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책마을을 가다](10) 독일 브란덴부르크 주(州)의 뷘스도르프
출처 : <경향신문> 2007년 11월 02일
벙커속에 묻어준 ‘전쟁 기억들’

 
뷘스도르프는 행정구역상 조센 시 소속이다. 역의 이름은 발츠슈타트 뷘스도르프. 이 간이역에서 젊은 연인이 베를린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한적한 숲속 마을로 발길을 들여놓았을 때 낙엽 밟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바닥을 적시는 굵은 빗줄기가 그 소리를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바그너의 서곡보다 더 장중하게 울려퍼지던 빗소리 사이로 인기척도 없는 건물들은 을씨년스럽게 수 십m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 한 채 건너 비어 있는 꼴이다. 그 길가 땅속에서 불쑥 백색의 병사가 튀어나온다. 참호에서 죽어가는 병사의 석상이다.

1930년대 말에 방공호로 구축된 삼각뿔 구조물. 이런 것들이 붕커 공원 내에 여기저기 솟아 있다.
벙커형 건물은 수십 동에 달한다. 30ha의 방대한 단지 밑으로 지하터널도 2㎞나 뻗어 있다. 낭만적인 정취는커녕 끔찍한 수수께끼가 숨겨진 미로 속으로 빨려드는 중이었다. 그런데 복잡하게 얽힌 수수께끼가 아니다. 너무나 단순명쾌한 배열 탓에, 동어반복적인 구조가 자아내는 기이한 헷갈림이다. 건물의 베란다에서 이따금 깜찍한 인형들이 비를 맞고 있다. 목각 올빼미들이다. 온종일 비를 맞으며 눈을 부릅뜨고서 무엇을 지켜보았을까? 옆구리에 책을 끼고 손전등을 휘두르는 올빼미는 북을 치며 행진하는 호전적인 독일병정 인형보다는 조금 나아 보인다.

집들은 벽의 두께가 60㎝에서 1m에 이른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30년대 후반에 조성된, 주거단지로 위장한 요새다. 또 그 단지 소나무들 틈 사이로 3층 높이를 훌쩍 넘는 뿔 모양의 구조물도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이것도 방공호의 일종이다. 또 다른 건물로 접근할수록 입은 더 타들어왔다. ‘체펠린’ ‘마이센바흐’ 등 첨단성능을 자랑하는 엔진을 개발했던 인물과 기업의 이름을 딴 통신소 건물과 원폭공습에도 견딜 수 있게 지어진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들이다. 마이센바흐는 전시에 탱크를 만들었지만 체펠린은 나치에 협력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지금도 잘 나가는 마이센바흐의 로고 타입은 바로 이 괴기스러운 삼각형 참호의 변형이다. 일부 허물어진 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이 건물들은 무서운 상상력으로 비약된 공포와 적개심의 화신으로 보인다. 이 숲속의 벙커는 45년 독일국방군이 패망하던 4월의 그날까지 사령부지휘소가 들어앉아 있던 곳이다. 그 뒤 이곳에 진주한 소비에트 군대가 94년에 완전 철군할 때까지 자신의 기지로 사용했다. 그러니 군사전략가나 국방전문가라면 이곳을 한 번쯤 찾지 않았을까? 책마을은 이렇게 붕커(영어로 벙커)와 군사박물관과 함께 ‘과거 속으로 산책’을 즐기는 공원으로 홍보되고 있다.

우선 빗줄기를 피해 카페로 들어서자 작은 액자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러시아 병사들의 병영생활이 담긴 사진들이다. 복무를 마치고 귀향하는 병사의 기념사진도 끼어 있다. 서울 삼각지에서 볼 수 있는 미군병사의 기념사진과 흡사하다. 카운터에서 커피를 따라주는 아가씨는 야윈 뺨에 야무진 인상이 영락없이 파스빈터 감독이 ‘라인강의 추잡한 기적’을 파헤쳤던 영화 ‘독일여자, 롤라’에서 경제성장기의 희생양으로 묘사했던 여주인공을 빼닮았다. 파스빈터가 동독의 영웅 칭호를 받았던 화가 오토 딕스가 그려낸 여인상에서 빌려왔던 이미지다. 윤곽선은 곱고 가냘프지만 불안한 눈매 뒤로 그보다 더욱 깊고 강인한 의지와 애욕이 엿보이는 인상이다.

