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라 아직 배송을 받지는 못했는데 <뇌를 훔친 소설가>(예담, 2011)와 같이 주문한 책은 <이문구의 문인기행>(에르디아, 2011)이다. 21명의 문인에 대한 인물평을 담고 있는 책. 과거엔 드물지 않은 컨셉의 책이지만 요즘은 희귀해진 듯하다. 게다가 이문구 선생의 책이니 주저할 이유도 없었다. 노래로 치면 '70-80'쯤 될까. 그게 내 취향인 거 같기도 하다...

경향신문(11. 08. 15) 소설가 이문구의 붓끝으로 다시 바라본 당대 문인들

소설가 이문구(1941~2003·사진)는 1970~1980년대 문단이 순수와 참여로 갈라져 있던 시절, 파벌과 경향이 아니라 인간관계로 진영을 넘나든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스승 김동리가 창간한 ‘월간문학’ 편집장으로 일했고, 나중에는 참여 작가들이 출자한 실천문학사 사장을 지냈다. 타계 직전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으로 문단을 대표하는 자리에 올랐던 그의 장례식은 문인협회, 작가회의 등 3개 단체가 공동으로 치렀다. 



그런 그가 동료작가들에 대해 쓴 글을 모은 책 <이문구의 문인기행>(에르디아)이 출간됐다. 인물평, 단행본의 발문, 문예지에 연재한 작가탐방, 실명소설·추도사 등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김동리·서정주·고은·신경림·한승원·이호철·황석영·박상륭·김주영·윤흥길 등 중앙문단의 유명 문인뿐 아니라 염재만·박용래·임강빈·강순식 등 지역문인까지 21명의 인물평이 실려있다. 고인의 조카뻘인 시인 이흔복씨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원고를 한데 모아서 엮은 것이다.

“명천(이문구의 호)은 일찍부터 문단에서 행장기의 독보로 꼽혀왔다. 그래서 ‘명천 붓끝에 한 번 놀림을 당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문인이 아니다’라는 농이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을 섭렵했다”는 문학평론가 이경철씨의 말처럼 이문구의 걸쭉한 입담과 풍자로 펄펄 살아있는 문체에 걸려든 동료 문인들은 진솔하고 의외인 면모를 드러낸다.  

김동리는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이다. 그의 주변에는 문객과 식객이 들끓었는데, 식객들은 술과 밥만 축낸 것이 아니라 선생의 용돈과 원고료까지 나눠갔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젊은 시절 끼니를 거를 만큼 가난했던 김동리는 매일 계란 프라이를 먹었고, 댁으로 찾아온 제자들에게도 계란 프라이부터 두 개 이상 먹인 다음 술잔을 건넸다. 김지하가 담시 ‘오적’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자 당시 문협 이사장이던 김동리가 일요일에 사무실로 나와 후배들과 대책을 논의하던 모습도 담겨있다. 



신경림의 ‘터프’한 면모도 볼 수 있다. 6공(노태우 정부) 시절의 어느 날, 민요연구회 후배들과 산에 갔다가 술을 한잔 걸친 시인은 젊은 후배들이 그냥 안내려오고 바위에서 뛰어내리자 자신도 노인 취급을 받기 싫어 뛰어내리다가 갈비뼈 두 대가 부서진다. 후배 이문구가 “업혀 내려오셨냐”고 걱정스레 묻자, “뭔 소리여. 내 발로 걸어 내려왔어. 아픈 줄도 몰랐어. 취했는데 뭘 알아”라고 대꾸한다. ‘체수에 비하여 화통하기가 무릉도인’이었다고 저자는 적고 있다.

고은의 삶은 ‘5세 신동의 50년’에 요약돼 있다. 서당에 다니면서 신동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부터 군산북중에 다닐 때 신작로에서 <한하운시초>를 주워 읽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 일, 한국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출가했다가 환속해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과정 등이 상세히 소개된다. 특히 ‘가짜 고은’ 사건이 흥미롭다. 시인으로 유명해지자 전국에서 고은이 나타나 백일장 심사위원장을 맡고, 부인과 애인을 동시에 거느리며, 문청들에게 금품을 갈취하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평생지기로 소주잔을 기울였던 박상륭과의 우정, ‘믿어도 좋은 사내’라고 부른 황석영과의 인연, 안동엽연초생산조합 김주사였던 김주영의 등단시절 등 고인의 입에서 듣는 생존작가들의 뒷이야기가 흥미롭다.(한윤정 기자)  

11. 08. 15.  

 

P.S. 책은 이문구 전집의 하나로 출간된 <이문구의 문학동네 사람들>(랜덤하우스코리아, 2004)를 다시 펴내면서 3-4편의 글을 더 얹은 걸로 보인다. 이를테면 '증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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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15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그야말로 재산이 되겠네요ㅋㅋ 언제 사진인지 모르겠지만 이문구 선생이 쓰고 계신 게 예전에 '워드'라고 불리던 전동타자기 아닌가요?^^

로쟈 2011-08-15 22:58   좋아요 0 | URL
저도 전동타자기가 있었는데, 제건 다른 모델이었습니다. 그나저나 문인들의 뒷담화도 꽤 재미가 있어요. 올드한 취향일까요?^^;

stella.K 2011-08-16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문인기행은 예전에 <문학동네 사람들>을 다시 낸 것인가 봅니다.
이럴 경우 그 사실도 밝히는 게 좋을 것도 같은데 왜 안 밝혔는지 모르겠네요.
물론 그책은 절판되긴 했지만, 모르는 사람은 첨 나온 줄 알겠어요.

로쟈 2011-08-16 23:47   좋아요 0 | URL
네, 확인해보니 다시 펴낸 것이고 세 편쯤 추가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