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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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셋째 주 독서회의 책은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다. 일본 사람이지만, 20여 년 간 알래스카에 살면서 사진을 찍다가, 곰에게 물려 죽었으니, 이방인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원주민도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두 어 달의 여행으로, 자연과 인간의 참모습이 어쩌고 하는 여행기들 같은 호들갑스러움이 없다. 따뜻하지만 담담하고 조금은 쓸쓸하다.

 

알래스카 자체가 그리고 자연이, 그 속의 모든 생명이 아름답지만 쓸쓸하다. 자연의 법칙은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다. 약한 것이 제일 먼저 잡아먹히고, 싸우다 뿔이 얽힌 무스 두 마리를 이리떼와 그리즐리와 어치가 차례로 먹어 치운다. 인간들은 카리부를 사냥하고 고래의 등에 작살을 꽂아, 그 살점을 발라낸다. 자연은 잔인하지만, 그것이 자연이다. 전 메스컴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빙해에 갇힌 고래를 구출하는 작전을 지켜보며, 늙은 에스키모는 이렇게 말한다. “시절이 변했어.... 예전에 이런 고래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었지.” 가혹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북극곰과 수많은 생명들에게 그 고래는 귀한 생명이 되어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도덕이 없다. 자연의 이름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타자의 시선이다.

 

알래스카는 미국에 편입되면서 급격한 문명의 변화를 겪었다. 원주민들의 심각한 알코올 중독 문제는 전통적인 삶과 파도처럼 밀려오는 서구 문화 사이에서 정체성을 잃고 흔들리는 그들의 불안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져 전통적인 삶을 사는 수많은 에스키모와 인디언이 있지만, 알래스카 원주민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백인 또래들에 비해 10배나 많고, 청소년 10명 중 1명이 자살을 시도할 위험이 있다는 통계는 원주민 청소년들이 느끼는 미래에의 불안감이 얼마나 큰지 말해주고 있다. 인구 550명이 안 되는 어느 마을에서는 16개월 사이에 8명의 젊은이들이 잇달아 목숨을 끊었다.

 

「화폐경제가 침투하고, 전통의 샤머니즘이 추방되고, 학교에서는 새로 영어를 가르치고, 토착 언어를 말하면 비누로 입을 씻어야 하는 시절이 시작되었다. 미국의 동화정책이라고는 해도, 태곳적부터 그들의 삶을 엮어주고 서로를 맺어주었던 보이지 않는 끈은 가차 없이 잘려 나갔다. 그 보이지 않는 끈을 우리는 문화라고 부른다. 문화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94」

 

그러나 작가 호시노는 섣부른 여행자들처럼 무조건 전통 문화를 예찬하고, 서구 문물을 재빠르게 받아들인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그럴 수가 없다. 알코올 중독으로 살인을 한 친구가 있고, 그들의 삶이 급속하게 붕괴되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은 변화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현대화 속에서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크게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편리한 것, 보다 쉬운 살림으로 옮겨가는 것을, 거기서 살지 않는 사람이 어찌 비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들의 살림을 오래된 박물관 속에 가두어두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살림살이 역시 끊임없이 변해간다. p196」

 

여행자들의 시선은 늘 과거를 동경한다. 때 묻지 않은 것, 순수한 것, 오래된 것... 자신이 온 곳이 화려하고 빠르고 부유할수록, 느리고 가난하고 변하지 않는 것들을 찾는다. 그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과 삶의 진리와 혼자만의 깨달음을 찾아내었다고 믿으며,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전율한다. 그리고 다시 풍족하고 편리하고 현란한 자신들의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 깨달음의 기쁨은 약삭빠른 세상을 더 영악하고 발 빠르게 살아갈 힘이 된다. 타인의 삶은 오래된 박물관 속에 가두고, 자신의 삶은 풍요로운 물질세계에 담근다. 원래 여행은 그런 것이니까.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발 여행기네 어쩌네 하고, 책을 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더구나 박물관 밖으로 걸어 나오는 현지인을 두고 개탄하고 훈계까지 하는  저자들의 경우는 차라리 읽는 사람이 민망하다. 순수를 잃었네, 돈 맛을 알았네... 지난 주에 읽은 어느 터키 여행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의 정체를 알았다. 야스민의 펜션에는 시골 사람, 아니 터키 사람 특유의 순수함과 자연스러움이 없었다. 그들은 투숙객이 올 때마다 각본에 짜인 듯 움직였고..."  "그러나 뭐든 빨리 배우고 터득하는 야스민네 가족이 영악하게 상대방의 사람들을 사로잡으려는 방식이 나는 피로했다." 이렇게 작가는 자본주적 삶의 방식에 재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터키인을 비판한다. 정작 그녀 자신은  조금이라도 속을까 카펫 한 장을 두고 삼십분을 넘게 흥정을 하고, 차 한 잔에도 장삿속인지 인심인지를 의심하면서도 말이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늘 순박한 얼굴에 천진한 웃음을 띠고, 박물관 속에서 가난한 행복을 영원토록 전시하기 바란다.

