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철학을 같이 다룬 책은 즐겨 읽는 아이템인데,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 양운덕의 <문학과 철학의 향연>(문학과지성사, 2011)이다. 이 분야의 원조라고 할 만한 책은 아마도 박이문의 <문학 속의 철학>(일조각, 1975)일텐데, 이 역시 얼마전에 개정판이 나왔다. 겸사겸사 '문학과 철학'을 주제로 한 책을 몇 권 모아놓는다. 흠,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도 포함될 수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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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가 제임스 조이스 학회에 초대된 적이 있다. 제임스 권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개 철학자가 뭘 할 수 있었을까? 그는 <율리시즈>에서 유독 작가가 'Yes, Yes'를 두 번씩 쓰는 특징을 발견하고, 이 소설에서 'yes, yes'라고 쓰인 구문을 찾기 시작했다. 총 200여 회 나온다고 하는데, 그는 이 사례를 통해 기표와 기의 간에 인과관계는 없으며, 의미는 오직 차이에 의해서만 정해진다고 설명했다. 데리다의 개념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소설과 영화에 철학적 개념이 대입 가능하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철학자 양운덕은 90-2000년대 국내 유행한 정신분석학과 철학의 개념을 문학 작품을 통해 설명한다. 신간 <문학과 철학의 향연>은 이 작업을 정리한 책이다. 하이데거, 푸코, 세르, 베르낭, 지라르, 구스 등 여러 철학자들의 개념을 포의 <도난당한 편지>, 카프카의 <법 앞에서>, 횔더린의 시, 플라톤의 <향연>, 보르헤스의 <자이르>, 라퐁텐 우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통해 다시 읽는다.

이를테면 라캉의 포 읽기는 <도난당한 편지>를 프로이트의 반복강박의 틀로 재해석하면서 각 장면에서 기표들의 상징질서에 사로잡힌 주체들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잃어버린 편지는 라캉의 해석이나 정신분석을 통해서 제자리를 찾고 그 숨겨진 의미를 온전하게 드러냅니다. 지연된 편지, 지연된 의미는 바로 기표가 걸어가는 길이죠. 주체들은 그것이 우회한다고 생각하지만, 기표는 그렇게 다른 기표들을 가리키면서만 자기 자리를 마련하죠.' (76페이지, 1장 주체들을 길들이는 기표, 뒤팽도 벗어나지 못한 기표의 질서 중에서)

데리다의 카프카 읽기 역시 마찬가지. 저자는 해체의 틀로 <법 앞에서>를 독해하면서 텍스트의 접근 불가능성, 접근할 수 없는 것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소개한다. 4장에서는 푸코의 '윤리적 주체의 자기 형성' 틀로 플라톤의 <향연>을 읽는다. 고전학자 베르낭, 비평가 르네 지라르와 구스의 경우를 참조해 오이디푸스를 읽는 7장 역시 흥미롭다.

정신분석학과 철학을 문학과 겹쳐 읽는 것은 저자의 자의적 방식이 아니다.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은 거의 모두 근현대 지식인들이 실제 자신의 사유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문학작품을 예로 든 산문과 논문의 내용을 대중 언어로 쉽게 설명한 것이다. 지식인의 책무는 고도의 지적인 활동과 함께 그 지적인 결과물을 사회에 환원하는데 있을 터다. 철학자 양운덕의 미덕은 그것이다. 지식인 사회의 한 풍경을 대중의 언어로 소개하는 것. 이 책이 소개되야 하는 이유다.(주간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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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철학의 향연
양운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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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의 철학- 개정판
박이문 지음 / 일조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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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철학- 문화마당 5
김영민, 이왕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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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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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라 아직 배송을 받지는 못했는데 <뇌를 훔친 소설가>(예담, 2011)와 같이 주문한 책은 <이문구의 문인기행>(에르디아, 2011)이다. 21명의 문인에 대한 인물평을 담고 있는 책. 과거엔 드물지 않은 컨셉의 책이지만 요즘은 희귀해진 듯하다. 게다가 이문구 선생의 책이니 주저할 이유도 없었다. 노래로 치면 '70-80'쯤 될까. 그게 내 취향인 거 같기도 하다...

경향신문(11. 08. 15) 소설가 이문구의 붓끝으로 다시 바라본 당대 문인들

소설가 이문구(1941~2003·사진)는 1970~1980년대 문단이 순수와 참여로 갈라져 있던 시절, 파벌과 경향이 아니라 인간관계로 진영을 넘나든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스승 김동리가 창간한 ‘월간문학’ 편집장으로 일했고, 나중에는 참여 작가들이 출자한 실천문학사 사장을 지냈다. 타계 직전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으로 문단을 대표하는 자리에 올랐던 그의 장례식은 문인협회, 작가회의 등 3개 단체가 공동으로 치렀다. 



