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신문에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일제히 발표되는 건 한국사회/언론의 관행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근래에 '웰메이드' 작품들이 양상되면서 신춘문예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부쩍 많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내가 근심하는 건 당선자들의 평균 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다간 문학 또한 '실버산업'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문제의식과 맞물려 신년 벽두부터 '센' 구호가 등장했다. '한국소설, 장편으로 진화하라!', '변화'가 아니라 '진화'이다. 그건 두 가지를 전제한다. (1)'단편'보다 '장편'이 진화한 양식이다. (2)그러한 진화의 과정은 좀 시간이 걸린다. 사안의 견적상 그러한 '진화'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건 다 아는 일이다. 필자도 지적하고 있는 바대로, 단편 중심의 등단제도와 문예지 중심으로 움직이는 한국 문단의 '체질'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계 사람들 대부분 인정하는 건 단편보다 장편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다. 고액의 상금이 걸려 있는 문학상들이 대부분 장편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문제는 장편의 일정한 '질'을 담보할 (제도적?) 방책이 불비하다는 것, 혹은 그렇다고 생각한다는 것. 문학의 위기 국면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의견이 적지 않으므로 모종의 윈-윈 전략이 마련될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한겨레(07. 01. 01) 한국 소설, 장편으로 진화하라!

새해 첫날 아침이다. 저마다 희망과 포부를 한껏 부풀리고 있을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들은 누구일까? 여러 사람이 있겠지만, 문학 담당 기자의 직업의식을 조금 발휘해 답해 보고 싶다.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어떨까? 그들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세상 전부를 얻은 것 같은 행복감을 맛보고 있지 않을까.

새해 첫날 아침을 신춘문예라는 문학적 축제와 더불어 맞이하는 일은 분명 축복이다. 문학의 위기가 공공연히 운위되는 가운데서도 신춘문예를 비롯한 문예 공모의 출품작들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은 고무적이다. 문학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응모자들의 열기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신춘문예에도 그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춘문예 제도의 제정 취지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적 견해들이 제출되어 있다. 당선 작품들의 천편일률성, 소수 심사위원들의 독점적 ‘심사권’ 행사, 패기와 실험성이 결여된 ‘웰 메이드’ 계열 작품들의 난무 등….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조금 다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거의 모든 신춘문예에서 소설 부문은 단편으로 제한해서 모집하고 있다. 드물게 중편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지만, 장편이 신춘문예에 포함된 사례는 전무하다. 물론 장편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 공모가 없지 않고 갈수록 느는 추세이기는 하다. 그러나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은 등단의 관문을 뚫기 위해 우선 신춘문예가 요구하는 단편 습작에 매진하기 마련이다.

등단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하는 지면은 대체로 문학잡지들이다. 이때도 잡지들이 청탁하는 작품은 대개가 단편들이고 약간의 중편이 포함된다. 문학잡지에 장편소설이 실리는 것은 다소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다음 단계는 각종 문학상이다. 우리나라 유수의 문학상들은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단편소설에 쏠려 있다. 일본의 아쿠타가와상 정도를 제한다면, 외국의 소설 부문 문학상들은 대체로 장편을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쪽 사정은 오히려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삼은 문학상이 예외로 취급되는 현실이다.

등단에서 잡지를 통한 작품 발표, 그리고 각종 문학상 수상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우리의 소설 장르가 단편에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히 작가들 역시 습작 무렵부터 단편을 써 버릇하고, 등단 이후에도 잡지 발표와 문학상을 염두에 두고 단편을 쓰는 데에 진력하게끔 되어 있다. 장편은 단편에 비해 소홀히 취급되기 마련이다.

물론 단편은 장편을 쓰기 위한 훈련으로서도 의미가 없지 않다. 대개의 작가들이 등단 초기에는 단편에 주력하다가 점차 필력이 붙으면서 자연스럽게 장편 쪽으로 옮아 가곤 한다. 그렇다 해도 우리 작가들은 과도하리만치 단편에 매달리는 것이 사실이다. 장편에 쏟아야 할 에너지를 단편에 ‘낭비’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단편을 쓸 때 작가들은 단어 하나와 문장 한 줄에도 최선을 다해 완성도를 높이고자 한다. 상대적으로 장편을 쓸 때는 전체적인 틀에 신경을 쓰면서 독자와의 소통에 더 무게를 둔다. 미학적 완성도라는 기준을 들이대면 장편에 비해 단편소설 쪽이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따라서 단편은 '소설'보다는 '시'에 더 근접한다. 소설다운 소설'보다는 '시적인 소설'이 더 득세하는 것이 우리의 문학현실이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단편문학의 전통이 있다. 이효석, 김유정, 이태준에서 김승옥과 오정희를 거쳐 내려오는 미학주의의 전통이다(*물론 우리에겐 자랑스러운 장편문학의 전통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독자들은 단편에 비해 장편을 선호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즈음의 출판사들이 단편을 묶어 책으로 낼 때 ‘소설집’이라는 표기 대신 그저 ‘소설’이라는 모호한 표기를 앞세우는 까닭은 단편(집)에 대한 독자들의 냉담한 반응을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들은 장편소설을 원한다

