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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남자 2
전경일 지음 / 다빈치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조선남자 2] 조선남자와 다나와의 못 다 이룬 사랑, 루벤스의 성화에…….
그림 속에 한 남자가 비스듬히 서 있다. 남자는 짙은 쌍꺼풀을 가진 눈매, 도톰한 입술, 뚜렷하게 패인 보조개, 곱슬머리를 가진 서양인의 모습이지만 튀어나온 광대뼈와 상투를 틀고 조선 무관의 복장인 철릭을 입고 오도카니 서 있는 모습은 조선남자의 모습이다. 게다가 제목마저 <한복 입은 남자>지 않은가.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 없지만 플랑드르 최고의 화가였던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는 이렇게 온갖 의구심을 갖게 한다. 순 혈통의 조선인이 아니지만 의복이나 몸가짐은 다분히 조선남자의 차림새이기에.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많은 암시를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를 보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조선인 최초로 서양화에 등장한 조선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는 왜 낯선 땅에서 네덜란드의 거장 루벤스의 모델이 되었을까. 동양과 서양의 유전자가 섞인 듯 한 외모는 어찌된 영문인가.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의 모델인 철릭을 입은 조선 무관에 대한 궁금증은 언제쯤 해결될까. 그는 베니스의 개성상인일까, 아니면 조선의 천재과학자인 장영실일까, 아니면 임진왜란 후 신식 무기의 본을 구하러 양귀의 땅을 찾은 무관일까. 그도 아니면 노예로 끌려갔다가 뛰어난 재주로 신분상승을 한 자일까.
작가는 7년간의 구상과 기획, 집필의 과정에 이르는 동안 철저하고 방대한 고증을 거쳤다고 한다. 400년 전 조선 남자가 바닷길을 항해해 네덜란드의 궁정화가 루벤스의 모델이 되는 여정에는 17세기의 조선 역사, 유구(오키나와)의 역사, 동인도회사, 칼뱅파와 가톨릭의 갈등, 무역으로 이익을 본 신흥 부자들의 등장 등 역사적 사실과 함께 한다. 루벤스의 모델은 진짜 조선 무관이었을까. 아니면 서양 여인과의 사랑으로 생긴 아들의 모습일까.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에 그럴 듯한 상상을 가미했기에 더욱 흥미롭다.
<조선남자 2>에서는 유구가 왜에 나라를 잃는 과정, 중국에 전운이 감돌면서 중국 황제의 화포에 대한 수요 증대, 동인도회사의 커져가는 이익, 개인적 이익이나 국가적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종교 지도자들, 혼란과 폭동 등 모든 것을 비밀리에 꾸민 공작과 대주교의 반전, 조선남자와 다나와의 사이에 생긴 아들, 그가 그림모델이 되는 과정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일어난다.
무구의 본을 구하려던 양귀의 땅으로 간 남자는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과 기개가 넘치는 남자다. 하지만 개인이 막강한 조직에 대항하기란 예나 지금이나 버거운 법이다. 결국 종교 지도자와 권력자에 이용만 당한 조선남자는 루벤스의 성화에 길이 남음으로써 위로를 받았을까.
빚을 지고 배를 탈 수밖에 없는 선원들, 더 가지려고 선원들 몫을 약탈하는 공작과 카피탄, 조선남자의 가톨릭으로의 개종, 유구인 등 뱃사람들의 개종 등이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한 속내의 개종이었고 계산된 시나리오였다니. 지금도 가진 자의 시나리오에 휘둘리는 못 가진 자의 모습과 겹쳐지는 이야기다, 목표를 위해 종교를 수단으로 삼는 가진 자들, 그런 갑질의 횡포에 우는 을의 무기력함을 보는 것 같다,
가장 흥미로운 건 조선남자와 다나의 사랑이 루벤스의 성화에 그려져 영원히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조선 남자는 <한복 입은 남자>, <성 프란체스코 하비에르의 기적>에 나타나 있고, 조선 남자를 사랑한 다나 역시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에서 막달라 마리아로 그려져 있다. 루벤스는 이들의 못다 이룬 사랑에 가슴 아팠을까. 악은 잠깐이나 선은 영원함을 보여주려 한 걸까. 깊은 신앙심으로 그려낸 종교화이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무구의 본을 찾아 떠난 조선 무관의 여정과 그가 만났던 여인 다나와의 사랑, 그 결실로 태어난 아이가 다시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의 모델이 되는 과정들이 생생하기에 제법 그럴싸한 스토리 같다. 마치 야사의 한 페이지를 본 듯한 느낌이다. <조선남자>가 시리즈로 나온다면 어떨까. 그 후손들이 배를 타고 신대륙으로 가거나, 무인의 피를 타고났으니 군대에 들어가서 활약하는 모습도 좋을 것 같다. 아니면 군인이나 선교사가 되어 우여곡절 끝에 조선에 오게 되지만 양귀의 모습이라서 배척당하는 이야기는 어떨까. 약간의 역사적 사실에 많은 상상력을 가미한 소설이기에 별별 상상을 다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