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는 활동에 비해서 데뷔 음반은 매우 늦게 나왔다. 군대를 갔다 오느라고 1집 [멀고먼-길]은 1974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발표되었다. 이 앨범에는 지금까지도 불려지는 그의 대표곡 <물 좀 주소><바람과 나><행복의 나라> 등이 수록되었고, 김민기, 양희은 계열의 음악과는 작법이 달랐다. <물 좀 주소> 같은 노래를 보더라도 다분히 록적인 어법이 강했기 때문에, 나중에 크래쉬와 헤비메틀로 합주할 때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집 [고무신]이 이듬해 나오고, 여기에는 <오늘 오후><나그네 길><고무신><여치의 죽음> 등이 수록되었는데 정부에서 마스터테입을 회수해 가는 바람에 더 이상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이후 미국 뉴욕으로 음악적인 망명을 갔고, 하드록밴드 ‘징기스칸’ 활동을 했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더 이상 음악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 한국사회의 부분적인 민주화 이후 1989년에 잠시 귀국해서 만든 앨범이 그의 최고작이라 할 수 있는 [무한대]이다. 이 음반은 장장 14년의 공백을 깨고 포크에서 록으로 방향 전환해서 만든 명작이다. 손무현(기타), 김영진(베이스), 김민기(드럼), 송태호(키보드)로 구성된 세션팀과 만든 <One Day><Widow's Theme><마지막 꿈>은 80년대 베스트 세션으로 기록될만하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새로운 음악을 인정해주지 않음에 실망해서 다시 미국으로 갔는데, 이전과 달리 이 때부터는 음악창작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음반들이 [기억상실](1990), [천사들의 담화](1991)이고 여기에는 잭리(이우진)와 이우창 형제가 참여한다.
6집 [1975 고무신 서울~1997 후쿠오카 라이브](1999)는 국내에서 한대수가 재평가 받으면서 나온 앨범이다. 그리고 이 라이브 음반에는 김도균(기타)과 이우창(키보드)이 참여하는데, 이는 현재 한대수 세션 밴드의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해에는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가 뉴욕에서 존 롤로의 프로듀싱으로 발표되었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분기점이 되는 8집 [Eternal Sorrow](2000)가 손무현의 주도적인 참여로 만들어졌고, 이 음반은 후기 한대수의 대표작이 된다. 그리고 2002년에 김도균밴드, 이우창의 독집 앨범들과 함께 묶여져서 발매된 [삼총사]에는 [고민 Source Of Trouble]이 담겨 있는데, 여기에는 <As Forever>와 같은 멜로딕한 노래부터 <호치민>과 같은 광폭한 노래들까지 함께 실렸다.
[다큐멘타리 한대수 - Music & Life](2003)가 DVD로 나온 뒤에 2004년에는 10집 [상처]가 자신의 레이블 ‘Hahndaesoo Corp’을 통해서 발표되었는데, 이는 제작자가 마땅히 없었음을 의미한다. 이후 2001년에 가졌던 ‘마지막 콘서트’를 담은 [2001 Live](2005)가 나왔음에도 12집 [욕망 Urge](2006)가 어김없이 나왔고, 같은 해에는 철학자 도올 김용옥과의 합동 콘서트를 담은 [한대수 도올 광주라이브]를 발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외에 미발표 곡까지 담은 고품질 박스세트 [The Box](2005), 최근 낳은 딸에게 바치는 신곡 <양호야! 양호야!>가 수록된 [Best Of Hahn Dae-Soo](2007)도 주목 할만 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대수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주목하지 않을 음반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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