의합니다. 제가 덧붙이고 싶었던 내용을 잘 말해 주셨습니다^^ 좋은 내용인데 비공개라 혼자 보기 아깝습니다. 나중에 포스팅을 따로 하셔도 좋을 내용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1-12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먼 댓글 이제야 봤습니다.
먼 댓글 달릴 때 알려주는 시스템이 아직 북플에 없나 보네요.ㅠㅠ
기부 자체가 나쁜진 않은데, 아니 기부처럼 좋은 건 없는데...시스템과 구조적 문제로 기부 자체가 비난 받는 것이 속상합니다.
완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지젝은 <폭력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런 상황에선 기부를 절대 하지 말라는 식으로 얘기하더라구요.
그런 어설픈 행동이 시스템과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한다고요.
˝제발들 가만히 있어!˝ 라고 외치는 듯 해서 그 책 읽으며 많이 놀랐습니다.ㅎㅎ

AgalmA 2018-01-12 19:13   좋아요 1 | URL
<대량살상수학무기> 리뷰 말미에서 말씀하셨듯이 기부도 도덕 이데올로기와 연결되기 때문에 하지 말란다고 안할 영역이 아니죠.
그리고 비료 만드는 기술이 핵폭탄으로까지 발전했듯 좋은 기술, 제도도 향후 방향은 어찌될 지 모르는 거라서 획일적인 방법론이 어렵죠. 말씀하셨듯 객관적일 거라 믿었던 빅데이터도 기준에 따라 달라지잖습니까~_~
 
사회적인 시선



안녕하세요. 신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난데없이 등장하셔서 또 생각거릴 잔뜩 주시네요^^;

신지-한수철 vs 곰곰발 구도는 알라딘 서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할 대결구도일 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세 분이 만나실 거 같지도 않으니.... 제가 뭔가 말을 해도 이 분쟁은 나아질 거 같지 않아 잘 풀리길 바란다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건 서민 교수-문빠에 대한 님의 의견을 보고 생각해 볼 것이 있어서입니다. 제 깜냥에서 할 수 있는 말만 하는 점 이해 바랍니다^^;

문빠 현상은 아주 복잡한 것들이 모여있는 에너지 場이지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그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의식, 10년간의 정치 퇴행, 이명박근혜 정권이 양산한 많은 문제에 대한 분노와 다시 정상화하고 싶은 희망, 억눌려왔던 자들이 드디어 현실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기회의 도래 등등등이요.

서민 교수의 "문빠는 미쳤다"는 발언의 제일 큰 문제는 일반화입니다. 주장이 늘 가지는 딜레마이자 한계죠.
어느 세력이든 단일 이데올로기와 목표로 모이지 않습니다. 위에 제가 언급한 것처럼 문빠의 場도 그것들의 취합이 보여주는 형성그림이지 단일체가 아닙니다. 서민 교수의 발언은 어떤 부정도 용납지 않는 문빠에겐 그자체로 공격이 됐을 거고, 그 정도 문빠는 아닌 사람들에겐 싸잡아서 비난을 듣는 듯한 불쾌감을, 문빠를 공격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문빠 내부 분열을 부추길 좋은 떡밥 제공 등이 됐지요. 어떤 문제에서 이들의 이 점이 문제다가 되어야지 이들은 모든 걸 잘못되게 만든다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그런 식으로는 해결은 커녕 분풀이나 공격 밖에 되지 않습니다.

신지님의 논지에서도 비슷한 소지가 보이는데요. 님이 말하는 군중, 대중은 님의 종합화이지 단일화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닙니다. 손 의원이 말한 '문빠는 표준 지성'도 허상에 불과합니다. 세분화하면 우리는 비슷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님의 논리 구도 : 다수-소수(약자), 악-선도 너무 이분법적이며 일반화가 느껴집니다. 상대만큼 자신의 합리화가 느껴지며 세심하지 못해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계속 이합집산하는데 대체로 힘 있는 쪽, 성공률이 높은 쪽에 사람들이 몰려가지요. '힘의 이동'이라고 봐야 할 텐데 그걸 '다수'라고 통칭하죠. 이번 경우는 '문빠'가 그렇게 보인 거죠. 정말 이 정부의 지지자들이 모두 문제적인 문빠이며 파시즘적으로만 움직입니까. 이건 같고 저건 다르지만 더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는 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게 집중 조명된다면 더 크게 부각되겠죠.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 더더더요. 이런 역학에서 이 정부의 지지자들이 모두 사회악 같은 문빠라거나 곰발님이 다수로 통칭 될 게 아니란 말입니다. 이런 대결구도, 구별짓기는 끊임없이 만들어집니다. 인간 삶의 지긋지긋한 특성이죠. 

