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블랙겟타님과 함께 읽는다. 약속하고 읽은 건 아닌데, 읽는 중에 겟타님의 ‘읽고 있어요’를 보고, 나 혼자 함께 읽는 것으로 정했다. 같이 읽는다, 겟타님이랑.
제목도 흥미롭고 표지도 특이해서 관심이 가던 책이었는데, ‘김영하의 북클럽’ 도서로 선정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전에도 잘 팔렸겠지만, 김영하가 픽했으니, 베스트셀러는 따놓은 당상이군. 베스트셀러에 대한 거부감이 작동하고. 그렇게 이 책을 패쓰하려고 했는데, 밀리의 서재에 딱! 하니 올라왔다. 바로, 다운로드. 바로, 읽기 시작.
인류 역사 초기 공존했던 다섯 종의 호모 중 하나였던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보다 더 큰 뇌를 소유하고, 우리보다 체력적으로 훨씬 더 우수한 종이 연달아 멸종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그 이유를 저자는 ‘다정함’과 ‘상상력’이라고 보았다. 여기에서의 다정함이란 ‘넌 정말 다정한 사람이야’의 그 ‘다정함’이라기 보다는 ‘협력적 의사소통’을 말한다. 역시 유발 하라리가 똑똑하군. 하라리도 『사피엔스』에서 우리 종이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로 ‘대규모 협력’과 ‘허구의 창조’를 들었다. 다 읽었구나. 이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 알겠어. 전자책이라 덮지 않아도 된다. 그냥 그대로 나오면 되는데, 혹시나 하고 핸드폰 화면을 넘기고. 나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침팬지, 보노보, 인간 비교가 아주 흥미롭다. 읽는 내내 나는 우리가 보노보보다 침팬지에 가깝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의 ‘보노보’를 확인하기는 했다.
암컷 침팬지는 친척 암컷에게만 도움을 주지만 암컷 보노보는 모든 암컷을 돕는다. 새로운 암컷이 무리에 들어오면 흥분하거나 호의를 보이며 반기는데, 서로 앞다투어 달려들어 인사하고 털을 다듬어주고 성기를 문질러주곤 한다. 이 원주민 암컷들이 그동안 알고 지낸 수컷들에 맞서서 새내기 암컷을 지켜줄 것이며, 자기네 아들들로부터도 지켜줄 것이다. (166쪽)
아이를 키워본 사람, 주의 깊게 관찰해 본 사람은 안다. 아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자란다. 신체적인 변화도 놀랍지만, 정서적인 변화는 훨씬 더 놀랍다. 목을 가누고, 허리를 곧추세워서 스스로 앉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마주 바라볼 수 있는 6개월 혹은 7개월 정도의 유아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말하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 이전에 교회에서 이런 아기를 만날 때마다, 아기 엄마와 이야기하는 나를 쳐다보는 호기심과 탐구의 눈빛을 볼 때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기도 했다. “얘, 공부시켜야 되겠네요. 다 알아듣네.”
원래 올리고 싶은 사진이 있기는 한데, 초상권 문제로 이 사진을 올려둔다. 다른 사진, 같은 느낌이다. 그 작은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얼마나 놀랍고 신기한 일이 펼쳐지는지 우리는 헤아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문단.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에서조차 제약받는 유아가 타인의 마음을 읽는 ‘고급 기술’을 가졌다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사람 아기는 생후 9개월에서 12개월 무렵에 겨우 걸음마를 뗀다. 이렇게 달리지도 못하는 시기에,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는데, 시작은 단순하지만 갈수록 복합적인 사고가 가능해진다.
4세가 되면 사람 아기가 모든 과제에서 다른 유인원 아기들을 능가했다. 물이 든 컵을 쏟지 않게 멀쩡히 내려놓을 줄도 모르고 때맞춰 화장실에도 갈 줄 모르는 그 아기가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읽을 줄 아는 것이다. (266쪽)
자기 가축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얼굴, 손가락 길이, 두개골 모양에 변화가 생겼다는 주장에 더해, 영장류 중에 우리만 유일하게 ‘하얀 공막’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공막의 존재로 인해 인간은 상대편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는 건데, 이를 통해 ‘협력적 의사소통’이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231쪽)
비인간화에 대한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심리학자 필립 고프의 주장에 따르면, 비인간화의 정확한 명칭은 유인원화인데,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유인원으로 부르면서 사람들의 심리에 도덕적 배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편견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유인원화’의 주요 대상은 흑인이었고, 19세기 영국과 미국에서는 아일랜드인, 제2차 대전 시기에는 일본인들이었다. 20세기에는 독일인, 중국인, 프로이센인, 유대인 모두가 유인원 취급을 당했다. 이런 유인원 유행은 점점 사라져 갔음에도 미국의 흑인들은 여전히 유인원으로 그려졌다. (358쪽) 그건 대통령도 피할 수 없는 일이어서, 오바마의 대선 운동 기간 중, 그리고 임기 내내, 원숭이 티셔츠와 원숭이 인형이 유행했다. 사람들은 이 원숭이 비유를 오바마의 다른 가족에게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타인에 대한 경멸과 적대감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도왔던 사람들에 대한 연구와 미국 내 인종 갈등의 약화에 도움이 되었던 정책들을 비교, 조사한다. 인종 간 접촉이 그 답이다. 더 정확히는 ‘친밀한 우정’이 타자에 대한 공포와 이유 없는 적개심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 결과 찾아낸 공통된 특징은 단 하나였다. 그들 모두가 전쟁 전에 유대인 이웃이나 친구 혹은 직장 동료와 친하게 지낸 경험이 있었다. 안제이는 새어머니가 유대인이었다. 직장을 이용해서 유대인 비혼여성 약 200명에게 서류를 위조해준 스테파니아 Stephania는 가장 친한 친구가 유대인이었다. 겨우 열네 살의 나이에 저항군에 참여한 에른스트 Ernst는 유년기의 소꿉친구들이 유대인들이었다. (454쪽)
자기 가축화self-domestication, 마음 이론, 절약성의 원리, 틀린 믿음 능력, 친화력 선택, 가툼바 학살, 불쾌한 골짜기, 인종 간 룸메이트 효과, 보복성 비인간화 Reciprocal Dehumanization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완독 전이지만, 제일 중요한 문장은 골라 두었다.
가장 다정한 사람이 승리했다.
이 능력은 또한 우리 존재의 정수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추론할 능력이 없다면 사랑도 그림책에서 오려낸 그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느끼는 마법이 없다면, 사랑이 다 무엇이겠는가? 마음이론은 두 사람이 무언가를 보고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환희의 순간이요, 상대방의 말을내가 끝맺어줄 때 느끼는 편안함, 아무 말 없이 손을 맞잡고 있는 순간의 평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행복하다고 느낄 때 행복은 더 달콤한 것이 된다. 죽음으로 떠나보낸 누군가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리라고 믿는다면 슬픔은 더 견딜 만한 것이 된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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