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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윌리엄스, 마르크스주의와 문학 ㅣ 컴북스 이론총서
박만준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6년 4월
평점 :
『레이먼드 윌리엄스, 마르크스주의와 문학』을 읽었다.
'문화'에 대한 여러 정의 중, 근대적 사고와 실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에서 시작해, 언어, 문학, 이데올로기, 헤게모니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어디까지나 저자 박만준씨가 이해한 '윌리엄스 론'이라는 점을 기억하면서 읽는다.
노동자계급 출신의 윌리엄스는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수련의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교수의 자리에 올라서도 한결같이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았다. 당시 영국은 물질문명의 발달과 소비주의가 확산되는 분위기였는데, 윌리엄스는 자신의 지식과 그를 바탕으로 한 해석이 사회 현실에 대한 '보고'가 될 수 있도록 좌파적 입장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윌리엄스는 의미를 생산하거나 의미 생산의 근거가 되는 것을 그 주된 기능으로 하는 텍스트나 문화적 행위를 문화라고 정의했는데, 이는 구조주의자들과 후기구조자들이 말하는 "의미를 나타내는 실천 행위(sygnifying practive)"와 동일하다(7쪽)
이를 문학이라는 비교적 구체적인 대상에 적용할 때,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발간한 『문학비평용어사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윌리엄스의 문화유물론적 관점에서 문학은 해석되고 감상되어야 할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여러 관계와 조건들을, 가치와 의미들을 구성하고 만들어 주는 하나의 행위로 존재하게 된다."
고정되고 확정된 형태로서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우리 삶의 관계와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행위로서의 문학. 문학 작품이 있고, 그 작품을 읽는, 감상하는, 작품 밖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작품을 읽을 때, 읽어낼 때, 그 작품을 읽는 과정, 그 작품을 읽어내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가치와 의미들을 구성하고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읽기가 연대라고 믿어요."라는 정희진쌤의 말씀이 이런 의미라고 나는 이해한다.
윌리엄스의 주요한 주장 중 하나인 헤게모니에 대한 이론은 그람시의 '헤게모니' 정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헤게모니는 단순히 위로부터 강요되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에서 이루어진 타협의 결과고 저항과 합병의 흔적을 남기는 과정이다. 한 마디로 헤게모니는 '사회의 전 과정'으로서의 문화며, 사람들은 이러한 문화를 통해 그들의 삶 전체를 정의하고 규정한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의미와 가치체계는 그 어떤 것이든 헤게모니를 통해 특정 계급의 이해를 표현하거나 투영하게 마련이다. (54쪽)
푸코의 권력에 대한 설명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단순히 힘으로 강요되고, 위에서 아래로 강제되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급과 피지배계급 간의 타협과 저항, 합병, 그리고 일련의 협의의 과정을 통해 헤게모니가 작동한다는 주장이다. 그에 따른 결과는 무엇일까? 실제 그 계급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지배를 정상적 현실 혹은 상식으로 받아들이도록(52쪽) 하는데, 그것이 바로 헤게모니에 의한 지배를 가리킨다.
사실과 픽션,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이원화는 부르주아적 문학 이론이 글쓰기의 형식을 통제하고 특수화해 왔다는 증거이자 이론적·역사적 단서인 것이다.(80쪽)
사실과 픽션, 객관적인 것의 주관적인 것의 이원화, 이러한 부르주아적 글쓰기 행태에 대항하는 새로운 글쓰기 형식은 페미니즘 글쓰기에서 유독 도드라진다. 마리 루티의 책에서 정확한 문장과 표현을 찾아내려 기억을 더듬어 루티의 책 두 권을 뒤져 보았으나, 아쉽게도 찾지 못했다. 읽고 있는 책 『재생산 유토피아』는 이원화 글쓰기의 반대 예가 될 수 있겠다. 체외수정에서부터 시작해 '인공 자궁'의 완벽한 실현이 다가오고 있는 즈음에, 지금까지 '부분 인공 자궁'의 역사를 살펴보고, 기술 발전과 나란히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 쓴 책인데, 임신하고 있는 저자의 상태와 맞물리면서 '태아와 산모의 상호작용', 더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이론과 실제의 이상적 결합, 객관성과 주관성의 치열한 경합을 다룬 글쓰기의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도서관에 없는 책이라 구입해서 읽었다. 아주 작고 얇은 책이라 몇 시간 만에 읽었는데, 내용 자체가 흥미로워 재미있게 읽었다. 스물셋에 읽었던 윌리엄스와 그의 이론, 특히 토대와 상부구조와 관련해 마르크스를 인용한 부분이 아직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나는 아직 어리고, 아직 철들지 않았으며, 생각보다 많이 성장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나를 빼고, 이 책만 두고 이야기할 때, 좋은 책이었고, 좋은 읽기의 시간이었음은 확실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언어는 물질적이며, 사회적 관계로서 표현되는 물질적 생산의 인간적 양식은 처음부터 언어라는 실천적 의식을 필연적 요소로 내포하고 있다. 세계와 세계를 이야기하는 언어를 분리하거나 실재와 의식을 분리해 버리면 언어의 물질성은 단지 물리적인 것으로 파악될 뿐 결코 물질적인 행위로 파악될 수 없다. - P16
윌리엄스에 의하면, 공통 문화는 아무도 상속할 수 없으며 인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야만 한다. 공통 문화의 토대는 평등한 사회이며, 윌리엄스가 성취하려 한 유일한 평등은 존재의 평등이다. - P24
한마디로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문학과 전체적인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를 화해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문학 혹은 창조적 문학 생산과 현실 사회에 대한 치밀한 분석은 불가피하다. "우리의 사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 P25
각각의 생산양식은 생필품을 획득하는 방식이 다르고, 노동자와 생산양식을 통제하는 자들 간의 관계가 다르며, 문화제도를 포함한 특수한 제도가 다르다. 한마디로 물질적인 생산양식이 전반적으로 삶의 과정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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