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퇴장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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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퇴장』을 다시 읽었다. 이전에 읽었을 때는, 마흔 살 연하의 여자에게 굴복한 유명작가에게 매료된 게 사실이다.

 

산꼭대기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 옆, 새나 들짐승이나 드나드는 곳. 뉴욕에서 128마일, 가장 가까운 이웃도 반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십일 년 동안 살았던 사람(45). 영화도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휴대전화, VCR이나 DVD 플레이어, 컴퓨터도 가지지 않는 사람. 하루 종일 글을 쓰고, 밤늦게까지 글을 쓰는 사람(13). 내가 반한 사람이 이 사람이다. 사회로부터의 존경과 자신의 것이 분명한 명예를 내버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이기를 고집하는 남자. 내가 반한 사람이 바로 이 남자다.

 

그가 제이미에게 빠진다. 상류층 가문 출신의 텍사스 사람이 쓰는 억양에 자신이 아름다움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듯 신중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태도의 그녀에게 사로잡힌다.    

 

나는 계속 안절부절못했다. 평화로운 순간이라곤 없었다. 어쩌면 내 평생 처음으로 젊은 여성의 여성스러움을 응시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생애 마지막으로일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나는 차마 그녀를 만져볼 생각도 못하고 떠났다. 그녀가 증언조서라도 받는 것 같다고 묘사한 그 대화 내내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보다 훨씬 가까이 그녀가 앉아 있었는데도 차마 그녀의 얼굴을 만져볼 생각조차 못했다. ...  나는 실성하는 게 어떤 것인지 일흔한 살에 배우고 있었다. 아직도 자아 발견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164)  

 

젊음을 제외한 모든 걸 가진 남자. 명성과 지혜,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능력 있는 남자가 자신의 마음을 빼앗아버린 여자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자신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여자에게 오히려 그녀를 숭배한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자신과 같은 감정을 일으킬 수 없기에 슬퍼한다. 완벽하게 절망한다. 그녀를 대하는 그의 방식. 그녀와 단둘이 방 안에 있고 싶다며 그녀를 찾아오고, 자넨 날 수집했네,라고 말하는... 그녀의 애인을 질투한다 말하고, 욕망에 이끌려 키스하지 않겠다 말하는. 질문하고 듣고 또 말하는

 

이번에 읽을 때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던 문단은 다르다

 

매니(로노프)는 호손과 그의 누이 엘리자베스와 관련된 교활하고 증명할 수도 없는 학계의 추측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에게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을 상징할 ― 당신 말처럼 그를 완전히 딴사람으로 변모하게 만든 그 놀랍고 낯선 감정들을 모두 면밀하게 검토해볼 ― 이야기를 찾던 중에 호손과 그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누나에 관한 그런 추측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게 된 거예요. ... 그에게 소설이란 무언가를 묘사하는 게 아니었어요. 이야기 형식 안에서 사색하는 것이었죠. 그는 생각한 거예요. 이걸 내 현실로 만들겠어,라고요.“ 이야기하는 동안 실은, 나 또한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현실을 내 것으로, 에이미의 것으로, 클러먼의 것으로, 다른 모든 사람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그리고 이후 한 시간 동안 나는 눈부신 수사를 동원해 내 주장의 타당성을 설파했고 결국 스스로도 그것을 믿기에 이르렀다. (264)

 

소설가는 소설을 쓴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만든다. 소설가가 만든 세계 속에서 소설가는 산다. 살고 생각하고 경험한다. 이야기 형식 안에서 사색한다. 소설의 현실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믿고 그 속에서 산다.

 

로노프는 호손과 그의 아름다운 누나에 대한 추측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걸 내 현실로 만들겠어,라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에이미에게 말한다. 로노프의 연인 에이미는 그가 말한 현실, 누이와의 근친상간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로노프의 전기를 쓰려하는 클러먼은 그녀가 말한 현실, 근친상간의 현실을 사실로 해석한다. , 로노프의 추종자이며, 한때 그의 연인 에이미를 사모했던 나는, 그 현실이 로노프가 만든 것이라 주장한다. 로노프의 근친상간을 믿는 에이미의 현실, 로노프의 근친상간을 믿고 싶어하는 클러먼의 현실을 자신의 생각대로 재구성한다. 근친상간은 로노프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로노프가 만든 현실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 말한다. 그렇게 주장하고, 자신도 그렇게 믿어버린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상상일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거짓일까.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서부터 추측일까.

 

분명 가방에 넣었다고 생각했던 장갑을 식탁에서 발견하거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던 열쇠를 원래 놓았던 자리에서 찾는 일처럼, 분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없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건 오해고 착각이다. 이 소설, 필립 로스가 그려놓은 이 세계 속에서, 필립 로스는 말한다.

 

이걸 내 현실로 만들겠어.

 

맙소사, 그가 말한 대로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현실을 만들었고, 그가 만든 현실은 그 뿐만 아니라 나의 현실이 되었다. 이제 나는, 그가 만든 현실 속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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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열쇠
    from 마지막 키스 2017-02-22 08:42 
    세상 일은 정말 알 수 없다. 아니 이런 말은 너무 거창한가... 기억이란 뜬금없고 연상이란 것도 역시 뜬금없는 것. 나는 위에 먼댓글로 연결한 단발머리님의 리뷰를 오늘 아침에 읽었다. '필립 로스'의 《유령 퇴장》에 관한 리뷰였고, 나 역시 그 책을 읽었으며 일전에 단발머리님의 글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부터 내가 생각한 것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단발머리님의 리뷰 중에 잠깐 '열쇠'란 단어가 ...
 
