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읽는 통섭의 한국사 - 명작 밖으로 나온 한국사, 한국사 속으로 들어온 명작
이동연 지음 / 북오션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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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작으로 읽는 통섭의 한국사'!! 책 제목이 참으로 멋있다. 한국사를 명작들과 같이 읽는다는 기획 자체는 참으로 산듯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상은 크지만 그 이상을 실현할 능력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가이다. 저자 이동연은 풍부한 문학작품을 읽고 이를 한국사에 녹여내려 노력했다. 문학만 공부하는데도 벅찰텐데 역사까지 공부해야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동연의 노력과 시도 자체에 일단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이동연 이상은 높지만,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기 힘들다. 왜 그럴까? 이동연이 빅뱅에서 부터 역사를 서술하면서 '어린왕자'를 먼저 언급했다. "우리가 서로 길든다면, (중략) 가령 4시에 만나기로 했다면 내 가슴은 벌써 3시부터 설레기 시작하리라"-14쪽 라는 문장을 제시한 것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역사를 서술하면서 이렇게 아름답게 서장을 시작할 수 있을까? 이동연의 이러한 시도를 실생활에서 사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명작으로 읽는 통섭의 한국사'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기대는 거기까지 였다. 

  이동연은 '환단고기'에 근거하여 역사를 설명했다. 역사 학계에서 위서로 결론난 책을 근거로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를 서술하는 자체가 나로서는 불편했다. 저자의 역사에 대한 전문성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책에 서술된 내용 중에서 내가 보지 못한 사료에서 근거해서 서술된 내용이 있겠지만, 혹시 작가의 상상력과 '환단고기'와 같은 조작된 사료를 근거로 주장하는 내용이 있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기에 역사책을 서술하면서 당연히 오류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애교수준으로 믿고 책을 편히 읽어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이동연의 책은 나에게 불신을 안겨주었다. 

 책을 다읽고, 생각에 잠겼다. 이상은 높지만, 이를 실천할 능력이 없는자는 이상을 이루려 도전하는 것이 부적절할까? '논어'에 문지기가 '당신은 누구의 제자요?'라고 묻자, 자로는 '나의 스승은 공자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문지기는 '아! 그 안되는 걸 알면서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말이요.'라고 답했다. 역사에 대한 해박하면서도 정확한 지식을 갖았다고 보기 힘든 이동연이 명작과 한국사를 통섭시키려한 노력은 참으로 놀랍다. 지금은 그 결과물이 초라하다할지라도, 이러한 노력이 쌓인다면 뒤에서 오는 작가에게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이동연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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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3-09 1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
환단고기는 정말...

별 한 개가 빤짜거립니다.

강나루 2022-03-09 17:11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도 역사전공이군요^^

mini74 2022-03-09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환단고기를 근거로 하는 책이라니 헉. 강나루님 속상하셨겠어요 ㅠㅠ

강나루 2022-03-09 17:22   좋아요 1 | URL
답답했지요. ㅠㅠ
 
낯선 중세 - 잃어버린 세계, 그 다채로운 풍경을 거닐다
유희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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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도 친근하기에 모르는 경우가 많다. 너무도 가까이 있기에 그 사람을 잘안다고 생각했으나,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양 중세는 우리에게 '그 사람'과 같은 존재이다. 서양 중세하면, 봉건제를 떠올릴뿐, 더 이상의 사실을 알지 못한다. 유희수 교수의 '낯선 중세'를 친근하게 다가오게 했다. 

  제1부 쌍두 마차의 사회에서는 게르만의 대이동에서 부터 프랑크왕조의 성립과 해체, 교권과속권의 제휴와 대립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했다. 보통의 서양 중세사 책이라면 여기에서 서술을 마무리할 것이다. 이 책은 기사에서 부터 농노에 이르는 중세 시대를 살았던 주인공들의 삶을 자세히 설명했다. 박제화된 기사와 농노가 아닌, 그들의 살결 냄새가 나는 중세의 역사가 펼쳐졌다. 그들이 먹었던 빵과 고기에서 부터, 그들이 입던 옷, 그들이 믿었던 민간 신앙 부터, 전설과 성에 이르기까지 중세인들의 삶을 그들의 채취가 묻어나도록 실감나게 서술했다. 