그런 그가 동료작가들에 대해 쓴 글을 모은 책 <이문구의 문인기행>(에르디아)이 출간됐다. 인물평, 단행본의 발문, 문예지에 연재한 작가탐방, 실명소설·추도사 등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김동리·서정주·고은·신경림·한승원·이호철·황석영·박상륭·김주영·윤흥길 등 중앙문단의 유명 문인뿐 아니라 염재만·박용래·임강빈·강순식 등 지역문인까지 21명의 인물평이 실려있다. 고인의 조카뻘인 시인 이흔복씨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원고를 한데 모아서 엮은 것이다.

“명천(이문구의 호)은 일찍부터 문단에서 행장기의 독보로 꼽혀왔다. 그래서 ‘명천 붓끝에 한 번 놀림을 당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문인이 아니다’라는 농이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을 섭렵했다”는 문학평론가 이경철씨의 말처럼 이문구의 걸쭉한 입담과 풍자로 펄펄 살아있는 문체에 걸려든 동료 문인들은 진솔하고 의외인 면모를 드러낸다.  

김동리는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이다. 그의 주변에는 문객과 식객이 들끓었는데, 식객들은 술과 밥만 축낸 것이 아니라 선생의 용돈과 원고료까지 나눠갔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젊은 시절 끼니를 거를 만큼 가난했던 김동리는 매일 계란 프라이를 먹었고, 댁으로 찾아온 제자들에게도 계란 프라이부터 두 개 이상 먹인 다음 술잔을 건넸다. 김지하가 담시 ‘오적’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자 당시 문협 이사장이던 김동리가 일요일에 사무실로 나와 후배들과 대책을 논의하던 모습도 담겨있다. 



신경림의 ‘터프’한 면모도 볼 수 있다. 6공(노태우 정부) 시절의 어느 날, 민요연구회 후배들과 산에 갔다가 술을 한잔 걸친 시인은 젊은 후배들이 그냥 안내려오고 바위에서 뛰어내리자 자신도 노인 취급을 받기 싫어 뛰어내리다가 갈비뼈 두 대가 부서진다. 후배 이문구가 “업혀 내려오셨냐”고 걱정스레 묻자, “뭔 소리여. 내 발로 걸어 내려왔어. 아픈 줄도 몰랐어. 취했는데 뭘 알아”라고 대꾸한다. ‘체수에 비하여 화통하기가 무릉도인’이었다고 저자는 적고 있다.

고은의 삶은 ‘5세 신동의 50년’에 요약돼 있다. 서당에 다니면서 신동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부터 군산북중에 다닐 때 신작로에서 <한하운시초>를 주워 읽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 일, 한국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출가했다가 환속해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과정 등이 상세히 소개된다. 특히 ‘가짜 고은’ 사건이 흥미롭다. 시인으로 유명해지자 전국에서 고은이 나타나 백일장 심사위원장을 맡고, 부인과 애인을 동시에 거느리며, 문청들에게 금품을 갈취하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평생지기로 소주잔을 기울였던 박상륭과의 우정, ‘믿어도 좋은 사내’라고 부른 황석영과의 인연, 안동엽연초생산조합 김주사였던 김주영의 등단시절 등 고인의 입에서 듣는 생존작가들의 뒷이야기가 흥미롭다.(한윤정 기자)  

11. 08. 15.  

 

P.S. 책은 이문구 전집의 하나로 출간된 <이문구의 문학동네 사람들>(랜덤하우스코리아, 2004)를 다시 펴내면서 3-4편의 글을 더 얹은 걸로 보인다. 이를테면 '증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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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15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그야말로 재산이 되겠네요ㅋㅋ 언제 사진인지 모르겠지만 이문구 선생이 쓰고 계신 게 예전에 '워드'라고 불리던 전동타자기 아닌가요?^^

로쟈 2011-08-15 22:58   좋아요 0 | URL
저도 전동타자기가 있었는데, 제건 다른 모델이었습니다. 그나저나 문인들의 뒷담화도 꽤 재미가 있어요. 올드한 취향일까요?^^;

stella.K 2011-08-16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문인기행은 예전에 <문학동네 사람들>을 다시 낸 것인가 봅니다.
이럴 경우 그 사실도 밝히는 게 좋을 것도 같은데 왜 안 밝혔는지 모르겠네요.
물론 그책은 절판되긴 했지만, 모르는 사람은 첨 나온 줄 알겠어요.