우리 소설을 외국에 소개할 때에도 단편은 장편에 비해 꽤 불리하다. 처지를 바꿔 놓고 생각해 보아도 우리 독자들이 외국의 단편집보다는 장편소설을 선호하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 소설이 외국어로 번역 출간될 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오르한 파무크의 주요 작품들을 비롯해 오에 겐자부로, 엘프리데 옐리네크, 귄터 그라스 등 대부분의 역대 수상 작가들은 장편 작가들이었다(*국제시장에 대한 감각이 탁월한 작가 김영하가 장편에 매진하는 이유이다).

 

 

 

 

이제 이 글의 결론을 말할 차례다. 간단하다면 간단하다. 한국 소설의 체질을 단편에서 장편 중심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은 아니다. 작가들 자신과 문학잡지 및 출판사들, 그리고 평론가와 독자들이 두루 합의하고 노력해야 한다(*이미지는 가장 최근에 나온 몇 권의 공모 장편들이다). 우선 이 아침,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행운을 거머쥔 주인공들에게 당부드리고 싶다. 단편보다는 장편에 주력해서 침체에 빠진 한국 소설의 활로를 열어 주시라!(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7. 01. 01.

 

 

 

 

P.S. 몇 권 더 꼽아본 작품들이 지난해 장편으로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문학상에 당선된 작품들이다. '장편'으로의 진화를 가늠해보는 척도가 됨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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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01-0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신춘문예를 두 편 읽어보았는데..뭐랄까. 갈수록 밀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단편에서의 역량을 잘 살려서 멋진 장편들을 쓸 수 있는 작가들이 되길 바라는 마음, 저도 함께입니다....좀더 공부하는 작가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구요...

로쟈 2007-01-01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편과 장편은 시와 소설만큼 차이가 크다고 여기는 편인지라(문장의 기본기만 공유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진화'에 대해서 좀 회의적이긴 합니다. 단편(short story)와 소설(novel)을 '소설'로 통칭하는 데 문제의 일단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엊그제 구내서점에 들렀을 때 눈길을 잡아끈 책은 이문재 시인의 첫산문집 <이문재 산문집>(호미, 2006)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빨간색의 원색 표지에 제목이 달랑 '이문재 산문집' 아닌가. 독특한 제목과 장정이 일단은 시선을 끈다. 그리고 한국문학에 약간 눈치가 있는 독자라면 이게 중견시인의 '첫'산문집이라는 사실과 시인이 편집위원으로 몸담고 있는 문학동네가 아닌 비교적 생소한 출판사에서 책을 냈다는 사실이 이채로울 것이다. 아침신문에 이에 관한 리뷰기사가 있어서 일단 옮겨놓는다.

한겨레(06. 12. 15) 이문재 시를 물로 번지게 한 글들

원로 시인 정공채(72)씨가 1979년에 낸 시집의 제목은 ‘정공채 시집 있읍니까’(당시의 표기대로)였다. 독자가 서점 직원에게 문의할 경우 “‘정공채 시집 있읍니까’ 있습니까?”라고 물어 보아야 했던 셈이다.

시인 이문재(47)씨의 산문집을 받아 들고 ‘정공채 시집 있읍니까’가 떠올랐다. 2003년에 낸 시인 탐방집 <내가 만난 시와 시인>을 제한다면 자신의 첫 산문집에 해당하는 이 책에 시인은 ‘이문재 산문집’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러니까 <이문재 산문집>이라는 제목의 이문재 산문집이다. 정공채 시인의 시집 제목이 기발했다면, 이 산문집의 제목은 과감하다.

산문집은 크게 네 개의 묶음으로 나뉘는데, 그런 세세한 구분과 무관하게 시인의 문제의식은 일관되다. “내게 시와 산문은 아주 가까운 혈연이다. 나는 시를 통해 이 반인간적인 문명의 급소를 발견하고, 그 급소를 건드리고 싶었다. 내 시에 내장되어 있는 문제의식에 물을 묻혀 번지게 한 것이 이 책에 실린 글들이다.”(‘시인의 말’)

급소를 건드린다는 말은 자칫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천성이 비폭력 평화주의자인 시인의 발언 취지를 잘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시인이 보기에 문명이야말로 인간과 자연과 세계를 향해 무소불위의 폭력을 휘두르는 원흉이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시인의 방식이란 어디까지나 소극적 저항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산책과 걷기, 휴대전화 전원 끄기, 식성껏 라면 끓이기, 기다리기 등이 그가 동원하는 세부 전술들이다.