  유희수의 '낯선 중세'를 덮는 순간, 낯설었던 중세는 친근하게 다가왔다. 세계사 교과서 수준의 앞은 지식으로 만난 중세와 그들의 땀냄새가 풍겨나는 중세는 너무도 다르게 다가왔다. 서양 중세는 '교회를 떠나서는 태어날 수도, 살아갈 수도, 죽을 수도 없다.'라는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러나, 교회는 시골의 농민의 삶 속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지 못했다. 오히려, 교회는 민간 신앙을 흡수하며 민간신앙과 융합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중세인들이 필요로할 때는 원시 크리스트교에는 없었던 개념을 창조해내기도 했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분법이 만들어 내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연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냈다. 그렇게 중세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고 창조해나갔다. 우리는 박제화된 교과서 속의 중세인과 결별하고, 살결 냄새 가득한 중세인을 만나야한다. 이 책을 통해서....


ps. 관련 사료를 소개한다.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이 기독교 신도들을 다스리도록 주신 왕의 위엄은 다른 두위엄[동로마 황제와교황]을 능가하며 현명함에서 이들을 압도합니다. 이제 기독교 교회가 의지할 곳은 당신뿐이며, 만인이 구원을 바라는 것은 당신뿐입니다. 죄인을 처벌하고, 헤매는 자들을 바르게 인도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선한 자들을 받들 이는 당신뿐입니다.-65쪽(잉글랜드 출신 측근인 알쿠이누스가 799년 카롤루스에게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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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민중사 -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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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과 입학해서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질문은, "그럼, 너의 역사관은 무엇이냐?", "너는 너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니?"라는 물음이었다. 역사학도로서, 자신만의 역사관을 갖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역사관을 갖기 위해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사색하고 토론해야했다. 지배층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지 말라는 충고를 들으면서도 우리의 역사를 왕과 양반들 중심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는 사료상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러면서도 역사 서술에서 소외된 민중과 사회적 약자의 시선에서 역사 바라보고자 노력했다. 윌리엄 A. 펠츠의 '유럽 민중사'는 관념적 구호에 그쳤던 민중과 약자의 시선에서 역사를 바라보라는 역사관에 실질적 결과물을 제시했다. 제목부터 매력적인 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가 놓쳐버린 민중의 이야기를 파헤쳐보자.

 

