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욱 교수의 논조가 완전히 변했다. 이 논쟁의 첫글(초국적 자본 견제할 힘 저항적 ‘민족의식’에 있다)을 쓸 때와 비교해 읽어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민족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사람들의 문제의식이 이런 정도라면 누가 문제삼을까? 민노당 우파(주체파)들에게서 보여지는 것처럼 당면한 민중의 생존권투쟁보다 한차원 높은 실천으로서의 통일운동에 거의 올인하다시피 하는 게 그 실천적 지향이 되어버리니까 비판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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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민족 ‘상생의 지혜’ 모으자
[기획] 우리시대 지식 논쟁 ④ - 진보적 민족주의 유효한가 ⑤

안병욱/가톨릭대 교수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 12 05


» 주변국 문제에 있어 한국사회는 중·일과 미국에 대한 ‘이중잣대’가 존재한다. 민족의식 ‘과잉’ 현실과 ‘숭미사대주의’가 공존하는 셈이다. 동북공정 중단 촉구 시위(왼쪽)와 독도 관련 시민단체의 반일 시위 현장(오른쪽). 〈한겨레〉자료사진
 

우리시대 지식논쟁 /

5. 현실적 역할 엄존한다.

지난 4주 동안 민족과 탈민족 혹은 중도적 관점의 논자 4명이 논쟁을 펼쳤다.

논점은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근대 이전 민족 관념의 실체가 있었는냐의 문제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공동체적 유대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진단했다. 반면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조선 말기까지 한국 사회는 동질성보다 다양성이 강했으며 동질적인 것은 지배계급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불과했다는 시각을 보였다.

또 다른 논점은 민족주의가 피지배 계급 저항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다. 안 교수는 공동체적 유대관계야말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저항운동을 이끈 원동력이었다면서 세계화 시대 초국적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단으로서 저항적 민족주의의 유효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민족주의의 가장 큰 폐단은 계급모순이라는 기본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라 했고 임지현 한양대 교수도 민족주의적 저항방식은 피지배 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해친다고 했다.

두 관점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1990년대 이후 한국 민족주의가 대한민국 국가주의의 양상을 점점 지니게 되었다면서도 구체적인 사회적 힘인 민족을 무시하고 사회변혁을 구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이 글에서 민족의식이 계급연대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실사구시적 설명이 부족하다면서 계급연대는 민족공동체와 연결되었을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했다. 6회와 7회는 권혁범 대전대 교수와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각기 주장을 펼친다. 애초 5회로 연재를 마칠 계획이었으나 이 주제에 대해 학계 안팎의 뜨거운 관심이 쏟아져 논쟁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2회 늘리기로 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진보적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논지를 펼쳐 달라고 청탁을 받기는 했지만 평소 필자가 민족주의와 관련된 논쟁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흔히 그런 논쟁은 서양의 이론을 끌어다 한국사회 연구자들을 비판하는 식으로 전개되어 왔었다. 그런데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한국사회를 연구한 성과란 서양에 비해 크게 뒤진다. 아직도 기초적인 사실규명에 급급한 처지여서 연구성과에 바탕을 둔 이론적 체계화가 크게 미흡할 수밖에 없다. 그런 형편에서 서양의 이론을 끌어다 전개하는 관념적이고 추상적 논쟁이 실제적이고 균형 있게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한국사회에 통용되는 민족주의적 가치를 두고 허심탄회한 논의를 이끌어 내보고 싶어 청탁에 응하여 기고했다. 무엇보다 이번 논의를 기해 한국사회에 대한 심화된 분석이 이루어지고 세계사적인 시야가 확보될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다.

최근 4개 텔레비전 방송은 서로 앞다투어 가면서 고구려 시대를 소재로 한 연속사극을 방송해오고 있다. 역사를 소재로 창작된 드라마일 뿐이지만 이른바 중국 동북공정 문제로 야기된 민족주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분명 올바른 역사 인식과 거리가 있는 우리 사회의 과장된 민족영웅사관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가 하면 독도문제로 인해 거의 주기적으로 일본을 향한 비판적 공격이 촉발되곤 한다. 상대국들이 문제를 야기하고 빌미를 제공한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사회는 이런 문제에 필요 이상으로 과민하게 반응해 온 것이다. 때로는 그동안 쌓인 감정의 응어리를 쏟아내듯 맹목적으로 대응하곤 한다. 이런 모습들이 한국사회만의 고유한 현상은 아니겠지만 어떻든 세련되지 못한 낙후한 역사인식인 것이며 때로는 광풍에 가깝다고 할 만큼 과도한 점이 있다.

