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문광훈 교수의 대담집 <세 개의 동그라미>(한길사, 2008)가 출간됐다. 784쪽짜리 책이다. '마음, 이데아, 지각'은 그 부제인데, 아주 두툼하고 그만큼 값도 세다. 그래도 주문을 넣었다. 장회익, 최종덕 교수의 대담집 <이분법을 넘어서>(한길사, 2008)를 유익하게 읽은 기억 때문이다. 예전에 나온 '김우창과의 대화' <행동과 사유>(생각의나무, 2004)에서도 엿본 바 있지만, '우리시대 인문학의 한 모델'의 전모를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도 싶다. 내주에 책을 읽게 되겠지만 미리 리뷰를 챙겨놓는다. 한국일보의 것이다(같이 읽은 건 경향신문의 리뷰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9051659465&code=900308 이며 사진은 거기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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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08. 09. 06) 일상에서 우주까지… 두 교수 '대화의 향연'
인문학의 대가와 후학이 일궈내는 대화의 향연은 이 시대, 삶과 세계에 대한 성찰이 왜 더욱 절실한가를 명징하게 밝혀준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71)와 문광훈 고려대 아시아 문제 연구소 연구교수는 '향연'을 가졌고, 일상에서 우주까지를 대화라는 담론의 그물로 건져 올렸다.
김 교수는 끊임없이 답하고, 문 교수는 쉴새 없이 묻는다. 인문학이라는 그물코로 건져 올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주제다. 이들은 "없는 대량 학살 무기를 있다고 거짓 정보를 만들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와 블레어"(58쪽) 등 해외의 정세를 논하다, "통일은 자유ㆍ민주주의ㆍ풍요한 삶 등 여러 가지 개념과의 연쇄 속에서 얘기돼야"(689쪽)한다며 한국의 미래를 바라본다.
이들의 이야기는 마음이라는 범주를 중심으로 크게 혹은 작게 변주돼 간다. 김 교수는 "아무런 선입견을 갖지 않은, 텅 빈 마음"을 출발점으로 잡는다. 특유의 '정제된 엄밀성'을 향해 나아가기 위함이다. 책에는 어떻게 감정이 성찰의 과정을 거쳐 특유의 '표백된 언어'로 나타나는지가 두 사람의 구체적 언어를 통해 기록돼 있다. 그는 "인문학을 너무 추상적인 개념에 의지하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인간 존재의 근본을 상실하게 된다"며 경계를 요청했다.
아주 가끔씩 나오는 현 정부 평가는 인문주의의 현유한 숲에서 독특한 광채를 발한다. 김 교수는 "(현 정부는)부동산이라는 관점에서 자기 집을 평가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늘 만들어 낸다"며 "삶의 안정을 약속하는 아무 대안도 없이 마구 흔들어 놓기만 하는 정책들에 경고를 준 것이 이번에 나온 현 정부의 지지도 조사 결과가 아닌가 하는 느낌"(27쪽)이라며 속내를 비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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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은 2006년 6~10월 모두 11차례에 걸쳐 김씨의 평창동 자택에서 이뤄졌다. 회당 4~5시간 걸렸던 마라톤 대담이었다. 김 교수는 "문 교수는 대담 전 수십여쪽의 질문지를 작성, 논리와 일관성을 세웠다"며 "퇴고 과정에서도 수정과 보충 등 성의를 다했다"고 밝혔다. 세 개의 동그라미란 인식의 기본 도구인 지각, 이데아, 마음을 뜻한다.(장병욱 기자)
08. 09.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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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번에 두 권의 책이 같이 나왔다. 마치 가을로 넘어서자 마자 추수를 보는 듯하다. <전환의 모색>(생각의나무, 2008)은 장회익, 최장집, 도정일, 김우창 4인의 대담을 싣고 있으며,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한 패러다임'이란 주제의 김우창 교수 대담은 박명림 교수가 진행했다. 그리고 곧 출간될 '問 라이브러리'의 첫권 <정의와 정의의 조건>(생각의나무, 2008)도 눈길이 가게 만든다. 136쪽이니까 시집 정도의 분량이고 값 또한 그러하다. 이 시리즈가 장수해서 '포켓 인문학' 시대를 열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기사에서 "김 교수는 "아무런 선입견을 갖지 않은, 텅 빈 마음"을 출발점으로 잡는다"는 대목을 읽을 수 있는데, 김우창 용어로 '자유'가 그 '텅 빈 마음'에 대응하지 않을까 싶다(하지만 그 '자유'와 '텅 빈 마음'은 디폴트값으로 '조건화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우창과 나란히 떠올리게 되는 이름은 하버마스와 롤스이다(<정의와 정의의 조건>은 롤스의 주제이기도 하다). 차이라면 아마도 김우창식 '심미적 이성'의 자리에서 두 이론가들을 수용한 것에 있지 않을까라는 게 내 생각이다(미학의 결여는 하버마스 이론의 구성적 결여이다). 그걸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세 개의 동그라미>에 가 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