가령 그는 여행이 아닌 관광으로 전락한 봄날의 꽃구경을 사절하고, 도시의 뒷골목을 게으르게 산책하기를 즐기며, 녹차가 우러나기까지의 기다림을 소중히 여긴다. 특히 “내 일상은 전력의 하수인이었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전원 끄기(언플러그) 전술이야말로 그가 즐겨 구사하는 방법이다. 전원을 끔으로써 그는 일상에 빼앗겼던 자신을 되찾고 세계와 본질적으로 만난다.

“나는 전원을 끄는 순간, 세상과 단절된다. 서울 한복판이 망명지로 변한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자발적 망명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찬찬히 안팎을 둘러본다. 점심 시간이나 출퇴근길, 다 합해야 한 시간이 넘지 않지만, 나는 휴대 전화를 ‘무시’하며, 지금, 여기가 커지고 길어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최재봉 기자)

06. 12. 15.

P.S. 지금은 말쑥한 화술의 라디오방송 진행자로도 활약하고 있는 시인은 나름대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문청시절 손꼽히는 '기인'으로 지기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던 시인의 이름을 내가 가장 자주 본 건 '시사저널'의 기사들 속에서였다(그는 '기자'였다). 그리고 지금은 강단에서 시창작을 가르치는 '방송인'이다(인터넷 라디오문학 '문장의 소리' 진행을 맡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시인과의 첫만남은 (당연한 말이지만) 첫번째 시집을 통해서였는데, 이후 문학동네에서 두 차례 재간행된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민음사, 1988)이 그의 첫시집이다. 민음사에서 출간되던 시인총서들을 얼추 사모으던 내가 '시집다운' 제목의 시집을 비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기억에  두번째 시집이 <산책시편>(민음사, 1993)이다('구두'나 '산책' 같은 시어들이 시인의 걸어다닌 이력을 은근히 표나게 한다). 기억에 나의 관심을 끌었던 건 '부사성의 시학'이었는데, 나는 나대로의 흉내도 좀 내본 듯하다.

좀 터울 갖고 펴낸 <마음의 오지>(문학동네, 1999)가 세번째 시집인가(알라딘에는 동명이인의 시집들도 '1959년생 이문재'의 시집으로 잘못 등록돼 있다) . 하지만 이맘때는 시인으로서보다 기자나 문학잡지의 인터뷰어로 기억에 떠올리게 된다(기자시절에는 뛰어다녔을까?). '기억력' 탓만은 아닌 게 <내가 만난 시와 시인>(문학동네, 2003) 같은 쏠쏠한 탐방기들을 그가 썼기 때문이다(그런 유형의 탐방기로 내게 '원조'격은 김현의 <시인을 찾아서>이다). 시인이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건 지난 2002년이다.

지구의 가을 / 이문재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나는 두려워 헤어라지 못합니다
마음의 눈 크게 뜨면 뜰수록
이 눈부신 음식들
육신을 지탱하는 독으로 보입니다

하루 세 번 식탁을 마주 할 때마다
내 몸 속에 들어와 고이는
인간의 성분을 헤아려보는데
어머니 지구가 굳이 우리 인간만을
편애해야 할 까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주를 먹고 자란 쌀 한 톨이
내 몸을 거쳐 다시 우주로 돌아가는
커다란 원이 보입니다
내 몸과 마음 깨끗해야
저 쌀 한 톨 제자리로 돌아갈 터인데

저 커다란 원이 내 몸에 들어와
툭툭 끊기고 있습니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린다 해도
이 음식으로 이룩한 깨달음은
결코 깨달음이 아닙니다

책으로만 보자면 시인의 이력은 비교적 단촐하다. 그건 종이를 허투루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지와도 연관된 것인지 모르겠다. '자연친화적인' 외모에서도 드러나지만, 도시/문명과는 반친화적인(도시에서 그는 거주하는 게 아니라 다만 '산책자'로서만 행세하다) 그가 이번 산문집에서 표나게 내세우고 있는 것도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반인간적인 문명의 급소를 발견하고, 그 급소를 건드리고 싶었다"는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집과 산문집을 굳이 따로 읽지 않아도 되겠다. 그러니 산문집을 그의 시로 들어가는 가장 친숙한 '골목길' 정도로 간주해도 무방하겠다. 가끔은 젖은 구두를 벗어 해에게 보여주며 잠시 쉬어가는 골목길, 곁에 가만히...