동북공정·독도 관련 맹목적 반응
민족인식 ‘과잉’ 측면 방증하지만
중·일 아닌 미 정부 비판은 불가능
‘숭미사대주의’ 해법 ‘민족’에 있어


이런 예에서 드러나듯 한국사회에서 민족주의적 인식이 과잉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민족 정서를 건들면서 파고들면 쉽게 흔들리곤 했다. 거기에는 대중의 정서를 악용해 온 정략적 의도, 상업주의, 기득권 세력의 책동들이 얽혀 있다. 그에 따라 때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의가 불가능하게 되고 그런 정서를 악용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와 사회통제가 횡행해 왔다.

그와 같은 과잉된 현상이 두드러진 경우를 크게 세 가지로 지적할 수 있다. 우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 중국과 관련되는 역사와 영토 문제 등에서 쉽게 드러난다. 말하자면 대외 관계에서 살펴볼 수 있는 민족주의적 대응이다. 그러나 다 같은 대외 문제이지만 미국과 관련해서는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 현재 반세기가 넘게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어찌됐건 민족 내부문제 때문에 주둔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초국적 자본의 안전판 구실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행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만일 미국 정부를 비난한다면 사회적으로 무사히 넘어가지 못한다. 예컨대 어떤 경우라도 학문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함에도 강정구 교수는 한국전쟁에서 수십만 명의 인명이 희생된 데 대한 맥아더의 책임을 논했다고 하여 2심 재판까지 진행된 현재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이다. 정치인들은 훨씬 제약이 심해 만일 발언 가운데 실수로라도 반미적 표현이 들어간다면 그런 경우 정치를 그만두어야 한다. 이런 상황하에서 한국에 민족주의란 존재하기나 한 것인지. 민족주의가 아니라 숭미사대주의라는 설명이 합당할지 모르겠다. 이는 19세기 서양에서 시민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민족주의가 형성되던 조건과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민족주의적인 인식이 강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이주노동자 문제가 상징하는 것처럼 저성장국 사람들을 상대로 표출되는 흔히 졸부 근성이라고 비난받는 일부 한국인들의 행태이다. 참으로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부끄러운 모습들이다. 그러나 이는 일부 사람들의 일그러진 행태라고 봐야지 그것을 민족성 내지 민족주의 탓으로 환원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는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일시적 부작용이며 한때 일본관광객들에게서 제기되었던 문제와 비슷한 현상이다. 개개인들의 성숙된 인식이야말로 공동체를 매개로 형성되는 자율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오히려 공동체적인 유대관계를 순기능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사회를 마치 시대착오적 민족주의가 전횡한다고 하는 획일적 시각으로 재단하여 비난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왜곡된 편향이다. 개인들의 일탈을 민족적인 것으로 확대 인식하는 것은 지난날 일제침략을 위한 식민주의 사관과 다르지 않다.

