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지역 작가들이 말하는 나의 땅 나의 문학
알리 바드르 후세인/이라크 소설가, 시인
 
 
 출처:<인터넷한겨레>2007 10 24  
 


이라크 문화의 영도(零度) - 점령하 문화와 지식인들

■ 핵심 질문?

이라크의 지식인으로서 우리는 늘 똑같은 질문에 봉착한다.

점령 하에서 혹은 그로 인해 촉발된 혼돈 하에서 이라크 문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특히 테러리스트와 종교세력이 헤게모니를 잡은 이후에 지식인들은 어떤 조건 하에 살아가게 될 것인가. 물론 그런 문제들 뒤에는 많은 요인들이 놓여 있었다. 과거 사담 후세인 정권 때문에 고통 받을 때, 우리는 권위가 부재하고 대신 시민적 제도가 받쳐 준다면 훨씬 더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시민적 제도라는 꿈이 망상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전세계는 파괴의 가장 폭력적인 형태가 전체 역사의 파괴라는 것을 안다. 이것은 독재 정권의 몰락 이후에, 점령군이 이라크에 도착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즉각적으로 시작되었다. 도서관은 불타거나 약탈당하고, 고고학적 유물들은 파괴되었고, 박물관은 털려버렸다. 국립이라크박물관은 그 첫 번째 대상이었다. 국립대학들의 도서관들 또한 약탈당하고 깡그리 불타버렸다.

그러나 누가 알랴? 이라크 대학의 교수들 500명, 170명 이상의 저널리스트와 시인들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수천 명이 나라를 떠났다는 사실을!

이것이야말로 이라크 지식인들에게 벌어진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학살이다. 그러나 아무도 거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라크의 지배적인 두 권력, 미군과 종교 전사들의 좋은 타격 대상이 되고 있다.

■ 종교 아젠다

종교당국은 고유의 아젠다를 갖고 예술을 금지시킬 때 잇달아 자기 식의 해석을 내리며, 법이나 시민의 권리, 혹은 인권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도 없고 종교적 위반자들을 벌하거나 죽이는 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혼돈 속에서, 그리고 행정 질서가 가져다주는 상대적인 편안함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극적으로 축소되었으며, 많은 작가들과 예술가들은 간단하게 추방되었다. 문화기구들은 문을 닫았다. 비밀리에 연습을 해 온 음악가들은 이제 탈레반 같은 보복이 두려워서 악기를 들고 감히 대중 앞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종교 기구들이 문화를 독점하는 것이 현단계에서 우리가 맞부닥치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문제 중 하나이다. 그들의 해석은 심각하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이 신성하다고 정해 놓은 금을 넘어선 사람들을 벌줄 때 생각하는 자기정당화는 매우 위험하다.

■ 이라크 문화의 영도(零度)

우리는 합법화된 강한 권력의 공백 때문에, 혹은 무질서나 테러리즘 때문에 크게 고통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문화의 파괴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점령군은 이라크 내 여러 개의 고고학적 유적지들을 파괴했다. 그들은 수많은 조직 갱들과 함께 수많은 이라크 도시들의 지방 박물관에서 고대 유물과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다른 많은 물건들을 약탈해갔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로버트 피스크(Robert Fisk)는 이런 사태에 대해 언급하면서, 점령이 시작된 해에 박물관이 터무니없이 파괴되고 국가 문서와 도서관이 불타버렸기 때문에 이라크의 ‘영년(零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런 행동들은 이라크의 문화적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목적으로 자행되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낯선 역사와 외국의 문화로 가득 채워지기만을 기다리는 백지만 남았다. 누가 그걸 채울 것인가? 미국이나 종교세력이? 민족문화를 수립한 지 8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우리를 견인하는 두 세력을 만나고 있는바, 그 둘 모두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알리 바드르 후세인(Ali Bader Hussain)/이라크 소설가, 시인

 
영도: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저서 <글쓰기의 영도>(1953)에서 비롯된 용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서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지점을 가리킨다. 이글에서 필자는 미군의 공격으로 이라크 문화의 기반이 무너짐으로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을 ‘영도’ 또는 ‘영년’이라는 표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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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의 40년 음악인생

