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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프리뷰'란 카테고리를 새로 만들었다(이로써 중복카테고리까지 포함 15개가 되었다). 그간에 주로 '로쟈의 인용'으로 분류해놓았던 신간 리뷰들을 따로 모아놓으려고 한다. 신간에 대한 나의 '선입견'들을 늘어놓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언론의 신간 리뷰를 옮겨놓고 정리하는 자리로 활용할 예정이다(즉, 이 카테고리 또한 일종의 스크랩북이 될 터인데, '최근에 나온 책들'을 소개하는 부담을 얼마간 덜 수도 있다는 계산도 없지는 않다). 당연한 말이지만, 쏟아지는 모든 책들을 읽을 수 없으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을 선별해주는 '리뷰'이다. 나는 이 리뷰들을 관심에 따라 선별해놓고자 한다(그래서 '프리뷰'라고 이름붙였다. 'preview'이면서 'freeview'인 '프리뷰'). 게으른 독자의 부지런떨기라고나 해야 할까?..

이 페이퍼에서 프리뷰의 대상으로 고른 것은 에드워드 사이드이다. 그와 관련한 책 두 권이 최근에 출간되었고 그 두 권을 함께 다루고 있는 언론의 리뷰 두 개를 옮려온다. 한겨레와 한국일보의 리뷰들이다(온라인에 떠 있는 한국일보의 리뷰 기사는 지면의 최종본이 아닌 초고본인 듯한데, 실제 지면 기사를 참고해서 보충했다).

 

 

 

 

한겨레(06. 06. 09) "보수세력 정체성은 미국 백인의 세계"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의 탈식민주의 문제설정을 한국 현실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제3세계 실천적 지성의 상징이었던 사이드를 통해 혼란에 빠진 한국 지성계에 새로운 싹을 틔우려는 시도다.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책세상 펴냄)는 사이드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연구자들이 함께 쓴 책이다. 사이드로부터 직접 배우고 그를 국내에 소개한 김성곤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 오길영 충남대 교수 등 영문학자 11명의 글을 모았다.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이란 상투어는 좀 쑥쓰럽지 않을까? 사이드에 관한 국내 유일의 단행본 저작은 <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밖에 없는 데 말이다. 설혹 논문 한두 편을 쓴다 하더라도 그게 '국내 최고의 권위'를 가름하는 기준이 된다면 좀 부끄러운 일 아닌가?

 

 

 



-<오리엔탈리즘>으로 널리 알려진 사이드의 사유는 ‘타자에 대한 이해’로 집약할 수 있다. “다른 문명의 고유성을 억압하는 서구의 지배담론을 해체함으로써, 재현되지 못한 자들의 목소리를 복원”(김상률·오길영)하려는 이론적 작업이다. 그 뼈대는 ”서구가 그동안 어떻게 동양을 교화하고 문명화하고 지배해야할 ‘타자’로 취급”(김상곤)했는지를 폭로하는 것이다.

-한국은 21세기 오리엔탈리즘이 활개를 치는 땅이다. 애초 사이드는 유럽의 오리엔탈리즘에 주목했지만, 지금은 미국의 오리엔탈리즘이 문제다. 필자들은 “(한국) 지식층의 의식은 미국적 오리엔탈리즘에 적잖이 침탈당했고, 우리 삶 도처에서 덫처럼 도사린 구체적 현실이 됐다”(설준규)고 짚었다. “선/악, 문명/야만, 우수/열등 등의 이분법적 이야기에서 자신의 정체를 긍정적 세계인 백인의 세계와 동일시”(고부응)하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미국화를 지향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 작동한 결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고즈윈 펴냄)은 이 대목에 각별히 주목한 결실이다. 언론학자이자 언론인으로 일했던 성일권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연구위원이 썼다. 사이드의 저작인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을 국내에 번역·소개했던 그는 이 책에서 한국 보수 지식인들의 담론 체계를 오리엔탈리즘의 틀을 빌려 비판했다.

-성 위원이 보기에 “‘악의 레짐’과 ‘선의 레짐’이라는 부시 미 대통령의 수사는 ‘문명과 야만’이라는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적 도식을 재현”한 것이다. “미국식 오리엔탈리즘의 궁극적 목적은 동양을 관리·지배·억압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지옥과 같은 공산국가인 북한, 미국의 도움으로 아시아 자본주의의 총아가 된 남한이라는 신화를 깨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신화 속에 한반도가 갇혀 있길 바란다.”

-미국식 오리엔탈리즘은 우리 사회 깊숙이 스며들었다. “한국 보수세력이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독재정권의 분단논리, 강대국의 냉전논리, 일본의 식민지배논리가 만들어낸 허구들의 조합이다. 그 담론 체계는 당연히 실제 현실과는 무관하다.” 성 위원은 ‘신우익’(뉴라이트)을 그 대표주자로 꼽았다.

 

 

 



-신우익은 “미국식 오리엔탈리즘을 내재화하고 이상화한 ‘복제 오리엔탈리즘’”을 구현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악의 축 북한과 남한의 친북정권을 무너뜨려 한반도를 명실상부한 팍스 아메리카나 제국의 일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성 위원은 지적했다. “우리 사회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은 자신들만이 친북, 좌파, 반미라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한국 사회를 구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성 위원은 류근일·김대중·조갑제·이영훈·유석춘·제성호·정진홍 등을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구현하는 미디어 지식인의 대표적 사례로 꼽고, 이들에 대한 비판도 시도했다.

-아직 거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오리엔탈리즘의 틀을 빌려 한국 지식사회를 분석하려는 노력은 참신하다.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에서 정정호 중앙대 교수는 “(사이드의) 포스트식민이론이 해체이론·다문화주의론 등과 같이 또다른 ‘무장해제이론’으로 오용되어 아무런 실천적 역할을 해내지 못하다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며 “새로운 형태로 계속 변장하는 신식민주의와 신제국주의에 저항하는 포스트식민론을 실천의 대항담론으로 전화시키자”고 제안했다.(안수찬 기자)



에드워드 사이드 → 제3세계 실천적 지성…차이를 우열로 왜곡시키는 제국주의 비판
-에드워드 사이드는 1935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학위를 마친 ‘영원한 방랑인’이었다. 프린스턴대·하버드대에서 공부하고 컬럼비아대에서 가르쳤다. 명저 <오리엔탈리즘>을 비롯한 여러 저술을 통해 차이를 우열로 왜곡시키는 서구의 제국주의적 관점을 비판했다. 아랍인이면서 기독교도였으며 동시에 이슬람을 옹호했다. 팔레스타인 망명 국회 의원을 지냈지만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을 비판하기도 했다.

 

 

 

 

-아랍어·영어·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 등 여러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했고, 수준급의 실력으로 피아노 연주회까지 열었던 천재였다. 미국 유대계 지식인들의 비난에 둘러싸여 테러 위협까지 당했지만, 백혈병과 싸웠던 말년에는 유대계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비판적·실천적 지성인을 대표했지만, 마르크스주의 대신 좌파 지식인으로 남기를 원했다. 그는 생전에 “어디를 가나 자신의 조국처럼 느끼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지 낯선 나라처럼 느끼는 이야말로 완성된 사람이다”라는 12세기 독일 수도승 후고의 말을 즐겨 인용했다. 갈수록 이 사회가 ’낯설어지는’ 한국인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사이드의 후예다.(안수찬 기자)

한국일보(06. 06. 10) "차이는 우열이 아니다" 끝나지 않은 외침

-평화와 공존이라는 인류의 소망을 조롱하듯, 21세기에 들어서도 증오와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럴 때마다 세계는 한 지식인을 떠올린다. 서구의 일방주의를 비판하고 동서양의 교류와 소통을 강조한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는 한국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이드의 삶과 학문 세계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사이드로부터 배운 김성곤 서울대 교수 등 영문학 교수 11명이 저자다. 평전의 성격도 지니고 있어 생애와 철학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지만 아랍인과 유대인의 전쟁으로 이집트 카이로로 쫓겨났다. 그곳에서 명문가 자제만 들어가는 학교에 다녔고 나중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대학,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했다. 그 사이 가족은 카이로에서 레바논으로 이주했고 최종적으로 미국에 정착했다.(*아래는 누이와 어린시절의 사이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인 그는, 에드워드라는 영국식 이름과, 사이드라는 아랍식 성의 조합이 상징하듯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다. 사이드는 “미국인과 함께 있어도, 아랍인과 함께 있어도 언제나 불완전함을 느꼈다”면서 망명객을 자처했다. 이런 자의식은 그를 특권의 바깥, 안락한 삶의 외부로 끌어내 소외되고 박탈당한 이웃을 옹호하고 동양인과 식민지인, 소수 인종과 제3세계인에게 관심을 갖도록 했다.



-탈식민 연구라는 새로운 영역을 연 영문학 교수, 아시아의 대표 지성, 행동하는 지식인 사이드가 세계 지성사에 충격을 준 명저 <오리엔탈리즘>(1978)에서 꾸짖은 것은 서구의 편견이었다. 서구는 식민지인을 자신과 다른 ‘타자’(他者ㆍthe other)로 취급했고, ‘차이’(difference)를 우열로 보았다. 그 바탕에는 서구인은 우월한 문명인인 반면 비서구인은 열등하고 미개하다는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서구는 비서구를 교화하고, 문명화하고, 지배해야 할 타자로 여겼다. 야만적이고 열등한 비서구의 계몽과 교화가 서구의 사명이고, 따라서 서구제국주의는 식민지를 착취ㆍ억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근대화, 문명화하는 과정으로 간주했다. 서구인은 자기 암시를 통해 그것을 사실로 믿었고, 제국주의의 실천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이드는 이 같은 적대적이고 차별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상호 관계를 이루자고 주장한다. 특히 문명과 문화가 겹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해와 화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에 정착한 그가 아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한 것은 67년 중동전에서 아랍이 패하면서부터이다. 그는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대변인이자 시인인 사촌 카말 나시르가 이스라엘의 테러로 살해되자 팔레스타인 민족운동에 참여한다. 그러면서도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테러에는 반대했다. 말년에 백혈병으로 고생하면서도, 9ㆍ11 사태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테러와 그것에 대응하는 미국의 국가 테러를 동시에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이드는 고향을 잃었다는 자각 때문에 죽을 때까지 한 평의 땅도 갖지 않았다. 돌아갈 고향이 없는 자신에게 집이란 의미 없는 공간이며, 만일 자신이 자기만의 집을 가진다면 그것은 곧 누군가를 노숙자로 만드는 일라고 생각했다.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은 사이드의 이론을 차용, 오리엔탈리즘의 덫에 걸린 우리 사회를 겨냥한다. 저자는 파리8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파리외교전략연구원과 런던정경대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서구제국주의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오리엔탈리즘이 유럽, 미국, 일본을 지나 우리 사회에도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미국과 한국의 오리엔탈리스트는 자신만이 인권과 자유를 말할 자격이 있는 이성의 소유자이며, 다른 목소리를 내는 자는 배제해야 할 이단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책이 규정하는 오리엔탈리스트는 미국의 네오콘, 일본의 신우익, 우리나라의 극우 지식인이다. 극우 성향의 교수, 어론인, '386 전향자', 종교인 등에 대해서는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한다. 그리고 사이드가 그랬던 것처럼, 차이를 인정하자고 제안하면서 프란츠 파농의 글을 인용한다. "타자를 만지고, 타자를 느끼며, 동시에 그 타자를 내 자신에게 설명하려는 노력을 왜 그대는 하지 않는가."(박광희 기자) (*)마지막 제안/인용은 좀 안이하게도 느껴진다. 어딜 만지고, 무얼 느끼라는 것일까? Killing the others softly?..

