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12월 3일에 쓴 글입니다.

지금 읽어보니 <정치체에 대한 권리>의 리뷰 글을 쓰려다, 중간에 그만 둔 글인 것 같습니다. 나름의 문제 제기 비슷한 것이라 옮겨 둡니다.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입니다.

 

 

 

  가끔, 내 나이가 많은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십 대 때는 ‘나이 서른에 우린 무얼 하고 있을까?’를 부르고, 삼십 대 때는 어서 ‘불혹’의 안정이 찾아오길 바랐지만, 오십에도 ‘지천명’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스무 살 무렵에 나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다. 왜 그런 발칙한 생각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 무렵 어떤 책을 읽고 내가 느꼈던 기쁨의 감정은 아직도 내 몸 속에 남아 있다. 아, 이 나이에도 배울 것이 있고, 이렇게 기쁠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은 참으로 강렬했다. 그 나이에 아마 나는 죽고 싶었고, 세상에서 더 배울 것도, 기쁨을 느낄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 싶다. 그 한 권의 책 때문에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겠지만, 그것 때문에 나는 지금도 책을 읽고 있으며, 기쁨도 그리고 간혹 행복도 느낄 수 있지 않나 싶다. 평균 수명 구십 운운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때까지 살아야 할 일이 암담하지만, 도서관의 서가 구석구석을 뒤지며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하면, 뭔가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구십 수명을 고마워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끼어들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오래 살아남고 싶지는 않다.

 

  대학교 때, 지금의 ‘도를 아십니까?’처럼, 혼자 캠퍼스를 걷고 있으면 득달같이 달려와 따라 붙는 선교 클럽이 있었는데, 거기서 주창하는 것이 ‘영생’ 이었다. 나는 종교 자체 보다 그 영생이라는 말에 질겁해서 종종걸음으로 내빼곤 했는데, 영생이라니.. 영원히 죽지 못하는 고통 보다 더한 고통이 있을 수 있을까, 그 때도 그리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의학과 뇌 과학이 결합해서 언젠가는 인간이 죽지 않고, 장기들을 갈아 끼우며 영원히 살게 되는 미래가 올지도 모르는데, 그 때 인간들은 진짜 행복할까, 나는 그런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일흔 정도까지만, 맑은 정신을 가지고 살다 죽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그다지 명료하진 않지만 읽고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쓸 수 있는 정신만은 놓지 않고 살다 가고 싶다. 인간의 존엄성 운운하며 산소 호흡기를 수년씩 끼워 두는 행동이 나는 전혀 존엄한 인간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족들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산소 호흡기를 뗄 수 없다는 종합병원을 보면, 차라리 돈의 존엄성이라고 말하라고 하고 싶다. 정작 멀쩡하게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돈이 없다고 받아주지 않는 병원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을 말할 수 있다는 건지, 종교 계열의 병원들이 존엄사를 두고 벌이는 논쟁을 보면 그 위선을 스스로 어떻게 합리화하는지가 궁금하다.

 

  지금 내 나이는 많지도 적지도 않다. 살아갈수록 새롭게 배우는 것이 많은데, 잠깐 넋을 놓으면 또 세상만사 모두 그렇고 그렇지 하는 상태로 돌아가고 마니, 어떻게 해서든 넋을 붙들고 사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공자를 전공하는 지인에게 不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도 다 잊어버리고 내가 했던 생각만 남아있다. 마흔은 의심이 없거나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아니라, 세상일이 이제 와서 의심스럽거나 세상일에 이제와 흔들릴까봐 덜컥 겁이 나서, 똥고집이라도 부리며 그 두려움을 감추어야 하는 나이가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변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던가, 의심이 없다는 것은 질문이 없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꼰대가 된다는 것은 그렇게 불안을 감추며 굳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으니 슬프다. 그렇다고 어떻게 나이를 먹지 않고 또 기성세대가 되지 않을 수가 있을 것인가. 누가 뭐래도 이십대는 이십대고 사십대는 사십대일 수밖에 없다. 그걸 받아들인 후에야 비로소 소통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들어 곰곰이 생각하는 것들 중에 ‘국가’가 있다. 말이 곰곰이지 가끔 어떤 계기로 그것들을 떠올리면 짧은 생각을 굴리다가, 눈에 띄는 책이 있으면 빌려다 읽는다는 뜻이다.

  예전부터 내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했던 건 환율이다. 똑 같은 물건이 어떻게 국경만 넘으면 갑자기 비싸지기도 하고, 또 턱없이 싸지기도 하는지 참 신기했다. 세계 여행기들이 넘쳐나면서 우리나라 돈으로 천원도 안 되는 돈을 가지고 하루 종일 먹고 잘 수 있는 가난한 나라 이야기를 읽노라면 왠지 불편했다. 그건 거꾸로 말하면 그 나라 사람들이 한 달을 일해서 모은 돈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하루도 살기 어렵다는 말과 똑 같은 것이다. 일년 내내 선배들에게 빈대 붙어 아낀 점심값까지 탈탈 털어서 유럽에 가서 홀라당 날리고 오는 후배 동료들이 얄밉기까지 했다. 똑 같이 일 년을 일해서 모은 돈이 왜 어떤 나라에 가면 일 년 밥값이 되고도 남는데, 다른 나라에 가면 열흘 밥값도 안 되는지, 이런 것이 부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씩 했다.

  재밌는 것 중에는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들이 있다. 바다에 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헤엄쳐 다니던 고등어가 우리나라 쪽에서 잡히든, 잠깐 놀다가 중국 쪽으로 가서 잡히든 그 고등어가 그 고등어 일텐데도, 마트에 떡하니 팻말을 달고 있으면 중국산이냐 국산이냐에 따라 가격이 화악 달라진다. 중국 어선이 우리나라 해역을 침범해서 싹쓸이 해 간다는 뉴스도 심심치 않은데 그러면 그 배들이 잡아간 갈치는 국산 갈치일까, 중국산 갈치일까? 아, 별 것이 다 신기하다고 하실 지도 모르겠다. 가격이라는 것이 원래 이것저것 가져다 붙이는 것들로 정해지는 거지, 그 물건 자체의 고유한 가치(그런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와는 암 상관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상식! 하며 역증을 내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그것이 참으로 이상하고 요상한 것을.

 

  이제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음식점에 가면 차라리 조선족 아줌마들이 없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아줌마들이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아줌마들과 똑 같은 일을 하고도 더 적은 급여를 받는다는 사실에는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는다. 그 아줌마들은 심지어는 우리나라 말까지도 완벽하게 하는데 말이다, 물론 약간의 북한식 억양이 섞여 있긴 하지만. 만약 경상도 억양이나 전라도 억양이 있다고 급여를 차별했다면 ‘나꼼수’가 나서야 할 일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것 때문에 들어 올 수 있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가 하기 싫어하는 힘든 일들에 우리나라 노동력 보다 더 싸게 투입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체류가 가능한 이들이다. 아마 예전에 독일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랬을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래서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것일까? 그 차별은 외국인 노동자의 태생적 조건이므로 적법하고 정당한 것인가? 고용주는 우리나라 노동자이거나 외국인 노동자이거나 관계없이 똑 같은 노동의 산물을 얻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는 주민등록증의 유무에 따라 그의 노동의 가치를 차별받는 것을 마땅하게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그래서 국가란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는 것으로 안도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이것을 마땅한 것으로 받아들이자마자 우리는 새로운 딜레마에 놓인다. 그렇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도 용인해야 하는 것인가? 국민임을 증명하는 주민등록증처럼 정규 사원임을 입증하는 사원증을 가진 노동자만이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군말 없이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부당하다면 왜 외국인 노동자의 차별은 정당한 것인가? 역시 국가인가? 어째서 국가란 틀에 놓이면 이 모든 불합리가 완벽하게 합리적인 것으로 전도되고 마는 것일까?

 

국가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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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청년 논객 한윤형의 잉여 탐구생활
한윤형 지음 / 어크로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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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검색창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늘 ‘대출 중’ 이었다. 반납예정일을 기다리며 한 달 반가량을 노렸지만 어느 틈엔가 이 책은 또 대출되어 버렸다. 지쳐서, 사야지 마음을 먹었는데, 그러자 또 요놈의 책이 도서관 서가에 떡하니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청춘이 예전에 달아나 버려서 그랬는지,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참 건성으로 보았다. 검색을 하기 위해 되풀이 책 제목을 두드리면서도,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중얼거리는, 청춘의 이 막막한 ‘우울함’에 한 번도 마음이 가닿지 않았다. 딱 386세대인 나는 이 우울한 88만원 세대와 한 번도 공감각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내가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그렇게 읽으려 했던 것은 우선 저자 한윤형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랄 수 있다. 이모팬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지만, 나는 그의 트윗을 팔로우하고, 그가 참여하는 윤여준의 팟캐스트를 듣고, 미디어스에 올라오는 그의 기사를 웬만하면 챙겨보는 팔로워, 말하자면 일종의 추종자이다. 저자 한윤형에 대해서는 안티조선운동사의 전설적인 소년논객 운운하는 소문들이 따라다녔고, 사실 나는 그의 어떤 아이디를 기억하기도 하지만, 최근에 일어났던 진중권의 블락사태 때문에 그를 주목하게 되었고, 트윗에 올라오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게 된 것이다. 그래봤자 사실은 책 한권 선뜻 사기보다는 빌려보려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덤덤한 추종자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이 책의 1부는 이런 추종자들의 호기심에 딱 들어맞는 글이다. 똘똘한 소년이 어떻게 자라 이 암울한 시대의 우울한 청춘이 되었는지, 그 과정의 어떤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평범하달 수는 없지만, 이 개별적 청년의 삶은 그가 겪어 온 팍팍한 시대의 단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몇 주 전에 가입한 주부독서회의 도서목록은 참 다채롭다. 7월 뿐 아니라 10월까지의 일정이 나와 있는데, 이중섭부터 네루다, 화폐전쟁까지 종횡무진이다. 그 중에<88만원 세대>도 있다. 나는 갓 들어 간 신참인 주제에 겁 없이 이의를 제기했다. <88만원 세대>가 절판 되었으니 책을 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저자들이 각기 다른 이유로 효용이 다 했다고 선언한 책을 굳이 지금 읽을 필요가 있을까라고 했다가, 책을 살 수 있다는 회장님의 한 마디에 GG했다. 사실 읽어서 나쁠 책도 아닐뿐더러 훌륭한 책이다. 괜히 아는 척 한 것인데, 거기엔 꼬인 마음이 있었다.