박준흠
출처:<가슴>(www.gaseum.co.kr) 2007/09/14



한대수 박스셋

지난 일요일(9월 9일) 신촌의 모 카페에서 한대수 씨의 첫 번째 딸인 ‘양호’의 백일잔치가 있었다. 그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그간 음반, 공연, 사진, 책 작업을 통해서 친분을 쌓은 동료와 후배들 그리고 매체 관계자들이 참여한 ‘파티’였고, 술이 거나하게 취한 몇몇 뮤지션들은 즉석에서 어쿠스틱 기타 몇 대만으로 공연을 가졌던 흥겨운 자리였다.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김도균과 김성민(선글라스)이 합주하는 <행복의 나라>가 들렸던 것 같고, 한대수 씨가 사람들 뒤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모습을 얼핏 본 것 같다. 그는 17살 무렵인 60년대 중반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며 ‘사랑과 평화’의 기치 아래 록과 포크를 폭발시켰던 히피들과 어울렸고, 한편으론 아버지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응어리진 가슴을 쓸어안고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웠는데 그 때 만든 노래가 바로 <행복의 나라>라고 한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본 첫 딸 백일잔치에서 그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 어떤 심정일지 궁금하다.

한대수는 음악평론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대중음악 평론’을 가능케 한 무척 소중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음악평론가에게도 평론 ‘대상’이 있어야 평론이 가능한데 그게 바로 앨범(‘작품’으로서의 음반)이고, 한대수는 신중현과 함께 ‘앨범아티스트’로서 선구자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가슴네트워크와 경향신문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선정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했는데, 왜 여기에 유명한 트로트나 댄스 가수들의 음반이 선정되지 않았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는 음악평론과 음악사연구, 앨범과 (단순)음반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우문에 가깝고 어찌 보면 이게 한국 대중음악이 처한 현실이다. 사실 ‘음악평론가’ 입장에서 보면 한대수 이전에서 평론의 대상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1집 [멀고 먼 길]

1968년 미국에서 귀국한 한대수는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당시 생소했던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은 한국대중음악사에서 파격적인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싱어송라이터’는 진정성을 갖는 음악창작을 하기 위한 ‘방법론’이었기 때문이다. 70년대 초반 한국에서 청년문화가 개화될 때 김민기, 양희은, 양병집, 서유석 등이 발표한 새로운 가치와 음악적 외관을 담은 앨범들은 한대수의 활동에 일정 부분 빚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대수의 디스코그라피를 살펴보는 일은 ‘한국음악창작자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과 같다. 그는 단지 머리 길고 ‘빠다’ 발음 나는 히피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언뜻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에 대해서는 90년대 중반까지 몰상식할 정도의 평가도 적지 않았고,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은 90년대 말에 들어서다.

신중현이 2006년 12월에 은퇴공연을 하고 잠정적으로 활동 중단한 것을 생각한다면, 8집 [Eternal Sorrow](2000) 이후 항상 “이번이 마지막 앨범일 수 있다”라는 절망적인 얘기를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꾸준하게 신보들을 발표하는 한대수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음악적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창작적으로도 뛰어난 그의 앨범들을 대한다면 단지 그를 ‘한국 모던포크의 시조’ 정도로 얘기하는 것이 너무 약소해 보인다. 왜냐하면 의심할 바 없이 한대수는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3집 [무한대]