소쩍새 우는 계절이다. 소쩍새는 울 때, 소와 쩍 사이를 길게 늘여놓는다. 소와 쩍 사이, 그 긴 침묵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소나 쩍보다 그 사이가 더 아팠다. 잠이 다 달아났다. 두세 음절로 끊어지는 자연의 소리나 기계음은 자주 의성어로 바뀐다. 뻐꾸기 소리나 초침 째깍거리는 소리는 매번 다르게 들린다. 뻐꾹뻐꾹이 바꿔바꿔로, 째깍째깍이 아퍼아퍼로 들릴 때가 있다. 소쩍이 훌쩍으로 들린다면, 그대는 슬픈 것이다. 그럴 땐 가만히 있어야 한다. 슬픔이 잘 마를 때까지 그 곁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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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12-15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근 보관함으로 들어가야겠네요.양파나 무 보관함은 꽉차있어서..(조간 썰렁 개그인가? (^ㅜ^) ..이문재 시인 좋아해요.뭐랄까 근기가 있다고 해야하나.....

로쟈 2006-12-1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기'란 말이 아주 적절하네요. 저보다도 드팀전님이 만난 시인 이야기의 보따리가 더 클 거 같습니다.^^

2006-12-15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2-1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기억의 오타는 아니고, 불수의적인 손가락의 오타입니다.^^

파란여우 2006-12-15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 뚜껑이 닫히지 않지만 그래도 꽉꽉 눌러서!^^

로쟈 2006-12-15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이건 좀 얇은 편이어서...^^
 

북데일리에서 신경림 시인의 인터뷰 기사를 옮겨온다. 신경림 시인의 앤솔러지 시집 출간과 관련한 것이다. 예전에 종로에 나가면 간혹 도심을 걷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갈대'의 시인이 어느덧 칠순에 이르셨다고 하니 세월 무상이다.

북데일리(06. 12. 04) 앤솔러지 '처음처럼' 펴낸 시인 신경림

초로의 노인이 아이의 눈을 지녔다. 모진 풍파 속에 탁해져도 한참을 탁해졌을 법한 눈망울이,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마냥 영롱하게 빛난다. 왜일까, 그 오랜 궁금증을 시인 신경림(70)을 만나고서야 드디어 풀었다.

시인은 나이가 드니, 눈물이 많아져 큰일이라고 했다. 며칠 전 그는 홀로 극장을 찾아가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다가, 눈물이 쏟아져 '혼쭐'이 났다. 1930년대 사회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 <경성 트로이카>(사회평론. 2004)를 읽다가도, 울음이 솟구쳤단다. 긴 세월 지녀온 시름과 회한을 눈물에 씻겨 보냈으니, 남은 건 어릴 적 순수함일 수밖에. "다 큰 어른이 울기나 하고, 주책이지" 얼굴 붉히는 신경림의 눈 역시, 아이의 그것과 꼭 닮아 있었다.

동심을 찾은 시인은, 시에서도 본연의 순수성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최근 펴낸 앤솔러지 <처음처럼>(다산책방. 2006)은 그 의지의 결과물. "시란 본디, 눈보다는 입으로 읽어야 제대로 맛이 나는 문학"이기에, 그가 평소 애송하던 시 50편을 엮었다.

"사람들이 요즘 좀처럼 시를 읽지 않는데 그게 읽는 맛, 읽는 즐거움을 잃어버려서 그래요. 시는 눈, 입, 귀, 3박자가 제대로 맞아떨어져야 되는 거거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쉽고 재미있는 시, 암송하기 좋은 시가 정말 좋은 시죠." 그는 요즘 시인들이 뜻을 알 수 없는 난해함으로 독자와 시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고 있다며, 고개 숙여 반성해야 한다는 '따끔한' 일침을 덧붙였다.

1955년 '문학예술'에 '갈대' '묘비' 등이 추천돼 문단에 입적한지도 어언 50년. 반세기를 시작(詩作)에 투신한 신경림은, '현대시의 산증인' 답게 시가 걸어온 역사를 <처음처럼>을 통해 되살려내고 있다. 일제강점기 우리민족이 겪은 수난의 역사를 그린 시부터, 7.80년대를 관통한 저항의식이 담긴 시, 개인의 감수성을 섬세하게 포착한 시까지. 시인은 어떠한 구분 없이 오로지 작품만으로 시를 해설했다.

"시는 독자에게 읽혀지는 순간, 작가의 품을 떠나 읽은 이의 것이 된다." 시인의 지론이다. 그는 최근 <나의 고전읽기>(북섬. 2006)에서 시인 정지용을 평가하며, 친일 시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차별적인 단죄 풍토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친일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작품이, 시인이 벌인 행위와 싸잡아 매도되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를 향한 열정 하나로 살아온 신경림은 작품이 외면당하는 일이, 자식이 상처 입는 것 마냥 안쓰러운 모양이다.

