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빗 뜻밖의 여정>은 <반지의 제왕>시리즈 이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배긴스와 골룸의 만남, 그리고 절대반지를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 출발은 고향집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고 있던 빌보 배긴스를 간달프가 찾아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난쟁이족들의 잃어버린 에레보르 왕국을 되찾는 원정대에 합류할 것을 제안받은 것이다. 하지만 배긴스는 망설인다. 땀내나고 더럽고 춥고 배고픈, 그리고 목숨까지 위협받는 모험을 나선다는 게 내키지 않은 것이다. 누구나 모험을 꿈꿀것이라 생각하지만 의외로 집을 떠나기를 결정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모험이 아니라 여행조차도-물론 관광이 아니라- 선뜻 마음을 굳히고 실행하기엔 엉덩이가 무거운 법이니까. 일단 슬리퍼를 신고 집안에 들어와 누워있으면 다시 운동화를 갈아신는다는 건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지 않던가. 온기와 편안함, 평온함 등등을 모두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긴스도 그랬다. 결코 떠나지 않을것 같았다. 그러나 배긴스는 모험을 선택했다.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운동화로 갈아신은 것이다.

모험이 주는 불편함을 알면서도 어째서 배긴스는 길을 나선 것일까. 모험은 바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 그것은 모험을 통해 탄생한다. 그것은 새로운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다. 낯섬과 만남, 그리고 이야기란 바로 젊음이다. 길을 나서야 비로소 변할 수 있다. 나이든 이들에겐 부담인 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나이란 물리적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슬리퍼를 신고자 하는 마음이 나이듦이요, 운동화를 신고 길을 나서는 마음이 바로 젊음인 것이다. 배긴스는 젊어지고자 한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여정은 뜻밖의 여정이 됐다.

한편 에레보르 왕국을 되찾고자 하는 난쟁이들도 피난으로부터 겨우 구축한 안정된 삶을 버리고 모험을 떠났다. 그런데 이들의 모험은 고향집-잃어버린 왕국-을 찾기 위한 것이다. 즉 슬리퍼를 신기 위해 운동화를 신은 것이다. 운동화를 신고 평생을 걸어갈 순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달콤한 꿈나라로 인도할 침대와 방안을 돌아다닐 슬리퍼도 필요한 것이다. 운동화와 슬리퍼. 그것은 어느 하나가 내 발에 항상 신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갈아신을 수 있어야만 한다. 문제는 그것을 갈아신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의 여부일뿐.

 

2. <호빗>의 이야기 진행은 다소 느린 편이다. 초반엔 마치 엿가락 늘인 것처럼 축축 처지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중간 중간 보여주는 액션장면은 정신을 바짝 들게 만든다. <반지의 제왕>시리즈가 주었던 충격만큼은 아니지만 3D로 무장함으로써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한다. 특히 48프레임의 화질은 마치 LED TV로 HD급 화질을 보는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런 고화질은 때론 너무 사실적이어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는 듯하다. 특히 풀샷으로 찍힌 질주 장면들-평원에서의 토끼 썰매- 은  이것이 그래픽장면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으로 다가오는 입체감과 눈앞에서 멀어져 가는 입체감을 동시에 선사함으로써 3D의 깊이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에 감탄한다. 앞으로 또 얼마나 발전된 촬영기법을 다음 시리즈에 담아낼지 자뭇 기대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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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는 불교의 나라다. 이곳의 스님들은 이 마을과 저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놓기를 가장 큰 보시로 여긴다. 여기서 다리놓기란 서로간의 소통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 도달한다는 의미라 여겨진다. 이러한 다리놓기는 비단 마을과 마을 뿐만의 일은 아니다. 내 마음과 당신의 마음에도 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것은 나를 위한 가장 큰 보시일 것이다.

 

하지만 다리를 놓으려면 항상 저편에 닿아야 한다. 저 편에 닿지 못하면 다리는 미완성인채로 남아있다.

 

우리는 타인과 다리 놓기를 힘들어한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다리를 놓기보다 도랑을 파기 일쑤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 영혼이 건강한지 자꾸 물어본다. 인간은 자신과 상대방 사이에 다리를 놓기보다 깊은 도랑을 파는 일이 허다하다. 날선 흉기로 돌변하는 말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침묵을 배운다. 침묵하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말, 누군가의 밤잠을 설치게 한 말, 허투루 내뱉은 말이 그들의 하루를 망치지 않았나 더듬어본다. 명상은 어쩌면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책 <지리산에서 보낸 산야초 차 이야기 1> 165쪽)

 

섬으로 존재하는 우리. 그리고 그 섬을 잇는 다리들. 그러나 온전한 다리는 드물다. 언제나 허물어지고 부서지고 쪼개진다. 다시 보수하고 잇고 조여매지만 다리는 흔들리고 뒤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저편에 닿고 싶은 섬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도 이렇게 다리를 놓고자 침묵의 소리로나마 다가설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부디 저편에 생채기를 내지않고 무사히 닿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와 너 사이에 언제 휩쓸려갈지 모를 섶다리라도 놓여지기를 소망한다. 그건 당신의 마음에 한번이라도 내가 들어갔음을 의미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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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는다는 건

 

얼음같은 물에 담근 손을 빼지않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도 오지않는 고장난 기차를 기다리는 것처럼

 

저 문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는 것

누군가의 뺨에 손을 대지 않는 것

상대의 입술을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만 보는 것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감추었던 말을 끝끝내 꺼내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참다 참다

참 나

멍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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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식에 있어서 3소식이 중요하다. 3소식이란 少食 素食 笑食 을 말한다. 적게, 소박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 것. 이것이 건강의 밑바탕이라고 한다. 그런데 단 한끼라도 3소식을 행하기가 무척 힘들다. 식탐 때문이기도 하며, 함께 먹는 사람과의 관계 때문이기도 하며, 직면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진정 3소식을 원하는지도 문제다. 건강 대신 쾌락을 원하는 욕망을 쉽게 이겨내지 못한다. 그래서 건강한 먹기는 건강한 신체를 가져옴과 동시에 건강한 마음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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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만나 떨렸다

나는 너를 만나 설렜다

나는 정녕 너를 만나

떨린걸까 설렌걸까

 

나는 설레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떨고 말았다

끝끝내 눈물을 뚝뚝

떨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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