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이육사의 시 '광야'의 일부다. 열린 하늘아래 인간이 터를 잡고 살아온 시간이 겹에 겹으로 쌓였것만 기다리는 초인 오지 않았다. 하늘이 스스로를 열어 인간과 빛을 나눈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이육사가 초인을 목놓아 부른지도 칠십년이 지났다. 초인은 너무도 멀리 있어 목놓아 부르는 소리만으로도 열린 하늘 그 틈을 메우고도 남는다. 이제는 차라리 하늘 스스로가 열어두었던 틈을 닫아 빛을 거둬가버리기를 빌어야 할까? 

2016년 개천절의 하루가 참으로 더디게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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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달았다.
불을 켜서 어둠을 밝힌다. 길을 나섰지만 여전히 가늠할수조차 없는 아득함에 멀기만 하다. 길을 나선 이들의 걸음걸이를 밝히고자 했던 등불은 제 사명을 잃고 제 목숨을 겨우 이어가고 있다.

기원전 2333년에 이미 하늘이 열렸다지만 기원후 다시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스스로 밝아 어둠 속에 묻히지 않아야할 마음자리는 여전히 무명無明에 갇혀있다.

개천절開天節의 날이 밝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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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박하'
연보라색 자잘한 꽃들이 앙증맞게 달렸다. 모두 무엇인가를 향해 주목하고 있다. 빼꼼히 입을 내밀고 기다림에 지친 심사를 드러내는 것일까?


숲에서 자주 눈맞춤하지만 휴대폰 카메라로 담기에 늘 실패했다.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자잘한 꽃들에게 촛점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 현장에서 눈맞춤으로 끝내기 아쉬운 마음을 알았는지 우연의 산물이다.


'산박하'는 산지나 들의 햇볕이 잘 드는 곳의 토양이 비옥한 곳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가지가 많으며 사각형이고 능선에 흰털이 있다. 잎은 마주나고 삼각형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6~8월에 하늘색 꽃이 줄기 아래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핀다. 박하의 한 종류이며, 박하가 주로 들에 자라는 반면 산에 자라서 산박하라고 한다. 이름과는 달리 향기가 없다.


깻잎나물, 깻잎오리방풀, 애잎나울이라고도 부르는 산박하의 꽃말은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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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지도 않나 보다. 밤이 깊어갈수록 무게를 더해가는 비다. 처마를 두드리는 빗소리는 귓가를 또렷하게 맴돌고 갓내린 커피향에 책장을 넘기는 손은 더디기만 하다.

연암의 '취답운종교기' 문장 속 벗들은 3경이 지났지만 밤 깊은 줄도 모르고 운종가를 지나 광통교에서 노닐다가 수표교 위에서 멈추고 밝아오는 새벽을 맞는다. 

깊은 밤 잠들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이야 옛사람과 비슷하다지만 어찌 그 속내까지 닮을수 있으랴. 밤은 깊은데 잠은 달아나 버린 까닭이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때문만은 아니다. 문장 속 옛사람의 벗을 대하는 애틋한 마음이 마냥 부러운 때문이다.

뜰의 디딤돌 위에 머무는 젖은 불빛을 바라보며 애꿎은 가을비만 탓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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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十月의 첫날이다.
十月로 쓰고도 시월時越로 이해하고자 한다. 여름과 겨울, 뜨겁고 차가운 사이의 시간이지만 오히려 그로인해 더 민감해지는 마음 깃에 그 시간을 초월해버리고 싶은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다.

더없이 맑고 한없이 깊으면서도 무엇보다 가벼운 시월의 시간과 마주한다. 

시월時越에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나와 다른 나와 같은 관계, 사이와 틈에 주목한다. 그 안에서 무엇을 만나 어떤 향기로 남을지는 지금 이 마음으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十月로 쓰고도 시월時越로 이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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