로쟈 2011-08-16 23:47   좋아요 0 | URL
네, 확인해보니 다시 펴낸 것이고 세 편쯤 추가됐네요...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도서출판 텍스트에서 펴내는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시리즈의 6차분이 출간됐다. 우리 시대 각 방면의 '20-30대가 쓴 자서전'이다. 오랜만에 이 시리즈에 주목한 기사가 뜨기에 옮겨놓는다. 

서울신문(11. 08. 13) 치열하게 살았는데 화려하진 않네요, 괜찮죠?

요즘 출판계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화두 가운데 하나는 ‘88만원 세대’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 등으로 불리는 20~30대 젊은이들이다. 한때는 ‘신세대’ ‘N세대’ ‘X세대’ 등 찬란한 수식어가 붙었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규정하는 단어조차도 칙칙하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가장 힘이 되는 글은 무엇일까. 위인의 삶은 너무 무겁고, 유명인이 내는 수필 속의 삶은 너무 가볍다.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텍스트 펴냄) 시리즈는 이 시대, 다양한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20~30대가 직접 쓴 자서전이다. 일기라고 하기에는 저자들이 그동안 살아온 삶이 저마다 치열하고, 성공담이라고 하기에는 이들의 삶이 화려하지만은 않다. 2009년 시작된 시리즈의 6차분 3권의 책이 동시에 나왔다



아나키스트인 조약골의 ‘운동권, 셀레브리티’, 김자현 KBS PD의 ‘마트료시카, 모래섬에 왈츠를!’, 출판인 김류미의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다. 지금까지 19권이 발행됐는데, 출판사 측은 “1만 1명까지 책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조약골은 오늘도 투쟁하며 생활 속의 혁명을 실천하는 운동가다. 주거침입죄, 건조물침입죄, 업무방해죄, 공무집행방해죄, 일반도로교통방해죄, 집시법위반죄, 심지어 폭행죄까지, 세상은 그에게 존재 자체가 불법이라고 단죄한다. 남자지만 대안 생리대 강의 등을 하는 ‘피자매연대’ 활동도 한다. 채식을 하고 자전거를 타며 천성산, 이라크, 새만금, 대추리, 용산참사 현장, 두리반 등에서 비폭력 평화활동가로 운동해 왔다.

각 책의 마지막 장은 릴레이 인터뷰로 채워졌는데, 다음 편 시리즈의 저자가 인터뷰어가 된다. 조약골은 ‘NGO에서 일하는 친구가 우리도 인권착취를 많이 당한다고 하더라.’는 질문에 “아직은 현실이 더 야만적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야만적인 상황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라고 답한다.

김자현(32) PD는 노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였다. 학창 시절 대부분을 얌전하고 조용한 모범생으로 지냈으며, 고등학교 때 영화 ‘닥터 지바고’를 우연히 보고 노문학을 전공하기로 한다. 그가 쓴 ‘마트료시카’는 러시아 교환학생 시절 이야기와 PD로 일하며 ‘시청자칼럼 우리 사는 세상’ ‘러브 인 아시아’ ‘박중훈 쇼’ 등을 제작한 경험담이 담겨 있다.

김 PD는 대학 시절 국문과의 노교수가 “볼품없는, 실없는 소리나 지껄이는 인문학은 차남들이나 선택하는 학문이다. 그 어느 집안에서도 집안의 기둥이 될 장남에게는 인문학을 공부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 모인 여러분과 나는 쓸데없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차남’들이다.”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 대학 4년 동안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꼈던 저자는 인문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PD가 됐다. PD가 되어서는 일을 그만두라는 남편과 다투고, 카메라 앞에서 솔직하지 않은 출연자들의 모습에 힘들어한다. 김 PD는 “지금 하는 ‘PD’라는 일 자체는 커다란 틀에서 하나의 인문학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서울 강남에서 태어나 20여년을 내리 강남에서 산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의 저자 김류미(27)씨는 ‘88만원 세대’의 전형이라 할 만한 삶을 살았다. 김씨는 공장 부지의 가건물, 공무원들이 가건물이라며 종종 부수던 집 등에서 살았다. 강남의 아웃사이더로 살았던 저자는 여러 사교육을 받아 ‘다양한 녹색으로 붓질을 해서 하얀 도화지 위에 점박이로 나무를 만들어 내는 경이로운 스킬’을 보여주는 옆자리 친구를 보며 ‘문화자본’을 체감한다.

