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더 짙은 안개로 하루를 연다. 안개 짙어지는건 가을이 여물어가는 것을 알리려는 것보다는 사람들 사이에 온기가 필요한 때를 대비하라는 의미다.

계절의 마음씀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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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나팔꽃'
해를 향하여 좁은 속내를 기꺼이 드러낸다. 더이상 감출 것도 없다는 뜻이겠지만 지극한 마음의 반영이리라. 그렇더라도 속내를 드러내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듯이 연보라색의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애기나팔꽃보다야 크지만 보통의 나팔꽃보다는 작다. 또한 나팔꽃의 가녀린 느낌보다는 훨씬 강한 이미지라 굳건하게도 보인다. 작아서 더 단아한 느낌으로 눈맞춤 한다.


'별나팔꽃'은 열대 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로 우리나라 남부지방과 제주도의 길가나 빈터에서 자라는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다.


꽃은 7~9월에 줄기의 잎겨드랑이에서 분홍색 또는 붉은색으로 핀다. 꽃부리는 깔때기 모양으로 가운데 색이 보다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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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비켜가는 달이다.
몹쓸 가을비라 타박했더니 맑고 푸른 가을밤을 선물처럼 내어놓아 달이 곱게도 보인다.

짧지 않을 가을밤이 조금은 더 길어진다 해도 그 무엇을 탓하진 않으리라.

모월당慕月堂 깊숙히 달빛이 들겠다.
만월은 버거워 약간 비켜난 달과 눈맞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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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꼬리'
하얀 꽃뭉치가 눈부시게 빛난다. 앙증맞도록 자잘한 꽃이 모여 피어 그 존재를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겹으로 쌓인 꽃잎 속에서 긴 꽃술을 살그머니 내밀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깊어가는 가을의 갈색 풀숲에서 꼬리를 닮은 유독 하얀색의 꽃뭉치가 손짓한다. 계절을 건너 한참이나 늦게 피었지만 그 눈부심은 오롯이 빛난다. 순백의 묘한 색감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첫 눈맞춤이라 한참을 머물렀다.


'범꼬리'는 깊은 산의 풀밭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잎은 어긋나고 위로 갈수록 점점 작아진다. 잎자루는 짧거나 없다.


꽃은 6~7월에 연한 분홍색 또는 백색으로 피는데 꽃줄기 끝에서 원기둥 모양의 꽃이삭이 발달하여 작은 꽃들이 조밀하게 무수히 달려 꼬리모양의 꽃차례를 이룬다.


범꼬리라는 이름은 꽃대가 쭉 올라온 것이 마치 호랑이 꼬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범꼬리 종류는 상당히 많다. 한라산에는 가늘고 키 작은 가는범꼬리와 눈범꼬리가 자라고 있고, 깊은 숲에는 잎의 뒷면에 흰 털이 많아 은백색이 되는 흰범꼬리가 있다. 또 백두산 등 북부지방에만 자라는 씨범꼬리와 호범꼬리 등도 아주 귀한 범꼬리들이라고 한다.


꽃대를 쑤욱 뻗어올려 바람따라 흔들리는 모양대로 '키다리'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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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을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서권기書卷氣가 배 속에 가득 차서 넘쳐나와야 시가 되고, 문자향文字香이 손가락에 들어가서 펼쳐 나와야 그림이 된다.

그런데 요즈음 젊은이들은 통감절요通鑑節要 반 권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함부로 칠언율시를 짓고, 해서楷書 한 줄도 쓸 수 없으면서, 함부로 난과 대를 그린다. 그러면서 스스로 고아한 사람의 깊은 운치라 여긴다. 일곱 글자에 운자를 달기만 하면 시라 말할 수 있는가? 먹물 종횡으로 갈기기만 하면 그림이라 말할 수 있는가?

또한 우스운 일이 있다. 두 눈동자 반짝반짝하여 밤에 추호秋毫같이 작은 것을 구별해 낼 수 있으면서 항상 안경을 낀채, 종일 배나 쓰다듬으며 앉아서 한 가지 일도 하지 않고 한 가지 직업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일체의 일에 대해 '서유기' '수호전' 등의 책을 인용하여 함부로 재단하며 스스로 옛 것에 박식하다고 자랑을 한다. 내 일찍이 이런 것을 비웃었다.

이 말을 내뱉자니 다른 사람을 거스르겠고, 내가 머금고 있자니 나를 거스르게 된다. 차라리 다른 사람을 거스를지라도 끝내 이 말을 내뱉는다. 모름지기 각기 노력하여 이 병통을 면하면 다행이겠다.

*조선후기 매화화가로 유명했던 우봉又峯 조희룡趙熙龍(1789~1866)의 척독 중 하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양은 비슷하나 보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여 자신이 처한 조건이나 환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우쭐한 마음가짐으로 사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이름값은 자신의 성찰에서 근거한 책임감일 것이다.

공인, 전문가,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다양한 활동이 많은 이들에게 폭력의 다른 이름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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