 

06.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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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06-12 09:16   좋아요 0 | URL
포스터 ㅎㅎㅎ 네가 저항할 수 없는 것에서 어떻게 도망갈 것인가?...내재화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압축문구네요.포스터를 고르신 로쟈님의 센스가 ㅎㅎ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최근에 나온 책이네요.읽어야겠어요.

로쟈 2006-06-12 00:16   좋아요 0 | URL
책을 많이 보시는군요. 파농의 책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인용문구는 너무 '심심한' 편인지라 좀 '죽이는' 걸로 바꿔보았습니다...
 

슬라보예 지젝의 잘 알려진 텍스트를 새삼 자료정리 차원에서 옮겨놓는다. 출처는 창비웹진이지만(보다 구체적인 출처가 밝혀져 있지 않다) <비평>(2001년 겨울호)에도 같은 제목(하지만 다른 번역)의 글이 게재된 바 있고(영어 원문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알다시피 지젝의 단행본 '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도 번역 출간된 바 있다(지젝의 문외한이 아니라면, 제목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져왔다는 사실은 군말이겠다).  

 

 

  


하지만, '번역의 사막'을 보여주는 국역본을 완독한 독자는 많지 않을 듯하므로, 하지만 지젝의 텍스트는 한번쯤 음미해볼 만한 의미있는 텍스트이므로, 이제라도(혹은 한번 더) 일독해 보시길 권한다. 그것이 사적인 자료 스크랩이 갖는 잉여적 의의이다. 참고로 붙여넣은 이미지들은 강조와 함께 웹진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다.    

 

미국인들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편집증적 환상은 작고 평화로운 캘리포니아주의 도시, 즉 소비를 위한 파라다이스에서 한가로이 개인적 삶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진짜 세계처럼 꾸며진 허구의 세계는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자기 둘레의 모든 사람들이 이 거대한 쇼에 동원된 뛰어난 배우와 엑스트라들일지도 모르다고. 이에 대한 가장 최근의 예가 피터 위어(Peter Weir)의 <트루먼 쇼(The Truman Show)>(1998)일 것이다.  

짐 캐리(Jim Carrey)는 이 영화에서 자신이 24시간 방영되는 텔레비전 쇼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작은 마을의 사무원 역을 맡았다. 짐 캐리가 살고 있는 마을 전체가 이 쇼를 위해 설치된 거대한 무대장치인 셈인데 곳곳에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촬영하는 카메라들이 작동되고 있다.

Time Out of Joint

<트루먼 쇼>보다 먼저 나온 작품으로는 필립 딕(Phillip K. Dick)의 <타임 아웃 오브 조인트(Time out of Joint)>(1959)를 들어볼 수 있다. 이 영화 역시 5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의 평화로운 한 소도시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점차 그가 살고 있는 마을 전체가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꾸며진 무대장치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타임 아웃 오브 조인트>나 <트루먼 쇼>가 암시하고 있는 경험은 이 후기 자본주의적 소비 천국, 캘리포니아라는 공간이 그것의 초현실(hyper-reality) 속에서 어떤 의미로는 비현실적이고 실체 없는 것이며 물질적인 관성을 박탈당한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단지 할리우드가 물질성과 질량을 박탈당한 실재 삶을 무대에서 모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후기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는 '실재의 사회적 삶' 그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는 무대화된 허구로서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재"의 삶 속에서 마치 무대의 배우나 엑스트라처럼 행동하는 이웃들을 포함해서. 반복하자면 정신성이 박탈된 실용주의적 자본주의의 우주에서 궁극적인 진실은 "실재 삶" 자체의 물질성이 박탈된다는 것, 실재 삶 자체가 일종의 스펙터클한 쇼로 전환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Christopher Isherwood)는 모텔 방을 예로 들어 미국적 일상의 비현실성을 표현한 바 있다.


"미국의 모텔은 비현실적이다! (...) 그 방들은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디자인되어져 있다. (...) 명상을 위해 동굴로 들어간 은자처럼 우리가 점점 더 광고의 세계에서만 살고 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우리를 경멸한다." 피터 슬로테르지크(Peter Sloterdijk *슬로터다이크)의 "영역sphere"이란 개념이 이곳에서 문자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거대한 금속의 구체(球體)가 도시 전체를 감싸면서 그것을 고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sphere란 단어는 영역, 범위 등의 뜻과 함께 구체球體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수년 전에 <자도즈(Zardoz)>나 <로건즈 런(Logan's Run)> 같은 일련의 공상과학 영화들은 격리된 무균지역에서 살면서 이제 물질적으로 부패해버린 실재 세계의 경험을 갈망하는 집단의 삶을 그려냄으로써 이미 이런 포스트모던한 상황의 곤경을 예견한 바 있기도 하다.

 

워쇼스키(Wachowski) 형제의 히트작 <매트릭스Matrix>(1999)는 이런 논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매트릭스>에서는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주위의 모든 물질 세계가 가상적인 것인 것으로 그려지는데 그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그것에 연결되어 있는 메가 컴퓨터(mega-computer)의 일이다. 영웅의 역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Keanu Charls Reeves)는 "진짜 현실"에 눈을 뜨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가 보는 것은 세계전쟁 이후 불에 탄 잔해들만이 남아 있는 시카고의 황량한 풍경이다. 저항군 지도자 모페스는 아이러니컬한 인사로 키아누 리브스를 맞이한다.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런 구도는 9월 11일 뉴욕에서 일어난 사건에도 적용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까? 뉴욕의 시민들은 그 날 "실재의 사막"으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할리우드에 길들여진 우리는 무너지는 타워의 광경과 그 장면들을 보면서도 대규모 제작사의 재난영화에서 보았던 어마어마한 광경들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 폭탄테러가 얼마나 예기치 않은 충격적 사건이었는지, 어떻게 그런 상상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에 관해 들으면서 우리가 기억해봐야 할 또다른 참사는 20세기초에 일어났던 타이타닉 호 침몰사건이다. 타이타닉 호 침몰사건 역시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타이타닉 호가 19세기 산업문명의 힘의 상징이 된 이후로 그 배의 침몰을 위한 공간은 이미 이데올로기적 환상의 공간에 마련되어 있었다.

 

 

이번 폭탄 테러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미디어들은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 관해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뉴욕 탈출(Escape from New York)>에서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에 이르기까지, 각종 영화들은 이런 테러 위협에 대한 우리의 아낌없는 리비도적 투자를 유도하지 않았던가. 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러나 발생해버린 사건은 그러므로 사실 판타지의 대상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인들은 그들이 상상해오던 것을 실제로 경험한 것이다. 물론 굉장히 경악하면서.


이데올로기적이고 상상적인 것들의 조합이 우리의 지각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에 주지해야만 하는 때는 바로 지금, 이 생생한 참사의 '실재'를 다루는 순간이다. WTC 타워의 붕괴에 어떤 상징이 있다면 그건 "자본주의의 재정적 심장"이라는 낡아빠진 비유에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 두 개의 쌍둥이 빌딩은 물질적인 실재 생산의 영역에서 분리되어 온갖 재정적 지침들이 '사고'되는 '가상적' 자본주의의 중심을 상징하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적당하다. 그 건물에 대한 폭탄 테러가 던진 굉장한 충격은 디지털화된 제1세계와 "실재의 사막" 자체인 제3세계를 가르고 있는 경계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악의적인 대리인들이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끊임없이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생각을 주입하는 격리된 가상의 우주 속에 살고 있다는 자각에 다름아니다.


결론적으로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은 대부분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악당 두목 역으로 나왔던 에른스트 스타브로 블로펠드(Ernst Stavro Blofeld)의 실재적 현현이 아니라 지구적 파괴 행위에 연루된 폭탄 테러의 배후 세력 용의자일 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우리가 생산과정을 아주 강도 높게 볼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바로 제임스 본드가 집약적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악당의 소굴(마약을 증류하거나 포장하고 뉴욕을 통째로 날려버릴 폭탄을 제조하기도 하는)을 찾아내는 경우뿐이라는 사실이다.

 

본드를 생포한 후에 악당의 두목은 흔히 본드에게 그 자신의 불법 공장을 구경시켜준다. 이런 부분이야말로 할리우드가 공장에서의 생산과정을 자랑스럽게 과시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미학에 가장 근접하고 있는 부분은 아닐까? 여기서 본드가 해내야 할 임무는 물론 그 생산라인을 폭파시켜서 우리가 다시 "노동계급이 증발"된 세계 속, 우리의 표면적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WTC 타워의 폭발은 사실 위협적인 외부세계를 겨냥한 폭력이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왔던 것은 아니었던가?


미국인들이 살고 있는 안전한 '영역'은 '외부' 세계 테러리스트들의 위협 아래에 놓여진 것으로 드러났다. '외부'의 테러리스트들은 무자비한 자기 희생자인 동시에 겁쟁이이며, 교활하게 머리가 좋은 동시에 원시적인 야만인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런 '외부의' 순수한 악에 대면할 때 우리는 언제나 헤겔이 던지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할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이 순전한 '외부' 속에서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순수하게 증류된 본질을 찾아야만 한다는.