민중과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지배층 중심의 역사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역사의 새로운 모습들이 보인다. 와트타일러의 난이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농민반란을 윌리엄 A. 펠츠는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와트타일러의 난'이라는 명칭만 소개되어 있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영국 정부는 페스트로 고통 받는 농민들에게 위로를 해주기는 커녕 '노동자법령'을 통과시켜 농민의 삶을 억압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 페스트 이전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봉건적 노동 지대가 가능하도록 법령을 만들어 봉건 영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거기에다 백년전쟁 비용을 거두기 위해서 인두세법까지 도입했다. 잉글랜드 농민들은 이러한 억압에 대항해서 봉기를 일으켰으나, 지배층의 회유와 속임수에 걸려 패배한다. 그러나 이러한 패배는 헛되지 않았다. 영국 의회는 임금 인상을 포기했고, 귀족들은 농민에게 과도한 요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잉글랜드 농민 반란은 실패했지만, 역사에서 봉건제를 땅에 묻는 성과를 가져온 것이다. 잉글랜드 농민들이 뿌린 피가 역사의 도도한 물결이 되어,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민중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 단순히 민중들이 일으킨 반란을 공부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역사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서 민중의 삶이 달리보인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산업혁명을 서술하며 제임스 와트를 비롯한 수많은 발명가를 소개한다. 이들에 의해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세계를 뒤바꿔 놓는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서술한다. 물론, 아동노동을 비롯한 산업혁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소개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산업혁명이 농촌에서 땅을 빼앗기고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에게 얼마나 큰 시련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설명이 미약하다. 18~19세기 산업혁명을 일으킨 국가와 20세기 개도국 노동자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함을 선사했다. 부모가 노동현장으로 가기 위해서 방치된 아이에게는 마약 성분이 첨가된 '앳킨스 특허 유아 예방약'이 투여되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유아 사망률이 70%까지 치솟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높은 임대료와 낮은 임금 속에서 비참한 삶을 강요받은 노동자와 민중의 삶에 대해서 서술하면서도 기존 세계사책들은 이처럼 참혹한 현실을 순화해서 표현한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만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 역사책에서는 현실을 직시할 기회를 제대로 주었다고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노동자들이 비참한 생활을 하는 원인에 대해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게으름과 과음을 지적한다. 사회 구조적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전형적인 술책이다. 윌리엄 A. 펠츠는 극단적 노동과 여가시간이 부족한 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술로 해소했다고 지적한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직후의 농촌에서 노름꾼과 술꾼들이 많았던 이유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열심히 일을 해도 산미증식계획과 강제 공출로 생산한 모든 것을 빼앗기는 상황 속에서 농민들의 고통을 달래주는 것은 술과 노름이었다. 광복이 되었지만, 저곡가 정책으로 농촌의 삶은 여전히 어려워졌다. 잘 살아보고 싶었던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갔다. 농촌을 지키려했던 이들은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났다. 결국, 알콜 중독이라는 덧에 빠져 절망적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들 중에는 나의 아버지도 있었다. 술을 먹었기에 가난해지기 보다는 혹독한 노동과 비참한 현실이 술꾼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더 적합할 것이다. 아니, 비참한 현실이 술꾼을 만들었고, 술꾼이 현실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설명이 가장 합리적이리라....

 

세계사 교과서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은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충돌이라고 설명한다. 독점 자본이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제국주의가 출현하고, 더 많은 시장 확보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서 식민지 확보 경쟁이 발발해서 결국, 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는 서술이다. 그러나, 세계 대전 이전에 노동자의 성장이 있었다. 19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의 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독일만 하더라도 188795천명이던 것이 1890년에는 294천명으로 늘어난다. 세계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가에 대한 서술 뿐만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서술도 있어야했다.

 

1차 세계 대전의 전개과정을 서술하면서도 참호전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인명살상만을 설명한다. 이 서술에서 놓쳐버린 것이 있다. 이 서술에서는 전선에 끌려간 민중들의 저항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민중은 지배층들이 민족의 영광이라는 명분에 현혹되어 자발적으로 전선에 나간 것으로 서술한다. 물론, 그러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돌격 명령을 내리며 권총으로 위협하는 상관에게 총을 쏜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전선에서도 이러한 항명을 교전중 전사로 보고한 경우가 많았다. 민중은 온순한 노예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위한 충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을 거부한 용기 있는 민중이 있다. 그들을 새롭게 조명할 때 역사는 달리보이기 마련이다.

 