우리시대의 '큰 작가' 조정래는 시를 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시인 부인을 '떠받들고' 산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도대체 시가 무엇이기에, 20년 동안 써내려간 원고지만 5만장이 넘는다는 그조차도 풀 수 없는 난제인 걸까. 발표작만 900여 편인 우리시대의 '큰 시인' 신경림은 "시인은 남들과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만지지 못하는 것을 만질 줄 알아야 시인이란다. 이를 확실하고 힘 있게 전달하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니, 보통 사람은 꿈조차도 못 꾸겠다.

그래서 시인은 독자를 대변해야 한다. 과거, 사회 문제에 대해 방관하는 건 시인의 직무를 유기하는 일이었다. 신경림이 7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시 '농무'를 통해, 당대 농촌 현실을 꾸밈없이 드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현대는 개인적인 문제가 더욱 우세. 이제 시는 개인과 사회를 조화롭게 다루어야 한단다. "시인은 결국 시로 이야기해야 돼요. 사회를 향한 목소리도 개인에 대한 관심도 전부 시로 말해야지. 자기를 직접 드러내선 안 되는 사람이야. 시인은..."

시대는 바뀌었지만, 시인은 그대로다. 중도노선 지식인 모임을 표방하는 '화해상상마당', 남북 작가들만의 단일 조직 '민족문학인협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당신이 시를 통해서 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실천하고 있으니 같이 하자'는 권유를 받고 참여했을 뿐. 신경림은 여전히 시로써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리라고 다짐한다.

그가 애정을 쏟는 단체는, 지역주민 문화운동 모임인 '더불어 숲'과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만해마을'. 둘 모두 독자와 문학을 가깝게 하는 행사에 힘을 쏟기 때문이다. 일흔을 넘긴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신경림의 시에 대한 '타는 목마름'은 해소되지 않은 듯하다. 인터뷰 말미, 그는 "죽기 전에 꼭 써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고 밝혔다. 아이들을 위한 동시나 동요를 집필하고픈 꿈을 아직 이루지 못했단다.

시는 억지로 짜내서는 안 되기에, 시인은 동시가 써질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쓰고자 마음먹은 순간부터 입에 술을 대지도 사람을 만나지도 않는다니, 그가 두문분출 하는 날이 오면 분명 신작 준비에 들어간 것이라 짐작해도 좋을 듯하다.(고아라 기자)

06. 12. 04.

 

 

 

 

P.S. 단행본들 외에 <신경림 시전집>을 나는 따로 갖고 있지 않지만 <민요기행>의 예전 판본과 <시인을 찾아서> 등은 소장하고 있었다. 후자는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칠 때 참고하곤 했다. 아이들을 위한 동시/동요의 집필이 시인의 마지막 꿈이라고 하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후배인 김용택 시인의 오히려 선배가 아닐까 싶다. 앤솔로지 시집도 사실 김용택 시인이 먼저 내기도 했었고(또다른 편자로 안도현 시인 등도 떠오른다).

 

 

 

 

이번에 검색해보니까 재판이 나온 모양인데, 동시집 중에 기억해둘 만한 건 김용택 시인의 <콩, 너는 죽었다>(실천문학사, 1998)이다. 표제작은 그맘때 벌이삼아 다니던 학원에서 초등학생들한테 암송하도록 시켰던 시이기도 한데(아예 이젠 노래로도 나와 있는 모양이다), "시는 눈, 입, 귀, 3박자가 제대로 맞아떨어져야 되는 거거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쉽고 재미있는 시, 암송하기 좋은 시가 정말 좋은 시죠."라는 신경림 시인의 요구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시가 어디갔나 싶어 찾아봤더니, 아하, 아예 교과서로 쏙 들어가버렸구나!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이런 게 시이다. 아이들이 웃고 즐기면서 암송할 수 있는 시, 가 그래서 더 많아져야 한다. 신경림 시인의 동시도 그런 의미에서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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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작가' 대열에 들어선 이인성씨의 첫 작품이 발표되었다. 불문과 교수직에서 명예퇴직하고 한동안 창작을 위해 칩거중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창작이란 게 욕심을 낼수록 잘 안되기도 하니까) 해를 넘기지 않고 새소설을 탈고한 것. 이 '중견작가'의 재기의 신호탄이 될지는 더 두고봐야겠지만 '문학에 대한 순교자적 태도'를 강조하는 초발심만큼은 기억해둠 직하다. 문학-수도사들이 갈수록 드물어지는 세태이기에...  

