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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해당한’ 한국 추리소설‘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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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한국 추리소설은 잠시 ‘미궁’에 빠진 단계가 아닐까. 올해로 100돌을 맞았지만 한국 추리소설은 역대 최악의 부진에 빠져 있다. 서점에는 외국 추리, 미스터리가 넘쳐나는데 국내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젊은 작가의 끊임없는 도전은 이어지고 있어 한국 추리소설의 부활을 기대하게 한다. 근거 없는 순수문학 우월 풍조 속에서 나름대로 생명을 이어온 한국 추리소설의 역사를 몇가지 의문점을 통해 정리해봤다.
순수문학에 치이고 외국작품 열풍에 밀려
이해조-김래성-김성종 100년 역사 ‘최악부진’
■ 한국 추리소설의 역사, 과연 100년이 맞는가? 추리소설을 ‘범죄와 그 해결’ 관점으로만 본다면 암행어사 박문수 설화는 물론 일부 고대설화도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설화들은 근대적 의미의 소설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 추리소설의 효시는 1908년 이해조가 <제국신문>에 연재한 <쌍옥적>(雙玉笛)이 꼽힌다. 이해조는 이 작품에 ‘정탐소설’(偵探小說)이란 명칭을 붙였을 정도로 추리소설을 표방했다. 범죄-사건수사-해결이라는 추리소설적인 구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한국 최초 추리소설로 본다.
반면 이 소설이 전기적(傳奇的)인 면이 있고 구성 면에서 미흡해 기존 송사소설과 차이가 없다는 분석도 있다.
아직까지 한국 추리소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래서 <쌍옥적>보다 더 오래된 새로운 작품이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
■ 초기 작가는 김래성 한 사람뿐이었다? 한국 추리소설 초기는 김래성(1909~1957)의 시대다. 김래성은 진정한 의미의 국내 첫 추리 전문작가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 탐정소설 전문잡지 <프로필>의 현상공모에 단편 <타원형 거울>과 <탐정소설가의 살인>을 일본어로 써 당선된다. 이후 1936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고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추리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백가면>(1937), <마인>(1938), <광상시인>(1938) 등을 계속 발표하며 한국 추리문학을 개척했다.
당시 추리소설을 김래성이 독주하듯 대표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추리 소설작가들이 없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당시 문단의 스타급 작가들 상당수가 추리소설을 썼는데 다만 지금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채만식이 대표적이며 방정환도 추리소설을 썼고, 김래성보다 연배가 위였던 방인근이 ‘장비호’ 탐정 시리즈 등을 남겼다.
■ 김성종은 과연 ‘독주’를 한 것일까? 김래성 이후 최고 인기 작가인 김성종(67)은 30년 가까이 한국 추리소설계 최고의 작가로 활동해 왔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추리작가 하면 곧 김성종’이라고 할 정도로 오래 인기를 누렸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김성종 독주의 부작용을 말한다. 그가 너무 오래 독주해 유망 신인이 등장하지 못했고, 그의 영향을 받은 후배들이 엇비슷한 작품을 양산하다 도태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김성종의 책임이 전혀 아니며 또한 성립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는 50년 가까이 정상의 자리에 있었지만 그 때문에 신인의 길이 막힌 적은 없었다. 김성종이 누군가의 길을 막은 적은 없었다. 오히려 김성종이 인기를 누리며 70년대 후반부터 추리소설의 수요가 늘어났고 여러 작가들이 함께 등장했다. ‘김성종 독주체제 부작용’ 주장은 다른 작가들이 부진하다 보니 발생한 결과론적인 오해일 뿐이다.
■ 한국에는 명탐정이 과연 없는가? 한국 추리소설에는 탐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에 법적으로 사립탐정이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건을 풀어내는 넓은 의미의 명탐정은 당연히 존재한다. 지금 한국 추리의 고전들이 절판되어 유명하지 않을 뿐이다. 김성종의 오병호, 이상우의 추병태 경감, 그리고 40~50대 이상의 독자들은 아마 기억할지 모를 김래성의 유불란, 방인근의 장비호 등은 당대에는 유명했던 인기 탐정들이다. 다만 셜록 홈스처럼 일반명사화된 ‘국민적 명탐정’은 없다. 이는 추리소설에 대한 무관심의 반영이기도 하다.
■ 한국 추리는 늘 번역 작품보다 인기가 없었을까? 요즘에는 철저하게 번역 추리소설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추리소설에도 전성기는 있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작품 위주로 추리소설을 내는 출판사가 여럿이었다. 80여권을 출간한 명지사를 비롯해 남도, 소설문학사, 추리문학사, 해냄, 행림출판, 현대추리사 등이 번역 작품보다 국내 작품 위주로 출간했다. 당시 최고 인기 작가 김성종을 필두로 이상우, 노원 등 중견과 신진 작가가 계속 등장했고, 독자들도 익숙한 국내 작품을 선호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추리가 주춤하는 사이 독자 세대도 바뀌었고 외국 작품의 인기가 높아졌다.
■ 외국에는 있지만 한국 추리소설에는 없는 것은? 미국, 일본 등 추리 선진국에는 있지만 한국에선 없는 것은 두가지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추리소설, 그리고 비평이다. 추리소설의 위상과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추리소설은 지적 오락의 위치에 못 오른 읽을거리 수준이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공부에 방해되는 유해 도서로 여기는 편견의 탓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편견은 역으로 추리소설 선진국에 없고 우리나라에는 있는 것 같다.
박광규/계간 <미스터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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