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와 역사의 정치 딕테 시리즈 3
조앤 스콧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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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대로 읽었기 때문에 옮긴이 후기를 맨 마지막에 읽었는데, 먼저 읽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별의 문제를 역사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성별 체계와 이를 둘러싼 지식의 구조 자체의 변화 과정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380쪽)

남성과 여성의 노동 정체성 확립 과정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대부분 봉제사였던 여성 노동자들의 요구는 명확히 '임금 소득'이었던데 반해, 남성 노동자들, 남성복 재봉사들의 요구는 숙련 기술에 기반한 집단적 정체성(195쪽)의 확정이 중요했다. 이는 단순 임금노동자, 즉 여성 봉제사들을 배제하는 것을 기반으로 했다.

가정에서 일하는 경우에라도 남성들은 노동자로 호명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여성들의 가정 내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에 더해 남성 임금과 여성 임금에는 차이가 존재했는데, 남성들에게 노동력의 대가로 지불되는 '가격'에는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 남성의 임금에는 자신을 부양할 수 없는 '태생적 의존자'인 아이와 아내의 생계비가 포함(254쪽)되어 있었지만, 여성의 임금은 생활에 턱없이 부족한 정도여서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미혼 여성은 도덕적 비난과 성적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일하는' 여성에 대한 고의적인 저임금 정책 때문이었다.

여성의 가정 내 부불 노동, 재생산 노동은 임금이 지급되지 않은 상태로 '무한 공급'될 것을 요청받으며, 사회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저임금의 현실에 내몰리기 쉬웠다. 이제 여성도 남성처럼 고소득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남성들이 '사적 영역'으로 과감하게 진출하지 않는 한, 여성의 사회 진출은 이중, 삼중 노동을 의미할 뿐이다.

'여성'이 당당한 '노동자'가 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와중에, 나는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일'에 대해, '노동'에 대해 생각했다.

여성은 '사실상 노동자'다. 인류 역사 내내 여성들은 일해 왔다. 남성들은 일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여성도 남성만큼 일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성의 가정 내 노동은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기에 '일'로 인정받지 못했고, 여성이 '사회'에서 일하는 것에는 역사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랐다. 이제 여성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사적인 영역은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어 여성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더 늘어난 형국이다.

'일'에 대한 낭만화를 거부해야 한다, 고 나는 생각한다. 마리아 달라 코스타의 말을 빌려보자.

우리가 원하는 건 공동 급식소도, 그와 같은 종류의 놀이 시설이나 어린이집도 아니라는 점을 그들이 알기 바란다. 우리는 공동 급식소, 어린이집, 세탁기, 식기세척기를 원하지만, 몇몇 사람들과 원할 때 방해받지 않고 식사할 수 있는 선택권, 아이·노인·환자와 원할 때 원하는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선택권도 갖고 싶다.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건, 노동을 줄이는 것을 뜻한다. 아이·노인·환자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이들을 잠시 맡겨둔 차고로 뛰어가 잠깐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가장 먼저 배제 당한 우리 여성들이 투쟁을 주도하여 다른 모든 배제 당한 이들, 즉 아이, 노인, 환자가 사회적 부를 재점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페미니즘의 투쟁』, 45쪽)

우리가 '일'이라고 말하는 것에 다른 정의를 포함시킨다면, 돈을 버는 것만이 '일'이 아니고, '일', '노동'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존재 이유가 '생산성'에 있다는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 로봇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물리적' 일들을 훨씬 더 빠르게,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로봇은 이미 인간이 하던 노동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고 있으며, 대체 가능한 노동을 제공하는 인간은 앞으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하는 인간이 아닌, 다른 인간상을 그려봐야 한다. 이를테면.


노래하는 인간.

춤추는 인간.

이야기하는 인간.

말하는 인간.

듣는 인간.

돌보는 인간.

책 읽는 인간.

소리 내어 책 읽는 인간.

그리고

노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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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5-03-3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 맞은듯 마지막 문장 🙃 억

단발머리 2025-03-31 17:5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그래여? 다른 인간상을 그려보자고요! ☺️😆🤗

수이 2025-03-31 18:20   좋아요 1 | URL
노래보단 춤으로 가볼까 했으나 고관절이…… 🥺

단발머리 2025-03-31 19:41   좋아요 0 | URL
춤 괜찮죠~~ 각종 댄스 환영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5-04-01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25-04-01 11: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햇살과함께님~~
4월 4일 11시 헌재가 선고한대요! 🎉🎊🥳

햇살과함께 2025-04-01 11:04   좋아요 1 | URL
그니까요 저도 방금 봤어요 제발!!

단발머리 2025-04-01 11:05   좋아요 1 | URL
국민의 염원이 드디어 통했네요!
좋은 결과 나올거라 믿습니다! 🙏

책읽는나무 2025-04-01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동 부분을 읽었을 때…오래 전 여성의 노동의 대가와 처우가 억울할 정도여서 그나마 내가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 있는 게 감사한 일이구나! 싶다가도 그래도 지금 세상도 그닥?! 그런 생각을 했죠. 늘 답답한 부분들이에요. 이제 정권이 교체된다면 좀 바뀌려나요? 당장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봅니다. 저는 요즘 너무 괴팍하고 심술이 늘어 ‘좋은 인간‘ 그런 거 좀 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ㅋㅋㅋ

단발머리 2025-04-01 22:31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딱 책나무님 표현이 맞아요, 답답한 부분이요.
저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욕하면서 임금은 정당하게 주지 않고, 그렇게 매춘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그 여성들을 비도덕적이라고 욕하고... 그런 상황들이 너무 암담하더라구요.
지금 완전히 좋아진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나아진 면이 있다고는 생각해요. 물론 앞으로도 갈 길이 멉니다.
책나무님 다정하고 친절하신 분인데 심술이 느셨다고 하니 제가 믿을 수는 없지만.... 이미 ‘좋은 분‘이세요, 책나무님!!

독서괭 2025-04-03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노는 인간 할래요.. 놀다가 가끔 책 읽는 인간 ㅋㅋㅋㅋ
˝남성들에게 노동력의 대가로 지불되는 ‘가격‘에는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포함˝ 되어 있다는 거, 너무 열받더라고요!
늦었지만 완독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