  공저자 중 한 명인 우석훈은 자신이 의도한 변화가 20대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절판을 선언했다. 우석훈은 <88만원 세대>를 읽은 20대가 짱돌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치기 바랐지만, 오히려 이 책을  핑계 삼아 행동하지 않는다고 분노했다. 학생시절, 몇몇 아이들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고, 너희들은 수업을 들을 자격도 없다며 삐져서 문을 밀치고 나가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라 소리치던 일방적 권위주의의 변형이다.  이에 대해 공저자 박권일은 절판에 대해 동의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우석훈의 주장은 책에 대한 과대평가이며, 책의 한계는 독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자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88만원 세대>는 2007년에 출판되었다. 우석훈의 절판 선언은 2012년에 있었으니, 우석훈은 고작 5년 만에 자신의 책에 대한 실천적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분기를 폭발한 것이다. 어디서 그런 자만심이 나오는지 알 수 없다. 책 한권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야심을 품을 수는 있지만, 책 한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고 성깔을 부리는 것은 광태에 가깝다. 그것도 누구보다 청년세대를 잘 이해하는 것처럼 책을 썼던 저자가 말이다. 딱 386 세대인 저자 우석훈은 386세대와 88만원세대를 갈라놓으며, 88만원세대의 편에 서서 386세대를 비판했지만, 사실 우석훈의 태도는 딱, 그가 비판한 386세대의 그것과 같아 보인다. 이 개새끼들! 너희에겐 이 책이 과분해!! (물론 오해할 사람은 없겠지만, 우석훈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아니라, 그 의미가 이렇게 읽힌다는 것이다. 세상이 하 흉흉하니 별 사족을 붙여야 한다.)

  내가 애먼 독서회의 목록을 두고 대들었던 사연은 대강 이러하다. 그래서 나는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기다렸다. 내가 아는 88만원세대의 대표 논객이 이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이 궁금했던 것이다. 더욱이 이 책의 2부와 3부는 직접적으로 <88만원 세대>를 거론하고 있다. 나는 <88만원 세대>가 독서회에서 토의될 때, 반드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함께 논의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이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해도, 혼자라도 꼭 이 책에 대해 떠들어 볼 심산이다. <88만원세대>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세대론을 도입했다면,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88만원세대>에 의해 ‘대상화된’ 그 88만원세대의 <88만원세대>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표현은 ‘올라간 부모 세대, 내려가는 청춘 세대 p132’ 이다. 가난하고 못 배우고 고생했지만 부모 세대는 “세상 많이 좋아졌다” 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세대인 반면, 청춘 세대는 자신이 결코 부모님이 받았던 봉급만큼의 돈을 벌수도 없고, 부모님 밑에서 누렸던 생활의 질을 스스로는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세대이다. ‘내려가는 사회’의 ‘내려가는 청춘’ 이다. 부모 세대는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 믿었고 실존했다면’, 자식 세대는 ‘그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이미 알고’, 그 루저 의식을 내면화한 세대이다.

  ‘부모로부터 많은 투자를 받았으나 그 투자를 회수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20대는 부채감에 시달리며p285’  침묵한다. 그리고 보수로부터도 진보로부터도 공격당한다. ‘20대 개새끼론’과 ‘20대 책임론’이 그것이다.  20대의 부모 세대인 50대 이상은 “배가 처부른 젊은이들이 눈높이를 높여 취직을 안 해서 외국인 노동자는 늘어나고 그에 따라 범죄율도 상승하고 청년 실업률이 늘어나 경제는 활력을 잃고 있다p283"며 ‘20대 책임론’을 제기한다. 이 시대 한국의 경제 문제가 20대의 처부른 배 때문이라는 비난이다. ‘20대 개새끼’의 첫 발화자는 나꼼수의 김용민이라고 한다. 그러니 ‘20대 책임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뻔하다. 그것은 모든 것이 ‘가카때문이다’와 기본적 태도에서 동일할 것이다. 이명박 이후 수구집권의 모든 책임을 20대 개새끼에 전가하는 태도다.

  「한쪽은 20대 책임론으로 경제의 문제를 전가하고, 다른 한쪽은 88만원 세대론으로 한국 정치의 문제를 전가하니 담론의 세계에서 20대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이 말들이 올바르다면 20대들은 한국 사회문제의 유일한 원인이며, 20대들만 개조하면 한국 사회는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 것 같다. 20대를 비판하던 사람들에게 정말로 그렇게 믿는지 묻고 싶다. 현실로 돌아오면 20대들은 한나라당 지지자인 아버지와 민주당 지지자인 삼촌들에게 “언제 취직하냐”는 압박마저 받고 있을 게다.p283」

 

  우석훈이 ‘20대 개새끼!’(라는 뜻을 표출했다는 것이지, 이렇게 말을 했다는 것은 아니다;;)  해버린 지금에야 우스워져버렸지만, 사실 <88만원세대>는 20대에 한국사회의 모든 책임을 묻는 <20대 책임론>과 <20대 개새끼론>에 대한 일종의 ‘방어 담론’ 이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복잡한 사회문제를 특정 세대의 책임으로 단순하게 전가하는 구조’를 갖춘 세대론이 아니었던가. 이에 우석훈과 박권일은 이 세대 담론에 맞서 새로운 변혁의 주체를 호출하는 세대론을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대론의 한계에 대한 비판은 타당하지만, 그 책임을 《88만원 세대》에 전가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p176」

  <88만원 세대> 출간 5년, 계급이나 계층의 문제를 세대의 문제로 단순 치환해 버린 ‘세대 담론’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있어왔지만, <88만원 세대>론은 말하자면 천박한 세대론으로부터 20대를 옹호하고 주체화시키기 위한 고급 세대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대론은 세대론이다. 저자들 또한 이런 문제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박권일은 저자들의 작업이 “불안정 노동의 전면화라는 다분히 계급적인 문제에 세대론의 ‘당의’를 입힌다는 것”이었으나 “세대론에 집중하다 보니 세대 내부의 양극화, 20대와 50대에서 쌍봉형으로 나타나는 불안정 노동과 같은 주요 문제들이, 언급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 되었다고 아쉬워한다. (p176)」

  당의糖衣, 그 사탕발림이 얼마나 달콤했던지, <88만원 세대>는 그 덧입힌 옷이 내용의 전부인 양 인식되고 이용되어 왔다. 물론 이 당의 코팅은 이미 천유로 세대라는 유행어를 가진 유럽이나 일본에서 습득해온 선진국형 기술이다. 이 코팅 기술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던지 저자 우석훈마저 20대 개새끼해버리고 말았으니(뜻이 그렇다고 ;;), 이 책에 대한 오해를 단순히 독자의 몫으로만 돌리기는 힘들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착한 세대론이든 나쁜 세대론이든, 그것이 사회 구조의 복잡한 문제에 대한 원인을 하나의 뚜렷한 적의 형상을 통해 은폐해 버린다는 것에 있다. 그 결과 저자들의 의도와 얼마만큼 부합하는지 모르겠지만, 386세대 전체는 20대에 의해 진짜로 나쁜 개새끼가 되어버렸다. 386이 욕을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20대는 자신의 문제를 편리하게 386의 탓으로 돌려버리고, 사회에 오히려 더 무관심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우석훈이 지금에 와서야 비난한 20대의 냉소는 사실 우석훈 자신이 386세대를 20대의 주적으로 던져 주었을 때 예견되었어야 마땅했는지 모른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386 주적’ 놀이의 엉뚱한 계승자가 바로 변희재라는 한윤형의 주장이다. 물론 변희재의 386세대와 젊은 세대 편가르기는 세대론이 아니라 ‘변형된 인종주의’라는 박권일의 지적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여하튼 《88만원 세대》의 백미로 꼽히는 서문을 통해 저자들은 ‘개념 없고 노력도 안 하면서 정치적 관심도 없는 되바라진 20대’와 ‘편하게 취업해서 운동 경력으로 꼰대질 하는 386세대’라는, 적대의 전선을 불타오르게 했다. 변희재류가 여기에 꼬이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8만원 세대>는 20대 청춘들에게 덧씌워진 억울한 누명을 벗겨 냈다. 그러나 그것은 ‘묵시론적인 예언’서 이기도 했다.

