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시를 얘기할때 어려운 말로 언어유희라고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난 그런 어려운 말로 꾸미기보다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말 장난 같다.
지나친 말 장난 같은 시집 한권을 만났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6월
그동안 김민정 시인을 좋아했었다.
문학동네에서 낸 시집들을 보다보면, 여기저기 따뜻하고 기지 넘치는 그녀의 코멘트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동안 그녀의 코멘트를 보고 넘어가지 않았던 적이 없을 정도로,
그녀를 향하여 팔랑귀였던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시집은 언젠가 내게 돌멩이를 보내줬던 친구가 보내준 것인데,
그래서 그런 것인지 어쩐 것인지,
표제시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을 보다가 내 돌멩이가 불쌍해졌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지지난 겨울 경북 울진에서 돌을 주웠다
닭장 속에서 달걀을 꺼내듯
너는 조심스럽게 돌을 집어들었다
속살을 발리고 난 대게 다리 두 개가
V자 안테나처럼 돌의 양옆 모래 속에 꽂혀 있었다
눈사람의 몸통 같은 돌이었다
물을 채운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담그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냈는가 하면
물을 버린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놔두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내기도 했다
먹빛이었다가 흰빛이었다가
밤이었다가 낮이었다가
사과 쪼개듯 시간을 반토막 낼 줄 아는
유일한 칼날이 실은 돌이었다
필요할 땐 주먹처럼 쥐라던 돌이었다
네게 던져진 적은 없으나
네게 물려본 적은 있는 돌이었다
제모로 면도가 불필요해진 턱주가리처럼
밋밋한 남성성을 오래 쓰다듬게 해서
물이 나오게도 하는 돌이었다
한창때의 우리들이라면
없을 수 없는 물이잖아, 안 그래?
물은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을 몰라서
해도 해도 영 개운해질 수가 없는 게 세수라며
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
김을 담은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내 돌멩이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하는 시의 소재로조차 등장하지 못하니 말이다~--;
시집의 뒷표지를 보면 김민정 시인의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시는 내가 못 쓸 때 시 같았다.
시는 내가 안 쓸 때 비로소 시 같았다.
그랬다.
그랬는데,
시도 없이
시집 탐이 너무 났다.
탐은 벽(癖)인데
그 벽이 이 벽(壁)이 아니더라도
문(文)은 문(門)이라서
한 번은 더 열어보고 싶었다.
세번째이고
서른세 편의 시.
삼은 삼삼하니까.
나도 같이 말장난을 해보자면,
시도 없이 시집을 탐내면 탐욕이 되는데,
詩集이 아니라 여자가 결혼하여 남의 아내가 되는 그 시집을 일컫는 모양이다.
그런데 시집 간 여자의 탐욕은 예로부터 칠거지악이라는데 말이다.
암튼 본인도 민망했는지,
'현대시 5월호'에서 신형철과 대담한 내용의 한 꼭지를 '출판사 책 소개' 란에 실었는데,
'이게 시가 아니면 뭐 어때?'라고 말하듯이 쓰인 시가, '그런데 이게 인생이 아니면 뭐냐'라고 말하듯 삶의 깊은 데를 툭툭 건드린다.'
고 하는데, 뭐~(,.)
그런데 말이다.
'삶의 깊은데'를 툭툭 건드린다고 하여, 시도 덩달아 깊어지는 건 아니다.
시는 깊은 데를 건드리는 매개일 뿐이다.
지인과의 카카오톡 내용 따위가 시가 될 수 있는 시대라지만,
굳이 그 시의 저작권을 따지자면,
그런 카카오 톡 내용을 보낸 시인의 지인에게 일정 부분 있고,
시인은 찬조출연 쯤 되는 것이 아닐까?
모든 시인에게서 윤동주 같은 시심을 바래선 안 되겠지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라고 고백하던 윤동주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