한국일보(06. 12. 02) 교수직 버리고 전업작가로 8개월 보낸 이인성씨

"강의와 논문 부담에서 벗어나니 마음은 편하고 자유로운데, 거꾸로 더 큰 부담이 하나 생겼어요. 이러다 제대로 된 소설을 못 쓰면 어쩌나 하는…”

소설 쓰기에만 전념하겠다며 지난 2월 서울대 불문과 교수직에서 명예퇴직한 소설가 이인성(53)씨가 전업소설가로서 첫 번째 소설을 내놓았다.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실린 80여쪽짜리 중편 <돌부림>. 돌연한 퇴직으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학교를 떠난 후 꼬박 8개월을 매달려 쓴, <악몽> 연작 3호로 3년 만에 세상에 내놓는 작품이다.

“학교를 그만둔 후 첫 소설 쓰는 게 특히 부담이 됐어요. 어찌 됐거나 이젠 마무리가 돼서 편하긴 한데 다시 읽어보니 마음에 들질 않네요.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글이 많이 느슨해진 것 같습니다.”

섬세한 언어의 조탁,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미로 속을 헤매게 하는 치밀한 통사 구조, 이야기 자체를 휘발시켜버리는 난해하고 해체주의적인 글쓰기로 독자를 매료시키기도, 더럭 겁먹게도 하는 그는 1980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해 26년간 학생과 학자라는 생업을 갖고 글쓰기에 봉직해왔다.

소설집 <낯선 시간 속으로>(1983), <한없이 낮은 숨결>(1989), <강 어귀에 섬 하나>(1999), 장편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1995), 산문집 <식물성의 저항>. 26년간의 비블리오그래피를 이 5권의 책만으로 채우고 있는 것은 문학에 대한 그의 엄격한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자발적 과작(寡作)임에 틀림없다.

“<악몽> 연작을 마무리해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게 가장 급한 일이에요. 서너편만 더 쓰면 되는데, 내 스타일상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고, 다만 이 작업이 끝날 때까지 다른 일은 벌이지 않으려 합니다.”

그의 소설을 줄거리로 요약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도 없지만, <돌부림>은 마애불이 새겨진 거대한 돌덩어리를 마주한 현실의 ‘나’와 돌 속에 갇혀 망상과의 사투를 벌이는 의식 속의 ‘나’가 번갈아 화자 노릇을 하며 악몽과도 같은 의식의 흐름을 전개해가는 작품이다. ‘이인성 소설’의 키워드 중 하나라 할 의식의 분열이 역시 소설의 주축을 이룬다.

병이죠. 분열이라는 주제는 제 병이라 못 벗어나요. 억압돼있던 온갖 욕망들이 터져나오던 90년대 이후 나를 사로잡았던 건 과연 욕망이라는 게 뭐냐 하는 문제였어요. 욕망에 대한 탐구랄까요. 한편으로는 욕망을 터뜨리고 싶고, 다른 한편으로는 억제하고도 싶은 마음. 그러다 보니 분열이라는 문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됐죠. 그 물음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과연 욕망의 끝자리가 뭘까, 욕망에 시달려가면 결국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하는 물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악몽 아닐까요, 욕망의 최후 종착지는.”

소설만으로는 삶의 곤궁을 피할 길 없어 이런저런 생업을 찾아 헤매야 하는 게 오늘날 소설가들의 현실이고, 그 중 대학교수는 가장 각광받는 직업이지만, 그는 “걸핏하면 책 몇 권 내고 문예창작과 교수 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정작 나는 학교라는 안정된 직장에 있으면서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없고, 나부터 해방을 좀 시켜야겠다 생각했죠. 제가 자유롭게 살라고 선동해서 거리로 뛰쳐나간 친구들이 꽤 많거든요. 노래판, 영화판, 연극판으로 나가있는 그 친구들을 보면서 이젠 내가 저들 쪽에 가서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데요. 또 실제 나와 보니까 그냥 살겠더라구요. 수입은 학교에 있을 때에 비해 형편없이 줄었지만 불편한 건 없어요. 나는 연금이 나오니까 조건도 좋고.”

Madame Bovary-4

그는 불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도 불필요한 단어는 단 한 마디도 작품 속에 들여놓지 않으며 일생을 걸고 작품을 썼던 <마담 보바리>의 플로베르를 가슴 깊이 품고 있다(*사진은 클로드 샤브롤의 <마담 보바리>에서 보바리역의 이자벨 위페르. 불필요한 구석이라곤 한 군데도 없는 외모와 표정 아닌가?).

