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연재를 시작한 경향신문의 '작가와 문학 사이' 꼭지는 매번 챙기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김연수에 이어서 이번주는 평론가 신형철씨가 쓴 시인 문태준의 스케치이다. 문태준 시인과 관련한 페이퍼들은 두어 번 쓴 바 있고, 아래글에서 '문사마의 시대'란 말도 기억엔 내가 쓴 말 같다(내가 그리는 젊은 시인들의 구도는 '문사마와 바퀴벌레들'이다). 그러니 인연이 없지 않다. 평론가의 지적대로, 백석-장석남의 계보를 잇는 적자인데(유사 계보에 백석-안도현도 있다), 젊은 나이에 너무 노숙한 경지에 이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의 시들을 읽다보면 시를 잘 쓰는 게 시인의 미덕이면서 또한 약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말도 안되는 트집인가?). 여하튼 '대가급'을 이미 예약해놓고 있는 시인의 묵묵한 '소걸음'을 따라가보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일들 중 하나인 것만은 틀림없다.    

경향신문(07. 01. 13) [작가와 문학사이](2) 문태준

1970년에 태어나 1994년에 시인이 되었다. 세 권의 시집을 펴냈고 여섯 개의 문학상을 받았다. 받은 상보다 받지 않은 상을 헤아리는 것이 빠르다. 그래서 혹자는 ‘문사마의 시대’라고 했다. 욘사마만큼 인기 있겠는가마는 욘사마만큼 노곤할 일도 많겠다. 소설가 김연수와 김중혁이 그의 고교동창이다. 김연수가 도서관 타입이고 김중혁이 박물관 타입이라면 문태준은 마을회관 타입이다.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젊은 시인들이 ‘고양이’과라면 그는 비슷한 연배인데도 ‘소’과에 가깝다. 그는 소처럼 ‘마실’ 다니며 끔뻑끔뻑 쓴다. 그런데 그게 너무 아름답다.

멀게는 백석, 가깝게는 장석남과 시적 혈연관계다. 그는 서정시 가문의 적자다. 서정시는 아름다운 말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말을 아름답게 쓰는 것이다. 어떤 말이 팽팽한 긴장을 품어 읽는 이를 한동안 붙들어 맨다는 것이다. 한 단어를 공용사전에서 구출해 개인사전에 등록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수런거리다’나 ‘뒤란’ 같은 말들이 그렇다.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이후 이 말들은 시인 문태준의 인질이 되었다. 인질이 인질범을 사랑하듯 이 말들은 이제 문태준만을 사랑한다. ‘맨발’과 ‘가재미’를 거치면서 그런 말들 점점 많아졌다.

부럽다. 자신의 마음을 ‘뒤란에서 수런거리는’ 것들에게 몽땅 내주는 방심(放心)이 먼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그런 것들의 존재를 혼신으로 호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떤 것들이 단지 ‘있다’는 사실만을 지극하게 기록한다. 깨달음의 발설을 자제하고, 감탄문이나 느낌표를 아낀다. 혹은 그럴 때 아름다워진다. 출석을 부르는 시간만큼은 모든 학생들이 평등해지듯, 그가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다’고 그 존재를 호명해 줄 때 만물은 서정적 사해동포주의로 느릿느릿 물든다.

그가 ‘나’를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감응하고 해석하고 교설하는 ‘나’가 겸손하다. “낮과 밤과 새벽에 쓴 시도 그대들에게서 얻어온 것이다”라고 그는 썼다. 이런 겸허함은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의 습관 같은 것이라 감동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의 시가 실제로도 그렇게 씌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은 감동적이다. 시를 대하는 태도와 시를 쓰는 원리가 일치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가 시를 얻어온 ‘그대들’의 목록은 다채롭지만 특히 ‘나무’에 진 빚이 커 보인다.

“내가 다시 호두나무에게 돌아온 날, 애기집을 들어낸 여자처럼 호두나무가 서 있어서 가슴속이 처연해졌다.”(‘호두나무와의 사랑’) “아픈 아이를 끝내 놓친 젊은 여자의 흐느낌이 들리는 나무다(…) 바라보면 참회가 많아지는 나무다.”(‘개복숭아나무’) “꽃에서 갓난 아가 살갗 냄새가 난다/젖이 불은 매화나무가 넋을 놓고 앉아 있다.”(‘매화나무의 해산’) 세 권의 시집에서 한 편씩 골랐다. 모아놓고 보니 꽤나 닮아있다.

이 세 편의 시에서 그의 근본 중 하나를 짐작한다. 그의 시는 여자를 슬퍼하는 남자의 시다. 그는 나무에게서 하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 아이를 잃은 여자, 아이를 낳은 여자를 본다. 이 여자들은 어머니라기보다는 출가한 누이에 가깝고, 시인은 고단한 그녀들 앞에서 조용히 아파한다. 혹자는 그의 시에서 장자(長子) 의식을 읽어냈다. 나는 차라리 철든 막내를 볼 때 누나들이 느끼는 애처로움 같은 것을 느낀다. 그는 따뜻하고 슬프다. 이를 자비(慈悲)라 한다. 그는 불교방송 프로듀서다.



몰인정의 시대에 그의 시는 갸륵하다. 그의 다정(多情) 때문이다. 이조년은 “다정도 병인 양하여”라 했다. 병 맞다. 이를 다정증이라 부르려 한다. 문태준은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다정증 환자다. 이 환자가 우리 딱한 정상인들의 가슴을 찌른다. 저 환자의 눈에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휑하고 빤한 인생일까 싶어진다. 그래서 돌연 아연하여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되는 것이다. 서정시란 그런 것이다. 언제 그 맥이 끊어질지 모를 이 소중한 환후(患候)를 우리는 아껴 기린다. 그는 낫지 말아라. 그래야 우리도 산다.(신형철|문학평론가)

07.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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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키스트 2007-01-13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는 치유되지 말았으면 하는 질병들이 꽤 있군요. 형이상학적 질병도 그렇고, 다정증도 그렇고.. 남의 병이 낫지 않기를, 심지어 깊어지기를 이렇게 바라도 되는 건지..

로쟈 2007-01-13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이란 종 자체가 '생태학적 박테리아'라고도 하는데 그보다는 좀 인간적인/낙관적인 병들이 아닐까요...

kleinsusun 2007-01-14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문태준이 불교방송 PD였군요.^^
근데... 김중혁이 "박물관 타입"이란 건 어떤 뜻일까요?

로쟈 2007-01-14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용지물 박물관'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나비80 2007-01-16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형철의 평을 존중하시는 모양이군요.^^ 문태준 시인은 동년배 젊은 시인들이 가닿을 수 없는 삶의 절창을 줄곧 보여주곤 합니다. 저는 비슷한 의미에서 손택수 시인을 아낍니다.

로쟈 2007-01-16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택수 시인도 많이 거명되는 걸 들었지만 아직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소이부답님의 의견을 참고하지요.^^

다크아이즈 2007-01-19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벼파는 시, 이면을 꿰뚫는 시, 부끄러움으로 화끈거리게 하는 시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책꽂이의 문태준에게 무덤덤합니다. 모국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나머지 병적으로 그 ' 배열'에만 집착하는 몇몇 시인들의 언행불일치가 저로하여금 '착한 시' 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하나 봅니다.

우쒸, 저로서는 문태준의 시보다 신형철의 해석이 더 탐나는데요.

로쟈 2007-01-19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형철씨한데 전해드리죠.^^

다크아이즈 2007-01-20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쒸, 더 열 받네. 로쟈님만 신형철님 측근이라는 게!
하지만 로쟈님은 모든 ~디너들의 측근이니 용서할게요.

로쟈 2007-01-20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에 비평집이 나온다니까 그때 한권 사시고 싸인도 받으시길.^^
 

얼마전 한국문학이 단편 중심에서 장편 중심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문제제기를 담은 최재봉 기자의 칼럼을 옮겨온 바 있는데, 그에 호응하는 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인/비평가 남진우의 칼럼과 이번에 이상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전경린의 인터뷰 기사를 보태놓도록 한다.

한국일보(07. 01. 10) 장편소설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20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모두 7권으로 이루어진 대작이다. 이 작품이 유명해지자 한 친구가 다음과 같이 불평했다고 한다. "이 긴 작품을 다 읽어내려면 결핵에 걸리거나 다리가 부러져서 침상에 오래 누워 있어야 할 것이다."(*내가 이 작품을 못 읽은 것은 아직 다리가 부러진 일이 없어서이다.)

● 단편 편향은 한국문학 발전의 장애물

요즘 사람들은 병원에 입원해서도 차분히 소설을 읽기보다는 하루 종일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TV에 넋을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일화는 역으로 현단계 한국문학이 가진 취약한 부분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즉 한국문학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음미할 수 있을 만큼의 유장한 호흡과 일정한 규모를 지닌 작품, 다시 말해 장편소설의 창작에 그리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문학의 중심을 소설이 차지했다면 그 소설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당연히 장편이다. 하지만 한국문단에선 신문학 초창기부터 유독 단편소설이 강세를 보여왔고 이 현상은 지금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물론 제도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가 존재했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단편소설에 대한 정도 이상의 편향은 이제 한국문학의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문학 역시 최근 세계화의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는데 한국문학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도 뛰어난 장편이 지금보다 더 많이 나와야 한다. 한국 독자가 외국소설을 읽을 때 자연히 장편에 손이 가는 것처럼 외국 독자들도 한국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좋은 장편소설부터 찾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편소설의 진흥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범문단적으로 단편을 덜 쓰고 장편에 주력하자는 식의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까. 당연한 사실이지만 요란한 구호를 앞세우기보다는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장편에 몰입하고 거기서 문학적 경제적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제안하고 싶은 것은 각종 문학상이나 정부의 지원에서 장편소설에 대한 인센티브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의 모색이다.

현재 우리나라엔 수많은 문학상이 있지만 유명 문학상이 대부분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신인 공모를 제외하고는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은 극히 희소하다. 심지어 단편과 장편과 창작집을 두루 섞어 심사하는 문학상도 있는데 이는 마라톤 선수와 100미터 달리기 선수를 동일한 선상에 놓고 평가하겠다는 발상에 다름아니다. 문예진흥위원회 등 관련 단체에서 창작 지원을 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 문학상, 지원도 장편에 인센티브를

지금처럼 문예지에 실린 단편소설 가운데 우수작을 선정해서 지원하는 방식은 심하게 말하면 장편소설을 쓰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랜 기간 고생해서 쓴 장편소설로 받을 수 있는 초판 인세가 불과 얼마인데 단편소설 하나로 그보다 훨씬 많은 지원금을 받게 된다면 작가들이 당장 집중할 장르가 무엇일지는 자명하다.