‘강남거지’가 별명이었던 김씨는 대학 졸업 후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전단 돌리기, 동대문 옷가게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한다. 가장 갖지 못했던 문화자본의 궁극을 ‘글을 쓰는 지적인 노동을 직장생활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 저자는 현재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를 쓴 젊은이들의 삶이 조금은 특별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들은 솔직하게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모여 에너지를 발산하는 하나의 거대한 초록 이야기 숲을 만들어 낸다.(윤창수기자) 

11. 08. 13. 

P.S. '노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로 소개된 김자현 PD는 대학 후배이다. 사실은 이 자서전 집필을 권유한 인연이 있다. 추천사도 덕분에 맡게 됐는데, 이렇게 적었다. 

언제였던가. 1997년 입시 업무를 보조하는 학과 조교였던 내게 유난히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다. 자기소개서에 타르콥스키의 영화를 본 이야기를 적은 여학생. 이듬해 우리는 학과 선후배가 되었고, 종로에서 한 번 영화를 같이 보기도 했다. 한 학기는 강사와 학생으로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암전. 10여 년 만에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송아지 눈을 한 여학생은 활달한 PD가 되어 있었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모스크바에서 여의도까지, 여기 한 젊음이 걸어온 길이 있다. 여전히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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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류미,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
    from 빵가게 재습격의 책꽂이 2011-08-15 15:28 
    오늘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집어들고 온 책은(물론 돈을 지불하고),우리시대 만인보,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다.어떤 경로(?)로저자의 책이 나온다는 것을알고는 있었는데, '우리시대 만인보'일 줄은 몰랐다. 동시에 '은근 리얼' 비슷한 경험을 했을 줄도 몰랐다. 책을 들고 잠시 읽어보다가 내 어린시절과겹치는 경험이 나올 때는 조금 놀랐다. 가다머는한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 항상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확신으로 일관했는데,책장을 넘기며 그가 옳
 
 
빵가게재습격 2011-08-13 18:24   좋아요 0 | URL
처음엔 로쟈님 책이 나온 줄 알았어요.^^; 로쟈님의 만인보는...언제 구경할 수 있을까요?(난감한 질문 죄송!^^;)

로쟈 2011-08-14 11:19   좋아요 0 | URL
잠정 보류되다가 나이가 오버된 상태입니다.^^;
 

몇 년전에 단테의 <신곡>을 읽으며 '인생 반고비'를 음미한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이젠 '내리막길'이고 가속도도 붙지 않을까 싶다. '노년'이 더이상 상상의 나이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신체연령은 더 근접했을 수도 있고). 인구학적 전망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미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이상 노인 인구가 한동안은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것이 분명하다. 이 역시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현실'이 아닐까 싶다. 이에 대한 준비가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고령화사회의 모습을 앞당겨 보여주는 일본에선 '무연사회'란 용어도 등장했다고 하는데, 어떤 얘기인지 기사들을 찾아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11. 08. 01) [한기호의 다독다독]회색 쇼크와 단카이 세대

“전체 인구의 40%가 65세 이상 노인이 된다. 가게, 거리, 자동차 안은 두 종류의 은퇴자 세대로 가득 차게 된다. 젊은 세대는 60~80대 초반일 것이며, 나이 많은 세대는 100세가 다 된 사람들로서 이들의 수는 급격하게 많아진다. 이들은 주말에도 거리를 가득 채우고, 그 숫자는 젊은이의 수를 훨씬 능가할 것이다.”

 

고령화 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망한 테드 C 피시먼의 <회색 쇼크>(반비)가 그리고 있는 2050년의 일본 모습입니다. 여러 통계들이 기준연도로 삼기에 2050년은 인구학사상 가장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네요. 초고령 사회의 일본은 2050년에 100세 이상인 사람만도 100만 명에 이를 것이랍니다.

일본은 높은 이혼율, 핵가족화, 체면, 길어진 수명 등으로 노인 고독이 심각합니다. 혼자 살고 있는 400만 명의 노인은 가정과 사회로부터 극심하게 소외되고 있습니다. 고독사(무연사)한 사람의 시체가 몇 달 동안 방치된 채로 썩어가면서 뿜어내는 독성을 차단하기 위해 시체를 찾는 팀이 가동되고 있기도 합니다. 