 
다락방 2017-02-22 0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이 리뷰를 읽고 저는 엉뚱하게도 쉼보르스카의 시 한 편이 생각났어요. 리뷰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러나 ‘열쇠‘라는 단어 때문에요. 아아, 저를 용서하세요.


열쇠
-쉼보르스카


열쇠가 갑자기 없어졌다.
어떻게 집으로 들어갈까?
누군가 내 잃어버린 열쇠를 주워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리라 - 아무짝에도 소용없을 텐데.
걸어가다 그 쓸모없는 쇠붙이를
휙 던져버리는 게 고작이겠지.


너를 향한 내 애타는 감정에도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이미 너와 나,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의 ‘사랑‘이 줄어드는 것이니.
누군가의 낯선 손에 들어 올려져서는
아무런 대문도 열지 못한 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열쇠‘의 형태를 지닌 유형물로 존재하게 될
내 잃어버린 열쇠처럼.
고철 덩어리에 덕지덕지 눌어붙은 녹(綠)들은 불같이 화를 내리라.


카드나 별자리, 공작새의 깃털 따위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이런 점괘는 종종 나온다.

단발머리 2017-02-22 08:33   좋아요 1 | URL
전혀, 전혀 엉뚱하지 않아요. ㅎㅎㅎ
쉼보르스카,.... 아, 예전에 제가 남자로 알았던 그 시인.
<충분하다>의 그 쉼보르스카의 시를 댓글로 달아주셔서
제 서재의 품격이한껏~ 올라갔네요.^^

잃어버렸다 혹은 잊어버렸다는 점에서 이 리뷰와 딱 맞아떨어지는 시예요.
<유령퇴장>에서는 주커먼이 에이미를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에이미가 오지 않았잖아요.
전화번호를 메모해둔 종이를 찾지못해 그녀에게 연락도 못하고, 호텔에 돌아와 방안을 샅샅이 뒤진후에야,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지갑에서 발견했죠.

˝나는 피에를루이지에 그걸 가져가는 걸 잊은 게 아니라
가져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


 
여성혐오, 그 후 - 우리가 만난 비체들
이현재 지음 / 들녘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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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규정된 대상이 아니다


비체로서의 여성은 대상과도 다르다. 만약 남성들이 부여한 대상으로서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즉 착한 대상에 머무른다면 여성은 멸시받기는 하지만 혐오되진 않는다. 그 대상은 적어도 주체가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며, 주체로서의 경계를 뒤흔든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은 자신이 재생산을 위한 성녀임을 입증하는 한, 어느 정도의 보상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상으로서의 위치를 벗어나 경계를 넘나드는 비체가 되는 순간 여성은 멸시를 넘어 혐오된다. 여성혐오는 여성 대상이 아니라 여성 비체를 향한다는 것이다. (36)



여성 혐오의 시작점이자 놀이터, 여혐의 절대 온상 일베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정희진님은 2016 7 31, 한겨레신문 특별기고문에서 나는 일베가 남성 하위문화, 실업으로 인한 좌절, 여성 지위 향상에 대한 반발의 산물이라고 보지 않는다. 일베 헤비 유저 출신의 <한국방송> (KBS) 수습기자 사건이 보여주었듯이, 그들은 한국의 평균 혹은 그 이상 수준의 남성들이다. 일베 사용자 중에는 찌질남도 있지만 지구화 시대 대한민국의 위상을 고민하는 새로운 건국 세력이 존재한다. 그들은 우익 시민사회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데올로그들, ‘엘리트들이다.”라고 말했다. 이 책의 저자 이현재님은 조금 다르게 해석하는 듯 하다.


가상공간에는 새로운 여성 비체의 존재방식을 불편하게 느끼는 남성들, 비체들의 경계허물기에 반발하면서 자신의 경계 지키기에 집중하는 남성들이 그들끼리의 공간을 만들어 똬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시화의 과정에서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한 여성, 명품을 소비하는 여성,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 등 젠더적 위계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여성 비체에 대한 반발심으로 결집한다. (68)


일베 유저들이 페미니스트들을 남성의 권리를 약탈하는 꼴페미(꼴통 페미니스트)”로 비하하면서 혐오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과열된 성취인정의 논리에 집착하고 나아가 인정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왜곡하여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여성혐오는 여성을 열등한 것으로 만들어 개별적 성취 인정에서 경험한 자존심의 붕괴를 회복하려는 것이며, 이데올로기적 인정 논리를 통해 남성의 집단적 우월성을 확인받고자 하는 왜곡된 인정욕망의 반영일 뿐이다. (103)


서울대, 연대, 고대에 이어, 이번에 불거진 홍익대 단톡방 사건은 멀쩡하게 생긴, 소위 명문대 대학생들이 얼마나 일베스러운 문화와 언어에 사로잡혀 있는지 확실히 보여준다. 보통의 남자들에게 일베혐오의 단어인지 공감코드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일베 그리고 메갈. 가장 격렬한 항의는 중 2의 여학생으로부터 온다. 일반 남성 뿐 아니라, 기혼여성, 남자 어린이, 남자 노인에게까지 무차별 언어 폭력을 퍼붓는 메갈도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제일 가슴 아픈 말은 메갈도 일베랑 똑같아.’이다. 메갈이 어떠한지, 일베가 어떠한지 나는 사실 잘 모른다. 특별히 찾아가 메갈의 글을, 일베의 글을 읽지 않는다. 읽어본 적이 없다. 메갈도, 일베도 잘 모르지만, 어쩌면 잘 모르기 때문에, 나는 그 때마다 똑같은 말을 한다.