단편소설을 열심히 잘 쓰다보면 저절로 좋은 장편소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의 위기니 죽음이니 하는 추상적 주제에 매진하기보다는 한국문학을 진작시킬 수 있는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방안의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남진우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ㆍ시인)

경향신문(07. 01. 11) 전경린 “단편써야 먹고사는 풍토 안타깝다”

지난해 발표한 단편 ‘천사는 여기 머문다’(‘문학동네’ 여름호 수록)로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전경린씨(45)가 단편 위주로 흘러가는 현재 한국문학 풍토를 비판했다. 전씨는 지난 9일 이상문학상 수상자 발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문단 구조가 단편을 쓸 수밖에 없는데 독자들은 이야기가 풍부한 장편에 목말라하고 있다”면서 “장편이 쏟아져 나와야 한국문학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글쓰기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전업작가들이 단편을 선호하는 이유는 우선 문학계간지에 수록될 때 원고료를 받을 수 있고 다시 소설집으로 묶어낼 수 있는 데다 ‘연봉’ 정도의 상금을 주는 문학상 또한 단편 위주로 돼있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시행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지원금 역시 대부분 단편에 주어진다. 문예위는 지난 한해동안 계간지에 실린 우수작품 144편에 대해 각각 300만원씩 지원했는데 이중 장편은 10여편에 불과하다. 이 지원금은 한 작가가 1년에 3번까지 받을 수 있다. 때문에 ‘단편 3개만 잘쓰면 기초생활비는 건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반면 장편소설은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써봤자 전적으로 시장판매에 기대는데 현재의 수천부 판매량으로는 원고료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부분 문예지가 대중성보다 문학성 위주로 쓰여지는 단편을 주로 수록하기 때문에 장편을 발표할 지면이 없다. 작가 입장에서도 장편 연재의 경우 이미 발표된 부분을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고칠 수 없다는 부담 때문에 탈고까지 거친 뒤 한번에 발표하는 전작(全作)을 선호한다.

전씨는 “한국문학이 활성화됐던 1970년대를 돌아보면 박완서 최인호 이외수 등의 선배들이 독자와 호흡하는 장편을 쏟아냈다”면서 한국작가들은 단편에 매달리고 일본소설을 비롯한 외국소설이 장편을 장악한 현재의 문학현실을 아쉬워했다.

그는 또 남녀간의 갈등, 외도, 폭력 등을 주로 그려온 자신의 작품세계와 관련, “통속은 우리 삶과 가장 밀착돼 있는 테마”라면서 “통속에 대한 배제는 우리 문단의 순수성에 대한 집착이자 독자와의 호흡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는 “문학성과 통속성이라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걸어왔다”면서 “통속 범주의 테마들을 새롭게 조명, 창조하고 삶의 한 부분으로 회복시킬 수 있다면 문학의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번 이상문학상 수상작 ‘천사는 여기 머문다’는 유부남이었던 모경과 결혼한 뒤 의처증과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주인공 인희가 독일의 언니집을 찾은 뒤 낯선 이국땅에서 주변과 삶에 대한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는 줄거리다. 심사를 맡았던 권영민 서울대 교수는 “최근 소설들이 작위적인 구성에 몰두하거나 파편화된 일상을 과장적으로 그려내는 데 비해 이 작품은 삶의 현실에 대한 고뇌와 갈등을 내면화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통속적 소재를 인간 내면에 자리한 선과 악의 양면성에 대한 예리한 검증과 섬세한 기술로 승화시켰다”고 소개했다. 이 작품을 비롯, ‘빗속에서’(공선옥), ‘아버지와 아들’(한창훈), ‘소년J의 말끔한 허벅지’(천운영) 등 우수작 7편이 실린 수상작품집은 이달 중순 출간된다.(한윤정 기자)

07.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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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키스트 2007-01-11 0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만한 장편소설이 왜 그렇게 없나 했더니만.. 글로써 먹고살기가 워낙 고달픈 땅인데, 장편 써서는 더더욱 밥 먹기가 힘든 형편이었군요...

기인 2007-01-11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래도 신춘문예 같은 경우는 단편 중심으로 하는 것이, 많은 신인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요.

로쟈 2007-01-11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편부터 써서 기본기를 닦고 장편은 쓴다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같은 문장으로 이루어지긴 하나 서로 종류(종자)가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똑같이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그런 문학상도 있다지만, 어불성설이죠). 현재와 같은 단편중심의 문학 풍토가 한국문학의 성장을 지체시키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근대문학의 종언'이라고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식이면 진작부터 판이 끝난 게 아닌가 싶은 거죠...

딸기 2007-01-11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구나 +.+
다리가 부러져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수 있는 거였군요. ^^

그냥 저는 잘 몰라서 여쭤보는 건데요,
장편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근대문학의 바탕인 근대가 끝나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로 '이야기'가 없어져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작가적인 뇌들이 단편화되어서 그런 것일까요?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만 장편이 사라진 것인가요,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건가요?

저는 소설들 많이 읽었다고는 결코 할 수 없지만,
참 울나라 소설들이 상상력 부족하다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장길산 태백산맥 이런 장편들 보면
'서사'는 있는데 역시나 천재적인 상상력은 없다는 느낌...

제가 찾는 것은 대하소설은 아니고, '게벨라위의 아이들' 같은 소설인데
참 찾기가 힘들어요. (노벨문학상 급 작품만을 찾는 것은 욕심이 과한 걸까요)

로쟈 2007-01-11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문학은 특이하게도 단편 아니면 대하소설 모드입니다(짐작에 세계문학사에서 희귀한 사례가 아닌가 싶어요). 작가들 탓은 아니며 한국 특유의 문단/문학제도 탓이라고 생각됩니다. 잡지 중심의 문학사(문학잡지가 이렇게 많은 나라도 거의 없구요). 근대문학은 끝났다고 하나 무게 있는 포스트모던 장편소설들도 외국에선 심심찮게 나오는 걸 보면 아무래도 한국문학의 체질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바뀌어야 한다고 보고, 우리 작가들도 쓰다 보면 또 잘 쓰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2007-01-11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1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공개해도 좋을 만한 유익한 코멘트로군요...

stella.K 2007-01-1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을 많이 읽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딸기님처럼 상상력도 상상역이지만 소재의 빈약성도 있는 것 같아요. 소재들을 발굴해야 하는데 작가들이 감정놀음만 하려고 하거든요. 상상력이 없으면 재미라도 있던가...

나비80 2007-01-12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까지 한국 문학의 최대 장점이 단편의 융숭함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면의 문제점 때문에 염려하시는 분들이 많군요. 로쟈님은 아예 장편과 단편을 다른 종류의 문학으로 보시기까지 하시구요. 재기넘치는 작가들이 문예지에 단편들만 발표하고 '소설집'으로 묶어내 우려먹는 현실은 꽤나 아쉽습니다. 지적하신 문단 제도나 문학상 운영의 문제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형편이구요. 그런데 장편 체제로의 전환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장편분량의 플롯과 이야기를 마련하지 못하는 뜨내기 작가들을 걸러낼 수 있는 창구가 되겠지만 실례를 보자면 되려 무절제한 사변담으로 '냄비받침' 한 권을 너끈히 써대는 소설공장장들이 마구 설쳐댈까봐 그게 걱정이지요. 또 로쟈님은 소재 자체의 빈곤으로 보시는데 제가 보기에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소재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깜짝 놀랄만한 재료들만 준비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재료를 장악하고 포획하는 힘이 부족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로쟈 2007-01-12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09님/ 그게 '세계문학'과 경쟁하려니까 성에 차지 않는 부분들도 있겠죠. 그래도 우리 것이어서 감동적인 대목들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소이부답님/ 자주 뵙네요.^^ 소재의 빈곤 같은 걸 특별히 느끼진 않구요, 저로선 작가적 상상력과 현실감각, 그리고 문장력 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소설공장장'은 걱정하지 않는데, 단편들의 경우에도 어차피 건질 만한 작품은 많지 않거든요. 자체적으로 걸러지고 걸작들이 남게 될 거라고 봅니다...
 

글을 올리다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다시 쓴다(많이 안 쓴 게 다행이다). 다른 게 아니라 올부터 경향신문에 '작가와 문학 사이'란 연재물이 실리는 모양이다. 그 첫기사는 문학평론가 심진경씨가 '유령작가' 김연수를 다루고 있다. 반가운 연재이기에 옮겨놓는다. 중간에 삽입한 이미지들은 알라딘의 방침에 따라서 상품페이지에 노출되지 않는 걸로 갖다 쓴다(그래서 사이즈가 좀 크다).

 

경향신문(07. 01. 06) [작가와 문학사이](1)김연수

한 편의 소설, 김연수의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수록)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소설에서 평범한 회사원인 ‘나’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전처와 만나 안국역 근처 일대를 걷다가 어정쩡하게 헤어진다. ‘나’는 그녀와 헤어진 후 안국동과 화동과 가회동과 재동이 나오는 북촌 근처의 지도를 산다. 그리고 그날의 행로를 지도 위에 그어나가기 시작한다. 안국동 175번지 앞에서 걷기 시작해서, 우리의 대화는 가회동 12번지 지날 즈음 끊기고, 그러다가 재동 83번지 헌법재판소를 지날 즈음 그녀는 꿈 얘기를 하고….



그러나 사실 그날의 행로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녀와 내가 걸어다닌 그 길의 행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은 그녀와 내가 왜 헤어졌는지, 그날의 만남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되풀이해서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자신들이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걸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나무는 박지원, 지구의, 홍영식, 갑신정변, 제중원 등과 같은 역사적 사실과 느슨하게 연결된, 이제는 천연기념물이 된 육백년 된 백송이다. 소설에서 ‘나’는 질문한다. 과연 나무를 중심으로 그려진 그날의 동심원은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백송처럼 육백년을 견디면 우리의 행로도 필연이 될까.

모든 의미는 사후적으로 결정된다. 무의미한 행로 중심에 놓인 육백년 된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우연과 농담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일상은 어떤 의미의 빛을 띠게 된다. 이즈음 김연수의 장편소설(‘밤은 노래한다’ ‘모두이면서 하나인’)은 이 우연의 세계에 떨어진 개인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흔히 역사라고 하는 필연과 진담의 세계가 어떻게 우연과 농담의 세계와 겹쳐지면서 이어지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거기에는 허무한 농담의 세계를 견디려는 인간의 의지가 있다. 김연수 소설의 평범한 개인들이 결코 평범하달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놓인 우연한 삶의 자리에 대해 끝까지 질문한다. 명쾌한 답은 없지만, 결국 대답 없는 그 질문은 그들을 벽 앞의 절망으로 밀어가겠지만 그래도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김연수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이자 불가지적 세계의 암호를 풀려는 자이다. 그는 자기가 던지는 질문에 정답은 없으며 세계라는 수수께끼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질문과 해석을 중단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그는 모든 사실들을 동원한다.



