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민중사 -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역사학과 입학해서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질문은, "그럼, 너의 역사관은 무엇이냐?", "너는 너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니?"라는 물음이었다. 역사학도로서, 자신만의 역사관을 갖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역사관을 갖기 위해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사색하고 토론해야했다. 지배층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지 말라는 충고를 들으면서도 우리의 역사를 왕과 양반들 중심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는 사료상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러면서도 역사 서술에서 소외된 민중과 사회적 약자의 시선에서 역사 바라보고자 노력했다. 윌리엄 A. 펠츠의 '유럽 민중사'는 관념적 구호에 그쳤던 민중과 약자의 시선에서 역사를 바라보라는 역사관에 실질적 결과물을 제시했다. 제목부터 매력적인 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가 놓쳐버린 민중의 이야기를 파헤쳐보자.

 

민중과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지배층 중심의 역사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역사의 새로운 모습들이 보인다. 와트타일러의 난이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농민반란을 윌리엄 A. 펠츠는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와트타일러의 난'이라는 명칭만 소개되어 있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영국 정부는 페스트로 고통 받는 농민들에게 위로를 해주기는 커녕 '노동자법령'을 통과시켜 농민의 삶을 억압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 페스트 이전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봉건적 노동 지대가 가능하도록 법령을 만들어 봉건 영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거기에다 백년전쟁 비용을 거두기 위해서 인두세법까지 도입했다. 잉글랜드 농민들은 이러한 억압에 대항해서 봉기를 일으켰으나, 지배층의 회유와 속임수에 걸려 패배한다. 그러나 이러한 패배는 헛되지 않았다. 영국 의회는 임금 인상을 포기했고, 귀족들은 농민에게 과도한 요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잉글랜드 농민 반란은 실패했지만, 역사에서 봉건제를 땅에 묻는 성과를 가져온 것이다. 잉글랜드 농민들이 뿌린 피가 역사의 도도한 물결이 되어,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민중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 단순히 민중들이 일으킨 반란을 공부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역사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서 민중의 삶이 달리보인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산업혁명을 서술하며 제임스 와트를 비롯한 수많은 발명가를 소개한다. 이들에 의해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세계를 뒤바꿔 놓는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서술한다. 물론, 아동노동을 비롯한 산업혁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소개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산업혁명이 농촌에서 땅을 빼앗기고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에게 얼마나 큰 시련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설명이 미약하다. 18~19세기 산업혁명을 일으킨 국가와 20세기 개도국 노동자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함을 선사했다. 부모가 노동현장으로 가기 위해서 방치된 아이에게는 마약 성분이 첨가된 '앳킨스 특허 유아 예방약'이 투여되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유아 사망률이 70%까지 치솟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높은 임대료와 낮은 임금 속에서 비참한 삶을 강요받은 노동자와 민중의 삶에 대해서 서술하면서도 기존 세계사책들은 이처럼 참혹한 현실을 순화해서 표현한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만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 역사책에서는 현실을 직시할 기회를 제대로 주었다고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노동자들이 비참한 생활을 하는 원인에 대해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게으름과 과음을 지적한다. 사회 구조적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전형적인 술책이다. 윌리엄 A. 펠츠는 극단적 노동과 여가시간이 부족한 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술로 해소했다고 지적한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직후의 농촌에서 노름꾼과 술꾼들이 많았던 이유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열심히 일을 해도 산미증식계획과 강제 공출로 생산한 모든 것을 빼앗기는 상황 속에서 농민들의 고통을 달래주는 것은 술과 노름이었다. 광복이 되었지만, 저곡가 정책으로 농촌의 삶은 여전히 어려워졌다. 잘 살아보고 싶었던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갔다. 농촌을 지키려했던 이들은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났다. 결국, 알콜 중독이라는 덧에 빠져 절망적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들 중에는 나의 아버지도 있었다. 술을 먹었기에 가난해지기 보다는 혹독한 노동과 비참한 현실이 술꾼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더 적합할 것이다. 아니, 비참한 현실이 술꾼을 만들었고, 술꾼이 현실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설명이 가장 합리적이리라....

 

세계사 교과서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은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충돌이라고 설명한다. 독점 자본이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제국주의가 출현하고, 더 많은 시장 확보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서 식민지 확보 경쟁이 발발해서 결국, 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는 서술이다. 그러나, 세계 대전 이전에 노동자의 성장이 있었다. 19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의 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독일만 하더라도 188795천명이던 것이 1890년에는 294천명으로 늘어난다. 세계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가에 대한 서술 뿐만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서술도 있어야했다.

 

1차 세계 대전의 전개과정을 서술하면서도 참호전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인명살상만을 설명한다. 이 서술에서 놓쳐버린 것이 있다. 이 서술에서는 전선에 끌려간 민중들의 저항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민중은 지배층들이 민족의 영광이라는 명분에 현혹되어 자발적으로 전선에 나간 것으로 서술한다. 물론, 그러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돌격 명령을 내리며 권총으로 위협하는 상관에게 총을 쏜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전선에서도 이러한 항명을 교전중 전사로 보고한 경우가 많았다. 민중은 온순한 노예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위한 충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을 거부한 용기 있는 민중이 있다. 그들을 새롭게 조명할 때 역사는 달리보이기 마련이다.