서민 교수의 두 번째 문제는 '문빠'의 부정적인 특정 현상만 손가락질한 일종의 엘리트주의 행동입니다. 넓은 시각에서 인간의 이 독특한 심리, 행동에 대해 기생충을 연구하듯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분석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서 그도 이런 프레임에 오염된 시각만 재생산했을 뿐이며 그것을 소비한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소위 지식인이고 공인 위치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됐지만 또 그걸로 설득 논리 하나 없이 자기 발언에 공신력이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으니 실망감과 비웃음, 공격을 받게 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기숙 교수가 <왕따의 정치학> 을 쓴 것처럼 당신도 그 정도 보여줘야지 뜻이 아니라 최소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논거들을 댔어야 했어요. 이런 분쟁에서 늘 그렇듯 자기 주장을 위해 확증편향적 자료들을 가져와도 그만이겠죠. 박근혜 추종자들처럼 행동한 문빠들의 실태 1. 2. 3..... 무수히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결국 문제가 점점 본질에서 멀어지는 이런 상황들 때문에 삶이 참 비루하게 느껴지고는 합니다. 대화와 논쟁의 무의미를 느끼게 되고요.

소수 의견이 늘 다수의 맹시를 지적하는 촌철살인의 지성이지 않습니다. 신지님은 소수 의견을 가질 권리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란 건 숙지하고 있습니다. 다수이든 소수이든 합리적 논리와 근거를 제시해야지(이게 있어도 힘든 일이지만;) 요즘은 현상 열거, 손가락질로 넘쳐나죠.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도 결과도 너무 많고요. 모두가 피곤해지고 외면하게 되며 해결은 요원해집니다. '사실'은 늘 주관적 사실이기 일쑤이니까요. 신이 있다-없다도 믿는 사람은 믿고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채 수 천년 동안 그렇게 이어져 오지 않았습니까.

새해 벽두부터 갑자기 머릴 써서 더 이상은 좀 무리일 거 같군요.
신지님이 너무 위축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새해인데 이렇게 시작하시게 되어 맘이 안 좋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1. 우리들은 ˝나는 안다˝의 쓰임이 얼마나 심하게 특수화되어 있는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12. ㅡ왜냐하면 ˝나는 ...... 안다˝는 알려진 것을 사실로서 보증해 주는 사태를 기술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항상 ˝나는 내가 안다고 믿었다˝라는 표현을 망각한다.

15. 어떤 오류도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은 실증되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안다˝란 단언은 충분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나는 (거기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단언일 뿐이며, 내가 그 점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확립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확실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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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1-02 16:25   좋아요 1 | URL
^^ 어찌 되었든 제 주관적 생각이겠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하려 했습니다/

2018-01-02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2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일 1그림 - 우리는 모두 무너진 적 있다

우리는 무서운 그림을 왜 그릴까요.

그 원인으로 화가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 우울증을 동반한 정신병을 자주 거론하기도 하죠. 사람에 따라 매우 큰 요소이기도 할 겁니다.

저는 더 큰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쾌락을 추구하는 성 본능(에로스)과 자기 파괴를 향한 죽음 본능(타나토스)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죠. 기질적으로 어두운 이미지를 더 좇는 사람도 있겠고, 상황이나 환경, 병으로 인해 타나토스 성질이 우성(優性)으로 표출될 수도 있겠죠.

아름다움을 즐기고 추구하는 만큼 어두움을 즐기고 추구하는 심리도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에이리언을 디자인한 Hans Rudolf Giger의 작품들에서 두 성질의 연결을 확연히 볼 수 있습니다.

 

 

 

 

Hans Rudolf Giger (Swiss. 1940-2014)

Alien Monster

 

 

 

무서운 그림에 대한 터부와 혐오는 그간의 예술 환경 요인도 따져 봐야 합니다. 감각보다 이성을 중시한 인류가 도덕적 잣대로 아름다움을 善으로 보려 했다는 점은 간과되어서 안 됩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바니타스(Vanitas, 덧없음) 같이 종교적 관념도 합세하죠. 공포를 이용한 회화와 전통이 꽤 오래 이어져 왔습니다. 예수가 죽고 부활하는 서사가 아니었다면 기독교가 그토록 강력한 힘으로 작동했을까요. 인간의 가장 큰 공포인 죽음을 거머쥔 힘이죠.