한대수는 활동에 비해서 데뷔 음반은 매우 늦게 나왔다. 군대를 갔다 오느라고 1집 [멀고먼-길]은 1974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발표되었다. 이 앨범에는 지금까지도 불려지는 그의 대표곡 <물 좀 주소><바람과 나><행복의 나라> 등이 수록되었고, 김민기, 양희은 계열의 음악과는 작법이 달랐다. <물 좀 주소> 같은 노래를 보더라도 다분히 록적인 어법이 강했기 때문에, 나중에 크래쉬와 헤비메틀로 합주할 때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집 [고무신]이 이듬해 나오고, 여기에는 <오늘 오후><나그네 길><고무신><여치의 죽음> 등이 수록되었는데 정부에서 마스터테입을 회수해 가는 바람에 더 이상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이후 미국 뉴욕으로 음악적인 망명을 갔고, 하드록밴드 ‘징기스칸’ 활동을 했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더 이상 음악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 한국사회의 부분적인 민주화 이후 1989년에 잠시 귀국해서 만든 앨범이 그의 최고작이라 할 수 있는 [무한대]이다. 이 음반은 장장 14년의 공백을 깨고 포크에서 록으로 방향 전환해서 만든 명작이다. 손무현(기타), 김영진(베이스), 김민기(드럼), 송태호(키보드)로 구성된 세션팀과 만든 <One Day><Widow's Theme><마지막 꿈>은 80년대 베스트 세션으로 기록될만하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새로운 음악을 인정해주지 않음에 실망해서 다시 미국으로 갔는데, 이전과 달리 이 때부터는 음악창작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음반들이 [기억상실](1990), [천사들의 담화](1991)이고 여기에는 잭리(이우진)와 이우창 형제가 참여한다.

6집 [1975 고무신 서울~1997 후쿠오카 라이브](1999)는 국내에서 한대수가 재평가 받으면서 나온 앨범이다. 그리고 이 라이브 음반에는 김도균(기타)과 이우창(키보드)이 참여하는데, 이는 현재 한대수 세션 밴드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해에는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가 뉴욕에서 존 롤로의 프로듀싱으로 발표되었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분기점이 되는 8집 [Eternal Sorrow](2000)가 손무현의 주도적인 참여로 만들어졌고, 이 음반은 후기 한대수의 대표작이 된다. 그리고 2002년에 김도균밴드, 이우창의 독집 앨범들과 함께 묶여져서 발매된 [삼총사]에는 [고민 Source Of Trouble]이 담겨 있는데, 여기에는 <As Forever>와 같은 멜로딕한 노래부터 <호치민>과 같은 광폭한 노래들까지 함께 실렸다.

[다큐멘타리 한대수 - Music & Life](2003)가 DVD로 나온 뒤에 2004년에는 10집 [상처]가 자신의 레이블 ‘Hahndaesoo Corp’을 통해서 발표되었는데, 이는 제작자가 마땅히 없었음을 의미한다. 이후 2001년에 가졌던 ‘마지막 콘서트’를 담은 [2001 Live](2005)가 나왔음에도 12집 [욕망 Urge](2006)가 어김없이 나왔고, 같은 해에는 철학자 도올 김용옥과의 합동 콘서트를 담은 [한대수 도올 광주라이브]를 발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외에 미발표 곡까지 담은 고품질 박스세트 [The Box](2005), 최근 낳은 딸에게 바치는 신곡 <양호야! 양호야!>가 수록된 [Best Of Hahn Dae-Soo](2007)도 주목 할만 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대수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주목하지 않을 음반은 하나도 없다.

한대수 베스트

이렇게 한대수를 그의 작품 중심으로만 ‘간결하게’ 정리해서 얘기해도 숨이 가쁠 정도이다. 그렇다면 그가 현재 받고 있는 대접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대중음악을 ‘통사’가 아니라 ‘창작자 중심의 역사’로 기술할 때 상당 부분의 페이지를 그에게 할애해야 할 정도의 위상을 가진 아티스트이건만 아직도 음반제작비 수급이 여의치 않아서 신보 발매를 주저하는 상황이 현실이다. 물론 음반을 낸다고 해서 인세를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고 하니, 그는 여태까지 ‘기념음반’들만 발매한 형국이다. 결국 그가 첫 딸 양호를 이렇게 늦게 본 이유에도 이런 현실적인 상황이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젊은 부부들의 ‘출산율 저하’ 현상의 이유가 어처구니없게도 대(大) 예술가 한대수에게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런데 올해 2007년, 한대수의 음악인생이 40년(1968~2007)을 맞았다는 것을 기억들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작년 2006년은 ‘음반 사전심의 철폐 10주년’이었는데 정태춘을 기억하지 않고 지나친 것처럼 올해도 한대수를 기억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년에는 누군가 꼭 한대수 트리뷰트 앨범과 공연을 제작하기를 바란다.



