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도서관이다. 따로 피서여행을 가지 못하는, 갈 수 없는 처지의 이들에겐 그나마 도서관이 최적의 피서지처럼 보이지만, 나는 오늘도 마음의 도서관이나 짓는데 만족해야 할 형편이다. 언젠가 명품 도서관들을 둘러볼 기회가 오면 좋겠다... 

책&(11년 8월호) 도서관으로의 피서여행

긴 장마와 폭염을 관통하고 있다. 무더위에 지친 당신에게 그래도 기운이 좀 남아있다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이기도 할 것이다. 어디로?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보들레르)는 시인의 선택이다. 이 세상 ‘안쪽’에서 골라야 한다면, 나처럼 도서관을 꼽을 이들도 있지 않을까. 물론 방학을 맞은 학생과 이런저런 수험생들로 북적이는 동네도서관을 뜻하는 건 아니다. 이 ‘동네 밖’ 도서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 내가 꿈꾸는 공간이자 우리가 같이 여행해볼 만한 장소다. 이 여행의 가이드가 될 만한 책 몇 권을 꼽아본다.   

가장 먼저 손에 쥘 만한 책은 최정태의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한길사, 2011)이다. 도서관학(요즘은 문헌정보학이라고 부른다) 전공자인 저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란 외국 화보집에 자극을 받아 직접 찾아다닌 국내외 도서관 15곳을 소개하고 있는 도서관 탐험이자 도서관 오디세이다. “도서관 여행을 하면서 경이로운 건축물의 아름다움도 살피겠지만 그 안에 있는 책과 시설물,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찾아볼 요량”이라고 저자는 적었고, 책은 그 결과다. 이 ‘도서관 테마여행’은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시작해서 해인사 장경판전에서 끝난다. 미국과 서유럽 도서관들이 주된 방문지이며 국내 ‘도서관’으로는 해인사와 함께 규장각이 포함됐다.  

눈길을 끄는 건 저자가 꼽은 세계적인 명품 도서관의 조건이다. 다섯 가지를 꼽는데, 첫째가 도서관 건물의 아름다움과 역사성이다. 둘째는 장서. 대체로 100만권 이상은 보유해야 한다고. 참고로 미국 의회도서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라는 하버드 대학도서관의 장서는 2003년에 1,500만권을 돌파했다 한다. 그리고 셋째는 세계사적으로 역사를 바꾸거나 움직인 인물 또는 사건과 관련된 포괄적인 장서나 기록물을 구비하고 있는가 하는 점. 저자가 부시 대통령도서관도 찾아본 이유인 듯싶은데, 미국은 대통령기념관이 아니라 대통령도서관을 설치‧운영하는 것이 법제화돼 있으며 그곳에 통치 사료와 각종 국정 자료들을 보관해놓는다고 한다. 넷째는 초기간행본, 좀더 정확히는 1450년대 이후부터 1600년 이전까지 활판인쇄로 간행된 책 또는 양질의 필사본을 어느 정도 소장하고 있는가. 이런 ‘명품’들을 소장하고 있어야 명품 도서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끝으로 다섯째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또는 <36행 성서> 내지 셰익스피어 초판본을 보유하고 있는가 하는 점. 이건 서양의 도서관에 한정되는 조건이겠다. 저자가 제일 처음 둘러본 미국 공공도서관이 바로 이런 조건들을 두루 충족시키고 있는 최상급 도서관이라 한다.    

발품을 판 도서관 여행기로는 유종필 국회도서관장의 <세계 도서관 기행>(웅진지식하우스, 2010)도 필독서이다. 저자는 국가별 도서관 기행을 시도했는데, 한국을 포함해 11개국 40여 개 도서관을 소개한다. 장점이라면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에서 구경할 수 없었던 러시아와 중국, 일본, 그리고 북한의 도서관까지 둘러볼 수 있다는 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출발지로 한 이 기행에서 개인적으론 ‘레닌도서관’이라 불리는 러시아 국가도서관 방문기가 특히 반가움을 느끼게 했다. 그건 유일하게 나도 가본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광장에 도스토예프스키 동상이 세워져 있는 이 도서관이 미국 의회도서관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라는데, 중앙열람실만 해도 이용자가 하루 4천 명이 넘는다 한다. 1979년작으로 국내에서도 개봉됐던 러시아 영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에 나오던 모습 그대로이다. 이렇듯 독자가 저마다 방문해본 도서관의 기억을 중첩시켜서 읽는다면 더욱 흥미로운 독서 여정이 될 듯싶다.   

