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눈에 띄는 책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주인데, 그래도 분야별로 한권씩은 꼽아볼 수 있다. 경제쪽이라면 리오 휴버먼의 <휴버먼의 자본론>(어바웃어북, 2011)이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2000)란 베스트셀러의 저자 휴버먼이다. <사회주의에 관한 진실>이란 원제가 <자본론>으로 탈바꿈한 게 얼핏 이상해 보이지만 목차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자본주의가 어째서 지속가능하지 못한가에 대한 설명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명쾌한 구분의 출처가 휴버먼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유익하다.    

경향신문(11. 06. 18) 먼저 이해한 후 싫어하라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미국의 진보 잡지 ‘먼슬리 리뷰’를 창간한 사회주의자 리오 휴버먼(1903~68·사진)은 이 책을 출간하기 전에 제목을 ‘사회주의의 ABC’라고 지으려고 생각했다고 한다. 거창하고 어려운 담론이 아니라 쉬운 말과 사례로 풀어낸 ‘자본주의의 사회주의에 관한 입문서’란 뜻이었다. 



책은 [The Truth about Socialism](사회주의에 관한 진실)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악마의 도구’로 여겨지던 사회주의의 참뜻을 알리겠다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다. 책은 첫장 ‘계급’으로 시작해 잉여가치-축적-독점-분배-공황-전쟁-국가-효율-합리성-몽상가(오언, 푸리에 등)-두 사람(마르크스와 엥겔스)-계획-자유-권력을 거쳐 ‘인간’을 다룬 마지막 장으로 이어진다. 제목 흐름만 봐도 책의 구성과 내용, 지향을 짐작할 수 있다. 

책의 큰 줄기는 자본주의 비판이다. 노동자에게는 악순환일 수밖에 없는 자본가의 생산수단 소유와 더 많은 이윤 추구, 더 많은 자본축적의 과정을 여러 문헌과 증언으로 분석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해인 1929년 일반 대중은 매우 가난했다. 브루킹스 연구소가 그해 펴낸 <미국의 소비역량> 중 ‘1929년 미국의 소득분포’ 표를 보면, 미국 전체 가구의 42%인 1200만 가구가 국민소득의 13%를 차지했다. 전체 가구의 0.1%인 상위 3만6000가구의 소득도 13%였다.

휴버먼은 기계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노동자의 참상을 전하면서 “노동자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가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자본가에게 노동자는 비용을 구성하는 한 항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60년 전 분석이지만, 쌍용자동차, 삼성반도체, 4대강 사업장에서 수십명이 죽어 나가도 개의치 않는 한국 자본·권력과 노동 상황에 대입해 읽어도 좋을 정도로 자본의 속성을 적확히 진단하고 있다

책의 또 다른 큰 줄기는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다. 휴버먼은 로버트 오언 등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혹한 환경에 저항했던 이상적 사회주의자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가 이론의 기초로 삼는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다. 자본과 노동의 ‘조화’는 있을 수 없고, 두 계급 간 갈등이 필연적이라고 본 휴버먼은 “특혜와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것이 자본계급의 주된 관심사다. 반면 노동계급의 관심사는 비하와 수모에 저항하고, 자신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개선하는 일”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제시한다.

휴버먼은 “사회주의는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 만큼’ 받는 것이고, 공산주의는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받는다”고 둘을 구분하면서 공산주의적 분배 원리는 궁극적인 목표로, 사회주의적 분배 원리는 즉각 시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것으로 봤다. 공산주의 전 단계로 토지·원료·공장·기계 같은 생산수단을 우선 공적 재산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휴버먼은 책의 여러 곳에서 자유와 수정헌법 같은 미국의 가치를 역설하는데, ‘노동 계급의 생산수단 소유’ 주장도 미국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증기기관이 가난한 이들을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파괴하는 존재로 비쳐진다면, 그들로서는 그것을 장악해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것 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혁명적 제안이 담긴 토머스 스키드모어의 <재산에 관한 인간의 제 권리>는 마르크스가 11살 때 나온 것이다.

휴버먼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이윤 동기가 음울한 종말을 맞을 운명이라고 진단하고, 사회주의 시스템의 목도를 예견했다. 책 출간 이후 60년 동안 벌어진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신자유주의의 지배를 감안하면, 그의 예견은 성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백년 전 ‘왕권신수설’이란 개념에 대한 도전이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을 상기하면, 그의 예견은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전 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파탄이 목도되고 운위되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 모습이 그 진행형을 증거하는 것일 수 있다.(김종목 기자) 

11. 06. 18. 

 

P.S. '자본주의의 종말'을 다룬 책으로 엘마 알트파터의 <자본주의의 종말>(동녘, 2007)과 함께 김수행 교수의 <세계대공황>(돌베개, 2011)이 떠오른다. '자본주의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사이'가 부제라서다. 안토니와 네그리의 <굿바이 미스터 사회주의>(그린비, 2009)까지 나란히 읽어봄직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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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 2011-06-21 06:27   좋아요 0 | URL
The truth about socialism는 미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책인데 번역이 나왔군요.(이 블러그에서 보고 그런 책이 있는 걸 처음 알았읍니다.) Man's Worldly Goods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2000)라는 이름으로 나온 듯 합니다. 1936년 초판인데 아직까지 미국에서 출판이 되고 있으니 거의 명저나 고전에 반열에 속한 책이라 할 수 있읍니다. 경제사 관련 있으신 분은 읽어보기를 권하고요. 70년-80년대에는 이 책 영문 해적판을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요즘 한국의 번역서를 보면 정말로 엄청난 양의 책이 나오는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번역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번역자의 사정들이 별도 좋지 않아서 안타깝네요.

로쟈 2011-06-21 07:36   좋아요 0 | URL
네 국내에서도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꽤 지명도가 있는 책입니다. 번역서가 쏟아진다고 해도, 여전히 인문번역서로 먹고사는 건 굉장히 어렵고 드문 게 이곳 현실입니다. 독자층이 점점 엷어지고 있어서요. 반전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1-06-21 14:24   좋아요 0 | URL
겨우내 아내와 아내의 전공인 철학 영문서 번역에 매달렸습니다. 저는 영어가 짧아서 교정을 보았는데 며칠전 출간이 되었구요.
고생을 많이 했는데 번역료 한 푼 못받는 현실이 서글프네요. 같은 저자의 책을 같은 출판사에서 두번째로 번역하는 건데 3년 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네요. 지인들은 책을 구입해 준다는데 구입비가 역자에게 오는것도 아닌데 말이죠...
영어 공부한 걸로 자위해야 할테죠?

로쟈 2011-06-21 15:03   좋아요 0 | URL
인세로 계약을 하신 건가요? 번역료를 못받으신다고 하시는 게 이해가 안되는데요. 인세라고 해봐야 아주 소액일 테지만요...

파고세운닥나무 2011-06-21 19:21   좋아요 0 | URL
출판사 말은 저자가 로열티를 많이 부른탓에 그 금액을 충당하느라 번역료는 따로 없다고 한답니다...

로쟈 2011-06-21 20:21   좋아요 0 | URL
그건 말이 안되는 조건인데요. 그런 걸 알고도 맡으셨다면...

파고세운닥나무 2011-06-21 20:54   좋아요 0 | URL
5년간 미국을 다녀오면 인문학 출판계의 이런 현실이 바뀌어 있을까요? 그러길만을 바라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