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리멸렬

오스트리아산 초콜릿 과자로 유명한 Loacker(로아커)를 먹으며, 평생 조국 오스트리아의 속물근성(나치 독일과의 합병, 과거 청산 부재, 극우 성향- 한국의 지금과 너무 비슷)을 맹렬히 비난했던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생각한다.

여행 내내, 돌아오는 차 속에서도, 지금까지도 내 분노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그것이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몰염치와 이익 추구심리, 더러움이라기 보다 애정 없음을 나타내는 먼지 가득한 방들과 가게들과 관광안내서, 되는 대로 혹은 쉬어빠진 반찬을 내놓는 관광지 식당들, 주인이 대개 노파라 무언가 바라는 게 미안한 상황, 팔기에 급급해 예술의 정취라곤 찾기 어려운 조악한 상품들(깨지고 쓰러진 것들을 세워 주길 여러 번...), 제 것을 팔고 싶어 안달이거나 제 아는 곳이라도 소개하는 악착 같은 호객질, 스쳐가는 이들에 대한 무관심과 그만큼의 조롱, 어디든 돈, 돈, 돈을 기다리며 사람을 보는 무력한 모습들, 무엇이라도 팔아야 되는 삶... 눈에 보이는 곳 어디든 파헤쳐지고 무언가 짓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은 닫혀 있고 몰락 직전이었다. 불경기 때문이 아니라 정신의 무너짐이 고스란히 드러난 현장 같았다.
4대강 사업을 피할 수 있었던 섬진강, 평사리의 눈부심(눈이 와서?)은 얼마나 기적적이었나. 그러나 도로공사를 피할 수 없었다.
오직 자연만이 완벽히 수행 중이다.
강 하구의 둘레길은 어느 계절에도 좋으리라.


 


 

3대를 이어 오며 차 박물관이었다는 곳에 딸린 찻집 문은 망가진 채 열렸다. 이미 여러 번 그런 걸 봤을 주인인 듯한 사람은 누가 오든 가든 상관없다는 듯 제 할 일만 하고 쑥 가버렸다. 여길 곧, 아주 닫을 거라는 묘한 말만 남기고. 분위기상 난로를 끄지 않고 가는 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무인판매 시스템으로 찻값을 이 천원 받고 있었지만 고를 수 있는 차 통은 거의 비어 있었다. 언제 것인지 알 수 없으나(작년? 재작년?) 유통기한을 믿고 쓰레기처럼 굴러다니는 새 녹차를 골라 돈통에 정가를 다 넣고 사 가지고 왔다. 내 나름 제의 의미였다.
차밭 한가운데 2대의 무덤이 덩그러니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3대 주인은 돌아 오겠다는 시간에 당연히 오지 않았고 우리는 목적 대로 하릴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찻집에 굴러 다니는 유일한 책, 몇 해 전 최치원 전시 도록을 봤다.

 

 

 

 


 

전날 다녀왔던 쌍계사 입구 양옆으로 최치원이 글을 남긴 바위를 보지 못했음을 그렇게 알게 됐다. 하긴 쌍계사를 여러 번 왔음에도 혜능 선사의 머리를 탑 속에 안치한 금당도 아주 우연히 보게 됐다. 특별한 날만 공개한다는데 방송 촬영으로 번잡한 터라 누가 들어가든 나가든 별 제재가 없었다. 금당 안 풍경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만든 상(像)은 정확히 우리를 강타한다.

 

 

 

 

 

 

 

 



2. 노동멸렬

<이이제이> - 전태일 특집을 듣고 여러 날 전태일을, 노동을 생각했다. 돈 벌기에 바빠 착취에 순응하는 이들을 위해 노동법전을 보고, 정부기관과 언론에 호소하고, 박정희에게 ˝국민의 아버지˝라며 구구절절 써서 탄원서도 보내고(권력 앞에 우리의 비굴함!), 노조도 만들고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았던 그를. 그의 분신에 감응해 학생 노동 운동에 뛰어 들었다는 모 경기도 지사 생각을 하며, 사실이 변치않는 진실성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또 했다.
노동 15시간을 10~12시간으로 줄여 달라는 전태일의 요구는 40년 뒤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구로공단은 구로디지털단지로 허울만 바뀌어 있을 뿐, 오늘 나도 14시간의 노동에 찌들어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내 어머니도, 나도 비정규직 따라지 인생이다. 이 시대에도 노조 위원장은 정부를 피해 다니고 있는 실태며, 집회의 자유는 불법으로 취급 당한다. 복면금지법? 사람을 죽이고 미치게 하는 건 무궁무진하다. 정치가 가장 광범위하고 미세하게 그럴 수 있다는 걸 많은 세월 보고 겪는다.
리베카 솔닛은 분노로는 진보를 성공시킬 수 없다고 강력히 말하지만, 평화와 연대로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까 막막하다. 낙관과 비관 성향 차이인가? 내 낙관이 이 비관으로 몰고 온 거 라면? 교육? 지식인들의 오만가지 편견과 허세와 불통과 변절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온다. 김영삼 대통령 서거에 누구도 원통해하지 않는다. 아이를 외국인학교에 넣을 수 있다면 어떻게라도 하겠다는 앳된 학부모의 인터뷰는 더 절망스럽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천박함. 자본주의를 탓하지 마시라. 누구도 예외없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아주 사소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이슬람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인류는 고사하고 동포들도 생각치 않고 곳곳에서 테러를 가하는-오늘은 LA 장애인 재활센터였다. 장소도 아주 잔인하게 고른-이슬람인의 분노에 대해 나는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분노의 근본성에 있어 나는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정당한 분노, 정당한 요구는 어떻게 가능할까. 대의 민주주의? 어떤 시스템도 조작이 가능하다는 걸 우린 너무 많이 목도했다. 어떤 용납이 가능한가.

