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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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공부하면 인간성이 나빠진다.'는 말은 갖가지 기하학과 수학으로 오염된 경제학에서 인간을 보다 풍요롭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가치론적 의미는 사라지고 단지 자본의 자기증식을 위한 수학논리만으로 치장되어 사회를 황폐하게 하고 인간의 마음을 메마르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경제학의 비인간화에 대해 대량생산체제에 의해 보급되고 유통되는 주류경제학 상품에 대항하여 경제학의 인간화와 경제학 체계내에 담아내지 못하는 비경제적 가치(생명 가치, 환경 가치 등)의 회복과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비판적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는 한 지식소매상이 있다. 그가 바로 전두환 독재정부에 항변하다 대학에서 제적당하고 옥고를 치루고 경제학의 새로운 시각으로 정립하려고 노력한 유시민이다.

그는 경제학을 공부하는 자세를 숲을 이해하는 것에 비유한다. 우리가 숲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숲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방법만 택하기 보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숲을 바라보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한다. 경제학이라는 이론이 지니고 있는 이론 자체의 결함을 밖에서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줄 아는 눈이 생길 때 비로소 경제학은 단지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하수인이 아니라 자본의 횡포에 대항하고 인간적 가치와 환경적 가치를 새롭게 지키나가는 힘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경제 이론의 전제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경제이론이 생겨난 사회적 배경과 경제학설사적 의미를 쉽게 설명함으로써 우리가 경제학에 보다 쉽게 접근하게 해주는 동시에 한국경제와 시사적인 세계경제의 사건들을 자신만의 고유하고도 시원한 설명방식으로 경제학적 본질을 드러내 보여주는 그의 해설은 그야말로 쿨(cool)하다. 세상의 변화를 근본에서부터 움직이는 경제적 힘의 논리를 비판적 시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성숙한 시민들이라면 올바른 경제적 관점과 시민의식을 갖추기 위해 한 번 쯤은 읽어 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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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세계화 - 대안신서 3
헬레나 노르베리-호지+ISEC 지음, 이민아 옮김 / 따님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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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에 새로운 고속도로가 생길 때 그것이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지역 시민의 생계를 빼앗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저녁 뉴스 시간에 떠들어대는 신기술의 개발이 우리를 직장에서 내모는 원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인류의 미래를 보다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준다고 외쳐대는 테크노피아가 결국은 우리의 환경을 파괴하고 생명권을 위협하여 우리의 호흡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흐름이 자연적인 과정이라고 외쳐대는 이 세상의 논리가 어쩌면 완전한 엉터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이러한 공동체와 생명권의 파괴를 가져오는 여러 가지 정책과 경제환경의 변화는 자연사적인 흐름이 아니라 인간의 정책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조건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아담 스미드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자연적으로 균형을 달성하여 경제적 효율성을 이룰 것이다'라고 하는 가정은 그 뿌리에서부터 잘못된 것이며 그것이 결국 우리들의 공동체와 우리들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사실 경제 사회의 중립과 경제 정의를 대변한다고 여겨지는 국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업의 이윤추구논리에 복종하여 왔다. 기업에 여러 가지 형태로 지급하는 직접적인 기업 보조금은 엄청나다. 그리고 그 규모는 매년의 정부예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더욱이 사회간접자본의 구축(인프라 구축, 도로, 항만, 공항, 철도, 댐의 건설 등)이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의 정부 사업은 실은 거대기업들의 원료시장과 상품시장을 넓히는 역할을 해왔다고 그녀는 지적한다. 대학연구기관을 육성하면서 정부가 쏟아 붓는 공공자금에 가장 크게 흐뭇해하며 미소짓는 것은 바로 기업주들이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손'의 기치를 들고 전진하는 그들, 사실 정부의 보조금이나 여러 가지 혜택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자신의 이윤논리에 조금이라도 배치되는 것에 대해서는 지나친 정부규제니, 관료제의 비효율성이니...하며 시장논리를 외치는 그들....그들의 안중엔 사람도 환경도 없다. 오로지 그들의 자본증식과 이윤증대라는 목적만이 지상최대의 과제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인류발전의 자연적 흐름이라는 것은 사실 인간 정책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것을 고치는 것도 시민의 힘으로 가능하다. 우선 정부에 대해 우리의 세금이 어떠한 곳에 어떤 방법으로 지출되는지 비판하고 감시하는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사람의 인권과 자연과 우리의 공동체를 살리려는 정책을 시행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하며 그런 정부가 들어서기 위해 민주주의의 본연의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을 가장한 그들의 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 시민들의 손에 의해 우리의 미래는 설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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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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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서부영화를 보며 인디언을 무찌르는 총잡이 이야기를 친구들과 재밌게 나눈 경험들이 많았다. 그리고 총잡이 흉내를 내며 날이 저물도록 놀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서부개척의 역사가 인디언들에게는 처절한 멸망사임을 우리들은 모르지 않는다. 이 책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미국대륙의 개발과 남북전쟁이후에 본격화된 미국민의 서부 이주와 금광개발 그리고 산업화에 따라 인디언들의 삶터가 빼앗기고 그들의 들소와 먹을 것들을 탈취당하고 대량학살 당하고 한정되고 척박한 땅의 주재소에 내몰리며 땅에서 그들의 자취와 흔적이 사라져갔던 과정을 디 브라운이라는 백인이 진솔하고 자세한 자료들을 들어 실감있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역사에서 아주 오랜 기간동안 그들의 전통적 삶의 방식으로 다른 민족을 괴롭히지 않고 평화롭게 자신들의 삶을 영위해온 인디언족들, 그들은 삶과 사물과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서구인들의 과학과 문명에 있지 않았다. 개인주의와 탐욕, 물질주의와 권력주의라는 말도 모르며 공동체의 삶과 자연에 자신의 삶을 조화시키며 살고 있던 그들에게 백인들이란 존재는 자신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자신들의 양식인 들소들을 무차별 살상하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이기심과 탐욕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인디언들을 잔인하게 살상하고 종족을 멸한다. 애초에 인디언들은 그들과 대지와 자연의 산물을 공유하고 마음을 열어 공존하려는 자비의 마음을 갖고 있었으나 정작 힘을 가진 그들은 자신의 욕심만을 자꾸만 채우려고 한다.

