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한 장 넘기게 됐지만 하늘빛은 어제와 달라진 게 없다. 오늘도 비가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원고를 쓸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어서 점심시간까지 잠시 단순작업을 하기로 했다.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르는 작업이다(대부분은 '이달에 읽고 싶었던 책'이 되고 말지만). 여하튼, 7월이고 장마가 끝나면 뙤약볕이 시작되리라. 좀 '시원한 책'들로 골라봐야겠다. 이열치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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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
정과리 교수의 추천작은 조너선 프랜즌의 <자유>(은행나무, 2011)다. 타임지 표지에도 등장한 예외적인 작가. "이 책의 선정은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작가의 전작인 <인생수정>(2001)이 큰 반향 및 논란을 일으키며,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데다가, 이 소설의 출간이 예고되었을 때부터 비상한 관심을 받았고, 가제본 상태의 책을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를 위해 구입해서 화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작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세인의 예측에 부응하여 폭발적인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라고 배경 설명이지만, 그렇다고 한국 독자의 눈길까지 사로잡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래도 여하튼 '미국의 위대한 소설가'라고 하니 견문을 넓혀봄직하다.
이에 맞서는 한국소설은 김애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창비, 2011)이다. 이미 알라딘에서는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으므로 군말은 필요하지 않겠다. 거기에 김이설의 <환영>(자음과모음, 2011)을 얹어놓아도 역시나 토를 달 사람은 없으리라. 두 작가도 '한국의 위대한 소설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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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전우용의 <현대인의 탄생>(이순, 2011)이다. "먼저 이 책은 참으로 재미있다는 것을 밝혀야겠다. 1945년 해방에서 1950년 한국전쟁 시기 한국인의 질병과 위생, 그리고 치료 과정을 서술한 이 책에서는 한심하고도 불쌍한 한국의 의료 현실이 구구절절 제시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당시 모습을 다소 여유 있게 즐기며 읽을 수 있다."는 평이다. 병실에 누워서 읽기 딱 좋은 책이지 않을까도 싶다.
한국전쟁기 얘기가 나온 김에 다소 묵직하지만 박명림 교수의 <역사와 지식과 사회>(나남, 2011)도 손에 들어볼 수 있겠다. 한국전쟁 연구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건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숲, 2011)다. 천병희 선생의 원전 번역으로 이번에 나온 책. 같은 내전이라는 점에서 한국전쟁과 비교되기도 한다니 그런 관점에서도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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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철학책은 피터 게이브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어크로스, 2011)다. 굳이 철학적 이유까지 알아야 할까 싶지만(진화심리학적 이유라면 몰라도), "철학자들은 조심해서 상대해야 할 사람들이다. 질문만 던져 놓고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저자는 나름의 철학적 답을 제시한다.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엉뚱하게 들리는 답이긴 하지만, 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저자는 친절한 철학자이다."는 게 추천자의 촌평이다. 내겐 좀 다른 이유를 묻는 책이 궁금한데, 매튜 스튜어트의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교양인, 2011) 같은 부류다. 아예 스티븐 내들러의 평전 <스피노자>(텍스트, 2011)에 빠져볼 수도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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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치/사회
정치/사회분야의 책으로 강정인 교수가 고른 건 임동우의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효형출판, 2011)이다. 도시설계를 전공한 건축학도가 하나의 도시 공간으로서 평양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는 책. 혹 '콘크리트 유토피아'란 점에서는 남북한이 차이가 없는 것일까.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자음과모음, 2011)도 같이 읽어봄직하다. 이 책을 상반기의 주목할 만한 인문사회과학서로 꼽으며 문화비평가 이택광 교수는 "아파트가 한국 사회를, 삶과 인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분석한 역작"이라고 평했다. 이택광 교수의 칼럼들을 모은 <이것이 문화비평이다>(자음과모음, 2011)도 최근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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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추천한 책도 눈에 익다. 대니 로드릭의 <자본주의 새판짜기>(21세기북스, 2011). "1990년대 이후 빠르게 진행되어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세계화의 모순을 지적한 책"으로 저자는 "세계화도 각국의 다른 여건들을 감안해야 하며, 이를 무시한 천편일률적인 세계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아직 읽지 못했지만 그의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북돋음, 2011)와 같이 책상맡에 놓아두고 있다. 라즈 파텔의 <경제학의 배신>(북돋음, 2011)과 함께 일독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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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과학