녹색당이 ˝기본소득제˝, ˝직접민주주의˝에 가장 적극적인 게 그나마 희망의 싹이 되려나. 그들이 정당 지지율 3%를 어서 얻기를 바란다. 양당 중심 체제는 시급히 깨져야 한다. 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깨져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지쳐가는 사람들. 다음 세대는 뭘 할 텐가.


3. 알라딘에서도 조월 음반 구하기가 어렵다. 2집, 3집은 아예 등록도 안 되어 있다. 음반을 살 수 있는 퍼플레코드는 홍대가 아니라 주소지가 왠 안양? 홍대 기억은 점점 부서진다. 나는 새삼스레 말하고 있다. 멍청한 스파이처럼. 갓 깨어난 환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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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뒤늦은 편지 같은 여행의 기억
    from 공 음 미 문 2016-01-30 00:52 
    밥을 먹는 동안 그곳에 못 갈 거라는 걸 우린 몰랐다. 그저 밖에 눈이 장관으로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을 뿐. 그 다음은 비였다. 서리낀 버스 속에서 우리가 정작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저런 걸 공중에 띄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참 대단하기도 하지.이 사람 아직 피라미드를 못 봤군. 흥. 거짓말 같은 말씨.사람은 이래서 천국을 그렇게 쉽게 믿는 구나 했다. 茶 한 잔 하고 가실래예? 茶보다 풍경에 더 취해……
 
 
책읽는나무 2015-12-04 0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동을 다녀오셨군요?
저는 올초 설을 쇠고 아이들과 하동을 다녀왔었는데 음~~아갈마님의 느낌과 좀 비슷했군요!^^
너무 기대를 하고 갔던 것인지?
계절을 잘못택한 것인지?
저도 약간의 실망을 했었다지요!
다행히 잠을 잤던 곳 주인부부 내외가 다정하셨었고 쌍계사 오를적에 겨울비가 와서 운치가 있었고(최치원의 글이 있는 바위가 있었답니까?저도ㅜ) 녹차 박물관? 그곳에서는 썰렁했지만 맛난 녹차를 연거푸 따라주셔 추운몸을 녹일 수있어 그러한 기억들이 아스라이 남아 시간이 지나고보니 하동이 꽤 괜찮은 곳으로 기억이 저장되더군요^^
특히 섬진강과 평사리!!그곳의 풍경은 줄곧 눈에 아른아른합니다
음식은? 음식은? 음식은?
경상도쪽 음식은 저도 경상도에 살고 있지만 타지방에 비하면 원래 좀 그렇답니다(물론 맛난곳을 파는 곳도 있긴합니다만^^) 그날 저희도 아이들과 함께 먹을만한 곳이 없어 엄청 돌아댕긴 기억이 나네요ㅜ
하동 이야기가 나오니 반가워서 수다가 주절주절~~~^^

AgalmA 2015-12-06 18:51   좋아요 1 | URL
책 읽는 나무님도 다녀 오셨군요.
별 기대없이 가긴 했습니다만, 풍광과 대비되는 사람 삶과 마음들이 아프게 다가와서 마음이 내내 불편하더군요. 전라도와 경상도 두 군데를 동시에 오간 터였는데, 어디나 그렇더라는....
평사리에 있는 토지 문학관 초입에 있는 밥집은 좋았는데, 서울에서 귀향한 지 2년 남짓 된 분이 더 감동적인 음식 맛을ㅎ; 이 지방 사람들은 전혀 생각지 못한 감말랭이 장아찌를! 악양 감말랭이가 그 지역 감말랭이 중 가장 좋다는 정보와 함께 그곳 정보를 두루두루 알려주시던....현지인보다 오히려 외지인이 더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모습이랄까...

CREBBP 2015-12-04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2주 전에 최참판댁 동네 다녀왔는데. 무인 찻집은 못봤군요. 대신 최참판댁가는 마을에 꽃차 시음하는 작은 찻집이 있었어요. 음료값은 1만원 정도 하는 꽃차 몇 개를 사는 걸로 대신했지만..

AgalmA 2015-12-06 23:13   좋아요 1 | URL
처음엔 최참판댁 묶으려다가 시간이 안 돼서 곡전재 묵은 거였는데, 혹시라도 곡전재는 비추입니다. 왕비 3명을 배출하는 명당 자리라는데, 땅의 기가 다 한 건지 제겐 귀신 3명을 볼 기운이었어요;
제가 간 찻집은 구례쪽이 아닌 평사리가 있는 하동쪽...
관광지이다 보니 찻값, 밥값 비싼 거야 이해한다지만...뭐 랄까. 도무지 생기도, 의욕도 없는 모습이 참....

2015-12-04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6 1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6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6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6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6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이바 2015-12-06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경기 때문이 아니라 정신의 무너짐이 고스란히 드러난 현장...
퍼플레코드 정말 오랜만에 듣는데, 찾아보니 오프라인 매장을 닫았군요. 몰랐어요...

AgalmA 2015-12-06 19:17   좋아요 0 | URL
퍼플레코드...늘 거기 있겠거니 하고 좀 소홀했었는데, 올초에 상황이 그리 급박하게 된 거 같더군요. 거기 회원 카드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데 말이죠...

2016-02-06 0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