 

그래서  이 책의 담담함이  특별하다.  작가의 섣부른 감탄도, 개탄도 없고 , 별스런 깨달음도 없다. 알래스카와 원주민들에 대한 잔잔한 기록이다.  책을 읽으면 조금 따뜻하고 ,또 조금 쓸쓸하기도 하다. 가을날의  햇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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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 소희와 JB 사람을 만나다 - 터키편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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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나는 무엇에나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여행자의 열린 마음과 넘치는 감성을 싫어한다. EBS <테마기행> 에서 가장 겸연쩍은 것이 그 지역, 특히 가난한 지역일 경우 더, 사람들과 어울리며 쏟아내는 온갖 감탄사들이다.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인정많고 착하고 오오!!.... 땟물이 꼬작꼬작한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맨발로 뛰어다니는 그 모습에 나도 빙그레 웃음짓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삶의 진리를 발견한 듯 호들갑을 떨어대면 정말이지 낯이 간지럽다. 꼬질꼬질한 아이들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그의 온몸은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로 칭칭 감겨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를 보는 나의 눈은 처음부터 뒤틀려 있었다. 어디 너는 어떤가 한번 보자는 심보? 그런 책을 왜 읽었냐하면 물론 독서회 때문이다. 내가 읽고 싶은 책만 읽자고 할 수는 없으니까.

 

 

 

걸렸다! 처음부터 비딱한 내 눈에 딱 들어온 건 영어 조기교육 이었다. 이 책은 엄마가 세 살 난 아들을 데리고 터키 베낭여행을 하는 이야기다. 엄마는 아들이 돌이 되면서부터 영어와 국어 2개국으로 대화를 했다고 한다. 이 아들에게 '엄마의 말', mother tongue은 두개다. 엄마가 영어 조기교육을 시작한 이유는 '영어란 더 넓은 세상의 많은 것들과 소통하는 기쁨을 알게 해주는 주요한 수단" 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국의 부모들처럼 입시나 취업이 목적이 아니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 한권을 고를 때에도 국문학에 그치지 않고 그 몇 십 배에 달하는 선택의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팝송 한 곡이 그 음운 그 느낌 그대로 가슴에 알알이 박히는 것, 여행 시 관광지의 유적을 힐끔 보고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민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 속에 잠겼다 나오는 것....p13」

 

훌륭하다. 나도 가끔 원서가 읽고 싶을 때가 있다. 번역이 엉망일 때, 글맛을 생생히 느끼고 싶을 때, 내 초라한 영어실력에 후회가 남는다. 나도 한때는 영어를 좀 했다. 그런데 학교를 졸업하고 20여년이 되도록 내 삶에 영어가 필요한 경우가 별로 없었다. 직장 초년 시절 새벽에 밥도 먹지 않고 영어회화 학원을 다녔어도 정작 내가 맡은 일은 외국인 콧잔등 한번 볼일 없는 국내업무였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랬다. 승진 시험에나 필요할까, 설사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일을 한다 해도 영어로 처리해야 할 업무는 없었을 것이다. 국내 영업을 하는 사람이 누구를 붙잡고 영어로 물건을 팔겠는가. 그런데도 영어는 모든 직장인의 두통거리였다. 실무에는 개똥만큼도 필요 없지만, 승진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으니. 영어는 모순 그 자체였다. 잘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목숨 줄이었으나, 정작 써먹을 데는 하나도 없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영어 실력과 업무 능력은 전혀 비례하지 않았거나, 아무 관련이 없었으니 비례를 산정해 볼 수도 없었다.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도 마찬가지다. 영어가 모든 교육에 우선하는 것은 영어의 실용성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학생들을 차별화하기에 가장 적절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은 이미 한 때 개천에서 용을 키울 수 있던 시절을 벗어났다. 교육은 아이의 재능이 아니라 부모의 재력이 무한 경쟁하는 각축장이 되었다. 개미들이 혹시나 하는 기대로 주식시장을 벗어나지 못하듯이 가난한 부모들 역시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사교육 시장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든다. 승자는 자명하다. 개미가 큰 손을 이기는 시장은 없다. 특히 영어 교육 시장은 더 그렇다. 자그마한 예외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돌대가리 날라리도 십 여 년만 미국 물을 먹여주면 방정식은 못 풀어도 외국인과 이야기는 할 수 있다. 돈과 영어와 명문대와 대기업과 사회지도층이 일직선으로 연결되면 부의 세습뿐만 아니라 권력과 문화의 세습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우리시대 영어는 계급 고착화의 토대에 놓여 있다.

