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여, 오라 - 아룬다티 로이 정치평론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혜영 옮김 / 녹색평론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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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도 사회에서의 댐 건설이 가장 밑바닥의 선량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것임을 목격한 이후에는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쓸 뿐이고, 자신이 할 일이란 그저 자기의 "아픈 눈을 뜨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그녀는 작년 미국에서 발표했던 글쓰기의 연설문에서 " 나의 경우처럼 평화롭다고 추정되는 상황 가운데에서 한 작가가 불행하게도 조용한 전쟁에 마주치게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일단 그것을 보고 나면, 그걸 안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본 다음에는 입다물고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발설하는 것만큼이나 정치적이 행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 그녀의 말에서 그녀는 확실히 그녀가 의도했건 안했건간에 그것이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그녀의 사진이 책장 앞에 실려 있다. 뭔가를 호기심과 의문을 가지고 응시하고 있는 저 눈빛 속에 인도에 대한 세상에 대한 그리고 세계화의 흐름 밑에 숨은 정치적 논리와 경제적 논리를 보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를 보면서 얼마 전에 읽은 암베드카르가 생각이 났다. 인도 불가촉천민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던 인도 민중해방의 아버지. 자신에게 주어진 작가로서의 명성과 성공의 길을 접어두고 이미 알아버린 사실에 대해 양심이 지시하는 대로의 삶을 선택한 용기는 자신의 삶이 그렇게 이끔으로써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아직도 많은 카스트제도의 구습과 불가촉천민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지워지지 않는 인도 사회에서 그녀는 홀어머니와 함께 자라오면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였는지도 모른다.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현대라고 하는 수세기가 공존하고 있는 인도사회에서 그녀는 시간의 흐름을 관통하면서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민중들의 삶과 처지에 눈을 떴고, 더 나아가 민중들의 되물림된 가난과 압제와 착취와 희생 위에서 피에 절은 고기를 뜯는 재벌과 권력자 그리고 미국 사회의 관료, 정치인, 군산복합체의 기업가들의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그저 평범한 눈으로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거기서 욕설과 고함이 튀어나오고 잠시후엔 나의 머리를 내리치는 망치가 튀어나오고 총과 폭탄 미사일 등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기 위한 기계들이 튀어나올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노암 촘스키나 하워드 진에게서 이미 보았듯이 소수의 권력자의 번영 위에 뿌려진 다수 민주의 피로 자라는 기형적인 민주주의에서 '민'자엔 '그들에게 시민은 없다'라는 말이다.

  미국은 나쁜가? 인도는 나쁜가? 아니 국민들의 의사 대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소수 돼지들의 뱃속만을 생각하는 그들의 행정부와 정치인 기업인 권력자들이 문제의 핵이다. 이미 권력과 부에 맛을 들여 자신도 어쩌지 못하고 몸집만 키워가는 그들의 눈에 돈과 권력 아닌 것은 모두 없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에는 아랍인들이 없고 '이라크의 자유'에서는 이라크의 국민들이 없었다. 심지어 권력자들의 눈에는 자신들의 국민들도 안중에 없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배신한 유대인들이 권력을 잡고, 국민을 배신한 정권이 자신의 국민을 학살한다.