 

지난 5세기 동안 지속된 '문명화'된 서구의 (상대적) 평화와 번영은 '야만적'인 '외부세계'에 무자비한 폭력과 파괴를 수출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미국 대륙의 정복과 콩고에서의 살육을 기억해보자. 잔인하고 인정머리 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폭탄 테러 사건이 실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것이라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마음 깊이 명심해야 한다.  미국은 이제야말로 사라예보로부터 그로쯔니(Groznyi, 체첸공화국의 수도), 르완다와 콩고에서부터 씨에라리온(Sierra Leone, 서아프리카 남쪽에 있는 나라)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아주 조금 맛보았을 뿐이다. 이 상황에 뉴욕에서 일어나는 총질들과 갱단의 강간사건들을 좀 덧붙이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10년 전 사라예보의 모습을 재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텔레비전 속의 "실재"가 허구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 때는 바로 우리가 텔레비전 스크린을 통해 WTC 타워가 붕괴되는 것을 목격했던 순간이었다. 텔레비전의 쇼들이 '실재'를 보여줄 때조차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프로그램 안에서 연기하고 있다. 그들은 그저 자기 자신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이 흔히 주장하곤 하는 "이 글 안의 인물들은 허구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들이 실재의 어떤 인물들과 비슷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한 우연일 뿐입니다"라는 명제는 실재라는 드라마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문구이다. 그들이 실재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조차도 우리는 허구적 캐릭터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실재로의 귀환"은 다른 방향으로 주어질 수도 있다. 조지 윌(George Will) 같은 우파 보수주의자 논객 역시 즉시 미국의 "역사로부터의 휴가"가 종료되었다고 선언했다. 텍스트성에 초점을 맞춘 문화이론들과 자유주의적이고 관용적인 태도의 고립된 성벽을 뒤흔든 '실재'의 충격으로 인해서. 이 진짜 세계에서의 적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이제 우리는 반격을 개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 반격해야 할까? 우리가 어떤 반격을 개시하건 그 반격의 목표는 결코 우리에게 온전한 만족감을 가져다줄 수 있는 '제대로 된' 목표일 리가 없다.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는 미국의 아둔한 행위는 자기 자신의 눈을 찌르는 행위나 다름없다. 세계 최강대국이 불모의 땅위에서 가까스로 생존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가난한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고 무기력한 연기 행위의 극단적 예가 아니라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이 사건에서 자주 언급되는 "문명의 충돌"이란 개념에는 분명 부분적 진실이 있다. 어떻게 자기 자신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해 경악하고 있는 미국인들을 주시해보자. 이 놀라움 뒤에는 정작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할 공동체적이고 보편적인 이유를 상상하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는 제1세계 시민들의 비애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폭탄 테러 사건 이후, 심지어 탈레반의 외무장관이 미국 어린이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라는 발언을 했을 때 그는 빌 클린턴의 트레이드 마크인 그 문장의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적인 역할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고 있었던 셈이 아닌가?

 

안전한 피난처 미국이라는 인식은 물론 환상이다. 그러나 뉴욕 시민들이 폭탄 테러 이후 이제 뉴욕 거리를 더 이상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없다고 이야기할 때,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정작 각종 공격과 강도 행위로 이미 충분히 유명했던 이 도시에서 이 사건이 묘한 연대의 감정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젊은 흑인이 늙은 유태인 신사가 길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는 광경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풍경인 것이다.


폭탄 테러 이후의 며칠 동안 우리는 마치 외상적인(traumatic) 사건과 그것의 상징적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특이한 시간 속에 거주하고 있는 것만 같다. 상처가 깊게 밴 순간과 그 아픔이 온전하게 우리에게 전달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그 짧은 순간과도 같은. 이 사건이 어떻게 상징화될 것인지, 그것의 상징적 효과가 무엇이 될 것인지, 그 효과를 정당화하기 위해 취해질 행동은 무엇인지는 모두 미정의 상태이다. 지금 이곳, 이 극단적인 긴장의 순간에조차도 이 상처와 그 상처의 상징적 결과 사이의 관계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것이다.

 

 

불길한 조짐들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폭탄 테러 다음날 나는 레닌에 대한 나의 다소 긴 글을 출판할 계획이었던 출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들은 아무래도 폭탄 테러 이후에 레닌에 관한 글을 출판하는 것은 시기가 좋지 않다면서 그 책의 출판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이야기해왔다. 혹시 이게 앞으로 이어질 불길한 이데올로기적 작용의 시작점은 아닐까?


우리는 아직 이 사건이 경제, 이데올로기, 정치, 전쟁 등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한데, 지금까지 스스로를 이런 종류의 폭력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이런 폭력은 텔레비전 스크린을 통해 안전한 거리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미국이 이제 직접적으로 이런 폭력에 개입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선택은 다음과 같다. 미국이 결국 그들의 "영역"을 더 공고히 하기로 결정할 것인가 아니면 그 영역 밖으로 걸어나올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지? 이런 일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라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위협적인 '외부' 세계에 대해 더욱 공격적으로 대응하기로, 다른 말로 하자면 분열증적 연기를 계속하기로 결심하든지 아니면 마침내 그들을 '외부' 세계로부터 분리하는 허구적 스크린으로부터 걸어나와서 '실재' 세계에 개입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런 일은 '이곳'에서는 일어나면 안돼"라는 태도로부터 "이런 일은 '어디에서도' 일어나면 안돼"라는 태도로 매우 늦어버린 전환을 시도하든지.

 

미국이 즐긴 "역사로부터의 휴가"는 허구다. 미국의 평화는 미국 이외의 곳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사와 맞바꾼 것이다. 이제 폭탄 테러가 주는 진정한 교훈을 배워보자. 이런 사건이 '이곳'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일이 그 밖의 어떤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길뿐이라는 교훈을.(번역: 서정은)

 

06.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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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시 생각하는 9.11 테러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9-11 09:47 
    추석 연휴에 묻히게 됐지만 오늘은 9.11 테러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에서나온 관련서들이 그래도 조만간 몇권은 소개되지 않을까 싶다. 국내서로는 이슬람권 전공자들이 쓴 <이슬람>(청아출판사)이9.11 이후 가장 큰화제를모았던 책으로 돼 있다. 그밖에 어떤 책들이 있는가란 기자의 질문을 받고 나도 생각나는 대로 몇권을 주워섬겼는데, '추천서'라기보다는 '관련서'로 든 것이었다. 지난주 기사를 옮겨놓는다.한국일보(11. 09. 03) '추
 
 
마늘빵 2006-06-10 11:23   좋아요 0 | URL
로쟈님은 제가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하지만 쉽게 풀어낼 수 없는 것에 대해, 항상 정리를 해주세요. 이번에도 퍼갑니다. ^^

로쟈 2006-06-10 12:35   좋아요 0 | URL
이미지 몇 개를 보충해서 옮겨다 놓았을 뿐입니다...

3794 2006-06-10 16:33   좋아요 0 | URL
이제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이미지 몇개를 보충해놓은 글은 달랑 글자만 있는 글과는 다르군요. 로쟈님의 이미지 선별능력에 감탄할뿐입니다.

로쟈 2006-06-10 17:21   좋아요 0 | URL
감탄하실 일은 아니고, '이런 짓'을 많이 하다보면 약간의 노하우가 생기는 것뿐이죠. 더불어, 이미지는 좀더 '리얼한' 읽기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의의도 있어서...

가시장미(이미애) 2006-06-11 03:2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

예전에 들렸던 적이 있었어요. 그 때는 잠시 닫아놓으셨던 것 같았는데... 제 기억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인사를 미루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어려운 글이 너무 많아서 글을 남길수가 없었는지도 몰라요. 텍스트를 이해못하고 남기는 댓글이 혹 무례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 글의 주제. 하나로 정리하기는 어렵겠지만, 요즘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와 연관성이 큰 것 같네요. 보드리야르의 책을 접하게 되면서 '현실'과'가상현실'에 대해 관심을 갖게되고 '시뮬라시옹'과'시물라크르'와 같은 어려운 개념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접할 때부터 비슷한 맥락의 생각을 해오긴 했지만 보드리야르의 책을 접하고 조금더 명확해지는 느낌을 받아서 요즘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답니다. 근데 여전히 어렵네요.

님의 글을 보면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앞으로 자주 들려도 될까요? :)

로쟈 2006-06-11 09:32   좋아요 0 | URL
잠시 뜸한 적은 있었지만, 닫아놓은 적은 없었습니다.^^ 보드리야르와 지젝이 모두 '가상현실'이란 용어는 쓰고 있지만 관심과 방향, 즉 정치적 입장은 많이 다릅니다. 지젝의 책들은 좀더 읽어보시면 '길'을 찾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작년 1월 중순에 모스크바 통신에 올렸던 글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수잔 벅 모스의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몇몇 대목을 읽고 정리한 것이다. 벤야민에 대해서는 이후에 몇 번 더 다룬 적이 있다. 물론 아직도 정리해야 할 대목들은 차고 넘치지만 말이다.

요즘 서울에는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모양이지만(*2005년 1월의 얘기이다), 모스크바의 날씨는 영상 3-4도이다. 기온이 좀 떨어져야 영하 1-2도(어제오늘은 제법 바람이 불어서 체감온도는 영하이지만). 이래가지고서야 모스크바의 체면이 좀 무색하다(집에 전화를 걸어 그런 얘기를 하면, “거기 모스크바 맞아?”란 소리를 듣는다). 방마다 창문 아래벽에 설치돼 있는 스티머에서 스팀이 ‘빵빵하게’ 나오기 때문에 방안에서는 반팔, 반바지가 기본 복장이고 이불을 안 덮고도 잘 만하다(그젯밤에는 창문을 좀 열어놓고 잘까도 했다). 지난봄 모스크바에 올 때 들고 온 짐의 대부분이 겨울옷들이었지만, 그 90%는 한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도로 들고가야 할 판이다. 이 또한 관념과 현실 간의 차이이리라. ‘모스크바’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실제 모스크바의 현실 간의 차이(“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가 없다!”).

 

 

 



우리가 관념의 지배, 혹은 판타지를 얼마간 걷어내는 길은 현실과 직접 맞부닥치는 것, 직접 가보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1892-1940) 역시 그랬다. “1926년 말에서 1927년 초까지 벤야민은 모스크바로 여행을 떠났다. 러시아어를 몰랐기 때문에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없었던 벤야민은 러시아 혁명의 현존을 눈으로 ‘보려’ 했다.”(<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문학동네, 2004, 48쪽.) 수잔 벅 모스는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파사젠베르크)를 재구성하면서, 그의 이 여행이 모종의 구조/구도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한편,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와 함께 읽어볼 만한 것은 한국작가 이태준의 <소련기행>이다. 나는 책을 사놓고 미처 읽지 못했는데, 돌아가면 한번 읽어볼 참이다.)

“어떤 장소를 알려면 가능한 한 많은 차원에서 경험해보아야 한다. 어떤 장소를 이해하려면 동서남북에서 다가가 보아야 하며, 동서남북으로 떠나가 보야야 한다.”(<모스크바 일기>)라는 벤야민의 말을 그녀는 그대로 그의 프로젝트에 적용하는바, “서쪽의 파리는 정치적-혁명적 의미에서 부르주아 사회의 기원이며, 동쪽의 모스크바는 동일한 의미에서 부르주아 사회의 종말이다. 남쪽의 나폴리는 지중해의 기원으로서, 신화로 둘러싸인 서구 문명의 어린시절이며, 북쪽의 베를린은 신화로 둘러싸인 작가 자신의 어린시절이다.”(45쪽) 그리고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개념상 두 축의 교점에 위치한다.”