 

물론 영어 자체는 무죄다. 영어는 우리에게 선택의 가능성을 넓혀준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그 가능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세계화 시대 운운하지만, 관광객과의 몇 마디 외에 영어를 실제로 써먹을 곳이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기껏 외국인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친절한 한국인이 되기 위하여 가정 경제가 휘청하도록 영어에 돈을 쏟아 부어야 한단 말인가. 결코 서민들에게는 돌아올 수 없는 그 바늘구멍 같은 가능성을 위하여 돌박이 부터 머리 희끗한 직장인까지 영어에 목을 매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한마디로 웃기는 짓이다.

 

책 한권, 팝송 한곡, 지역민과의 대화....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이것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전 국민이 돈을 퍼부으며 사교육에 매달릴 만큼 가치 있는 것인가?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 인생을 걸어도 좋을 만큼 가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가치를 지향하고 산다. 고흐는 그림 한 장에 목숨을 걸었고, 베토벤은 귀를 잃고도 음악에 인생을 바쳤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그림 한 장, 음악 한곡, 소설 한편, 가치 있는 그 모든 것들에 번번이 모든 것을 걸 수는 없다.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영어에만 보편성을 부여한다. 마치 영어만 잘하면 문학을 더 심오하게 이해할 수 있고, 예술적 감수성이 더 풍부해지고, 인격이 훌륭해진다고 믿는 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더할 나위 없는 인간일 텐데, 미국엔 왜 그렇게 총기사건도 많고 가난한 사람도 많고 인종차별주의자도 많은 것일까!

 

작가가 영어를 통해 아들에게 열어주는 삶의 가능성들은 전혀 비난받을 것이 못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영어 광풍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영어교육의 병폐를 은폐하도록 돕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어떨까? 나는 굳이 작가가 아들과의 대화를 영어로 옮겨 쓰면서, 조기 영어 교육을 그렇게 자랑스러워 할 필요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지인에게 들은 얘기로는 ‘nanny' 가 강남에는 인기인가 보다. 보모를 말하는데,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 학생들을 고용해 보모를 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영어교육을 한단다. 입주 생활 가정교사인 셈이다. 그것이 부담스러운 집에서는 필리핀 가정부를 고용하기도 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이제 모든 것을 우아하게 처리할 줄 안다. 아등바등한 경쟁 속에 직접 뛰어들지 않는다. 작가의 영어교육은 거의 이런 수준에 가깝다. 일상어로 영어를 할 만한 엄마들이 한국에는 그다지 많지 않다. 세 살짜리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몇 달씩 배낭여행을 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가정도 당연히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혜택 받은 자신의 조건을 마치 일반화 시킬 수 있다는 듯이 말한다. 다만 욕망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인 듯이 말이다. 살아남기 위해 가혹한 사교육 시장에 등골을 뽑히는 서민들이 가엽고 어리석다는 듯이. 문제의 구조적 측면은 보지 않고,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초월적인 시선은 무책임하다. 선택받은 소수만이 구조를 뛰어넘을 수 있다. 남은 사람들에게 구조는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지, 뛰어넘을 수 있는 장애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구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뿐이다.

 

 

 

글이 엉뚱하게 흘렀다. 독서회에서 할 말을 가볍게 기록해두려 했는데, 논리가 부족한 말들을 쏟아내고 말았다. 교육에 대해 별반 아는 것이 없는데 이러쿵저러쿵하고 말았다. 그럴 때는 글이 현실에서 둥둥 뜨게 마련이다. 여하튼 그렇고. 진짜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다른 것이다. 여행자의 시선이 주는 불편함인데 그건 나중에 해야겠다. 맛없는 글이 벌써 충분히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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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0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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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1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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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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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출판사는 번역서의 제목을 원제와 달리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걸까? 내가 읽은 알랭 드 보통의 『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의 우리말 제목은 『프루스트를 좋아 하세요』이다. 뭘 알아야 좋아하든 말든 하지. 프루스트가 김수현도 아니고-.- 여하튼 새로 번역된 이 책의 제목은 『프루스트가 우리 삶을 바꾸는 방법』이다. 번역자도 달라서 목차도 조금씩 표현이 바뀌었다.

