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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평점 :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가끔 챙겨서 보시는 드라마가 생기면, 화면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거, 다 실화래.” 드라마가 실화라는 게 드라마를 보는 적당한 이유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의 말은 똑같았다. “저거, 다 실화래.” 엄마에게 픽션이 사실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소설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엄마에게는
사실과 실화의 자리가 픽션과 소설의 자리보다 더 가까운 거다. 그냥 그게 전부다.
이 책이 소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소설이라 믿고 소설이 주는 감동에 빠지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고, 실제로 일어난 일을 말한다. 말 그대로 실화다.
폴
칼라니티 Paul Kalanithi.
1977년생. 스탠퍼드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과정을 이수하고 예일 의과 대학원에 진학해 의사의 길을 걸었다. 레지던트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 신경외과 학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책날개) 촉망받는 의사였던 그에게 찾아온 암. 투병생활과 복직 그리고 재발한
암. 이 책은 의사이자 환자로 살았던 그의 마지막 삶과 생각을 조명해준다.
최고참 레지던트가 되자 나는 거의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했고 성공과 실패의 기회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주어졌다. 실패하면 괴로웠고, 기술적인 탁월함이 곧 도덕적 요건이라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내
기술에 정말 많은 게 걸려 있거나, 불과 1~2 밀리미터
차이로 비극과 성공이 갈릴 때에는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133쪽)
경각을 다투는 환자에 대한 처치를 담당했던 의사로서, 1~2 밀리리터의 차이로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위험하고 중요한 뇌수술의 책임자로서, 폴은 완벽한 의사가 되고자 한다. 기술적인 탁월함으로 확인 가능한
최대의 의학적 성과를 이끌어내려 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일하던 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환자복을 입고, 진료를 보던 의자가 아닌 환자용 의자에 앉아, 의사로서 환자에게
했던 말들을 이젠 그가 듣는다. 치료에 적합한 약을 고르고, 앞으로
자신의 치료 계획에 대해 담당의와 의논한다. 섣부른 희망을 뒤로 하고 꾸준히 치료를 받았던 폴의 병세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그는 복직한다. 레지던트 수련과정을
마치려 한다. 하지만, 레지던트로서 맡은 마지막 수술을 앞두고, 새로운 종양이 퍼져나가 암이 재발했음을 알게 된다. 마지막 수술을
준비하는 폴. 훌륭하게 수술을 마친 폴. 이제는 의사로서의
자신과 헤어져야 한다.
이번에 처음으로 함께 일한 수술실 간호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번
주말에 당직이신가요, 선생님?”
“아니요.” (아마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오늘
잡혀 있는 수술은 더 없으세요?”
“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어머, 정말 해피엔딩이군요! 일이 정말 끝난 거네요. 전 해피엔딩을 좋아해요. 선생님은요?”
“그럼요. 저도 해피엔딩을 좋아하죠.” (211쪽)
새롭게 시도한 화학요법을 통한 치료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다. 그렇게 그는 죽음에 더 가까워진다. 죽음이 다가오는 그 시간에 새로운
생명 그의 딸 케이디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게 한다. 아내와 딸, 가족들, 세속적인 성공. 죽음과 직면했던 환자들을 이해하고 도우려 했던 폴은
이제 자신을 찾아온 죽음에 대면해야 한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이 이제 코 앞으로 진격해 있다.
과학은 재현 가능성과 인위적인 객관성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물질과 에너지에 대해 이런저런 주장을 내세울 때는 탁월하지만, 고유하고 주관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실존적이고 본능적인 성질에 과학 지식을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과학은 경험적이고 재현 가능한 정보를 체계화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과학의 능력은 역설적으로 인생의 가장 중심적인 측면들(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아름다움, 질투 명예, 나약함, 부단한 노력, 고통, 미덕)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202쪽)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듯이, 살아있는 모든 유기체는 물리법칙에 복종해야 하며 슬프게도 그 법칙에는 엔트로피의
증가도 포함되어 있다. 질병은 분자의 탈선에서 비롯된다. 삶의
기본적인 요건은 신진대사이며, 그것이 멈추면 인간은 죽는다.(94쪽) 누구나 자신이 죽음의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대부분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 5분 후에 자신의 삶조차 확신할 수 없지만 내일을 걱정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그리고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을 잊어버린다.
폴은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죽음에 의연하게 맞선다. 의사로서 자신의 병증과 예후, 뇌기능의 변화와 그 변화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있지만, 가끔은 실망하고 또 눈물 흘렸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용감하게 죽음에 맞선다. 순간을 누리고 가족들을 사랑하고 그리고는 환하게
웃는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로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저번 주의 몇일은 지루한 일상이 혹은 전통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내 시간을 지배했다. 동서는 친구다. 중학교 동창이고 교회친구다. 우리는 둘이 따로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붙어 서서 전을
부치고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그렇게 하루 종일 같이 있다가도, 우리집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야 헤어진다. 시댁에서의 시간들이 많이 힘들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나누는 동서와 함께 있을 수 있음에도 정해진 시간 속에서 정해진 일을 반복하는 건 지루한 일이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음식, 똑같은 대화. 까치설날 오후 3시쯤이던가. 달걀물을
기다리는 마지막 꼬치산적 4개를 쳐다보다가 폴이 생각났다. 힘겨운
암치료와 화학요법을 감당하기 어려워 몸이 축나는 와중에도 환하게 웃던 그가 생각났다. 착각이었나. 똑같은 꼬치산적이 순간 다르게 보였다. 내게는 그랬다.
이 책은 이전에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소개되기도 했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읽지 말 것을 권유했다. 읽다가 울게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명절을
앞둔 대한민국의 며느리라 나도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다음날 전거리 준비가 일차적으로 끝난터라 비교적 가벼운 마음에 몇 장을 넘겼는데… 물론이다. 나도 울었다. 딸에게 보내는 폴의 마지막 인사에, 폴의 아내이자 목격자로서 살았던
루시의 이야기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탄핵결정과 조기대선, 끝없이
오르는 물가와 더 힘들어지는 살림살이, 애매하게 괴롭히는 그 어떤 사람과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때문에
좋은 컨디션을 갖는다는 게 쉽지 않지만, 바쁜 걸음을 멈추고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아니, 어쩌면 이 책을 읽은 후에,
잠깐이나마 바쁜 걸음을 멈출 수 있게 될 수도…
우리의 정체성은 뇌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신체 안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산행, 캠핑, 달리기를 좋아하고, 양팔을 쫙 벌려 꼭 껴안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던, 그리고 키득거리는 조카를 번쩍 들어주던 남자, 나는 더는 그 남자가 될 수 없었다. 기껏해야 그런 남자를 목표로 삼는 것이 최선이었다. (165쪽)
과학을 형이상학의 결정권자로 보면 세상에서 신뿐만 아니라 사랑, 증오, 의미도 함께 사라져버리고, 이런 의미가 모두 사라진 세상은 결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인생의 의미를 믿으면 반드시 신도 믿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이 신에 대해 어떤 근거도 제공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인생의 의미에 대한 근거도 마련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인생 자체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다시 말해, 실존적 주장은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못하게 되고 과학적 지식이 곧 모든 지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201쪽)
우리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결혼 생활을 지키는 비결은 한 사람이 불치병에 걸리는 거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역으로 말하자면, 불치병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며, 감사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254쪽, 에필로그: 루시 칼라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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