물론 벤야민이 방문했을 때의 모스크바는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기의 러시아였으므로 “시골과 도시가 숨바꼭질하는 이행기의 도시”였다(신경제정책, 즉 NEP가 한시적으로 도입됐던 건 사회주의 혁명에는 성공했지만, 러시아에 아직 본격적인 사회주의의 ‘물적 토대’가 마련되지는 않았었기 때문이다. 해서 혁명정부는 한시적으로 부르주아 경제체제를 허용하는바, 그것이 NEP였다. 이 NEP 시기에 대한 신랄한 풍자극이 마야코프스키의 <빈대>(1929)이다. 이 작품 역시 메이에르홀드가 연출했고, 음악은 젊은 쇼스타코비치가 담당했다). “모스크바의 이행성은 ‘모든 생활, 모든 나날, 모든 생각’을 실험대에 올린다.”(49쪽)

그럴 만하지 않은가? 인류 역사상 ‘사회주의 혁명’에 처음 성공한 만큼, ‘사회주의로의 이행’ 또한 ‘첫경험’이었으니까(이런 걸 ‘한 졸렬한 시도’였다고 비판하는 것은 비판으로서 심히 졸렬하다). 어쨌든 “두달 동안(12월 6일-2월 1일) 벤야민은 소비에트 정부의 지원으로 모스크바의 호텔에 머물며 소비에트의 문화생활을 관찰했다.”(52쪽)

Cover: Moscow Diary

지난번에 “벤야민과 관련해서는 그의 <모스크바 일기>(1926-7)를 구해보고 싶지만, 러시아어로는 번역돼 있는 것 같지 않다(영역은 돼 있을까?).”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의외의 우리말 번역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고(<아케이드 프로젝트>의 각주를 보니까 영역본 'Moscow Diary'는 1987년에 나왔다), 어제 인터넷에 부분적으로 올라온 걸 대충 읽어볼 수 있었다(역자에 의하면 곧 출간예정이라고 한다. *알다시피, 이미 출간됐다. 나는 이 페이퍼가 계기가 되어 약간의 교정일을 거들 수 있었다).

“벤야민은 소비에트 정부의 지원으로 모스크바의 호텔에 머물며 소비에트의 문화생활을 관찰했다.”에 붙은 미주를 보면, “그는 연극, 영화 – ‘평균적으로 그렇게 좋지 않다’ – 박물관, 문학논쟁 등을 참관했으며, 수집벽에 이끌려 매우 자주 쇼핑을 다녔다.”(482쪽)고 돼 있는데(아마도 내가 서점들을 돌아다니는 것만큼), 번역된 일기를 읽어보니까 “평균적으로 그렇게 좋지 않”은 연극의 목록에는 메이에르홀드가 연출한 <검찰관>(1926년) 초연도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이 메이에르홀드 버전의 <검찰관> 초연은 러시아의 연극공연사에서 기념비적인 공연에 속한다(‘초연’이란 건 ‘첫회’ 공연이 아니라 ‘첫 공연된 시즌 전체’를 뜻한다. 그러니까 메이에르홀드의 <검찰관> ‘초연’은 아마도 1926년 가을부터 1927년 봄까지를 카바한다). 1920년대에 <검찰관>은 메이에르홀드 버전(1926년)과 테렌치예프 버전(1927년)으로 새롭게 공연되었는데(고골이 이 작품을 처음 무대에 올린 건 1836년이다). 특히, 메이에르홀드의 공연은 러시아 연극사상 가장 훌륭한 공연으로 평가되고 있으며(J. L. 스타이안, <표현주의 연극과 서사극>, 현암사, 90쪽), 다닐 하름스가 속한 오베리우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하름스와 그의 동료들은 '오베리우 선언서'(1927)에서 테렌치예프의 공연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사실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여러 보고에 따르면, 메이어르홀드가 연출한 <검찰관>의 연기와 무대장치는 모두 파격적이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마치 희극적인 오페라에서와 같이 호화로운 의상을 입었다는 점이다(자세한 것은 스타이안, 같은 책, 90-2쪽 참조). 이런 유니크한 공연까지를 포함해서 “평균적으로 좋지 않(았)다”면, 공연에 대한 벤야민의 안목이나 기대치가 상당히 높았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나도 너무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가 러시아어 대사들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므로 공연을 제대로 관람할 수 없었을 거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나도 사정이 더 나은 건 아니다. ‘관광객’이 보기에 가장 좋은 공연은 발레와 서커스이다).

참고로, 모스크바에서 2004년의 최고 공연으로 지목되는 건 고골의 <외투>인데(소설을 각색해서 무대에 올린 것인데, 주인공 아카키 역을 유명한 여배우가 분장해서 연기한다), 12월에 보겠다는 당초 바람과는 달리 나는 그 공연을 볼 수 없었다. 표가 워낙에 빨리 매진된 탓에. 아무래도 ‘초연’ 관람은 포기해야 할 듯하다)

다시 벤야민으로 돌아오면, 모스크바에서 그가 한 일이란 주로 연극/영화 관람, 박물관(그도 트레챠코프 미술관을 방문했다) 구경과 문학논쟁 참관, 그리고 쇼핑이었다. 물론 가장 큰 비중은 쇼핑에 두어졌을 법하다. “그는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나날을 러시아 인형을 수집하기 위해 쇼핑을 하면서 보냈다.”(54쪽, 여기서 ‘러시아 인형’이란 건 ‘마트료슈카’를 말하는데, 인형 속에 같은 인형이 10개 정도씩 들어있는 대표적인 러시아 기념품이다.)

하지만, 그의 관찰과 쇼핑의 이면에 놓여 있던 건 여행의 ‘진정한’ 목적이었다(표면적으론 마르틴 부버가 <피조물>이란 잡지에 싣고자 청탁한 글을 작성하기 위한 모양이었던 듯하다. ‘모스크바’란 제목. 한편 벤야민은 <소비에트 백과사전>의 ‘괴테’ 항목을 모스크바 체류 이전부터 준비하여 집필하지만, 1928년 가을에 완성된 그 글은 당시의 교육부장관 루나차르스키에 의해 ‘부적절하다’고 거부당한다. “최종적으로 <소비에트 백과사전>에 실린 괴테편은 벤야민이 처음 쓴 원고의 12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483쪽, 주44).

무엇이 그의 ‘진정한’ 목적이었나? “벤야민은 아샤 라시스에, 그리고 공산당에 투신할 생각으로 러시아에 왔다.”(52쪽) 아샤 라시스는 누구인가? 그녀는 1924년 벤야민이 <파사젠베르크>의 기원을 마련했던 아주 중요한 시기에 영감을 주었던 ‘뮤즈’였다(수잔 벅 모스는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기원’이 1924년 이탈리아에서 마련됐다고 본다). “그녀는 라트비아 출신의 볼셰비키였고, 혁명 이후 소비에트 문화계에서 배우 겸 연출가로 활동했으며, 두마 혁명 이후에는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다. 벤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는 ‘걸출한 공산주의자’였고, ‘내가 만난 가장 걸출한 여자’였다.”(25쪽) 그녀의 이름이 바로 아샤 라시스(*라치스)였으며, “(그해) 6월부터 벤야민이 카프리에서 숄렘에게 보낸 편지들은 ‘모호한 암시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숄렘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벤야민은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26쪽)

아샤 라시스가 회고하는 벤야민과의 첫만남은 이렇다. 그녀가 아몬드를 사려고 가게에 들렀는데, 아몬드를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난처해하고 있을 때 벤야민이 통역을 해주었다. 다음번에 벤야민은 광장에서 그녀에게 다가와 부르주아의 예의범절을 깍듯하게 지키면서 자기소개를 하고는 짐을 들어주겠다고 자청했다: “작은 스포트라이트처럼 빛을 반사하는 안경알, 뻣뻣한 검은 머리, 좁은 코, 서툰 손놀림 - 그는 짐꾸러미를 놓치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서, 진짜 지식인. 유복한 배경을 가진 지식인. 그는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었고, 작별인사를 하면서 찾아봬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바로 다음날 찾아왔다.(…) 그는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말했다. ‘두 주 동안 당신을 지켜보았습니다.’”(26쪽) 러시아는 그 아샤의 조국이었다.

하지만, “여행중의 일기가 증거하는 것처럼 두 가지 기대는 모두 좌절되었다.” 물론 벤야민에겐 (나중에 이혼하게 되는) 아내 도라가 있었고(여덟 살난 아들과 함께), 그의 모스크바 체류 기간에 라시스는 적군(赤軍) 장교와 연애중이었다(그녀는 나중에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베른하르트 라이히와 결혼한다). 아마도 아샤 라시스와 도라 벤야민이 벤야민 인생의 두 여자였던 듯한데,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36쪽에는 두 여자의 사진이 나란히 실려 있으며, 1928년 베를린에서 동시에 출간한 그의 책 <일방통행로>와 <독일 비극의 기원>은 각각 이 두 여자에게 바쳐졌다(“모든 범죄의 이면에는 여자가 있다”는 속설을 비틀어서 말하자면, “모든 책의 이면에는 여자가 있다!”).

 

 

 



사실, 친구인 게르숌 숄렘과 달리 (유태인이었던) 벤야민이 팔레스타인행을 포기한 데에는(그는 숄렘의 권유로 팔레스타인행을 진지하게 고려하며, 히브리어를 배우기까지 했다) 라시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는 1924년 카프리에서 벤야민에게 이렇게 말했다. “똑바른 정신으로 생각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모스크바로 가야 합니다.”(38쪽) 팔레스타인행과 관련하여 벤야민은 라시스와 ‘날카로운 언쟁’을 나누지만, 결국 그는 그녀의 충고에 따라 모스크바로 가게 되며, 그것이 1926년 겨울의 일인 것이다(요즘은 어떤 정신의 사람들이 모스크바에 오는가?).



이에 대한 수잔 벅 모스의 촌평: “연정과 정치가 한데 묶여 깨달음을 줄 때 얼마나 창조성이 생기는지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일과 사랑이 삶의 분리된 국면이 아니라 하나로 강렬히 융합된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들(*라시스와 벤야민) 관계의 결정적 중요성은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39쪽) 그러니 그대, 프로젝트를 꿈꾸는가, 먼저 사랑에 빠질 일이다!