“요새는 그런 말하면 웃기는 소리 한다고들 할 테지만 문학에 대한 순교자 같은 태도가 저한테는 암시하는 바가 커요. 문학에 순교하는 그런 태도, 저도 끝까지 그런 태도로 문학을 하고 싶습니다.”(박선영 기자)

06. 12. 02

 

 

 

 

P.S. 내가 좋아하는 이인성의 책은 산문집 <식물성의 저항>(열림원, 2000)이다. 더디 읽히는 소설들과 다르게 그의 산문들은 잘 읽힌다. 그리고 재미있다. '문학에 대한 순교자적 태도'를 집약해주는 말이 또한 '식물성'이기도 하므로 '이인성 입문'을 겸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좀 이외일 수 있지만,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문학과지성사, 1995)이다. 장르를 '코미디'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이런 류의 소설들이 나는 은근히 좋다. 뭐 읽는 거야 독자의 자유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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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작가 백가흠의 창비주간논평을 옮겨오면서 <현대문학>(12월호)의 특집 '문학과 돈'에 대해 잠깐 언급했었는데, 그 필자의 한 명으로 참여했던 최재봉 기자가 그와 관련한 편집국 칼럼을 썼다. '문학상의 빛과 그림자'가 그것인데 내일자 조간에 실리게 되는 듯하다. 해서 이 페이퍼는 '미리보는 조간'이 되겠다. 

 

 

 

 

참고로 <현대문학>의 기고문 제목은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이고 '넘쳐나는 문학상과 상금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이 부제이다. '조심스럽게 쓰는 글'이란 단서를 서두에 달고 있는데. 내용 자체는 파격적인 게 전혀 아니다. 결론만큼 상식적이라 할 수 있는데, 다만 구체적인 데이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글이다. 필자는 '시궁이후공'이란 말을 정민 교수의 <한시미학산책>(솔출판사, 1996)에서 인용하고 있는데, "시는 궁해진 뒤에 더 좋아진다는 뜻이다."

"물론 반대되는 주장도 있다. 궁함이 총족됨만 같이 못하다는 뜻의 '궁불여달(窮不如達'), 또는 충족된 연후에야 공교로움이 나온다는 '달이후공(達而後工)'과 같은 이론이 그러하다." 가령 우리시대 대표작가의 한 사람인 작가 김영하의 경우가 그러하다. <문학동네>(겨울호)의 대담 '내면 없는 인간의 내면을 향하여'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지난 십 년을 돌아보니 글쓰는 즐거움, 소설을 만들고 세계를 만드는 쾌감보다는 마치 월급쟁이처럼 살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바쁘게 한 십 년 살았으니 앞으로 십 년은 좀 다르게, 더 작가답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지난 세월 부지런히 살아온 덕분에 작가로서 마음먹은 글을 제대로 써낼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강조는 나의 것) '달이후공'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연전에 소설가 김영하는 한꺼번에 세 개의 문학상을 받으면서 총 상금이 1억원을 넘겨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창작에 있어서 '궁이후공'이 맞는지 '달이후공'이 맞는지는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다만 200여 개를 훌쩍 넘어선다는 한국의 문학상들이 '달불여궁(達不如窮)'의 사태를 초래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는 있겠다.  

한겨레(06. 12. 01) 문학상의 빛과 그림자

“동전도/ 돈이지만/ 또한 돈일 수 없지만/ 원효교 난간 위로/ 해는 떨어지고,/ 강건너/ 비행장에/ 불을 켠 채 착륙하는 밤비행기./ 나의/ 하루의/ 공허한/ 귀환을,/ 동전도/ 돈이지만/ 또한 돈일 수 없지만/ 발길에 채어/ 어둠 속으로/ 땡그르르 굴러가는/ 1966년 12월 1일/ 내 생애의 동전 한닢.”(박목월 <일일> 전문)

12월1일. 마지막 달의 첫날이다. 40년 전 목월이 노래한 대로 ‘생애의 동전 한닢’에 지나지 않는 하찮은 날일 수도 있지만, 오늘은 여느 날과는 다른 각별한 감회를 자아낸다. 마지막과 처음이 어우러져 긴장과 이완을 아울러 선사하는 까닭이다.

문단 역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출판사와 잡지 별로 송년회가 줄을 잇고 각종 문학상 시상식도 이즈음에 집중되어 있다. 나라 밖에서는 저 유명한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12월10일에 열린다. 문학 지망생들에게 이 무렵은 신춘문예에 응모하고자 골방에서 원고지나 컴퓨터 자판과 씨름해야 하는 철이다. 그들은 문학상 시상식 소식을 접하면서 언젠가 자신이 그 화려한 자리의 주인공이 되리라는 은밀한 기대를 키우고 있을 것이다.

문학상 시상식 자리는 풍성하고 따뜻하다. 수상자는 행운에 감사하며 겸손한 어조로 문학적 포부를 밝힌다. 문단 동료와 선후배로 이루어진 손님들은 축하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사진기의 플래시가 펑펑 터지고 그에 질세라 수상자와 축하객들의 웃음소리도 반 옥타브쯤 올라간다. 공식 행사가 끝나면 일행은 예약해 둔 술집으로 우루루 몰려간다. ‘진짜’ 축하를 하려는 것이다. 아예 술청 전체를 세내서는 먹고 마시며 떠들고 노래 부른다. 때로 술이 과해서 울거나 싸우는 이도 없지 않지만, 문인 특유의 인정과 낭만으로 작은 소동쯤은 넉넉히 감싸안는다.