그는 성균관대 동아시아 협동과정 석사과정에 있는 ‘학삐리’ 작가이자 ‘젠틀 매드니스’라는 번역서를 출간한 역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단편 하나를 쓰기 위해 수십 권의 책을 탐독한다는 그의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밖에. 그러나 사실을 그러모아 허구의 탑을 쌓는다면 그것은 참말일까, 거짓말일까(*여담이지만, 나는 도서광 열전이라 할 <젠틀 매드니스>를 소장하고 있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책에 미친 사람은 아니라는 게 입증된다!).

그는 소설을 쓸 때 아무리 많은 자료를 읽어도 알 수 없는 부분이 나오면 그제서야 이 소설은 제대로 됐구나 하는 생각을 한단다. 그에게 사실에 대한 집요함은 결국 모든 사실을 동원해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 ‘알 수 없음’의 세계를 향한 그의 질문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소설가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농담 같은, 거짓말 같은, 우연 같은 우리의 삶을 진담으로, 참말로, 필연으로 만들어주는 자가 아니겠는가. 이를 위해 작가는 자신의 삶을 통째로 문학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굳빠이, 이상’에서 삶 전체를 판돈으로 걸고 스스로를 천재작가라는 허구적 텍스트로 변형시키고자 한 ‘이상’에게서 우리는 작가 김연수의 표정을 본다. 그것은 이 시대의 마지막 문학적 낭만주의자의 표정이다. 이토록 젊은 그가.(심진경|문학평론가·서울예대 강사)

07. 01. 06. - 07.

P.S. 마지막 멘트는 무슨 의미일까? '이토록 젊은' 그가 '이 시대의 문학적 낭만주의자의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게. 보통 낭만주의는 젊음과 잘 접속되는 것인데, 우리 시대의 '이토록 젊은' 작가들은 이 '철지난 낭만주의'에 대해서 대부분 냉소하거나 조롱한다는 얘기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한국문학의 특수성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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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7-01-07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은 당근 노땅이 지키는 건데^^... 이런 뜻 아닌가염

로쟈 2007-01-07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땅들은 다 어디가고 유령이 지키나요?^^

비로그인 2007-01-0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다크아이즈 2007-01-19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문단의 젊은 작가들이 '낭만주의'를 폐기처분한지 오래되지 않았나요? 박민규나 이기호도 낭만주의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요.

i 2007-01-2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비범한 동시대 한국 작가라고 여겨집니다.

로쟈 2007-01-20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다리 건너 전해드리도록 하지요.^^
 

작년 한해를 돌이켜볼 때 가장 인상적었던 경험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나는 상반기에 일군의 미술작가들과 세미나를 할 기회가 있었고, 하반기에는 우연히도 일군의 젊은 비평가들과 교우할 기회가 있었다. 평소에 사람들과 대면할 일이 많지 않은 터라 교제의 폭이 넓지 않은데, 작년엔 몰아서 한 10년치의 교제를 나눈 듯하다.

아이의 방학숙제를 겸하여 낮에 인사동거리를 거닐다가 중간에 혼자만 학교로 빠져나왔는데, 돌아오는 전철에서 읽은 기사에서 낯익은 얼굴과 이름을 발견했다. '한국비평의 뉴웨이브' 혹은 '누벨바그'라고 지칭되는 일군의 젊은 비평가들이 최근 2-3년동안 괄목할 만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데(최근 문학평론가 복도훈씨가 수상한 현대문학상 평론부문의 후보자들 대다수가 이 '뉴웨이브'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젊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이다. '2007 문화계 주목 이사람'이란 연재물이 그를 다룬 것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하지만 그의 실제 비평은 놀랍다. 그 재치있는 문체와 세련된 논리에 맛을 들이면 다시 찾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올 여름엔 첫비평집이 나온다고 하니까 고대해볼 일이다.

한국일보(07. 01. 05) 문학평론가 신형철

약력은 짧다. 본인 말마따나 아직 박사 학위도 없고, 책 한 권 낸 적 없다. 그런데 실하다 싶은 시집, 소설책의 뒷면에는 수월찮게 그의 해설이 실려 있다. 그에게서 해설을 받으려는 시인, 작가가 줄을 섰다는 소문도 들린다. ‘제2의 김현’이라는, 듣는 이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찬사도 들린다. 데뷔 2년도 안 된 신예 문학평론가 신형철(31)씨.

2005년 봄 계간 <문학동네>로 평론활동을 시작한 그는 독자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래서 종종 비평가의 잡무로 여겨지는 해설을 소중히 끌어안는 평론가다. 최근 시인 남진우 김병호 이병률, 소설가 이기호 오현종 이해경의 작품 해설을 썼으며, 지금도 누군가의 해설을 쓰고 있고, 써야 할 해설도 수북하다.

“해설 좀 그만 쓰고 묵직한 글을 쓰라고 충고하는 선배들도 있어요. 하지만 비평이 활발해져서 좀 더 가까이 독자와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급적 청탁이 들어오는 해설을 모두 쓰려고 합니다.” 그는 “독자들이 해설을 보는 건 뭘 몰라서가 아니라 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라고 숫되게 말했다.

“그 첫 대화 상대가 바로 해설이에요. 전 이렇게 읽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독자에게 말을 거는 거죠.” 독자였던 시절 그는, 좋은 시나 소설을 만나면 나중에 먹으려고 아끼는 음식처럼 끝까지 해설을 남겨두었다가 작품을 다 읽고 나서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춰봤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문학평론가가 꿈이었어요. 작품을 읽고 나면 늘 평론가들은 어떻게 썼나 궁금해서 찾아 읽었는데 작품보다 비평이 더 좋았던 경우가 훨씬 많았죠.”

그의 글은 해박하면서도 따뜻하다. 평론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기 문체를 가졌다는 평을 듣는 그의 비평은 문장에서 감수성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개성적이다. 그래서 ‘제2의 김현’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모양이라고 물으니,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후폭풍이 두렵다”며 손사래를 쳤다. “제 글이 그나마 덜 딱딱해서 그런 얘기를 하는 듯한데, 김현 선생님은 아직도 전범이고 신화예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죠.”

작가의 단점보다 장점에 주목하는 그는 “좋은 비평은 멋진 비판이 아니라 멋진 칭찬”이라고 말한다. “작가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있으면 굳이 ‘주례사’를 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장점들을 쓰게 되고, 독자들에게 그걸 말하고 싶어져요. 비판할 점은 눈에 쉽게 보이지만, 장점은 그를 이해해야만 보이는 거니까요.”

근래 보기 드물게 시 비평과 소설 비평을 아우르는 그는 “마치 시 독자, 소설 독자가 따로 있는 것처럼 분화한 비평 풍토가 문학을 크게 조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며 “능력이 되는 한 이 둘을 병행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평단이 너무 국문과 위주라 동시대 외국문학과의 비교와 소통이 거의 없는 것도 비평의 황금기로 돌아가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아직은 당대 한국문학을 따라가기에 벅차 손을 못 대고 있지만 언젠가 ‘하루키론(論)’ 같은 외국 작가론도 써보고 싶어요.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 논리적으로 맞서 문학을 옹호할 수 있는 논리를 계발하는 것도 제가 매진해야 할 과제구요. 비평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70, 80년대처럼 그 자체로 작품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비평을 통해 비평 독자들을 확보하고 싶습니다.”(*비록 나는 그게 '논리'의 문제를 넘어선다고 생각하지만.)

올 여름 그는 <몰락의 에티카>라는 제목으로 그동안 쓴 글들을 묶어 책으로 낼 예정이다.(박선영 기자)

● 내가 본 신형철

신형철이 출현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문단에 퍼졌다. 비평이 지쳐 있고 허덕이기까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어서 그의 출현은 반가운 것이었다. 몇 달 전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의 가방에서 뭔가 삐져나온 것이 있어 뭐냐고 물었더니 주섬주섬 누군가의 제본된 시집 원고를 꺼내 보여 주었다. 쓸 원고에 대해, 비평할 작품에 대해 그냥 원고뭉치가 아닌 직접 제본을 해서 읽는다는 그, 비로소 그가 보였다. 그를 본 것뿐만 아니라 그의 단단한 세계를 보았다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그의 시평을 아끼는 것은, 그 비평이 한 글자 한 글자 아껴서 읽어야 할 정도로 섬세하고 정밀해서 오히려 시를 더 시적이게 하는, 어떤 면에서 몸으로 애정으로 시를 껴안은 채로 뛰어 넘어서는 (비상하는!) 미덕 때문이다. 작가와 비평가, 서로의 가슴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지 않을 때 문학은 새로운 의미를 입지 않는가.

신형철의 출현을 환영하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그의 비평이 단연 발랄하고 튀며, 젊고 신선할뿐더러 재미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작가의 작품과 비평가의 시선, 그 사이에 독자의 시각을 배치시키는 재주가 남다른 데다 텍스트를 애정으로 장악하고 있다는 점 또한 큰 매력인데, 친절하고 맛있기까지 한 그의 비평에서 애정을 넘어선 순정을 보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분명 비평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평론가다. 평론가의 업이 시선으로 문단을 풍요롭게 해 주어야 하며, 진득한 애정으로 문단을 일으켜야 하는 일이라면 신형철 비평의 품격은 오래도록 졸고 있는 문단의 칙칙함을 깨우기에 충분하단 생각이다.(이병률 시인)

07. 01. 15.

 

 

 

 

P.S.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시와 소설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신형철이 최근에 작품해설을 시집/소설집들이다. 모아놓으니까 이미지들만으로도 다채롭고 재기발랄하다. 그의 바람대로 비평의 독자들이 다시 확보/집결될 수 있을까? 젊은 비평가들의 행보를 눈여겨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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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05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누군지 궁금하네요. 글 한번 보고 싶어요.

기인 2007-01-05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오오! 형철이형. 역시 대단하네요. :)
퍼갑니다. ㅎ
 

잡일들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까 생각하던 중에 장문의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었다. 한국일보에 '100℃ 인터뷰' 코너가 새로 생긴 모양인데(원래 있었나?) 소설가 공지영과의 아주 '뜨거운' 인터뷰를 싣고 있다(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01/h2007010119334584290.htm). 아침신문에 게재될 듯한데, 이만한 분량이 전재된다는 게 일단 놀랍다. 지난해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만큼 안티독자들도 많이 거느리고 있는 '문제적인' 작가 공지영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데 아주 요긴한 '창' 구실을 할 듯해서 옮겨놓는다(강조는 나의 것이다). 기사 원문은 아직 정리가 덜 된 상태인 듯한데, 부분적으로 발췌하도록 한다(어쩐지 너무 길다 싶었다). 아무래도 아침에 기사를 읽고서 다시 정리해야겠다... 