  세계화와 자본 논리에 대항한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가만히 있는 것도 하나의 정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패스트푸드 음식에 대한 불매운동과 반전운동 군산복합체에 대한 불매운동 나아가 개개인에게 주어진 정치적 선택의 권리가 책임의식하에 이뤄지도록 하는 일, 그래서 소수의 권력자와 눈먼 미친개에게 주어진 권력을 다시 의식있는 개개인의 손으로 돌려야 한다는 점, 그러기 위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도 부귀와 권력과 명성에 대한 욕망을 떨쳐버리는 삶을 살 것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다. '명성은 자꾸만 내 뒤에 매달려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깡통꾸러미와 같다."는 말처럼 언젠가 떨어져나가고 그곳에 마음이 들러붙은 정도만큼 반드시 잃게 될 때 가지는 상실감의 크기를 느끼게 된다. 그것을 겪어야만 아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그런 삶을 피해가는 것도 참다운 민주주의를 손에 쥐기 위한 방법이자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마인드는 세계적으로 실천은 지역적으로"라고 했던가. 그녀가 인도의 댐건설반대운동에서 보여준 많은 노력과 용기가 인도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자들에게는 희망이요 빛이다. 자신의 집에서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것을 견디며 댐건설과 함께 죽겠다는 의지와 숲을 떠나서는 삶의 아무런 보장과 희망도 없는 그들에게 인도정부와 거대한 다국적 기업 인도의 상류층과 중산층의 위협을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써 막아내며 생명을 연장해가는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그들에게는 없는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과정에 아룬다티 로이는 캄캄한 세상에 하나의 빛처럼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참다운 민주주의는 희망이요 꿈이요 사랑인 것이다. 남들에게 빼앗긴 내 권리를 찾는 것만이 아니라 나를 넘어서 타인에 대한 관용과 사랑과 공존을 위한 빛인 것이다. 그 '민'은 그래서 확장된 '나'가 '온인류'로 나아간 것이며 '온생명'과 '온우주'로 나아간 것이다. 다시 그녀의 사진을 본다. 그녀의 눈빛엔 호기심과 의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진 것이 없어 생존의 위협아래 놓인 민중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말없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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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8-2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
아룬다티 로이의 글을 읽으면서 몰랐던 부분 많이 알게 되었지만
무엇보다 저는 민족주의가 자칫하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깨달았답니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오죠. 부시1세가 한 무책임한 말요,
"나는 그 어떤 것이 사실이라해도 내가 알 바 아니다"..
이게 미국의 민족주의로 대변된다니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달팽이 2005-08-27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죠 임지현 교수의 '오만과 편견'에 보면 심지어 일제치하에서의 우리의 민족주의도 일본이 서양에 대립하기 위한 대동아공영주의랑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견해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간디가 말하는 민족주의(민족애?)는 좀 다르게 받아들여지더군요.
보통의 민족주의 하면 타민족에 대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간디는 그런 배타성이나 폐쇄성이 없거든요. 그런면에서 마음과 의식이 품고 있는 어떤 생각이 나에게서 수신하고 가족 사회 민족 국가 세계 온우주로 열려 나가는 곳에서 막히는 바가 없어야 하고 그런 면에서 불교나 타 종교의 본래 취지, 동양사상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점을 준다고 생각해요.
가족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 계급이기주의 민족이기주의 지역이기주의 국가이기주의 기업이기주의....무엇이든 막히는 순간 그 그은 선 밖의 존재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거든요...
세계화나 세계화의 경제적 정치적 본질에 대한 책은 많은데 인도사회의 구체적 사안에서 시작하여 그 유려한 문체로 세계화와 정치의식까지로 나아가 더구나 자신의 삶도 일관성있게 살아가는 당당한 인도여성을 만난 것이 님의 덕입니다.
읽으면서 문득 파란여우님의 당당함(있다면..)과도 비슷한 빛깔이 스치는군요...

파란여우 2005-08-2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저에게는 당돌함과 무대뽀가 있지요.^^
당당함은 제 과제입니다. 무거워지는군요^^
 
유시민과 함께 읽는 일본 문화 이야기 - 안방에서 세계여행-제노포브스 가이드 유시민과 함께 읽는 문화이야기 16
유시민 편역 / 푸른나무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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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가기 전에 읽는다는 것이 손에 들었다가 잡다한 사정으로 보지 못하고 짧은 일본 여행을 끝내고 그 기억이 아직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았을 때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들었다. 사실 내키지 않는 관광상품으로 일본을 그것도 큐슈지방을 둘러보고 왔기 때문에 그다지 일본 사람과 문화에 근접하게 부딪힐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호텔에서 상점에서 휴게소에서 그리고 달리는 차안에서 내다본 일본 도시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본인들의 문화와 의식을 간명하고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에 이어서 유시민의 또 다른 편역서를 읽게 되는 셈인데 어쨌거나 유시민 특유의 치밀하고 섬세한 그러면서도 나름대로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사유공간을 여기서는 만날 수가 없다. 말그대로 이 책은 일본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는 또는 몇 번의 방문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일본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불필요하게 발생하는 오해와 실례를 줄이고 일본에서의 짧은 생활을 무난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의식과 무엇이든 정돈되고 단정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생활방식들이 잘 설명되고 있는 한편 그러한 문화 속에 신세대들의 서구적 미와 가치에 대한 무분별한 추구와 성의식의 혼란은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다. 특히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개인의 전적인 희생과 겸손을 형식과 예의로서 요구하는 문화 뒤에 그들의 자기성찰적인 장점과 더불어 개인을 촘촘하게 에워싸고 구속하는 관계망의 무거운 사슬과 자신의 적성과 개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의 좌절, 책임감에 눌린 의무감이 삶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는 점들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제 새롭게 자위대를 재편하고 제국주의적 기질을 형성해가고 있는 일본의 국가의식이 다시 일본 국민의 의식과 문화를 어떻게 구속하고 억압시킬 것인지, 곧 도래할 노령화사회에 대한 대비와 그 부족함이 초래할 사회적 현상과 문화의 변화는 어떻게 될 것인지, 일본 사회 내에서의 비판적 목소리와 대안적 삶을 찾는 사람들의 이상과 노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일본 사회의 변화 궤적을 어떻게 바꾸어갈 것인지에 대한 의문들이 남는다.

