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격자의 인기가 거세다. 잔인한 화면이 눈에 거슬릴수도 있겠으나 영화 관람 내내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럴만하다고 생각된다.
추격자라는 제목이 풍기는 이미지에 걸맞게 도망치고 쫓아가는 장면들이 심장을 죄어온다. 하지만 정작 영화의 재미는 범인이 누구인가를 찾아 범인에게 근접해가는 것이 아니라, 범행이 이루어진 장소를 찾기 위한 과정에 있다 하겠다.
생과 사의 갈림길은 범행의 장소를 찾는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장소라는 것은 외딴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옆집이다. 바로 이 부분이 영화의 섬뜩함을 극대화시킨다고 본다.
시골도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집과 집 사이가 담이라기 보다는 울타리라고 여겨진다. 고개를 살짝 들어 서로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곳. 물론 이런 삶은 꼰대가 있어 괴로운 부분도 있다. 소위 말하는 사생활이라는 것의 영역이 축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의 담이 갖는 소통의 부재가 주는 고통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에 집을 찾은 손님은 단 1쌍의 부부였을 뿐이다. 옆집에 사는 사람들은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는다. 그래서 범행은 태연하게 계속될 수 있었다.
영화의 또다른 재미는 살인 동기에 있다. 경찰이 기소를 하려해도 그 동기때문에 힘들어한다. 마땅한 동기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 동기를 성적 불능으로 암시한다. 하지만 범인은 그것을 승화(?)시킨다. 범행 전 죽음을 당하는 피살자에게 물어보는 한 마디.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봐!"
과연 범인을 납득시킬만한 생존의 이유를 댈 수 있는 피살자들이 있었을까? 지금 당장 나 자신에게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보자. 과연 나는 무었때문에 생명을 계속 유지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 당위성이란 얼마나 비합리적인 것인가를 느낄 것이다. 논리로서 누군가를 설득할 수 없는 존재의 이유.
삶은 살아있음으로 인해 살 이유가 되는 것이다. 오직 그뿐이다. 그것을 이해 못하고 목숨을 앗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범죄가 되는 것이다.
영화 속 왜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삶을 충만하게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자. 그것이 밤하늘에 빛나는 빨간 십자가가 구원이 되지 못하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