행복의 나라로 - 한대수

영화 <행복>을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넘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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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미안해요, 찬드라 / 권수현
야!한국사회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10 22  
 


 
»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박찬욱 감독의 단편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한국말이 서툰 한 네팔 여성 노동자가 행려병자로 취급되어 무려 6년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던 실화를 다룬 영화다. 한국말이 서툰 찬드라는 분식점에서 먹은 라면 값을 치르지 못하는 상황을 이해시키지 못해서 경찰서에서 정신병원으로 인계되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던 당시, 나는 이런 황당하고 무자비한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한편으로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그러한 감정들은 이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러한 인권침해를 가능케 한 조건이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에 대해 증언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이 사건의 공범으로 등장한다. 어느 누구도 한국인과 흡사한 외모의 그녀가 외국인일 수도 있다고 짐작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 관련자들 중에서는 자신이 네팔 사람이라는 그녀의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누구도 그녀의 신원을 적극적으로 확인해 보지 않았다. 동료 네팔 노동자들의 실종신고는 한국 관료들에 의해 간단히 무시되었다. 찬드라에게 가해진 인권침해는 이러한 총체적 상황의 합작품이었다. 그 일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상상력의 결핍이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어느 누구도 우리와 닮은 외모를 한 그녀가 우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또한 그것은 한국 사회에 내면화하고 있는 위계적 언어관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녀가 ‘좀 모자라는 사람’, 어린애 취급을 당한 건 단지 한국말이 서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를 대한 사람들은 그녀가 구사하는 네팔어를, ‘우리보다 못한 나라’인 네팔어를 우리말과 동등한 위상을 가진 한 나라의 언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네팔어를 사용하는 그녀를 우리와 동등한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은 있다. 사투리가 표준어에 비해 ‘우습거나’, ‘좀 격이 떨어지는’ 말로 받아들여져 주눅 든 기억도, “Do you speak English?” 하고 낯선 외국인이 다짜고짜 영어로 말을 건넬 때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을 부끄러워한 기억도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들이 한 인간에 대한 폭력과 인권 침해를 가능케 하는 문화적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한다. 언어는 위계적 인간관을 내면화하는 매개물이다. 국내 비영어권 외국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동질화하고 그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어린애 취급’하는 광경을 쉽게 목도하게 된다.

혹자는 지금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영어교육 열기를 ‘영어 광풍’이라고 일컫는다. ‘영어 광풍’이 위험한 것은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를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중심과 주류의 언어를 최고의 가치로 지향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상상력을 제약하고 우리 내면에 타자에 대한 멸시와 무시의 태도를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국주의적 가치관이다. 세계화란 과연 무엇인가? 만약 그것이 힘 가진 자의 언어와 가치관을 닮아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문화적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획일화된 상상력은 ‘제2, 제3의 찬드라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미안해요, 찬드라.” 그때마다 우리는 진정성 없는 사과를 되풀이할 것인가? 초등학교에서 교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도록 하겠다는 이명박 대선 후보의 약속이 현실이 될까봐 두려울 뿐이다.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내오랜꿈 ------------------------------------------------------------------

영화 <여섯 개의 시선>에 나오는 모든 단편들이 다 우리의 차별적인 시선을 다루고 있지만, 박찬욱 감독의 저 단편을 보고서는 '설마....' 하는 생각이 많았었다. 물론 '팩트'에 기초하고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영화언어로 각색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던 것. 아무리 이놈의 나라가 지랄 같다 해도 설마 저 정도는 아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놈의 나라가 그 정도라는 걸 확인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KBS인가에서 '지금 현재의 찬드라'를 보여주는 기획물을 방송한 적이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 보여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였던지를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었던 것. 마지막에 네팔의 고향으로 돌아가 살고 있는 찬드라의 모습이 비춰졌다.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사실은 수치스런 기억으로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시선'의 문제다. 그 시선의 눈높이, 곧 '편견'이란 정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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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섹스나 한번…

출처:<한겨레21> 제681호 2007년10월18일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어떤 정중한 메일의 말미에 나도 모르게 “그럼 건강하시고요, 언제 시간 되면 섹스나 한번…”이라고 썼다가 화들짝 놀라 고쳤다. 에이구머니.

