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의 중국경제산책 탐사와 산책 3
정운영 지음, 조용철 사진 / 생각의나무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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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는 아니다. 그러기엔 거대국가의 두 어깨위에 걸린 운명의 짐이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정운영 선생님은 자신만의 날카롭고도 독특한 비판적 글쓰기로 중국 경제의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현재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등샤오핑이후의 개방과 시장경제의 물결을 사회주의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중국에서 어떻게 하면 특색있게 조화시켜가는가이다. 말처럼 경제부문은 시장에 맡기고 분배와 정의의 문제는 정치로서 해결하겠다는 야심찬 중국의 포부에 대해 시장경제의 도입이 초래할 빛과 그림자에 대해 펜촉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있다.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의 실패와 문화대혁명의 평가와 비판에서 결국 혁명을 통한 인민의 행복이 달성되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만족스러운 대답을 내리지 못했고, 혁명과정에서 무시되었던 생산력 향상과 경제발전이라고 하는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고민으로부터 출발된 시장경제가 이젠 어느 정도 그 결실을 맺고 있는 지금, 비로소 제기된 시장경제체제의 근본적인 문제 앞에 과연 중국은 안전한가 라는 질문과 더불어 중국식의 특색사회주의가 서구 자본주의가 겪어 왔던 그 문제들을 어떤 식으로 극복하는가가 그의 주된 관심사이다. 하지만 그것은 소련식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인류사회에 남겨진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마지막 희망이기도 하다.

이미 동서개발의 지역차와 빈부격차 그리고 농촌의 해체와 도시의 발달 도시내의 빈부격차와 관료들의 부정부패, 눈덩이처럼 불어만가는 실업문제는 개방으로 인해 빨라진 삶의 속도에 대한 짙은 그늘이고 그것은 중국식 특색 사회주의를 그 기저에서 뒤흔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사태를 단정짓기엔 이르다고 그는 말한다. 나름대로 내놓은 실업대책과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당의 강력한 의지 자본시장으로 내몰린 경제특구에서의 이루어진 외국자본과의 합작에서 주도적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기술이전은 지금은 웅크리고 있지만 언젠가 한번은 거대하게 비상하는 중국의 힘을 배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우리 경제를 되돌아본다. 단순히 만만한 거대시장으로 본 중국의 엄청난 경제잠재력과 자본의 논리에 놀아나지만 않는 관료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따라붙는 기술경쟁은 과연 한국 경제가 중풍 속에 어떻게 살아남는가 하는 절박한 실정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의 역사속엔 정권야욕만을 위한 음모와 계략을 너머 인민과 혁명의 순수성을 가진 지도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의 정신이 지금도 인민과 관료들 속에서 살아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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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비록 -하
산케이신문특별취재반 / 문학사상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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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이 가진 성격과 그 본질에 대한 얘기들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사실들이 20여년간 비밀의 장막 속에 묻혀 있음으로서 그동안 문화대혁명이 가진 역사적 의미와 모택동에 대한 평가에 대해 혼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벗겨진 장막은 문화대혁명과 모택동의 정책에 대해 역사적으로 보다 본질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런 점에서 산케이 신문 특별취재반의 엄청난 수고와 노력이 문화대혁명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50년대의 대약진운동과 그 실패 속에서 모택동의 정책 노선은 맑스주의에 대한 해석에서 생산력에 대한 부분이 결여된 정책상의 오류를 나타내었으며 그것은 자신의 무장혁명의 개인주의적 경험을 절대화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부문의 무시와 정치적 혁명화가 전시 아닌 평시에도 유효할 수 없었으며 그것은 생산력 침체와 경제적 낙후를 가져와 사회주의의 전제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게 하였다.

4인방과 임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모택동은 자신의 혁명적 사상에 대한 맹신으로 당내 생산력발전에 중점을 두고자 했던 유소기 국가 주석과 등소평을 타켓으로 문혁을 발동하고 그것이 자신이 의도하지 못한 규모의 폭동과 학살로 치닫게 되었어도 정치노선의 맹신은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게 하지 못하였다. 그런 와중에 4인방과 임표는 기회주의적으로 자신의 정치세력의 확장을 꿈꾸고 그것은 모택동 사상의 오류를 더욱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문혁과정에서 보여준 모택동과 그의 사상에 대한 인민의 무조건적인 절대화는 모택동을 사람에서 신으로 지위를 부상시키게 되고 그것은 인류역사에서 모든 인간의 신격화가 낳은 부조리를 낳게 되었다. 인민과 당의 의견과 유리되어 신의 권리로 그들을 평가하고 탄압한 문혁은 결국 중국 사회주의를 깊은 생산력 정체와 민주주의의 퇴보라는 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따라서 신격화된 모택동에 의해 지도된 문화대혁명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모택동과 그의 사상을 다시 인간으로 제자리매김하는 과정이었으며 중국의 낙후된 경제력을 끌어올리고 참다운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적 첫걸음이 되었던 것이다.