이주노동자·저성장국 폄하 문화
‘민족 공동체의식’으로 극복해야
“민족이 계급연대 저해” 주장보다
분단·차별 대응 방안 모색해야


셋째로 가장 맹목적 행태는 안으로 노동자 파업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목도하게 되는 우리 사회의 파시즘적 반응이다. 한국사회에서 자본은 파시즘적 비호를 받으면서 무소불위의 횡포를 자행하지만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은 권력의 야만적 탄압으로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마저 양보해야 한다. 자본을 중심으로 기득권 세력이 주도하는 여론 몰이에 혹세무민의 세상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삼성재벌과 같은 공룡이 탄생하고 나라는 삼성의 수중에서 농락당하는 형국이 되었다. 자본의 시장논리는 노동자의 파업권이 확보될 때 비로소 성립될 수 있는데도 삼성은 국가의 공권력을 이용해 그러한 최소한의 공리마저 무시해 오다가 초역사적인 괴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자본과 노동계급관계의 차원을 넘는다. 또 계급연대만으로 해결되기도 어렵다. 더욱이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초국적 자본의 공세가 더해지면서 노동자들의 의식은 오히려 더 열악해지고 있다. 현재 비정규직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노동계의 동향은 이를 웅변해주고 있다. 지난 1990년대 한국의 노동운동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을 때와 비교한다면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당시 노동운동은 민족민중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곧 노동자의 계급연대란 민족공동체와 연결되었을 때 더 강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탈민족을 향해 나가는 세계사의 흐름을 부인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의식이 어느 시대 어느 조건에서도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현재의 한국적 현실에서 불가피한 측면에 대해 변명한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세계사의 흐름에 조응하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 탈민족을 내세우면서 민족주의적 주장들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비판할 뿐 설득력 있는 대안을 말하지는 않고 있다. 계급연대를 말하지만 이에 대한 실사구시적인 설명은 부족하다.

때문에 그동안 민족의식을 매개로 지탱해온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기반과 역사성을 탈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고 허물어낸 틈새로 초국적 자본의 공세가 펼쳐지는 것은 아닌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 민족의식이 계급연대를 저해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낡은 시대의식(민족주의)이 세계사적인 새로운 흐름(탈민족 계급연대)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모순된 인식을 주장하고 있다.

» 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
 
지금 필요한 것은 민족주의의 개념 정의나 이론도 아니고 또 민족의식에 책임을 전가하는 일도 아니다.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인 민족분단, 민중 차별과 갈수록 열악해지는 생존 조건, 신자유주의 초국적 자본의 야만적 공세에 대응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그 점에서 여전히 진보적 민족주의의 할일은 남아 있는 것이다.



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1948년생으로 조선후기 사회변동 문제와 민중운동·민주화운동에 관한 연구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동안 과거청산과 학술 운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최근 국가정보원 진실위원회 보고서를 엮어냈습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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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클라우/무페 논쟁'으로 유명한 샹탈 무페는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을 비판하고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받아들여 자신들(논쟁을 하면서도 라클라우와 무페는 지속적인 공동작업을 수행한다)의 '급진적 민주주의' 기획을 도출해낸다.

그들은 '사회'(구성체)를 그 요소들, 예컨대 자본, 이데올로기, 노동, 실천 등의 요소들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접합과정'으로 이해하고 마르크스주의에 내재하는 본질주의적 토대결정론을 비판한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라클라우와 무페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에서 다루는 계급투쟁이 실제로는 다양한 사회적 대립를 구성하는 하나의 층위일 뿐이며, '사회'(구성체)에는 다양한 투쟁들이 경합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한 사회의 변화/변혁이란 항상 '가능성의 (새로운) 장'이란 의미에서 열려 있으며, 그 열린 공간을 누가 어떻게 장악하느냐 하는 것 또한 항상 가능성의 장으로 열려 있다고 파악한다. 이러한 열린 가능성의 장에 새로운 접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헤게모니 투쟁'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여기서 그람시 헤게모니 개념의 전략적 의미가 도출된다.

이러한 이들의 이론적 정식화는 공저인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1985)에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는데, 번역은 김성기, 김해식 등에 의해 <사회변혁과 헤게모니>(1990, 터)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다. 당시의 시대분위기와 맞물려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 역시 당시 어떤 '갇힌 공간'에서 한창 그람시를 새롭게 읽고 있었기에 흥미롭게 보았던 책 가운데 하나였다.

아래는 <한겨레신문>에 실린 무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 대한 서평이다. 그런데 솔직한 느낌으로는 너무 늦게 찾아온 손님 같다. 앞에서 언급한 <헤게모니와 사회전략>의 연장선 상에서 읽혀지고 다루어졌어야 할 책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헤게모니와 사회전략>이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을 너머 새로운 급진적 민주주의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이 책 <정치적인 것의 귀환>은 마르크스주의 정치학과 완전히 단절된 시각을 보여준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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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노예들이여, 정치로 돌아오라

고명섭 기자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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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접점을 찾다

고명섭 기자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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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7-12-08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좀 늦게 소개된 감이 있습니다. :-)

