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중세, 민초의 삶을 더듬다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2일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 파워 | 이산

서양 중세의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사 교수인 아일린 파워(1889~1940)가 쓴 ‘중세의 사람들(Medieval People)’은 평범한 6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중세 사람의 다채로운 삶을 손에 잡힐 듯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무겁고 어두운 중세의 종교적 분위기 대신 민초들의 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6명은 샤를 마뉴 치세 하의 프랑크 왕국의 농부 보도, 베네치아 상인 겸 여행가인 마르코 폴로,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나오는 수녀원장 마담 에글렌타인, 파리의 중간 계급 가정 주부인 메나지에의 아내, 15세기 지정 거래소의 양모무역 상인인 토머스 벳슨, 헨리 7세 시대 에식스의 모직물 업자인 토머스 페이콕 등이다. 등장 인물들 가운데에는 마르코 폴로처럼 매우 유명한 사람도 있고, 마담 에글렌타인처럼 수녀원장도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중세시대에 살던 중간 계급 이하의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중세 사회를 떠받치고 변화를 주도해 결국 자본주의 사회가 열렸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리면서도 “중세는 결코 ‘암흑시대’라는 말로 단순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층의 사람들을 다루고 있지만 굳이 이 책이 ‘민중사’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등장 인물들의 사회적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다.

아일린 파워는 자신이 여성이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주인공 6명을 남자 3명, 여자 3명으로 설정했다. 저자는 주인공이 남자든 여자든 반드시 그들의 남녀 관계를 다루고 있다. 최근 역사 연구에서 여성사를 제외하면 여성을 남성과 같은 비중으로 다룬 역사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 책은 20세기 초반에, 그것도 중세사에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여성의 삶과 일상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작업으로 평가될 만하다.

‘중세의 사람들’은 여느 중세 관련 서적처럼 성직자, 영주, 기사의 신앙이나 무용담을 다루는 게 아니다. 생산과 유통을 담당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그 때문에 이 책은 ‘사회경제사의 고전’으로 평가 받는다. 저자는 “사회사는 정치사에 비해 저명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아 독자의 관심을 끌기도 어렵고 간혹 모호하고 막연하다는 비판을 받는다”면서도 “개인 위주의 서술 방식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결코 재미가 작은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중세의 사람들’은 서양의 중세를 이해하는 데 최적의 입문서라 할 만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개론적 지식 이상의 것을 얻으면서 역사의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다. 원저의 초판은 1924년 나왔으나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 완역됐다. 김우영 옮김. 1만5000원

〈설원태 선임기자 solw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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