모택동비록은 단지 그것이 역사의 숨겨진 비화가 아니라 모택동 사상을 바르게 재평가함으로써 그것이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역사적 오류를 재발견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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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혁명 - 리저허우와 류짜이푸의 대화, 위즈북 시리즈 1
리저허우 외 지음, 김태성 옮김 / 북로드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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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대한 바른 평가없이 21세기의 바른 방향을 잡을 수는 없다. 이 책은 중국의 주변지식인 리저허우와 류짜이푸의 대화형식을 빌어 중국사회 100년을 점검해보고 앞으로의 중국사회발전에 있어서 모든 사회적 혁명과의 고별과 이성에 의한 개량을 지향하고 있다.

20세기 중국사회가 겪었던 수많은 사건과 비극 속에는 잘못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신과 정치적 야욕, 감정의 폭발과 인간정신의 타락이 존재하였다.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의 실패와 문화대혁명의 파란 속에서의 대량학살과 문화재의 파괴는 중국 사회에 씻기지 않는 상처와 자국을 남겼다.

두 지식인은 이러한 20세기 중국사회의 오류에 대한 진단을 정치에 대한 진단에서부터 시작하여 경제, 사회, 철학, 문학에 이르기까지 정리해내고 앞으로의 발전방향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소련 사회주의로부터 고립되어 독자적인 사회주의를 추진해야 하는 역사적 상황과 50년대 대약진 운동과 그 실패로부터 비롯된 개혁세력의 등장과 마오쩌둥의 위기의식, 사회주의 건설 방식과 노선을 둘러싼 마오쩌둥의 전시노선에 대한 맹신은 중국을 60년대의 문화대혁명의 혼란속으로 몰아갔다.

이는 맑스의 초기저서나 자본론 또는 맑스사상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없이 정치적 혁명화로만 일관했던 마오쩌둥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었고, 맑스의 생산력 중시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경제발전-개인의 자유-사회정의-정치민주화 의 새로운 발전단계를 제안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그르고 네가 옳을 수도 있다'는 포퍼의 열린 이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것은 나와 다른 타인의 견해를 수용하고 관용하는 자세이며 여기에서부터 대화와 토론, 양보와 타협, 다수결과 소수의견의 존중이라고 하는 참된 민주주의의 정신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제야 산업사회의 발전을 시작하는 국가이므로 여기서 벗어나고 있는 서구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시대적 한계를 갖고 있을런지 모른다. 하지만 한 세기에 대한 솔직한 비판으로부터 앞으로의 길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 가치가 크다고 본다. 비록 법치의 확립이라고 하는 리저허우의 대안이 많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지만 적어도 서구를 닮아가려고만 하는데 있지 않고 서구 산업발전의 문제점과 더불어 보다 새롭고 나은 중국식을 고집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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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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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면서 우리국민인 박노자의 이 글을 읽으면서 두 가지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다만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첫째는 외국인이면서 한국인인 나보다 어쩌면 이렇게 시원하게 글을 잘 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평생을 한국에서 자라면서 모국어를 배우며 자라온 내가 그의 글을 읽으며 이렇게도 절실하고 깊이 공감할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부끄러움이다. 두번째는 더욱 더 부끄러운 일인데 어쩌면 외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그리 오래 살지 않은 그가 한국사회에 대한 이토록 객관적이면서도 본질을 꿰뚫는 깊은 진단을 내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를 한 번 더 부끄럽게 만든 것은 단지 그의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이 자신의 밥벌이나 학자적 관심으로서가 아니라 한국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우리 사회에 아직 잔존하고 있는 전근대성이다. 지배층의 우상숭배와 독재자에게 후한 한국인의 의식과 대학 사회의 노예성에 대한 고발과 가족주의와 인간성을 파괴하는 군대 등등이 아직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있으며 모병제의 제시 등 나름대로의 대안도 제시하고 있는 모습은 그가 단순한 비판자만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또 다른 하나는 일그러진 근대성이다. 물론 이는 전근대성과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종주의, 사대주의, 잘못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아래 국가내에서는 하층민들을 착취하고 무시하는 것으로 외부로는 서구에 대한 무분별한 사대주의와 비서구인에 대한 억압과 착취와 비인간적 대우로 드러난다.