그들의 법에는 인디언들이 사람이 아니고 따라서 신성한 그들의 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 또한 진리는 힘을 가진 자의 넋두리라는 말은 애초에 그 곳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왔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군대와 개척과 문명이라는 미명하에 탈취하는 과정에서 사실임이 밝혀졌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찬란한 서부개척의 역사니 프론티어 정신이니 하는 것들은 단지 미국 백인들의 탐욕 충족 과정을 미화시킨 것에 불과하며 그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는 무수한 인디언의 낭자한 핏자국과 인권의 유린과 대량학살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근 현대사에 있어서 미국이란 깡패국가가 아메리카의 많은 국가와 전세계 제3세계국가들에 자본주의 체제를 이식하기 위해 군부독재와 손잡고 저지른 수많은 만행(대량학살, 인종 청소, 불법 테러 등)에 분노해왔듯이, 미국의 성립과정에서 묻혀간 인디언들의 멸망사에 분노하고 그들의 명복을 빌자. 비록 지나가버린 과거이지만 인디언의 멸망사를 바른 관점에서 다루고 미국 백인사를 제대로 평가하는 안목을 갖도록 하자. 그것은 미국의 것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추종하고 배우려고 하는 우리들의 문화사대주의적인 태도를 꾸짖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 중 훌륭하고 좋은 것을 계승하고 재창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문화적 주체성으로 우리의 앞날을 설계토록 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단지 이 책이 우리들의 분노와 공포를 느끼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이 책의 끝장을 덮으며 전해오는 전율과 공포를 뒤로한 채, 좀 더 인디언 문화들에 대해 현실의 과학문명에 대한 대안적 요소들을 전해주는 것들이 자세하게 설명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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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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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홍세화가 한국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프랑스 사회와의 비교를 통한 우리 사회에 대한 냉철하고도 엄중한 비판과 반성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화두를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과 함께 고민해보려고 한다. 젊은이들의 철저한 반성과 비판을 출발점으로 삼아 우리 사회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싶은 것이다.

그의 눈을 통해 본 프랑스 사회는 분명 우리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 줄 그 무언가를 갖고 있다. '똘레랑스(관용)'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 다른 사상과 주의와 색깔과 모습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똘레랑스가 지배하는 프랑스 사회는 아주 다양한 모습의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옷차림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개성과 특징을 가진 모습으로, 정치적으로는 극우에서 극좌의 좌표축 사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무수한 점들에 놓인 사람들로 나타난다. 이는 정부를 구성하는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수상과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우파와 좌파의 합작으로 구성되어 국사를 진행하면서도 견제와 갈등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또한 당대에 사회주의 권의 몰락으로 시장의 논리와 이윤논리가 전세계적으로 거대한 물결로 소용돌이치는 현실속에서도 프랑스 사회는 '사회정의'가 이것에 우선한다는 논리를 간직할 수 있는 사회임을 지적한다. 미국과 영국의 비이성적이고 힘의 논리에 근거한 패권주의와 세계화의 압박 속에서도 이 사회의 양심들은 그것이 틀렸음을 외칠 수 있는 그런 사회임을 보여 준다. 1995년에 있었던 철도 노동자 파업의 사례는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자 희망있는 대안인가?