장경애 동아사이언스 실장의 추천서는 정준호의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후마니타스, 2011)이다. 이미 알라딘에서는 마태우스님이 격찬을 하며 소개한 책. 기생충을 제목에 단 책들이 아주 드문데, 이미 최강자의 위치에 올랐다. 칼 짐머의 <기생충 제국>(궁리, 2004)이 뒤를 따르고 있는 형국이다. 마태우스님의 <기생충의 변명>(단국대출판부, 2002)을 넘어서는 역작을 기대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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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의 책으론 '기생충' 외에 DNA'도 읽어봄 직하다. 인 그래도 제임스 왓슨과 함께 이중나선의 발견자로 유명한 프랜시스 크릭의 평전이 얼마전에 출간됐다. 매트 리들리가 쓴 <프랜시스 크릭>(을유문화사, 2011). 크릭의 책은 몇권 더 출간된 게 있었는데, <인간과 분자>(궁리, 2010) 정도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러 권 나와 있는 왓슨의 책 가운데서는 <DNA를 향한 열정>(사이언스북스, 2003)을 <프랜시스 크릭>과 같이 읽어봄직하다. 언젠가 헌책방에서 반값에 산 책인데, 어디에 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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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책은 이영미의 <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두리미디어, 2011). 방송가의 세시봉 열풍이 출판쪽으로도 번져온 셈인데, 대중문화연구자가 쓴 버전에서는 "이 열풍 현상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트로트에서 포크음악, 그리고 댄스음악과 록에 이르기까지 시대성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정리하였다." 세시봉 멤버인 조영남의 <셰시봉 시대>(민음인, 2011), 그리고 김종철의 <세시봉 이야기>(21세기북스, 2011)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온 책들이다. 30년 후에 서태지는 누구와 함께 '난 알아요'를 부를 것인지 궁금하다(가능하긴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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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책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술책도 꼽자면 손철주의 <옛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현암사, 2011)가 먼저 손에 잡힌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미술동네 글쟁이이지만, 나는 저자의 책을 처음 접하고 글솜씨가 놀라워 전작 두 권,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와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도 같이 구입했다. 따로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구수하고 맛깔나는 미술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으니 한여름의 즐거움 한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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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교양
탁석산 철학자가 추천한 교양서는 <주석달린 월든>(현대문학, 2011)이다. '주석 달린'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책. 주석자의 말을 재인용하면 “1854년에 첫선을 보인 <월든> 출간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소로의 원문을 다시 편집하고 주석을 붙였다. 이 책의 주된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150년 전에 출간된 <월든>의 원문을 연구와 해설이라는 관점에서 재조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뢰할 수 있는 원문에 최대한 포괄적인 주석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훨씬 깊이 있는 <월든>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호사를 부려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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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실용
손수호 국민일보 논설위원이 고른 책은 임형남/노은주의 <나무처럼 자라는 집>(교보문고, 2011)이다. "저자 부부는 ‘건축이란 근본적으로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생각, 건축가는 사람과 땅을 연결하는 매개자라는 생각을 아름다운 수채화와 함께 담담한 에세이로 풀어냈다"고 한다. 집 얘기라고 하니까 구본준/이현욱의 <두 남자의 집짓기>(마티, 2011)도 떠오른다. 3억으로 집짓기 프로젝트를 진행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올해 나온 책이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읽어본 사람은 다 읽어본 책. 일단은 3억을 마련해야겠다. 이런 집짓기라도 필요한 우리네 속사정에 대해선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의 연재를 묶은 <어디 사세요?>(사계절, 2010)를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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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성호사설
내 맘대로 고른 주제는 '성호사설'이다.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 분류해도 될 테지만, 읽어보려는 게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한길사, 1999)이 아니라 강명관 교수의 <성호사설> 읽기, <성호, 세상을 논하다>(자음과모음, 2011)이기에 맛보기라고 해야겠다. <성호사설> 입문서라고 해야 할까. 새삼 눈길이 간 것은 저자가 <성호사설>을 읽을수록 "나는 성호가 살던 조선후기 사회가 아니라, 지금 세상을 다시 곱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해놓아서이다. 그래서 좋은 기분이냐고? 천만에! "오늘 나는 옛글을 읽으며 갑갑하고 슬프고 화가 치민다." 양반과 상것은 사라졌지만, 양반과 상것 사이에 놓여 있던 관계는 지속되고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고전의 이런 현재성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읽어봐야 한다...
11.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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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7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아주 쉽게 골랐다. 카뮈의 <이방인>이다. 김화영본이 평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에 새로운 번역본 두 종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열린책들과 문학동네 세계문학판으로도 출간됐기 때문이다. 문학동네판은 <이인>이란 새로운 제목을 달고 있다. 여하튼 그래서 다시금 '이방인'과 조우하고 싶었다.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부조리한 생의 감각 또한 여전한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