「‘88만원 세대론’은 20대의 대부분이 88만원을 받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묵시론적인 예언이었다. 한국 사회의 계층 불평등이 ‘세대’로 전이될 거라는 새로운 통찰이었다. 예전보다 훨씬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상황인데도, 요즘의 젊은이들이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는 어른들의 ‘상식’에 맞서, 《88만원 세대》의 저자들은 이후 세대의 평생 동안의 소득은 윗세대의 그것보다 적을 거라고 주장했다. 윗세대가 젊어서 고생을 한 건 사실이지만 취직을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소득이 크게 증가한 반면, 오늘날의 세대는 시간이 지나도 젊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급료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p176)」

  이 묵시록은 틀렸는가? 현실의 단면을 말하자면, 이 예언은 충실히 이행되고 있다. 저자 한윤형에 의하면 ‘계층 불평등의 세대 전이’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된다. 단, 중간계급이라는 특정 계층에서. 물론 여기서 개념이 충돌한다. ‘특정 계층 내’의 ‘계층 불평등’ 은 도대체 무슨 말일까? 아마도 중산층이라고 불렸던 특정 계층이 몰락하면서 계층이 분화됨과 동시에 그것이 세대로 전이된다고 읽어야 될듯하다. 여기서 한윤형은 ‘미래’를 강조한다. 한윤형이 말하는 계층 불평등이란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미래의 세대에게 곧  전이될 불평등을 의미한다고 보여 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88만원 세대론’은 원래부터 88만원을 벌었던 젊은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왔는데도 88만원을 벌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진 젊은이들을 위한 담론이었다. 그것이야말로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이 던지는 질문은 사실 “한국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체제를 재생산할 수 있는가?”다. 박권일은 여러 지면에서 자신은 ‘88만원 세대론’이 청년 빈곤층과 기성세대 빈곤층의 연대를 위해 쓰이기를 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우리는 ‘88만원 세대’ 담론이 지적한 문제와 그 담론이 성공한 요인은 모두 중산층의 불안 심리 내지는 중간계급의 욕망과 결부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즉 ‘계층 불평등의 세대전이’라 표현할 수 있는 ‘세대 문제’는 사회 전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중간계급이라는 특정 계층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계층이 사실상 그간 한국의 내수 경제를 지탱해왔단 점을 생각하면 이들 내부의 ‘세대 문제’야 말로 디스토피아적 미래라 할 수 있다. p179~180」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은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문제가 터져 나오는 방식이다. 88만원 세대의 묵시론적 예언은 미국, 유럽, 일본 할 것 없이 세계 도처에서 실현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바라보는 중간계층들의 문제의식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가 좋았던 옛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있다. 자본주의의 대안이었던 ‘좌파적 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어찌 보면 당연한 태도이다. 50대의 보수화뿐만 아니라 20대의 보수화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거기다 자신들의 주적인 386세대가 좌파를 자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적개심은 자연히 20대들을 좌파의 대척점에 서도록 추동했을 것이다. 물론 그 결과,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간다. ‘중간계급의 욕망’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고, ‘중산층의 불안’은 공포에 가까워진다.

 

 

  인디고 연구소의 젊은이들이 슬로베니아로 날아가 직접 지젝을 인터뷰한 책인 <불가능성의 가능성> 에는 68혁명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프랑스의 많은 친구들과 얘기해 보면, 68년의 가장 멋진 순간을 무엇이라 말하는지 아십니까? 근교에서 당신은 차를 타고 와서, 노트르담 성당 북쪽에 차를 주차하고, 그리고는 센 강을 건너서, 시위를 하고, 차 몇 대에 불을 지르기도 하며, 여러분의 차가 아니니까 딱히 신경 쓰지도 않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저녁이 되면 다시 북쪽으로 가서 카페에 앉아 논쟁을 하는 것입니다. p127」

  이 무슨 된장녀스런 시위담일까 싶지만, 80년대 386들도 시위하고 밤새 막걸리 집에서, 호프집에서 술 퍼먹고 노래하고 토론했다. 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여유와 그런 처지를 말하는 것이다. 총격전이 벌어지는 곳에서 자유와 평등을 논하기는 쉽지 않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게거품을 무는 것이 위선처럼 보이지만, 논쟁과 토론은 그런 곳에서 활발히 벌어진다. 논쟁과 토론이 없다면 희생과 투쟁은 있어도, 미래에 대한 꿈을 그리거나 합의해 나가기는 어렵다. 왜 사회 전체에 대한 투쟁은 노동자 계층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만한 중간계급, 상부구조와 토대가 일치하지 않는 강남좌파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가에 대한 한 가지 답이 될 수 있다. 먹고 살만해야 자유고 평등이고 자각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자유라는 최소한의 공간’ 이 열리는 것이다.

  이것이 <88만원 세대>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이 명문대생들이었다는 현상에 대한 또 다른 풀이가 될 수 있다. 명문대생들에게는 어쨌든 88만원 세대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는 있다. 잠시 삐끗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지만, 운 좋으면 살아남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격차는 <88만원 세대>가 보여주는 묵시록만큼이나 끔찍하다. 그러나 지잡대의 경우, 현실에 출구는 없다. 차라리 환상을 가지는 것이 그래도 견딜만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런 상황에서 취직 걱정을 하는 지방대생들은 차라리 희망을 말할 수밖에 없다. 출발선상이 애초에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토익 점수 따고 자격증 따면 명문대생과 비슷한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위안하거나, 이게 실패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을 때에도 살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일단 위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포함될 수도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는 현실에는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지만 자신이 벗어날 수 없는 조건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고통을 수반하는 일일 게다. 이들에게 《88만원 세대》담론은 벗어날 수 없는, 받아들여야 하는 조건일 뿐이다. 그렇다면 체념하고 따르는 것이 빠르다. p153~4」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가장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80년대 이른바 386세대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시절에는 대학생들이 특권층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졸업만하면 취직 걱정은 없었고, 취직만하면 먹고 살 걱정은 없던 시절이다. 2,000년대 촛불집회 역시 중간계층의 열망이었다. 참가자들 각자의 구체적 욕망이 무엇이었던 간에, 먹고 살만해진 그들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갈망했다. 그것의 상징이 강남좌파다. 강남에서 학원해서 진보당에 쾌척하는 삶의 모순을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강남 학원은 계급을 더욱 공고히 하고, 진보당의 기본 이념은 계급철폐에 가까울 텐데도 말이다. 여하튼 경제적 여유가 우파든 좌파든 선택할 수 있는 사상의 여유마저 만들어 준 셈이다.

  지금 정치 참여를 놓고 서로 삿대질 해대는 386세대와 88만원세대의 격차도 비슷한 양상이다. 먹고 살만한 386세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먹고 살기가 막막한 88만원세대 앞에 개죽이 스티커를 내밀며 속으로 바가지바가지 욕을 해댔던 2004년 총선 때의 소위 ‘투표독려 캠페인’이 생각난다. 민망하다. 나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그 일이 자랑스러웠는데, 기실 이면에 놓인 이런 사회적 문제에는 전혀 무지했다. 우리는 참 해맑은 386이었다.

 

 

 

  20대가 정말로 보수화되었는지, 정치에 무관심한지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는 통계도 있고 그 반대되는 논거도 있다. 이번 대선만 보더라도 20대는 열심히 투표했다. 그런데도 졌다. 중요한 건 사실 이런 논쟁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꿈이다. 정당이 그려내는 꿈이든 운동가들이 보여주는 청사진이든, 진짜 능동적인 미래의 비전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열심히 적들을 만들어 반대만 해왔다. 이회창만, 이명박만, 박근혜만 아니라면 이 가혹한 신자유주의 체제는 자연히 사라질 것처럼 행동해 왔다. 노무현도 김대중도 못한 것을 문재인은 할 수 있을 것이라 또 한 번 속아 주었다. 다음 번엔 안철수에게 속아 줄 차례가 올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우리는 속아주면서 한없이 ‘내려가는 사회’에 살아야 하는 걸까? 아마도 평등자유라는 좌파적 꿈, common이라는 공동의 삶에 대한 대안이 만들어 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약 없이 냉소하며 속아주어야 할 것이다. 가짜 적들의 형상에 분노를 폭발하면서, 파시즘의 광기에 시달리면서. 그러니 당장 꿈을 그려낼 능력이 모자란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엉뚱한 적을 만들어 내기 보다는. ‘재특회’는 생각 보다 가까이 우리 안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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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과 군중 - SNS는 군중의 세계인가 공중의 세계인가?
가브리엘 타르드 지음, 이상률 옮김 / 지도리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011년 11월 22일, 카페 과제물로 쓴 글입니다. 이 때는 타르드(따드)의 책이 번역된 것이 없었는데, 그 이후 두 권이나 나왔네요.  리뷰 상품인 <여론과 군중>과는 상관없이 쓴 글입니다. 

그 때 과제는 타르드를 우리 나라에 소개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기획서까지 써보라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 쓴 세 글 중 마지막 글입니다. 기념 삼아 옮겨 두었습니다.

 

 

 

세상에 라이벌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참 많다.

 

 

 

 

일요일 오전에 방송하는 MBC <서프라이즈> 에도 ‘불멸의 라이벌’이라는 코너가 있다.

내가 본 것은 에디슨 대 테슬라, 미켈란젤로 대 다빈치 편이었다.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가 어디에 있건, 이런 대결 구도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사적 인물들이 보여 주는 그 어쩔 수 없는 인간적 치졸함에 있다.

에디슨과 테슬라의 이야기를 보면, ‘천재라는 것은 1%의 영감과 99%의 땀이다.’ 라는 멋진 격언이 어쩌면 테슬라의 발명 스타일에 대한 에디슨의 질투와 시기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

에디슨은 될 때까지 실험을 반복하는 노력형인 반면 테슬라는 직관과 영감으로 승부하는, 어찌 보면 진짜 천재였기 때문이다.

사이가 벌어질 대로 벌어진 에디슨과 테슬라는 노벨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서로를 인정할 수 없었던 이 두 라이벌은 동급으로 취급받느니 차라리 수상을 거부했다고 하는 이야기까지 있다.

 

 

수학사에는 이 보다 더 살벌한 대결도 있다.

