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지역 작가들이 말하는 나의 땅 나의 문학
알리 바드르 후세인/이라크 소설가, 시인
 
 
 출처:<인터넷한겨레>2007 10 24  
 


이라크 문화의 영도(零度) - 점령하 문화와 지식인들

■ 핵심 질문?

이라크의 지식인으로서 우리는 늘 똑같은 질문에 봉착한다.

점령 하에서 혹은 그로 인해 촉발된 혼돈 하에서 이라크 문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특히 테러리스트와 종교세력이 헤게모니를 잡은 이후에 지식인들은 어떤 조건 하에 살아가게 될 것인가. 물론 그런 문제들 뒤에는 많은 요인들이 놓여 있었다. 과거 사담 후세인 정권 때문에 고통 받을 때, 우리는 권위가 부재하고 대신 시민적 제도가 받쳐 준다면 훨씬 더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시민적 제도라는 꿈이 망상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전세계는 파괴의 가장 폭력적인 형태가 전체 역사의 파괴라는 것을 안다. 이것은 독재 정권의 몰락 이후에, 점령군이 이라크에 도착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즉각적으로 시작되었다. 도서관은 불타거나 약탈당하고, 고고학적 유물들은 파괴되었고, 박물관은 털려버렸다. 국립이라크박물관은 그 첫 번째 대상이었다. 국립대학들의 도서관들 또한 약탈당하고 깡그리 불타버렸다.

그러나 누가 알랴? 이라크 대학의 교수들 500명, 170명 이상의 저널리스트와 시인들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수천 명이 나라를 떠났다는 사실을!

이것이야말로 이라크 지식인들에게 벌어진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학살이다. 그러나 아무도 거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라크의 지배적인 두 권력, 미군과 종교 전사들의 좋은 타격 대상이 되고 있다.

■ 종교 아젠다

종교당국은 고유의 아젠다를 갖고 예술을 금지시킬 때 잇달아 자기 식의 해석을 내리며, 법이나 시민의 권리, 혹은 인권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도 없고 종교적 위반자들을 벌하거나 죽이는 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혼돈 속에서, 그리고 행정 질서가 가져다주는 상대적인 편안함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극적으로 축소되었으며, 많은 작가들과 예술가들은 간단하게 추방되었다. 문화기구들은 문을 닫았다. 비밀리에 연습을 해 온 음악가들은 이제 탈레반 같은 보복이 두려워서 악기를 들고 감히 대중 앞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 종교 기구들이 문화를 독점하는 것이 현단계에서 우리가 맞부닥치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문제 중 하나이다. 그들의 해석은 심각하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이 신성하다고 정해 놓은 금을 넘어선 사람들을 벌줄 때 생각하는 자기정당화는 매우 위험하다.

■ 이라크 문화의 영도(零度)

우리는 합법화된 강한 권력의 공백 때문에, 혹은 무질서나 테러리즘 때문에 크게 고통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문화의 파괴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점령군은 이라크 내 여러 개의 고고학적 유적지들을 파괴했다. 그들은 수많은 조직 갱들과 함께 수많은 이라크 도시들의 지방 박물관에서 고대 유물과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다른 많은 물건들을 약탈해갔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로버트 피스크(Robert Fisk)는 이런 사태에 대해 언급하면서, 점령이 시작된 해에 박물관이 터무니없이 파괴되고 국가 문서와 도서관이 불타버렸기 때문에 이라크의 ‘영년(零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런 행동들은 이라크의 문화적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목적으로 자행되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낯선 역사와 외국의 문화로 가득 채워지기만을 기다리는 백지만 남았다. 누가 그걸 채울 것인가? 미국이나 종교세력이? 민족문화를 수립한 지 8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우리를 견인하는 두 세력을 만나고 있는바, 그 둘 모두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알리 바드르 후세인(Ali Bader Hussain)/이라크 소설가, 시인

 
영도: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저서 <글쓰기의 영도>(1953)에서 비롯된 용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서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지점을 가리킨다. 이글에서 필자는 미군의 공격으로 이라크 문화의 기반이 무너짐으로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을 ‘영도’ 또는 ‘영년’이라는 표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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