섹스가 소통의 최고 경지라는 것에 거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문제는 일군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소통할 상대가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최근 간통죄에 대해 다시 말이 나왔다. 현직 판사가 “간통죄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며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하면서다. 헌법재판소는 1990년, 1993년, 2001년에 이어 네 번째로 간통죄가 위헌이냐 아니냐 따지게 됐다. 누군가는 1930년대 경성의 날라리 언니들이 주창한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불후의 명언을 따 “간통을 허하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으아, 뭘 허락까지 받아요. 그냥 하면 되지.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우리처럼 간통죄가 존속하는 대만에서 최근 한 ‘얌전한’ 30대 주부가 5명의 남성과 바람을 피우고 이를 세세히 8권의 일기에 담았다가 남편한테 들켜 화제가 됐다. 대학생, 은행원, 버스 기사, 심지어 경찰서에 가정폭력 신고를 하러 갔다가 만난 경찰과도 ‘대담한 애정행각’을 벌였다는데. 남편의 고소에 검찰은 일기만으로는 증거가 안 된다며 이 주부를 약식기소했다. 딱한 것은 남편이다. 그는 “끝까지 대응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고 한다. 가정폭력 얘기가 나온 걸 보아 남편도 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사람은 아닐 것 같은데(그나저나 그녀는 어떻게 5명과의 얘기로 일기 8권을 다 채울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디테일로 승부를 한 모양이다).

물론 모든 간통이 집안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바람은 바람이다. 때론 별 이유 없이 불기도 한다. 떨고 있는 당신, 걱정 마시라. 우리가 뭘 했기에. 좀 진하게 대화한 것뿐이잖아, 안 그래?

정작 부조리한 것은, 애인에게는 배우자와의 성생활을 얘기하면서 배우자에게는 애인과의 성생활을 얘기하기 힘들다는 거.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얘기가 있다는 거다. 그 가까움이 법으로 규정돼서일까? 얼마 전에 만난 어떤 아저씨는 다른 이와 관계한 것을 와이프에게 얘기한다고 했다.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섹슈얼한 파트너십이 있지만 나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까지 얘기할 파트너십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기엔 너무 바쁘고 말고.

지난해 초 취재차 신년운수를 봤다. 사주명리학자가 내게 이랬다. “끙, 3년 뒤에 부부 자리가 들썩이겠어.” 많은 상념이 떠올랐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제가 뭐 할 말이 있겠습니까. 견디어야죠”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분 왈. “아니, 남자 말고 너, 너가 또 문제라구.”

6년 전 간통죄 논란 당시 아예 기자가 직접 간통을 해서 붙잡혀보는 게 어떻겠냐며 모두가 나를 지목해 ‘기자가 뛰어든 세상’ 쓰기를 독려했다. 이 땅의 법이 제대로 서는 그날을 위해 기꺼이 이 한 몸 바치려 했으나, 벽에 부딪혔다. 같이 몸 바쳐줄 상대, 아니 그의 법적 파트너가 걸렸다. 당시 나를 포함해 아무도 내 파트너를 염려하지 않았던 것은 두고두고 미스터리다. 몇 년째 제목만 있는 미완의 기사는 이름하여 ‘섈 위 간통’. 취재는 진작에 마무리됐는… 켁.


내오랜꿈 ----------------------------------------------------------------

그나저나 이번에는 마침내 '간통죄'가 폐지될 모양이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권리보호를 내세우며 절대 반대를 외치던 여성단체들이 간통죄 폐지에 그닥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요즘은 적어도 섹스 파트너십에 있어서는 남자가 사회적 약자인 시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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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0-2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군요. 김소희 기자의 에피소드도. 내오랜꿈님의 마지막 문구는 매우 '현실적'이네요.

