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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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본성은 어떠한가? 20세기의 역사를 거치면서 인류는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선과 악의 역사적인 경험을 공유하였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본성의 여러 가지 측면에 대한 연구들이 많은 관심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 책은 그러한 인류역사를 설명해주는 인간의 본성과 심리에 대한 10가지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실험들이 가지는 의미와 사회적 영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간은 과연 행동의 조작에 의해 밀가루 반죽처럼 어떠한 모양으로도 만들 수 있는 존재인가? 평범하면서도 정상적으로 보여지는 인간도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서 희대의 살인자로도 무서운 인종차별주의자로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가? 인간의 신체기관에 대한 해명이 이루어지면 인간의 성격과 능력도 신체기관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약품과 수술로서 유전자를 바꿀 수 있는 것일까?

  각각의 대담했던 실험들은 많은 찬사와 비난을 받아왔다. 생명을 실험도구로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윤리성 문제로부터 그런 실험의 성과로 말미암아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졌으며, 잘못된 정신의학이나 심리치료의 폐해로부터 해방되었던 장점들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들은 그 통계적 결과가 절대적인 수치로서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은 인간 존재가 가지고 있는 애초의 무수한 가능성들을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조건화된 행동의 훈련으로도 바뀌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주어진 상황과 권위에 대해서도 거부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또한 이런 실험 그 자체가 피실험자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인생의 경험으로 그 사람의 가능성과 선택에 따라 똑같은 실험이 서로 다른 피실험자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이러한 심리실험들은 인간이 가진 다양하고도 폭넓은 인간가능성에 대한 현실적인 증명에 다름아니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어느 한쪽의 조작만으로 인간 존재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갖는 한계에 대해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인간 행동의 조작 또는 신체 기관의 절제 또는 약물변화로써만 인간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애초부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육체적이고 행동적인 문제들을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문제로 모두 환원시켜 해결하려는 것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은 왜 그렇게도 사회적으로는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던 실험을 하였던 심리학자나 정신의학자의 학문적인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은 더욱 황폐해졌고, 우울했으며, 삶의 깊은 슬픔 속에서 지내야만 했던 것인가이다.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이 종교적인 추구에 있어서는 깨달음과 성인으로의 길로 나있었다고 한다면 심리학적이고 정신의학적인 길들은 더욱 많은 좌절과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낳았다는 사실이 대비되었다. 그것은 실험자의 마음가짐과 그의 인격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이 책에서는 채워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의 렌즈로서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대한 이해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좋은 배움이 되었다. 나아가 인간의 행동과 심리 뇌기관의 이해가 인간존재와 그 행동과 심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많은 조언을 주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쉽지 않은 심리학 정신의학 용어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재미있으면서도 본질적인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담아내었던 저자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더불어 우리말로 잘 옮겨준 역자에게도 그 칭찬의 일부를 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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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의 인간적인 길 - 새로운 사회민주주의를 위하여
자크 아탈리 지음, 주세열 옮김 / 에디터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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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사회의 사회민주주의 정책들은 지난 90년대 이후 퇴보하고 있다. 공공기업의 방만한 경영, 노동자의 근로의욕의 상실, 비효율성의 증대, 정부의 재정 적자와 국민들의 조세회피 등 산적한 문제들이 드러나게 되면서 유럽의 사회복지제도도 후퇴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자본의 세계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고, 인간의 삶은 더욱 상품과 시장의 논리에 의해 각박해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경험들을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하며 심지어는 육체의 모든 대체물도 돈으로 구매해야만 삶이 성립할 수 있는 환경으로 치닫고 있다.