유치원 방학중인 아이를 앞동 외갓집에 데려다주고 학교에 나가는 대신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는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한국일보를 사들고 왔다(스포츠와 경제신문 말고는 한국일보만 달랑 한 부가 남아 있었다). 역시나 파격적인 분량의 인터뷰가 양면에 게재돼 있었는데, 다시 역시나 전문이 전재된 건 아니었다. 나머지는 한국아이닷컴을 참조하라고 돼 있는데, 인터넷주소는 앞에 적어놓았다. 온라인상의 인터뷰에는 중복되는 대목들이 많아서 일단 오프라인의 기사를 바탕으로 정리를 해두도록 한다. 정초부터 왜 이런 일을? 다들 '행복'을 바라는 신년이므로 작년에 가장 행복했던 작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보는 것도 무용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또 어찌 알겠는가? 그 비결이라도 전수받을 수 있을지...

한국일보(07. 01. 02) 소설가 공지영

이 만남은 뜨겁다. 덕담이나 입에 발린 말은 사양한다. 까칠하게 묻고 집요하게 말꼬리 잡는다. 새해를 맞아 한국일보가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사회 각계 인물들을 찾아가 그들의 생생한 모습을 파헤치는 다자(多者) 입체 인터뷰를 선보인다. 한 무리의 기자들이 치열하게 묻고 따지는 반론과 해명의 이 펄펄 끓는 현장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편집자주

아주 좋거나 아주 싫거나! 그 중간은 없다.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소설가 공지영(44)씨. 어지간히 잘 나가는 작가도 1만부를 넘기기 어려운 문학의 장기 침체 속에서 홀로 78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그에게는 작품 외에도 늘 다양한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운동권, 페미니스트, 미모, 세 번의 이혼, 성이 다른 세 아이를 기르는 '싱글맘'…. 공지영이라는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저 단어들로 인해 오해와 편견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그를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네 명이 만났다. 지난해 12월28일 오후 6시, 홍대앞 한 퓨전식당에서 시작된 이 까칠하고도 뜨거운 인터뷰는 술잔을 기울이며 자정을 넘겨서까지 계속됐다.

_<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덕분에 지난 한 해가 ‘나의 행복한 시간’이었겠어요.

“네. 당분간 생활비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그게 제일 행복하고요. ‘사형제 폐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작가로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어요.

_불편한 반응들도 있지 않아요?

“많죠. 반은 그렇다고 보면 돼요. 참 이상한 게 그런 리뷰들은 대개 ‘나는 공지영이 너무 싫다’로 시작하는데 끝에 가면 ‘그런데 책은 다 읽었다’ 이렇게 끝나.(웃음) 이게 되게 이상한 현상인 거 같아요. 처음엔 ‘왜 나를 미워하지? 싫으면 안 읽으면 되지 왜 다 읽고, 여기다 리뷰까지 달면서 날 미워할까’ 생각했는데, 뭐 어차피 대중들의 시각이란 게 완벽하게 일치하는 게 이상한 거죠. 어쨌든 저야 팔아주시니까 고맙죠. "

_78만부나 팔았으면 죽을 때까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겨우 생활비 걱정 면한 건가요.

“아니, 얼마 전까지 생활비 걱정 했다니까 왜 그래요.(웃음) 막내 대학까지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며 밤마다 울었다니까요.”

_한 달 수입이 30만~50만원도 안 되는 작가들도 많은데 그렇게 말하면 다른 작가들 맥빠지겠어요.

“맞아요. 좀 그렇긴 하죠. 하지만 다 사연이 있으니까 걱정이 된다는 거죠. 돈이라는 게 번대로 착착 쌓일 수도 없는 거고….”

_공지영 소설은 20대 여성이 가장 많이 읽잖아요. 젊은 세대와 통하는 게 있다는 얘긴데.

대학 때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중학교 때 전기가 처음 들어와서 감전된 적 있다’ 이런 얘기들을 막 하는데 너무 놀랐어요. 전 공선옥씨의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을 읽고 도무지 이해가 안 갔어요. ‘왜 대학까지 중퇴한 여자가 이런 데 가서 이 고생을 하지? 취직을 하든가 장사라도 하지’ 이해가 안 가요. 나중에 느꼈는데 60년대산들은 지역이 불균형하게 개발될 때다 보니까 지역별로 세대차가 막 나더라구요.

저는 우연히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경제개발의 혜택을 제일 먼저 입은 세대로 자라나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아파트로 이사를 갔어요. 바로 롤러스케이트 타고, 자전거를 탔죠. 당연히 TV도 봤고. 어떤 의미에서는 70년대 중반산들과 같은 경험을 가진 거예요. 아파트키드라는 거, 대도시적 감수성 가진 거. 문학소녀일 때는 대도시에 태어난 게 너무 창피했었어요. 그때 문학은 다 농촌정서 얘기하는데 나는 도저히 그게 무슨 얘긴지도 모르겠고, 그러면서 열등감을 느꼈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오히려 제 정서가 더 보편적이 된 거 같아요. 제가 잘 해서 선취한 것이 아니라 제가 자라온 환경이 그렇게 만든 거죠.”

_공지영씨의 좌파적 가치가 젊은 세대와 통하는 것 아닐까요.

“전 제가 좌파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어느날 토론에 나갔다가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낙태에 관해 기본적으로 반대입장 취하거든요. 그런데 ‘넌 좌파가 어떻게 낙태를 반대하느냐, 더군다나 페미니스트인데’ 하면서 굉장히 공격을 받았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정치적인 면에서만 좌파고 나머진 굉장히 보수적이더라구요.”

_예를 들면요?

“결혼 같은 거. 이거 웃긴 얘기지만, 남자와 여자는 꼭 결혼을 해야한다든가, 하하. 사람들이 왜 자꾸 결혼을 하냐고 물어서 제가 ‘아니, 사랑하면 결혼해야 되는 거 아냐?’ 그랬거든요. 물론 요즘 좀 생각이 바뀌었지만. 아무튼 그런 면에서 되게 보수적인데, 저는 사안에 따라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게 훨씬 더 고뇌에 차고 가치 있는 삶인 것 같아요. 좌파, 우파로 나누면 제가 어느 쪽인지 모르겠고, 최소한 상식과 합리가 있는 길을 가고 싶어요.”(*어느 쪽인지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굴곡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생활우파의 삶을 살았고 관념적으로 자신이 좌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_운동은 왜 했어요?

“나 진~짜 운동하기 싫었어요. 안 하려고 엄청 애썼고. 그런데 왜 하필 나랑 친한 애들은 다 운동하고, 잡혀가고, 죽고 그러는지. 난 무섭고 귀찮고 싫고 피하고 싶었는데 운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예쁜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이상을 가장 근접해 실현하고 있었어요.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이쪽으로 따라갔죠.

또 하나는 안 하고 있으면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차라리 내가 가서 괴로움 당하는 게 낫지. 멀리서 남들 괴로워하는 거 보면서 마음 괴로운 거보다 몸으로 때우는 게 덜 괴로웠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거예요. 그것이 오늘날의 절 만드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죠. 만약 이 과정이 없었다면 저는 정말로 재수없는 부르주아 여성이 됐을 거예요.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내 인생에 기여한 바가 참 많아요. 나를 정말 사람 만들어줬죠.

_사실 공지영 소설이 문체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미학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잖아요. 서사가 강해서 번역해도 잃을 게 하나도 없는데.

“전 소설을 대하는 입장이 동시대의 다른 문인들과 달라요. 그래서 이런 삐그덕거리는 일들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저는 문체가 아름답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그게 뭐예요, 도대체? 아름다운 단어를 써야 아름다운 문체인가요?

저는 처음부터 미사여구 쓰지 않고, 화려한 문체보다는 단문으로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했어요. 소설은 캐릭터와 상황의 문제예요. 중요한 건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하고, 그 캐릭터를 어떤 상황에 배치하는가죠. 사람들은 <춘향전>이나 <베니스의 상인>을 원전으로 읽지 않아도 춘향이와 샤일록이라는 캐릭터는 알아요. 제가 추구한 것은 삶의 본질, 인간성, 시대의 본질을 전달하는 거예요. 그래서 문체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 들었을 때 굉장히 당황했어요. 서사가 강한 게 뭘 그렇게 잘못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나는 소설이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항상 보면 ‘극단적인 캐릭터다’, ‘문체가 너무나 거칠다’ 이런 평들을 하니까. 왜 내가 추구하는 것들은 하나도 얘기 안 하죠?"

_<춘향전>이나 셰익스피어의 소설미학과는 다른 시대잖아요. 오히려 공지영의 소설이 낡았다는 얘기 아닌가요.

“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서사의 회복과 캐릭터의 독특성이라는 정공법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현대 문학 중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게 <해리 포터>인데, 이건 19, 20세기 정통 영국소설의 문법이거든요. 그 소설은 그렇게 책을 읽지 않는 애들로 하여금 책을 잡게 만들었어요. 서운할 때 드는 생각은 저라는 사람이 2000년대 대한민국에 있는 3만명의 소설가 중 하나인데 왜 나에게 이 모든 것을 원하냐는 거예요. 우리가 최민식 송강호 같은 배우들한테 ‘요즘 영화배우답지 않게 너희는 왜 그렇게 얼굴이 크냐’ 안 그러잖아요. 이나영, 강동원 같은 배우는 연기는 좀 못하지만 클로즈업 하면 우리가 즐겁고. 그런 게 다채로운 영화를 만들어가듯이 한국문학도 다양성 속에서 크게 아울러야 해요.”

_다양하게 아우를 수 있는 시장상황이면 좋지만 혼자서 책을 다 팔고 계시잖아요.

“다양하게 아우르지 않으니까 독자들이 자꾸 떨어져나가는지도 모르죠. 평론가들이 왜 그걸 포용을 못하는지, 포용의 문화가 좀 아쉬워요.”

_평론가들로부터 외면 받으면서 “넌 네 길을 가라, 난 내 길을 간다” 식이 돼버렸는데.

“그럼 내가 어떡해요. 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도 없는 거고. 상도 안 주는데 내가 왜 해.(웃음) 사실 보상이란 게 꼭 평론가들만이 주는 건 아니고, 제가 독자들한테 물질적이거나 심리적으로 보상받기 때문에 상관 없어요. ‘나는 왜 문학적으로 평가 받지 못하는 거야’ 그런 생각도 별로 안 하고. 이 시대의 평론가들, 상을 주는 심사위원들이 모든 문학을 끝까지 쥐고 있고, 앞으로도 쥘 수 있을지…, 아, 이렇게 자꾸 말하지 말라 그랬는데, 사람들이.(일동 웃음) 이러면 점점 멀어져서 돌이킬 수 없다는데.”