내오랜꿈 2007-12-08 17:46   좋아요 0 | URL
네에,, 아마 그때는 사회과학계 내에서 '(맑시즘에서) 너무 벗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순전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고종석 칼럼] 미래를 위한 사표(死票)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출처 : <한국일보> 2007 12 05


정파 분열과 후보 난립이 겹쳐, 17대 대선 당선자는 1987년 대선 이래 가장 낮은 득표율에서 결정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이번 대선에서 나올 사표(死票)의 비율이 87년 대선 이래 가장 높으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자신이 던진 표가 사표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될 사람 밀어주자는 식의 부화뇌동, 곧 밴드왜건효과의 심리적 바탕도 그것이고, 지난 16대 대선 막판에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을 망설이게 했던 정치적 연산의 바탕도 그것이다.

그러나 사표에 정치적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 대선 때 유효표의 51%가 넘었던 사표는 유권자 과반수가 노무현 후보 반대편에 서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면서 노 정권의 행보를 일정하게 제약했다.

그 사표 가운데 민노당 권영길 후보가 받은 표는, 비록 유효표의 4%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선거공학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사회민주주의 신념을 드러내고자 하는 유권자들이 바로 그만큼은 있음을 보여주었다.

■ 빅쓰리' 이념의 동질성

이번 대선에서도 민노당에 던지는 표는 사표일 가능성이 100%다. 다시 말해 권영길 후보가 당선할 가능성은 0%다. 그러나 권영길씨에게 던져질 사표는 다른 사표들과 그 정치적 의미가 다르다.

지금 빅쓰리라 불리는 정동영 이명박 이회창씨 가운데 두 사람에게 던져질 사표는 어떤 인물이나 패거리에 대한 호오를 드러낼 뿐, 가치나 이념의 차이를 드러내지는 못한다.

이것은 빅쓰리가 일종의 연예인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들 가운데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대한민국의 앞날이 크게 다른 경로를 걷게 되지는 않으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네거티브 캠페인 탓에 정책선거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한탄이 곧잘 나오고 있지만, 과연 이들 빅쓰리의 정책이 그렇게 서로 다른가? 아니 설령 지금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정책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그 다름이 집권 이후의 실천으로까지 이어질까?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런 양두구육은 때깔 좋은 언어를 내세워 집권한 노 대통령이 지난 5년간 충분히 보여준 바 있다.

선량한 범여권 지지자들은 이명박씨나 이회창씨가 집권하는 걸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대북정책이 지금의 화해협력 노선을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이회창씨의 가장 격렬한 언어조차 극보수 유권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사탕발림일 뿐이다. 막상 집권했을 때, 그에겐 지금까지의 화해협력 정책을 뒤집을 힘도 의사도 없을 게다.

현단계에서, 대북 화해협력 정책은 미국 정부와 한국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니 말이다. 선량한 범한나라당 지지자들 역시 정동영씨가 집권하는 걸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노무현 정부가 정신분열적 태도로 증명했듯, 가상의 정동영 정부 역시 말은 어떨지 몰라도 그 몸뚱이는 재벌-관료 동맹 위에 얹혀 부익부 빈익빈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매진할 테니 말이다.

물론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권력잔치의 초대장에 박힌 이름은 달라질 것이다. 이명박씨나 이회창씨가 집권하면, 그 잔치에 그들의 친구가 초대될 것이다.

이 잔치에, 선량한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낄 자리는 없다. 정동영씨가 집권할 경우엔, 그 잔치에 정동영씨의 친구들이 초대될 것이다. 이 잔치에도, 선량한 범여권 지지자들이 낄 자리는 없다. 지지자와 친구는 다르다. 대통령 선거의 격렬함은 이 잔치에 끼고자 하는 예비 파워 엘리트들의 욕망의 결렬함이다.

■ 잔치의 판을 바꾸려면

민노당은 그 잔치를 모두의 잔치로, 특히 서민과 소수자의 잔치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섣불리 믿을 일은 아니겠으나, 그간 이 정당이 복지와 분배와 평화와 인권 감수성에서 다른 정당들과 질적 차이를 보여온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민노당에 던지는 사표가 여느 사표와 다른 이유다. 그 사표는 이념의 사표이자 가치의 사표다. 미래를 위한 사표다.