  프랑스 사회도 보수화의 움직임과 더불어 이젠 사회당의 정책이 우파 자유주의자들과 구별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것은 인구의 고령화에 따라 노인들이 자신들의 자금을 금융자본을 통해 수익을 얻게 됨으로써 세계화에 편승하는 식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아프리카계 이민자들과의 사회적 불화를 현명하지 못한 방식으로 억압함으로써 더욱 깊은 골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들에 희망을 걸고 있고, 그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그는 인간적인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적인 길이란 시장사회에서 상품사회로 가고 있는 전세계적인 자본의 지배력을 억제시키자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나아가서 그것은 자본에 의한 상품화폐관계를 벗어난 무상제공의 서비스와 재화의 영역을 형성시켜서 자본화와 상품화에 내맡겨진 인류의 삶이 지속가능하고 생명의 길로 나아가자고 한다. 상품화될 수 없는 영역들을 비 상품화의 영역으로 존속시켜서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을 남겨두자고 한다. 그래야만 무분별한 상품화와 자본의 세계화로 인한 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탁월하고도 유럽적인 대안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안에서 나는 시장과 화폐 그리고 자본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어느 정도 결여되었다고 본다. 그가 책에서 말하듯이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실패한 이유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영기업이 실패한 이유, 경제의 조정자로서의 국가의 역할이 실패한 이유, 관료제의 문제, 민주주의의 실패와 그 대안의 제시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래 사회에 대한 대안은 현실의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비판에서 출발하여 현실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는 미래사회의 대안적인 요소의 씨앗을 보고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방향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장의 건전한 부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시장의 기능을 개선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면밀한 검토 속에 시장의 한계가 거론되어야 하며 민주주의의 문제, 사회적 대합의의 문제도 나와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상상력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멋진 대안이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씨앗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는 유토피아란 말 그대로 현실에서는 없는 이상적인 세계에 불과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적 환경과 문제점들은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기심과 탐욕의 마음이 드러나 자본과 상품을 만들어낸다. 인간이 바람직한 사회를 꿈꾸기에 앞서 우선 인간의 마음이 정화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세계는 우리들의 마음이 모아져서 현상화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시장이든 국가이든 자본주의이든 민주주의이든 그것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것을 인간적이고 생명적인 것으로 만드느냐 비인간적이고 죽음의 것으로 만드느냐는 우리들의 마음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에 의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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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7 0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5-12-17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영혼의 의자, 저도 읽다가 말았습니다만 결국 두 날이 모여야 종이를 자를 수 있는 가위가 되듯 인간사의 문제도 물질과 영혼의 두 날이 만나야 비로소 그 해결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감입니다.

aizzang 2006-11-20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제가 읽기로는 아탈리는 시장을 넘어서는 것을 원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아탈리는 다소 결정론적으로 시장을 바라보고...시장에 대해 부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계약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이 아닌...무상제공과 같은 방법을 주장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양질의 시간'은 결코 시장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죠...(흉내야 가능하겠지만...^^a)

달팽이 2006-11-21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상제공의 공동체나 자본의 성격을 배제한 새로운 화폐제도라고 할지라도 우리들의 마음 속의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지 못하면 그것은 또 다른 '시장'이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장을 전면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시장에서 비인간적인 것을 걷어내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만드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세상 모든 것을 비시장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고 그것이 바람직하지만도 않은 세상의 인과법칙에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찾아야 할 대안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강준만 편저 / 개마고원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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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현대사의 그 많은 굴곡과 늪의 역사를 지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던 것은 허상과 이데올로기였다.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그러한 온갖 우상숭배와 이데올로기에 맞서 자신의 개인적 삶을 바쳤던 한국현대사의 산 증인이 있다면 바로 이 사람일 것이다. 그 거대하고 두려운 독재권력의 횡포에 맞서 젊은 열정을 넘어서 "역사"라고 하는 말을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 심어주었던 사람도 바로 그였을 것이다. 무릇 역사는 독재가 생기면 거기에 맞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찾기 위한 수많은 민중들의 운동이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그러한 필연적인 현상들 이면에 이렇듯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모든 것을 바쳐 진실을 외쳤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존재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그리고 그 역사적 현장의 정점에 리영희 선생님은 그렇게 우뚝 서 계셨던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이렇게 그의 생애를 다룬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어지는 예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것은 리영희 선생님이 한국 현대사의 전개에 있어서 그 흐름과 같이했고, 우리 현대사의 왜곡과 갈림길에서 또 다른 길을 제시했던 선구적이고 모범적이었던 삶이 가진 중요성과 의미가 크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시대의 걸출한 논객이라고 할 수 있는 강준만 교수마저도 자신의 의견제시를 많이 자제하고 될 수 있는 한 선생님의 육성을 많이 담아내려고 했던 노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책이었다.

