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소년이 본 전쟁, 잔혹함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2일
▲ … 이스마엘 베아|북스코프

“처음으로 전쟁이 내게 현실로 다가온 것은 열두살 때였다.”

아프리카 적도 부근 국가 시에라리온 태생 이스마엘은 랩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소년이다. 그가 열두살 되던 해, 1993년 어느날 그는 친구들과 도시에서 열리는 장기자랑 대회에 참가하러 집을 나섰다. 그는 갈고 닦은 랩 실력을 뽐낼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그 여행길은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여행이 돼 버렸다. 반군이 일으킨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만 것이다.

무자비한 살육이 벌어지는 아비규환 속에서 이스마엘은 집으로 돌아갈 엄두를 못낸다. 총알을 피해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피난민이 된 것이다. 혼자서, 때로는 또래 아이들과 목적지 없고 굶주린 여정이 이어진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의 나날이었다. “밤이면 버려진 마을에서 잠을 잤고, 아침마다 어느 길로 갈 것인지 결정함으로써 내 운명은 결정됐다.” 그는 홀로 수십일을 밀림속에 숨어 지내기도 했다. 그의 지옥 같은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 소년의 회고담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비현실적 소설 같은 인상을 받는다. 소년의 눈에 비친 내전은 너무 잔혹한 나머지 한 편의 허구 드라마로 비친다.

그는 내전의 마수를 피해갈 수 없었다. 정부군에 발견돼 강제로 총을 들어야 했다. 이른바 소년병이 된 것이다. 처음 총을 잡았을 때 그는 “이제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열세살짜리의 전투를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있을까. 그는 첫 교전에 나설 때를 “생애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단검을 허리에 차고, AK47을 어깨에 메고 시신과 총성,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은 익숙해졌다. 그 힘은 마약에 있었다. 군인들은 총을 주던 날 알약도 함께 주었는데, 다름 아닌 코카인이었다.

“어느샌가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쉬워졌다.”

그에게 분노와 살인은 일상이 돼버렸다. ‘런 DMC’와 ‘LL 쿨 J’를 좋아하던 소년은 마약과 무용담을 좋아하게 됐다. 낮엔 방아쇠를 당기고 밤엔 마약을 흡입하거나 ‘람보’ 같은 전쟁영화를 보며 보낸 시간은 무려 2년. 그는 “어느샌가 어린 시절이 끝나 버리고 심장도 얼어붙었다”며 소년병 시절을 회고한다. 전쟁의 상처를 더듬으면서도 천진함이 묻어 있는 문장들은 독자의 아픔을 배가시킨다. 공포스러운 기억을 불러내는 문체는 군더더기 없지만 섬세하다.

옛 평범한 소년의 모습을 찾아준 것은 유니세프였다. 유니세프는 소년병들을 막사에서 빼내 재활센터에 보냈다. 마약 중독자 이스마엘은 힘겨웠지만 재활에 성공했다. 그리고 수도 프리타운에서 삼촌을 찾아 평범한 생활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평화는 잠깐이었다. 시에라리온은 다시 반군과 일부 군인이 합작한 쿠데타로 폭행과 살인이 판을 치게 된다.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한 그는 다시 사선을 넘기로 한다. 다시 소년병으로 끌려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그는 홀로 이웃나라 기니의 국경으로 향한다.

그의 고백은 인간의 비이성에 대한 고발이다. 일부 내전 국가엔 아직도 소년병이 존재한다. 이런 현실에서 그의 고발은 더욱 생명력을 얻는다. 이스마엘은 현재 뉴욕의 어느 미국인 가정에 둥지를 틀었다. 고향의 ‘달 밤’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었던 소년은 대학을 졸업한 뒤 소년병 근절을 위한 인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송은주 옮김. 9800원

〈서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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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린 문명에 중독된 문학
[석유문명과예술] 막대에 찔린 난자 보고 비명 지르지는 못할 망정

출처 : <컬쳐뉴스> 2007-11-02
[박승옥 _ 시민발전 대표]

석유문명에 중독된 문학은 스스로의 근원이라 할 생태의 관점을 잊고 있다.
▲ 석유문명에 중독된 문학은 스스로의 근원이라 할 생태의 관점을 잊고 있다.
비틀린 석유문명 중독증상은 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문학에서는 그 정도가 심해 석유문명 찬양이 참으로 낯간지럽다 못해 저 지경으로까지 추락할까 싶을 정도로 몸과 영혼을 파는 수준까지 치닫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석유문명에 중독되었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이른바 서구 ‘근대’에 중독되었다는 얘기이다. 저잣거리 말로 서양 근대라는 ‘뽕’을 맞고는 뿅가버리고 만 것이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그만큼 서구 근대는 사람들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뒤바꿀 만큼 편리하고 풍요롭고 힘과 지배력이 있다. 그것이 석유문명이라는 강력한 마약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할지라도 그렇다. 

지금은 기억이 희미해 제목이 아마도 ‘회장님, 우리 회장님’인지 아닌지 가물가물하지만, 옛날에 대재벌 회장과 측근 아부꾼들이 나오는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가 있었다. 그 아부꾼 가운데 하나는 늘 두 손을 귀에 대고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라고 외쳐대곤 했다.

자본의 종으로 귀의한 문학

친일 문학인들을 예로 들 것도 없이 일부의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권력자들의 영원한 종이라는 사실이야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런데 또 수많은 쓸개빠진 시인과 소설가들이 스스로 자처해서 자본가들의 영원한 종으로 귀의한다. 게다가 이들 권력과 돈에 영혼을 판 글쟁이들은 뻔뻔스럽기가 그지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대낮에 수많은 사람들이 벌겋게 눈을 뜨고 있는 가운데 발가벗고 홀딱쇼를 하고 있는 있으면서도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자각도 하지 못한다. 물론 홀딱쇼 제목은 ‘순수문학’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그 순수한 글이 어떤 내용인지 그 맥락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전혀 창피한 줄도 모른다. 

수많은 문학인들이 궁핍함 속에서도 문학의 영혼을 돈과 권력에 파는 것은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문학은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또 다른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서로 생명의 축제와 변화를 함께 나누는 영혼의 울림이었다. 문학의 뿌리는 생태계였고 공동체였고 제사장, 곧 무당이었다. 아득한 옛적부터 시와 노래는 자연과 교감하고 공동체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아픔을 대변하는 영혼의 소통 수단이었다. 시는 땅에서 솟아올라오는 생명이었으며 대기와 하늘을 엿보는 영혼의 눈이었다. 문학은 근원에서부터 생태문학이었다.