내오랜꿈 ------------------------------------------------------------------------------------------

솔직히 난 저 '사표(死票)'라는 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너무나 낙후되고 후진적인 정치구조, 의회정치의 근본인 정당정치가 제대로 뿌리내리진 못한 정치구조를 가진 한국에서나 심심하면 등장하는 신종 '정치코미디' 용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내 기억으로 저 사표라는 말을 들은 지가 20년째다. 87년 대선에서 백기완 선생이 민중후보 사퇴하기 전까지 '비지론자'들이 떠들었던 말이다. 그로부터 10년뒤 97년 대선에서도 나왔고, 지난 2002년 대선에서도 나왔다. 게다가 유시민이 같은 '앵벌이'는 지난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노동당 찍으면 사표라며 열린우리당 지지해달라는 파렴치한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좀 잠잠하다 했는데, 고종석이라는 '좌파리버럴리스트'(이건 내맘대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 그는 어느 대담에서 스스로 자기를 '리버럴리스트'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그냥 리버럴리스트는 아닐 거 같아서 '좌파'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에게서 '변형된 사표론'을 듣는다. 정치적 이념에서는 같은 좌파리버럴리스트라 할 유시민과는 정반대의 의미에서 사표론을 들고 나온다. '미래를 위한 사표'니 민주노동당을 찍어라.

아마도 고종석이 보기에 이번 대선은 이미 결론이 난 모양이다. 이명박의 승리로. 과연 고종석은 이번 대선이 누가 될지 모르는 혼전으로 전개된다 할지라도 '미래를 위한 사표'라는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금 고종석이 결론내리는 정동영에 대한 평가는 지난 2002년의 노무현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평가이기 때문이다(혹 이것이 노무현과 정동영은 다르다고 생각한 끝의 발언이라면 난 고종석이라는 사람의 '수준'을 의심해야 하기에 논외로 한다).

어쨌거나 고종석의 사표론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 그가 말하는 '잔치의 판'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사표론 이전에 정치적 신념, 정치적 이념의 형성이 우선이다. 곧 그 이념, 신념을 대변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절차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념이란 말만 들어가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바꿔야만 그가 말하는 '잔치의 판'을 바꿀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 토대의 마련을 위한 노력 없이 이번 선거에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민주노동당을 찍어도 된다는 '변형된 사표론'은 어쩔 수 없이 나를 우울하고 꿀꿀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선거때마다 나오는 사표론에 맞서 항상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네 이념대로 찍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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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투표의 의미는 개인에게 있다 - 누구에게 던지든 어차피 '사표'이다
    from 희망을 와락, 끌어안다 2007-12-16 11:37 
    한 개인이 어디에 표를 던지든 그 표는 당락과 거의 상관이 없다. 당락은 커녕 득표의 퍼센티지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개개인의 표는 모두 '사표'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마음이 가는 사람이 없거나, 갈팡질팡 할 때 자신이 던진 표가 사표가 되기 싫은 마음에 당선 될 확률이 높은 사람에게 찍는다고들 한다.(일명 사표론) 그것은 심리적인 지지는 있을지언정 사실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럼 어차피 개개인의 관점에서 아무런 영...
 
 
마늘빵 2007-12-07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네 계급대로 찍어라!"라고 말하고 싶어요. -_-
그러면 판이 바뀔지도 모르는데...

내오랜꿈 2007-12-07 11:57   좋아요 0 | URL
사회과학 용어로 '계급의식'이라는 말을 쓰죠. 한국의 현실에서는 가장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명박을 가장 노동계급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지지하는 게 문제죠. 이를 두고 홍세화 선생은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이라고 표현했죠.

각 계급이 그 자신의 계급의식을 즉자적으로 표현하면 별문제지만 이런 건 1920,30년대 소련과학아카데미에서 만들어진 정치경제학/철학 교과서에서나 통용되는 것이죠.

그래서 전 각 계급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각각의 이념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자리잡아야 하고 사람들은 그 이념의 집합체(=정당)를 선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인민’과 함께 한 혁명전야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
러시아 근현대 미술 ‘정수’를 만나다


임종업 기자
출처 : <인터넷한겨레> 2007 12 06


» 야코비의 <유형수들의 휴식>,
 

19세기말~20세기초 러시아 대표작 ‘한눈에’
사회변혁 꿈꾸며 민중 삶으로 뛰어든 화가들
‘리얼리즘’ 성찬에 칸딘스키 추상 4점은 ‘덤’


아이바조프스키, 보그다노프-벨스키, 바스네초프, 먀소예도프, 페로프, 수리코프, 크람스코이, 레핀….

