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구의 증명/최진영/은행나무]사랑했던 이의 죽음을 맞은 한 여인의 애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어디쯤 일까. 삶과 죽음의 차이가 대체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그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인지상정일 것 같다. 어딘가에서 그 사람이 짠~ 하고 웃으며 나타날 것 같은 착각이 들고 세월이 흘러도 함께하는 듯 한 느낌이 들 것 같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접한 적이 없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부터 사랑했던 남자 구의 죽음을 접한 담의 이야기가 구슬픈 애가 같다. 담의 애가가 엽기적이면서도 가슴을 절이며 슬프게 했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19)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 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20)

 

먼저 죽으면 태우거나 땅에 묻는 게 싫다며 서로 먼저 죽지 말랬는데, 그런 구가 길바닥에서 몸이 멍든 채 처참하게 죽어버렸다. 담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사랑했던 구의 시신을 가져와 혼자 구의 몸을 씻기고 매일을 구와 함께 한다. 구를 찾는 이들은 그의 시체를 팔려고 하는 사채업자들이기에 이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도 구의 시체를 숨겨야 했다. 답이 없는 현실 앞에서 개 같은 죽음을 맞은 구의 억울함을 위해서도 구를 살아 있는 듯 꾸며야 했으니까. 결국 담은 구를 자신의 몸에 살리는 방법으로 구의 시체를 먹기 시작한다. 들켜서는 안 되기에 그런 애도의 방식을 택한 걸까.

 

구와 담의 사랑은 어린 시절부터 맺어진 것이엇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으며 가까워졌던 구와 담의 사랑은 아이들의 괴롭힘으로 이뤄진 결속이었다. 세상의 핀잔과 구박이 만들어준 끈끈한 동지애였다.

 

구의 죽음은 부모님이 진 사채빚 때문이었다. 사기를 당한 구의 부모님은 빚을 졌고 그 빚은 갚으랴 사채에 손을 댔다. 모든 사채가 그렇듯 구와 구의 부모는 빚 갚느라 또 빚을 졌고, 돈을 갚으면서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부모님은 어딘가로 실종되고 아들인 구는 쫓기다가 처참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어쨌든 구는 자신의 돈이 아니지만 부모님의 빚을 갚기 위해 학생 시절부터 야채 가게의 잡일, 공장, 편의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팍팍한 현실에 너무나 지친 구는 인적 없는 외딴 시골로 들어가 고목 같은 집에서 까만 청설모처럼 살자고 까지 했다. 그런 인간 세계가 얼마나 진저리쳐졌을까. 그런 인간 욕망의 비린내가 얼마나 역겨웠을까.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구가 죽어버린 지금도 나는 구를 기다리고 있다. 구도 나와 같을까.(65~66)

 

할아버지와 이모의 죽음을 이미 경험했던 담은 사랑했던 구의 죽음 앞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돌아보며 세상에서 버림받은 구를 위한 자신만의 특이한 방식으로 애도를 했다. 구의 몸을 씻기도 뜯어 먹고 자신의 몸 속에 다시 살리면서 천 년 후 다시 만나자고 말이다. 어쩜 구의 부활을 기대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천 년 후에.

사랑이란 무엇인가.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남는 빚, 관계들, 상실의 상처, 존재감으로 인해 사랑했던 이의 죽음을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사랑하는 남자의 참혹한 죽음에 대한 애도가 다소 엽기적이지만 현실적 아픔이 느껴져 슬펐다. 삶과 죽음, 현실의 비루함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아름다운 문장이 빛나는 특이한 애가였다.

 

 

300~400매 분량의 한국 중편 소설을 모은 <은행나무 노벨라>시리즈 7번 째 작품이다.

저자인 최진영은 2006실천문학신인상으로 등단해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끝나지 않은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소설집 팽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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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4-15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섬뜩하게 다가온 이야기 였는데 봄덕님 글 읽으니 정말 애달픈 이야기 갔고 주변의 낯설지 않은 이야기 같아요ㅜㅅㅜ

봄덕 2015-04-15 21:52   좋아요 0 | URL
섬뜩한 이야기, 기이한 이야기, 맞아요. 하지만 원인이 있기에 이해가 가는, 그러면서도 엽기적이라는 생각도 드는 소설이에요~~

비로그인 2015-04-15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이 말--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끔찍하네요.
사랑이야기 정말 대단하네요.

봄덕 2015-04-15 21:53   좋아요 0 | URL
무시무시한 사랑이야기죠. ^^끔찍하지만 이해가 가는 사랑 이야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