다시 반복하자면, “벤야민은 아샤 라시스에, 그리고 공산당에 투신할 생각으로 러시아에 왔다.”(52쪽) 하지만, 상황은 벤야민의 편이 아니었다. “벤야민의 (모스크바) 체류기간에 라시스는 (라이히의 아파트로 옮겨갈 때까지) 요양소에서 ‘신경쇠약’을 치료하고 있었으며, 주간에는 외출하여 벤야민을 만날 수 있었지만 둘만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다. 세 사람 – 라시스, 라이히, 벤야민 –은 누구와도 일부일처 관계가 아니었다. 벤야민의 간결한 설명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일기를 읽어보면 벤야민이 당시의 상황에서 겪었던 감정적 고통을 감지할 수 있다. 벤야민은 체류 초기에 라시스에게 당신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곧 소극적이 되었고 때로는 라시스보다도 소극적이었다. 그들의 만남은 편안하지 못했다. 말다툼은 격렬했으며, 애정표현은 조심스러웠다. 벤야민은 논문으로 감정을 전했고, 라시스는 정치적 의견을 표함으로써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했다.”(53쪽)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를 읽는 독자는 (그 당시 라시스가 느꼈을) 답답함을 느낀다. 그는 왜 사랑에도 정치에도 투신하지 못하는가? 그는 모스크바에서의 마지막 나날을 러시아 인형을 수집하기 위해 쇼핑을 하면서 보냈다. 라시스와의 마지막 만남은 그 전의 모든 만남이 그랬듯이 불확실한 것이었다. 일기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그녀는 걸어가면서 돌아보는 것 같았는데, 잠시 후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안고 어두워지는 거리를 지나 역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눈물을 흘렸다.’”(53-4쪽, 강조는 나의 것)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는 그렇게 끝나는 모양이다. 거기에 붙이고 있는 수잔 벅 모스의 촌평, “그의 무능은 유치했을까 아니면 현명했을까? 아니면 둘 다였을까?”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현명함’이란 ‘살아남은 유치함’의 다른 이름이니까(때문에 ‘현명함’은 언제나 사후에 소급 적용된다. ‘현재의 현명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벤야민의 무능이란 사랑에도 정치에도 자신의 모든 걸 걸고 투신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모스크바의 이별 장면에서도 그러한 자신의 무능을 담보로 하여 벤야민이 챙긴 것은 아마도 ‘커다란 여행가방’을 가득 채우고 있을 논문 자료들과 쇼핑한 물건들일 것이다. 벤야민의 그런 모습에 대해서는 라시스나 수잔 벅 모스가 답답해 하는 만큼 우리도 답답하다. 하지만, 벤야민의 비밀은 그 ‘무능(=답답함)’에 있는 듯하다. 그걸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함’, ‘아직 정신 차리지 못함’의 의미로 이해한다면 말이다(“정신 좀 차려라, 벤야민!”).

<파사젠베르크>의 부제는 ‘변증법적 동화’이며, 흥미롭게도 벤야민에게서 이 동화의 모델은 언제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였다. 그에게 압도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도시에 대한 초현주의자들의 태도였는바, “벤야민의 회상에 따르면 <파사젠베르크>의 구상은 파리 아케이드가 중심적으로 등장하는 루이 아라공의 초현실주의 소설 <파리의 농부>에서 영감을 받았다.”(55쪽) 이후에 그는 <파사젠베르크>를 구성하게 될 최초의 메모들을 작성해가는데, “이들 목록은 도시 현상에 매혹됐던 초현실주의자들의 태도를 암시한다. 초현실주의자는 도시 현상(urban phenomena)’을 객관적인 것으로 경험하는 동시에 꿈으로 경험했다.”(이에 영향을 받은 벤야민은 1927년 초현실주의에 대한 논문을 쓴다.)



그리고, “초현실주의가 현실을 꿈으로 인식했다면, <파사젠베르크>는 독자를 꿈에서 깨우기 위해 역사를 환기한다(*독자를 깨우자면, 독자는 자고 있어야 한다. 혹은 아이들 버전으로 말하자면, “내가 깨워줄 테니까 자고 있어, 알았지?”). 초기 단계였던 당시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제목이 ‘변증법적 동화’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벤야민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준다.”(56쪽) 다시 한번 들려준다는 건 이전에 벤야민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 얘기를 이전에 두 번 더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독일비극의 기원> 서문에서였는바, 그는 이 서문을 자신의 ‘가장 성공적인 글’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다.

“잠자는 미녀가 나오는 동화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하고 싶다. 그녀는 가시덤불 속에서 잠을 잤고,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깨어났다. 그러나 행운의 왕자님의 키스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를 깨운 것은 주방장이었다. 주방장이 어린 요리사의 따귀를 때리는 소리가 궁전 전체에 울려퍼졌다. 오랜 세월 막혀 있던 에너지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아름다운 아이가 가시울타리 뒤에서 자고 있다. 한껏 현란한 지식으로 장식한 행운의 왕자는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라. 결혼의 키스를 하면 아이가 왕자에게 달려들 테니까. 작가가 아이를 깨우는 것이 훨씬 낫다. 작가가 주방장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따귀를 때릴 때가 한참이나 지나갔다. 따귀의 날카로운 울림은 지식의 방들에 울려퍼질 것이다. 그러면, ‘고물’ 물레에 손가락을 찔렸던 이 가련한 진리도 깨어날 것이다. 이 진리는,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에, 물레에 걸린 채 교수의 가운으로 짜여 들어갈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40쪽)



이에 대한 수잔 벅 모스의 촌평: “학계는 ‘고물’이 되었다. 작가 벤야민은 자기가 오랫동안 잠들었던 형이상학의 진리를 깨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진리는 교수복을 입고는 나타날 수 없는 것이었다. 좀더 적당한 옷을 쇼핑몰에서 찾은 것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일일까?”(벤야민 자신도 <일방통행로>에 대한 에른스트 블로흐의 서평, “이곳에 철학이 개점했다. 쇼윈도에는 형이상학의 봄 신상품이 진열된다.”에 매우 흡족해했다고 한다.)

아무튼 여기서 ‘진리’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이며, 벤야민(=작가)는 (왕자는 아니더라도) 이 미녀(=진리)를 깨우는 ‘주방장’이고자 한다(요즘 버전으론 ‘슈렉’). 나는 동화의 이러한 ‘비틀기’가 벤야민 자신의 독창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흥미로운 건 이 이야기에서 대별되고 있는, ‘깨우기’의 두 가지 방식이다. 첫번째는, 전통적인 방식인바, ‘왕자의 키스’. 이건 직접적이며 무매개적인 방식이다(슈렉은 입냄새로 깨우던가?). 그리고 두번째는 ‘주방장의 따귀’. 어린 요리사를 따귀 때리는 소리에 공주가 깨어났다고 하니까. 이건 간접적이며 매개적인 방식이다. 벤야민이 (무)의식적으로 선호하는 것은 ‘왕자의 키스’가 아니라 ‘주방장의 따귀’이다.

‘따귀 때리기’가 얼핏 강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방식이고 매개적인 방식이며, 직접적인/무매개적인 방식으로 진리/미녀를 깨우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가림막이다. 동일한 결과를 산출하지만(혹은 그럴 걸로 기대되지만), 진정한 액션이 아니라 이른바 유사-액션인 것이다. 가령, 모스크바 체류 초기에 “벤야민은 라시스에게 당신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따귀’를 때린 것. 하지만, 그게 전부이며, 그는 결정적으로 ‘키스’를 하지 않았다.

그는 따귀를 때린 것 정도로 모든 결과가 산출되기를 기대했지만, 라시스(=공주)는 깨어나지 않았다(아마도 기지개 정도를 켜다 말았으리라). “그러나 곧 소극적이 되었고 때로는 라시스보다도 소극적이었다.” 따라서, “그는 왜 사랑에도 정치에도 투신하지 못하는가?”란 물음을 이렇게 비틀어볼 수 있다(정치에서도 그는 ‘재야 좌익’ 정도를 자신의 몫으로 생각한다). “그는 왜 사랑에서도 정치에서도 ‘키스’하지 못하는가?”(왜 엉뚱한 아이의 따귀나 걷어붙이는가? 무슨 프로젝트 ‘준비’만으로 생애를 다 보내는가?)

그리고 또 한번. 1908년, 16세의 벤야민은 학생잡지 <데어 앙팡(der Anfang)>의 재판에서도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언급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젊은이는 잠자는 미녀다. 왕자가 자기를 깨우러 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자고 있다. 젊은이가 깨어나기 위해서, 젊은이가 자기를 둘러싼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이것을 위해서 우리 잡지는 힘을 보태기를 원한다.”(484쪽, 주58)

여기서도 ‘젊은이(=미녀)’를 깨우러 오는 것은 ‘왕자’인데, 문맥상 ‘우리(=우리 잡지)’는 ‘왕자’와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젊은이가 깨어나기 위해서 힘을 보태기를 원한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란 여기서도 ‘따귀’나 때리는 것이다(창작에 비해서 2차적인 비평 자체가 이미 ‘따귀 때리기’일까? 1930년 파리 체류중에 솔렘에게 보낸 편지에서 벤야민은 자신의 목표가 “(현대) 독일 문학 최고의 비평가라는 평가를 받는 것”(59쪽)이라고 밝혔다. 더 물고 늘어지자면, 그는 여기서도 ‘최고의 비평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비평가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최고의 비평가라고 평가/인정해줄 ‘왕자’를 기다리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였다).

요컨대, 벤야민에게서 일생에 걸쳐 반복되는 ‘모티브’(혹은 ‘반복강박’)는 '잠자고 있다-깨워야 한다'이며, 그 깨우는 방식은 독특하게도 간접적/매개적인 것이었다(그에게 ‘역사’는 ‘역사의 천사’였다). 그에게 ‘변증법’은 무엇보다도 잠/꿈에서 ‘깨어나는 것’을 의미했는바, 애초에 ‘변증법적 동화’로 구상되었던 <아케이드 프로젝트> 자체가 “상품 환등상이라는 집단 꿈에서 ‘깨어남’과 관련하여” “<잠자는 미녀> 이야기의 마르크스적 다시 쓰기이다.”(349쪽)

그러한 다시 쓰기의 전제조건은 ‘잠자고 있기’이다. “벤야민의 목표는 ‘초현실주의의 유산’ 속에서 깨어남의 충격과 기억하는 훈련을 연결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역사적 대상물을 동력화(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지난 세기의 키치를 ‘깨우는’ 자명종 시계를 만든다 –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간지(奸智)와 함께 작동한다.”(351쪽) 들뢰즈의 상용구를 동원하자면, 벤야민의 꿈은 ‘자명종-되기’였던 것이다(<모스크바 일기>에서 그는 모스크바의 ‘너무 많은’ 시계점들에 대한 관찰을 기록하고 있다. 왜 너무 많을까? 유독 시계점들에 주목했기 때문 아닐까?).



그런 벤야민에게, 혹은 그의 프로그램에 강력한 도전장을 던진 것이 히틀러의 나치즘이었다. “독일이여 깨어나라!”가 나치의 슬로건이었던 것이다! “히틀러는 라디오라는 대중매체를 이용하여 벤야민의 작업과는 상반되는 정치문화를 배양했다. 파시즘은 현실을 무대에 올리는 아방가르드적 실천을 역전시켜 정치적 스펙터클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 자체를 무대에 올림으로써 ‘현실’ 자체를 연극으로 만들었다(*이런 게 ‘예술의 정치화’에 대응하는 ‘정치의 예술화’이다). 게다가 이러한 좌파문화운동의 전체주의적 역전은 좌파가 해내지 못했던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이와 유사하게 스탈린주의를 ‘정치적 아방가르드’로 이해하는 관점은 보리스 그로이스, <아방가르드와 현대성> 참조).