서구의 근대문명은 이런 자연과의 소통을 근본에서부터 부정했다. 자연은 단지 정복과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다. 자연은 단지 근대문명을 뒷받침해주는 천연자원이 저장된 장소일 뿐이었다. 나무는 목재였고 들소는 소고기였고 불의 신전은 유전지대였다. 자연은 모조리 숫자로 바꿀 수 있고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때문에 근대라는 괴물에 대해 본능에서부터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문학인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근대라는 이 뒤틀린 현실에 대해 고통스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이미 기계화된 근대인이지 진정한 자연인이라고 할 수 없었다. 문학인이라면 당연히 그는 단절된 자연과 다시 소통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사람에게서 다시 흙냄새를 맡기 위해 고통스러운 저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근대 문법 자체에 대한 저항에서부터 글의 양식은 때로는 과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이하기도 할 만큼 다양했다. 수많은 문학인들이 그렇게 영혼의 피를 흘리며 글을 쓰고 싸우다 흙으로 돌아갔다. 근대문학의 역사는 근대를 상대로 한 고귀한 영혼들의 투쟁의 역사였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은 서구 근대의 인식과 진정한 문학인라면 추구해야 할 정신 사이에 놓여 있는 심연을, 왜 문학인들이 뿌리로부터 근대에 저항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안에 대해 심사숙고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족은 물을 것이다. 얼굴 흰 추장이 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 판단 말인가...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워싱톤의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겠다고 한 제의는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우리에게 그것은 우리의 누이와 형제와 우리 자신을 팔아넘기는 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땅을 손에 넣기 위해 한밤중에 찾아 온 낯선 자다. 대지는 그의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는 대지를 정복한 다음 그곳으로 이주한다. 그는 대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어머니인 대지와 맏형인 하늘을 물건처럼 취급한다. 결국 그의 욕심은 대지를 다 먹어 치워 사막으로 만들고야 말 것이다.

문학이 뿌리로부터 근대에 저항해야 하는 이유
 
▲ 정현종 시인은 『대산문화』2005 가을호에 "대작에세이
「마음의 빛: 새벽-빛 그리고 황우석 예찬을 겸하여」를
게재한 바 있다.
정현종이란 시인은 소로우와 에머슨을 자주 인용하면서 자연과 생명의 야생상태를 찬양하는 이른바 순수시를 쓴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짧은 시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독서 목록에 올라 있는 시인이다.

그가 『대산문화』라는 잡지에 이른바 대작에세이를 연재하면서 쓴 글이 있다. 글짜를 크게 쓰면 대작이라고 하는지, 아니면 긴 글을 대작이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근대 이후, 특히 자본주의 산업화가 최고의 가치인 줄 아는 한국인들은 서구 문명에 대한 뿌리깊은 열등의식의 소산으로 무엇이건 세계 제일을 추구하면 제일인 줄 알았다. 무조건 크고 높고 거대한 것을 추구하는 이른바 거대컴플렉스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다리도 세계 최장이어야 성이 차고 빌딩도 세계 최고여야 성이 찬다. 어찌됐든 그런 ‘대작’이니만큼 조금 길게 인용해보자.

나는 황우석 교수가 TV에서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그동안 사람은 이래야 한다고 들어온 미덕들 - 겸손, 사랑, 천진성, 공정성, 소박함 같은 것들이 황우석이라는 사람에게 수렴되어 2005년 한국 땅에서 육화(肉化)되어 나타났다는 느낌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정작 마음을 빼앗긴 건 그의 얼굴과 표정과 태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슨 빛 - 내 생애에 처음 보기 때문에 신선하기 짝이 없는 빛이었다... 그의 눈과 웃음은 맑음과 천진함을 내뿜고 그의 표정과 태도는 타고 난 그대로의 겸손과 소박함과 진정성을 보여주며 그의 말과 그 어조에는 위의 미덕들과 함께 공명정대함과 사려 깊음과 참됨 같은 게 들어있다. 그가 목장에서 인공수정한 소의 새끼를 손을 넣어 꺼내는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그 비할 데 없는 몰입과 열심!

『나의 생명 이야기』라는 책을 보면 어려서 시골에 살았던 그는 자연에 대해 신비감을 항상 갖고 있었는데, 과학자의 창의성은 세속적인 욕심 없이 “맑은 영혼의 오로지 밝은 시계(視界)”에서만 확보된다고 하면서 “여명의 빛”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명의 빛은 영혼의 시력을 열게 한다. 그때 비로소 사람은 개인적인 욕망이나 목표를 뛰어넘어 사회와 인간을 위한 지고한 목표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적인 문제도, “윤리” 운운하며 문제를 삼으려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실제로 무슨 일을 했으며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듯한데, 난치병을 고쳐서 여러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 혜택을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이 받을 수 있게 하는 것만큼 윤리적인 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툭하면 “윤리”를 치켜들고 나와서 반대나 하는 게 윤리적인 행동은 아닐 것이다. 가치있는 일을 알아보고 그걸 긍정하고 기뻐할 줄 아는 마음이 한층 더 윤리적인 것일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줄기세포가 장차 불치병을 고치기 시작하면, 실은, 황우석 교수를 시성(諡聖)해야 한다고 나는 사석에서 말하곤 했다. 예수나 프란체스코 같은 성자들이 난치병 환자들을 고쳤다는 건 다 아는 일이다. 옛날에는 성자들이 신화적인 초자연력으로 병을 고쳤으나 오늘날에는 자연과학자가 그런 기적을 행하게 되었다.

- 대산문화재단, 『대산문화』, 대작에세이 「마음의 빛: 새벽-빛 그리고 황우석 예찬을 겸하여」, 2005년 가을호


아마도 한국인들만큼 줄기세포와 생명공학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황우석 사태는 미친 바람처럼 한국인들의 애국주의 열풍을 불러 일으켰고 그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생명공학이나 유전공학 자체가 사실은 서구 근대 패러다임의 막다른 길, 기괴한 과학기술의 극단임을 알아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학기술은 자본주의와 결합해 말하자면 한 손가락만 이상비대증에 걸리고 만 상업 과학기술이다. 돈이 된다면 멀쩡한 사람의 사지를 자르고나서는 마이크로칩이 부착된 기계손을 붙여놓고 영생의 손과 발을 붙였다고 선전해대는 것이 자본주의의 상업 과학기술이다.