메갈리아는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유일한 당사자야.” (정희진, 한겨레신문)


아무도 일베에 저항하지 못 해. 여성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도, 내가 좋아하는 그 정당도. 만 원짜리 티셔츠 하나에 모두 벌떼처럼 달려들어 결국에는 항복 선언을 받아내잖아. 아무도 일베에 저항하지 못 해. 메갈을 빼고는.


메갈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패러디로서의 미러링 전략은 패러디를 수행하는 비체가 기존의 지배적 남성 주체와 어떻게 다른지 증명해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그녀들은 패러디의 과정에서 자신이 패러디하고자 하는 남성성에 잠정적 동일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동일시 때문에 그녀들이 비판하고자 하는 남성 주체와 다를 것이 없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 대면하게 된다. 따라서 패러디의 성패는 그녀들의 패러디적인 동일시가 잠정적이라는 점과, 패러디의 과정에서 그녀들이 두 개의 입장을 전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달려 있다. (41)


모방의 모방은 효과를 거두었다. 일베는 메갈이라는 단어에 반응한다. 반응하고 있다. 이제 그녀들의 패러디가 잠정적이라는 것을, 그녀들이 두 개의 입장을 전유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어쩌면, 저자의 이런 훈수(?)를 메갈은 한가한 꼰대의 잔소리쯤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메갈이 어느 길로 가는지, 어느 길로 가게 될 건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비합리적 모욕과 차별에 대해 비폭력으로 저항할 수 있다. 저항해야 한다.  1955-6년 미국의 로자 파크스와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은 흑인과 백인을 차별을 당연시했던 몽고메리시 조례에 저항했다. 버스 보이콧에 대해 앨라버마주는 주동 인물들을 체포하고 참가자들을 탄압하며, 주동자들을 직장에서 해고시켰지만, 그럼에도 흑인들은 보이콧 운동을 이어나갔고, 결국 버스에서의 흑백분리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얻어 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다른 방식의 저항도 있다. 여성참정권 운동을 주도했던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시위와 가두 연설, 의회 방문, 수상 면접과 국왕 알현 요구 방식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투쟁했지만, 효과가 가장 빠른 것은 재산 파괴 방식이었다고 말한다. 폭력의 언어만을 이해하는 남성들에게 폭력의 언어로 말을 걸었다는 것이고, 그녀의 이런 전략은 성공했다. 센 여자, 몸으로 대항했던 여자, 돌을 던져 창문을 깨고, 우체국에 불을 지르고, 감옥에 갇혔던 그녀, 그녀들 덕분에, 나는 올해 조기대선에서 투표 수 있게 되었다.


타자에 대한 연민으로서의 동정심을 넘어, 자아와 타자의 동일성에 기반한 동감을 지나, 자아와 타자의 결합과 상호의존성을 흔쾌히 인정하는 공감에까지 이를 수 있을까.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상호감응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비체, 비체들은 즐겁게 소란스럽게 연대할 수 있을까. 남성은 여성과,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남자 또는 여자가 아니라 사람, 둘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인식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페미니즘 책을 읽고 난 후의 글은 항상 물음표로 끝난다.


그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

안티고네가 크레온의 목소리를 모방함으로써 크레온의 목소리가 가진 폭력성을 드러내 보여주었듯이, 메갈리안인들은 남성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모방함으로써 여성혐오를 일삼는 남성들이 어떤 폭력적 배제의 논리를 사용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사용하는 메갈리안들의 거울은 단순히 남성의 주체성을 확인시키는 착한 대상의 거울이 아니다. 그녀들의 미러링은 남성들만큼 여성들이 남성들을 모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성이자 남성인, 젠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체의 거울이다. (40쪽)

비체 되기의 전략들은 바로 그 비체성 때문에 혐오의 타깃이 된다. 기존의 인식틀에서 볼 수 없었던 여성 행위자의 등장은 기존의 젠더 경계를 교란한다는 점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정도와 방법의 차이는 있겠으나 이러한 전략들은 모두 손에 잡히는 착한 타자로서의 여성성을 벗어나기 위한 것들이다. 비체는 주체에 의해 인식될 수 있는 ‘상대적 타자’가 아니라, 주체의 인식틀을 벗어나는 ‘급진적 타자’이다. (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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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7-02-14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미니즘 서적 읽을때마다
많은 순간 물음표로 끝이나요.
정말 이게 가능해? 뭐 이런 질문들이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꿈꾸어야 그 목표의 반이라도
이룰수 있는거겠죠?
말하고. 싸우고. 연대하고.
그리고 꿈꾸고!