  미리 읽어 두었더라면 온천에서의 예절과 일본인과 마주쳤을 때의 간단한 예절을 펼칠 수 있었는데, 아무런 의사소통도 할 수 없이 마음만 전달하고자 했던 내 모습이 조금 아쉬웠다. 언제 또 가게 될 지 모르지만 다음 기회엔 방문지역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하고 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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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탈레반 - 자주외교 대 동맹외교의 힘겨루기
김종찬 지음 / 새로운사람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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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대체 노무현 정부는 시민들의 개혁열망을 정부정책으로 모아내어 한국사회를 잘 꾸려가고 있는 것일까? 때로는 일관성이 없어보이는 여러 가지 국내외적인 정부정책들이 결국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정책들이 의도한 결과를 순조롭게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우리들은 어떤 사건들에 대해 은폐, 왜곡된 신문기사와 기만의 대중매체속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늘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정당, 대기업과 재벌, 신문사와 방송사 등 문화권력에 의한 정보조작을 밝혀내고 그 기만의 베일을 벗겨내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싶은 욕구가 우리들에게 늘 있어왔다. 이 책은 진실과 객관적인 사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욕구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김종찬, 생소한 석자의 이름을 갖고 있는 그는 신문과 방송언론을 세밀하고도 비교적인 분석을 통해 그 이면에 숨겨진 정부와 기업들과 미국의 강경보수주의 등 각 집단들이 갖고 있는 이해관계의 실체를 드러냄과 동시에 그들의 행동과 여론을 다루는 동기와 기술에 대해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파고들어 우리들에게 그 얼개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노무현 정부가 가진 자주외교와 북핵문제에 접근하는 방법과 이라크 파병 및 이런 사건들을 둘러싼 각 국가간 국내 집단간의 이해관계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한국의 탈레반'이라고 하는 제목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 나름대로 자주적인 외교(균형적 실리외교를 지칭함)를 펴고자 하는 한국의 이른바 개혁 관료들이 가진 폐쇄성과 배타성을 미국 강경 보수주의자들이 바라본 시각에서 사용된 용어이며, 그것이 가진 문제점들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전의 북미정책에서 대북정책을 따로 떼내어 김대중 정부로부터 이어진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국제적 상황과 북핵문제에 나서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결국 자신의 국내에 있어서의 정책의 무능을 숨기면서 남북관계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6자회담의 가시적이고 형식적인 성과에 무분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이러한 앞뒤없는 정책이 결국은 미국에게 있어서는 더욱 중요한 '대중동구상'전략에 있어서 '한국의 이라크 파병'이라는 어리석은 선택을 함으로써 편승하게 되고,  대신에 북핵문제에 있어서 한국의 중재적 역할을 인정받으려고 하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여주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대립되는 북한 미국의 이해관계를 말장난으로 넘기려고 함으로써 더욱 나쁜 상황만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은 자주외교의 명분과 더불어 점차적으로 중국의 중재에 6자회담의 전망을 의지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중국은 북핵문제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게 됨으로써 자신들이 챙길 것을 미국과 북한과의 쌍방관계에서 찾으려 하게 되었고, 우리는 아무런 북핵문제의 성과없이 중동과 북한에 돈을 쏟아붓게 되었다.  결국엔 모든 노력과 돈을 써가면서도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는 답답하고 무능력한 외교적 실패만 만들어내었다.

