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b(밥)은 루시가 메인에서 새로 사귄 친구다. 여기는 할리우드 스타일이라, 전남친, 전아내 다들 사이좋게 잘도 지내는데, 밥의 첫 번째 아내는 팸이다. 팸은 루시의 첫 번째 남편 윌리엄이랑 여러 해에 걸쳐 바람을 피우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던 사람이다. 나중에 팸은 윌리엄과도 멀어지고(그래도 생파 초대하는 친구 사이), 밥이랑 이혼 후에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지만, 밥과도 윌리엄과도 사이좋게 잘 지낸다. 밥은 윌리엄과 루시가 마인에 정착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밥은 루시와의 산책을 즐거워하고, 루시도 밥과의 대화가 즐겁다. 오늘 날씨 어때요? 이런 이야기 말고 두 사람은 진짜 이야기, 자기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데, 오늘 읽은 대목에서 밥은 팸에 대해 이야기한다. 팸이 자신을 떠났을 때, 그리고 지금 곁에 없는 팸에 대해 이야기한다.
"절대적인 진실을 말하면, 나는 팸이 영영 떠나지 않기를 바라요. 오 루시, 나는 팸이 나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었기를 바라요. 팸이 그리워요. 팸도 여전히 나를 그리워할 거라고 생각해요."(320쪽)
"To tell you the absolute truth, I wish Pam had never left. Oh Lucy, I wish she could have had her kids with me. I miss her, and I think she still misses me."(247p)
밥은 이런 사람이다. 떠난 팸을 아직도 생각하는. 아직도 그리워하는. I miss her.
밖에서 할 수 없는 말이어서 가족들 앞에서만 자주 하는 말인데(근데 알라딘에는 쓴다ㅋㅋㅋㅋㅋㅋㅋㅋ), 외출하고 돌아오면 식구들 앞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해. 대학교 동창 친구들이 나를 너무 좋아해. 내가 입만 열면 다들 빵빵 터져. 교수님도 나를 좋아하셔. 모임 마무리 기도, 꼭 나 시키셔. 다들 나를 좋아해. 지난주에는 A집사님이 예배 마치고 인사 나누는데 내 손을 잡고 안 놔. 커피숍에서 B집사님이 나 커피 사 준다고 따라다녔어. 막 이런 이야기를 한다. 둘은 듣지 않고, 믿지 않는다. 살아남을려고, 어떤 사람은 그래도 살아남을려고 '듣는 척'을 한다. 엄마랑 이모만, 엄마랑 이모만 진심으로 믿는다, 내 말을. 그래, 너 인기 많잖아, 그러면서.
이차 저차 올해 근무하는 학교가 바뀌었다. 나는 그 학교에 계속 있고 싶었는데, 내가 그걸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아무튼 걱정스레 새로운 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생각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그것보다 더 걱정스러웠던 건 아이들. 만날 아이들이 아니라 두고 온 아이들 생각이 많았다. 다정하고 착하고 순한 아이들이 내내 눈에 밟혔다. 아이들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친구에게 내 맘을 말했다. 얘들이 다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금방 다 잊어버린다고, 친구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마음이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나를 기다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애달프던 마음이 일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래, 괜찮을 거야. 아이들은 금방 잊을 테고, 그 학교에도 좋은 선생님 오시겠지. 그래그래.
그렇게. 나는, 나를 좋아하던 아이들에게서 잘 떠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꿈을 꾸었다. 나는 꿈을 잘 꾸지 않는다. 정확히는 아침에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꿈을 꾸지 않는다. 잠자기만 해도 엄청 바빠서 그러련 한다. 결혼하고 한참 지나서도 꿈을 꾸면, 첫사랑이 나왔다. 그냥 시무룩한 얼굴로 내 앞에 나타나서는 별말 없이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왜, 무슨 일이야?를 물으면서 꿈에서 깨곤 했다. 며칠이나 우울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애가 꿈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꿈 없는 잠을 계속해 왔는데...
세상에, 꿈을 꿨다. 꿈에는 아이들이 여러 명 나왔는데, 가장 정확하게 기억나는 아이는 H였다. 색종이에 '선생님, 사랑해요!'를 써주던 아이, 엄마가 전화해서 우리 H가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요, 말했던 그 아이였다. 아니, H야! 너 여기에 왔어? 네, 선생님. 저, 여기로 전학 왔어요. 꿈 속에서도 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더란다. 아, 다행이다. 아이들이 이 학교로 전학을 왔네. 다행이다, 진짜.
아이들은 잊을 테고, 잊어버릴 테고, 그리고 잘 살고 있을 텐데, 나는 이런다. 나는 생각하고, 꿈을 꾸고, 그리고 안타까워한다. 내 선택을, 내 현재를.

소설 속 남자 주인공 중에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다들 병적이다. 히스클리프, 로체스터. 드라마 주인공 중에 찾자면 <시크릿가든>의 현빈. 광적인 집착남을, 미친 사랑을 나는 좋아하는가. 그런 사랑을 바라는가. 그런 사랑을 원하는가.
하지만,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나는 히스클리프의 사랑을 받는 캐서린, 로체스터의 안식처인 제인, 현빈의 집착의 대상인 하지원이 아닌 것이다.
나는.
나는, 그냥 히스클리프이고, 로체스터이고, 현빈이다.
맨날 사람들이 나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실제로는 더 좋아하는 사람.
집착의 아이콘, 미친 사랑쟁이.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응답받지 못하는 사랑의...
미친 짝사랑의 화신이다. 이런 순.
그래서 빵을 샀다. 푸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