1936년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은 파시즘의 선전장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스포츠 운동이 노동계급 문화운동이있었다는 사실은 세계사 교과서에서 서술되어 있지 않다. 1937년 제3차 노동자 올림피아드가 아트베르펜에서 열렸다. 27천명의 노동자가 17개국에서 참여했다. 우리에게는 베를린 올림픽에 대한 기억만 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서구중심의 역사 서술에 대항해서 역사를 균형있게 본다는 명분으로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을 소련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스탈린이 독일 침략에 대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 독일과 폴란드 침공을 선택했다는 변명을 그대로 인용한다. 그러나, 윌리엄 A. 펠츠는 독일과 소련의 야합이 프랑스와 독일의 반파시스트전선을 분열시켰으며, 심지어는 무력화 시켰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지적한다. 역사를 균형있게 바라보는 것이 서구의 반대편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것은 스탈린이 히틀러를 도와 침략전정을 일으킨 죄악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중용이라는 말은 가운데를 뜻하지 않는다. 중용 있는 시각을 갖는 다는 것은 사물을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을 뜻하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역사관의 가운데가 아닌, 정의와 평화의 시각에서 그들의 행위를 평가해야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음을 윌리엄 A. 펠츠는 지적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을 서술하면서 보통의 역사책들은 독일과 소련의 전쟁범죄를 소개하며 그 야만성을 비판한다. 이러한 역사책을 읽는 보통의 사람들은 미군으로 대표되는 연합군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들을 전쟁기간 동안 하지 않았다고 자연스럽게 믿는다. 소련군이 독일 여성을 강간했고, 부다페스트에서만 5만명을 강간한 사실은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군이 19만명의 독일 여성을 강간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기에는 굶주린 자녀를 둔 여성을 음식으로 유인해서 성을 착취한 경우는 제외되어 있다. 냉전의 논리로 역사를 바라볼 경우, 미군에 의해서 이뤄진 강간은 조명되지 않는다. 미군의 전쟁 범죄를 알지 못하는 우리들은 세상을 흑백 논리로 바라보게 된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파수꾼이다. 미국은 독재자를 미워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전세계 민중의 편이다.'라는 환상이 깨진지 오래다. 우리는 반공논리 속에서 미국을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세상에서 살았다. 그러나, 미국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보통의 나라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윌리엄 A. 펠츠는 미국도 정의 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스페인의 민주화를 도와주기보다는 독재를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스페인의 민주주의란 곧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뜻한다며, (중략) "스페인에 필요한 일이라면 미국이 뭐든 해야한다고 생각한다."-363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보통의 나라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독재자와도 손을 잡는다. 레이건 행정부 시기 칠레의 쿠데타에 미국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윌리엄 A. 펠츠는 우리가 놓쳐버리거나, 의도적으로 서술하지 않는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물론,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함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삶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며 역사의 진실을 믿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국왕을 비롯한 지배층들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려한다면,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주는 논리를 진실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막기 위해서 윌리엄 A. 펠츠는 '유럽 민중사'라는 책을 저술했다. 역사를 약자의 입장에서, 민중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지만, 그러한 이상을 현실화시키지는 못했다. 윌리엄 A. 펠츠의 '유럽 민중사'는 역사를 공부하는 나에게 역사를 어떻게 새롭게 바라보아야하는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해주었다. 윌리엄 A. 펠츠가 책을 마무리하며 우리에게 당부한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평범한 유럽 노동자나 농민이 지구 위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대부분 그들이 이제껏 싸워온 덕택이다. 오늘날 많은 이가 누리는 우위는 계몽된 지배계급이 안겨준 선물이 아니었다. 모든 개혁,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의 모든 양보는 평범한 유럽인들의 자주적 행동의 결과다. (중략)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393~394

 

오늘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앞선 세대의 희생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핏땀이 없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더 비참한 생활을 할 것이다.

 

 ps. 인상 깊은 사료를 적어 놓는다. 


독일 함대가 적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여서 '황제와 조국'의 영광을 위해 승리하든가 아니면 죽기로 결정했다는 요지의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함대 수병들이 생각하는 '조국의 영광'은 전혀 달랐다. 수병들끼리 만났을 때 경례 구호는 '리프크네히트 만세'였다.(사회 민주당 소속 카를 리프크네히트 의원은 제국의회에서 가장 먼저 홀로 전쟁 예산에 반대표를 던지고 난 뒤 다수 민중 사이에서 반전 저항의 상징이 됐다.) -독일 대양함대에 복무한 한 수병의 회고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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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8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리뷰 보며 항상 배웁니다. 당선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투표 꼭하시고,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3-08 1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 꼭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이하라 2022-03-08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물감 2022-03-08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리뷰당선 축하합니다~!

강나루 2022-03-09 09:02   좋아요 2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 꾹~~ 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bookholic 2022-03-08 2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대선일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09:02   좋아요 1 | URL
bookholic님, 감사합니다.