“일상성의 발명가” 알랭 드 보통의 진정한 자기 계발서. 이 새로운 번역본에 대한 ‘출판사 제공 책 소개’다. 아마 이 소개 문구를 먼저 보았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자기 계발서를 아주 싫어한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싫고, 세상을 그렇게 똑똑 부러지게 살 수 있다는 말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몇 달 전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를 처음 읽었을 때, 이 책이 자기 계발서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발제를 위해서 다시 읽으며 저 문구를 되새겨 보니, 자기 계발서가 맞는 것 같다. 책 구성도 아예 아홉 개의 ‘~하는 법’으로 되어 있다. ‘4, 성공적으로 고통 받는 방법’에는 실제 삶에서 프루스트 자신과 소설 속 프루스트의 인물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고 어떻게 대처했는가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그것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교훈까지 친절하게 덧붙여 놓았다. ‘진정한’ 자기 계발서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나는 왜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첫 째는 알랭 드 보통이 자신의 목소리를 전혀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기와 평론의 형식을 갖고 있다. (고 한다) 모든 이야기와 교훈은 프루스트로부터 비롯된다. 프루스트의 편지, 프루스트에 관한 지인들의 평가, 프루스트 자신의 삶과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의 작중 인물들로만 이 자기 계발서는 채워져 있다. 알랭 드 보통이 한 것은 일종의 짜깁기, 취사선택이고 편집이다. 이것만으로 멋진 책이 되었다니 놀랍지만 사실이 그렇다. 알랭 드 보통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남의 간섭 싫어하는 까다로운 독자마저도 능숙하게 다루어 낸다. 두 째는 자기 계발서 하면 떠오르는 성공신화, 유용성, 자기수양 같은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아주 없지는 않지만, 눈에 띄게 속물적이거나 혹은 현실감 전혀 없는 무념무상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기 계발서라는 책 소개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출판사의 상업성이 불가피하다 해도 프루스트-『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알랭 드 보통으로 연상될 수밖에 없는 이 책을 꼭 자기 계발서라고 해야 하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만큼 자기계발서와 거리가 먼 책이 있을까? 물론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를 겨우 100여 쪽 읽은 처지로 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이미지로나 겨우 100쪽의 그 표현하기 힘든 느낌으로나 자기 계발서를 갖다 대기는 그렇지 않은가? 모든 것을 ‘상품성’ 으로만 다루어야 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자기계발서,『프루스트가 우리 삶을 바꾸는 방법』은 어떤 식으로 우리를 가르치는 걸까? 내가 제일 좋았던 부분은 ‘9. 책을 내려놓는 방법’ 이다. 프랑스에는 일리에-콩브레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소도시인데, 관광객들이 복닥거린다. 한 손에는 카메라를, 또 다른 손에는 마들렌 봉지를 들고 아미오 아줌마의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이다.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그냥 일리에 였다. 그런데 푸르스트가 어린 시절 한 때를 보냈고,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의 가상 도시인 콩브레의 모델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시당국은 미련 없이 이름을 바꾸어 버렸다. 관광 안내소의 소책자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깊고도 신비한 느낌을 포착하고 싶다면 그 책을 읽기 전에 일리에 콩브레를 방문하는 데 하루 전체를 바쳐라. 콩브레의 마법적인 힘은 오직 이 특별한 장소에서만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고 쓰여 있다. 우리나라도 대체로 이런 모양새다. 누구누구 문학기행 같은 것들. 이런 방법은 관광산업에는 유익하다. 마들렌을 구워내느라 정신없는 일리에 콩브레의 빵집들은 북적댄다. 그러나 독자들에게는 전혀 유익하지 않다. 일리에-콩브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과 그저 그런 맛의 마들렌뿐이다. 프루스트에게 일리에는 특별하다. 그러나 프루스트의 독자에게 일리에는 아무런 인상을 주지 못한다. 프루스트 자신은 어떤 번역서의 서문에, 그가 보았다면 일리에-콩브레의 관광산업을 우스꽝스워 했을 것이라고 확신할만한 글을 남겨 놓았다.

 

「우리는 밀레가.... <봄>을 통해 보여준 들판을 가서 보고 싶어 한다. 우리는 클로드 모네가 우리를 센 강의 양안에 위치한 지베르니로, 아침 안개 속에서 분별할 수 없는 그 강의 굽이로 데려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실 밀레나 모네가 그 근처를 지나가거나 거기에 머물게 되고 다른 것보다 그 길, 그 정원, 그 들판, 그 강의 굽이를 그리게 된 것은 가족이나 지인이 우연히 거기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이 세계의 다른 것들과 다르게, 그리고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알 수 없는 그림자처럼 그 속에 천재가 포착할 수 있었던 인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그들처럼 고유하고 독창적으로, 그들이 그렸을 수도 있는 모든 풍경의 유순하고 무관심한 표면 위를 방황할 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

 

그림의 미는 그 안에 그려진 것들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을 바라보는 눈에, 천재의 눈으로 포착한 인상에 있다. 그 장소들은 우연히 선택된 곳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곳이든 <봄>의 풍경이 될 수 있고, 콩브레가 될 수 있다. 일리에-콩브레를 방문해 마들렌을 먹는다고 해서,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의 화자가 느꼈던 강렬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기대한다면, 책에 대한 물신주의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방문해야 할 것은 일리에 콩브레가 아니다. 프루스트에 대한 참된 경의란 그의 눈을 통해서 우리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지, 우리의 눈을 통해서 그의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닐 것이다.」

 

마지막 장을 넘겼다면, 책을 내려놓고 작가에게서 배운 눈으로,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책이란 저자에게는 ‘종결’이지만, 독자에게는 ‘자극’이 되어야 한다. 저자가 떠나버린 곳에서 자신의 지혜가 시작된다는 것을, 저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소망을 부여하는 것뿐임을 깨달아야 한다. 저자가 우리 삶의 답을 주기를 바라는 것은 저자를 신탁의 전달자로 맹신하는 것과 같다. 프루스트는 이렇게 충고했다.