 

종교적 영향과 반대로 살펴볼 면도 있는데요. 예술은 늘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하고 표현하려 했습니다. 현대 들어 더 강력해졌죠. 종교의 힘이 약화되고 인간과 개인의 지위와 표현의 자유가 커진 영향도 있을 겁니다.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죽음과 불멸은 인간이 관심을 거두지 못하는 영원한 주제입니다밝든 어둡든 아름답든 추하든 알 수 없는 이미지와 힘에 끌리는 건 인간의 본능이며 이 자체가 예술의 속성입니다. 

  

가치 판단의 문제도 있습니다. 실물 그대로를 추구하는 미메시스 사상이 우리 환상일 뿐이라는 게 드러난 지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회화가 사실에 근접하면 근접할수록 우리는 그것을 좋다고 여겨왔고 지금도 여전합니다. 형태와 색이 뭉개진 인상파 그림이 등장했을 때 얼마나 멸시를 당했나요. 존재하지 않는 무서운 재현을 시도하는 그림은 더욱 좋아할 수 없겠죠.

 

좋은 작품은 불쾌하거나 무서운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창작자도 수용하는 우리도 이 비밀스러운 그림들에 대해 극복하려 하고 조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수긍할 수 없더라도 무서운 그림의 존재 의미는 있을 겁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미술가의 창조력을 극구 칭찬한 바 있다. 회화를 예찬하는 찬송가 『파라고네(Paragone)』가운데에서, 그는 화가를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의 태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주(主)'라고 부른다. "만약 화가가 자신이 사랑할 만한 미인을 보고 싶다면, 그는 자기 힘으로 그들을 불러낼 수가 있으며, 만약 무섭거나 어리석거나 우스꽝스럽거나 정말 동정할 만한 괴물들을 보고 싶다면, 그 자신이 그들의 주군이며 신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E. H. 곰브리치 《예술과 환영》

 

 

 

위 글에서 다 빈치는 화가의 창조력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미인을 그리는 것과 괴물을 그리는 것의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뭔가 얘기를 하다 마는 거 같은데, 이후 얘기는 공부를 더 해야 구체화 할  수 있을 거 같아 이쯤에서 마칠게요. :)

ㄱ님이 궁금해하는 회화와 심리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책은 아마도  E. H. 곰브리치《예술과 환영》 아닐까 싶습니다. 덕분에 저도 잊고 있던 이 책을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Gheyn, Jacques (Jakob) de II (Dutch, approx. 1565-1629)

"Death and the Woman", 1600, pen

 

 

 

 

 

 

Artemisia Gentileschi(Italian, approx. 1593-1653)

"Judith Slaying Holofernes", 1612-21

 

 

 

 

 

Henry Fuseli (Swiss; practiced in England, 1741-1825)

"Nightmare (The Incubus)", 1781-82

 

 

 

 

 

 

Odilon Redon(French,1840-1916)

"Caliam" , 1881

 

 

 

 

 

 

Leon Spilliaert (Belgian, 1881-1946 )

"Autoportrait au miroir",1908

 

 

 

 

 

 

Zdzislaw Beksinski (Poland, 1929-2005)

 "Embrace"

 

 

 

 

David Lynch (네, 그 영화감독)

"Man Talking", 나무패널에 혼합재료, 68.58×78.74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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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5-30 07: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음, 요즘같은 시대에 아름다움을 선으로 보는 관점과 선을 아름다움으로 보는 관점 중, 어느 쪽이 더 많은(혹은 큰) 문제를 야기할까요??

AgalmA 2017-05-31 04:12   좋아요 5 | URL
˝예쁘면 다 돼˝라는 표현도 있듯이 일상에서는 아름다움과 선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절대적 기준이 많이 붕괴되어서라고 볼 수도 있겠죠.
누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견이 나올 수 있고 상대적인 거다! 말하면 더 진척되기도 어렵죠.

아름다움보다 선이 좀더 골치아픈 개념 같은데요. 아름다움은 정적인 느낌이 강한데 선은 동적인 행위의 힘이 더 실린다고 생각합니다.

구제하려는 선한 행위가 의존성 낳는다 비난도 하지 않습니까. 이 경우에는 선을 아름답게 보지 않는 예라고 할 수 있겠죠.

요즘 팩트, 팩트 엄청 따지는데 같은 팩트로도 서로 다르게 보거나 서로 다른 팩트로 이게 진실이다 말하는 경우도 허다하죠.
결국 케바케가 답이 되는 것 같다는...