저는 사전 투표했어요. bookholic님 투표 안하셨다면, 투표하시고, 행복한 대선일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3-09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17: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투표 결과 나오길 기도합니다.

러블리땡 2022-03-10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강나루 2022-03-10 02: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scott 2022-03-10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 합니다!
나루님 리뷰 자주 읽고 싶습니다 ^ㅅ^

2022-03-11 0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역사 2 한국문화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716
조르주 루 지음, 김유기 옮김 / 한국문화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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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출현 이후의 서아시아사(중동)에 관한 역사책들을 비교적 많이 출판되어 있는 반면에, 무지의 시기라 불리우는 이슬람 출현 이전의 역사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단편적인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서아시아의 역사 전체를 알고 싶은 마음에 '메소포타미아의 역사2'를 읽었다. 이 책에 대한 칭찬으로 인터넷이 도배되어 있지만, '무지의 시기'에 대해서 지식이 일천한 나에게는 칭찬할 수없는 책이다. 지도와 연표가 본문 서술과 분리되어 책의 맨뒷페이지에 제시된 점은 독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없는 출판사의 출판편의주의에 분노하게 만든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결합되어 독자의 이해를 유기적으로 돕는 편집이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된 책들 중에서 무지의 시기를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책이기에 불편한 마음을 꾹참고 읽어 내려갔다. 


 '메소포타미아의 역사2'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부조작품에 대한 설명이었다.(168쪽) 조르주 루는 "군사들이 지여엥서 쉬면서 말을 돌보고 짐승을 도살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 하프와 탬버린에 맞춰춤을 춘다."라고 묘사하며 "그것은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역사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병사들의 고닮픔과 희노애락을 표현한 저부조작품에서 인간적인 냄새가 풍겨나온다. 잔혹한 아시리아 군대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병사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살인마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저부조 작품을 바라보면 그들도 원치않는 전쟁에 끌려나온 우리의 이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왕과 귀족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전쟁에 강제 동원되어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이름없는 평민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아시리아의 영광도 있었다. 저자 조르주 루가 감탄했던, 그 저부조 작품을 사진으로 첨부해주었다면, 나도 조르주 루가 느꼈던 감동을 느겼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까마득하게 먼 오래전의 서아시아의 역사를 배워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 나에게 하는 질문이다. 우리 역사도 아니고 멀고 먼 서아시아의 역사를, 그것도 아주 오래전의 역사를 배워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 조르주 루의 말을 빌어 말한다면, 우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뉴턴에 자신이 멀리 볼 수 있는 이유는 거인의 어깨위에 서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는 거인이 닦아 놓은 토대 위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서양 문명의 원류인 그리스 로마 문명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유럽 문명은 활짝 만개하여 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비롯한 세계 곳곳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우리는 숙명적으로 서구세력이 주도한 근현대사 속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면 배울 수록, 역사 앞에 겸손해진다. 오늘의 문명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서아시아의 역사를 들어다 본다. 

  오늘의 문명이 성립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왜 단절되었을까?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정치는 격변하더라도 이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계속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단절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 시기에 기록하기 쉽고 배우기 쉬운 아람어가 보급되었다. 이로인해서 아카드어와 수메르어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언어를 잃은 민족은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저자 조르주 루는 "자기 언어를 잊은 민족은 동시에 자기 과거를 잊고 머지 않아 자기정체성을 잃는다."(245쪽)고 말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철저한 파괴에 의해서 문명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림으로써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사라진 것이다. 그후,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강줄기가 변경되면서, 강주변에 있었던 도시들은 쇠락해졌으며, 강주변의 수로 관리 또한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번성했던 도시들은 하나, 둘 모래속에 파묻혀버렸다. 그러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역사속에 파묻혀 버렸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다시 모래 속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들은 발굴이라는 명목으로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주변에 사는 사람들 조차도 자신의 조상들의 유물을 보기 위해서 멀리 영국과 프랑스의 박물관을 찾아가 입장료를 내고 유물을 보아야한다. 그런데, 더욱 슬픈 사실은 걸프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사건들에 의해서 메소포타미아의 유적들이 파괴되고 있다. 저자 조르주 루는 "현대 무기가 이 위대하고 매력적인 문명의 마지막 증거를 없애지 못하도록 신께 기도하자."라고 책을 끝맺고 있다. 이슬람 사람들이 많이하는 말이 있다. "인샬라"! 신의 뜻대로라 뜻의 말이다. 찬란한 고대 문명을 이룩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더 이상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이 곳에 평화가 깃들기를 신께 기도한다. 인샬라~~