 

「독서는 정신적 삶의 문턱 위에 있다. 그것은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할 수 있지만, 정신적 삶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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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세계사 창비청소년문고 5
이영숙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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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단연 ‘프랑스 혁명’ 이다. 『식탁 위의 세계사』 에는 <빵-마리 앙투아네트를 둘러싼 오해들> 이란 장에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였는지, 케잌을 먹으라였는지, 하여튼 그 유명한 말이 앙투아네트가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악법도 법이다.” 란 말을 소크라테스가 한 적이 없다는 것과 겉보기에는 비슷하다. 사실을 정확히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에 관해 하필 해야 할 이야기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해를 풀어주는 것일까?

 

 

 

  프랑스 혁명은 1789년에 일어났다. 그런데 혁명은 언제 끝이 났을까? 우리는 프랑스 혁명을 20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프랑스 혁명은 어떤 관점에서는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까지 보지 않는다 해도 혁명은 거의 100년 가까이 걸쳐 일어났다. 내가 알고 있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이야기만 해도 시대별로 몇 가지는 된다.

 

 

 

 처음 혁명군이 바스티유를 공격했던 1789년의 이야기는, 당연히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오스칼과 앙드레, 앙투아네트와 페르젠 백작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지만, 혁명을 전후한 프랑스 사회의 모습이 세세히 그려져 있다. 앙투와네트의 빵 보다 더 유명한 ‘목걸이 사건’, 삼부회의 소집, 운명의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공격, 그리고 해외 도피를 시도하다 붙잡힌 국왕 일가에 대한 처형까지, 그 많은 사건들을 나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보며 우리 역사보다 더 생생히 느꼈다.

 

 

 

  그러나 혁명은 순탄하지 않았다. 1794년 테르미도르 반동이 일어났다.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자코뱅파가 몰락하며 혁명은 혼란에 빠졌고, 결국 5년 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군사 쿠데타를 위한 길을 마련해 주었다. 나는 이 반혁명의 비극 또한 만화로 배웠다. 김혜린의 『테르미도르』다. 홍세화가 추천사를 써주고, 공공 도서관에 비치될 만큼 좋은 만화다. 물론 김혜린의 순정만화답게 절절하게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로베스피에르의 몰락은 단순히 한 사람 혹은 한 정파의 몰락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중 권력의 몰락이자, 혁명 정신의 쇠퇴였다. 프랑스 혁명은 우리의 얄팍한 상식에는 뜻밖이게도, 국왕에게 권력을 빼앗겼던 특권층에 의해 시작되었다. 프랑스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상징하듯 유럽의 그 어느 나라보다도 권력이 왕에게 집중된 절대왕정이었다. 그러나 국내외 상황이 악화되자, 특권계급은 왕을 도와주기 보다는 권력을 되찾으려 했고, 이에 굴복한 왕은 특권계급의 요구대로 삼부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막상 판이 만들어지자 잽싸게 끼어들어 주도권을 거머쥔 것은 부르주아들이었다. 그러자 국왕과 대립하던 특권계급이 왕과 한 편이 되어 버렸고, 부르주아지들은 굴복하거나 민중에 호소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프랑스 혁명은 처음부터 민중이 주도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특권 계급 즉 귀족 계급이 왕의 권력을 나누어 먹기 위해, 그 다음에는 신흥 부르주아지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민중이 부르주아지들의 마지못한 선택으로 혁명에 끼어들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번 발을 들인 민중은 광범위한 대중 동원력으로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폭발력을 발휘하며 혁명을 키워 나갔다.

  ‘평등, 자유, 박애’ 라는 혁명 정신만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우리에게 프랑스 혁명은 순수한 열정과 순고한 가치로 찬연하게 빛나지만, 실상 혁명 세력은 내부에서 이권에 따라 분열되어 있고, 혁명은 늘 반혁명의 위협 앞에 놓여 있었다. 로베스피에르는 부르주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중과의 굳건한 연대만이 혁명을 지킬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혁명의 각종 세력 중 로베스피에르 파가 가장 민중과 가까이 있으며 민중의 사랑을 받았다. 부르주아지들은 평등은 외면하고 사적 소유권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체제를 수립하려 하였다. 민중이 요구한 것은 부르주아적 자유가 아니라 평등자유였다. 그러므로 테르미도르 반동은 민중이 혁명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된 분수령이었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과 함께 민중의 동력을 상실한 혁명은 대번에 기세가 꺾여 버렸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을 향해 굴러 떨어졌다. 프랑스 혁명의 종결을 언제로 보느냐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는 1799년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켜 종결된 것으로 보고, 1789년부터 1799년까지를 프랑스 '대'혁명 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보통 프랑스 혁명이라고 할 때는 이 기간을 말한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거기서 끝난 것은 아니다. (로베스피에르에 관한 내용은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머리말을 참고했다. 빌려놓고 아직 본문은 읽지 못했다.)