  한국사의 어떤 시대에서도 자신의 지식인으로서의 소임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 수많은 자료 조사와 실증적인 연구를 통하여 자신의 글 한 줄도 함부로 자신의 상상력으로 내뱉지 않았다는 점, 항상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동시에 그 민족과 국가를 구성하는 다수 민중의 처지를 마음 속에서 놓치지 않았다는 점, 자신이 가진 많은 영향력과 권위에도 불구하고 늘 증명된 진실 앞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와 진실을 수용하려는 자세는 한 사람의 이름없는 사회과학도인 내가 마음 깊이 배우고 존경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내 서재에 꽂혀 있는 그의 책이 아쉽게도 한 권 밖에 없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책. 그는 우리 나라의 현대사에서 우상과 이데올로기로 인해 극단적으로 잘못된 선택의 순간에 늘 반대의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균형잡히게 했다는 점에서 그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 현실도 크게 변화된 바가 없다. 시장과 세계화와 자본자유화의 움직임의 목소리만 우측 날개가 되어 세상을 뒤덮는 곳에서 그 문제점과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좌측의 날개 또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선생님을 민족주의자니 인간주의자니 반반공주의자니 하는 여러 가지 주의자로 규정하기보다는 그의 이론과 실천 이면에 한 세상에 주어진 자신의 삶을 수용하며 열심히 살려고 했던 삶의 자세를 나는 배우고 싶다. 자신의 몸과 가정을 넘어서 민족과 민중과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고 나아가 북한의 동포와 베트남의 민중과 미국의 참된 길을 생각하는 제한없는 사랑과 인류애가 나는 존경스러운 것이다.  선생님이 언젠가 말했듯이 전환기의 굴곡의 한국 역사에서 자신의 몫을 최선을 다해 한 후에 이제 후학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고 겸허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공부를 하겠다는 말씀이 내 가슴에 와닿는다.

  치열하고 희생적이었던 자신의 한 인생을 가볍게 훌훌 털어버리고 자신에게 덧씌워진 명예와 권위와 자존심을 떨쳐버리고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밝혀서 마지막의 인생을 정리하고 자신의 떠날 자리를 보는 혜안이 나로하여금 더욱 그를 존경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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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2-17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영희 선생님 책.저는 도서관에서 잠시 빌려 읽기만 하고 갖고 있는 책은 한권도 없습니다.^-^ 몇년전 지하철 타고 가다가 옆에서 우연히 리영희 선생님 보았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건축가 김진애씨가 설계하신 산본신도시에서 사신다고 하시더군요..^-^ 얼마전 책도 새로 내신 것 같던데 아무튼 대단하신 분이신 것 같습니다.

달팽이 2005-12-17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덕분에 새로운 정보도 얻게 되는군요..
 
폭력의 세기 이후 오퍼스 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정한 옮김 / 이후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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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의 로자 룩셈부르크라고 불리우는 20세기의 여성 맑시스트이자 비판적 이론가인 그녀와의 만남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유대인이었던 그가 나찌에 의해 유태인 학살정책이 이루어질 때에는 유태인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에 전념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인류의 폭력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진보적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했다. 그런 그녀에게 팔레스타인에서의 유태인의 폭력과 무력이 아랍인의 무고한 생명을 짓밟게 되는 오늘은 그리 유쾌한 뉴스가 아닐 것이 분명하다.

  우선 첫 장에서 진보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세상이 진보의 급격한 변화속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진보는 생명과 삶에 대한 진정한 진보이기보다는 과학과 물질문명이 만들어낸 도구적인 진보일 뿐이라고 한다. 결국 그 도구적 진보는 삶의 퇴보와 맞물려 있을런지도 모른다는 성찰과 비판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참된 삶을 묻게 될 것이다.