그런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대선에서 케리가 이끄는 민주당이 당선되면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나름대로 시민단체를 통해 부시낙선운동을 벌이지만 결국 부시의 재당선으로 한국 자주외교의 앞날 또한 더욱 어두워지게 되었고 한반도의 불안한 정치형국은 더욱 우리들의 앞날을 불안하게 한다. 그런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는 더욱 미국의 강경 보수주의의 압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이것이 노무현 정부의 보수주의적인 전향을 낳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모으는 정보가 물론 여러 출처를 가지고 있겠지만 이렇게 신문기사의 비교 분석을 통해서 사건의 내막과 구조에 대해 자세하고 정확하게 이해하여 앞으로의 전망도 볼 수 있게 하는 그의 눈은 날카롭다. 노무현 정부 후반으로 갈수록 변하고 있는 여러 가지 정부정책(외교정책, 경제정책)과 그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애초에 대통령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갖고 있는 그 마음과 달리 보이는 뭔가가 저자의 혜안을 통해서 보다 자세하고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수십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가 이런 그의 혜안들을 보여주고 있고, 앞으로의 정부정책과 한국사회의 미래까지도 내다볼 수 있게끔 하므로 그에 대한 좀 더 많은 관심이 내게서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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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의적 2005-01-26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종찬, 누군가의 리뷰 가운데에서 "누구누구는 가라, 김종찬 오라"는 리뷰를 보았는데... 정말 읽어보고 싶은 책을 만드는군요. 한번 보아야겠습니다. 님의 리뷰를 보니.. 더더욱^^ 김종찬, 한쪽에 메모를 해 둡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달팽이 2005-01-2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열린사회의 적님...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분이라 반갑군요...
 
동경대 강의록
사카이야 다이치 지음, 최현숙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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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퇴역공무원이 동경대 학생들을 놓고 강의한 이 책은 일본사회의 변화 발전과정을 통하여 본 인류역사의 발전과정을 이론화시켰으며, 앞으로의 일본사회에 도래할 지가사회라는 개념을 통해서 현 일본사회의 문제점을 진단, 분석하고 앞으로 준비해야 할 바에 대해 수도의 이전과 호연공동체의 개념으로서 정리하고 있다. 그는 학자가 아니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상당히 폭넓고 세밀하다. 학부때에 전공한 경제학이 그의 세상을 보는 큰 밑천이 되고 있음은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사회분석의 기본틀과 미래사회의 전망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틀이 경제적 사고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피터 드러커나 앨빈토플러의 미래사회분석서들과는 조금 다른 점을 가진다. 오히려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라고 하는 필립 암스트롱과 존 해리슨의 공동작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가 전후 자본주의 경제의 재편성과 발전을 주요영역으로 하고 있다면 이 책은 그 확장의 영역이 인류역사에서 앞으로 다가올 21세기의 사회에 관한 것이 다르다면 다르겠지만 말이다.

학자가 아니기 때문에(물론 미래사회학자들은 여기에서 제외한다) 틀지워진 학문영역의 제한을 받지 않고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와 분석에 의해 일본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설명을 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론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가 말한 지가사회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동시대에 나온 다니엘 벨이나 앨빈토플러, 이후의 피터드러커나 폴케네디, 제레미 리프킨(이 사람은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사람이다)등의 미래학자들이 말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독창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지가사회란 다니엘 벨의 탈산업사회이며, 앨빈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며 정보화혁명이다, 그리고 피터드러커의 지식기반사회이며 폴 케네디의 신산업혁명이며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과 접속의 시대이다. 이들의 개념도 지가사회와 그 내용면에서 더 풍부하면 풍부했지 덜하지 않다.

제레미 리프킨이 말하는 접속의 시대에서 소유는 사라지고 접속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듯이 지가사회에서는 역시 소유의 시대라고 명명되어진 규격대량생산사회의 퇴보와 관련산업의 축소, 인구구성의 변화를 포함한 사회변화가 진행될 것이다. 그 사회에서는 지혜의 가치가 더욱 중요한 사회가 될 것이다는 그의 견해는 이미 특허나, 상표, 브랜드와 지적재산권의 가치가 커져가고 있는 사회현상에서 증명되고 있다. 소비자의 소비패턴도 이제는 단순히 제품이나, 브랜드 뿐만 아니라 그 상품을 통해서 체험또는 경험할 수 있는 내용들이 주된 소비가 되고 있다.