 

 

 

  프랑스 혁명은 정말 어지럽다. 1789년 혁명이 시작되었고, 1792년 프랑스는 역사적인 공화국을 수립하였지만, 1794년 테르미도르 반동을 거쳐 1799년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1804년에 결국 나폴레옹은 공화정을 폐지하고 제정시대를 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완전히 몰락하고 프랑스는 다시 절대왕정으로 복귀한다. 이후 1830년 7월 혁명이 있었고, 입헌군주제가 도입되었으나, 부르주아 계급의 이권을 중심으로 한 이 7월 왕정은 민중들에게는 여전히 불만의 대상이었다. 1832년 다시 6월 봉기가 일어난다. 이것이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뒷부분에 나오는 그 유명한 바리케이드 전투의 배경이다. 그러나 6월 봉기는 처참하게 실패하고, 7월 왕정이 이어지다가 1848년 2월 혁명이 발생한다. 2월 혁명의 결과 프랑스는 다시 공화정을 선포하고, 제2 공화정이 시작되었으나 투표에 의해 당선된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가 3년 후인 1851년 쿠데타를 일으켜, 프랑스는 제2 제정 시대로 돌입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반복한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 정국을 분석한 마르크스의 책이 바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다. 루이 보나파르트는 20년간 집권했고 1871년 제 3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약 100년 가까이에 걸쳐 ‘혁명’ 만 세 번이 있었고, 공화정-제정-왕정-공화정-제정-공화정을 반복했다. 프랑스는 위대한 혁명으로 단번에 오늘날 같은 근대국가로 도약한 것이 아니다. 100년에 걸쳐 희망과 배신과 음모와 무엇보다 피, 죄 있는 자와 순결한 자를 가리지 않은 무수한 피를 요구했던 험난한 역사였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그에 비하면 차라리 순탄하다고 할 정도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실 억울했을 수도 있다. 영화와 만화, 소설, 전기 등 현대의 대중문화가 전하는 그녀는 우아하고 기품 있고 순수하다. 그녀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단지 혁명의 소용돌이에 비극적으로 휩쓸렸을 뿐이다. 우리가 어떻게 그녀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진실로 그녀는 무죄인 걸까?

 

 

 

 

  소설 『레미제라블』은 지루하다. 그러나 재미있다. 원작 5권을 1권으로 줄인

 

다면 분명 덜 지루하겠지만, 소설의 지루함만이 줄 수 있는 ‘잉여적’ 재미는 사라질 것이다. 나는 지루할 틈 없이 사건이 연속되는 『28』과 『검은 꽃』이 왜 책을 덮는 순간 그걸로 끝나 버리는지, 어떤 점이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과의 차이인가 생각해 보았다. 그것들에는 고전이 갖고 있는 ‘잉여’가 없었다. 하품을 깨물게 하고, 책장을 건너 뛰게 하는 그런 ‘잉여’가 없다. 여관주인 테나르디에가 전사자의 주머니를 털며 보여주는 워털루 전투의 장면도, 꼬맹이 가브로슈가 파리의 뒷골목을 누비며 보여주는 민중들의 비참한 삶도, 미리엘 주교가 숲 속의 국민공회 의원 출신의 노인과 벌이는 논쟁 같은 것이 없다. 그런 잉여적 모습들이 없어도 레미제라블은 여전히 레미제라블이겠지만, 과연 고전이 될 수 있었을까 싶다.

 

 

 

  말이 엇길로 새었지만, 『레미제라블』의 배경은 1800년대 초반부터 1832년 6월 봉기까지이다. 대혁명이 지나갔지만, 민중의 삶은 여전히 참혹하다. 빵 한 덩이,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빵은 앙투아네트의 빵이 아니라 아마도 장발장의 것일 텐데, 그 빵 한 덩이가 19년형이 되었다는 이야기 자체가 민중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준다. 어린 조카가 굶어 죽는 것을 볼 수 없어 장발장은 빵을 훔쳤다. 그렇게 죽어 가거나 가브로슈처럼 도둑질을 하며 거리를 유랑하는 아이들은 수없이 많았다.

  『레미제라블』의 초반부에는 미리엘 주교와 국민공회 의원을 지낸 노인의 매우 흥미로운 논쟁이 그려져 있다. 노인의 임종 소식을 듣고 숲속으로 찾아간 미리엘 주교는 국왕 루이16세의 처형과 어린 왕자(루이 17세)의 참상을 언급하며 국민공회의 잔혹함을 비판한다. 어린 왕자는 아무 죄도 없었다는 것이다. 노인은 그렇다고 한다. 왕자는 죄가 없다. 그리고 또 가난해서 죽어간 프랑스의 수많은 아이들도 죄가 없다. 그러나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한다면 민중의 편을 들겠다고. 민중이 훨씬 고통 받아 왔으니까.