단발머리 2017-02-14 10:33   좋아요 0 | URL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가능해지는 사회를 기대해요.
아주 옛날일이죠. 출산 휴가 3개월이라 했더니,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야, 너희 회사 좋다~~ ㅠㅠ
출산 휴가 사용하면 책상 치운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들렸던 때가 있었죠.
더 좋아질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꿈꿔요.

cyrus 2017-02-14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합리한 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낙관적인 희망을 제시해주는 것보다 독자가 불합리한 세상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반성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페미니즘으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단발머리 2017-02-15 12:07   좋아요 0 | URL
저 역시 불합리한 세상에 의문을 제기하는 페미니즘의 목소리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희망을 말하고 싶네요. 낙관이 아니라 희망이요. 희망마저 기대할 수 없다면 암울한 현실에 더 울적해질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2-14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체 개념이 줄리아 크레스테바의 << 공포의... >> 아, 갑자기 까먹었네요....
하여튼 이 책에서 비체 개념을 처음 들었는데 꽤 흥미진진한 개념이었습니다.

단발머리 2017-02-15 12:32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 개념들은 사실 읽다가 길 헤맬때가 대부분인데 ‘비체‘ 개념은 그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내가 비체라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조금 했어요. 말씀하신 책은 검색해 보니 <공포의 권력>이네요. 전 처음 본 책인데 함 찾아봐야겠어요^^

AgalmA 2017-02-14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러링은 양날의 검 같은 성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의 폭력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이상을 보여줘야 정당성을 얻을 수 있죠. ‘김치녀‘에 ‘한남충‘으로 맞받아치는 건 한때의 전쟁일 뿐이죠. ‘일베랑 똑같다‘는 말은 반목과 문제점이 발견될 때 늘 발생하는 프레임이기도 하지만(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다는 말처럼),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폄하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며, 일반 다수를 설득할 정도까지는 안 되는 그들의 부족함과 한계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문제는 늘 대결 구도로 판이 짜여져 참 어려운 거 같아요.

단발머리 2017-02-15 12:40   좋아요 0 | URL
아갈마님 댓글을 제 페이퍼 뒤에 붙이고 싶습니다. ㅎㅎㅎ 아갈마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여아살해 및 유기처럼 출생부터 불리한 여성들이 사회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게 여전히 힘든 일이니까요. 대결을 넘어 공존과 화합의 자리로 나아가야 할텐데... 남성들 스스로가 그렇게 할지는... ㅠㅠ 저는 그러지 않는다,에 500원을 걸고 싶네요.

Nebula 2017-09-25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들이 왜 출생부터 불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상욱의 과학공부 - 철학하는 과학자, 시를 품은 물리학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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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양자역학을 전공하는 물리학자이면서 대중의 과학화와 과학의 대중화에 애쓰는 저술가이기도 하다.(추천의 글, 도서평론가 이권우) 과학관련 책들은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읽기가 어려운데, ‘과학도 교양이 될 수 있다는 유쾌한 증명에 도전한 책답게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과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정치, 권력, 신화와 공포를 벗어나고자 하는 과학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양자역학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진 대로 어려운 과학 지식도 쉽게 풀어 설명해주는 것이 이 책의 최고 강점이다.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언급은 상식은 물론 과학적 접근방식을 초월한 이해 불가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글쓴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과학 분야에서 나의 최대 관심사는 우주의 시작과 인간의 진화에 대한 것이다. 무신론적 진화론자의 입장에서 아직도 신의 존재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고리타분한 옛날 사람처럼 보일테지만, 우주의 시작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건 을 부정하다 못해 증오하기까지 하는 과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우주가 시작되는 순간에 대해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기체와 먼지의 거대한 덩어리가 자체 중력으로 급속히 붕괴하면서 점차 빠른 속도로 회전함에 따라, 혼돈과 같이 불규칙하던 구름이 점차 질서 정연한 얇은 원반형 구조로 변해 간다. 그 원반의 한가운데 부분은 짙은 진홍색으로 물들어 간다. (41)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초기에는 모든 것이 뒤범벅이고 혼돈에 빠진 것처럼 보이던 태양계가 차츰 질서 있고 단순하고 규칙적인 상태로 변해 간다. 그리고 각 행성의 궤도는 눈에 띄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간다. (47) 


왜 시작이 기체와 먼지인가 라는 질문보다 이 기체와 먼지가 어디에서 왔는가가 더 커다란 의문이다. 그 전에는, 아니 그 전에는, 이 기체와 먼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이 기체와 먼지에 대해, 즉 우주의 시작을 밝혀줄 그 기체와 먼지의 근원에 대해 과학은 대답하지 못 한다. 마찬가지다. 무질서가 질서로 변모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궁금한 건 특정한 힘이 작용하지 않고도 어떻게 이러한 무질서가 질서로 변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행성의 궤도가 눈에 띄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스스로’ 일어난 것인가의 질문에는 그 대답을 얻지 못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저자는 아주 소탈하게 말한다. “솔직히 나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빅뱅이론을 이야기하면 반드시 나오는 질문. 첫째,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물론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공간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조차도 없었다는 말이다. 솔직히 나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마 대부분의 물리학자들도 비슷할 거다. 둘째, 우주가 팽창한다면 어디로 팽창해가나요? 우주 바깥에 빈 공간이 있다는 말인가요? 이미 이야기했듯이 우주에는 바깥이 없다. 그냥 우주 전체가 팽창하는 거다. 풍선에 바람을 불면 풍선 표면이 점점 팽창한다. 풍선 표면에는 경계가 없다. 차를 몰고 여행을 떠나보라. 어디가 지구의 끝인가? 경계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모든 지점 사이의 거리가 늘어났을 뿐이다. 우주는 이런 식으로 팽창한다. (35)