포복하는 병사의 석고상이 설치미술 형식으로 마을 땅바닥에 놓여 있다.
대낮에 밝혀진 붉은 등불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이다보니 자연스레 18세기 계몽기의 독일이 떠올랐다. 출판시장과 전업작가와 유한부인들이 주도하는 독자층이 등장하던 시대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당시 독서광이 출현하면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유행 덕분에 제일 많은 재미를 본 사람들은 커피장사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원작자, 마르틴 빌란트나 레싱 같은 문인도 저작권을 얻기 위해 애썼다. 번역을 하고 잡문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전업작가의 입지를 다지려 눈물 젖은 빵을 씹던 첫 번째 세대였다. 정신적 자유를 얻기 위해 물질적 예속을 감수해야 했던 쓰라린 모순의 출발기였다. 같은 시대에 “명예로운 일로 값을 따질 수 없는” 글쓰기에 매달렸다고 해도 대문호 괴테는 인세 수입에서 제일 재미를 보았다. 기도와 웅변을 닮은 해묵은 독서방식이 막을 내렸고 독서는 비로소 즐기기 위한 취미활동에 편입되었다. 독서하는 주체로서 개인이 탄생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개인의 자각이라는 관점에서라면, 그림 속에서 ‘개인’이 주권을 찾았던 네덜란드 사실주의 미술의 시대에 비해 훨씬 뒤늦은 일이었다.

‘고서적’상은 전쟁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병사들이 내무반으로 쓰던 벽장은 서가로 바뀌었다. 36만권을 헤아린다는 서가 틈에서 듬직한 노인이 나타났다. 이 사람이 라이너 밍크 박사로 마을의 터줏대감이다. 그는 베를린에도 서점을 갖고 있다. 그는 진지하게 마을의 현황을 들려주고 서점을 소개했다. 전쟁 관련 서적은 나라·시대·장르별로 분리되어 있음에도 방대하기만 하다. 우리 인간이 참으로 쉴 새 없이 서로 싸우고 죽이며 살아왔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온다. 전쟁사진집에서 잠시 눈을 돌려보면, 라이프치히 도서축제의 목록을 비롯한 도록·자료집·팜플렛과 리플렛, 조잡하지만 촌부의 손때가 묻은 ‘딱지본’이라고 할 소책자, 잡지 등이 풍성하다. ‘컬렉션’을 위한 앨범들은 매력적이다. 우표첩이나 그림엽서는 축에 들지도 못한다. 주화를 금박으로 재현한 기발한 취미의 구식 짝퉁 화폐들, 여러 독일 제국의 문장(紋章)과 고대의 장식유물을 복제한 동판화첩을 들춰보면 독일 철학자의 표현대로, ‘피와 땅’이 다를 때 취미와 관념은 얼마나 끔찍하게 달라지는지….

‘붕커샵’의 실내 전경. 군복과 군장이 책들과 나란히 놓여 있다.
밍크 박사는 내년의 책마을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 준비로 바쁘다. 이태 전부터 시작한 애호가를 위한 중고 군용차량 견본시장도 준비해야 한다. 작년에는 수천 명이 몰리는 대성황이었다. 프로모션을 위한 행사 가운데 ‘군대 이야기의 밤’은 학계와 언론도 주목하고 있다. 군대와 전쟁 체험에 대한 회상과 고백과 증언으로 이어지는 이 행사는 구술사(口述史)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밝히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새로운 사실이 폭로되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작가 한스 울리히 브란트는 전쟁 중에 이 마을사람들이 도모했던 반나치 저항운동에 대한 기록문학 작품을 발표해서 큰 반향을 얻기도 했다.

동호회의 활발한 추진에도 불구하고 2003년 이후로는 이렇다할 공적자금의 지원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사민당의 하원의장 마티아스 플라체크가 방문하면서 새로운 지원책을 시사한 점도 향후 책마을의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붕커와 공원을 찾는 관광객을 서점으로 끌어들이는 노력도 배가할 예정이다.

마을의 마스코트인 올빼미 캐릭터.
이런 전망 속에서 러시아와의 친교는 각별하다. 모스크바 군사박물관과는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이 붕커 박물관 겸 공원은 독일군의 자취보다 소비에트와 그 뒤를 이은 러시아군의 영예에 바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 고장이 일찍이 슬라브 민족이 정착했던 지역이라는 점도 은연중 도움을 주었을지 모른다.