노인들의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일본인지라 고령화를 극복하기 위한 거시적 차원의 대책 마련이 없지 않습니다. 미타 마사히로는 <단카이(團塊) 노인>(2004년 출간)에서 “단카이 노인들을 태평양에 갖다버리지 않는 한 2050년에 일본경제는 무조건 파산한다”는 극언까지 했을 정도로 일본 고령화의 핵심에는 단카이 세대가 놓여 있습니다.

단카이 세대는 넓게 보아 패전 후인 1947년부터 1951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로 1085만 명이나 됩니다. 이 세대는 전쟁과 물자부족을 모르고 자란 최초의 세대이자 새로운 기기와 생활환경에서 자란 최초의 세대입니다. 철이 들자 텔레비전이 있었고, 성인이 되자 마이카가 보급되었으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는 컴퓨터가 등장했습니다.

단카이 세대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이긴’, 즉 아들과 며느리였던 젊은 시기에 부모 세대와의 권한 다툼에서 이긴 세대입니다. 고도 성장기에 시골을 떠나 도시로 옮겨 관공서와 기업에 근무하면서 핵가족으로 살았기에 친척이나 이웃과의 교제를 모르고 자랐지요. 하지만 부모가 된 단카이 세대는 승부를 겨룰 상대조차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단카이 세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그리고 집단주의에 물든 일본식 경영의 ‘회사형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혈연과 지연을 대신한 것은 오로지 사(社)연이었습니다. ‘회사’와 ‘일’이라면 만사형통한다는 발상에 빠져들었던 세대입니다.

단카이 세대는 거대한 시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붐이 일어났습니다. 록 뮤직, 모터사이클, 청바지와 티셔츠, 유니크로, 다코짱, 훌라후프, 욘사마 등은 단카이의 구매력과 행동력의 결과물입니다. 그들은 노동력으로서 압도적인 다수였고, 선거의 표밭과 독서시장에서 늘 주류였습니다.

“단카이 세대의 뒤에는 풀 한 포기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시대를 바꿔왔습니다. 이 세대의 첫 주자들이 2007년에 60세 정년을 맞이하기 전인 2004년에 고령자의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정년을 65세까지 끌어올리거나, 계속 고용 제도를 도입하거나, 아예 정년을 폐지해버렸습니다. 비록 촉탁과 파트타임의 형태였지만 계속 일할 수 있었으며, 깎인 임금은 연금으로 벌충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안달인데도 그들은 자신의 앞길만은 잘 닦아놓았습니다.

2012년은 그들이 65세 정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을 겨냥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고독사가 엄청난 사회문제가 됐음에도 미시적이고 개인적 차원의 대응을 촉구하는 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중 최근 국내에 출간된 책 두 권만 살펴보겠습니다. 



인연이 끊긴 무연사회의 삶과 죽음을 다룬 <사람은 홀로 죽는다>(미래의창)의 저자인 종교학자 시마다 히로미는 “무연사회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롭고 수많은 가능성으로 수놓인 사회”라고 말합니다. 홀로 살아가야 하는 인생일지라도 자유롭고 풍족함으로 가득한 인생으로 만들어간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도 자연히 사라질 것이랍니다. 



37세에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를 쓴 팔순 노인의 작가 소노 아야코는 <당당하게 늙고 싶다>(리수)를 작년에 내놓았습니다. 노인 지혜를 활용해 진정한 자립과 행복의 주체로 서고, 죽을 때까지 일하며 살며, 늙어서도 배우자와 자녀와 잘 지내고, 돈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 고독과 사귀며 인생을 즐겁게 지내고, 늙음·질병·죽음과 친해지고, 신의 잣대로 인생을 보는 법 등을 알려주는 이 책은 6개월 만에 300만 부나 팔렸습니다.

세계 최초의 ‘호로(好老)문화’의 나라라지만 노인의 삶마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놀랍기만 합니다. 하긴 단카이는 그들에 대한 모든 부정적 예측을 긍정적으로 돌려놓은 세대이긴 합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의 취직난을 구인난으로 바꾸고,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던 1970년대의 주택난을 조립식 주택과 맨션 건설로 해결하고, 정년을 맞이하던 2007년의 연금파탄 우려마저 종신고용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노동으로 맞섰습니다. 그런 그들이기에 어쩌면 단카이 세대의 새로운 황금시대가 이제 다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고령화 문제가 일본 못지않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주간한국(11. 07. 27) 싱글 인생, 우리는 '무연사회'로 간다 

죽음을 앞둔 춘화의 소원은 옛 써니의 멤버들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이윽고 하나 둘 모인 7공주들은 대부분은 순탄치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에 '알고 보니 기업체 사장'이었던 춘화는 죽기 전에 친구들에게 커다란 선물을 남긴다. 멤버들은 행복해하며 춘화의 영정 앞에서 보니엠의 'Sunny'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춘다.