‘자기반성’을 심리학적 의미가 아닌 ‘역사철학적’ 의미로 이해한 벤야민에게 이러한 상황은 개인적 위기로 경험되었다.”(59쪽) 비유컨대, ‘자명종-벤야민’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확성기-히틀러’이며(사실 이건 그 ‘직접성’에서 경쟁 자체가 안된다! 그는 나치즘에 쫓겨 미국 망명까지 시도하지만 결국은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하고 만다), 때문에 “파시즘이라는 배경막이 드리워진 상황에서, 현재를 탈신화화할 역사를 현시한다는 <파사젠베르크>의 교육적 기획은 더욱더 절박한 것이 되었다.” 교육적 기획? 아이의 따귀를 때리는 것 말이다!

게다가 그를 둘러싼 주변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1931년 여름과 1932년에 벤야민은 자살을 생각했다. 1930년에 아샤 라시스가 모스크바로 돌아갔고, 모친이 사망했으며, 자신의 이혼이 결정되었다. 그는 이후의 고독 - 2,000권의 장서를 보유한 서재가 딸린 베를린 아파트의 고독 혹은 여름 별장의 고독 -과 화해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제적인 ‘생존투쟁’에는 지치고 말았다. 파시즘의 확산과 함께 재정문제는 점점 더 힘겨워졌다.”(60쪽)

그를 얼마간 더 지탱시켜준 힘은 자신의 프로젝트(‘커다란 여행가방’)에 대한 애착이었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통째로 관류하고 있는 건 '잠자고 있다-깨워야 한다'이다. 거기서 ‘잠’을 근대 자본주의의 환상으로 대치하게 되면, 벤야민은 곧바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 이때의 마르크시즘은 유년기의 깨어남을 모델로 한다는 점에서 나는 그걸 ‘유년기적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르고 싶다(‘성년의 마르크스주의’가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이 유년기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몇 마디 덧붙이고 싶지만, 그건 내가 당장에 실현시킬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대신에 몇 개의 인용문만을 나열하면서 이 글은 일단 끝마치기로 한다.

A Barricade of the Paris Commune

“유년기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생물학적 과제는 집단적/사회적 깨어남의 모델이 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한 세대는 집단적 경험에서 두 가지 깨어남을 수렴한다. 한 세대가 의식에 이르는 순간은 정치적으로 힘을 받는 순간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독특한 순간에 새로운 세대는 부모의 세계에 반항함으로써 깨어나는 데 그치지 않고 졸고 있는 시대의 유토피아적 잠재력을 깨울 수도 있다.”(354쪽)

“우리가 줄곧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이 그 객관적 이미지의 일부이다. 이 세대를 스스로에게서 풀어주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꿈-연결 속에서 목적론적 계기를 찾는다. 이 순간은 기다림의 순간이다. 꿈은 은밀하게 깨기를 기다린다. 잠자는 사람은 누군가 자기를 부를 때까지만 자신을 죽음에 맡긴다. 그는 간지를 통해 포로 상태에서 풀려날 순간을 기다린다. 꿈꾸는 집단도 마찬가지다. 꿈꾸는 집단의 아이들은 집단이 깨어나는 다행스러운 계기가 된다.”(354쪽)

“유물론적 역사는 새 자연을 탈주술화하여 자본주의의 주문에서 풀어주지만, 사회변혁을 위한 힘은 구해낸다. 이러한 유물론적 역사가 벤야민이 바라는 동화의 목표였다. 집단의 역사적 깨어남의 수간에 동화는 ‘나는 어디서 왔을까?’라는 아이의 사회역사적 질문에 대해 정치적 폭발력을 담고 있는 대답을 제공할 것이다. 근대적 존재, 좀더 정확히 말해서 근대적 꿈나라의 이미지는 어디서 왔을까? 그러한 꿈나라의 미학적 표현인 초현실주의를 언급하면서 벤야민은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는 다다였고 어머니는 아케이드였다’고 말했다.”(354쪽) “(아케이드에서) 우리는 꿈속에서처럼 부모와 조부모의 삶을 다시 산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아가 동물의 삶을 다시 살듯이 말이다.” “누가 아버지의 집에서 살 것인가?”(이상 357쪽)

05.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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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판타스마고리아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2-11 09:28 
    일반인 교양강좌 준비로 들뢰즈와 벤야민의 책들을 한두 권씩 가까운 서가로 옮겨놓고 있는데, 마침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리라이팅'한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트 프로젝트>(그린비, 2009)가 출간됐다. 저자는 <계몽의 변증법>을 리라이팅했던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그린비, 2003)의 저자 권용선 씨. 수유너머에서 강의한 내용을 이번에도 책으로 펴낸 듯싶다. 참고문헌으로 챙
 
 
Forgettable. 2009-12-1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얼마 전 [모스크바 일기]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페이퍼가 더 재미있네요^^
오래전 글인데 먼댓글 따라와서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ㅠ_ㅠ
 

재작년 8월말에 모스크바 통신문에 올려놓았던 '번역의 속도에 대하여'에서 후반부를 옮겨놓는다. <선악의 저편>의 한 대목 읽기였다. 발단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은 그 문체의 속도이다.”란 니체의 말이었고(<선악의 저편>, 단장 28). 이 번역은 책세상판 니체전집 14권,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2004, 초판 3쇄)의 55쪽에 나온다. 그 단장  28을 읽어보기로 한다. 니체는 이 단장에서 번역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바에 대해서 시사하고 있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은 그 문체의 속도이다: 문체의 속도라는 것은 종족의 성격에, 생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그 종족의 ‘신진대사’의 평균 속도에 근거한다. 충실하게 그 뜻을 담고 있는 번역도, 본의 아니게 원전의 격조를 더럽힘으로써, 거의 위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것은 오로지 사물과 언어 속에 내재된 모든 위험한 것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원전의 대담하고 경쾌한 속도가 함께 번역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번역은 원전의 의미만이 아니라 그 (경쾌한) 속도까지도 옮겨놓아야 하며, 옮겨놓을 수 있어야 한다. 지나가는 김에 덧붙이자면, 나는 “생리학적으로 말하자면”의 니체를 사랑한다. 내가 아는 니체가 거기에 있다("안녕, 프리드리히!").

 

 

 



-독일인은 자신의 언어에서 빠른 템포(프레스토)를 거의 다룰 수 없다: 우리가 정당하게 추론할 수 있듯이, 자유로운, 자유정신적 사상의 가장 유쾌하고 대담한 많은 뉘앙스도 낼 수 없다. 독일인에게는 육체적으로나 양심적으로 부포(Buffo)와 사티로스가 낯선 것처럼, 그들에게는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와 페트로니우스(Petronius)는 번역을 잘해내기 힘든 것이다. 독일인에게는 장중한 것, 용해하기 힘든 것, 엄숙하고 둔중한 모든 것, 느리고 지루한 종류의 온갖 문체가 엄청나게 풍부하고 다양하게 발달했다. 괴테의 산문마저도 딱딱함과 우아함이 혼합되어 있는데, 결코 예외가 아니다. 이는 그의 산문이 속하는 ‘옛날 좋은 시절’의 반영이며, ‘독일적인 취미’가 아직도 존재했던 시대에 독일적 취미의 표현이며, 양식과 기교 면에서 볼 때 로코코 취미였다.

(*)아리스토파네스와 페트로니우스는 각각 그리스와 로마의 (희극)작가이다. 니체는 독일어의 느리고 지루함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고 있는데, 나의 짐작에는 오직 니체에 이르러 독일어가 자신의 빠른 템포(=프레스토)에 다다른 건 아닌가 싶다. 그만큼 니체는 유쾌하고 경쾌하다.

 

 

 



-레싱(Lessing)은 많은 것을 이해했고, 많은 것을 잘 아는 배우적 천성 때문에 예외가 되었다. 그가 베일(Bayle)의 번역자였다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으며, 기꺼이 디드로(Diderot)와 볼테르 곁으로, 오히려 로마의 희곡작가들 틈으로 피신하고자 했다. (문체의) 속도에서도 레싱은 자유정신을 사랑했고, 독일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독일어는 어떻게 레싱의 산문에서조차도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속도를 모방할 수 있었던 것인가.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군주론>에서 플로렌스의 건조하고 맑은 공기를 포함하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제어할 수 없는 쾌속조(allegrissimo)로 서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마 어떤 대립을 감행하고자 하는 심술궂은 예술가의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즉 그 사상은 지루하고 무겁고 딱딱하고 위험하며, 말처럼 질주하는 속도와 최고의 오만한 기분 속에 있는 것이다.

 

 

 

 

(*)니체는 레싱 정도를 예외로 쳐주는데(지난주에 러시아어 레싱 선집을 샀다. 절판된 그의 책<현자 나탄>이 다시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때문에 18세기 프랑스 철학자인 베일을 번역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베일도 상당히 경쾌한 문체를 구사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레싱조차도 마키아벨리의 속도(=알레그리시모)를 따라가는 건 역부족이라는 얘기. 여기서, 마지막 두 문장은 좀 미흡해 보인다. ‘어떤 대립’보다는 ‘어떤 대조’가 맞는데, 그 대조의 내용이 번역문에는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과 무엇의 대조인가? “지루하고 무겁고 딱딱하고 위험한 사상”과 그 문체가 갖는 “말처럼 질주하는 듯한, 너무나도 쾌활한 기분의 속도” 사이의 대조이다. 그러니까,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지루하고 무겁지만, 그 문체는 경쾌하고 아주 활달하다는 것.

(*)한가지, 편집/교정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하자면, 이런 문단 같은 경우 인명에 대한 외국어 표기들이 일관성 있게 병기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내 생각에 미주에서 처리하고 있는 인명들은 굳이 본문에서도 외국어 표기를 병기해줄 필요가 없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즉 익히 알려진 인명의 경우에는 더더구나 그렇다. 볼테르는 낯익기 때문에 그냥 놔두고 디드로는 낯설기 때문에(?) ‘Diderot’라고 병기해준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하긴 ‘디데로’라고 옮기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하여간에, 그건 좀 이상한 ‘노파심’이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마키아벨리에다가 ‘Machiavelli’를 나란히 표기한 것처럼.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우리에겐 ‘사티로스’가 ‘마키아벨리’보다는 친숙한 이름이어야 한다. 풍자(Satire)란 말의 어원이 되는 이 ‘사티로스(Satyr)’가 과연 그런지?.. 나는 완벽한 책, 적어도 최선을 다한 책을 읽고 싶다.