금시초문이라고 부끄러워 말라. 아직 우리가 만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스키’ ‘프’자 돌림이니 물론 러시아인.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러시아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고골, 체호프,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문인들과 비슷하게 러시아 제정 말기 혁명전야를 살았다.

러시아 문학은 1920년대 이후 일본 유학파에 의해 국내에 소개된 반면 러시아 화가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미술인들이 배운 것이라야 유럽 야수파, 인상파에 국한됐다. 1990년 러시아와의 수교 이후도 마찬가지. 냉전시대를 건너 한국을 찾아온 한-러 수교 5돌 기념전은 칸딘스키, 말레비치처럼 서유럽 미술사에 편입된 아방가르드 유파가 주인공이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02-525-3321)에서 내년 2월27일까지 열리는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은 딱하게도 칸딘스키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미술사를 훑는 91점의 끄트머리에 달랑(?) 넉 점만을 소개하고 있는데도…. 이해할 만하다. 한국인에게 러시아 미술은 칸딘스키 외에는 전인미답이기 때문.

» 위 왼쪽은 칸딘스키의 <블루 크레스트>, 오른쪽은 보그다노프-벨스키의 <암산>, 아래는 킵셴코의 <농가의 깃털 작업장>.
 

이 전시회는 사회변혁을 꿈꾸며 치열하게 살아간 화가들의 세계를 들춰봄으로써 러시아 혁명전야를 통째 복원해 볼 수 있으며, 한때 ‘브나로드’(인민 속으로)를 외치며 농촌으로 스며들었던 식민지 조선 문인들의 마음 풍경을 엿볼 기회다.

전시의 중심은 1870년 먀소예도프, 페로프, 사브라소프, 크람스코이 등이 세운 ‘이동예술전협회’ 회원들. 졸업작품의 주제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시로는 반역적인 주장과 함께 왕립 페테르부르크미술아카데미를 자퇴한 이들은 ‘미술이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취지로 이동예술전협회를 결성해 전국을 누비며 전시회를 열었다. 이 단체는 정부 후원 없이 오랫동안 큰 큐모로 존속하며 인민들과 교감했다. 1880년 레핀, 수리코프 등 2세대 작가들이 가세하면서 인상파의 빛과 색, 외광의 눈부심을 수용하면서 미술계 주류를 형성하게 된다. 이들의 구호는 미술판 브나로드인 “미술을 인민에게”.

이들이 즐겨 그린 소재는 혁명전야의 실상.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유형지에서 갓 돌아온 언니와 겁을 먹고 경계하는 동생들의 눈초리를 통해 시대상을 드러낸다. 먀소예도프의 ‘지방자치회의 점심식사’는 허름한 농민들이 의회 담벼락에 기대 허기를 끄는 반면 실내에서는 지주들이 포도주를 곁들인 성찬을 즐기는 순간을 잡아 지방자치회가 허울임을 폭로한다. ‘유형수들의 휴식’(야코비), ‘익사한 여인’(페로프),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레핀), ‘임시숙소’(마코프스키), ‘노부모의 상경’(레베데프), ‘농가의 깃털 작업장’(키브셴코), ‘암산’(보그다노프-벨스키), ‘방앗간 주인’(크람스코이) 등도 가슴을 울린다.

또 다른 중심은 기업인 후원자. 91점 가운데 41점은 국립트레티야코프미술관에서 온 것으로, 트레티야코프미술관을 세운 부유한 상공인이자 미술애호가인 미하일로비치 트레티야코프(1832~1898)의 콜렉션이다. 크레티야코프는 “돈을 벌게 해준 사회에 유용한 시설을 남겨 환원하고 싶다”며 미술품을 사들였다. 그는 구두쇠였지만 마음에 드는 그림이면 아무리 비싸도 돈주머니를 털었다. 평소 누구한테나 콜렉션을 무료로 개방했던 그는 죽기 6년 전 40년동안 수집한 3천여점의 작품을 모스크바시에 기증하고 큐레이터를 겸직했다.