상반기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영화 <써니>는 훈훈한 결말로 여자들의 우정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이 '판타지'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은 병실에서 홀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은 춘화 때문이다. 그토록 많은 돈을 모았어도 임종을 지킬 한 명의 가족도 없었던 그녀는 마지막 순간 행복했을까. 



골방에서 고립된 청춘들
물론 춘화처럼 모든 골드 미스가 독신을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남성과의 경제적 격차가 줄다보니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희미해진다. 출산 후 육아의 문제도 남아 있다. 남편의 수입만으로 생활이 어렵다면 아내는 또 다시 생계의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결혼 자체가 제약을 가지는 점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싱글 문화가 전 세대의 남녀 모두로 확산되고 있다. 독신 문화가 퍼진 이래 그 말의 대상은 주로 30대에 한정됐다. 하지만 지금은 독신의 길을 걷고 있는 40~50대도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자의가 아닌 독신 인생을 사는 젊은 세대는 더 많다. 장기적인 불황으로 내 집 마련은커녕 좁디좁은 원룸이나 고시원의 쪽방에서 타인과 단절된 채 사는 사람들에게 결혼은 언감생심의 대상이다.

특히 고시원은 원래 취업 전 한 번쯤 '잠깐 머무는 공간'으로 기능했지만, 이제는 실업자와 직장인 등 모든 집 없는 세대들이 혼자 살아가는 대안거주공간이 됐다. 이런 '1인 가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을 고립시킬 수밖에 없다. 



고시원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시도한 책 <자기만의 방>에서 저자 정민우 씨는 고시원에서 거주하는 '원생'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청년 세대의 단절된 삶을 포착한다. 그 결과 고시원의 생활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좁은 방도, 공동생활의 불편함도 아닌 비인간성이라는 대답을 얻는다. "누가 사는지는 알아요. 그 방 안에 틀어박혀 뭘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중략) 친한 사람 … 그런 거 없고, 그냥 고독했어요. 진짜. 개미굴 안에 한 명씩 갇혀서 있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네모나게 구획된 방에 들어가 살고 때로는 방과 방 사이에서 마주치지만 서로 인사도 나누지 않는다. 손짓이나 음성을 물론 눈짓이나 표정으로도 서로 아는 체하지 않는다. 아는 척을 떠나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기 위해 각자가 방에서 눈치를 보기까지 한다. 저자는 이런 고시원 생활의 특징을 '익명성'과 '무관심성'이라고 규정지으며,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관계는 부재하는 고시원은 사람들을 '유령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무연사회에 대비하는 방법
지난해 NHK 특집 방송을 통해 알려진 '무연사회(無緣社會)'는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홀로 살다 죽은 고인의 유족이 유체 인수를 거부해 조문객도 없이 치러지는 장례 과정은 '장례식'보다는 '사체 처리' 과정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얼마 전 출간된 <사람은 홀로 죽는다>에서 무연사회 문제를 다룬 저자 시마다 히로미는 "사람들이 무연사회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보다 '고독한 죽음'이다"라고 지적한다. 죽은 후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두려움보다도 화장된 후 아무런 인연도 없는 곳에 무의미하게 안치되는 상황이 너무 고독하다는 것이다.

당시 아사히 신문도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사회'는 이미 막을 내렸고 혈연·지연과 떨어져 홀로 생활하는 '고족사회'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20년 후에는 전체 가구 중 독신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40%에 달할 것이라며 우려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에서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발표된 '2010 인구주택 총 조사'에서 1인 가구는 414만여 가구로 5년 동안 30% 넘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속도를 감안하면 1인 가구가 가장 일반적인 가구 형태로 떠오르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무연사회에서 지금 당장 위험에 빠진 세대는 노년층이다. 독거노인이 1백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고독사(孤獨死)하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상황이 이러자 일본처럼 가족 대신 유품을 정리해주는 전문 업체들도 국내에 생기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옆집에 사는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아 고독사하는 경우는 몇 년 전부터 있었지만, 마지막 마무리까지 타인의 손에 맡기는 세상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이 이제 무연사회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닌 상황이 개인적인 삶을 중시하는 도시 생활, 하나의 트렌드가 된 싱글족, 가족의 해체와 맞물려 무연사회는 젊은 세대가 미리 준비해야 할 현대인의 미래상이 됐다.