칸토어라는 수학자는 당시에만 해도 신의 영역이었던 ‘무한’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결국 정신 병원에서 죽었다.

칸토어의 무한 개념을 인정할 수 없었던 크로네커는 칸토어의 논문 발표와 교수직 임용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다른 수학자들과 함께 칸토어를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끈질긴 방해와 핍박 속에서도 칸토어는 실무한의 이론을 정립하여 후세에 집합론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정신병원에서 최후를 맞이한 비극적 인물이었다.

“수학의 본질은 자유에 있다.”라는 칸토어의 묘비명은 그의 정신병과 결코 무관할 수 없는 (혹은 없다고 추정되는) 크로네커가 그의 스승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찬드라세카르는 블랙홀의 단초를 제공한 천체물리학자이다.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인도 출신의 이 젊은이는 영국 유학의 기나 긴 항해 길에서 ,이후에 ‘찬드라세카르 한계’라고 불리게 될 획기적인 이론을 착안해 낸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들의 노년은 백색왜성이라고 알려졌는데, 찬드라세카르는 별의 질량이 태양 질량의 1.4배가 넘으면 중력 때문에 그 별은 백색왜성이 되지 못하고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던 것이다.

이렇게 폭발한 별들은 질량에 따라 중성자별이 되거나 블랙홀이 된다는 것이 후대의 연구에 의해 입증되었다.

그러나 당시 천문학회의 거장이었던 영국의 에딩턴 경은 찬드라세카르의 이론을 ‘별 장난’으로 치부하며 무참히 짓밟아 버리고 말았다.

식민지 원주민이었던 찬드라세카르는 막강한 귀족 과학자인 에딩턴의 핍박으로 한때 연구 분야를 바꿀 결심까지 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이름을 붙인 이론을 천체물리학계에 남기게 되었다.

 

 

당대의 최고 학자이며 저명 인사였던 사람들도 때로는 지독히도 치졸했던 것 같다.

논문 발표를 막고 온갖 술수를 부리면서까지 학계와 사회에서 라이벌을 매장시키려 했던 그들의 행동은 사실 인지상정으로 봐주기에는 과한 면이 있다.

치졸함을 드러내면서까지 라이벌을 짓밟아야 했던 그들의 분노는 어떤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그들 자신이 그 누구 보다 먼저 그 신예 라이벌들의 가능성과 파괴력을 감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이 구축한 세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초조함과 불안감에 그토록 잔인하고, 그토록 폭발적으로 분노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과잉 반응은 그 자체가 어떤 질병을 나타내는 증상일 수도 있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을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부모나 선생님은 늘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한 아이 보다는 과잉적 폭력을 휘두르는 체벌자의 내면을 주목하게 만든다.

길거리에서 아이를 쥐 잡듯이 잡아 족치는 엄마의 귀를 찢는 고함 소리는 차라리 삶에 대한 분노와 원한이 지르는 비명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권위와 명성의 힘으로 혹은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행사하는 그들의 과잉 탄압 또한 신예 라이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나타내는 증상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청출어람’ 이란 말은 겉보기만큼 그렇게 훈훈하기만 하거나, 맑고 깨끗한 푸른빛이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뛰어 넘는 제자를 인정할 수 없었던 수많은 스승과, 스승을 넘고 나아가야만 했던 제자들이, 얼마나 피 튀기는 전쟁을 치렀어야 했는지, 역사의 곳곳에 남아 있는 이 기록들이야말로 그 증언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자연 과학 분야에서는 승부가 의외로 간단히 끝날 수 있다.

당대에는 권위나 명성에 억눌려 묻혀 버리기도 하지만, 한 번 빛을 본 위대한 이론들은 자체의 생명력으로 살아나기 마련이다.

그것들은 막힌 학문의 물꼬를 트고 신세계로 향하는 물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열고 가야 할 비밀의 문 같은 것이어서, 후학이라면 그 봉인을 풀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라이벌들을 현재에 다시 불러오는 이유가 그리 복잡할 것 같지는 않다.

역사 속의 인물들이 지지고 볶은 그 '서프라이즈‘한 쟁투만으로도 어느 정도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데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 류의 교훈도 살짝 얹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진리는 승리할지니 굳세어라, 젊은이여!?

 

 

 

 

하지만 여기 좀 더 복잡한 상황이 있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불러 낸 세종 이도와 밀본 정기준의 대결 말이다.

 

 

 

그전에 잠깐, 여러 편의 드라마를 통해 우리에게 매우 친근해진 이산 정조에 관해 살짝 살펴보자.

내가 아는 한 대중에게 정조에 관한 관심을 맨 먼저 끌어 낸 사람은 소설가 이인화이다.

그가 <인간의 길>이라는 책을 통해 박정희를 미화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전, 그의 이름을 세간에 각인시켜 준 것은 소설 <영원한 제국>이다.

<영원한 제국>은 간단히 말해 어떤 정치 형태가 더 훌륭한 것인가를 놓고 정조와 노론이 벌이는 정치적 투쟁에 관한 소설이다.

정조는 모든 권력이 왕에게 집중되는 강력한 왕권 중심의 성왕정치를 주장한 반면, 노론은 붕당을 통해 왕권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신권 중심의 붕당정치를 고집했다.

붕당은 ‘학문적·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양반들이 모여 구성한 정치 집단’ 이라고 한다.

당파싸움으로 조선이 망했다는 인식 때문에 붕당에는 부정적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지만, 사실 붕당은 지금의 정당과 비슷한 면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삼권이 분립되어 있는 현대의 민주정치에서도 이상한 대통령 하나가 5년이 채 되기도 전에 온 나라를 뒤집어 놓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사실 왕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강력한 왕권은 세종이나 정조 같은 성군만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연산군 같은 폭군이 더 막강하게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온 백성의 삶이 왕의 품성 하나에 달려 있는 체제란 사실 야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붕당을 만든 양반들이 공맹의 도에 따라 올바른 정치를 이끌기 보다는 사리사욕과 가렴주구에 탐닉하게 되면 백성의 삶이란 어짜피 피폐해질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그것은 현대의 정당정치가 가져오는 폐해와도 다르지 않다.

국회가 날치기 통과시킨 각종 법안들이 오히려 국민의 목을 옥죄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굳이 애써서 찾아낼 필요도 없는 것이, 지금 당장 우리 눈앞에는 한미 FTA가 날치기를 앞두고 있다.

 

 

정치체제란 당대의 사회적 상황이나 힘의 관계와 분리하여 판단할 수는 어렵기에, 단순히 성왕정치가 더 나은가 아니면 붕당정치가 더 좋은가 따위의 질문은 별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금 내가 <영원한 제국>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왜 이인화가 조선 시대의 정치적 대결 구도를 현대에 다시 불러 왔느냐 하는 것이다.

이인화는 <영원한 제국>을 통해 정조의 왕권중심 체제를 강력히 옹호하고 있다.

어떤 블로거의 서평에 의하면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라는 천황중심의 절대왕권 체제를 확립함으로써 근대화의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조선에는 왕에 의한 유신이 없었고 이 때문에 권문세도가의 가렴주구가 왕국의 쇠멸을 재촉했다’ 고 한다.

이 블로거는 ‘이 소설에는 정조가 살아서 유신에 성공했더라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지도 않았고, 박정희가 군사 정권으로 유신을 단행하는 비극도 없었을 것이라는 역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감추어져 있다’ 고 쓰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인화가 박정희의 유신 독재를 비극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일까?

 

처음 <영원한 제국>을 읽었을 때 나는 참 많이 감동했다.

붕당이란 것이 패를 갈라서 자기들 뱃속만 채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구나, 비록 상복 하나에 목숨을 거는 희극을 벌였을지언정 그 바탕에는 왕의 전횡을 막고 백성을 위해서 공론의 정치를 펴려했던 훌륭한 이념이 있었구나.... 그것은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 뿌듯한 경험이었다.

물론 이인화는 정조의 왕권정치가 좌절된 것에 깊은 회한을 표했지만, 나는 꼬장꼬장한 노론의 영수 심환지가 그렇게 악마처럼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랬던 것이 그 이후에 출간된 <인간의 길>을 읽고서야, 나는 이인화가 왜 하필 정조를 이 시대에 다시 불러들였는지를 뒤늦게 알아챌 수 있었다.

이인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절대군주이건 군사독재 정권이건,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절대 권력에 의한 근대화 작업이었다, 라고 할 수 있다.

역사 속에 잠자던 정조가 기껏 박정희의 들러리를 위해 후손들 앞에 불려 나왔던 것이다.

나는 극심한 배반감을 느꼈지만, 원래 이인화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는 결코 그것을 숨기지도 않았고, 오히려 <영원한 제국>을 통해 그의 사상을 세심하게 다듬어 유포시켰던 것이다.

이인화의 세계에서 박정희는 정조가 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근대화 작업을 완수해낸 훌륭한 지도자였고, 다만 이 근대화 작업에는 반드시 절대적인 권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박정희의 독재 정치는 필요악이었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인화는 국가를 위해 기꺼이 독재자의 길을 걸어 가야 했던 인간 박정희를 형상화함으로써, 박정희에게 인간적인 아우라마저 실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영원한 제국>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인화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건 나는 그 책을 통해 정치 체제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얻었던 것이다.

사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 본 적도 없고, 왜 국가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나뉘어져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것들은 공기나 물처럼 자연적인 것, 그냥 원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 당연한 그런 것이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정치 체제란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 그것들은 목적에 따라 언제든지 파괴될 수 있고 또 새롭게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너무나 기초적인 상식이지만, 그것이 박제된 상식으로서가 아니라 생생히 마음을 파고드는 상식으로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결코 완결된, 완벽히 이상적인 체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뿌리 깊은 나무>를 보았을 때, 나는 이것이 <영원한 제국>의 짝퉁은 아닌가 조금 의심했다.