  권력과 폭력을 사람들은 많이 혼동한다. 권력에 수반되는 것이 폭력이다고 생각하거나 그것은 서로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그것은 상반된 것이라고 말한다. 권력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폭력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권력이 지배적인 사회는 그 정당성을 사회의 초기부터 가지고 있는 곳이고, 그 정당성이 결여된 정부가 들어서면, 대부분 그런 정부는 폭력이라는 도구로 정권을 쥐게 되고, 정당화를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 때 우리는 폭력이 사용되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폭력의 본질에 대해 사람들은 그것을 주로 비합리적인 것이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많이 취급하였다. 하지만 아렌트는 그것을 합리적인 인간의 행동이라고 보았다. 뭔가 직접적이고 급박한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을 때 사람들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폭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폭력은 사회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을 주목하게 만들기도 하고, 빠른 시간 내에 사회적 개혁을 이루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폭력은 권력을 급속히 파괴시키지만 그것은 권력을 만들어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한다.

  총구로부터 정당성은 사라진다. 권력도 그와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총구로부터 우리는 권력을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다. 20세기가 낳았던 인류사의 수많은 폭력과 학살은 권력이 사라진 공백을 메꾸는 수단이었다. 인간의 행동능력은 그러한 관료주의, 전체주의의 국가적 폭력을 막을 수 있는 책임있는 시민의 행동능력이다. 베트남전, 미국에서의 흑백차별, 전체주의와 관료주의 그리고 이것이 낳은 인류사의 거대한 폭력을 마주한 그녀는 치밀하고도 깊이 파고드는 사유의 힘으로 이것의 본질을 파헤친다. 그녀가 내놓은 결코 읽기 쉽지는 않지만 하지만 매력있는 이 책을 들고서 한참을 사색에 잠겼다.

  글이 쉽지 않아 책이 나를 흠뻑 젖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뛰어난 관찰과 분석력이 나를 느슨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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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5-12-02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어려운 책인 것 같은데. 깔끔하게 정리해주셨네요. ^-^ 20세기가 낳았던 인류사의 수많은 폭력과 학살은 권력이 사라진 공백을 메꾸는 수단이었다는 말이 콕 박히네요.

달팽이 2005-12-02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가시장미님.
굴곡의 삶을 거치면서도 지식인로서의 양심과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았던 한나 아렌트, 매력적인 여자이더군요..
자신의 스승이기도 했던 하이데거와 애인사이였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비로그인 2005-12-03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과 폭력의 혼동..정확한 개념의 차이의 혼동이기도 한데 참 인상적이네요..그런데 마지막에 그 대안을 책임있는 시민의 행동능력이라고 저자가 말하고 있나요?모범답안이라서 ^^

달팽이 2005-12-03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현재 세계화나 경제적 기업활동이 우세해서 국가의 역할이 일종의 기업의 시종역할에 머물고 있잖아요..
그럴수록 우리 사회의 지적 혼수상태를 해결하는 것은 시민의 민주주의 밖에 없다는 커다란 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잖아요..
모범답안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 그녀가 말하는 내용의 핵은 아무래도 20세기에 광범위하게 퍼진 폭력이 무엇이며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를 권력이라는 개념과 대비해서 보여준 것이라고 봅니다.

비로그인 2005-12-10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렇군요.직접 읽어보아야 좀 더 정확하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려울 것 같은데 언젠가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
 
가족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 지음, 박은주 옮김 / 새물결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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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형제가 있다. 이들은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와 계부에 의해 양육되다가 어머니가 병으로 죽고 계부는 또 다른 아이들이 있는 아내를 맞이한다. 결국 이 형제는 자신의 혈연관계는 모두 사라져버린 부모에게서 양육되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이들의 부모는 서로 국적이 다르고 따라서 이들은 두 개 이상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가족이란 무엇이며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릴까?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상황이며 우리 가족의 멀지 않은 미래가 될 것이다.