앞으로의 변해가는 사회에 대처하기 위한 첫번째 방법으로서 수도의 이전을 들고 있다. 세계에서도 가장 수도기능의 집중이 심해서 사회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대표적인 나라로서 그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을 들고 있다. 따라서 도쿄로의 행정기능과 중추관리기능 각종 경제, 정치, 문화적 기능의 집중현상이 앞으로의 지가사회에서는 인간의 지혜를 발휘하는 데 그래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 나라의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접속의 시대에서는 모이고 독점된 것에서 뭉쳐져 있는 꼬여버린 실타래를 칼로써 끊어내고 필요에 의해 가볍게 접속하고 풀어내는 유연한 접속체제와 시스템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호연공동체의 성립이다.(그가 내놓은 개념중에서 아주 참신하면서도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사회에서 가족공동체나 국가조직을 포함한 기업조직 등 여러 생산조직을 대체하는 것으로서 호연조직이라고 하는 같은 기호를 가진 조직들이 많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서로간의 접속과 공유를 통해 필요한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인생까지도 공유하게 되는 의식공동체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근대사회 경제의 구성원리인 물질적 만족과 합리성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고 인간존재의 발전을 위해 함께 하는 의식공동체의 형성과 그 발전이 미래사회에서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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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 유럽의 운명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14
앙리에트 아세오 지음, 김주경 옮김 / 시공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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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라키스 음악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끼면서 나는 집시음악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위를 쓸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집시음악에서 그들이 가진 영혼을 이해하고 싶은 욕망은 나로 하여금 결국 집시들의 삶과 역사에 관한 책을 뒤적이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내가 특별히 감동했던 그 집시들의 음악을 이해하게 해주는 그들의 특별한 삶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였다. 집시들의 탄생과 유랑에 얽힌 역사적인 배경과 국민국가의 형성과 더불어 시작된 그들에 대한 박해와 학살이 집시들의 좌절과 한을 만들어내었고, 그 슬픔이 때로는 음악에 반영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로 살아야했기 때문에 소유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들의 영혼이 보다 애절하지만 여유롭고 낭만적인 때로는 인간이 가진 모든 구속으로부터 놓여진 자유로움을  만들어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가진 자유로운 삶에 기반한 정신적 성장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내게 이 책은 좀 더 허기짐을 얹어 주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라인하르트를 비롯한 집시 음악에 대한 뒷부분의 설명은 음악에서 시작된 나의 집시에 대한 관심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불어 나찌의 유대인 학살 속에 묻혀 버린 50만여명에 달하는 집시들에 대한 엄청난 학살과 잔혹성에 관한 이야기는 역사 속에 묻혀버린 애절한 집시의 슬픈 운명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왕과 국민국가의 횡포를 피해 늘 국경지대를 위험을 무릅쓰고 넘어야 했던 기억들, 굶주림과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생활들,  이런 현실적 시련들을 극복해가는 그들만의 음악과 춤, 그리고 세계관, 그런 삶에서도 늘 삶의 희망과 의미를 놓지 않아야 했던 그들의 삶과 정신세계에 대한 나의 갈증을 좀 더 시원하게 풀어줄 수 있는 책과 음반을 찾아 나의 집시적인 추구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가진 것 없이 왔다가 가진 것 없이 가야하는 우리들의 삶도 알고보면 집시의 삶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 물질적으로 허망한 삶 속에 뭔가 의미있는 정신세계를 발견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나의 인생도 집시의 삶과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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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11-20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렇습니다..

어둔이 2004-11-2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은 '의무'와 '소유'라는 말을 버린 대신에 '자유'와 '사랑'이라는 말을 얻었다."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집시들의 떠도는 삶은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현실적인 개념을 버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남겨놓은 이상적인 개념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습니다.

그들만의 신비화한 점술과 음악과 노래 그리고 바람...별..무엇보다 그들만의 특별한 정열과 머물지 않는 삶이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어쩌면 우리같은 사람들은 유혹당하고 싶어서 그들 주위에 어설렁거리며 이렇게 돌아 다니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