내오랜꿈 2007-10-24 11:39   좋아요 0 | URL
ㅎㅎ 아프님께서 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를 남기셨습니다.

누에 2007-10-2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섈 위 간통` 풉~ ^^

내오랜꿈 2007-10-24 11:41   좋아요 0 | URL
^.^
 


영화 ‘엠(M)’의 이명세 감독

출처:인터넷한겨레 2007 10 21
김소민 기자


 
» 영화 ‘엠(M)’의 이명세 감독
 
이명세 감독의 영화는 꿈과 많이 닮았다. 데뷔작 〈개그맨〉은 대놓고 개그맨 이종세가 꾸는 꿈 이야기였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첫사랑〉 속 공간은 사랑에 달뜬 주인공의 꿈결 같은 기억을 반영한다. 〈엠(M)〉은 이런 경향을 더 밀어붙인 작품인 듯하다. 이야기는 사실 단순하다. 인기 작가에다 부자 약혼자(공효진)가 곁에 있는 민우(강동원)는 글이 막혀 고통스럽다. 그는 잊고 있던 첫사랑(이연희)의 아픈 기억을 쫓아가며 글의 실마리를 찾는다. 하지만 이야기는 한 줄기 논리를 따라가지 않고 뫼비우스띠처럼 뒤틀려 있다. 많이 본 익숙한 공간은 기묘한 기운을 뿜어낸다. 관객은 민우의 꿈속을 헤집고 다니는 경험을 하게 된다. 24일 개봉.

‘7천원 내고 왜 이렇게 헤매야 해’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이 감독이 영화 언어의 경계를 밀어내며 넓히고 있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그는 전작인 〈형사〉에서도 대사가 음악이 되고, 동작이 대사가 되는 경계 지우기를 실험했다. 이들을 모두 모은 느낌이 영화 언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언어로 일상의 표피에 살짝 금을 낸다. 첫사랑의 설렘과 아픔, 감탄 또는 그저 텅 빈 혼란 덩어리? 그 비틀린 틈에서 무엇을 보고 싶은지는 관객의 뜻대로다. 그는 메시지가 아니라 느낌을 만들며 느낌은 형체가 없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모두의 기억에 맞아떨어지도록 모양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만난 이 감독은 “다른 매체로 치환해도 그럴듯하다면 그건 영화가 아니다”라며 “굳이 영화가 닮은 것을 꼽으라면 시와 음악”이라고 말했다.

첫사랑 좇는 유명 작가의 ‘꿈결’ 속으로
익숙한 ‘공간’ 비틀어 기억과 일상 전복


※ 헛갈린다. 무슨 정신분석 같기도 하고 그냥 사랑 이야기 같기도 하고….

= 수월 스님은 일자무식으로 소문이 자자했지. 일본 승려들이 그걸 이용해서 절을 뺏으려고 내기를 걸었어. 수월 스님은 한 일(一)자를 썼지. 고승들이 그 의미가 뭘까 진땀을 흘리니까 수월 스님이 “이놈들아, 한 일 자야. 이건 나도 안다” 그랬대. 중학교 2학년짜리한테 (영화를) 보여줬더니 “그림이 예뻐요. 보다 보니 괜히 눈물이 나요” 그러던걸. 거창한 의미를 찾으려 하면 영화를 볼 때 침범당해.

※ 헛갈려 보이게 만들지 않았나?

= 고흐, 모딜리아니…. 그 사람들은 세계를 보는 방법을 바꿨지. 시각의 다양성을 만드는 거, 이게 예술가가 할 일이지. 나는 영화를 영화로 이야기한 것뿐이야. 할리우드 텍스트가 지배하면서 영화가 그림 이야기책으로 전환돼 버렸어.

※ 지키려는 영화가 뭔가?

= 음…. 예를 들어 내가 당신을 초대했어. 그런데 입구에 향수가 뿌려져 있고 꽃을 꽂았어. 당신은 아마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구나’라고 느낄 거야. (영화는) ‘당신을 사랑해서 꽃 꽂았어요’라고 설명하지 않는 거야. 물론 이야기도 중요해. 집주소를 알려줘야 찾아올 거 아니야. 하지만 느끼는 건 관객의 몫이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어.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주여.” 그럼 나는 눈물이 쏟아져. 이 모든 느낌을 단어로 모아야지 시지 설명하면 시가 아니야.