  엘리자베드 벡 게른스하임은 독일의 사례를 통해 전통적인 가족이 붕괴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여성들의 경제적 지위의 향상에 따른 가족에서의 관계 변화와 이혼의 증가 그리고 또 다른 결혼은 우리에게 평생 책임지워진 가족의 보존이라는 짐이 더욱 가벼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제 결혼 생활을 인생에서 한번쯤 거쳐가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실제로 전통적 가족관계를 유지하기에는 그 밖의 많은 사회적 관계들이 구속하는 힘들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그 변화의 양상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 결혼 후 2-3년 내에 애가 있건 없건 이혼 한 가정이 꽤 많다. 서로 간의 성격의 불일치나 고부간의 갈등 등 여러 가지가 헤어짐의 이유가 된다. 하지만 해석을 어떻게 해낼지라도 이것은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변화된 가족관계나 부부간의 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데서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이젠 여성들도 자신의 세계와 직업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가사노동이 그들의 몫이라는 생각에 단호히 반대한다. 변화된 사회에서 남성들은 이전보다 많이 가사노동을 분담해야 한다. 또한 두 사람의 사랑으로 결합한 가족은 그 외의 부부 각각의 가족과 친지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우려 한다. 만약 예전처럼 서로의 가족이 그들 부부의 영역을 드나드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 결혼생활은 위태로워진다.

  이렇게 해체되어 가는 전통적인 가족 후의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또 다른 가족이다. 하지만 그 가족은 여러 가지 가치와 인간관계가 복합된 다문화가족이다. 형태에서부터 다양하다. 여성 둘이 마음이 맞아 공동생활을 한다던지, 한 여자와 세 남자가 그들의 자녀와 산다든지, 입양 아이를 키우는 두 남녀의 결합이라든지, 아니면 같은 인생의 목표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든지....그것은 변화되어가는 삶의 양식들을 잘 반영해가는 가족형태이며 자신의 삶을 어느 한 곳에 매이게 하지 않고 자유롭게 만드는 접속의 세계의 가족관계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족의 모습이 낳을 문제점 또한 무수하다. 친자 아닌 아이와 친자의 양육비 부담과 상속 문제, 가족간의 결별에 따른 권리와 부의 귀속 문제, 그에 따른 여러 사회문제 등 등....아마 가정법원 판사들은 감당할 수 없는 소송으로 머리를 쥐어뜯게 될런지도 모른다.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도 파괴된 가족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아이는 아이대로, 이혼한 부부는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그 버려짐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사회적 빈곤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또 다른 가족관계의 변화와 새로운 가족의 출현은 역시 이중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구속된 삶과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묻고 찾게 만드는 능동적인 측면과 사회적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못함으로써 버려지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상처와 빈곤화 현상으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 삶의 변화가 어떠하던지 우리는 우리 삶의 의미를 물어야 한다. 삶의 변화에서 상처받고 좌절하더라도 그 상처와 좌절에서 얻는 삶의 교훈들이 무엇인가 하고... 그래서 우리는 가족 이후의 사회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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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11-25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이혼으로 인한 '고아'가 생기는 현실, 가정내 노동 분업의 실제 등...
그리고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국 문화와 입양...
삶이 바뀐 듯 하지만, 문화지체에 따른 인간의 상처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세상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달팽이 2005-11-2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지체'현상, 제가 이 책을 읽고도 떠올린 단어입니다. 일종의 아노미 현상이죠
그 혼란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묻고 찾아가는 과정에서 참된 보물을 찾는 것은 또한 희망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사 일정이 끝나면 마음 편히 책 좀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글샘님처럼 좀 왕성한 독서력을 되찾아야 할텐데...

파란여우 2005-11-26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혼자와 기혼자의 가족의 영역은 다른거겠죠?
저야말로 아주 홀가분하게 살고 있군요
그럼에도 무엇을 바라는건지...
저는 두 분의 리뷰 올라오는 수치를 보면 심장이 쿵쾅 떨어요
왠만큼들 읽으셔야지...^^

달팽이 2005-11-26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가분한 여우님의 삶이 때로는 부럽군요..
늘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욕망에 대한 갈망이 있나봐요
우선 나부터..
저는 여우님의 리뷰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서 읽다보면
내가 함부로 리뷰쓰면 안되는데...하는 생각이 들곤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