막대에 찔린 난자를 보고 비명은 지르지는 못할 망정

오늘날 과학기술은 그렇게 영혼을 잃어버린지 오래이다. 우주와 자연 앞에서 겸손도 잊은 지 오래이다. 진리란 무지를 아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밝힌 지식은 진리라는 나무의 나뭇잎 하나에 지나지 않음을, 우주와 자연이라는 모래밭의 모래알 하나에 지나지 않음을 아예 외면하고 있다. 때문에 과학기술의 사용은, 특히 사람의 생명, 자연의 생명체와 관련된 과학기술은 다른 과학 학문의 검증뿐만이 아니라 철학과 윤리를 비롯한 인문학과 사회학, 법학 등 모든 분야의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학인이, 그것도 순수시인이라고 알려진 사람이 근대과학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 황우석에 대해 어떻게 이런 대작의 용비어천가를 쓸 수 있는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생명체인 난자에 아무렇지도 않게 젓가락같은 막대를 찔러넣는 장면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끔찍함에 비명을 지르지는 못할 망정 ‘그 비할 데 없는 몰입과 열심’을 찬양하며 감동을 읊조리다니, 그것이 순수시인의 그 비할 데 없는 감수성이란 말인가.

같은 글에서 정현종은 “릴케는 붓다를 기리는 시를 세 편이나 썼는데, 인류가 성자들을 갖고 있다는 건 물론 인류의 행운이지만 그들의 불멸의 행적과 말의 광채를 되비치는 시인들이 있다는 것도 인류의 행운이다”라고 썼다. 아마도 그는 황우석을 성자의 반열에 올려놓고 싶었고, 그 또한 스스로 ‘황우석 성자’를 기리는 릴케 같은 시인 반열에 오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자(여기서 자는 놈 자이다!)들이 순수시를 씁네 하며 1970년대와 80년대의 ‘순수한’ 수많은 젊은 가슴과 영혼들을 물들였다. 그리고 군사독재의 질풍노도 시대에는 대학교수의 월급으로 편안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현실을 외면하고 살던 이 순수시인은 얼마 전에는 북한 핵실험에 대해 대다수 문인 예술가들이 침묵하고 있다며 북한을 질타하는 분노의 참여시를 조선일보에 쓰기도 했다.

순수의 본색이 실은 지독한 현실 권력에의 욕망이었음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예가 있을까.



* 박승옥은 구로동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10여 년 동안 시골을 돌아다님. 지금은 에너지전환 운동 시민기업인 시민발전 일과 전태일기념사업회 일을 하면서 기고와 강연으로 한국 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해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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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중세, 민초의 삶을 더듬다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2일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 파워 | 이산

서양 중세의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사 교수인 아일린 파워(1889~1940)가 쓴 ‘중세의 사람들(Medieval People)’은 평범한 6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중세 사람의 다채로운 삶을 손에 잡힐 듯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무겁고 어두운 중세의 종교적 분위기 대신 민초들의 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6명은 샤를 마뉴 치세 하의 프랑크 왕국의 농부 보도, 베네치아 상인 겸 여행가인 마르코 폴로,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수녀원장 마담 에글렌타인, 파리의 중간 계급 가정 주부인 메나지에의 아내, 15세기 지정 거래소의 양모무역 상인인 토머스 벳슨, 헨리 7세 시대 에식스의 모직물 업자인 토머스 페이콕 등이다. 등장 인물들 가운데에는 마르코 폴로처럼 매우 유명한 사람도 있고, 마담 에글렌타인처럼 수녀원장도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중세시대에 살던 중간 계급 이하의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중세 사회를 떠받치고 변화를 주도해 결국 자본주의 사회가 열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리면서도 “중세는 결코 ‘암흑시대’라는 말로 단순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층의 사람들을 다루고 있지만 굳이 이 책이 ‘민중사’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등장 인물들의 사회적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다.

아일린 파워는 자신이 여성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주인공 6명을 남자 3명, 여자 3명으로 설정했다. 저자는 주인공이 남자든 여자든 반드시 그들의 남녀 관계를 다루고 있다. 최근 역사 연구에서 여성사를 제외하면 여성을 남성과 같은 비중으로 다룬 역사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 책은 20세기 초반에, 그것도 중세사에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여성의 삶과 일상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작업으로 평가될 만하다.

‘중세의 사람들’은 여느 중세 관련 서적처럼 성직자, 영주, 기사의 신앙이나 무용담을 다루는 게 아니다. 생산과 유통을 담당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 때문에 이 책은 ‘사회경제사의 고전’으로 평가 받는다. 저자는 “사회사는 정치사에 비해 저명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아 독자의 관심을 끌기도 어렵고 간혹 모호하고 막연하다는 비판을 받는다”면서도 “개인 위주의 서술 방식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결코 재미가 작은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중세의 사람들’은 서양의 중세를 이해하는 데 최적의 입문서라 할 만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개론적 지식 이상의 것을 얻으면서 역사의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다. 원저의 초판은 1924년 나왔으나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 완역됐다. 김우영 옮김. 1만5000원

〈설원태 선임기자 solw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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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국현씨?
[경제정책 검증(1)] '신비의 강철검'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정태인/민주노동당 한미FTA 저지 사업본부장
출처 : <프레시안> 2007-10-30


정태인 한미FTA 저지 사업본부장(前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 문국현 후보의 경제정책을 비판적으로 해부한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경제성장률 8% 달성, 환동해벨트 구축, 중소기업에 뉴 패러다임 도입 등 문 후보 경제공약의 알짜를 조목조목 비판하며 "(집권하면) 초기 2~3년간 기초 작업만 하다가 8%라는 수치에 발목을 잡혀 무리수를 두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지었다.
  
  정 본부장은 또한 "문 후보의 경제정책은 참신하고, 이명박 후보 등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이지만 거시적 정합성이나 실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며 "기업가로서 성취하거나 배운 몇 가지 지식이 곧바로 정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책수단과 결과 사이의 전달경로나 실현 가능성을 검증했다면 이렇게 정책을 발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본인이 얼마나 엄청난 얘기를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정책을 수행한다면 과연 그 결과, 그리고 그에 따르는 부작용은 누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냐"고 논박했다.
  