왕의 밀명을 받은 학사들이 죽어 나가고, 왕은 무언가 비밀스런 일을 꾸미고 있고, 그것을 파헤치는 과정에 왕과 신하들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기타 등등.... 이건 거의 표절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표절에 관해서라면 뭐 이인화가 시비를 삼을 리는 절대 없을 터이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이인화의 첫 장편소설인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가 표절 시비에 휘말렸을 때 이인화는 자신의 작품이 공지영이나 무라카미 하루키만을 베낀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마구 베낀 혼성모방 (페스티쉬)에 의한 것이며, 이것은 표절이 아니라 하나의 당당한 예술적 기법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바람에 페스티쉬라는 생소한 단어가 일약 유행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뿌리 깊은 나무>는 나의 그 우려가 제대로 증거를 갖추기도 전에,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아, 표절이고 뭐고 생각할 틈도 없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뿌리 깊은 나무>의 대결 구도는 복합적이다.

 

  태종 대 세종

  이도 대 똘복

  세종 이도 대 밀본 정기준

  소이(담이) 대 정채윤(똘복)

  정채윤 대 정기준

 

 

<뿌리 깊은 나무>가 <영원한 제국> 보다 복합적인 대결 구도를 가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왕과 사대부가 공히 국가의 근본으로 내세우는 바로 그 ‘백성’이 전면에 부각되어, 대립의 한 축을 능동적으로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똘복과 소이는 절대 왕권을 추구하던 태종과 재상 정치를 뿌리내리려는 사대부 사이의 정쟁의 한가운데에서 영문도 모른 채 희생당한 백성들이다.

세종 이도는 아비와는 달리 문의 길을 자신의 통치 형태로 삼았지만, 세종 역시 왕권을 강화하여 직접 성왕정치를 실현하려는 점에서 태종의 길과 궁극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성왕정치의 근본은 백성이다.

군주의 역할은 하늘의 뜻을 받아 백성을 어버이처럼 돌보는 어진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도전이 꿈꾸었던 재상정치 역시 백성이 근간이라는 민본사상을 이념으로 하고 있다.

정도전은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다음이고, 군주는 가장 가볍다 ’ 라는 맹자의 사상을 정치에 실현하고자 하였으니, 밀본이 주장하는 재상 정치라는 것이 단순히 사대부의 계급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백성은 늘 명분으로만 존재할 뿐 살아있는 개개인의 인간으로 존중받지는 못한다.

그것은 비단 조선에서 뿐만이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상시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여타의 정치·역사물들과 뚜렷한 차별화에 성공하는 것은 백성이 명분이나 배경으로서만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물로서, 주체적으로 역사적 사건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나무>의 복합적 대결 구도는 실제로는 왕권, 신권, 백성이라는 삼자 구도의 형태로 간결화 될 수 있다.

 

 

 

 

                                       똘복, 소이

 

               세종 이도                                         밀본 정기준

 

 나머지 대립들은 세부적인 이야기 전개에 흥미와 긴장을 불어 넣는 곁가지 대립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밀본의 수장 정기준은 세종 이도의 치세가 태평성대임을 인정한다.

밀본이 세종에 반대하는 것은 세종이 무능한 군주이거나 폭군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대부의 이익이 침해당할까 우려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정기준은 세종이 성군이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말한다.

정기준의 우려는 이대로 왕권정치가 뿌리를 내리면 세종 이후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있다.

무능한 왕이나 포악한 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게 될 때, 이것을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그 때 나라와 백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가 정기준이 생각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삼봉 정도전이 관료 체제를 확립하고 재상 정치를 주창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세종 이도는 어린 시절 정기준이 과거장에서 써 낸 글을 보고 깊이 감명을 받는다.

세종은 유림들이 몰래 모여 정도전에게 제사를 드린다는 바위에 올라서 정도전의 혼백에게 술을 뿌린다.

정도전만은 아마 자신이 하려는 일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세종 역시 정도전의 민본사상이 자신의 덕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분노는 백성을 위한 자신의 정책이 현실 정치에서 사사건건 사대부에 의해 방해받는 다는 사실에 있다.

사대부들은 정도전이 가리킨 민본의 이념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재상정치의 체계와 유학이라는 학문 자체에만 매달린 채, 실제로는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추구하고 있다고 세종은 분노한다.

 

 

“내가 대체 뭘 그리 잘못했느냐? 나는 조선을 세우고 싶을 뿐이었다. 내 신하들은 지금도 모두 모여서, 내 뜻을 거스를 모의를 한다더구나. 그래, 생각해 보면 항상 그랬다. 중국의 책력이 아닌 우리의 책력을 만든다 할 때도, 천문기기를 만들기 위해서 중국에 사람을 밀파할 때도, 세법 가부조사를 할 때도, 노비 장영실에게 관직을 주려 할 때도... 대행 대왕의 뜻을 거스를 수 없사옵니다. 국고가 낭비 되옵니다. 신분 질서가 어지럽혀 지옵니다... 지랄들 하고는... 결국엔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것이면서, 온갖 공맹의 도리를 들이대면서 말이다! 공자께서 언제 자국의 책력을 만들면 안 된다 하셨느냐? 맹자께서 제 백성의 소리를 직접 들으면 안 된다 하셨어? 나는 단지 조선을 세우고 싶을 뿐이었는데, 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느냐?”

 

 

세종은 신하들에게 소리치는 대신, 정도전에게 술을 바친다.

세종이 신하들의 면전에서 직접 호통 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비록 형식에만 매달려 있다 해도, 정도전이 만든 경국대전은 조선 통치 이념의 근간이며, 그들의 논리 역시 만만하게 깨어질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익을 취하는 신하들은 별도로 하더라도, 적어도 세종 이도와 밀본 정기준 사이의 대립에는 원칙적으로 사사로운 이익에 대한 다툼은 없다.

이들은 말 뿐인 대의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대의를 위해 사활을 거는 것이다.

두 가지 체제 모두 대의와 논리를 갖고 있으며, 동시에 현실에서 잘못 운용될 경우 치명적인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다.

왕은 폭군이 되어 백성을 헐벗게 만들 수 있고, 사대부는 탐관오리가 되어 백성을 수탈할 수 있다.

누구를 따를 것인가?

 

여기에서 <뿌리 깊은 나무>가 보여주는 새로운 길은 바로 ‘각성한’ 백성의 힘이다.

 

똘복은 왕이고 나발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신분이나 계급에 억매이지 않는 그의 주체성은 본능적으로 획득된 것이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기본권에 대한 인식과 다르지 않다.

복수를 꿈꾸며 무작스럽고 교활하게 굴러 온 똘복이지만, 그가 철칙으로 신봉하는 것은 세상에 천한 목숨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똘복은 세종 이도를 죽여 왕의 목숨과 아버지 노비의 목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소이의 주체성은 각성의 산물이다.

소이는 한자를 몰랐지만, 아는 체 했고, 그것 때문에 모두가 죽었고, 그 감당할 수 없는 죄의식으로 말을 잃었다.

그러나 세종이 백성들의 문자를 만들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즉각적으로 그것이 곧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깨닫는다.

문자야말로 왕이나 사대부의 농단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해독 불능의 편지(문자)’가 촉발한 비극 속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소이 보다 더 처절하고 절실하게 새로운 문자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자가 달리 누가 있겠는가.

소이의 비극은 소이를 산주검으로 몰아갔지만, 그 죽음을 통과한 소이는 주체적 인간으로 다시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자는 그렇게 소이의 새로운 삶이자 복수가 된다.

소이는 직접적인 복수가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복수를 선택한 것이다.

백성들이 문자를 갖게 됨으로써 왕과 사대부와 백성이 모두 평등한 인간임을 입증하는 것, 더 천하고 더 귀한 목숨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소이의 복수이자 속죄이다.

문자가 곧 권력이었다면 백성의 문자는 그 권력을 백성에게 되돌려 줄 것이다.

 

 

세종 이도가 백성의 문자를 만들려고 했던 이유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종은 누가 왕이 되고, 누가 사대부가 되더라도, 백성들이 억울하게 핍박당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그 무엇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정도전이 경국대전을 편찬하고 재상 정치 체제를 구축했던 이유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도전이 제도로서 백성을 보호하려 했다면, 세종은 백성 스스로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정기준의 투쟁은 철저히 사대부의 결사체인 밀본을 중심으로 실행된다.

재상정치의 근본에는 민본사상이 있지만, 조선은 또한 사대부의 나라이고 백성은 수동적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정기준이 비록 가리온이라는 백정으로 수십 년을 반촌에서 살았다고 해도, 그는 한 번도 천한 신분의 백성과 스스로를 동일시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단지 뜻을 펴기 위한 수족이었을 뿐이었지, 뜻을 함께 하는 동지는 아니었다.

정기준에게 '민본'의 民인 백성은 다만 추상적 존재였을  뿐이다.

 

 

그러나 세종의 한글 창제에는 반드시 소이와 똘복이 필요하다.

허구의 인물임이 분명하겠지만, 그래도 <뿌리 깊은 나무>에서 소이가 한글 창제의 핵심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백성의 능동적인 참여 없이는 ‘백성의 문자’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작가들의 의식 때문일 것이다.

지난 주 <뿌리 깊은 나무>의 끝 부분에 밀본 세력에 의해 세종이 문자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막에 둘러앉은 백성들은 낄낄거리며 별 쓰잘데기 없는 짓을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것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당하면 당하는 대로 살아가는 그냥 백성이다.