<교육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다>라는 꼭지에서는 과학자의 글을 읽으면서, ‘행복교육혹은 행복한 교육아니면 그냥 행복하게 살기에 대해 생각해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학습이 어떻게 생명의 위대한 발명품인지에 대한 설명도 유익했다. 사람마다 그 정의가 다를 수 밖에 없는 행복. 그래서 내 아이라 하더라도, 내가 그 아이를 낳았다 하더라도 아이의 행복은 아이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과학자의 주장이 무척이나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내가 온종일 물리를 공부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동의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아이의 행복을 위해 교육한다면 이미 뭔가 잘못된 거다. 왜냐하면 그 행복이란 당신이 정의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행복이 무언인지는 아이가 직접 결정해야 한다. 동물들이 그러하듯, 결국 인간에게도 교육의 목적은 아이의 독립이다. 행복한 삶을 정의하고 그것을 찾는 것은 부모, 교사, 사회의 몫이 아니라 바로 아이 자신의 몫이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것이기 때문이다. (69)



<1990, 그 여학생>은 흥미로운 제목과는 달리 시간에 대해 설명하는데, 글자는 따라 읽어도 이해는 되지 않는, 그럼에도 계속 흥미로운 글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나름 즐거웠다.



등속운동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정지해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은 상대적인 거다. 내가 우주 공간에 있다고 해보자. 내가 보기에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친구 우주인이 있다. 그 친구 입장에서는 자신이 정지하고 내가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물리적으로 둘 다 옳다. 여기까지는 갈릴레오도 알고 있었다. , 이제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내가 보기에는 친구의 시계가 느리게 가고, 친구가 보기에는 내 시계가 느리게 간다. 누가 옳은가? 둘 다 옳다. 대개 이쯤에서 사람들이 미치기 시작한다. (84)



<우주의 침묵>에서는 아직까지 우주에서 다른 문명의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는데, 그것 역시 아주 흥미롭다.



첫째, 생명이나 문명이 있더라도 완전 고립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인간이 보낸 탐사선 가운데 가장 멀리 간 보이저 1호는 2012년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었다. 35년을 비행한 후였다. 이대로 10만 년(!)을 계속 더 진행해야 알파 센타우리에 도착한다. 그러면 인간은 비로소 우주에 존재하는 1,000,000,000,000,000,000,000,000 (0 세개가 8)개 별 가운데 가장 가까이 있는 하나를 탐사하는 것이다. 전파를 보낼 수도 있지만, 거리가 워낙 멀다 보니 엄청난 세기로 보내지 않으면 우주 잡음에 묻혀버린다. 우주는 너무 광활하여 인간의 과학기술 정도로는 고립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둘째, 문명이 있었으나 사라져버렸다. … 문자가 발명되고 나서 불과 5,000년 만에 우리는 자멸하기 충분한 과학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문명은 순식간에 일어나서 스스로 멸망하는 속성을 가진 걸까? (54)



아직 지구 안에도 인간이 모르는 생명체가 존재할지 모른다. 끊임없이 연구하게 하고 또한 놀라운 결과물을 보여주는 건 바로 인간일 수도 있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우주. 팽창하는 우주 속, 여기 구석 중의 한 쪽 구석. 여기에 우리가 산다. 우리 인간. 가끔은 미워하기도 하고, 또 가끔 사랑스럽기도 한 바로 내 옆의 인간 그리고 인간들. 우주의 아이이며, 별의 먼지이기도 한 이 인간, 이 인간들에게 이제 밥을 차려 주어야겠다.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는데도 시간이 느리게 간다. 상대성 이론은 초등학교 겨울방학에는 해당되지 않는가 보다.



주변에 무언가 물질이라 부를 만한 것을 발견한다면 그 자체로 기뻐해야 한다. 생명체는 지구에서만 발견되는 아주 특별한 물질이다. 내 주위에 생명체가 있다면 이것은 놀라워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그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나와 같은 종을 만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다른 인간을 사랑해야만 하는 우주론적 이유이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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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2-03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17-02-03 14:46   좋아요 1 | URL
좋은 책,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AgalmA 2017-02-0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질서에서 질서로 변모한다는 해석은 우리의 선(線)형적이고 인과적 관점입니다. 무질서와 질서가 동시에 출현하며 서로의 상태로 끊임없이 순환된다는 게 더 맞는 거 같아요^^
공간에 대한 걸 공부하다 보면 많은 걸 생각하게 되는데, 특히 시간에 대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 출현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를 대입해보게 되죠. 어떤 갈라짐, 그 과정 속에서는 무언가 반드시 나타나게 되죠. 순차를 보게 되고. 왜? 라는 물음은 종교도, 과학도, 철학도 여전히 답을 못 내놓고 있지만^^;

단발머리 2017-02-14 09:46   좋아요 0 | URL
제가 읽고 있는 책에서도 진화를 인간의 관점으로서만 보면 우연의 연속일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더라구요. 아갈마님 댓글 읽다가 그 책이 다시 생각나네요.