 

 

  「국민공회 의원은 손을 뻗어 주교의 팔을 잡았다.  "루이 17세! 그러면 당신은 누구에 대해서 눈물을 흘리는 거요? 죄 없는 아이에 대해서요? 그렇다면 좋소. 나도 함께 눈물을 흘리겠소. 하지만 왕자에 대해서라면, 그건 좀 생각해 봐야겠소. 카르투슈(1693~1721년. 파리 부근에 출몰했던 도적단의 두목. 산 채로 수레바퀴형에 처해졌음)의 동생은 단지 그의 동생이라는 죄만으로 그레브 광장에서 양쪽 겨드랑이를 묶인 채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매달려 있었소. 이 죄 없는 소년의 죽음은 루이 15세의 손자라는 죄만으로 탕플 성의 탑 속에서 죽어간 루이 17세 못지않게 가슴 아픈 일이오."  "그런 식으로 두 사람을 비유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카르투슈를 위해서요, 아니면 루이 15세를 위해서요? 어느 쪽을 위해 항의 하시는 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주교는 이곳에 온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기묘하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국민공회 의원은 말을 이었다.  "아! 당신은 비정한 진실을 좋아하지 않는구려. 그리스도는 그것을 좋아하셨지요. 그분은 채찍을 들고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셨소. 불이 일 듯한 그의 채찍은 엄하고도 분명하게 진리를 말해 주었소.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마태복음> 19장14절)' 외쳤을 때, 그는 어린아이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소. 그는 바라바(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그리스도 대신에 용서를 받은 죄인)의 아들과 헤롯(잔학하기로 유명한 유태인의 왕) 왕의 아들을 대등하게 부르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어요. 죄 없는 마음이 그대로 왕관이 되는 거요. 왕손일 필요가 없소. 누더기를 걸치고 있든 백합(왕가의 문장)으로 장식되어 있든 똑같이 훌륭한 것이오."  "옳은 말씀입니다." 하고 주교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듭 말씀드리오만," 하고 국민공회 의원은 말을 이었다. "당신은 루이 17세의 이름을 꺼냈소. 이 점에 관해서는 서로 이해하고 싶소. 우리들은 죄 없는 사람들, 순교자들, 어린아이들, 신분이 높고 낮은 것에 관계없이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자는 거지요? 그건 나도 동감이오. 그렇다면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1793년 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특히 루이 17세 이전 시대를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오. 나도 당신과 함께 국왕의 아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겠소. 당신이 나와 함께 민중의 아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신다면."  "저는 모든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하고 주교가 말했다.  "평등하게 말이지요!" 하고 G가 외쳤다. "만약에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야만 한다면 당연히 민중 쪽이어야 할 것이오. 민중 쪽이 훨씬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으니 말이오."」

 

 

  어린 왕자, 루이 17세는 왕자라는 이유로 탑에 갇혀 죽었다. 마리 앙투아네트 또한 그렇다. 사치와 낭비가 심하고, 오스트리아의 공주였기 때문이 아니라 프랑스의 왕비였기 때문에 민중의 분노와 오해를 샀다. 중요한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행동이 아니라 그녀가 왕비라는 사실 자체에 있다. 그들이 훌륭한 행동을 해서 왕자와 왕비가 된 것이 아닌 것처럼 그들의 행동이 개인적으로 나빴기 때문에 처벌 받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민중을 수탈한 부르봉 왕가의 상징이다. 인간적으로 순박했다고 알려진 루이 16세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과오는 그가 프랑스의 국왕이라는 것에 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프랑스가 평등 자유의 공화정임을 선포한 이상 국왕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외국으로 탈출하다 붙잡혀 온 국왕을 두고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는 논쟁이 일자 생쥐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중도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군림하거나 아니면 죽어야 합니다.... 누구도 죄 없이 군림할 수 없습니다. 군림하는 왕의 광기는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왕은 반도이며 찬탈자입니다.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p364」

 

 

  왕과 공화국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왕가의 핏줄을 이어 받았다는 이유로 군림할 수 있었다면, 단지 왕가의 핏줄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죽음도 받아들여야 한다. 프랑스 혁명은 그 왕가의 혈통들이 민중을 기아와 빈곤 속으로 몰아넣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오해들은 민중의 분노가 만들어낸 허구일지라도, 민중의 분노는 정당하고 위대하다.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을 때 그녀는 이미 죽어야 했던 것이다. 우리가 그 억울함에 대해 먼저 귀 기울여야 할 대상은 앙투아네트가 아니라 장발장과 팡틴, 가브로슈이다. 늙은 국민공회 의원이 말했듯 민중이 훨씬 오랫동안 고통 받아 왔기 때문이다. "만약에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야만 한다면 당연히 민중 쪽이어야 할 것이오. 민중 쪽이 훨씬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으니 말이오."