-결국 그 누가 지금까지의 어느 위대한 음악가보다 훌륭한 창의와 발상, 말에 있어서 빠른 속도의 장인이었던 페트로니우스를 감히 독일어로 번역할 수 있겠는가: - 우리가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내닫게 하면서 모든 것을 건강하게 만드는 바람의 걸음걸이를, 들이마시고 호흡하는 바람을, 바람의 자유로운 조롱을 지니고 있다면, 병들고 사악한 세계의 수렁이나 ‘고대 세계’의 수렁이 결국 무슨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저 신성하게 변용시키면서 보완하는 정신 아리스토파네스에 관해 말하자면, 그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그리스 세계 전체를 용서하게 된다. 그곳에 있는 모든 것에 용서와 변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가슴 깊이 이해했다고 전제한다면 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니체는 페트로니우스와 아리스토파네스에 대한 경탄으로 이 단장을 마루리하게 된다. 어쨌든 독일어로는 페트로니우스를 번역할 수 없다는 것. 그는 너무도 빠른 속도의 장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의 대표적인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에 대한 경탄. “저 신성하게 변용시키면서 보완하는 정신 아리스토파네스”라고 옮겨져 있는데, 희극에서 세상이 ‘신성하게 변용’된다는 건 약간 어색하다(내가 아직 아리스토파테스를 읽지는 않았지만). 러시아어 번역에는 ‘밝게 하다’란 동사가 쓰이고 있다. 즉 빛이 들게 하는 것이다. 용서의 대상이 되는 ‘그리스 세계’란 어두운 세계인바, 그것을 ‘희극적으로’ 재현/묘사함으로써 용서해줄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얘기인 듯싶다(웃음은 세상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아리스토파테스는 “저 밝게 비춰주면서 보완해주는 천재”인 것.

-그렇기 때문에 저 다행스럽게도 보존되어온 소품(petit fait)보다 더 내가 플라톤의 비밀스러움과 스핑크스의 본성에 대해 꿈꾸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즉 우리가 그의 임종의 베개 밑에서 발견한 것은 <성서>도, 이집트의 책도, 피타고라스의 책도, 플라톤의 책도 아닌, -아리스토파네스의 책이다. 플라톤 또한 –그가 부정했던 그리스적인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없었다면 말이다!-

(*)원문은 문단이 나뉘어져 있지 않지만, 내가 임의로 분할한 마지막 문단이다. 니체의 경쾌한 속도를 그런대로 따라온 우리말 번역은 이 대목에서 헛걸음을 하고 있다. “저 다행스럽게도 보존되어온 소품”이란 게 무슨 뜻인지? ‘소품’은 보통 작은 단편/작품을 말하는 것이지만, 병기된 불어 ‘petit fait’는 ‘작은 사실’(little fact)이란 뜻 아닌가? 역자는 ‘보존되어온’이란 말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사실’을 ‘소품’으로 옮긴 듯하다. 우리말이 어색하다면 번역에서 약간의 변형이 필요하지만, 여기선 방향이 잘못됐다. ‘보존되어온’에 맞출 게 아니라 ‘작은 사실’에 맞추었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전해져 내려온 사소한 사실 하나’라고 하면 어떨까? 그리고, “플라톤의 비밀스러움과 스핑크스의 본성”은 분리돼 있는 게 아니다. “플라톤의 비밀스러움과 그 스핑크스적(=수수께끼적) 성격”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니체로 하여금 “플라톤의 비밀스러움과 그 수수께끼적 성격”에 대해서 공상해보게 만든 ‘사소한 사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플라톤이 임종한 베개 밑에 있던 책이 아리스토파네스였다는 사실이다. <성서>(<구약>을 뜻하는 건가? 아니면 다른 종류의 경전?)도, 이집트의 책도, 피타고라스의 책도, 그리고 플라톤 자신의 책도 아닌,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들 말이다. 해서, “플라톤 또한 삶을, 자신이 부정했던 그리스적인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아리스토파네스라도 없었다면 말이다!”(책들, 이 책들이 아니라면, 나는 모스크바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2004. 08.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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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니체와 문체의 속도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27 23:37 
    이번주 교수신문에 실은 서평위원 칼럼을 옮겨놓는다. 예전에 '니체와 번역의 속도'란 페이퍼에서 니체의 번역론, 정확하게는 문체의 속도 번역론을 소개하고 나대로 풀이한 적이 있는데, 최근 <번역이론>(동인, 2009)이란 책에서 다시금 그 대목이 번역돼 있는 걸 보고 그 속도의 문제를 한번 더 생각해본 글이다. 당시엔 번역돼 있지 않았던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공존, 2008)이 그 사이에 소개된 것이 
 
 
 

재작년 8월말에 '번역의 속도에 대하여'란 모스크바 통신문에서 다루었던 내용의 일부를 여기에 옮겨놓는다. 니체의 <선악의 저편> 읽기에 앞서서 몇 마디 주절거린 것인데, 내용상 독립적이기에 아예 따로 떼놓으면서 제목을 따로 붙여둔다. '늙어가는 느릅나무들'은 본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자작시의 제목이다.

“신은 죽었다!”란 선언이 니체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있지만, 알다시피 그때의 ‘신’이 뜻하는 것은 어떤 인격체가 아니라 초월적 의미(=기의)인바 우리에게 주어진 것, 즉 ‘이 삶’을 넘어서는, 혹은 ‘이 삶’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신은 죽었다!”라는 그 선언에는 함축돼 있다(“이게 다예요!”). 아무것도 없는 대신에 도대체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힘에의 의지’인바, 생물학 교과서적인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Eat, Survive, Reproduce”(먹고 살아남아서 자손을 퍼뜨리는 일) 외에는 따로 일이 없는 존재들이다(우리는 교량일 뿐이다). 그 ESR이 우리의 존재근거이자 원리이다. 너무도 단순하지만, 너무도 이해되고 있지 않은!



“자연은 잔인하기보다는 단지 무자비하고 냉담할 뿐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내용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선의도 악의도 없고, 잔인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으며, 단지 냉담할 뿐인 어떤 사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사람의 뇌 속에는 목적이 가득 들어있다. 어떤 사물을 보면서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또는 그것을 만든 동기나 이면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목적에 대한 강박관념이 병적인 상태로 발전하면 그것을 편집증이라 부른다. 즉 실제로는 우연한 불운일 뿐인데도 그 속에 어떤 악의가 있지 않나 하고 의심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것은 목적이 있다는 생각에 깊이 사로잡힌 존재이기 때문이다.”(R. 도킨스, <에덴 밖의 강>, *<에덴의 강>으로 재출간됨)

하여간에 나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을 결코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겠다. 우리의 몰이해 또한 ‘냉담한 무관심’의 결과라고 믿기 때문이다(진실 혹은 냉담!).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니체의 철학을 ‘아줌마 철학’이라고 부른바 있다(아줌마는 가족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가족 바깥은 없다!”). 니체는 자신을 경계로 하여, 철학사를 니체 이전과 니체 이후로 구분했는데, 그러한 구분을 조금 비틀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아줌마 철학을 경계로, 아줌마 철학을 문턱으로 하여 양분된다고. 아줌마 철학은 무엇과 경쟁하며, 무엇을 부정하고 거부하는가? 그건 형이상학으로서의 ‘이데아 철학’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이데아 철학은 (유클리드)기하학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리고 기하학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우리 주변에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것들이다.

가령, 점이란 무엇인가? 가장 단순한 도형으로서 점은 “위치만 있고 크기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이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표시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관념 속에만 있다. 우리가 종이나 칠판에 찍는 점은 모두 그러한 가상(=이데아)의 유사물이고 복사물일 뿐이다. 선이란 무엇인가? “한 점이 연속적으로 움직여 이루어진 자취”가 선인바, 그것은 “길이와 위치는 있으나 넓이와 두께는 없”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런 선을 우리가 도대체 어디에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현실에서 그릴 수 있는 것은 고작 이데아적 선의 (넓이와 두께를 갖는) 유사물, 복사물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모든 도형이 본질상 가상적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이데아를 본질로서, 실재로서 전제할 때, 현실은 그 복사물이고, 복사물의 복사물이다. 그리고, 가장 어리석은 일은 이러한 복사물 내지는 복사물의 복사물을 진본(=오리지널)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동굴의 우화’는 바로 그러한 착각에 대한 우화이다.

 

 

 



진정한 어떤 것이, 현실 너머에 있다는 관념. 진정한 삶은 지상의 삶 이후에 온다는 관념. 그것이 바로 형이상학(=메타피지카)적 사유의 요체인바, 모든 것은 메타(meta), 즉 이것 ‘너머에’ 있고, 이것 ‘다음에’ 있다. “이게 다가 아니야!” 그것이 이데아 철학의 구호이다. 하지만, 다시 반복하자면, 아줌마 철학은 “이게 다예요!”라고 말하는 철학이다(그것이 여전히 철학이라면). 어째서 이게 다인가? ‘메타’라는 건 가상이고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즉, ‘메타’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라캉 버전으로는 “메타언어란 없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필요하지도 않다. 이미 현실은 그 자체만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메타란 것은 (모자라는) 현실에다가 무엇을 덧씌우는 것이 아니라, 고르지 않지만 충만한 현실을 대패로 깎아내서 판판하게(그래서 모자라게) 만드는 것이다. 곱슬머리를 다리미로 펴듯이.

 

 

 



칸트의 ‘보편 철학’과 니체의 ‘가치 철학’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칸트적 보편성은 차이를 지우고 개별성을 깎아냄으로써 얻어진다. 그에겐 남성과 여성이 철학적 주체로서 아무런 차이를 갖지 않는다. 실상 시계에 맞춘 듯이 똑같이 반복되던 그의 하루하루가 아무런 차이를 갖지 않는 ‘보편성’이었다. 하지만, 니체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세상엔 고급하고 고귀한 존재들이 있는 반면에 저급하고 저속한 존재들이 있다고. 이 ‘적대적’ 차이는 결코 극복되거나 지양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성이란 없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일 따름이다. 존재하는 건 고르지 않은 차이들(=시점들)이고, 각각에 충만한 현실뿐이다.

니체 철학의 핵심은 철학에 ‘의미(Sens)’와 ‘가치’를 도입한 데 있다고 들뢰즈가 규정할 때, ‘도입’이란 말은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그것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가져온다는 의미가 아니라, (보편)철학이 삶에서 깎아낸 의미와 가치를 다시 회복시킨다는 의미일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시점의 변경 혹은 도약이 있다. 혹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다. 가령, 현대 물리학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칸트 대 니체'는 '뉴턴 대 아인슈타인'이다. 즉 철학에 의미와 가치를 도입한다는 것은 뉴턴의 절대적 시/공간 대신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적 시공간(=크로노토프)을 도입하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유클리드 기하학적 공간에 곡률을 도입함으로써 유클리드적 공간을 상대화함과 동시에 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하는 것, 그것에 견줄 수 있는 것이 니체 철학이 칸트 철학에 대해서 수행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때도 ‘도입’이란 것은 어떤 편의성 때문에 직선으로 간주(=계산)되었던 세상의 곡률이 회복되는 것이지, 전혀 새로운 무엇인가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적어도 상대성 이론이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면).

요컨대, 현실은 이미 의미-담지적이며, 세상은 이미 곡률-의존적이다(유클리드적-평면적 세계란 보편성의 세계가 아니라, 곡률=0인 특수성의 세계이다). 그러한 사정에 대해서 우리가 의미를 도입하고, 곡률을 도입하는 거라고 말하는 것은 편의상의 이유에서일 뿐이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미 그 자체로 전부인 현실이란 무엇인가?