백성들은 아직 문자가 무엇인지, 어떤 힘을 가졌는지, 하루하루 밥 먹고 살아가는 일에 무슨 보탬이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귀찮고 쓸데없는 일이다.

 

거기다가 똘복은 세종을 향해 악을 쓴다.

문자를 몰라서 억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신분이 천해서 당하고 사는 것이라고.

문자를 몰라서도 죽지만, 문자를 알아도 죽는다고.

 

세종 이도 앞에 놓인 과제는 그러므로 단순히 사대부의 반대를 물리치고 문자를 반포하는 것만이 아니다.

세종은 한글에 대한 두 번째 판관으로 똘복 정채윤을 선택했다.

그것은 백성들이 자신들의 문자가 왜 필요한지,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를 깨달아야만 비로소 한글이 백성의 문자로서 그 의미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총 방송 분량의 절반이 방영된 시점에서 <뿌리 깊은 나무>의 후반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관심사는 똘복 정채윤이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가 하는 것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똘복이 어떻게 한글을 수용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백성들의 삶에 어떤 능동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는가에 드라마의 명운이 달려 있을 것이다.

 

 

나는 힘없는 백성에서 능동적인 주체로 탄생하는 소이와 똘복이라는 인물이 작가가 드라마를 통해 이 시대에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에 대한 혐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냉소적인 태도는 세련되어 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사실 ‘소인이 뭘 알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라는 드라마 속의 백성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아무리 쉬운 문자를 만들어 주었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배워야 하는지를 백성 자신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문자란 그저 지랄염병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1인1표의 투표권이 주어졌다 해도, 그것이 등록금이나 취업난, 전세난, 빈부격차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스스로 깨닫고 참여하지 않는다면 민주적인 선거 제도 역시 쓰잘데기 없는 정치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세종의 시대에서 문자에 눈뜬 백성이란 지금 이 시대에 정치의 필요성에 눈뜬 시민과 같지는 않을까?

소이가 똘복을 변화시키듯 우리도 우리를 변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을 이 드라마는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가가 성왕정치와 재상정치 사이에서 세종의 편에 서는 것은 그 제도 자체의 우수성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백성의 문자라는 ‘한글’ 자체가 백성을 다스림의 수동적 대상으로 보는 사고로는 절대로 착안될 수 없고,  문자란 스스로의 뜻을 펴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고, 제도 자체 보다 더 탄탄하고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기 때문에, 그것을 감히 발상해내고 창제해낸 세종의 정치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의 핵심에 ‘백성의 참여’를 배치한 까닭은 지금 이 시대에도 그 ‘참여’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현재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역사적 인물을 현재로 다시 불러 올 때는 그 인물의 삶이 지금, 여기 우리에게도 어떤 의미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이런 인물도 있었다거나 이런 신기한 사건이 있었다는 차원에서 역사 속에 곱게 잠자는 인물을 깨워 온다면, 괜히 미이라의 저주니 어떠니 하는 괴 소문에나 시달릴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역사적 인물을 소환할 때는 먼저 그 사유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당신이 그것을 기획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이것이 내가

“ Gabriel Tarde에 대한 소개서를 자신이 낸다고 할 때, 출간 기획서를 쓰시오

”란 과제를 받아들고 계속 생각해 왔던 문제이다.

 

우리의 독자는 일반 대중이거나 기껏해야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진 대중이다.

따드는 대중에게 어떤 현재적 의미를 줄 수 있을까?

 

 

내가 가질 수 있는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얻을 수 있는 백과사전적 정보에다가, 동시대의 사회학자 뒤르켐과 라이벌이었다는 사실 정도이다.

그의 책은 번역된 것이 없고, 그의 사회학적 방법론은 라이벌 뒤르켐에 의해 매장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심리학적 사회학’이란 이름 외에는 세간에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다.

고작해야 “모든 사회현상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적(心的) 관계라는 궁극의 형태로 환원되며, 이것이 ‘순수하게 사회적인’ 것으로서의 사회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라는 정도가 알려져 있다.

 

 

일단 따드에 대한 우리의 소개서가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뒤르켐과의 라이벌 관계다.

그러나 단순하게 뒤르켐이 얼마나 철저하게 따드를 파묻었고, 따드는 얼마나 생고생을 하다가 억울하게 죽었나 등등의 이야기만으로는 별로 신선할 것이 없다.

세기의 라이벌, 불멸의 라이벌, 불구대천의 라이벌 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있어 왔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려면 일단 따드의 이론이 복권되어 거꾸로 뒤르켐을 파묻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땅에 묻힌 고분을 발굴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따드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시대에 따드가 공헌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누군가 따드를 필요로 하고 있어야 한다.

학문은 과거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직선적으로 발전해나간다고 할 수 있지만, 거꾸로 현재의 연구가 과거에 매장된 이론을 되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학자가 아니다.

우리 책은 전문 서적도 아니며, 따드의 책을 번역할 계획도 없다.

우리의 목적은 따드의 발굴이 아니라, 따드의 대중화이다.

따드의 이론이 훌륭해 보이니 그것을 먼저 발굴하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분석해낼 방법을 찾아가는 식의 순서를 밟을 수는 없다.

우리는 거꾸로 따드를 통해 우리 사회를 성공적으로 분석해낸 사례를 찾아서 따드를 소개하는 방식을 택해야만 한다.

사실 그런 성공적인 사례가 없다면 우리는 따드를 포기해야 한다.

훗날에 제대로 따드를 되살려 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 기회를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출간 기획서의 목표는 따드를 소개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지를 먼저 판단하는 것이다.

정식 출간 기획서는 그 판단이 이루어진 이후에 작성될 수 있을 것이다.

출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따드와 관련된 연구자들을 찾아서 그들의 연구 내용과 그들이 판단하는 따드의 현재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 따드의 이론을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 적용한 사례를 찾는 것이다.

셋째 그 사례들이 대중적으로 공감될 수 있거나 대중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책도 반드시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책이라 하더라도 ‘유용성’이 없이는 대중 서적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유를 촉발하건, 교양을 함양하건, 재미를 주건 대중 서적은 대중에게 줄 수 있는 유용한 그 무엇, 그 존재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따드에 관한 기획은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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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에밀 뒤르켐 지음, 황보종우 옮김, 이시형 감수 / 청아출판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10년 9월 14일, 카페에 올린 글입니다.

 

 

줄곧 비가 온 탓일까, 아직 덥지만 어딘가 가을이 시작된 느낌이 든다. 한 여름에 손에 쥐었던 <자살론>을 이제야 끝냈다.  그나마 찬 바람이 불기 전에 끝을 내어 다행이지만, 솔직히 학교 졸업한 이후 이렇게 지루한 책을 끝까지 읽어 낸 것은 처음이다. 습작당과 선생님만 아니었다면 열두 번은 더 던져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 관문을 통과해야 선생님을 따라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 무미(無味)한 수치들에 눈길을 되풀이 붙이곤 했다. 그래봤자 30분도 못돼서 꼬박꼬박 졸기가 일쑤였지만 말이다.


뒤르켐의 수치들은 대부분 1800년대의  것이다. 그리고 특히 1장의 분류방법은 현재의 눈으로 보면 너무 엉성한 면이 있다. 정신병을 규정하고 분류하는 법 같은 것들은 좀 웃기기도 했다. 적어도 ‘자살’의 비사회적 요인을 현재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데는 별로 유용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짜로 1장은 너무 너무 지루했다. 그러나 뒤르켐이 진짜로 주장하고 싶은, 자살과 사회적 요인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주장은 매우 흥미로웠다.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 그리고 아노미성 자살.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기적과 이타적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그 용어와는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아마 뒤르켐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자살은 사회의 통합 정도와 밀접한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기주의자는 세상에서 자신 말고는 의미 있는 것을 찾지 못해서 불행하며, 지나친 이타주의자의 슬픔은 반대로 자신이 전혀 무의미하기 때문에 생긴다. 전자는 자신이 집착할 아무런 목적을 찾을 수 없어 자신이 무가치하고 목적이 없는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에 삶을 벗어 던지며, 후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그 목표가 삶의 외부에 존재하므로 삶이 장애로만 여겨지기 때문에 삶을 버린다.」

자기의 외부에 사회가 있다고 한다면, 그 사회가 너무 무의미하기 때문에 사회 속에 살아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이기주의적 자살이고, 사회의 가치가 너무나 위대하여 자신의 목숨은 초개 같이 버릴 수 있는 것이 이타주의적 자살이다. 그리고 아노미성 자살이란, 이런 성향이 극적으로 표출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환경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사회의 규범norm이 무너지고 새로운 규범norm이 아직 굳건히 세워지지 못한 아노미anomy 상태에서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은 급격히 분출할 수 있다.

그래서 뒤르켐이 내놓은 해법은 적절한 사회 통합의 방법으로서의 ‘조합’, ‘직업 집단의 조합‘ 이다. 조합은 국가가 하지 못하는 규범을 세우고 개인을 묶어서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 집단으로 통합할 수 있다는 주장인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직업 집단이 노동자 집단을 말하고 그래서 결국 이것이 노동조합을 뜻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말이다.