  정 본부장은 조만간 경제성장률 7%와 6%를 각각 제시한 이명박, 정동영 후보의 경제정책 검증도 시리즈로 이어갈 계획이다.

  
  
▲ 문국현 후보ⓒ뉴시스

  시리즈를 시작하며

  
  5년 전 이맘 때 귀를 의심할 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노무현 후보가 경제성장률 7%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해 3월 경선까지 후보를 도왔던 나는(봄부터 방송을 시작했기에 나는 대선 캠프에 들어가지 않았다), 지금은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는 후보의 측근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냈다. "이런 말도 안되는 공약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이회창이 6%를 내세우니 1% 더 얹으라는 주문을 후보 스스로 한 모양인데, 이 공약은 두고두고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원래 5% 정도였다가 추가된 2%는 여성의 경제참가율을 높이는 것 등으로 채워졌다. 그 자체로는 옳은 소리였지만 임기 5년 내에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는 애초에 아니었다.
  
  5년 후 역시 대통령 후보들은 성장률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과연 5년 단임 대통령이 이뤄낼 수 있는 목표인가, 그 방법은 무엇인지 꼼꼼히 짚어 보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다. 순서는 8%를 제시한 문국현 후보, 7%의 이명박 후보, 그리고 6%의 정동영 후보 순이다. 권영길 후보의 정책에 대해서는 내가 민주노동당 소속이니 다른 분이 비판적으로 검토해 주시기 바란다. 이 글을 계기로 비판과 반비판이 실증적으로 이뤄져 이번 대선이 정책선거가 되기를 바란다. 무슨 무슨 정략 때문이라든가, 정치 공세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쓸 요량이다. 만일 여전히 그런 비판을 받는다면 그건 전적으로 나의 경제 지식과 글쓰기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 때 그 때 달라요
  
  5년전과 마찬가지로 귀를 의심했다. 현 정부 위원회에서 같이 일했기에 문 후보를 어느 정도 안다. 참으로 깨끗하고 겸손한 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에서 노동시간 단축, 평생학습, 산업재해 추방을 실현한 분이다.
  
  그런데 8%라니…. 줄곧 경제학을 공부했고 또 실제 정책 세계를 경험한 나로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그가 말한 8% 성장의 내역은 다음 <표1>과 같다. 현재 언론이나 문 후보 홈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는 내용이다. 서로 내용이 다르다. 1~2%라고는 하지만 돈으로 따지면 무려 10조원 안팎의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몇 개의 아이디어를 즉흥적으로 조합했다는 인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항목 별로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하자
  
  ............................<표1>
▲ ⓒ프레시안

  

  잠재성장, 추세성장?
  
  첫 번째 항목은 기존 성장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잠재성장율과 추세성장율이 돌아가면서 쓰이고 있는데 일관되게 추세성장율(5%)이 잠재성장율(4%)보다 높다. 흥미롭다. 추세성장율이란 최근 몇 년간 실현된 성장률, 즉 현실 성장률(real growth rate)을 뜻할 것이다. 잠재성장율(potential growth rate)은 일정한 가정 하에(인플레이션의 억제 목표와 자연실업률의 유지) 최대 성장률(이른바 NAIRU)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잠재성장율이 추세성장율보다 높아야 정상이다. 물론 호황기에 가동율이 100% 이상이 된다든지 해서 현실 성장률이 잠재성장율보다 높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실업과 비정규직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문 후보가 현재의 상황을 초호황기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가에게 정확한 용어 사용을 주문하는 것은 무리일까?
  
  기사 중 한 곳에서는 잠재성장율 자체를 7%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한겨레신문 9. 17). 이 점 역시 검토가 필요한데 예컨대 문후보가 종종 비교 대상으로 삼는 선진국 어느 나라의 잠재성장율이 7%나 되는지 의문이 든다. 괜한 시비가 아니다. 예컨대 우리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선진국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으니 이를 배가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것이야말로 잠재성장율의 상승을 의미할 텐데 그렇게 선진국이 된 나라의 잠재성장율은 얼마나 될까? 이 점은 유일하게 일관된 수치로 제시되고 있는 중소기업 재창조론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외국인 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의 놀라운 증가, 그 효력은?
  
▲ ⓒ뉴시스

  외국인 직접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는 것도 문 후보의 독창적 주장 중 하나이다. 매년 FDI 200억 달러 유치는 9월 11일에는 1%의 성장 요인으로, 10월 13일에는 환동해경제벨트와 함께 1%의 성장요인으로, 10월 21일에는 FTA와 함께 2%의 성장 요인으로 제시되었다. 즉 FDI는 그의 성장론에서 대략 0.5%에서 1% 남짓 차지하는 요인이다.
  
  2007년 OECD 통계로 우리나라의 외자유치는 43억달러(2005년 실제 유입액)였으니 이 주장은 과연 '획기적'이다. 부정부패 청산 등 투명성을 개선하면 약 2배(신고액으로 말한 것으로 간주할 경우)에서 5배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증적인 근거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다만 푸틴과의 면담에서 러시아의 투자유치가 1400억달러에 달한다는 소리를 듣고 우리의 외자유치도 대폭 증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을 제외하고 외자유치 1, 2, 3위를 다투는 중국, 인도, 러시아가 과연 투명성이 그렇게 높은 사회일까.
  
  어떤 방식으로든 떼돈을 벌 수 있다면 우리 자본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자본도 들어온다. 시장이 넓다거나 노동의 생산성이 특별히 높다거나, 산업 클러스터가 잘 발달돼 있어서 네트워크 외부성이 크면 외국인 투자는 오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찾아온다. 반면 세금 인하나 임금 억제, 값싼 땅의 제공 등은 부차적 요인이다. 부정부패 척결 등 투명성도 하나의 요인이기는 할 테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외국인투자가 그렇게 급증할까? (나는 현 정부에서 1년 6개월가량 외자유치를 총괄하는 비서관이었다)
  
  200억 달러의 외자유치는 어느 정도나 효과가 있을까? 만일 그 200억 달러가 공장설립형(greenfield)여서 GDP의 투자항목에 그대로 잡힌다면 20조원이 증가하므로 그 자체로 2.5% 정도(20조/800조) GDP가 증가할 것이다. 물론 유발효과(투자가 다시 추가 투자를 부르는 효과)까지 고려하면 훨씬 더 클 것이다. 문 후보의 이 가정이 실현된다면 성장률은 3% 정도까지 추가되어야 한다.
  
