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독서회는 『빨래하는 페미니즘』을 다루는데,

모두들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재미도 없고 지루하고 읽다가 던졌다는 소문이 분분.

발제도 하고 토론도 해야하는데,

고민하다 최근 이슈에서부터 접근해 보기로 했다.

(이글은 카페에 올린 발제문을 조금 다듬은 것이다.)

 

 

얼마 전 개그맨 장동민이 SNS를 발칵 뒤집어 놓았지요. JTBC <마녀사냥>에서 한혜진(근데 누군지는 모름;;) 의 어떤 점이 싫으냐는 질문에,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아무튼 모든 걸 갖췄다" 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전한 연예기사는 이것을 유쾌한 농담, 웃음 폭탄으로 오히려 칭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위터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장동민의 이전 발언까지 드러나면서, 빅데이터 시대라 감출 방법이 없군요, 방송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었습니다.

 

그때 조나단이라는 분이 이런 트윗을 올리게 됩니다.  혼잣말처럼 쓴 것인데, 엄청난 주목을 끌며 폭풍 리트윗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페미니스트 구호가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다양한 버전으로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조만간 티셔츠나 에코백 같은 것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웃자고 한 소리에 예민한 페미니스트들이 죽자고 달려드는 것일까요?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적 특징인데,

그것 때문에 싫다는 것은

'여자'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겠죠.

역시 동서양 모두 Man 은 오로지 man이군요.

 

설치고 떠들고 말많고 생각하는 여자란 어떤 여자인걸까요?

빨간 머리 앤은 어떤가요?

 

 

 

  

 

소설가 김훈이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의 남성중심주의는 『칼의 노래』만 읽어도 감이옵니다만,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를 하시는 군요.

 

 

페미니즘이 뭐 별거겠습니까?

우리 주위에 널리고 널린 이런 시각들,

우리 자신조차 별 거부감 없이 내면화 해버린 차별들,

이런 것들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떠들어대는 것이 아닐까요?

역시 설치고 생각하고 떠들어야 하는군요. ^^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원제목은

『Reading Women: How the Great Books of Feminism Changed My Life (2011년)』입니다.

 

책 내용에 관해서는 몇 달 전에 써놓은 리뷰를 올려놓겠습니다. http://blog.aladin.co.kr/753199155/7321680

 

토론 주제를 제안한다면,

첫 째는 우리 각자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입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다면 없는대로,

부정적이라면 또 그런대로,

흔히 말하는 꼴페미라면 투사로서,

페미니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얘기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들 째는 엄마로서, 혹은 엄마의 딸로서 바라보는  "자기희생" 입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가 먼저 생각나는군요.

이 책이 아마존 랭킹에 오르며 미국에서 인기를 끈다는 뉴스를 들으며 저는 미국사람들이 왜?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명시적인 주제와는 반대로

독자들이 이 책에서 그리워하는 것은

자기희생을 하는 헌신적인 엄마가 아닐까,

그런 삐딱한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이 가져보지 못한(어쨌든 우리보다 훨씬 빨리, 많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엄마가 자기 욕망을 온전히 드러낼 때,

자식들은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빨래하는 페미니즘』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은 포기할 수 있어요.

돈과 생명은 아이들에게 내줄 수 있어요.

하지만 나 자신을 내주지는 않을 거예요. p156”

 

돈과 생명이 아닌 나 자신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그런 것이 있기는 할까요?

나에게 본질적인 것을 생각해보는 것,

그것 자체가 하나의 각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입장을 바꿔 문제를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생명이든 본질이든 엄마의 자기 희생을 댓가로 성장한 자식은

행복할까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건 아직까지도 유행하고 있고,

고부갈등의 바탕에 깔린 시어머니의 당담함과 자신감이기도 합니다.

 

희생이 희생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엄마는 배신을 느낍니다.

배신자가 되지 않으려면 자식은 '희생-은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엄마의 희생은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고요?

엄마가 희생하지 않으려는 단 한가지가 바로 희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가 희생을 고수하는 한, 자식은 가해자라는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청준의 <눈길>이나 <살아있는 늪>은

엄마에 대한 원죄의식과 그 부채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청준은 옛날분이지요..

엉엉소리내어 울게 만들지만, 한발 더 나아가지는 못합니다.  

 

요즘 직장맘들은 여기에 하나더,

슈퍼우먼 컴플렉스까지 가져야 합니다.

드라마 <미생>의 선차장을 보셨지요?

페미니즘의 승리로 직장으로 진출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자기희생의 당위를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희생하지 않는 직장맘은 죄의식에 빠져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

주위에 참 많습니다.

전업주부들에게는 또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요?

이번 토론회는 이런 것들에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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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5-06-20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런 유래가 있었군요 문구가 하도 멋있길래 원래부터 페미니스트들이 만든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