뒤르켐은 사회학자답게(? 사회학자라는 것이 꼭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통합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전체주의적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개인은 개인으로서 방치되어서도 안 된다. 사회적 통합 없이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 갈 수 없다, 그리고 물론 인간은 사회 밖에서도 살아 갈 수 없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거나, 사회를 버리고 자살하거나 할 수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나쁘거나 혹은 더 나쁘거나 사이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형태든지 사회 속의 구성원이 되지 않고는 의미 있게 살아갈 방법이 없는 것 같다. 하다못해 속세를 버리고 떠난 스님들도 신도를 모아 사회를 구성한다. 그리고 내가 이 습작당에 머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사회라는 것에 있는 것 같다. 통합된 사회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이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

한때는 군부 독재가 없으면 누구나 행복한 사회가 될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얼만 전에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된다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 같은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장밋빛 꿈과 현실은 언제나 어긋났고, 사람들은 그 어긋남에 대하여 목청껏 떠들지만 아직 새로운 사회에 대한 꿈은 우리 사회에서 통합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에서 민노당으로 그리고 또 진보신당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이에 다리의 힘은 빠지고 기력은 쇠해간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아노미성 허무주의가 유혹한다. 사회는 어짜피 모두 다 나쁘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마주한 것은 가장 나쁜 사회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다시 맑스에게로? 레닌에게로? ...누구는 그렇다고 하지만 나는 선뜻 동의하지 못한다. 다시 스탈린이라면....

얼만 전 진중권의 유토피아 논쟁이 불붙었던 적이 있다. 유토피아란 환영 혹은 신기루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유토피아적 비전이라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없다면 어떻게 통합된 사회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지지난 남자의 자격편에서 박칼린은 넬라 판타지아의 솔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솔로는 피아노에 얹혀 가는 것이 아니라 저 희망의 세상으로 찢기고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수백명을 이끌고 기어이 가고 말겠다는 의지와 신념을 표출하는 강인함이라고. 그런데 앞장 선 솔로가 가리키는 저 희망의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누가 그 뒤를 따르겠는가? 만약에 유토피아란 그저 이 세상에는 없는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누구나 생각해 버린다면 말이다.


사실 자살론을 읽으며 나는 내내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를 생각했다. 그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사회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면, 까뮈의 출발점에서 시작하자면, 사회가 부조리한 것이라면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 다시말해 어떤 유토피아도 그저 신기루일 뿐이라면 말이다. 물론 <시지프의 신화>는 조금 다른 것들을 다루고 있고, 나는 오래 전에 이 책을 읽어 어쩌면 엉뚱한 연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선생님의 말씀과는 달리, 다 읽고 나면 최소한 자살할 마음은 없어지게 만드는 효과를 내는데 실패한(개인적으로ㅋ) <자살론> 보다는 아마 그 효과에 있어 훨씬 더 유용할 <시지프의 신화>를 나는 다시 읽기 시작했다. 자살에 관한 사회적, 개인적 생각은 <시지프의 신화>를 읽고 난 후에 조금 더 이어가기로 하고, 뒤르켐의 <자살론>에 관한 감상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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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11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칼 마르크스 지음, 최형익 옮김 / 비르투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2012년 6월 8일, 카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나는 프랑스를 좋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베르사이유가 있어서. 물론 나의 베르사이유는 오스칼과 앙드레와 마리 앙뜨와네뜨가 비극적 사랑을 하던『베르사이유의 장미』속의 그 베르사이유다. 그래서 내게 프랑스는 혁명의 나라다. 내가 사랑했던 우리의 오스칼이 근위대장 견장을 뜯어내고, 혁명군을 조준하고 있던 대포를 바스티유 감옥으로 돌림으로써 혁명이 깔끔이 승리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만, 프랑스 역사는 전혀 그렇게 흘러가지 못했다. 김혜린의 만화 『테르미도르』는 로베스피에르가 생 쥐스트와 함께 단두대로 끌려가고, 민중 공화정이 무너진 테르미도르의 반동을 그리고 있다. 테르미도르는 혁명력으로 열월이며, 태양력 7월 무렵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만화로만 배운 나는 그 이후로 프랑스 역사가 어떻게 흘렀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극심한 혼란 속에 나폴레옹이 등장했고, 그가 결국 황제가 되었다는 것 외에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1848년 2월부터 1851년 12월까지, 프랑스 제2 공화정의 수립과정과 몰락에 관한 일종의 연작 칼럼이다. 주간지에 실릴 예정이었던 이 칼럼들은 결국 1852년 봄부터 월간지에 발표되었다가, 총 7편이 책으로 묶여 발행되었다. 나는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몇몇 다른 책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인용문의 출처로 표기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란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은 참으로 요령부득이었다. 만화의 배경 지식정도로는, 브뤼메르가 혁명력 무월(안개의 달)이며, 브뤼메르 18일이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1799년 11월 9일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브뤼메르 18일은 일테면 우리의 5.18과 같은 고유명사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아니라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라는 것은 또 무엇일까? 마르크스는 이 연작 칼럼의 첫머리를 이 의문에 대한 답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뜻밖에도,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 출처가 어딘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한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헤겔은 어디에선가 세계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p10

  ‘비극’은 단적으로 상실에 관한 이야기다. 고통과 파멸, 죽음은 잃어버려서는 안 될 어떤 ‘숭고한 대상’을 상실한 대가이다. 비극은 그 속에 채 피어나지 못한 고갱이, 소중한 그 무엇을 품고 있다. 비극이 가슴을 울리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비극이 소극으로 반복될 때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이 ‘숭고한 대상’ 이다. 목숨을 걸어야 할 ‘숭고한 대상’이 없다면 그 고통과 파멸은 생뚱맞기 그지없는 소동, 어이없는 광태에 불과하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으로 반복되는 역사란, 그러므로 두 번의 죽음이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그러나 그 물리적 죽음은 영웅을 탄생시킨다. 죽은 영웅은 우리가 잃어버린 그 숭고한 대상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소극으로’. 이 두 번째 죽음이야말로 영웅의 진짜 죽음, 영원한 말살이다. 한 바탕의 소극은 비극이 획득한 숭고함의 광채를 박탈하고 영웅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단지 우스꽝스러운 광대였음을 드러낸다.

  루이 보나파르트는 광대, 마르크스의 표현대로라면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두목’ 이다. 공화정을 뒤엎고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뒤 황제가 되었다는 면에서는 루이 보나파르트가 삼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형식적으로 반복했지만, 비극의 주인공 나폴레옹과는 달리 조카 루이는 그 어떤 숭고함도 표상하지 못했다. 나폴레옹 역시 “로마인의 의상을 입고 로마인의 언어를 사용” 했지만, 그는 자기 시대의 임무, “곧 근대 부르조아 사회를 봉건제로부터 해방하고 새롭게 건설”하는 숭고한 임무를 수행했다.

  마르크스가 역사는 반복된다는 헤겔의 명언에 굳이 비극과 소극을 덧붙인 것은 그러므로, 모든 반복의 역사가 소극으로 끝난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폴레옹은 로마를 반복했지만 영웅이었고, 루이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을 반복함으로써 오히려 광대가 되었다.

  「 그러므로 이와 같은 여러 혁명에서 죽은 자를 깨어나게 하는 일은 과거의 투쟁을 단순히 흉내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투쟁에 영광을 부여하는 목적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 과거의 유령으로 하여금 주변을 다시 배회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혁명의 정신을 재발견하기 위한 목적에 봉사했다. 」p13

  그런데 루이 보나파르트는 “오직 과거의 구 유령만이 배회”하도록 했다. 루이가 반복한 것은 혁명의 ‘정신’이 아니라, 혁명의 떡고물이었다. 그러므로 루이 보나파르트를 통해 나폴레옹을 보고자 했던 프랑스 인민들은 거꾸로 “갑자기 이미 사라져버린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퇴보에 대한 어떤 의혹도 불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옛 시절이 다시 도래” 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160여 년 전의 프랑스 혁명을 분석한 이 책이 지금도 전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이런 날카로운 비판들 때문이다. 배회하는 유령들로 날로 음산해지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박정희의 유령, 노무현의 유령, 김일성의 유령까지. 좌우를 막론하고 미래는 없고 오직 과거만이 있다. 지금 다시 박정희를 반복하는 것이 유신독재로 퇴보하는 것인 만큼이나, 노무현의 반복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원칙과 상식의 환상은 깨어졌고 그것만으로 세상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뼈아프게 경험했다. 하물며 김일성의 유령이야 말해서 무엇 할까 싶지만, 현실은 어이없는 난장판이다. 우리는 눈앞에서 주체 유령의 난장질로 산산조각 나고 있는 진보를 목격하고 있다. 이제 주사파는 더 이상 진보의 한 분파가 아니다. 경기동부든, 구당권파든, 그것이 무엇으로 불리든, 주사파 무리들을 퇴출시키지 못한다면, 더 이상 진보에 대한 희망은 없다. ‘레닌 재장전’을 외쳤던 슬라보예 지젝도 북한 체제에 대해서만은 도무지 정체성을 파악할 수 없다고 했다. 지젝은 북한 언론을 인용하며 기막힌 사례 하나를 제시했다. “...북한 최초의 골프장에서 열린 개막 경기에서 친애하는 수령 김정일이 18홀의 경기를 19타로 끝내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선전담당 관료가 어떻게 머리를 굴렸을지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 김정일 동지가 매번 홀인원을 달성했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럴 듯한 상황을 만들자면 단 한번은 홀인에 2타가 필요했다고 하자....” 우연찮게도 이것은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라는 책(p91)에 실려 있다. 18번의 홀인원은 몰라도 17번의 홀인원은 충분히 통용되는 곳이 북한이다. 비록 북한 인민 개개인은 누구도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 해도, 전체로서의 인민, ‘대문자 People’ 로서의 인민은 그 누구도 공식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탈북자 모시기의 말마따나 총살감이기 때문인지, 도대체 북한의 속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어쩌면 지젝의 유언비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이 사실인지, 악의적 음해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주사파, 경기동부, 구당권파의 실체 또한 알지 못한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 믿고 있는 것,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도대체 알 길이 없다.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대표할 국회의원을 뽑았는데, 정작 그들은 양심의 자유를 운운함으로써, 국회의원의 대표성 자체를 부인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들을 국회의원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 무수한 논자들이 그들 개인의 양심의 자유와 국민의 대표자로서 공적 가치관을 밝혀야 할 의무 사이의, 명백히 다른 층위를 설파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직 그들 주사파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짜피 통하지 않을 대화나 어정쩡한 봉합이 아니라, 한 시라도 빨리 끝장을 보고 통합진보당의 정체성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사태를 질질 끌어가면 갈수록 진보는 수렁으로 빠지고, 정국은 퇴보할 것이며, 박근혜는 아니 박정희의 유령은 손쉽게 권좌를 차지할 것이다.