  현재 FDI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도 고려한 발언이라고 하면 80%는 증권 등 포트폴리오 투자로 잡아야 한다. 이러한 투자가 전혀 생산을 자극하지 않고 소유권만 이동시킨다고 가정하면 20조원 중 4조원만 투자에 잡힌다. 이 경우 약 0.5%가 될 텐데 문 후보는 이런 사실을 고려해서 어떤 때는 0.5%, 또 어떤 때는 1% 이상의 효과를 말한 것일까?
  
  지금까지 발표된 정책에 비춰보면 문 후보는 외자주도성장(FDI-led development)의 긍정적 측면만 고려하고 있다. 전 세계의 금융화, 생산자본 국제화가 가져올 폐해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한미 FTA의 노무현으로 이어지기까지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도, 시장만능의 현상은 조금도 비판되지 않는다. 다만 양극화가 문제인데, 과연 문 후보의 머릿속에서처럼 양극화는 세계화와 완전히 별개의 사실일까?
  
  단순한 억측이 아니다. 문 후보의 한미 FTA에 대한 태도 역시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한미 FTA가 한국의 법과 제도를 모두 바꿔 결국 시장만능의 세계, 즉 그가 비판해 마지않는 양극화를 반영구적으로 제도화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것일까. 개성공단에 도움이 되니 찬성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나중에는 바로 그 개성공단이 얻는 바가 별로 없으니 유보한다는 것은 한미 FTA를 단순한 무역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방증 정도는 될 것이다.
  
  환동해벨트를 임기 내에?
  
  이 항목은 대체로 1%의 성장요인으로 설정돼 있다. 북한을 관통하여 러시아와 연결하는 구상은 그리 새롭지 않다. 블라디보스톡 재건 사업(2012년 35억 달러)을 제외한 철의 실크로드(TSR-TKR 연결), 동시베리아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 나진선봉지역 개발 구상 등은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모색돼 온 사업들이다.
  
  그러나 10-20년은 족히 걸리는 장기 사업들이어서 당장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 모두 러시아 정부와 끊임없이 논의는 해 오고 있지만, 예컨대 동시베리아 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은 아직도 러시아 내의 노선도 확정되지 않았다. 가장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 철도연결 사업의 경우도 북한 철도 현대화, TKR 노선 문제가 난제이다. 특히 문 후보의 주장대로 동해선을 연결하는 경우 남한의 끊어진 철로, 100Km가량의 복구부터 큰 문제를 낳는다.
  
  블라디보스톡 재건 사업도 어느 정도나 이야기가 된 것인지 의심스럽다. 김대중 정부 시절 블라디보스톡 부근의 나홋카 공단 공동 개발을 대통령끼리 약속했지만 현재는 사실상 중단상태인 것에 비춰 보면, 조금 더 지켜 볼 문제이다.
  
  중소기업의 재창조, 문 후보의 겸손?
  
  드디어 문 후보 경제정책의 백미에 다다랐다. 문 후보에 따르면 우리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선진국 생산성의 3분의 1에 불과하다(어디서 나온 통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임기 중에 100%의 생산성을 향상시켜서 선진국의 3분의 2 수준까지 쫓아갈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전가의 보도인 노동시간단축과 평생학습, 실현 수단으로서 4조 2교대제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돼 있다.
  
  우선 중소기업 생산성이 매년 20%(20×5=100) 향상되면 GDP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놀라지 마시라. 추가 성장 10~20%, 이를 더하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약 15%~25%가 된다. 왜 문후보가 2%의 추가성장만 이야기했는지 정말 의문이다.
  
  중소기업 범주를 어떻게 설정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일반 예에 따라 300인 미만 고용 업체(서비스업은 100인)로 정의한다면 중소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분야와 GDP 기여는 각각 다음과 같다.
  
  ............................<표2> 중소기업의 GDP 생산
▲ 2005년 기준, 한국은행 및 중소기업협동조합 자료*는 같은 범주에서 차지하는 비율. 예컨대 105/205=61.4 ** 정부 분야 등이 빠져 있으므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프레시안

  문 후보가 말하는 중소기업은 어느 범주를 말하는 것일까? 2000만명을 고용하는 중소기업을 언급한 걸 보면 위 세 범주 모두 상정했을 것이다. 매년 무려 80조원 이상의 GDP가 증가한다(415조×0.2). 이것만으로도 10% 이상이다. 2006년 중소기업청은 통계를 재조합하여 중소기업이 전체 GDP의 60% 가량을 생산한다고 발표했는데 이 통계를 적용하면 약 12% 의 경제성장률에 해당한다. (제조업만 따로 떼어내면 20조원 정도 GDP가 증가하므로 2.5%에 해당한다. 문 후보는 이 범주만 염두에 둔 것일까?)
  
  현실 경제에서 그 효과는 이보다 훨씬 크다. 중소기업 생산성이 뛰어 오르면 당연히 산업연관을 통해 추가 경제성장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거시 효과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거대 경제모델을 돌려야 한다. 한미 FTA 논란으로 유명해진 CGE 모델이 그 예일텐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경제성장 효과를 뻥튀기하기 위해 각 부문 1% 생산성 향상을 추가로 가정해서 5%의 추가 경제성장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GDP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범주의 생산성이 20% 향상된다면? 아마 어마어마할 것이다. 문 후보는 겸손해서 이런 엄청난 결과를 숨긴 것일까? 아니면 가정 자체가 지극히 비현실적인 것일까?
  
  전가의 보도, 뉴 패러다임
  
  이런 희대의 대사건을 일으킬 주역은 바로 뉴 패러다임이다. 그 핵심은 4조 2교대(또는 그 변형) 노동방식을 통해 노동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학습 프로그램을 도입해서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에 비하면 훨씬 진보적이고 동시에 실현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유한킴벌리를 비롯한 여러 사례에서 고용이 늘어나고 생산성이 향상되는 결과를 증명했기에 더욱 기대가 크다.
  
  과연 이 패러다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중소기업에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까? 중소기업의 규모별 통계를 보자.
  