문화의 다른 부문과 비교해 보아도 문학상은 종류도 많고 상금도 풍성하다. 지역 단위에서 시상하는 작은 규모의 상들까지 포함하면 현재 이 나라에는 몇백 개의 문학상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평균으로 따지자면 적어도 하루에 하나 꼴은 되지 않을까. 문학상이 많다는 것은 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많은 문학상이 해마다 수상자와 수상작을 내고 있다면, 한국문학은 나날이 풍요로워지고 있지 않겠는가.(금전적으로가 아니라 문학적 성과에서 말이다.)

그렇지만 문학담당 기자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실감은 그런 추측과는 거리가 멀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문화면 머릿기사로 다룰 만한 시나 소설이 나와 주어야 하는데, 그만한 작품이 눈에 뜨이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기 일쑤인 것이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이육사 <절정>) ‘그 많던 문학상 수상자와 수상작은 어디로 간 것일까.’(박완서).

문학 전문지 <현대문학> 12월호의 특집 ‘문학과 돈’에서 그 의문에 대한 답의 일단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나 자신 그 특집의 필자로 참여한 처지라 다소 민망하기는 하지만, 특집의 또다른 필자 역시 “돈은 문학 생산 현장에서 대체로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들어 ‘금전망자(金錢亡者)와 벼슬지상’(천상병)의 문단 풍토를 꾸짖고 있었다. 문학상의 영광과 상금이라는 금전적 보상이 반드시 작품 창작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즈음 하루가 바쁘게 이어지는 문학상 시상식에 입회하면서 때로 마음 한켠이 불편했던 까닭이 분명해진 느낌이다. 문단의 한 해 소출을 결산하고 이듬해의 풍작을 염원하는 문학상 시상식이 마음에서 우러난 축하와 격려의 자리로 바로 설 수 있기를 바란다.(최재봉/문학전문기자)

06. 11. 30.

 

 

 

 

P.S. 이 기사와 일맥상통하는바 특집호 기고문에서의 결론은 이렇다: "200년대 벽두의 문인들이 70년대의 문인들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형편이라는 것은 객관적 사실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문학이 70년대보다 그만큼 더 나아졌노라고 장담하지 못하겠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분명한 퇴보와 위기로 현재의 문학적 상황을 평가하기도 한다. 문학의 위기니 종말이니 하는 수상쩍은 말들이 횡행하게 된 데에 문학상은 간접적으로나마 책임이 없는 것일까, 묻고 싶다."

한데 최기자의 기고문을 읽으면서 보다 흥미로웠던 대목은 문학동네의 얘기와 견주기 위해서 필자가 들고 있는 언론동네의 사례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언론동네에서 선배들에게 들은 애기 중에 이런 게 있다: 예전 70년대까지의 기자들은 그들 자신이 가난한 처지였다; 월급도 적었거니와 그 월급조차 술값이니 교통비로 다 날아가버려 정작 집에 가지고 들어가는 돈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권언유착이 형성되면서 기자들에 대한 처우가 급격히 나아지기 시작한 게 80년대 이후였다; 그와 함께 신문과 방송에서 가난한 이들의 살림에 대한 기사가 실종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기자들의 피부에 와닿는 문제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해서 드는 생각은 문학의 위기나 종말 이전에 한국사회에서는 언론의 위기와 종말이 먼저 도래했었다는 것이다(언론상도 그렇게 많은가? 혹은 상이 따로 필요없을 만큼 기자들이 유복한 처우를 받고 있는 것인가?). 이 위기는 아무도 모르게, 아무런 통증도 없이 지나가버린 것인가? 왜 우리주변에 '유령기자'들이 그렇게 많은 것처럼 보이는지 이젠 이해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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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11-30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문학상이 몇백개라고요? 설마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그 많던 문학상 수상자들은 어디로 갔을까?'네요.

로쟈 2006-12-01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상 한번 못 받아본 작가'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 같습니다...

다크아이즈 2006-12-0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은 '문학가'가 되어야 할 문학자 같아요. 로쟈님 서재에 적응 안 됐을 때 님의 펌글들을 님의 주체적 문학 행위로 이해했다는..^^* 님 책 내시면 애독자 예약 접수. 혹, 평론집이나 번역서 준비하지 않나요?

로쟈 2006-12-01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린 책들이 많이 있긴 합니다. 욕심은 많아도 걸음은 느린지라... 어쨌든 내년부터는 성과가 있기를 저도 기대합니다. 그리고, '예약'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