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억’ 흔들 2007년의 기억은?
디아스포라의 눈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성공회대 연구교수 /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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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눈/

지금 이 원고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쓰고 있다. 12월19일 피렌체대학에서 열린 프리모 레비 타계 20년 기념논문집 출판기념회에 출석하기 위해 달려왔다. 이 논문집 제목은 〈프리모 레비를 향한 세계의 소리※기억 속에서, 기억을 위하여〉. 이 책은 세계 15명의 글을 수록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는 내가 유일한 기고자다. 내 글 제목은 ‘서울과 도쿄에서 프리모 레비를 읽는다※동아시아의 기억의 싸움’.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이탈리아 현대문학을 대표했던 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1987년 토리노의 자택에서 자살했다. 그의 저작은 증언문학의 고전으로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12월에 내가 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가 출판됐고, 올해 1월에 레비의 대표작인 〈이것이 인간인가〉와 〈주기율표〉(모두 돌베개)가 간행됐다.

타계 20년 기념논문집 편자인 루이지 데이 교수가 피렌체 공항까지 마중나와 주었다. 초대면 인사를 교환한 뒤 물어보니 그는 역사와 정치 전문가가 아니라 화학교수라고 했다. 의외의 사실은 아니다. 프리모 레비 자신이 화학자였고, 파시즘류의 비합리적인 열광에 대해 끊임없이 과학적인 합리정신으로 저항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우리에게 남긴 쓰라린 교훈의 하나는 전문가가 자기 전문영역에 갇혀버리는 위험성이다. 사회나 인간에 대한 관심을 방기하고 스스로 기계가 된 전문가(스페셜리스트)들은 자기 지식이나 기술을 얼마든지 반인간적인 목적에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은 ‘종합적인 인간학’으로서의 인문주의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데이 교수와 같은 화학을 전공하는 연구자가 이런 논문집을 자발적으로 편찬한 것 자체를 파탄의 위기에 처한 인문주의를 현대의 상황 속에서 되살리려는 노력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출판기념회는 프라 안젤리코의 명화 〈수태고지〉가 있는 산 마르코 수도원 옆 피렌체대학 본관 강당에서 열렸다. 이 강당도 르네상스 이래의 축적된 역사를 느끼게 하는 중후하고 장려한 건축이었다. 대학 총장과 내빈 인사에 이어 데이 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해외에서 온 출석자들인 나와 뉴욕 프리모 레비센터 소장 안드레아 피아노를 회의장의 청중에게 소개했다. 피아노는 피렌체 태생의 유대인인데, 아버지는 피렌체에서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유대인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한다.

올핸 ‘홀로코스트의 증언자’ 프리모 레비 타계 20주년이다. 유대인처럼 잔혹한 정치폭력을 경험했던 한국도 ‘과거사 청산’이라는 기억의 싸움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싸움은 다음 정권에서 크게 정체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정권이 교체돼도 성숙한 민주적 기반까지 뒤엎을 수는 없을 것”이라 말하지만 이는 1990년대 초 일 진보세력의 “일본은 쉽사리 우경화하지 않을 것이다”는 말과 닮았다. 10, 20년 뒤, 올해를 “그 시점에서 역사가 역전됐다”고 회상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데이 교수는 기조강연에서 ‘기억의 싸움’의 의의를 강조했다. 프리모 레비를 단지 ‘기억 속’의 존재로 남겨두지 않고 ‘기억을 위한’ 존재로 파악하려는 자세가 이번 논문집 제목에도 드러나 있다. 출판기념회의 제2부에서는 1982년 프리모 레비가 이탈리아 시민들과 함께 아우슈비츠를 방문했을 때의 기록영상이 상영되었다. “강제수용소에서 우리 수인의 인간성은 철저히 파괴당했다. 간수와 친위대 등 수인을 학대하는 쪽의 인간성도 역시 철저히 파괴당했다”고 인터뷰에서 대답하는 레비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 생전의 레비를 만난 적이 있는 피아노는 레비가 매우 조심스럽고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로 내성적인 사람이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일본에 비해 한국에서는 나치즘이나 홀로코스트에 관한 서적 가운데 소개돼 있는 책들이 극히 적다. 프리모 레비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일부 전문연구자를 빼면 거의 없었던 게 현실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국의 근현대사는 식민지 지배, 내전, 군사독재라는 잔혹한 정치폭력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한국인 다수는 머나먼 타국의 학살사건에까지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또 “유대인도 수난을 겪었겠지만 우리도 그에 못지않은 비극을 경험했다. 그들의 경험만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사람도 만났다.

한국에서는 참여정권 아래에서 과거 정치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에게 명예회복과 보상을 해주는 ‘과거사 청산’이 추진됐다. 이것은 한국에서 현재진행형인 ‘기억의 싸움’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출판기념회 다음날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충분했던 ‘과거사 청산’은 이제 크게 정체될 것이다. 우편향의 ‘기억의 싸움’을 추진해온 일본 우파세력은 이명박 대통령의 탄생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많은 한국인들한테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 “한국사회는 과거 군사정권시대와는 달리 크게 변했다. 설령 이명박씨가 승리하더라도 그동안 성숙한 민주적인 기반까지 뒤엎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1990년대 초에 일본 진보세력이 끊임없이 입에 올렸던 “전후 민주주의를 경험한 일본사회는 쉽사리 우경화하지 않을 것이다”는 얘기와 아주 닮았다.

» 서경식 교수
 
피렌체 거리에서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아직 학생 같은 젊은이들이 브랜드 제품(명품) 가게에 모여 있었다. 확실히 과거 군정시대에는 맛볼 수 없었던 자유와 풍요를 한국인도 맛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 중에 몇명이 이탈리아 인문주의의 전통, 저항운동의 역사, 유대계 시민의 수난에 관심을 갖고 있을까. 내 눈에 그들 모습은 버블(거품) 경제를 구가하던 시대의 일본 젊은이들과 흡사했다.

이렇게 해서 2007년이 지나가고 있다. 내년은 어떤 해가 될까. 지금의 일본이 그러하듯, 10년 뒤 또는 20년 뒤 올해를 “그 시점에서 역사가 역전했다”고 회상하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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