저는 빅뱅 이전에 시간도 없었다, 라는 대목이 좀 궁금해요. 아무것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다.
100년도 못 사는데.... 궁금하네요. ㅎㅎㅎ

푸른희망 2017-02-07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고 내가 정말 과학맹이었구나 하는 깨달음과 이렇게 잘 설명하는 쌤이계셨다면 ~했거든요
그저 좋다좋다 하기만 했는데 님이 깔끔하게 잘 써주셔서~~하 난 언제쯤 이렇게 리뷰를 써보려나싶네요~~^^

단발머리 2017-02-14 09:48   좋아요 0 | URL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저도 과학맹이예요. 길치인데다가 기계치이기도 하구요.
평생을 안 읽고 살았는데, 요즘엔 쉬운 책부터 한 권씩 읽어가고 있어요. ㅎㅎ
깔끔하다고 칭찬해주셔서 감사해요.
 
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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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가끔 챙겨서 보시는 드라마가 생기면, 화면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거, 다 실화래.” 드라마가 실화라는 게 드라마를 보는 적당한 이유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의 말은 똑같았다. “저거, 다 실화래.” 엄마에게 픽션이 사실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소설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엄마에게는 사실과 실화의 자리가 픽션과 소설의 자리보다 더 가까운 거다. 그냥 그게 전부다.


이 책이 소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소설이라 믿고 소설이 주는 감동에 빠지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고, 실제로 일어난 일을 말한다. 말 그대로 실화다.


폴 칼라니티 Paul Kalanithi.


1977년생. 스탠퍼드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과정을 이수하고 예일 의과 대학원에 진학해 의사의 길을 걸었다. 레지던트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 신경외과 학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책날개) 촉망받는 의사였던 그에게 찾아온 암. 투병생활과 복직 그리고 재발한 암. 이 책은 의사이자 환자로 살았던 그의 마지막 삶과 생각을 조명해준다.






최고참 레지던트가 되자 나는 거의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했고 성공과 실패의 기회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주어졌다. 실패하면 괴로웠고, 기술적인 탁월함이 곧 도덕적 요건이라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내 기술에 정말 많은 게 걸려 있거나, 불과 1~2 밀리미터 차이로 비극과 성공이 갈릴 때에는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133)



경각을 다투는 환자에 대한 처치를 담당했던 의사로서, 1~2 밀리리터의 차이로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위험하고 중요한 뇌수술의 책임자로서, 폴은 완벽한 의사가 되고자 한다. 기술적인 탁월함으로 확인 가능한 최대의 의학적 성과를 이끌어내려 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일하던 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환자복을 입고, 진료를 보던 의자가 아닌 환자용 의자에 앉아, 의사로서 환자에게 했던 말들을 이젠 그가 듣는다. 치료에 적합한 약을 고르고, 앞으로 자신의 치료 계획에 대해 담당의와 의논한다. 섣부른 희망을 뒤로 하고 꾸준히 치료를 받았던 폴의 병세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그는 복직한다. 레지던트 수련과정을 마치려 한다. 하지만, 레지던트로서 맡은 마지막 수술을 앞두고, 새로운 종양이 퍼져나가 암이 재발했음을 알게 된다. 마지막 수술을 준비하는 폴. 훌륭하게 수술을 마친 폴. 이제는 의사로서의 자신과 헤어져야 한다.



이번에 처음으로 함께 일한 수술실 간호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번 주말에 당직이신가요, 선생님?”

아니요.” (아마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오늘 잡혀 있는 수술은 더 없으세요?”

.”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어머, 정말 해피엔딩이군요! 일이 정말 끝난 거네요. 전 해피엔딩을 좋아해요. 선생님은요?”

그럼요. 저도 해피엔딩을 좋아하죠.” (211)



새롭게 시도한 화학요법을 통한 치료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다. 그렇게 그는 죽음에 더 가까워진다. 죽음이 다가오는 그 시간에 새로운 생명 그의 딸 케이디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게 한다. 아내와 딸, 가족들, 세속적인 성공. 죽음과 직면했던 환자들을 이해하고 도우려 했던 폴은 이제 자신을 찾아온 죽음에 대면해야 한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이 이제 코 앞으로 진격해 있다.



과학은 재현 가능성과 인위적인 객관성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물질과 에너지에 대해 이런저런 주장을 내세울 때는 탁월하지만, 고유하고 주관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실존적이고 본능적인 성질에 과학 지식을 적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과학은 경험적이고 재현 가능한 정보를 체계화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과학의 능력은 역설적으로 인생의 가장 중심적인 측면들(희망, 두려움, 사랑, 증오, 아름다움, 질투 명예, 나약함, 부단한 노력, 고통, 미덕)을 포착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202)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듯이, 살아있는 모든 유기체는 물리법칙에 복종해야 하며 슬프게도 그 법칙에는 엔트로피의 증가도 포함되어 있다. 질병은 분자의 탈선에서 비롯된다. 삶의 기본적인 요건은 신진대사이며, 그것이 멈추면 인간은 죽는다.(94) 누구나 자신이 죽음의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대부분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 5분 후에 자신의 삶조차 확신할 수 없지만 내일을 걱정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그리고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을 잊어버린다.