지도와 도록과 나란히 첩첩이 쌓인 사진집들을 들춰나가자 우리 6·25전쟁에서 알몸으로 지프를 올라타고서 성조기에 철모를 걸고 승리를 구가하는 미군병사의 사진이 튀어나온다. 엄동설한의 어둠 속에 밤길을 재촉하는 난민, 다름 아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슬픈 행렬도 이어진다. 차마 들여다보기 민망한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잔혹행위에 치를 떨다가 동성애자나 기형인간을 조롱하고 학대하며 기념촬영까지 감행했던 나치의 미소와 마주치자 벙커의 천장에 부딪쳐 울리는 그 웃음소리에 귀를 막아야 했다. 폴란드 로츠 게토에서 몰래 카메라를 갖고 만행을 촬영했던 멘델 그로스만의 사진과도 재회했다. 초간본과 다른 저자들의 텍스트를 덧붙인 신판이 나오고 있다. 그 사진 가운데 어린 아이를 죽음의 가스실로 떠나보내며 철조망 사이로 입을 디밀어 부비며 나누는 최후의 작별 ‘키스 신’ 앞에서 우리는 “아우슈비츠 이후 더는 시도 쓸 수 없고 노래도 부를 수 없다”고 절규했던 철학자의 외침을 듣는 듯 얼어붙고 만다. 이토록 간절하다 못해 숭고한 입맞춤을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폴란드 로츠 유대인 집단거주지에서 멘델 그로스만이 목숨을 걸고 몰래 촬영했던 사진이다. 여자들이 분뇨를 나르는 장면과 자식을 최후의 수용소로 보내면서 작별하는 장면이다. 그로스만은 결국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이런 사진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하면서도, 이탈리아 사람으로 독일에 살면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요체를 훌륭하게 전했던 철학자 에르네스토 그라시가 기획한 문고판 ‘로볼츠’ 총서를 뒤적이는 것으로 긴장을 풀어보았다. 그는 이 총서를 통해 이탈리아 화가 아르킴볼도를 발굴하고 소개했다. 지금 파리에서 관중몰이를 하고 있는 아르킴볼도의 익살맞고 공상적인 ‘사서(司書)’의 이미지는 30년대에 유럽 전역에 ‘바로크’ 개념을 내세워 또다른 민족 신화의 바람몰이에 나섰던 독일 미술사학계의 과욕을 비웃는 듯하다.

창밖에서 비는 그칠 줄 모르며 음습한 분위기를 부추겼다. 그러던 중 세찬 빗줄기가 뿜어대던 물안개가 방금 전 버스에서 내린 한 무리 관광객에게 묻어 실내까지 몰려 들어왔다. 혹시 중세를 짙게 덮었던 그 물안개였을까? 민족주의라는 보검(寶劍)의 광채를 찾아내고 싶어하던 독일식 신비주의를 자극했던 바로 그 푸르스름한 물안개가 여기까지 밀려든 것일까…. 라인 강 서쪽과 알프스 이남 사람들은 이런 의욕에서 야만성만 보려 했고, 또 독일인은 얼마나 이 야만성에서 창조를 위한 파괴의 열정을 읽어내겠다며 강변을 거닐었을까….

‘고서적’에 이웃한 얀스 슈말렌베르거가 운영하는 ‘붕커숍’에는 서적 외에도 러시아 군복과 군장, 군모, 표장과 수기본 등이 가득했다. 러시아군 병사가 고향 우즈베키스탄에서 받았던 엽서에는 이슬람 사원의 그림우표가 우아하게 붙어 있다. 이곳에는 박물관 전시기획자들, 영화 제작에 필요한 사진 등 도상자료를 수배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매우 잦다. 전투 현장의 고증에 필요한 상당한 부분을 해결한 사례도 얼마든지 많다. 베를린 시가전과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이나 잠수함 ‘U보트’ 전투를 다룬 영화들도 이곳에서 발굴한 자료에 크게 의존했다.

이곳에서 한 블록 떨어진 ‘책의 마구간’은 밀려드는 책을 방치하다시피 쌓아두었다. 러시아 군이 마구간으로 쓰던 곳이다. 손가락 모양이 가리키는 표지판에는 단 돈 1유로에 어떤 책이든 집어들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이곳은 지역 ‘아카이브’처럼 기증품을 보관해두기도 하지만 낭송회나 음악회를 여는 장소로도 사용된다. 얼마 전처럼 팔순을 기념해서 갖고 있던 장서 전체를 기증하는 사람도 있어 마구간은 그 잘 생긴 군마(軍馬)를 떠나보낸 자리를 책장 넘기는 소리로 채워가고 있다.

〈글·사진 정진국|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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