 

1936년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은 파시즘의 선전장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스포츠 운동이 노동계급 문화운동이있었다는 사실은 세계사 교과서에서 서술되어 있지 않다. 1937년 제3차 노동자 올림피아드가 아트베르펜에서 열렸다. 27천명의 노동자가 17개국에서 참여했다. 우리에게는 베를린 올림픽에 대한 기억만 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서구중심의 역사 서술에 대항해서 역사를 균형있게 본다는 명분으로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을 소련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스탈린이 독일 침략에 대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 독일과 폴란드 침공을 선택했다는 변명을 그대로 인용한다. 그러나, 윌리엄 A. 펠츠는 독일과 소련의 야합이 프랑스와 독일의 반파시스트전선을 분열시켰으며, 심지어는 무력화 시켰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지적한다. 역사를 균형있게 바라보는 것이 서구의 반대편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것은 스탈린이 히틀러를 도와 침략전정을 일으킨 죄악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중용이라는 말은 가운데를 뜻하지 않는다. 중용 있는 시각을 갖는 다는 것은 사물을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을 뜻하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역사관의 가운데가 아닌, 정의와 평화의 시각에서 그들의 행위를 평가해야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음을 윌리엄 A. 펠츠는 지적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을 서술하면서 보통의 역사책들은 독일과 소련의 전쟁범죄를 소개하며 그 야만성을 비판한다. 이러한 역사책을 읽는 보통의 사람들은 미군으로 대표되는 연합군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들을 전쟁기간 동안 하지 않았다고 자연스럽게 믿는다. 소련군이 독일 여성을 강간했고, 부다페스트에서만 5만명을 강간한 사실은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군이 19만명의 독일 여성을 강간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기에는 굶주린 자녀를 둔 여성을 음식으로 유인해서 성을 착취한 경우는 제외되어 있다. 냉전의 논리로 역사를 바라볼 경우, 미군에 의해서 이뤄진 강간은 조명되지 않는다. 미군의 전쟁 범죄를 알지 못하는 우리들은 세상을 흑백 논리로 바라보게 된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파수꾼이다. 미국은 독재자를 미워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전세계 민중의 편이다.'라는 환상이 깨진지 오래다. 우리는 반공논리 속에서 미국을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세상에서 살았다. 그러나, 미국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보통의 나라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윌리엄 A. 펠츠는 미국도 정의 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스페인의 민주화를 도와주기보다는 독재를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스페인의 민주주의란 곧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뜻한다며, (중략) "스페인에 필요한 일이라면 미국이 뭐든 해야한다고 생각한다."-363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보통의 나라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독재자와도 손을 잡는다. 레이건 행정부 시기 칠레의 쿠데타에 미국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윌리엄 A. 펠츠는 우리가 놓쳐버리거나, 의도적으로 서술하지 않는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물론,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함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삶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며 역사의 진실을 믿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국왕을 비롯한 지배층들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려한다면,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주는 논리를 진실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막기 위해서 윌리엄 A. 펠츠는 '유럽 민중사'라는 책을 저술했다. 역사를 약자의 입장에서, 민중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지만, 그러한 이상을 현실화시키지는 못했다. 윌리엄 A. 펠츠의 '유럽 민중사'는 역사를 공부하는 나에게 역사를 어떻게 새롭게 바라보아야하는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해주었다. 윌리엄 A. 펠츠가 책을 마무리하며 우리에게 당부한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평범한 유럽 노동자나 농민이 지구 위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대부분 그들이 이제껏 싸워온 덕택이다. 오늘날 많은 이가 누리는 우위는 계몽된 지배계급이 안겨준 선물이 아니었다. 모든 개혁,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의 모든 양보는 평범한 유럽인들의 자주적 행동의 결과다. (중략)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393~394

 

오늘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앞선 세대의 희생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핏땀이 없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더 비참한 생활을 할 것이다.

 

 ps. 인상 깊은 사료를 적어 놓는다. 


독일 함대가 적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여서 '황제와 조국'의 영광을 위해 승리하든가 아니면 죽기로 결정했다는 요지의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함대 수병들이 생각하는 '조국의 영광'은 전혀 달랐다. 수병들끼리 만났을 때 경례 구호는 '리프크네히트 만세'였다.(사회 민주당 소속 카를 리프크네히트 의원은 제국의회에서 가장 먼저 홀로 전쟁 예산에 반대표를 던지고 난 뒤 다수 민중 사이에서 반전 저항의 상징이 됐다.) -독일 대양함대에 복무한 한 수병의 회고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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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8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리뷰 보며 항상 배웁니다. 당선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투표 꼭하시고,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3-08 1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 꼭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이하라 2022-03-08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물감 2022-03-08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리뷰당선 축하합니다~!

강나루 2022-03-09 09:02   좋아요 2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 꾹~~ 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bookholic 2022-03-08 2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대선일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09:02   좋아요 1 | URL
bookholic님, 감사합니다.

저는 사전 투표했어요. bookholic님 투표 안하셨다면, 투표하시고, 행복한 대선일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3-09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17: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투표 결과 나오길 기도합니다.

러블리땡 2022-03-10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강나루 2022-03-10 02: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scott 2022-03-10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 합니다!
나루님 리뷰 자주 읽고 싶습니다 ^ㅅ^

2022-03-11 0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