폴은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죽음에 의연하게 맞선다. 의사로서 자신의 병증과 예후, 뇌기능의 변화와 그 변화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있지만, 가끔은 실망하고 또 눈물 흘렸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용감하게 죽음에 맞선다. 순간을 누리고 가족들을 사랑하고 그리고는 환하게 웃는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로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저번 주의 몇일은 지루한 일상이 혹은 전통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내 시간을 지배했다. 동서는 친구다. 중학교 동창이고 교회친구다. 우리는 둘이 따로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붙어 서서 전을 부치고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그렇게 하루 종일 같이 있다가도, 우리집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야 헤어진다. 시댁에서의 시간들이 많이 힘들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나누는 동서와 함께 있을 수 있음에도 정해진 시간 속에서 정해진 일을 반복하는 건 지루한 일이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음식, 똑같은 대화. 까치설날 오후 3시쯤이던가. 달걀물을 기다리는 마지막 꼬치산적 4개를 쳐다보다가 폴이 생각났다. 힘겨운 암치료와 화학요법을 감당하기 어려워 몸이 축나는 와중에도 환하게 웃던 그가 생각났다. 착각이었나. 똑같은 꼬치산적이 순간 다르게 보였다. 내게는 그랬다.


이 책은 이전에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소개되기도 했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읽지 말 것을 권유했다. 읽다가 울게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명절을 앞둔 대한민국의 며느리라 나도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다음날 전거리 준비가 일차적으로 끝난터라 비교적 가벼운 마음에 몇 장을 넘겼는데물론이다. 나도 울었다. 딸에게 보내는 폴의 마지막 인사에, 폴의 아내이자 목격자로서 살았던 루시의 이야기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탄핵결정과 조기대선, 끝없이 오르는 물가와 더 힘들어지는 살림살이, 애매하게 괴롭히는 그 어떤 사람과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때문에 좋은 컨디션을 갖는다는 게 쉽지 않지만, 바쁜 걸음을 멈추고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아니, 어쩌면 이 책을 읽은 후에, 잠깐이나마 바쁜 걸음을 멈출 수 있게 될 수도






우리의 정체성은 뇌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신체 안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산행, 캠핑, 달리기를 좋아하고, 양팔을 쫙 벌려 꼭 껴안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던, 그리고 키득거리는 조카를 번쩍 들어주던 남자, 나는 더는 그 남자가 될 수 없었다. 기껏해야 그런 남자를 목표로 삼는 것이 최선이었다. (165쪽)

과학을 형이상학의 결정권자로 보면 세상에서 신뿐만 아니라 사랑, 증오, 의미도 함께 사라져버리고, 이런 의미가 모두 사라진 세상은 결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인생의 의미를 믿으면 반드시 신도 믿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과학이 신에 대해 어떤 근거도 제공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인생의 의미에 대한 근거도 마련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인생 자체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다시 말해, 실존적 주장은 아무런 무게도 지니지 못하게 되고 과학적 지식이 곧 모든 지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201쪽)

우리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결혼 생활을 지키는 비결은 한 사람이 불치병에 걸리는 거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역으로 말하자면, 불치병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며, 감사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254쪽, 에필로그: 루시 칼라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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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02-01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명절을 준비하느라 애쓴 며느리들에게 미안한 명절로, 그냥 집에서 우리식구끼리 보냈어요.^^
죽음이 눈앞에 있으면 어떨까요? 하루하루를 정리하며 후회하지 않는 삶이면 좋겠지만...ㅠ

단발머리 2017-02-01 13:29   좋아요 0 | URL
명절을 준비하는 며느리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도 나름 편하게 보내는 며느리라 부끄럽기는 하지만, 명절에 행복하고 편안한 주부들도 있어야지요~~ ㅎㅎㅎ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참 좋았는데, 갑자기 다가온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건 숙연해지는 일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도 용감한 모습의 폴과 그의 가족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icaru 2017-02-04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옮기신 부분들이 주옥 같아요! 명절날 소회가 이 감상문에 이렇게 잘 녹아들 수 있다니!!