  ............................<표3> 기업의 고용규모별 분포
▲ OECD, Small and Medium Enterprise Outlook(2005)ⓒ프레시안

  표에서 보듯이 50인 이하 고용업체가 무려 96.9%에 달한다. 현재 뉴 패러다임센터에서 발표한 실험사례를 보더라도 대체로 4조 2교대제(혹은 4조 3교대제)는 50인 이상, 고가의 설비를 사용하는 장치산업, 24시간 근무가 필요한 기업 등에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다. 뿐만 아니라 생산성 향상이 곧바로 매출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조건이다. 현실에서 중소기업가들은 판로 확보와 인력 부족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는다. 97%에 이르는, 말 그대로 절대 다수의 중소기업은 위의 조건을 대부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극소수 기업의 생산성이 20% 향상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국민경제를 좌우할 수는 없다.
  
  문 후보의 중소기업정책은 그의 말대로 실현된다면 어마어마한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별로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20% 가까운 성장을 2%로 줄여 잡은 것일까? 정책은 몇 조각 지식이나 감으로 밀어붙이고 선전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정책이 실현 가능한 것이 되려면
  
▲ ⓒ대한민국 창조본부

  뉴 패러다임의 핵심은 노동시간 단축과 학습 프로그램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다(현재의 성공사례는 설비 가동율 극대화와 노동력의 질 향상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니 후자의 효과를 따로 측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당장 민주노동당사가 자리 잡은 영등포구 문래동 주위에 있는 수천 개의 금형제조업체(일명 마치코바)에 이 패러다임을 적용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문 후보의 정책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업의 사례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 산업별로 적용하는 모델을 설정해야 한다. 예컨대 영등포에 아파트형 공장을 설립해서 마치코바들을 모으고 고가의 설비 공동사용, 정보의 교환, 판로의 공동 개척, 나아가서 브랜드화를 꾀한 후에야 비로소 '뉴 패러다임'은 시작될 수 있다. 다름 아닌 제3 이탤리 모델을 적용한 클러스터화가 해법이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산업별 특성에 따른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문 후보의 일부 참모는 영세기업을 뉴 패러다임에 참여시키기 위해 보조금 지급 정책을 언급한 바 있지만 정부가 재정으로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역재투자법에 의한 지역금융의 활성화, 은퇴자를 활용한 컨설팅업 지원 등이 필요하다. 한국의 중소기업 정책에는 세계의 온갖 것이 다 망라돼 있다. 그럼에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뉴 패러다임이라는 '강철검'을 몰라서 그랬던 것은 분명 아니다. 무릇 중소기업 정책의 실현가능성은 이런 문제를 얼마나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건전한 정책 논쟁을 기대하며
  
  이상에서 보았듯이 문 후보의 경제정책은 참신하고, 이명박 후보 등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이지만 거시적 정합성이나 실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기업가로서 성취하거나 배운 몇가지 지식이 곧바로 정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 후보의 경제정책은 몇가지 아이디어를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거시지표에 연결한 것으로 보인다. 정책수단과 결과 사이의 전달경로나 실현 가능성을 검증했다면 이렇게 정책을 발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거시정책이 그러하다.
  
  7% 잠재 성장률 달성을 주장한다거나 1%의 경제성장이 30만의 고용을 가져온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7%라니, 문후보가 모델로 상정한 어느 선진국 경제의 잠재성장율도 턱 없이 못 미칠 것이다. 그의 말대로 1%의 경제성장이 30만명의 고용을 가져온다면 문 후보의 일자리 공약은 1000만개 이상(30만명×8%×5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증자료를 보면 1% 당 7-8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정도이며 지난 몇 년의 실적도 대체로 그러하다. 중소기업 정책에서도 그랬듯 어김없이 거시경제에 관한 감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본인이 얼마나 엄청난 얘기를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정책을 수행한다면 과연 그 결과, 그리고 그에 따르는 부작용은 누가 감당해야 하는 걸까.
  
  문 후보의 국제경제관계에 관한 정책은 생략돼 있거나 근거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북미수교가 일어나면 경천동지의 사태가 벌어진다는 주장이 그러하다. 당장 투기적 국제자본의 움직임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 또 IMF 등 국제금융기관의 민주화에 대한 견해, 아시아 지역화에 관한 견해도 없다. 세계화와 외자유치 성장전략을 지금처럼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는다면 양극화 심화는 필연이다. 양극화를 소리 높여 비판하지만 문 후보의 정책으로 양극화를 극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다음에 실을 이명박 후보의 정책이 불러올 파국에 비하면 문 후보의 정책은 지극히 건전하다. 그러나 실현가능한 정책목표와 그에 걸맞은 구체적인 정책수단을 갖춰야 한다. 현재의 수준으로는 초기 2~3년간 기초작업만 하다가 8%라는 수치에 발목을 잡혀 무리수를 두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참여정부 초기, 신용카드 위기 탓에 부진한 경제를 갑자기 7% 성장시킬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내외의 비판에 휩싸이자 대통령은 그예 2만불론을 내세우고 분양원가 공개를 거부했으며, 지방의 땅값이 오르는 것은 괜찮다며 지방 개발 붐을 일으켰다. 이러한 오류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문 후보가 국제관계와 기업을 모른다고 민주노동당을 비판한 것은 선입견이나 단순한 인상을 오만하게 표현한 데 불과하다. 적어도 경제정책에서는 그렇지 않다. 문 후보의 뉴 패러다임이 적용되기 위해서도 산업별, 지역별 학습체계, 클러스터, 지역 금융시스템을 먼저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노동자 등 국민 대다수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정책은 종합적이어야 하며 신비의 강철검이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기준에 비춰서 민주노동당의 경제정책을 실제로 들여다 본 후 위 발언을 되짚어 보기 바란다. 물론 더 구체화하고 갖춰야 할 정책은 아직도 부지기수이다. 새롭게 만드는 문 후보의 정당이 생산적인 정책 토론에 적극 참여해서 이러한 정책 개발에 서로 도움이 되기 바란다.



전혀 틀린 데 없는 정확한 지적이다. 그런데 이 옳은 글을 어느 정도의 사람들까지 읽어보고 이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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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10) 독일 브란덴부르크 주(州)의 뷘스도르프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2일
벙커속에 묻어준 ‘전쟁 기억들’

 
뷘스도르프는 행정구역상 조센 시 소속이다. 역의 이름은 발츠슈타트 뷘스도르프. 이 간이역에서 젊은 연인이 베를린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한적한 숲속 마을로 발길을 들여놓았을 때 낙엽 밟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바닥을 적시는 굵은 빗줄기가 그 소리를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바그너의 서곡보다 더 장중하게 울려퍼지던 빗소리 사이로 인기척도 없는 건물들은 을씨년스럽게 수 십m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 한 채 건너 비어 있는 꼴이다. 그 길가 땅속에서 불쑥 백색의 병사가 튀어나온다. 참호에서 죽어가는 병사의 석상이다.