더구나 몽골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불법이민자들에게 가해지는 비인간적 착취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 분노를 금할길이 없다. 심지어는 같은 동포라 하더라도 힘이 없고 경제력이 없는 중국 조선족 몽골족 동포에게 가해지는 착취와 차별은 정말 사대주의에 우리 정신이 타락할대로 타락해서 이제는 서구보다 더 서구적으로 변해가고 더 기회주의적인 우리 사회의 자화상에 속이 거북하기조차하다.

물론 우리 사회의 전근대와 근대화의 과정이 이렇게 정신적인 타락의 과정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밝은 면과 그 속에서도 위대한 정신을 간직한 선현들과 그들의 사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살려내어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것은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그것이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마지막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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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의 목소리 -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로널드 프레이저 지음, 안효상 옮김 / 박종철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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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3당의 합당으로 이루어진 정국의 또 다른 변화와 민중의 참여를 경험한 것은 내가 대학 1학년때였다. 남포동에서 5만여명이 집결하여 규탄대회를 열면서 나는 도로를 점거한 사람들의 파도속에 묻혀서 내 인생 처음으로 전혀 색다른 경험을 했다. 길을 가다 요구르트와 담배와 김밥을 날라주는 시민들을 보면서 역사속에 우리는 하나다는 새로운 느낌도 가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내 인생에 있어서 늘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상황에 대한 적응에서 벗어나 내 삶에서 그러한 것들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나에게 있고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68년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2차대전을 계기로 자본주의 축적체제의 모순(공황)은 탄력적으로 극복되었고 60년대에는 이른바 자본주의의 안정기에 접어드는 이 시기에 전세계적으로 터져나온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봇물은 온 세계를 뒤집었다. 그리고 이 비판과 저항은 한편에서는 정치적인 요구로 직접 모아졌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기성의 질서에 대항하는 일상에 있어서의 문화혁명으로 표출되기도 하였다. 그들이 외쳤던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집약된다. 민권주의와 반전주의가 그것이다.

로널드 프레이저는 200여명이 넘는 사람들과의 직접 인터뷰를 통해 1968년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남긴 성과와 교훈을 되짚어봄으로써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를 고민해보게 한다. 이미 1968년의 세계적 함성 속에는 이후 우리 사회가 주요하게 다루게 될 사회문제들이 모두 표출되었다.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반전운동, 학내민주화, 노동계급운동, 종교갈등, 제국주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갈등 등 그 시기 제기된 많은 문제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할 문제들로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진 이 운동이 가진 한계점은 바로 과도기적 위치에 있던 학생들에 의해 주도됨으로써 운동이 각계각층에서 자생적으로 제기된 대중적 요구를 집약하고 정치화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비록 1968년 이후 제기된 기본적 민권문제는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는 선에서 승리하였고, 적어도 베트남전 이후로는 제국주의 국가의 제3세계에 대한 직접 개입은 없어졌다는 성과가 있지만, 그 때 전세계적으로 민중이 제기했던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맑스의 문제제기와 함께 우리사회에 남아 있게 되었다.

1968년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가 있다. 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몇몇 지도자들은 사회의 기층 질서 속으로 편입되었고 때로는 반대의 편에 서서 노동 탄압과 지배 질서의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직업과 삶에서 보이지 않는 지배 질서에 대항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 목소리도 사라져버렸고 메아리도 공허해져가면서 다시 기층 질서 속에 자연스레 편입되어 아무런 역사적 책임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실존에 대해 깨닫게 했던 역사적 사건과 그 속에서 고양된 의식을 어떻게 내면화시키고 삶으로 체현시킬것인가 하는 고민의 부재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68년의 메세지는 바로 우리에게 그 때 제기했던 문제의 핵심, 바로 자기 삶의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나를 우리들에게 되물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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