※ 〈엠〉은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

= 엠(M)은 몽(夢)이야. 꿈속에서 소설가 최인호씨랑 꿈에 대해 대담을 했어. 꿈은 산 자와 죽은 자의 통로라는 결론에 도달했지. 그게 출발이야.

※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는 꿈과 닮은 건가?

= 인도에서 잠의 여신은 배꼽에서 연꽃이 피거든. 그 여신이 꾸는 꿈이 예술이래. 꿈에서 본 게 똑같이 반복되는 순간이 있어. 무척 신기하지. 영화는 (꿈처럼) 느낌으로 전달하는 거야. 나는 메시지라는 낱말이 정말 싫어. 사람이 만날 때 메시지가 아니라 느낌이 중요한 거라고. 마티스는 색의 덩어리, 몬드리안은 프레임의 힘으로 보여주잖나. 꼭 실물과 똑같이 그려야 되나? 보이는 것만이 리얼리즘이라는 소극적인 리얼리즘이 우리를 오래 지배했어.

» 영화 ‘엠(M)’
 
※ 이번에 세트 디자인까지 겸했다. 〈형사〉에서 액션이 대사라면 〈엠〉은 공간이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대사다. 민우의 집은 미로처럼 빛과 그림자, 거울로 이뤄져 있다. 자주 등장하는 횟집은 일상적인데 공간과 똑같은 그림이 벽에 걸려 있어 듀안 마이클스의 〈사물의 기괴함〉을 닮았다.

= 듀안 마이클스의 사진이 왜 재밌어? 굉장히 일상적인데 이상해 보이잖아. 바로 그거야. 또 거울은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해주지. 그러니까 (세트 넓게 짓는 비용을 줄여주니까) 싸잖아.

※ 왜 민우는 하필이면 첫사랑의 기억을 쫓나?

= 첫사랑은 시간의 비밀을 여는 열쇠야. (삶에서) 그 부분이 가장 빛나기 마련이지. 시구를 인용하면 “금인 시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알지~.”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 그냥 노가리(말장난)야.(웃음) 랭보는 보편 언어가 유행가, 낡은 잡지 표지, 만화책 같은 거라고 했지. 누구나 한번쯤 거쳐 가는 것들이지. 일본 감독 오즈 야스지로는 영화에 군가를 많이 넣었어. 군국주의자라서가 아니라 누구나 한번쯤 들었을 노래가 청춘의 기억을 불러오기 때문이지. (첫사랑은) 모든 사람의 기억의 창고로 들어가는 열쇠, 보편언어지. 이 영화를 보고 내 친구는 울며 “내가 좀 사랑을 알아”라고 하더군.

※ 연기도 사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배우들이 당황했을 듯하다.

= 예전에는 내가 일일이 시연을 보였는데 이젠 힘들어서 못해. 민우는 작가이지만 동원씨한테 수사관이라고 생각하라고 했어. 범인을 쫓는 형사. 작가라면 으레 이래야 한다는 게 있으니 헛갈리지. ‘믿음 메이크스 매직’이라고 말해줘. 그러고 보니 이것도 다 엠이네.(웃음)

※ 〈형사〉에 이어 또 강동원이 주인공이다.

= 잘생긴 얼굴이 장점이자 단점이지. 형사 때는 그걸 극단적으로 이용한 거고 이번엔 깎아냈지. 외모 밑에 있는 그의 재능을 보여주려고. 동원씨가 기꺼이 동참한 걸 보면 욕심이 많은 배우야.

※ 이 영화에 대해 ‘빛나는 어둠’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 새벽이 오기 전 가장 어두운 상태. 어둠이지만 그 속에 누군가 있는 것, 일상이 꿈속 같고 과거가 현실 같은…. 나는 눈을 뜨고 귀를 열라고 관객 문 앞에서 똑똑 두드리는 노크 소리야.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프로덕션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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