ps.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기록들을 참고로 기록해둔다. 


<히타이트군대의 바빌론 공격>

  삼수-디타나의 시대에 하티인들이 아카드 지방을 향해 진군해 왔다. 그러고 나서 그(무르실리스)는 바빌론으로 가서 바빌론을 파괴하고 후리인들을 무찌르고 사람과 물건을 바빌론에서 하투샤로 끌어갔다.(31쪽)-바빌로니아 연대기


<키루스의 움만-만다(메디아인) 정복>

  네가 말하는 이 움만-만다와 그들의 나라, 그리고 그들과 동맹을 맺은 모든 왕은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셋째 해에 마르두크가 그들에 대항하기 위해 안샨의 왕이며 자신의 젊은 종인 키루스를 일으켜 세웠다. 그(키루스)는 수많은 움만-만다 사람을 적은 수의 군대로 물리쳤다. 그리고 움만-만다의 왕 이슈투메구(아스티아게스)를 포로ㅗ 작아 끌어와 자기 나라에 가두었다.-211쪽


  이슈투메구 왕은 군대를 동원해 안샨의 왕 키루스를 잡기 위해 진군했다. (중략) 이슈투메구의 군대가 왕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고 왕은 포로가 되었다. 군대는 왕을 사슬에 묶어 키루스에게 넘겨주엇다. -211쪽 '나보니두스의 연대기'


<키루스의 바빌로 점령>

  타슈리투 월(9~10월)에 키루스가 티그리스 강변 우파(오피스)에 있는 아카드의 군대를 공격하자 아카드인들은 퇴각했다. 그는 재물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학살했다. 제14일에 시파르는 전투 없이 점령 당했다. 나보니두스는 달아났다. (중략)

  제16일에 구티움의 총독인 우그바루와 키루스의 군대가 전투 없이 바빌론에 들어갔다. 그 후 나보니두스가 돌아와서 사로잡혔다. 월말까지 구티인의 방패병들이 에사길의 문을 포위했지만 에사길이나 (다른) 신전에서 (의식)의 중단은 전혀 없었다.(중략)

  아라흐삼누 월(10~11월)3일에 키루스가 바빌론에 들어갔다. (도로가?) 그의 앞에서 가득 채워졌다. 키루스는 바빌론 전체에 인사했고 바빌론에는 평화가 깃들었다.-214쪽, '나보니두스의 연대기'


  비빌론의 모든 주민과 수메르와 아카드 모든 지방의 주민은 그 군주들과 총독들과 더불어 그(키루스)의 앞에 몸을 굽히고 그의 발에 입을 맞추면서 그가 왕위를 얻은 것을 기뻐했다. 그리고 그 눈부신 얼굴에 기쁨으로 경의를 표했다. 마치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고 손해와 재난을 피하게 해 준 주인을 맞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이름을 그렸다. -214쪽