_상하고 인연은 진짜 없죠?

“세 번이면 됐죠. 이런 말해서 좀 그렇지만, 솔직히 이상, 동인 별로 존경하지도 않는데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받고 싶지 않아요.

_한국일보문학상이면?

“그건 괜찮아요. 가치중립적이니까. 근데 안 주잖아.”(웃음)

_얼마 전 라디오 설문조사에서 미녀배우들과 함께 ‘20대 여성이 뽑은 닮고 싶은 여성’ 4위에 올랐어요.

“하하하. 1위가 김혜수, 2위가 고현정, 3위가 이나영, 5위가 손예진이었어요. 내가 그거 다 외워. 황당했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내가 올 초에 3번 이혼한 사실을 밝힐 때까지 어려운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남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는데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아, 이 죄인을’이었고. 난 나대로 불행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닮고 싶다니. 세대가 바뀌긴 바뀌었나 봐요.”

_남성잡지 <에스콰이어>가 뽑은 ‘남성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 1위에도 올랐어요.

“와. 그러니까 자꾸 광고가 들어와서 날 힘들게 하는구나.”

_광고가 들어와요?

“커피 광고도 들어오고, 소주, 아파트 광고도 들어왔는데 다 거절했어요. ‘묶어서 한 10억 부르고 한 십년 쉬어?’ 하는 그런 생각도 했는데요(웃음). 예전에 돈이 너무 없을 때였는데, 자동차 지면 광고가 들어온 적이 있어요. 너무 유혹적이었죠. 하지만 내가 자본주의도 비판해야 하는데, 거기 가서 ‘이 차 사세요. 좋아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언젠가 그랑 부르주아를 소설에 등장시켜서 깔 수도 있는데, ‘이 차 너무 좋거든요’, ‘이 소주 너무 좋아요’ 이러면 내가 나중에 그걸 어떻게 비판을 해요.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자유를 위해 돈을 포기한 거죠. 얼굴 팔리면 제 생명이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익명으로서의 삶이 끝나는 것이고, 그건 내가 보통인들이 느끼는 체험을 못하고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의미잖아요. 그러면 저의 작가로서의 삶도 끝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한 이유예요.”(*지면 기사에는 좀더 압축돼 있다. '그랑 부르주아'는 '쁘띠 부르주아'의 상대어이다.)

_본인도 자기가 예쁜 거 아시죠?

“아니요. 몰라요.”(웃음) 사실 그거 작가생활 하는 데 저 너무 불리해요. 전 정말 제가 못 생겼으면 책이 배는 팔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_(이구동성으로) 그 반대 아니에요?

“아뇨, 아뇨. 강동원과 이나영의 연기력이 폄하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요. 장동건씨가 전에 “정말 잘 생긴 게 이렇게 핸디캡일지 몰랐다”고 했는데, 난 잘 생겼다고 생각지도 않지만 이렇게 노력을 많이 했는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여전히 내 얼굴만 봐요. 얼마 전 조선일보에서 박완서 선배가 공지영 신드롬의 원인 중 하나로 미모를 꼽았을 때 굉장히 불쾌했어요.”(*작가는 두 가지를 혼동하고 있다. 짐작에 그녀가 못 생겼다면, 판매고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을 테지만 문학적 평가는 다소 상향조정됐을지도 모른다. "전 정말 제가 못 생겼으면 책이 배는 팔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무슨 '미녀는 괴로워'식의 대사인가?)

_지금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외모가 메리트가 되잖아요.

내 직업에선 핸디캡으로 작용해요. 전에 김훈 선배가 재미있는 농담을 했는데, ‘우리 업계가 이게(외모)가 좀 낮아’서 그렇대요. 영화인들이 저희한테 ‘너희는 공지영이 심은하급 되나보지?’ 하고 비웃어서 다들 자지러지게 웃은 적도 있어요.”

_소위 운동을 했다는데, 드러난 작가의 사생활이 너무 풍족했고, 지금도 소설 써서 충분히 보상을 받는 것 같아서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잘 나가는 작가 공지영에 대한 비판의 기저에는 그런 것이 있지 않을까요.

분명히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전 제가 얼마나 유복하게 살았는지 정말 몰랐어요. 다들 비슷하게 사는 줄 알았어요. 제가 재벌집 딸도 아니고, 배고픔의 서러움을 겪지 않았을 뿐이지 저도 아버지 월급을 받아야 용돈을 받을 수 있는 평범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이 문단이라는 데를 나오니까 전부 가난한 사람들인 거예요.(웃음) 이 계가 진짜 나를 너무나 부자로 만들어준 거야. 내가 이 계가 아니라 화류계, 영화계를 들어갔으면 난 굉장히 평범한 집에서 자란 평범한 애였을 텐데, 전통적으로 가난한 것이 미덕이 중요한 계에 들어와서, 제가 아주 계를 잘못 들었죠. 엉뚱한 제가 갑자기 난데없는 상류층에, 난데없는 미모에 황당해요.

대학 때 우리집이 차압을 당해 먼 잠실로 이사 갔어요. 그때 시인 기형도 형이 몇몇 형들이랑 저희 집에 놀러왔는데, 이 형들이 와서는 나를 경원하고 멸시하는 표정인 거예요. 나는 그 형들이 아무 말도 안해서 얼마나 가난한지 정말 몰랐어요. 나중에 기형도 산문집 읽고 절대가난이라는 걸 알았는데 미안하기도 했고 분하기도 했어요. 왜 나한테 슬프고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나는 “형, 우리집 너무 누추해”라고 말하지도 않았을 텐데. 너무 배신감 느낀 거예요.

 

‘캐비어 좌파’라는 말이 있잖아요. 캐비어를 먹는 사람은 꼭 우파여야 하나요? 비록 캐비어를 먹지만, 좌파적 입장에서 제3세계 얘기하는 게 사실은 더 훌륭한 게 아닐까요.”

_나는 몰랐고, 이 업계가 가난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수긍하기 좀 그런데요.

나 잘못하면 필화사건 나겠다. 그리고 저 좌파적으로 살았어요, 왜 이러세요.(웃음) 저 연탄 때는 10평짜리 전세 아파트 살다가 연탄가스 먹고 병원에도 가고, 원당읍에 15평 주공 아파트에도 살았고 계속 전셋집 옮겨 다녔어요. 혜화동 천에 십만원짜리도, 삼선교 2,500짜리 반지하도 살았어요. 아 진짜, 이런 구차한 변명까지 해야 되나. 지금 사는 집이 제 첫 집이에요. 제가 차를 바꾼다고 하니까 어느 선배가 벤츠를 사라고 하더군요. “아니, 어떻게 작가가 벤츠를 타” 그랬더니, 그 선배는 우리 문인들이 잘 되서 외제차 타면서 지탄받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대요. 그 말을 듣고 20년 동안 간직해왔던 부에 대한 죄의식을 털어버렸어요. ‘인세 많이 들어와서 좋아요’ 라고 말하고 다닌 지 몇 년 안됐어요. 옛날에는 ‘저는요, 꼭 팔려고 했던 건 아닌데요’ 그랬거든요.

나는 진짜 밥을 벌기 위해서 밤 새워가며 앉아서 글 썼어요. 이제껏 결혼을 3번 했지만 지금까지 제가 생활비를 대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23세 이후부터 현재까지 내가 집안의 가장이었고, 사력을 다해 글 쓰는 게 내 밥벌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내가 독자들이 좀 더 좋아할 수 있는 책을 써서 생활비를 댈까 이것이 오직 나의 관건이었죠. 돈은 버는 족족 어디로 갔지만.(웃음) 그래서 <우행시>로 평생 처음 돈을 저축했어요. 남편이 없기 때문에 이제 돈 저축이 되는 거죠.”

_소설에 늘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그런 비판이나 죄의식을 풀기 위한 건가요?

“그런 면도 없지 않아요. 22세에 첫 결혼을 했는데 그때부터 제 인생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구요.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무리 인내를 해도 어쩔 수 없는 방향으로, 너무 끔찍하고 슬프고 진짜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런 부분들이 나로 하여금 <우행시>에서 사형수를 만나러 가게 했어요. 내가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왜 여기까지 왔나, 나는 왜 이런 낙인을 줄줄이 달고 있나, 난 왜 전과 기록처럼 이런 걸 줄줄이 달고 서 있어야 하나, 이런 게 너무 절망스러웠어요. 사회적 사형선고 받은 느낌이었어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극한으로 내몰렸던 마음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정말 내 인생이 정말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체험들을 했기 때문에 나는 사형수들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어요. 결국 이 모든 것이 내가 소설가로 만들어지게 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좋은 환경에 놔두었다면 밤 새워 내가 굳이 글을 쓸 이유도 없었겠죠. 돈 있고 남편이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해주면 내가 뭐 하러 글을 써요.”(*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의 어법을 빌면, 문학은 현실에 패배한 자들이 그 현실에 복수하는 것이다.) 

_공지영에 대한 관심이 작가에 대한 관심엔 파란만장한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제가 두 번째 이혼을 했을 땐데 안티들이 나를 너무 상처 주더라구요. 제가 친구에게 “나 너무 불쌍하지 않냐. 난 심지어 이혼까지 이렇게 많이 해서 진짜 힘들다” 했더니 그 친구가 “너 이혼했다는 사실 때문에 미움 받는 거야. 여자들이 너 같은 경우라고 다 이혼하는 게 아냐. 너는 능력 있으니까 이혼했어” 하더라구요. 난 항상 하늘이 몇 조각 나는 경험을 하는 건데,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나도 당신만큼 능력이 있으면 당장 이혼했어’라는 말. 솔직히 그때 화가 많이 나서 조금만 어렸으면, “저 있잖아요. 제가 이혼했을 때 천만원에 10만원 하는 지하방에 살았거든요. 난 그때 소설 수입도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랬을 텐데 지금은 죽음의 시간 같은 것들을 넘어왔기 때문에 이해해요.”

_죽음의 시간이라뇨?

“마지막 고비(이혼)가 너무 힘들었어요. 제 소원이 비행기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 트럭이 나를 덮쳤으면 좋겠다 그런 거였어요. 그땐 친한 친구에게도 더 이상 말할 수 없어서, 하느님한테 갔어요. 18년 만에요. 가서 “항복합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이야기했고, 그랬더니 정말 살려주시더라구요. 제가 그 힘을 가지고, 남들이 보기엔 당당하고 내가 보기엔 좀 담담하게 사람들 앞에 나섰죠.”

_또 결혼하실 겁니까?