단발머리 2017-02-04 18:02   좋아요 0 | URL
라고 칭찬해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자주 좀 오시어요, 제 방에~~~

icaru 2017-02-04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고 계시죠? 저는 이런 나날에는 이 실화 읽으면 안 되것어용... 얼마전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에 kbs스페셜로 해 주었다는 3부작스페셜이 있었는데, 최근에 다시 봤다가 아,,,ㅠㅠㅠㅠ... 앎이라는 병이었나 특히 3부 에디나와 함께한 4년이 좋아쑈요.. 지금 적고 있는 제목 어느하나 정확한게 없는 것 같으네요 아공 ㅎㅎ

단발머리 2017-02-04 18:09   좋아요 0 | URL
저는 뭐... 매일의 일상이 비슷하죠. 아이들 방학이라 최고 성수기를 맞았고요.
아들이 담주 개학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앎....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더니 정말 눈물 겨운 사연들이 많네요. 에디나와 함께한 4년,을 찾아서 보고 싶은데, 아.... 눈물이 마구 쏟아질 것 같네요. ㅠㅠ
 
혁명하는 여자들
조안나 러스 외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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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하는 여자들 Sisters of the Revolution』 


<늑대여자> 


『혁명하는 여자들』에는 여성 작가 15명의 페미니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1970년대에 젠더와 성역할, 가부장제에 주목한 2차 페미니즘 물결이 일었는데, 페미니즘 SF 소설의 황금기는 이 2차 페미니즘 물결과 함께 했다. (책날개)






두번째 단편 <늑대여자>는 수전 팰위크의 작품이다. 수전 팰위크는 미국의 작가 겸 편집자로 그녀의 소설은 판타지 예술을 위한 국제협회(IAFA)가 수여하는 윌리엄 L. 크로포드상과 미국도서관협회가 수여하는 알렉스상, 네바다 작가 명예의 전당이 수여하는 실버펜상등을 수상했다.



칠 대 일. 그게 비율이었다. 넌 조너선이 그걸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 당연하지.” 그가 말했다. “개하고 똑같잖아. 너의 일 년이 인간으로 치면 칠 년. 누구나 아는 얘기야. 하지만 그게 왜 문제가 되겠어, 자기.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는데?” (35)



<늑대여자>는 남편을 따라 고향을 떠난 여자의 이야기다. 눈부신 아름다움을 소유한 여자가 다른 여자들에게 미움 받는 이야기이고, 육체적, 성적 아름다움을 잃어갈 때 여자가 느끼는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제력이 없는 여자가 남편에게서 독립하려 할 때 느끼는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이며, 여자가 지적으로 성숙해질 때 남자들이 얼마나 싫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이 식어 버린 남자에게서 탈출하려는 여자의 이야기며, 떠나겠다고 말할 때 사랑했던 사람에게 협박당하는 여자의 이야기이고, 건강을 잃은 여자가 남자에게서 버림받는 이야기이다. <늑대여자>는 한 달에 3주를 인간으로, 한 주를 늑대로 살아야하는 늑대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넌 무리 짓는 짐승이었고, 위계를 갈망하는 짐승이었고, 그리고 너, 제시는 한 사람만의 개였다. 너의 그 사람은 조너선이었다. 넌 그를 숭배했다. 넌 그를 위해선 무슨 일이든 했다. (38)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을 때,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사람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 잘 하지 못했던 일을 도전하게 되고, 하기 싫은 일도 해보려 노력한다. 그 사람을 위해서다.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


늑대여자 제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숭배하는 남자를 위해 완벽한 여자가 되려 한다. 그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



넌 운전을 배웠고, 손님 접대하는 법을 배웠다. 넌 다리털을 밀고 눈썹을 뽑고 가혹한 화학약품으로 타고난 냄새를 가리는 법을 배웠고, 하이힐을 신고 걷는 법을 배웠다. 넌 화장품과 옷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법을 배웠고, 그 결과 타고난 미모보다도 한층 더 아름다워졌다. 넌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웠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긴 은발과 꿰뚫어보는 것 같은 연푸른 눈동자, 늘씬한 키에 날씬한 몸매. 네 피부는 매끈한 데다 얼굴에는 잡티 하나 없었고, 온몸의 근육은 가늘면서도 팽팽했다. 넌 훌륭한 요리사였고 대단한 섹스 상대였으며 완벽한 트로피 와이프였다. (45)



난 사람의 마음이 변할 수 없다거나, 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변할 수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인간의 본성이다. 다만, 사랑의 근간이 오직 외적인 아름다움에만 고정되어 있을 때의 위험을 말하는 것이다. 외면적인 아름다움이 사라졌을 때 사랑 또한 실종되어 버리는 그 허무함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늑대여자는 자신의 냄새를 감추고 신비롭고 아름다운 외면을 끊임없이 가꾼다. 하지만, 늑대여자 제시가 빠른 속도로 육체적 아름다움을 상실해가자, 그녀의 그 사람 조너선은 그녀를 멀리한다. 먼데를 쫓는 허망한 눈빛으로, 성의 없는 말투로 자신의 사랑이 식었음을 보인다.


그가 변했음을 알고 늑대여자 제시는 그를 떠나겠다고 말한다. 고향으로, 알프스에서 가장 가까운 숲 가장자리에 있는 마을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지만, 보내주지 않는다.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를 위해서.



어떻게 날 떠난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어? 내가 그간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상황은 계속 변해왔어.” 넌 그에게 말했다. 목이 따가웠다. “그 변화가 문제야. 조너선……”

네가 날 이렇게 상처 주려 하다니 믿을 수가 없어! 난 믿기지가 않……” (62)



이 단편의 끝은 너무 절망적이라 행복한 토요일 밤이 너무 괴로웠다. 잠이 오지 않아 난 계속 뒤척였다. 커피 탓이라고, 오후에 마신 카페라떼 때문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늑대여자, 제시.

그녀의 불행한 최후가 그녀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도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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