물론 이런 프랑스 사회도 제국주의적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반성해야 할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도 실재하고 있으며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한 모습들도 역시 내재하고 있음을 그는 말한다. 하지만 강국의 패권과 다국적 기업의 이윤추구논리만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외쳐대는 거대한 소음속에서 그래도 사회정의와 관용을 나직히 말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 사회에서 배워야 하지 않는가?

그는 프랑스 사회의 이러한 특징들로부터 우리 사회를 비추어보고 우리 사회가 반성하고 고쳐야 할 것을 제시함으로써 두 사회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기업인들의 비리와 정부 고위 관료와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언론인들의 기회주의성과 언론 정신의 부재, 국민의식의 저급성을 꼬집어 드러내며 객관적인 시각으로 프랑스 사회와의 비교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똘레랑스 보다 우월한 우리의 미덕인 '중용'과 '외유내강'의 덕목으로 극복할 것을 주장한다.

세계화라는 물결 속에서 서구의 것만 좋다고 무조건 받아들여 자신의 더욱 소중한 미덕을 잃는 우를 범하지 말고 우리의 것으로 우리답게 현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정의와 관용이 살아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우리 나라가 꿈꿀 수 있고 꿈꾸어야만 하는 미래이며 망명의 땅에서 그가 애타고 사무치도록 그리던 그런 사회가 아닌가? 그 사회로 열차를 타고 유럽을 건너 중국대륙과 시베리아를 지나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그리고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오는 그런 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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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국가 - 미국의 세계 지배와 힘의 논리
노암 촘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 두레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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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선정에 대한 미국의 구매압력이 거세어지고 있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된다. 미국의 횡포와 압력에 우리 나라는 너무나도 굴욕적인 자세를 취해 왔던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에 비이성적이고 광폭한 횡포를 부리는 깡패국가 미국의 인권 유린의 역사를 고발한 촘스키의 이 책은 분노와 흥분을 넘어 절망과 체념이라는 단어가 나의 생각을 지배하게 한다.

그는 앞의 많은 지면들을 근대사에서 미국이 저지른 수많은 국가에서의 살상과 인권유린 사례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서술에 할당하고 있다. 그는 인권을 보호하고 세계 평화를 유지하려는 국제 질서에 구속되지 않고 자국의 이익에 의해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무관심을 표명하는 국가들의 전형인 미국을 불량국가라고 지목하고 있다.

이라크에 대한 군사 공격, 코소보 지역에서의 인종 말살, 동티모르 지역에서의 인종 청소, 콜롬비아에서의 살상, 쿠바의 경제 제재와 그로 인한 살인과 폭력, 라틴 아메리카에서 저지른 직접적인 수많은 인명 살상과 군부 독재 정권의 비호와 그 아래서의 간접적 학살, 폭력 등의 사건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미국의 이해관계'라는 논리는 세계 최강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미국이라는 나라를 움직이는 핵심 계층이 어쩌면 위험한 광신도들의 집단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후반부에서 그는 이러한 미국의 이해관계의 해부를 위해 시선을 미국 사회의 내부로 돌린다. 미국이라는 최강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사회의 내부는 그야말로 빈부의 격차가 전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곳이며 노동조합이 가장 처참하게 파괴된 곳이며 또한 하층민중들의 삶이 가장 급속도로 악화된 사회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미국이 제 3세계에서 자행한 거대한 살상과 폭력의 내부 정당화인 '미국의 이익'이란 다름 아닌 미국 특권층(기업가와 권력가)의 이해관계임을 드러내고 있다. 존 듀이가 '정치는 기업들이 사회에 드리우는 그림자'라고 했듯이 그 추악하고 시커먼 그림자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의 신음과 절규가 현실의 미국 사회에 실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따라서 국가의 주요 임무라는 것은 위험과 비용을 사회화하는 것이고 권력과 이윤을 사유화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결국 제 3세계의 국민의 인권에는 무관심한 사유화되는 권력과 이윤만을 고집하는 그런 불량국가의 횡포가 더욱 거세어지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경고한다.

소련 사회주의 붕괴 이후 더욱 기세등등한 미국의 깡패행위는 안하무인의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면 과연 이 광신도들에 의해 지배되는 불량국가의 죄악적 행위를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 그가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은 없다.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자본 쪽에 완전히 기울어진 '자본과 노동간의 갈등'에서 이미 노동의 힘은 완전히 해체된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갖게 한다. 그러면서 결국은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진단으로 다시 문제를 되돌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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