“모든 생명체가 자연이 갖고 있는 유전자 모두를 성공한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기 때문에 성공적인 유전자를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장차 조상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 조상이 된다는 것은 살아남아 자손을 남긴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생물들이 훌륭하게 설계된 기계를 만드는 유전자를 물려받는 경향이 있는 이유이다. 그것은 바로 새는 왜 잘 나는가, 물고기는 왜 헤엄을 잘 치는가, 원숭이는 왜 나무를 잘 타는가, 바이러스는 왜 잘 번식하는가 하는 이유이다. 그것이 바로 왜 우리가 삶을 사랑하고 섹스를 좋아하며 아이를 사랑하는가 하는 이유이다... 이 세상은 장차 조상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생명체들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다위니즘(Darwinism)이다.”(R. 도킨스, <에덴 밖의 강>)

 

 



 

반복하자면, 우리는 “Eat, Survive, Reproduce”(먹고 살아남아서 자손을 퍼뜨리는 일) 외에는 따로 일이 없는 존재들이다(우리는 교량일 뿐이다). 그 ESR이 우리의 존재근거이자 원리이다. 인간이 ‘의미의 질병’을 앓는 동물인 것은, 그러한 ESR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에서는 이걸 우리의 대뇌가 급속하게/불완전하게 진화한 결과로 본다(보다 근본적인 건 언어 때문이다. 언어는 ‘의미의 질병’을 낳는 산파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그건 상당히 덩치가 큰 문제이기 때문에).

니체의 표현대로, 우리의 위장을 닮은 대뇌가 해야 할 일은 위장과 마찬가지로 ‘소화작용’일 뿐이며, 그러한 작용으로써 우리를 생존하게 하고 기운 나게 하는 것뿐이지만, 이 대뇌는 언제부턴가 자신이 소화해낼 수 없는 물음을 던지게 되었는바, 그것은 “What’s it all about?”(이게 다 무슨 수작일까? 혹은, 이게 다 무슨 의미일까?)이다. 그것은 형이상학에의 물음이다.

알다시피 형이상학의 표준적인 물음은 “What is it?”, “그것은 무엇인가?”이다(WIT라고 부르자). 그 물음은 ‘무엇을 넘어선 무엇’에 대한 물음이다. 이것은 달리 목구멍에 걸리는 물음(=뼈다귀)인바, 이 물음을 떠안게 되면서부터, 혹은 이 물음(=뼈다귀) 자체로부터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병든 인간’이다. 즉 그 물음으로부터 인간은 쇠약해지기 시작했다(인간은 ‘무엇들의 세계’뿐만 아니라 ‘무엇을 넘어선 무엇들의 세계’에 살게 된 것. 즉 그는 양다리를 걸치기 시작한 것이다. “삶은 다른 여자에게 있다!”).



생각건대, 모두가 ESR에 몰두할 때, 어느 날 문득 이 물음을 처음으로 던진 인간은 위트 있는 인간이었음에 틀림없지만 동시에 병적인 인간이었다. 문제는 이 WIT가 상당한 전염성을 갖고 있다는 것(역시 언어 때문일 것이다). 마치 일본의 ‘이모 원숭이’가 모래 섞인 모이를 바닷물에 던져서 모이만을 골라내는 방법을 ‘발견’한 이후에 이것이 원숭이 사회에 ‘문화’로 전파되었던 것처럼. 한 ‘위트 있는 이모’가 발견했을 이 물음은 인간의 문화를 병든 문화, 병적인 문화로 변모시켰다(종교사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역사이면서 동시에 병리학사 아닌가? 모든 종교의 전제는 삶=질병이라는 것이니까. 그래서 치료가 필요하고, 구원이 필요하다는).

 

 

 



그리하여 ‘병든 인간’은 ‘병든 인간들’이 되었고, 언젠가부터 인간 자체가 돼 버렸고, 인간 자체의 존재방식이 돼 버렸다. 해서, 원래의 병들지 않은 인간, 위트에 물들지 않은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에 붙여진 이름이 초인(=위버멘쉬)이라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인간은 인간을 극복함으로써만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호모 로쿠엔스가 극복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그건 오직 언어를 통해서일 것이다!), 이젠. 초인(=위버멘쉬)에 대한 구구한 설들이 있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의 초인은 병들지 않은 인간, 건강한 인간, 그래서 ‘현재의 이 삶’을, ‘이 모양’을 긍정하는 인간이다. 즉 그에게 다른 삶은 없다(“삶은 다른 곳에 없다.”). 모든 남자는 ‘이 남자’이고, 모든 여자는 ‘이 여자’이다(해서 “세상에 옛 애인이란 없어요!”).

헤겔의 말을 비틀면, 초인, 그는 “현실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이며, 긍정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다”라고 말하는 자이다. 그렇다면, 현실에 대한 아무런 부정도, 비판도 않는 니체는 보수적인가? 결코 아니다. 역시 헤겔의 예를 따라서, 니체 우파가 “현실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이라고 고집한다면(이들의 구호는 “이대로!”이다), 니체 좌파는 “긍정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즉, 긍정적이지 않은 것은 현실이 아니며, 현실은 긍정적인 것일 때 비로소 ‘현실’이다)이라고 주장한다. 니체는 현실에 맞서는 어떠한 가상(illusion)도 거부하는바, 진정한 빛은 현실을 밝히는 빛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발하는 빛이다.

요컨대, 인간과 초인, 혹은 병들고 나약한 인간과 씩씩하고 건강한 인간이 있다. 전자가 중언부언하면서 수사적으로 말한다면, 후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동어반복적으로 말한다. “나는 나야!”라고. 먹는 건 먹는 거고, 싸는 건 싸는 거고, 싸지르는 건 싸지르는 거라고.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자들은 부득이 위트를 섞어서 말한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우리 사는 날들이 전부는 아닐 거라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당신은 어느 쪽인가, ESR의 편인가, WIT의 편인가?(혹은 생각 없는 편인가, 생각만 많은 편인가?)



두서없는 말이 많았는데, 요점은 니체 철학의 의의이며 니체를 읽을 필요성이다. 니체를 읽는 재미는 정신의 스트립 쇼를 보는 재미이다. 그는 고상한 체하는 우리의 정신을 발가벗긴다. 그리고 말한다. “이거예요, 이게 다예요!” 그런 점에서 니체는 유머러스하다고 말하고 싶다(이때의 유머는 형이상학의 ‘위트’와 대조되는 것이다). 이 유머는 니힐리즘의 유머이다. 니힐리즘에서 니힐(nihil), 즉 무(無)가 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더는 없는 것’이다. 어떠한 가치나 권위도 니힐리즘은 부정하는바, 그것은 그러한 가치/권위가 부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존재 혹은 사실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더불어,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그러니까 어떤 존재가 고귀해지는 것이 아니라(고귀한 의미를 부여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고귀한 존재가 있는 것이다. 어떤 존재가 저속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속한 존재가 있는 것이다. 그건 당신이 머리를 싸맬 일이 아닌 것. 그냥, 멍게가 있고 해삼이 있듯이(멍게적인 해삼과 해삼적인 멍게가 있는 게 아니라), 쏘가리가 있고 왜가리가 있듯이(거기에는 물론 매운탕도 있다), 제법 있는 것들이 있고, 또 없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찬 것들이 있고, 빈 것들이 있는 것이다(“빨간 우산, 노란 우산, 찢어진 우산…”).

중요한 건, 그걸 당신이 긍정하느냐 마느냐이다(기독교 버전으로는, 보기에 좋으냐 싫으냐). 긍정? 그건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정도의 긍정을 말한다(다시 태어나도 이 남자/이 여자를?!). 그러니까 그럭저럭 보기에 괜찮은 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나다!”라는 동어반복에 이르는 여정(“높다란 학교길”)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닌 것이다(그런 생각만 하면 나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어쨌든 그런 확정/판결(“나는 나다!”)을 통해서, 우리는 제 자리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간다. 인간이란 가면을 벗어 던지고, 혹은 양의 탈을 벗어 던지고, 늑대에서부터 성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같은 놈’이란 딱지를 떼고서 정말로 무엇임을 확증하게 되는 것이다(그레고르 잠자처럼 말이다). 나-말미잘, 나-촌닭, 나-너구리를 거쳐서, 나-거머리, 나-하이에나, 나-청소부, 나-나폴레옹, 나-아저씨, 나-아줌마, 나-세컨드, 나-어리버리에 이르기까지. 왜 동물성뿐이겠는가? 나-콩알, 나-잡초, 나-호박, 나-해바라기, 나-물망초, 나-도깨비풀, 나-옥수수, 나-고목나무, 나-가여운 풀벌레 등등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이들의 쟁투이고 합창이다(“우산 셋이 나란히, 티격태격 걸어갑니다”). 그런 세상에 대한 ‘인식’을 나는 예전에 몇 편의 시들로 옮긴 적이 있다. '늙어가는 느릅나무들'은 그 중 하나이다.

 

 

 



느릅나무는 다형질적이다, 다형질적 조합이다.
여럿이 나란히 도열한 느릅나무들, 은
제각각 나이를 먹는다, 나눠먹지 않는다. 어릴 적
느릅나무는 무얼 모르는 느릅나무, 물정에
눈을 부릅뜨면서 느릅나무 뿌리가 조금씩 굵어지면서
느릅나무는 다혈질적이다, 다혈질적 조합이다.
여럿이 나란히 도열한 느릅나무들, 은
제각각 느릅나무를 꿈꾼다, 꿈으로 무장한다.
극좌와 극우의 곁가지들을 모두 가지치기한
중도적인 느릅나무, 중도좌파적인, 중도우파적인
느릅나무, 옆에 다소곳이 신파적인 느릅나무,
신좌파적인, 신우파적인 느릅나무, 들
저마다 한 그루의 느릅나무 이상을 꿈꾼다.
느릅나무의 극복을 꿈꾼다. 꿈꾸며
아, 이 겸손한 느릅나무들! 물길을 찾고
햇빛을 쬐고 탄산가스를 마시며 부지런히
동화작용한다, 작용하며 늙어간다. 어릴 적
여럿이 나란히 뿌리내린 그 자리들에서
제각각 비틀리고 말라가며 쪼그라진다.
곧 느릅나무 조합에서 제명된다.

느릅나무는 다형질적이다, 다형질적 조합이다.
여럿이 나란히 제각각 살아남는 느릅나무들-

다시 반복하자면, “모든 생명체가 자연이 갖고 있는 유전자 모두를 성공한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기 때문에 성공적인 유전자를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어쩔 건가요?” 우리가 목적이 아니라 교량이고, 과정이며 몰락이라는데(도킨스 버전으로는 ‘유전자 운반체’), 어쩔 건가요? “어쩌긴요, 더없이 유머러스한 일인 걸요! 어쩜 그럴 수가!..”

06.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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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그 2006-06-08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시는 (몇 편 안 읽긴 했지만) 항상 어렵군요! 어쨌든 잘 읽고 갑니다.^^

로쟈 2006-06-08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계인'들의 시를 안 읽어보셨군요. 이 정도는 어려운 시의 축에도 못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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