또다른 후원자는 철도왕 마몬토프(1841-1918). 예술가이기도 한 그는 1870년 모스크바 근교 자작나무 숲에 자리한 아브람체보 영지를 구입해 예술가 마을을 만들었다. 이 공동체에서 레핀, 바스네초프, 수리코프, 세로프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뒷바라지했다. 마몬토프의 조카 ‘타티야나 마몬토바의 초상’(레핀)이 그 증거. 아내를 관장으로 앉히고 생색을 내는 우리나라 기업인들과 대비된다.

이밖에 작가 마이코프,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고골, 작곡가 차이코프스키 등의 초상은 당대 지식인들의 네트워크를 잘 보여주며, 풍속화, 풍경화에서는 작가들의 조국애가 흠씬 묻어난다. 리얼리즘 회화가 너무 강렬한 탓인지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작품은 오히려 덤처럼 느껴진다.

부나비처럼 유행을 따라다니는 한국 미술판에 ‘러시아 거장전’은 신선한 충격이다. 관객이 얼마나 들지 주목거리.


칸딘스키가 다시 왔다..12년만의 러시아 거장전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출처 : <헤럴드경제> 2007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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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 보러 갔다가 ‘19세기 러시아’에 빠지다

임영주기자
출처 : <경향신문> 2007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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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슬로시티

유병선 논설위원
출처 : <경향신문> 2007 12 05


1968년 유럽의 대학생들은 ‘금지를 금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모든 기성권위를 부정했다. 당시 19살의 이탈리아 대학생 카를로 페트리니도 신좌파의 세례를 받은 ‘68운동’의 일원이었다. 20대를 혁명가로, 30대를 음식평론가로 보낸 페트리니는 86년 패스트푸드의 세계화에 맞서 ‘음식 혁명가’로 재변신한다. 환경·전통의 보존과 느림의 미식을 강조하는 그는 ‘슬로푸드’ 운동으로 속도 맹종의 권위에 도전했다. 토속 농법과 종자를 찾아내 지키고, 제철 제땅에서 이슬맞고 자란 것들로만 맛있게 만들어 먹자는 것이다.

90년 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 그레베의 시장에 파올로 사투르니니가 당선됐다. 그레베의 토박이로 페트리니의 슬로푸드에 관심이 많았던 사투르니니는 ‘느림의 미식’을 ‘느림의 도시’로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는 파괴의 개발이 아니라 지키는 개발의 중요성을 주민들에게 설득하기 9년 만인 99년 그레베를 ‘슬로시티’로 선언한다. 도시에 햄버거와 슈퍼마켓을 금지하고 장터에서 슬로푸드만 사고 팔고, 먹도록 했다. 차없는 거리에서 느림이 되살아나고 도시는 속도의 족쇄에서 풀렸다. 슬로시티는 슬로푸드와 더불어 ‘느림보 삶’의 세계적인 상징이 됐다.

엊그제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신안군 증도, 완도군 청산도, 장흥군 유치면 등 농어촌 마을 네곳이 ‘슬로시티 국제인증’을 받았다. 그레베에서 시작돼 11개국 97개 가맹도시를 둔 슬로시티국제연맹이 이들 네곳을 전통유산과 지역특성이 잘 보존된 ‘느림의 도시’로 공인하며 달팽이문양의 인증표를 붙여준 것이다. 지난달 최종 심사에는 사투르니니 시장이 증도의 염전 등을 직접 둘러봤다고 한다. 시간이 쉬어가는 이곳에 이방인의 발길이 늘어날 전망이다.

슬로푸드를 창시한 페트리니는 “환경론자가 아닌 미식가는 어리석고, 미식가가 아닌 환경론자는 슬프다”며 생태적 미식(eco-gastronomy)을 강조한다. 슬로푸드가 웰빙이란 이름의 사치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슬로시티를 시작한 사투르니니도 “느림은 단순히 빨리빨리의 반대말이 아니다. 환경·자연·시간·계절과 우리 자신을 존중하며 느긋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슬로시티의 취지는 관광진흥과 돈벌이가 아니라 경쟁과 다툼으로 내몰지 않는 삶을 위한 생활혁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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