세계 각지의 도서관으로 눈요기를 했다면 이제 둘 중 하나다. 가방을 챙기거나 아니면 자신만의 도서관을 꿈꾸거나. 사실 도서관은 공공도서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도서관도 있고 또 마음의 도서관도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세종서적)은 그런 개인의 도서관, 마음의 도서관에 대한 명상이다. <독서의 역사>의 저자이기도 한 망구엘은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서점 직원으로 일하던 젊은 시절, 작가 보르헤스에게 4년간 책을 읽어준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보르헤스가 시력을 잃어가던 때였다. 본래 책을 좋아하던 편이었지만 보르헤스로부터 받은 감화는 그를 더욱 독서에 탐닉하게 했고 세계적인 독서가로 만들었다. 독서가인 만큼 수집한 책이 재산일 텐데, 그는 반세기 동안 모은 책을 모아둘 도서관을 프랑스의 한 시골 헛간 터에 세운다. 이 일이 계기가 돼 시작된 그의 도서관 사색이 <밤의 도서관>에서는 15가지 주제에 따라 펼쳐진다. 개인도서관, 곧 서재는 그 주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모든 서재는 궁극적으로 에우테미아를 갈망한다”고 망구엘은 말한다. ‘에우테미아’란 그리스어로 ‘영혼의 행복’을 뜻한다. “에우테미아는 방해받지 않는 기억이며, 글을 읽는 시간의 편안함”이다. 공공도서관이거나 개인도서관이거나 어디인들 어떠랴. 이 여름, 우리가 에우테미아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이라면!  

11. 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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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8-1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우테미아라 근사하네요

로쟈 2011-08-11 19:16   좋아요 0 | URL
도서관이 원래 근사한 장소이어야 합니다.^^

가넷 2011-08-1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5만권으로 힘들어 하는데 천만권이라니... 장서수로만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서도 천만권이 넘는 장서 수를 보자니 허걱!...@_@;;;; 그 역사와 전통에 비하면 참 초라해 집니다... 뭐 겨우 30살 밖에 안되는 도서관이니 그정도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겠죠. 더욱 더 분발해야겠습니다...ㅎㅎ;

로쟈 2011-08-12 07:46   좋아요 0 | URL
우리가 도서관에 욕심을 부린 나라는 아닌 것이죠.^^;

미국사람 2011-08-12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도서관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아주 아름답군요.

그 사회가 선진국인지를 알려면 그 나라에서 나온 사전의 수준과 도서관의 수준을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이라는 면에서 보면 한국은 소득수준과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의 도서관을 가지고 있죠.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하버드 장서가 1500만권이라고 했는데 하바드 도서관은 다른 대학과는 달리 단일 건물은 아니구요. 하바드 건물중 상당 부분이 도서관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국으로 치면 단과대학 별로 도서관이 하나씩 있는 셈이죠.

미국회 도서관은 지하가 연결된 두개의 건물이구요. 규모가 엄청납니다. 하긴 가본 것이 20년이 넘으니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미국 대학에서는 제일 좋은 건물이 도서관이라고 보면 보통 맞읍니다. 우리도 그런 날이 와야할텐데 꿈이겠죠.

로쟈 2011-08-12 07:47   좋아요 0 | URL
네 꿈일 거 같습니다. 도서관을 짓는 지자체는 전국에서 손꼽을 정도이고, 대학들은 그 돈이면 땅을 사지요...

VANITAS 2011-08-12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얘기는 아니잠 최근에 나온 '유럽의 명문서점'도 꽤나 눈을 사로잡더군요.
서점에 관한 서적도 종종 출간되었으며 좋겠네요.

로쟈 2011-08-13 09:1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갖고 있는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