<다리우스의 바빌론 점령>

  나는 그에게 말했다. '가거라!' 나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힌 이 바빌로니아의 군대와 싸워라!' 빈다파르나는 (페르시아) 군대를 거느리고 바빌론을 향해 진군했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위해 그에게 도움을 주었다. 빈다파르나는 아후라마즈다의 뜻에 따라 바빌로니아인들과 맞서 싸워 그들을 포로로 사로잡았다. 마가자나 달의 22일이 흐른 후 그는 아라카와 그의 주요 지지자인 귀족들을 사로잡았다. 그때 나는 명령을 내렸다. '이 아라카와 그의 주요 지지자인 귀족들을 바빌론에서 말뚝에 박아 처형할 것이다."-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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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의 역사 1 한국문화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715
조르주 루 지음, 김유기 옮김 / 한국문화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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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게사 교과서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서 설명이 나와 있지만, 제대로된 정보를 얻기 힘들다.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교양을 쌓고자 선택한 책이 바로 '메소포타미아의 역사'이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글들은 '최고의 책'이라는 감탄들이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나로서는 쉬운 책만은 아니다. 물론, 메소포타미아의 역사1만 읽고 무리하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은 책이다. 

이 책에 쉽지 않은 책일 수밖에 없는 근본원인은 나에게 있다.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이책에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유적지와 지명들의 위치를 나로서는 알 수없다. 적어도 독자를 배려한다면, 해당 쳅터에 등장하는 지명을 지도에 표시하서 삽화와 함께 제공해야하지 않을까? 처음듣는 지명들의 홍수로 나의 머리속은 홍수에 떠밀려가는 나룻배의 모습을 면치 못했다.

게다가 이책에는 왕조 계보도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역사2'를 미리 살펴보니, '메소포타미아의 역사2'의 말미에 연표가 제시되어 있다. 이를 잘게 쪼개서 해당 쳅터에 배치했다면, 책을 읽는 것이 무척 수월했을 것이다. 일본에서 나온 역사책들에는 도표와 계보도가 잘 나와 있다. 이러한 배려를 타국의 저자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은 무엇때문일까?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재미있는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다. 카슈시대(기원전 15세기)에 쓰인 바빌로니아 연대기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에라-이미티 왕은 엔릴-바니라고 하는 정원사를 대리왕으로 자기 왕위에 앉히고 그의 머리 위에 왕권을 씌웠다. 에라-이미티가 너무 뜨거운 죽을 삼키다가 궁전에서 죽자 엔릴-바니는 왕위를 차지하고는 돌려주려 하지 않았고, 이리하여 군주가 되었다.-245쪽


불길한 징조가 있어서 왕이 신의 분노를 두려워하여 정원사를 대리왕으로 세웠는데, 왕이 갑자기 죽음으로서 정원사가 왕의 직책을 내려놓지 않고 실질적 왕이 되었다는 읍픈일이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있었다. 


쉽지 않은 책이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보겠다는 도전을 연기서 멈출수는 없다. 이제 '메소포타미아의 역사2'를 도전해 보자.


ps. 기록들을 첨부한다. 

<수메르의 종교 사상>

깊은 꿈 가운데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키는 하늘에 이르렀고 그의 키는 땅에 닿았다. .... 그의 오른쪽과 그의 왼쪽에는 사자들이 누워 있었다. 그는 나더러 자기를 위해 신전을 지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의 심장(=바람)을 이해하지 못하했다. .....갑자기 한 여자가 나타났다. 이 여자는 누가 아닌가? 이여자는 누구인가? .... 그 여자는 손에 빛나는 금속으로 만든 갈대를 쥐고 있었다. 하늘의 아름다운 글씨가 쓰인 토판을 들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220쪽

<고대 왕조 시대-수메르>

모든 나라의 왕 엔릴이 루갈자게시에게 이 나라의 왕권을 주고, 이 나라 앞에서 그의 정당성을 증명하고, 모든 나라가 그를 섬기게 하고,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모든 나라가 그의 법에 복종하게 했다. 그때 그(엔릴)는 아래 바다(아랍-페르시아 만)에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를 지나 위 바다(지중해)까지 그(루갈자게시)에게 안전한 길을 허락했다. 나라들은 평화롭게 살았고 백성은 즐거운 가운데 밭에 물을 댔으며 수메르의 모든 왕조와 모든 나라의 군주가 우르크에서 그의 주권의 법에 복종했다.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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