그래서 시마다 히로미는 "도시생활에서 무연사회의 도래는 필연적"이라고 말하면서 "현대인들이 막연한 공포감에 휩싸여 현실부정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무연사회의 삶과 죽음에 관한 진실을 정확히 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송준호기자) 

11. 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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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2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3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지 2011-08-13 00:23   좋아요 0 | URL
도시 공동체 운동이 무연사회라는 미래를 준비하는 한 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알라딘 서재도 훌륭한 사이버 공동체이지만요^^ 실제로 뜻과 애정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이 가까이 모여 서로 보살피며 사는 대도시 속 작은 마을들을 리좀처럼 이루어간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로쟈 2011-08-13 09:17   좋아요 0 | URL
무연사회의 도래는 필연적이란 의견도 있기에 대책이 가능한지는 두고봐야 할 듯해요. 대도시 속 작은 마을들은 이상적이지만요...
 

이번달 '책&'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도서관이다. 따로 피서여행을 가지 못하는, 갈 수 없는 처지의 이들에겐 그나마 도서관이 최적의 피서지처럼 보이지만, 나는 오늘도 마음의 도서관이나 짓는데 만족해야 할 형편이다. 언젠가 명품 도서관들을 둘러볼 기회가 오면 좋겠다... 

책&(11년 8월호) 도서관으로의 피서여행

긴 장마와 폭염을 관통하고 있다. 무더위에 지친 당신에게 그래도 기운이 좀 남아있다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이기도 할 것이다. 어디로?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보들레르)는 시인의 선택이다. 이 세상 ‘안쪽’에서 골라야 한다면, 나처럼 도서관을 꼽을 이들도 있지 않을까. 물론 방학을 맞은 학생과 이런저런 수험생들로 북적이는 동네도서관을 뜻하는 건 아니다. 이 ‘동네 밖’ 도서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 내가 꿈꾸는 공간이자 우리가 같이 여행해볼 만한 장소다. 이 여행의 가이드가 될 만한 책 몇 권을 꼽아본다.   

가장 먼저 손에 쥘 만한 책은 최정태의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한길사, 2011)이다. 도서관학(요즘은 문헌정보학이라고 부른다) 전공자인 저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란 외국 화보집에 자극을 받아 직접 찾아다닌 국내외 도서관 15곳을 소개하고 있는 도서관 탐험이자 도서관 오디세이다. “도서관 여행을 하면서 경이로운 건축물의 아름다움도 살피겠지만 그 안에 있는 책과 시설물,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찾아볼 요량”이라고 저자는 적었고, 책은 그 결과다. 이 ‘도서관 테마여행’은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시작해서 해인사 장경판전에서 끝난다. 미국과 서유럽 도서관들이 주된 방문지이며 국내 ‘도서관’으로는 해인사와 함께 규장각이 포함됐다.  

눈길을 끄는 건 저자가 꼽은 세계적인 명품 도서관의 조건이다. 다섯 가지를 꼽는데, 첫째가 도서관 건물의 아름다움과 역사성이다. 둘째는 장서. 대체로 100만권 이상은 보유해야 한다고. 참고로 미국 의회도서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라는 하버드 대학도서관의 장서는 2003년에 1,500만권을 돌파했다 한다. 그리고 셋째는 세계사적으로 역사를 바꾸거나 움직인 인물 또는 사건과 관련된 포괄적인 장서나 기록물을 구비하고 있는가 하는 점. 저자가 부시 대통령도서관도 찾아본 이유인 듯싶은데, 미국은 대통령기념관이 아니라 대통령도서관을 설치‧운영하는 것이 법제화돼 있으며 그곳에 통치 사료와 각종 국정 자료들을 보관해놓는다고 한다. 넷째는 초기간행본, 좀더 정확히는 1450년대 이후부터 1600년 이전까지 활판인쇄로 간행된 책 또는 양질의 필사본을 어느 정도 소장하고 있는가. 이런 ‘명품’들을 소장하고 있어야 명품 도서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끝으로 다섯째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또는 <36행 성서> 내지 셰익스피어 초판본을 보유하고 있는가 하는 점. 이건 서양의 도서관에 한정되는 조건이겠다. 저자가 제일 처음 둘러본 미국 공공도서관이 바로 이런 조건들을 두루 충족시키고 있는 최상급 도서관이라 한다.    