“저는 결혼이란 제도를 상당히 좋아해요. 저희 식구들이 다 첫사랑이랑 결혼해서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래서 처음 만나면 빨리 결혼해야 하는 건지 알았고, 그렇게 하면 결혼이란 게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죠. 그런데 내가 해보니까 나는 왜 안 되는 거야. 결혼이란 제도의 미덕이 있어요. 약속을 관철하게 하는 약간의 강제적 힘 같은 것. 사람이란 너무 변덕스럽고 불안하니까요. 그건 아직도 믿어요. 하지만 앞으로 또 결혼을 할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사랑은 하고 말 거야. 언젠가."

_그렇게 당하고도 또 사랑을 하고 싶으세요? 

"사람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또 사랑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는데, 내가 만난 것은 저 사람이었지 남자 일반은 아니에요. 전 ‘남자는 다 그래’라는 말 참 싫어해요. 그건 여자는 다 그래란 말과 똑같다고 봐요.”

_앞으로 쓸 작품은요?

“저희 큰 딸이 고3이고 밑으로 초등학생 아들 둘이 있는데, 우리 가족을 모델로 한 <즐거운 나의 집>을 쓸 거예요. 참 축복인 게 우리 애들이 무지 밝아요. 나의 죄책감이 있기 때문에 학교 가면 애들이 밝나 안 밝나 그런 것부터 보거든요. 다들 에미 닮아서 대책 없이 밝아요.

언젠가 제가 딸한테 “엄마가 이혼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해, 너한테 이런 모습 보여줘서 미안해” 얘기하니까 자기는 그거 잘 모르겠대요. 자기가 오직 항의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우리 아빠랑 왜 이혼했어”뿐이고, 나머지는 엄마의 사생활이니까 인정한대요. 대신 자기가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엄마는 엄마 차의 시동을 한 때 껐지만 엄마의 열쇠를 던져버리지는 않았잖아. 내 친구 엄마들은 다시 못 찾게 강물 속에다 다 던져버렸어. 그래서 누가 밀어주기 전에는 다신 못 떠나. 그런데 엄마는 그것을 주머니 속에 감춰두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시동을 켜고 떠났잖아” 그러는 거예요. 저 이제는 안 버려요. 이제는 열쇠를 버릴 생각도 없고, 시동을 끌 생각도 없어요.”(*지면 기사는 여기까지이다. 이후의 내용은 중복이 많다. 발췌해서 옮겨놓는다.) 

_이제 공지영이라는 이름은 확실한 브랜드가 된 것 같아요. 무슨 책을 써도 기본은 팔린다는 관측인데.

그건 오직 신만이 아시는 거죠. 독자들은 너무 변덕스러워서 그 기호를 따라가다가는 제가 망해요. 그냥 제 배짱대로 쓰는 거죠. 우리 문단에서 ‘밥벌이 때문에 소설 쓴다. 밥벌이 안되면 미련 없이 떠난다’고 말하는 사람이 저랑 김훈 선배예요. 난 가장이기 때문에 노동의 대가가 충분치 않을 경우 하시라도 국수집을 할 태도가 돼 있어요. 국수 맛있게 마는 비법이 하나 있거든요. 제겐 프로작가로서의 내 노동이 우리 아이들과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_사람들이 많이 알아보죠?

"아니에요. 전혀 몰라봐요. '혹시 공지영씨와 많이 닮았다는 소리 안 들어요?' 이런 말도 들어봤어요. 그럼 '아니요' 그래요. 난 공지영이지 닮은 건 아니니까. 지면사진과 달리 실제로 생기발랄해서 더더욱 못 알아봐요. 그런데 TV는 잠깐만 나와도 알아보더라구요. 아주 소름끼쳤어요."

_영화는 실망스럽지 않았어요? 캐스팅도 젊은 배우고.

"전 만족해요. 선남선녀가 안 나오면 누가 보겠어요. 이쁜 여자가 나오니까 시간이 잘 가잖아. 영화 흥행이 책 매출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데 다소 맥 빠지는 쓸쓸함도 느낄 것 같아요. "영상의 막강한 파워를, 영상이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인정해요. 문학은 갔구나, 아름다운 문학이여, 이런 식으로 생각지는 않아요. 그게 영화화 됐다는 것은 이미 제 작품을 본 독자들이 많다는 의미도 되니까. 영화 때문에 팔리긴 했어도 영화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_봉순이 언니 만나셨어요?

"그게 다 사실이 아니고 소설이에요. 시집가서 남편이 죽는 것까지만 실화예요. 나중에 언니가 찾아왔어요. 그래서 내가 저 언니가 책 읽었으면 어떡하지 했죠(웃음). 다행히 안 읽은 눈친데, 언니가 워낙 순하고 그래서 읽었더라도 봐줬을 거예요. 어린 시절 세팅이나 언니 존재는 실화예요. 30년 만에 만났는데, 잘 살더라구요. 멀리 멀리 시집갔는데 분당 우리 집옆에 죽전에 살더라구요. 옛날에 거기 땅이 있어서 보상 받아 아파트 살고 있었고 아이들도 잘 키워서 아들 하나는 분당 삼성플라자 직원이더라구요.

 

 

 

   

-산도르 마라이 좋아한다면서요.

"내가 왜 그렇게 좋아하나 봤더니, 그 사람이 운명과 싸우더라구요. 현대 유럽작가와 다르게 운명이나 비극을 담고 있다는 평을 봤어요. 아마 그런 것이 나를 매료시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제 자신이 마흔이 넘어갈 무렵에 운명이란 게 있구나, 너무 강력해서 내가 피할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었거든요. 나의 노력, 의지, 선의와 상관없는 그런 일들이 내 인생에서 일어나고 있는 꼴을 보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운명이란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가진 많은 것들, 말하자면 키가 큰 것, 좋은 부모님 만난 거. 머리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거, 그래서 공부도 잘 했던 거, 가난하지 않게 살았던 거. 내 의지가 하나도 개입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우스운 말이지만 얼굴 생긴 것도 내 의지랑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나를 규정해 왔고,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거예요. 아,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느끼면서 신에게 돌아간 것 같아요. 정말 항복합니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할 기회가 많았어요. 작가로서는 그게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한 여자, 한 인간으로서 굉장히 많은 비극을 갖고 있지만, 작가가 되는 데 고통의 문제, 폭력, 운명의 문제를 나로 하여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줬던 거 같아요."

-공지영 신드롬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요?

"아, 근데 그거 94년도에도 한 번 했었어요. 공지영 신드롬, 최영미 신드롬이 있었는데. 전 데뷔 때부터 문학 지상론자는 아니거든요. 이 문장 하나 만들기 위해 내 목숨 다 바치겠다,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전. 그래서 사실 보상이란 것이 꼭 평론가들만 주는 건 아니고, 제가 독자들한테 물질적이거나 심리적으로 보상받기 때문에 독자들의 리뷰나 그런 것으로부터도 받아서 그것이 어떤 일이든 그것이 상관이 없어요. 나는 왜 문학적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거야. 뭐 그런 생각도 별로 안 하고. 이 시대의 평론가들, 상을 주는 심사위원들이 모든 문학을 끝까지 쥐고 있고, 앞으로도 쥘 수 있을지…, 아, 이렇게 자꾸 말하지 말라 그랬는데, 사람들이.(일동 웃음) 이럼 점점 멀어져서 돌이킬 수 없다는데."

-심중의 얘기들을 감추지 못하는 성격으로 자신이 준 상처, 받은 상처 그런 기억들은?

"내 말투, 농담을 함부로 하지 말자 뭐 그런 거 있어요. 저 사람들에게 정말 악의 없어요. 근데 항상 너무나 미움을 많이 받는데, 내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넌 항상 본질을 빨리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서 그걸 말하는 것 자체가 상처를 주는 것 같다고. 제가 상처 받는 건 언제나 이런 거예요. 봉순이 언니에서도 많이 썼는데. 이런 말 해도 되나. 난 꼬인 데 가 없고 사람을 오래 미워하는 법이 없어요.

시인 김정환형한테 "형. 난 왜 이렇게 사람들이 나한테 잘못한 거 금세 잊어버리지" 푸념하니까 "지영아, 넌 너무 착해" 이럴 줄 알았더니 "넌 너무 머리가 좋아서 그래"라더군요. 똑똑한 사람들은 남 미워하는데 오래 끙끙거리지 않고 비생산적인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대요. 난 그냥 말에 사람들이 상처받고 그러는 것 같아요. 난 금세 잊는데, 나한테 상처받았다는 사람은 너무나 많이 나타나는 거예요. 넌 날 상처 입혔어, 그러면서 가버려요. 아니라고 해도 그리곤 다시는 나를 안 보는 거예요. 그런 것에 제가 상처받았죠."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상처를 받지 않을 걸로 생각하는데.

"네. 별로 상처 안 받아요. 하도 받다보면 나도 살아야 되니까 처리하는 법을 배우잖아요. 30분 정도 걸려요. 미움을 하도 많이 받아서. 고등학교 때 왕따였어요. 어느날 보니 나를 따 시키더라구요. '어머. 사실 나도 너희들과 얘기하고 싶지 않았어' 생각하고 혼자 그렇게 살았어요. 전 진짜 조숙해서, 지금은 그 조숙만 믿다가 미숙의 경지에 다다랐지만,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어요. 드라마 얘기하고, 전 그런 얘기 하면 옆에서 고개 돌리고 다른 책을 읽고 그랬는데 친구들은 그게 오만방자해 보였겠죠.

-소설 낼 때마다 소외 당하지도 않았지만, 이처럼 단기간에 뜨겁진 않았잖아요. 뭐가 달라졌나요?

"제 소설보다 제가 취재해서 쓴 현실 자체가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거 같아요. 그게 좋았어요. 다른 소설들은 제 경험 윤색하거나 시대의 얘기였는데 이건 전혀 동떨어진 세계를 발견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해서 그걸 옮겨다 이쪽에 준 거죠. 그게 너무 가슴 아파서 취재하는 동안 많이 울고 취재 시작부터 소설 쓴 후까지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이 책보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더 뒤인데, 그건 제가 전적으로 지어낸 소설이라 그게 각광받았다면 내가 잘 나서 그랬구나 그런 생각했을 텐데 제가 다 취재한 것이기 때문에 각별한 느낌이 있었어요(*'다 취재한 것이기'는 인터뷰에서 뭉개져 있는 부분을 내가 채워넣은 것이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말 그대로 인터뷰어, 옮겨놓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현실이 각광받는 게 더 중요했고. 다른 게 각광받았다면 느낌이 달랐을 듯해요."

-이젠 스타라 무슨 책을 내든 잘 팔릴 것 같은데요.

