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교수의 대담집 <세 개의 동그라미>(한길사, 2008)에 관한 기사를 옮겨놓으면서 하버마스가 연상된다고 했는데, 최근에 관심도서 중 하나가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이다. 오래전 강영계 교수의 번역본 <인식과 관심>(고려원, 1983)이 출간됐지만(나도 나중에 중고본으로 구입했다) 이미 절판됐고(알라딘에는 1996년판까지 나온 걸로 돼 있다) 번역에 대해서도 시비가 많았다.
내 견문으론 이 책의 번역 문제를 공개적으로 처음 지적한 이가 조선일보의 이한우 기자였다(철학전공자이다). 30대 중반의 젊은 기자가 쓴 <우리의 학맥과 학풍>(문예출판사, 1995)에 보면 '번역, 제대로 합시다'란 부록이 실려 있었고 내 기억에 거기에서 <인식과 관심> 국역본은 일차적인 비판의 대상이었다(우리 언론계에 대해서도 그런 책을 써주면 좋겠다). 이후로 새 번역본을 기대했지만 감감 무소식이다(그 사이에 나는 20대에서 40대가 되었다!). 해서, 흔히 <의사소통행위이론>과 함께 하버마스의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한국어로는 읽을 수 없다. 나는 이런 게 한국 학계의 풍토인 듯싶어서 씁쓸하다. 가끔 영역본이나 뒤적여보는 수밖에. 쓸 만한 기사가 있나 찾아보다가 그래도 핵심을 요약해주고 있는 것이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우리의 학맥과 학풍>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이한우기자의 <의사소통행위이론>(나남, 2006)에 대한 리뷰기사도 함께 모아놓는다.
한국일보(03. 10. 10)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
「살아있는 고전」 「20세기 현대사상의 거두」 라고 불리는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70). 그는 현대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대상을 사회로 보고 이 사회를 변형시키고 발전시키는 것만이 인간의 소외와 병리 현상을 극복, 자유와 해방을 보장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식과 관심의 올바른 이해와 결합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하버마스의 사상적 진수가 농축된 저서가 바로 「인식과 관심(Erkenntnis und Interesse)」. 69년 초판이 나온데 이어 후기가 첨가된 증보판이 73년 출간됐다.
하버마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의 뒤를 이어 사회비판이론을 정립한 푸랑크프르트학파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철학을 총정리해내는 역할을 했다. 『오늘의 철학은 존재론적 체계의 철학이기를 그치고 과학과 사회, 전통문화, 종교를 비판하는 이론이 되어야 한다』는 하버마스의 철학적 방법론은 「인식과 관심」에도 잘 드러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에 대한 토대가 된 「인식과 관심」에서 하버마스는 인식이 현실적 욕구나 주관적 이해관계와 초연한 순수 이론적인 측면에서 탐구되어오던 기존의 서구사상을 전면 부정한다. 인식이 인간의 것인 한, 인간의 본래적인 관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관심은 오히려 인식을 바른 인식이 되게 하는 조건과 틀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객관적이며 순수하다는 자연과학·경험적 인식에 있어서도 하버마스는 합목적적인 관심, 기술적 유용성의 관심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역사적·해석학적인 학문이나 인식에서도 역시 실천적 관심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밖에 비판이론적인 학문에서는 인간 해방적 관심이 인식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
이러한 관점을 견지한 하버마스는 실증주의자 칼 포퍼의 사회과학이 자연과학화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 자연과학이 사회과학화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게 했다. 인식과 관심이 바르게 결합할 때 마르크스의 사회비판이론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과 같은 실천적이고 치료적인 이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사회에 초연하고 무관한 인식이 아니라 성숙과 해방에 관심을 가진 인식은 사회와 역사를 발전시키고 인간의 병리를 치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배국남기자)
1. 한국 현대지성사의 복원을 위하여
2. 전통학문의 존재방식
3. 동양철학
4. 서양철학
5. 역사학
6. 정치학
7. 법학
8. 부록 : 번역, 제대로 합시다
9. 베끼기에서 시각도용까지, 한국 학계의 표절 백태
"우리의 정신사 형성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인문학의 동양철학 . 서양철학 .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사회학 . 정치학 . 법학 등 6개 분야를 중심으로 우리의 주요 현대 학문들이 해방 이후 어떻게 성장해 왔고, 주요학자들 중에는 어떤 이들이 있으며 현재의 실상은 대략 어떠한가에 관한 것을 다룬 책."(한국 학계의 부정적인 실상을 고발한 책으로는 강성민의 <학계의 금기를 찾아서>(살림, 2004)도 꼽아볼 수 있다. 저자는 교수신문의 기자였다.)