1930년대 말에 방공호로 구축된 삼각뿔 구조물. 이런 것들이 붕커 공원 내에 여기저기 솟아 있다.
벙커형 건물은 수십 동에 달한다. 30ha의 방대한 단지 밑으로 지하터널도 2㎞나 뻗어 있다. 낭만적인 정취는커녕 끔찍한 수수께끼가 숨겨진 미로 속으로 빨려드는 중이었다. 그런데 복잡하게 얽힌 수수께끼가 아니다. 너무나 단순명쾌한 배열 탓에, 동어반복적인 구조가 자아내는 기이한 헷갈림이다. 건물의 베란다에서 이따금 깜찍한 인형들이 비를 맞고 있다. 목각 올빼미들이다. 온종일 비를 맞으며 눈을 부릅뜨고서 무엇을 지켜보았을까? 옆구리에 책을 끼고 손전등을 휘두르는 올빼미는 북을 치며 행진하는 호전적인 독일병정 인형보다는 조금 나아 보인다.

집들은 벽의 두께가 60㎝에서 1m에 이른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30년대 후반에 조성된, 주거단지로 위장한 요새다. 또 그 단지 소나무들 틈 사이로 3층 높이를 훌쩍 넘는 뿔 모양의 구조물도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이것도 방공호의 일종이다. 또 다른 건물로 접근할수록 입은 더 타들어왔다. ‘체펠린’ ‘마이센바흐’ 등 첨단성능을 자랑하는 엔진을 개발했던 인물과 기업의 이름을 딴 통신소 건물과 원폭공습에도 견딜 수 있게 지어진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들이다. 마이센바흐는 전시에 탱크를 만들었지만 체펠린은 나치에 협력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지금도 잘 나가는 마이센바흐의 로고 타입은 바로 이 괴기스러운 삼각형 참호의 변형이다. 일부 허물어진 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건물들은 무서운 상상력으로 비약된 공포와 적개심의 화신으로 보인다. 이 숲속의 벙커는 45년 독일국방군이 패망하던 4월의 그날까지 사령부지휘소가 들어앉아 있던 곳이다. 그 뒤 이곳에 진주한 소비에트 군대가 94년에 완전 철군할 때까지 자신의 기지로 사용했다. 그러니 군사전략가나 국방전문가라면 이곳을 한 번쯤 찾지 않았을까? 책마을은 이렇게 붕커(영어로 벙커)와 군사박물관과 함께 ‘과거 속으로 산책’을 즐기는 공원으로 홍보되고 있다.

우선 빗줄기를 피해 카페로 들어서자 작은 액자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러시아 병사들의 병영생활이 담긴 사진들이다. 복무를 마치고 귀향하는 병사의 기념사진도 끼어 있다. 서울 삼각지에서 볼 수 있는 미군병사의 기념사진과 흡사하다. 카운터에서 커피를 따라주는 아가씨는 야윈 뺨에 야무진 인상이 영락없이 파스빈터 감독이 ‘라인강의 추잡한 기적’을 파헤쳤던 영화 ‘독일여자, 롤라’에서 경제성장기의 희생양으로 묘사했던 여주인공을 빼닮았다. 파스빈터가 동독의 영웅 칭호를 받았던 화가 오토 딕스가 그려낸 여인상에서 빌려왔던 이미지다. 윤곽선은 곱고 가냘프지만 불안한 눈매 뒤로 그보다 더욱 깊고 강인한 의지와 애욕이 엿보이는 인상이다.

포복하는 병사의 석고상이 설치미술 형식으로 마을 땅바닥에 놓여 있다.
대낮에 밝혀진 붉은 등불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이다보니 자연스레 18세기 계몽기의 독일이 떠올랐다. 출판시장과 전업작가와 유한부인들이 주도하는 독자층이 등장하던 시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당시 독서광이 출현하면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유행 덕분에 제일 많은 재미를 본 사람들은 커피장사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원작자, 마르틴 빌란트나 레싱 같은 문인도 저작권을 얻기 위해 애썼다. 번역을 하고 잡문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전업작가의 입지를 다지려 눈물 젖은 빵을 씹던 첫 번째 세대였다. 정신적 자유를 얻기 위해 물질적 예속을 감수해야 했던 쓰라린 모순의 출발기였다. 같은 시대에 “명예로운 일로 값을 따질 수 없는” 글쓰기에 매달렸다고 해도 대문호 괴테는 인세 수입에서 제일 재미를 보았다. 기도와 웅변을 닮은 해묵은 독서방식이 막을 내렸고 독서는 비로소 즐기기 위한 취미활동에 편입되었다. 독서하는 주체로서 개인이 탄생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개인의 자각이라는 관점에서라면, 그림 속에서 ‘개인’이 주권을 찾았던 네덜란드 사실주의 미술의 시대에 비해 훨씬 뒤늦은 일이었다.

‘고서적’상은 전쟁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병사들이 내무반으로 쓰던 벽장은 서가로 바뀌었다. 36만권을 헤아린다는 서가 틈에서 듬직한 노인이 나타났다. 이 사람이 라이너 밍크 박사로 마을의 터줏대감이다. 그는 베를린에도 서점을 갖고 있다. 그는 진지하게 마을의 현황을 들려주고 서점을 소개했다. 전쟁 관련 서적은 나라·시대·장르별로 분리되어 있음에도 방대하기만 하다. 우리 인간이 참으로 쉴 새 없이 서로 싸우고 죽이며 살아왔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전쟁사진집에서 잠시 눈을 돌려보면, 라이프치히 도서축제의 목록을 비롯한 도록·자료집·팜플렛과 리플렛, 조잡하지만 촌부의 손때가 묻은 ‘딱지본’이라고 할 소책자, 잡지 등이 풍성하다. ‘컬렉션’을 위한 앨범들은 매력적이다. 우표첩이나 그림엽서는 축에 들지도 못한다. 주화를 금박으로 재현한 기발한 취미의 구식 짝퉁 화폐들, 여러 독일 제국의 문장(紋章)과 고대의 장식유물을 복제한 동판화첩을 들춰보면 독일 철학자의 표현대로, ‘피와 땅’이 다를 때 취미와 관념은 얼마나 끔찍하게 달라지는지….