"그건 아니에요. 조용필도 안 팔리는 시대인데. 우리사회가 생각보다 그렇지 않아요. 지금 네티즌들이 얼마나 무서운데요. 제가 제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라 그렇지만 저는 독자들이 무지 냉정하고 제가 스타라면 그것에 대한 안티의 눈도 굉장히 많아서, 제가 정말 정신 차려서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소설을 내지 않으면 바로 끝장날 거라고 생각해요. 94년에 베스트셀러 여러 개 낼 때부터 생각한 건데 독자라는 사람들은 굉장히 변덕스럽고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냉정하고 정확해요. 그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바라고 있거든요. 스타작가에 대한 평가는 더 혹독하고.

지금도 생각하는 건. 94년부터 제가 아까 생활비 걱정 안 해서 감사하다는 얘기는, 내가 우연히 독자 기호에 맞아떨어져서 이렇게 됐지만, 어떤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대중의 기호를 맞춘다는 것은 할리우드 사람들도 잘 몰라요 그거. 그렇기 때문에 반 장사(50%)예요. 내가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바로 망해요. 그래서 내 자신의 내적 필연성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내 자신에게 이 걸 쓰는 동안 이것만 생각하고 내 자신에게 도움이 됐다면 평가는 온니 갓 노우즈거든요. 거의 신경 안 써요. 이게 제 배짱일 수 있고."

-너무 일찍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서 다음 작품에 부담은 없어요?

"무소의 뿔 다음에 고등어 쓰는 데 출판사에서 이거 최소 50만부 찍어야 하는데 이러는 거예요. 난 고등어는 절대 안 팔린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성공하니까 이젠 불안하더라구요. 그 때 내가 대중들을 따라가면 망한다 그런 생각했어요."

-일본 작가들 작품은 어때요?

"전 별로 안 좋더라구요. 키친 하나 빼고 별로예요. 차라리 우리 작가들 소설이 나은 것 같아요"

 

 

 

 

-어떤 독자들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제일 행복해 하는 독자들이 있는데 그게 30대 중반의 독자들이에요. 선배들의 강요로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를 대학 초년에 읽고, 그 후 <무소 뿔> 읽고 그랬던. 저와 함께 성장해온 친구들이죠. 그 친구들이 출판사의 편집하는 사람이 많아요. 저도 내년 데뷔 20년인데 그럴 때 가장 행복해요."

-왜 소설을 써요?

"얼마 전에 문학 캠프를 갔는데, 김훈 선생과 함께 독자와의 대화를 했어요. 왜 소설을 쓰시냐는 질문이 있었어요. 선배가 "난 밥을 벌기 위해 쓴다. 이게 밥이 안 되는 순간 미련 없이 떠날 거다" 그러더라구요. 깜짝 놀란 게 문단에 나와서 밥 때문에 소설을 쓴다고 했던 게 저였는데 김훈 선생님도 그렇더라구요. "저도 그렇다. 난 가장이기 때문에 노동의 대가가 충분치 않을 경우 하시라도 국수집을 할 태도가 돼 있다" 그랬죠.(*이 문학캠프 기사는 이전에 옮겨놓은 바 있다.) 

근데 문단에서 우리 둘만 그런 것 같아. 전 문학 지상주의자도 아니고. 문학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문화의 베이스이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내가 밥도 안 되고 애들도 굶고 있는데 내가 거기 가 있을 필요도 없고, 프로작가로서 이게 내 노동으로서 우리 아이들과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느냐가 굉장히 커요. 반농담으로 국수집 차릴 거다, 국수 아주 맛있는 비법이 하나 있어요, 그랬어요. 실제 가격을 얼마로 매길까 고민도 많이 했다니까요."

 

 

 

 

-어떤 작가 좋아해요.

"황석영의 단편 <몰개월의 새> 제일 좋아해요. 황 선생님은 영화적 작법을 써요. 감정을 묘사하는 대신 정황으로 묘사를 해요. 외로움을 묘사하는 대신 우두커니 서 있는 빗자루, 우산을 쓰죠. 그게 단편에서 두드러지는데 객관적이고 냉정한 묘사를 해요. 저는 '그때 혼자 있는 게 어땠다'는 식으로 써버리거든요. 그분의 문학과 사회에 대한 자세들이 좋아요. 상복도 없어요. 그 다음은 박경리 선생님. 그 분도 상을 하나도 못 받았어요. 그래서 좋아한 것은 아닌데, 하도 상 때문에 말이 많아서 찾아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박경리 선생님은 김성종 문학상인가 하나 받았어요. 젊은 작가는 박민규. 저는 <카스테라> 좋게 봤어요. 저는 젊은 작가들이 좀 더 도발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미 늙어서 아이들을 부러워 하는 형편이니까 형식 내용 모두 도발적으로 가면 제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그의 소설은 상당히 슬퍼요. 그래서 연민이 크다는 점이 좋았어요. 다른 작가들은 읽고 나면 이들이 나보다 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장편은 주목을 받았지만 단편은 기억되는 게 없는 듯해요.

"세계적으로 유명 소설가들이 단편으로 주목받은 경우는 거의 없어요. 단편으로 주목받은 건 일본 정도. 주로 장편을 좋아한 후 단편을 좋아하는 식이죠. 우리 문단의 폐해일 수 있는데 이것도 시각의 차이인 것 같은데, 서사고 로망이고 하는 것은 장편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어요. 누가 단편으로 주목 받나? 에쿠니 가오리, 코엘료 다 장편이에요. 전 그 짧은 순간 그 사람을 다 표현할 수 없어요. 김유정의 경우는 단편을 잘 쓰는데, 당시엔 기자를 말한다면 떠오르는게 있어요. 그런데 현대는 너무 달라요. 조선일보 기자, 한국일보 기자, 한겨레 기자 다 다른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을 묘사하면 길어지고. 상황을 묘사하면…, 쉽지 않아요.

잘 쓴 단편의 경우는 일부를 떼고 보면 한 편의 시 같아요. <몰개월의 새>의 경우도 그랬고. 그 작품은 이성복의 시 같아요. 그런 부분은 장편에서는 그렇게 쓸 수는 없어요. 장편과 단편 소설은 서로 다른 장르라고 생각해요. 김유정 이후에도 김승옥 <무진기행> 하나 빼면 와 닿은 것은 별로 없더라. 단편으로 노벨상 받은 사람은 없어요."

-소설이 밥 벌이이기 때문에 쓴다고 했는데, 다른 밥 벌이를 사용할 수도 있잖아요.

"아니죠. 그 때도 난 얼굴 팔리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아요. 소설이, 독자들이 나를 이 영역에서 내쫓는다면 모를까, 내가 소설 쓰다 폐병 걸리고 우리 애는 아파서 울고 그러면 몰라도 그렇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 쪽으로 갈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직은 나를 그래도 밥은 먹게 하니까, 지금은 잘 먹고 있지만, 예전에도 밥은 먹게 했으니까. 저는 할 줄 아는 게 소설 쓰는 것하고 국수밖에 없어요."

-소설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그런 비판이나 죄의식을 받아온 것을 풀기 위한 것인가요?

"그런 면도 없지 않아요. 제 중 1학년때 웃긴 얘기가 있어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주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이 많았어요. 제가 서울여중이라는 서강대 옆 중학교를 다녔는데 공덕동에서 48번을 타고 다녔어요. 그때 우리 엄마가 연보라색 벙어리 장갑을 짜 줬는데, 어느날 한 아저씨가 길을 물어보는데 손을 보니까 손이 터져서 막 피가 나는 거예? 그래서 제가 버스 타기 전에 손이 아플 것 같다며 그걸 억지로 드리고 창피해서 막 뛰어서 버스를 탄 기억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돈을 주든지 왜 그 이쁜, 할아버지가 낄 수도 없는 것을 드렸을까. 이것이 어떤 상징일 수 있겠다 싶어요.

사형수 문제도 그런 연민이 기본적으로 깔리고요. 22살에 첫 결혼을 했는데 그 때부터 제 인생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구요.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무리 인내를 해도 어쩔 수 없는 방향으로, 너무 끔찍하고 슬프고 진짜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런 부분들이 나로 하여금 <우행시>의 사형수 만나러 가게 했어요. 내가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생각하니까 더 이상 물러설 데도 없고, 나는 왜 여기까지 왔나, 나는 왜 이런 낙인을 줄줄이 달고 있나. 도대체 난 뭔가. 난 한번도 이런 걸 원한 적도 없고, 난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난 왜 여기까지 왔을까. 난 왜 전과 기록처럼 이런 걸 줄줄이 달고 서 있어야 하나, 이런 게 너무 절망스러웠어요.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 사회적 사형선고 받은 느낌이었죠. 그래서 사형수에게 갔고 가서 그들의 삶이 독자들이 보는 것과 전혀 다르게 나하고 너무 닮아있었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감정이입이 무지무지 잘됐던 듯해요. 너희들도 이런 걸 원치 않았겠지, 어느날 보니까 자기가 이런 처지가 돼 있었겠구나 싶었어요. 각도는 다르지만 감정이입하긴 좋았죠.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내가 소설가로 만들어지게 된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고, 나를 좋은 환경에 놔두었다면 밤 새워 내가 굳이 글을 쓸 이유도 없었겠죠. 돈 있고 남편이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해주면 내가 뭐 하러 글을 써요. 그땐 아, 아름다운 백합화, 막 문체 신경 쓰고, 솔직히 그랬을지도 몰라요. 근데 너무나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극한으로 내몰렸던 마음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내 인생이 정말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체험들을 했기 때문에 나는 사형수들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어요. 그건 독자가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소설가로서의 나의 자부심이에요. 나는 그곳에 갔었고, 내가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함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확신, 소설가로서 자부심이 생겼어요.

-공지영이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에는 파란만장한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제가 두 번째 이혼하고 있었을 때 너무나도 안티들이 나를 상처 주더라구요. 친구에게 '나 너무 불쌍하지 않냐. 난 심지어 이혼까지 이렇게 많이 해서 진짜 힘들다' 했더니 '너 이혼했다는 사실 때문에 미움 받는 거야' 하는 거예요. 아니 요즘 이혼이 그렇게 큰 죄도 아니고 '나도 이거 어쩔 수 없었는데, 너도 어떤 상황인지 알잖아' 그랬더니 '나도 네가 미워. 넌 이혼도 했잖아" 그래요. 아니 난 항상 하늘이 몇 조각이 나는 경험을 하는 건데, '야 너 여자들이 너 같은 경우라고 다 이혼하는 게 아냐. 너는 능력 있으니까 이혼했어' 그러더라구요.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나도 당신만큼 능력이 있으면 당장 이혼했어"라는 말도 들었어요. 솔직히 그때 화가 많이 나서 조금만 어렸으면, "저 있잖아요. 제가 이혼했을 때 천만원에 10만원 하는 지하방에 살았거든요. 난 그때 소설 수입도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랬을 텐데 지금은 죽음의 시간 같은 것들을 넘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생각해요. 각자의 길이 있고 자기 몫의 짐을 지고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짐이 가벼워 보이는 것이고. 내가 보기에는 그 여자들 팔자가 더 좋아보이기도 하고, 가끔 나도 그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내 길이니까 내 운명이고 내 짐이니까 걸어간다 생각하면 너무 평안하고 감사해요.