발품을 판 도서관 여행기로는 유종필 국회도서관장의 <세계 도서관 기행>(웅진지식하우스, 2010)도 필독서이다. 저자는 국가별 도서관 기행을 시도했는데, 한국을 포함해 11개국 40여 개 도서관을 소개한다. 장점이라면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에서 구경할 수 없었던 러시아와 중국, 일본, 그리고 북한의 도서관까지 둘러볼 수 있다는 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출발지로 한 이 기행에서 개인적으론 ‘레닌도서관’이라 불리는 러시아 국가도서관 방문기가 특히 반가움을 느끼게 했다. 그건 유일하게 나도 가본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광장에 도스토예프스키 동상이 세워져 있는 이 도서관이 미국 의회도서관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라는데, 중앙열람실만 해도 이용자가 하루 4천 명이 넘는다 한다. 1979년작으로 국내에서도 개봉됐던 러시아 영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에 나오던 모습 그대로이다. 이렇듯 독자가 저마다 방문해본 도서관의 기억을 중첩시켜서 읽는다면 더욱 흥미로운 독서 여정이 될 듯싶다.   

세계 각지의 도서관으로 눈요기를 했다면 이제 둘 중 하나다. 가방을 챙기거나 아니면 자신만의 도서관을 꿈꾸거나. 사실 도서관은 공공도서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도서관도 있고 또 마음의 도서관도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세종서적)은 그런 개인의 도서관, 마음의 도서관에 대한 명상이다. <독서의 역사>의 저자이기도 한 망구엘은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서점 직원으로 일하던 젊은 시절, 작가 보르헤스에게 4년간 책을 읽어준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보르헤스가 시력을 잃어가던 때였다. 본래 책을 좋아하던 편이었지만 보르헤스로부터 받은 감화는 그를 더욱 독서에 탐닉하게 했고 세계적인 독서가로 만들었다. 독서가인 만큼 수집한 책이 재산일 텐데, 그는 반세기 동안 모은 책을 모아둘 도서관을 프랑스의 한 시골 헛간 터에 세운다. 이 일이 계기가 돼 시작된 그의 도서관 사색이 <밤의 도서관>에서는 15가지 주제에 따라 펼쳐진다. 개인도서관, 곧 서재는 그 주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모든 서재는 궁극적으로 에우테미아를 갈망한다”고 망구엘은 말한다. ‘에우테미아’란 그리스어로 ‘영혼의 행복’을 뜻한다. “에우테미아는 방해받지 않는 기억이며, 글을 읽는 시간의 편안함”이다. 공공도서관이거나 개인도서관이거나 어디인들 어떠랴. 이 여름, 우리가 에우테미아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이라면!  

11. 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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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8-1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우테미아라 근사하네요

로쟈 2011-08-11 19:16   좋아요 0 | URL
도서관이 원래 근사한 장소이어야 합니다.^^

가넷 2011-08-1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5만권으로 힘들어 하는데 천만권이라니... 장서수로만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서도 천만권이 넘는 장서 수를 보자니 허걱!...@_@;;;; 그 역사와 전통에 비하면 참 초라해 집니다... 뭐 겨우 30살 밖에 안되는 도서관이니 그정도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겠죠. 더욱 더 분발해야겠습니다...ㅎㅎ;

로쟈 2011-08-12 07:46   좋아요 0 | URL
우리가 도서관에 욕심을 부린 나라는 아닌 것이죠.^^;

미국사람 2011-08-12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도서관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아주 아름답군요.

그 사회가 선진국인지를 알려면 그 나라에서 나온 사전의 수준과 도서관의 수준을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이라는 면에서 보면 한국은 소득수준과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의 도서관을 가지고 있죠.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하버드 장서가 1500만권이라고 했는데 하바드 도서관은 다른 대학과는 달리 단일 건물은 아니구요. 하바드 건물중 상당 부분이 도서관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국으로 치면 단과대학 별로 도서관이 하나씩 있는 셈이죠.

미국회 도서관은 지하가 연결된 두개의 건물이구요. 규모가 엄청납니다. 하긴 가본 것이 20년이 넘으니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미국 대학에서는 제일 좋은 건물이 도서관이라고 보면 보통 맞읍니다. 우리도 그런 날이 와야할텐데 꿈이겠죠.

로쟈 2011-08-12 07:47   좋아요 0 | URL
네 꿈일 거 같습니다. 도서관을 짓는 지자체는 전국에서 손꼽을 정도이고, 대학들은 그 돈이면 땅을 사지요...

VANITAS 2011-08-12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얘기는 아니잠 최근에 나온 '유럽의 명문서점'도 꽤나 눈을 사로잡더군요.
서점에 관한 서적도 종종 출간되었으며 좋겠네요.

로쟈 2011-08-13 09:1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갖고 있는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