‘붕커샵’의 실내 전경. 군복과 군장이 책들과 나란히 놓여 있다.
밍크 박사는 내년의 책마을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 준비로 바쁘다. 이태 전부터 시작한 애호가를 위한 중고 군용차량 견본시장도 준비해야 한다. 작년에는 수천 명이 몰리는 대성황이었다. 프로모션을 위한 행사 가운데 ‘군대 이야기의 밤’은 학계와 언론도 주목하고 있다. 군대와 전쟁 체험에 대한 회상과 고백과 증언으로 이어지는 이 행사는 구술사(口述史)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밝히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새로운 사실이 폭로되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작가 한스 울리히 브란트는 전쟁 중에 이 마을사람들이 도모했던 반나치 저항운동에 대한 기록문학 작품을 발표해서 큰 반향을 얻기도 했다.

동호회의 활발한 추진에도 불구하고 2003년 이후로는 이렇다할 공적자금의 지원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사민당의 하원의장 마티아스 플라체크가 방문하면서 새로운 지원책을 시사한 점도 향후 책마을의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붕커와 공원을 찾는 관광객을 서점으로 끌어들이는 노력도 배가할 예정이다.

마을의 마스코트인 올빼미 캐릭터.
이런 전망 속에서 러시아와의 친교는 각별하다. 모스크바 군사박물관과는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이 붕커 박물관 겸 공원은 독일군의 자취보다 소비에트와 그 뒤를 이은 러시아군의 영예에 바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 고장이 일찍이 슬라브 민족이 정착했던 지역이라는 점도 은연중 도움을 주었을지 모른다.

지도와 도록과 나란히 첩첩이 쌓인 사진집들을 들춰나가자 우리 6·25전쟁에서 알몸으로 지프를 올라타고서 성조기에 철모를 걸고 승리를 구가하는 미군병사의 사진이 튀어나온다. 엄동설한의 어둠 속에 밤길을 재촉하는 난민, 다름 아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슬픈 행렬도 이어진다. 차마 들여다보기 민망한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잔혹행위에 치를 떨다가 동성애자나 기형인간을 조롱하고 학대하며 기념촬영까지 감행했던 나치의 미소와 마주치자 벙커의 천장에 부딪쳐 울리는 그 웃음소리에 귀를 막아야 했다. 폴란드 로츠 게토에서 몰래 카메라를 갖고 만행을 촬영했던 멘델 그로스만의 사진과도 재회했다. 초간본과 다른 저자들의 텍스트를 덧붙인 신판이 나오고 있다. 그 사진 가운데 어린 아이를 죽음의 가스실로 떠나보내며 철조망 사이로 입을 디밀어 부비며 나누는 최후의 작별 ‘키스 신’ 앞에서 우리는 “아우슈비츠 이후 더는 시도 쓸 수 없고 노래도 부를 수 없다”고 절규했던 철학자의 외침을 듣는 듯 얼어붙고 만다. 이토록 간절하다 못해 숭고한 입맞춤을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폴란드 로츠 유대인 집단거주지에서 멘델 그로스만이 목숨을 걸고 몰래 촬영했던 사진이다. 여자들이 분뇨를 나르는 장면과 자식을 최후의 수용소로 보내면서 작별하는 장면이다. 그로스만은 결국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이런 사진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하면서도, 이탈리아 사람으로 독일에 살면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요체를 훌륭하게 전했던 철학자 에르네스토 그라시가 기획한 문고판 ‘로볼츠’ 총서를 뒤적이는 것으로 긴장을 풀어보았다. 그는 이 총서를 통해 이탈리아 화가 아르킴볼도를 발굴하고 소개했다. 지금 파리에서 관중몰이를 하고 있는 아르킴볼도의 익살맞고 공상적인 ‘사서(司書)’의 이미지는 30년대에 유럽 전역에 ‘바로크’ 개념을 내세워 또다른 민족 신화의 바람몰이에 나섰던 독일 미술사학계의 과욕을 비웃는 듯하다.

창밖에서 비는 그칠 줄 모르며 음습한 분위기를 부추겼다. 그러던 중 세찬 빗줄기가 뿜어대던 물안개가 방금 전 버스에서 내린 한 무리 관광객에게 묻어 실내까지 몰려 들어왔다. 혹시 중세를 짙게 덮었던 그 물안개였을까? 민족주의라는 보검(寶劍)의 광채를 찾아내고 싶어하던 독일식 신비주의를 자극했던 바로 그 푸르스름한 물안개가 여기까지 밀려든 것일까…. 라인 강 서쪽과 알프스 이남 사람들은 이런 의욕에서 야만성만 보려 했고, 또 독일인은 얼마나 이 야만성에서 창조를 위한 파괴의 열정을 읽어내겠다며 강변을 거닐었을까….

‘고서적’에 이웃한 얀스 슈말렌베르거가 운영하는 ‘붕커숍’에는 서적 외에도 러시아 군복과 군장, 군모, 표장과 수기본 등이 가득했다. 러시아군 병사가 고향 우즈베키스탄에서 받았던 엽서에는 이슬람 사원의 그림우표가 우아하게 붙어 있다. 이곳에는 박물관 전시기획자들, 영화 제작에 필요한 사진 등 도상자료를 수배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매우 잦다. 전투 현장의 고증에 필요한 상당한 부분을 해결한 사례도 얼마든지 많다. 베를린 시가전과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이나 잠수함 ‘U보트’ 전투를 다룬 영화들도 이곳에서 발굴한 자료에 크게 의존했다.

이곳에서 한 블록 떨어진 ‘책의 마구간’은 밀려드는 책을 방치하다시피 쌓아두었다. 러시아 군이 마구간으로 쓰던 곳이다. 손가락 모양이 가리키는 표지판에는 단 돈 1유로에 어떤 책이든 집어들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이곳은 지역 ‘아카이브’처럼 기증품을 보관해두기도 하지만 낭송회나 음악회를 여는 장소로도 사용된다. 얼마 전처럼 팔순을 기념해서 갖고 있던 장서 전체를 기증하는 사람도 있어 마구간은 그 잘 생긴 군마(軍馬)를 떠나보낸 자리를 책장 넘기는 소리로 채워가고 있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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