흡족한 답은 못 드린 거 같지만 흥미로운 질문 주셔서 재밌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5-30 08: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 AgalmA님 덕분에 그림에 나타난 공포, 환영 또는 추(醜)의 이미지와 배경에 대해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네요. 저도 AgalmA님의 그림을 보다가 보니 어두운 이미지를 그리는 화가의 심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네요. 화가는 어두운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 안에 있는 어두움을 외면으로 형상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정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와 같이 외면으로 형상화시키면서 내적 안정을 느끼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제가 그림을 못그리는 관계로 추측만...ㅋ) 그렇다면, 화가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느끼겠구나...(정말 그런가요?) 반면, 감상자는 결과만 보기에 어두움만 보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조금 더 나가서, ‘음악/문학 감상‘은 작가와 감상자가 과정-결과를 공유하는 반면, ‘미술 감상‘은 결과만 보여지기에 감상이 더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어요..ㅋ AgalmA님의 그림 덕분에 여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다만, 앞으로 무서운 그림은 납량 특집으로 부탁드립니다..ㅋㅋ 뉴스공장과 함께 즐거운 아침 보내세요.

AgalmA 2017-05-30 08:51   좋아요 3 | URL
이 글에는 안 올렸는데요. 괴기스러운 그림의 대가로 잘 알려진 프랜시스 베이컨 경우는 카타르시스적 창조보다 이념적 표출에 더 가깝기도 해요. ‘고통받는 인간은 고기다‘ 하면서 인간을 정육점 고기처럼 전시한 그림들이 상당히 많죠. 이 글 본문에서 E. H. 곰브리치 《예술과 환영》인용한 내용에 더 가까울텐데, 일명 무서운 그림 제작자 상당수는 세계를 전복하는 창조자로서의 역할에 더 심취했던거 같아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경우만 해도 창조로 인한 갈등이 더 크죠. 카타르시스는 그린 뒤에 오는 것이지 선제 조건으로 작용하는 건 아니니까요.
겨울호랑이님은 심성이 고우셔서 너무 좋은 쪽으로 보시는 거 아닌가요ㅎ 뭐, 제가 삐딱하게 보는 거랄 수도 있겠죠ㅎ;
그럼 전 이만 취침/
즐거운 하루 되세요^.^

cyrus 2017-05-30 09: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빈치의 스케치북에 보면 여러 개 그려진 그로테스크한 얼굴 그림이 있어요. 그렇다면 다빈치는 자신이 말한 대로 ‘신‘이 되었군요. ㅎㅎㅎ

기거의 그림을 보면서 달리가 창조한 이미지가 생각났어요. 달리는 인간의 신체 부위를 길게 늘어뜨려서 그렸거든요. 그 형체가 음경을 닮았어요. 달리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대상을 에로스(달리의 연인 갈라)와 타나토스(형의 죽음)의 관점으로 볼 수 있어요.

AgalmA 2017-05-31 03:53   좋아요 0 | URL
다빈치 스케치들 보면 신이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 때 고심하는 듯한 느낌이 들긴 하죠ㅎ

달리의 에로스와 타나토스 대상을 잘 잡아 내셨네요. 달리 그림은 거의 대부분이 성적이죠. 특히 그런 화가들이 있습니다.

2017-05-30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5-31 03:55   좋아요 1 | URL
댓글로 간단히 쓰기가 어려운 주제더라고요. 재밌기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자니 머리가 아프기도 했죠. 이렇게 한 번 정리해보고 다음에 고쳐나갈 기회가 또 오겠죠^^ 감사합니다.

2017-05-30 14: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처음 글남깁니다. 만들어낸 작가들의 노력과 작품과는 별개로 보는이는 거기에 너무 깊이 들어가는 것은 좋은게 아니지 싶기도 합니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느낌이 강하기도 하고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 것도 있구요.

물론, 직업적으로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라면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읽을 글이 정말 많군요!

AgalmA 2017-05-31 04: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산 너머 산이 되는 비평류 별로 안 좋아하는데 생각을 풀어나가다 보면 구덩이 파기가 되더군요ㅎ; 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그걸 어떻게든 풀지 않으면 답답해서요; 염려와 당부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이 좀 많죠ㅎ; 즉흥적으로 쓸 때도 많은데 되도록 허투로 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2017-05-30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6-06 16:39   좋아요 1 | URL
좋은 질문 주셔서 감사했어요.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였고 지금 제 생각을 정리해 보는 기회였습니다. 역시 부족한 게 많더군요.

생활의 욕구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물질적으로 그걸 풀려고 하는 건 삶의 수순 같기도 합니다. 폭력물, 선정물로 효과적인 대리만족으로 끝낸다면 좋을 텐데 선을 넘어가는 사람들이 꼭 있죠. 초자아의 제어 미숙만의 문제는 아니겠죠... 이것도 한 번 생각해 볼 거리인데 이 생각으로 또 밤샐까 겁나서 다음으로^^
늘 좋은 말씀과 생각거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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