조선일보(06. 03. 11) 돈과 권력의 문화지배를 막아라
흔히 ‘인식과 관심’과 함께 하버마스의 양대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 ‘의사사통행위이론’이 번역됐다. 실은 10여년전에 번역된 적이 있지만 비전공자들의 공동번역으로 인해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제대로 된 첫 번역서가 나온 셈이다. ‘인식과 관심’도 20여년전에 번역됐지만 오역의 창고라는 비판을 받아 재번역을 기다리고 있다. 번역에 관한 한 하버마스는 한국에서 그리 운이 좋았던 편이 아니다.
‘의사소통행위이론’이 저술된 맥락은 1970년대 구미(歐美)의 철학계와 사회학계였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려면 당시 철학계와 사회학계의 이론적 쟁점들에 대한 기초적인 소양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사회사상가’를 지향했던 하버마스의 원대한 꿈에 대해서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 책은 베버를 통해 마르크스를 해독(解讀)함으로써, 혹은 해독(解毒)함으로써 하버마스 자신의 사회이론 구축을 위한 토대를 다지려는 것이다. 즉 마르크스와 베버의 뒷 자리를 차지하려는 학문적 야심에서 저술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먼저 의식(意識)철학으로부터의 탈피다. 의식철학이란 칸트에서 시작해 마르크스나 베버에게까지 깊이 스며들어 있는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다. 의식은 곧 이성이었다. 20세기 들면서 의식철학은 다양한 각도에서 비판을 받았다. 특히 언어철학의 등장은 의식철학을 낡은 철학으로 만들어버렸다.
언어적 전환은 유럽이나 미국 모두에서 일어났다. 하버마스는 이같은 성과들을 무비판적일 정도로 고스란히 수용한다. 한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두 사람 이상의 의사소통 행위에서 이성의 토대를 찾아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버마스는 이론사(理論史)의 재구성에 나선다. 그는 베버가 고민했던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 철학과 사회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면서 베버를 다시 읽는 것이다. 때로는 베버의 선택을 승인하고 때로는 베버의 한계를 지적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하버마스는 2단계로 된 사회이론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언어적 의사소통만으로는 인간행위를 조정하는게 어려워지고, 따라서 언어적 의사소통에 주어지는 과도한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권력이나 화폐와 같은 비언어적 매체를 통해 행위조정이 이루어지는 영역들이 독립하게 된다는 것이다. 언어적 의사소통에 의한 행위의 조정이 이루어지는 영역이 ‘생활세계(Lebenswelt)’였다면 권력이나 화폐같은 비언어적 매체에 의해 조정이 이뤄지는 영역은 ‘체계(System)’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하버마스가 진단하는 현대사회가 핵심문제는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다. 간단히 말하면 문화영역에 돈과 권력의 논리가 침입해 드는 것이 바로 이 식민화다. 결국 대안은 체계가 월권을 행사해 생활세계로 침투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아내는데서 찾아야 한다는게 하버마스의 전략이다. 비판이론의 재생을 염두에 둔 저작치고는 대안이 너무 허약하다. 하버마스가 더 이상 비판이론의 전통에 서 있지 않은 것같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나온 것도 이 책에서다. 그러나 그의 지적 방대함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글읽기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역작이라는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이한우기자)
08. 09. 07.
P.S. 비판이론과 관련해서 최근에 나온 묵직한 연구서는 세일라 벤하비브의 <비판, 규범, 유토피아>(울력, 2008)다. 요즘 같아선 시장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종류의 책이기에 출간 자체가 놀랍다. 저자는 예일대학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비판이론 연구의 권위자다. 간략한 책 소개는 이렇다.
헤겔의 작품들에 나타난 비판 개념을 분석하고, 마르크스가 헤겔적인 유산을 어떻게 변형시키는지를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해, 헤겔과 마르크스에 의해 발견된 비판의 차원들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작품, 특히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작품에서 어떻게 급진적으로 변화되는지를 보여 준다. 그런 다음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능주의적 이성을 비판하는 하버마스의 프로그램을 토론하고 비판한다. 자연법과 칸트에 대한 헤겔의 비판이 의사소통적 윤리학과 자율성의 프로그램을 진작시킴에 있어 얼마나 생산적으로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역사적으로, 체계적으로 탐구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연구했던 지성사가 마틴 제이는 이 책에 대해서 "미국에서 비판 이론의 창조적인 발전을 뛰어나게 입증해 주고 있는 사회 철학의 주요 저작"이라고 평했다. 그러고 보면 마틴 제이의 <변증법적 상상력>(돌베개, 1979/1981)도 절판된 지 오래다. 해방적 관심도 재테크적 관심에 완패한 지 이미 오래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