 

 

 

 

 

 

  『레미제라블』의 마지막은 실패로 끝난 1832년 6월 봉기다. 1848년까지 지속된 입헌군주제 아래 부르주아지의 권익은 상당히 확장되었지만 민중은 여전히 빈곤 속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 결과 1848년 2월 혁명이 발생했다. 왕정이 폐지되고 다시 공화정이 선포되었는데, 투표를 통해 집권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였다. 3년 후 루이는 영구 집권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된다.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1848년 2월부터 1851년 12월까지, 프랑스 제2 공화정의 수립과정과 몰락을 다룬 일종의 연작 칼럼이다. 이 책은 160여 년 전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시론이지만, 현재의 우리 정치상황에 대입해도 어색할 것이 하나도 없다.

  루이 보나파르트가 선거로 당선된 이유는 단 하나다. 그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이기 때문이다. 혼란에 시달리던 프랑스 농민과 민중들은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에 홀딱 넘어갔다. 나폴레옹처럼 프랑스를 구원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이 보나파르트는 한낱 룸펜의 우두머리에 불과했다.

 

 

  「역사적 전통은 프랑스 농민들에게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한 남자가 그들에게 모든 영광을 되찾아 줄 것이라는 기적에 대한 믿음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어떤 자가 불쑥 나타나서 자신을 나폴레옹으로 칭했는데, 그 이유는 단지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p141

 

 

  2월 혁명으로 구성된 임시 정부에는 노동 프롤레타리아, 민주공화파 쁘띠부르주아지, 공화주의 부르주아지, 심지어는 왕당파 야당까지, 다양한 정파가 참여했다. 그리고 곧바로 극심한 권력 투쟁에 돌입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맨 처음 노동 프롤레타리아가 제거되었고, 그 다음엔 쁘띠 부르주아지, 그 다음으로는 공화주의 부르주아지, 그리고 최후의 승자처럼 보였던 왕당파 야당 연합인 ‘질서당’이 마지막으로 루이 보나파르트에 의해 축출 당했다. 혁명은 한 발짝도 진보하지 못하고 역사는 거꾸로 돌았다. 제 2공화정은 폐지되고 제2 제정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노동 프롤레타리아가 축출당할 때 모른 채 했던 부르주아지들은 결국 차례차례 제거 당했다. 그들을 지켜 줄 수 있었던 것이 최고 전위의 노동 프롤레타리아란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이 얼마나 오랜 기간, 얼마나 극심한 혼란과 패배와 후퇴를 반복하며 전진했는지 생각하다, 뜻하지 않게 긴 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가 프랑스 역사를 세세히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와 프랑스 혁명이 절대 무관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근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프랑스 혁명의 자장 안에 놓여 있다. 프랑스 혁명은 ‘진정한 근대’ 의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자유, 평등, 국민주권, 헌법, 인권 같은 개념들이 구체성을 획득하며 역사에 정착한 것은 바로 프랑스 혁명에 기인한다. 프랑스 혁명시기의 우리나라는 정조 치세 정도에 해당하는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정조 치세의 결과라기보다는 프랑스 혁명의 성과에 바탕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에 관한 영화, 소설, 만화들에 그토록 마음이 끌리는 것은 아마도 프랑스 혁명이 이루어낸 성과들이 우리 정신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위안은, 혁명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의 패배는 긴 혁명의 역사에서 한 발의 후퇴에 불과할 뿐일지 모른다. 인내하며 생각을 가다듬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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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세계사 창비청소년문고 5
이영숙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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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술 읽히는 책이다. 선생님 엄마의 전형적 말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쉽고 요령있는 말솜씨다.  세계사를 처음 접하는 아이들에게 유익할 것 같다. 그러나 독특한 글맛이나 깊이있는 사유의 흔적은 없다. 어디선가 듣고 읽었던 이야기들이라,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다. 다만 감자, 포도, 돼지고기 따위의 식재료를 가지고 세계사의 단면을 짚어보는 형식은 참신하다. 그러나 복잡한 사건이 너무 일면적으로 묘사되는 단점이 있다. TV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의 에피소드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역사는 중립적이지 않다. 저자의 가치관이 항상 개입되어 있다. 어떤 사건을 선택하는가, 어떻게 묘사하는가,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르게 기록된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시각은 중도에서 진보 사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마오쩌둥, 흐루쇼프 등에 대한 평가가 너무 안이해 보인다. 마리 앙뜨와네뜨와 루이16세에 대한 시각 역시 너무 인간주의적인 것 같다. 프랑스 혁명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왕을 처형할 수 밖에 없었다. 로베스 피에르가 말했듯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왕과 왕비라는 사실 그 자체 때문에  처형당해야 했던 것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쉽게 쓰는 얇은 책에서 10개나 되는 사건을 깊게 다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역사란 한낱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나 현재의 관점에서 새롭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반복함으로써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과거를  어떻게 반복할 것인가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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