 

 

 

  1848년 2월 혁명 직후, 프랑스에는 곧바로 임시 정부가 구성되었다. 노동 프롤레타리아, 민주공화파 쁘띠부르주아지, 공화주의 부르주아지, 심지어는 왕당파 야당까지, 다양한 정파로 구성된 이 임시 정부는 당연한 수순으로 극심한 권력 투쟁에 돌입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맨 처음 노동 프롤레타리아가 제거되었고, 그 다음엔 쁘띠 부르주아지, 그 다음으로는 공화주의 부르주아지, 그리고 최후의 승자처럼 보였던 왕당파 야당 연합인 ‘질서당’이 마지막으로 루이 보나파르트에 의해 축출 당했다. 혁명은 한 발짝도 진보하지 못하고 역사는 거꾸로 돌았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군사 쿠데타는 파리의 룸펜 프롤레타리아로 구성된 친위대뿐만 아니라 절대 다수 농민의 지지를 받았다. 농지를 개혁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대한 농민들의 향수 때문이었다. 사실 "보나파르트 왕조가 대변하는 것은 혁명적 농민이 아니라 보수적 농민‘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농민은 나폴레옹의 유령을 열렬히 지지했다.

  「역사적 전통은 프랑스 농민들에게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한 남자가 그들에게 모든 영광을 되찾아 줄 것이라는 기적에 대한 믿음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어떤 자가 불쑥 나타나서 자신을 나폴레옹으로 칭했는데, 그 이유는 단지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p141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다. 역사의 퇴보에는 민중의 기만적 믿음이 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왜 민중들이 이런 자기기만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이다. 혁명으로 열린 공간은 나날이 혼탁해 가고, 그 혼돈 속에서 어떤 진보세력도 희망과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를 역사의 주체로 신성시했을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과는 달리,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의 무능을 질타하고 조롱한다.

  「 무기를 자신들의 수중에 확보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는 공화국에 자신의 흔적을 각인시켰고, 그 정부를 사회공화국이라고 선포했다. 그리하여 여기에 근대혁명의 일반적 내용이 제시되었지만, 그 내용은 주어진 조건과 관계 하에서 이용 가능한 수단이나 대중의 교육 수준으로 보았을 때, 즉각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모든 것들과는 기묘하게 모순되는 것이었다. 」 p20

  순수성을 고집하며 불가능한 것들만 요구하는 현대의 좌파와도 닮아 있다. 조금만 타협해도 배신자로 낙인찍고, 대중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순혈주의는 최근 주사파 사태가 공론화되기 전까지는 가장 비판받던 좌파적 태도들 중의 하나이다. 그들은 항상 상황이 무르익으면, 조건이 완전히 갖추어지면 그들의 순수한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 현실에서의 실천을 유예한다. 마르크스는 이런 태도를 헤겔을 들어 풍자했다.

  「 이곳이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여기 장미꽃이 있다. 여기서 춤을 춰라! 」p17

  이 경구는 헤겔이 이솝우화를 변용한 것이다. 로도스 섬에 살 때 엄청나게 높이 뛰었다며 자랑을 하고 다니는 허풍쟁이에게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고 한 이솝우화는 말만 하지 말고 “바로 여기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보여 달라”는 의미라고 한다. 로도스가 장미꽃을 뜻하기 때문에, 헤겔은 “여기 장미꽃이 있다. 여기서 춤을 춰라!”는 대구對句를 덧붙였다. 이 경구는 나도 여기저기서 보았지만,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처음 알게 되었다. 아마도 “여기가 로도스다!” 는 뻥쟁이를 재갈물리는 가장 확실한 입마개가 될 터지만, 단 그 뻥쟁이가 두루 책깨나 읽은 먹물이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로도스에서는!’ 을 외치던 프롤레타리아는 결국 시들시들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

  「 프롤레타리아 일부는 교환은행과 노동자 협동단체와 같은 공론적 실험에 몰두하며, 구세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통해 구세계를 변혁하는 일을 포기하고 차라리 사회의 배후에서 사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제한된 존재조건 안에서 자신의 구원을 성취하려 하지만, 필연적으로 좌절을 겪지 않을 수 없는 운동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p23

 

 

  그렇다고 우리가 고소해할 처지는 더욱 아니다.

  「부르주아지를 위해 공화정을 수립하고,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를 무대 밖으로 밀어내고, 민주파 쁘띠부르주아지들을 당분간 침묵하게 만든 후에 정작 부르주아공화파는 당연하게도 국가를 자신의 재산으로 접수한 부르주아 대중들에 의해 한쪽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이 부르주아 대중은 바로 왕당파였다. ..부르주아 공화국에서 그들은 부르봉이나 오를레앙의 이름이 아닌 자본의 이름을 가지고 자신들이 공동으로 지배할 수 있는 국가형태를 발견했다.」p38

  프롤레타리아는 자신들 이외의 모든 세력에 의해 혁명의 무대 바깥으로 밀려났다. 가장 거칠고 성가신 프롤레타리아가 사라지고 나자, 그 다음 희생 제물은 쁘띠부르주아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부르주아 공화파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획책했던 부르주아 왕당파들 자신이 군사 쿠데타에 의해 날아가 버렸다. 뒤이어 등장한 루이 보나파르트는 손쉽게 혁명의 무대를 접수했다. 이제 2월 혁명이 수립했던 공화정은 완전히 파괴되고, 프랑스 제2제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 결과는 당연히 혁명정신과 공화적인 헌법의 파괴였다.

  「가장 단순한 부르주아적 재정개혁에 대한 요구와 가장 평범한 자유주의, 가장 형식적 공화주의, 가장 협소한 민주주의에 대한 모든 요구는 “사회에 대한 도발”로 단죄당하고 “사회주의”로 낙인찍힌다. 」p25

  2월 임시 정부에 함께 참여했던 각 정파들은 자신들만의 정권을 세우기 위해 가장 위협적이면서도 가장 취약한 기반을 가진 정파들부터 하나씩 제거해 나갔는데, 그 결과는 역설적이게도 그들 자신이 제거되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제거한 그 세력이야말로 더 큰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유일한 힘이었음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방어막을 해체했던 까닭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과 많이도 닮아있다. 진보정당은 역사상 가장 많은 대중적 지지를 획득한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성공에 의해 순식간에 몰락했다. 노무현의 실패를 통해 한 단계 더 전진하려했던 대중은 한 순간에 얼어붙고 말았다. 저것이 진보의 맨 얼굴이라면, 차라리 적당히 타락했지만 적당히 부끄러워할 줄 아는 보수정당인 민주통합당이 낫지 않을까 싶기까지 하다. 직격탄을 맞은 것은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그들을 지지한 일반 대중이다. 내가 던진 정당투표가 국회의원 이석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20여년 개인 투표사의 치욕이다. 이 사태는 한시라도 빨리 끝을 내야한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더욱 철저히 파괴되는 것은 ‘진보’라는 개념이다. 통합진보당이 주사파를 끊어내지 못하면 앞으로 '진보‘는 곧 ’종북‘으로 인식될 것이다. 주사파가 지금까지 보여 온 행태 중 어느 하나도 진보의 개념과 부합하지 않지만, 대중의 인식은 더 이상 그들을 분리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대중은 빠른 속도로 이탈하고 있다. 나는 정말로 정나미가 떨어졌다.

 

  이 사태는 무엇보다 최악의 조건 속에 발생했다. 이미 ‘3공, 5공의 정예’들로 구성된 박근혜의 7인회가 공공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념전쟁’에 나선 박근혜의 지지율은 50%를 오르내리고 있다. 이제 곧 ‘가장 평범한 자유주의’, ‘가장 협소한 민주주의’도 종북주의라 낙인찍힐지 모른다. 이 시대의 종북은 과거의 빨갱이만큼이나 대중적 금기가 될지 모른다. 북한처럼 되느니, 차라리 약간의 자유와 평등을 저당 잡히려 할지도 모른다. 대중은 어쩔 수 없이 진보를 버리게 될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대중 자신의 목 졸림으로 돌아오겠지만, 진보의 실체에 경악한데다 경제적 파산의 위기에까지 내몰린 대중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 보여주는 몰락의 길을 제 발로 걷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우리에게서 완전한 패배만을 보여 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혁명은 철저한 것이다. 혁명은 아직도 고난 속을 방황하고 있다. 혁명은 자신의 과업을 일정한 방식에 따라 수행한다. 1851년 12월 2일까지 혁명은 자신의 예정된 과업 가운데 절반을 완수했을 뿐이다. 지금 나머지 절반을 완수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p137

  이 낙관적 믿음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건, 분명한 것은 우리 역시 진행 중의 역사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물론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역사를 형성해 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조건 지어지고 넘겨받은 환경 하에서” 란 단서가 있지만, 어쨌든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간임을 마르크스가 믿었듯이 나 역시 믿고 싶다.  역사가 인간의 것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의 창조물인지, 나는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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