이 얘긴 꼭 써주세요. 요즘은 너무 행복하냐고 물어보는데 정말 행복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성모상 앞에 촛불을 켜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 이름을 하나씩 불러요. 우리 애들 이름부터요. 집이 너무 따뜻해서 감사해요. 건강하고 밤에 아이들이 잘 자는 것 감사해요. 내가 기도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해요. 그 세 가지 기도를 할 수 있어 감사하고. 그것을 하고 나면 하루가 기쁘고 즐거워요.

94년에 이보다 더 많은 돈을 벼락같이 벌었어요. 하나도 안 행복했어요. 정말 지옥 같았어요. 지금은 빚도 좀 갚고, 저축 조금 하고, 열심히 하면 막내도 대학 보낼 수 있을 것 같고 너무 행복해요. 아주 해피하게 살고 있어요."

-큰 딸이 소설을 쓰면 엄마에 관한 걸 쓴다고 했다면서요?

"내가 엄마가 이혼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해, 너한테 이런 모습 보여줘서 미안해 얘기하니까 자기는 그거 잘 모르겠대요. 왜냐면 자기가 오직 항의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우리 아빠랑 왜 이혼했어'는 항의할 측면이 있는데, 나머지는 엄마의 사생활이고, 자기는 인정하는데, 대신 내가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엄마는 엄마 차의 시동을 한 때 껐지만 엄마의 열쇠를 던져버리지는 않았잖아"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소리야. 열쇠를 던지는 엄마가 어딨어" 했더니 "아냐, 엄마. 내 친구 엄마들은 다 던져버렸어. 강물 속에다. 다시 못 찾게. 그래서 다신 못 떠나. 누가 밀어주기 전에는. 근데 엄마는 그것을 주머니 속에 감춰두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시동을 켜고 떠났잖아" 그러더라구요. 이제는 안 버려요. 이제는 버릴 생각도 없고, 시동을 끌 생각도 없어요.

저는 결혼이란 제도를 상당히 좋아해요. 저는 집안이 우리 엄마 아버지가 동네 첫사랑이었어요. 14살에 만난. 아버지는 보통 한국 남자들이 그 시대에 저지를 수 있는 죄책사유를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고, 지금도 손 잡고 우리 다음에 태어나도 또 만나자 이런 쓸데없는 소리하고, 더군다나 언니 오빠 다들 처음 만난 사람들과 결혼했어요.

지금까지 다 무난하게 살았고. 난 사람이란 다 저런 건 줄 알았어요. 그래서 처음 만나면 빨리 결혼해야 하는 건지 알았고, 그렇게 하면 결혼이란 게 아무 문제가 없는 건 줄 알았고. 그런데 내가 해보니까 나는 왜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엄청 갈등을 했죠. 그래서 저는 아직도 결혼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많이 갖고 있어요. 내 주변에 좋은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특히 엄마는 아직도 '김장 했는데 아버지가 하루종일 마늘만 까고 파는 안 까주셨다' 뭐 이런 푸념도 해요.

그런 것만 보고 살다가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걸 우리 가족들도 나 때문에 안 거예요. 대신 가족들이 한 번도 나를 비난한 적이 없었어요. 그건 너무나 큰 힘이에요. 너무나 이해해줬고, 그 집 귀신 되라 이런 얘기 절대 한 적 없어요. 하루 빨리 탈피해라, 오히려 밍기적거린 건 나였고, 지금도 굉장히 어떤 의미에서 자랑스러워해 주시고. 그게 큰 힘이죠. 우리 애들도 아빠가 없으니까 오빠가 아빠노릇 비슷하게 놀이공원이라도 한 번 더 데려가려고 하고. 농담으로 이 모든 게 나를 소설가로 만들려는 하느님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요."

 

 

 

 

-아이러니하게 이 과정을 겪고 사랑에 대한 소설을 썼어요.

"죽는 줄 알았어요. 츠지의 제안이 너무 매력적이라서 쓰기로 했는데 너무 겁이 나더라고요. 구상을 하는데 필이 전혀 안 오는 거예요. 이건 순전히 필로 해야 하는 건데. 옛날 필 살리려고 7080 노래를 받아서 매일 들었어요. 내가 사랑을 아직 믿었던 시절의 느낌을 다시 가져보려고 무지무지 애를 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 리뷰에 "이 여자는 연애를 안 했나 보다"라는 게 있었는데 그걸 보고 "어머, 너무 정확하다" 했어요.(웃음) 사형수를 취재하는 게 훨씬 쉬웠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좋아요. 앞으로 진짜 사랑을 하면 앞으로 연애소설을 얼마나 잘 쓰겠어."

-사랑을 믿어요?

"지금은 진짜 믿어요.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으로 사형수에게 갔는데, 저는 남녀간의 사랑이 따로 분류되는 사랑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사형수 보면서 사랑을 믿게 되었어요. 사형수들은 어쩜 개만도 못한 사람이었는데 교화위원들이 10년 넘게 그렇게 돌보면서 교화가 된 거예요. 그러면 왜 나에게 그런 사랑을 주냐고, 나 너무 힘들다고 하는 윤수 같은 상황이 온대요.

처음엔 빵이나 얻어 먹고 그러다가 그들의 진심을 읽고 화를 내고 그 후부터 변하는 식으로요. 야, 이거 정말 인간이 변하는 것이구나. 그 아줌마들은 봉사하러 오는 천주교 신자들일 뿐인데 그냥 와서 '이거 먹어봐. 이거 방에 들어가면 못 먹어 어서 먹어' 엄마처럼 그런 것 뿐인데 사형수들은 한번도 못 받아본 사랑을 접하면서 금방 변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또 사랑을 하고 싶어?' 물어보는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래요.

이건 제 의지의 노력이었는데, 내가 만난 것은 저 사람이었지 남자 일반은 아니다. 제가 싫어하는 말은 남자는 다 그래. 저 그런 말 되게 싫어해요. 그것은 여자는 다 그래란 말과 똑같다고 봐요. 심수봉 노래는 가끔 부르기도 하지만. 저도 남자들 좋아해요. 아가페와 에로스라는 이분법을 잘 모르겠어요. 에로스만의 사랑이 있나요? 그런데 저는 플라토닉 러브는 너무 싫어하거든요. 저는 그게 제가 그렇게 싫어하는 하룻밤 사랑과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플라토닉만 해요? 난 이해가 안 가."

-난 남녀간의 사랑이 다시 온다면요?

"그럼요. 기꺼이."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요?

"우리집을 모델로 한 <즐거운 나의 집> 써야 합니다."

-작품 쓸 때 시간관리는?

"저도 노동자인데 낮에 쓰고 일과 시간에 써야죠. 밤에는 자거나 술 마시거나 놀아야죠. 애들이 크고 나서 바뀌었어요. 엄마 노릇이라도 하려면 아침에는 일어나야 하니까. 밤에 하면 애들을 못 챙겨주고. 그러니까 밤에는 일찍 자려고 하고. 그러다 보면 점심때 시간이 남아요. 애들 재우고 새벽 3~4시까지 하기도 했는데. 주로 2시부터 5~6시까지 쓰죠. <우행시>는 너무 잘 써져서 단 두 시간만 자면서 쓰기도 했어요. 출판사에 일정보다 일찍 넘겨줄 정도였죠."

-또래 작가들과 친분은?

"아무도 안 친해요. 전에 친해지려고 노력한 적 있었는데 내가 한 말이 바로 소설로 나오더라구요. 작가들은 친해지면 안돼요. 먼저 쓰는 게 임자인데 난 게으르니까. 시인들은 더 심하답니다."

-애들은 말은 잘 들어요?

"어휴. 지옥 같은 날들이에요.(웃음) 엄마 말을 끝끝내 안 듣는 이 아이들. 큰 딸이 제일 말을 안 들어요."

-연말연초 계획은?

"집에 있어요. 애들 다 키우고 나면 봉쇄 수도원에 가서 한 일년 동안 가고 싶어요. 국내로요. 아무리 서로 묵언을 해도 그렇지 굳이 말도 안 통하는 해외 가서 어쩌자는 거예요. 애들만 크면 맘대로 여행도 다니고. 아이들이 제 쓸데없는 욕망의 발목을 잡는, 현실에 묶어주는 족쇄이기도 하고, 하나의 축복이고 행복인 것 같아요.

우리 애들은 제가 가장 축복인 게. 우리 애들이 무지 밝아요. 학교 가서 볼 때 애들이 밝나 안 밝나 그런 것을 봐요. 나의 죄책감이 있기 때문에. 근데 애들이 다들 에미 닮아서 대책없이 밝아요. 애들에게 상처 주는 선생님들이 있잖아요. 막내의 경우도 왔어요. 저는 '니가 이런 선생님을 만났단다'하고 솔직히 말해요. 선생님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 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선생님이 우리 막내를 너무 애정 결핍으로 보는 것에 대해 상처받았어요. 엄마가 너무 바쁘니까 우리 애들을 그렇게 보시는 거죠. 제가 학교 가면 선생님들이 그런 얘기해요. 바쁜 것 가지고 말이죠. 전 우리 부모 세대처럼 다 널 위해 하는 거란 말하지 않고 1년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어요. 난 애들에게 거짓말로 감싸고 싶지 않았어요."

-솔직한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부르주아의 건강성이랄까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저에요. 저."

07. 01. 02.

P.S. 공지영 소설을 별로 읽은 바 없다. <인간에 대한 예의>(창비사, 1994/2006)의 초판을 읽으며 '좋은 인상'을 받은 게 거의 전부이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풀빛, 1989/ 푸른숲, 1998)은 제목부터 유치하다고 생각해서 서평을 읽는 걸로 대체했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문예마당, 1993/ 푸른숲, 2006)는 영화감상으로 대신했다(거기 모스크바의 풍경이 등장하고 아는 선배도 출연했다).그리고는 '고등어'와 '봉순이 언니' 신드롬이었다. 견문에 평론가들로부터 가장 호평을 받은 작품은 <별들의 들판>(창비사, 2004)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 2005)으로 쏠렸으며 그러한 '사회적 현상'이 '우리들의 행복한 공지영'을 낳았다. 작가가 <즐거운 나의 집>을 차기작으로 꼽아두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징후적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아무튼 편집하느라 애먹었다. 아무리 인터뷰 정리기사라지만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중복이 심한 기사는 처음 봤다. 기자가 편집을 하다 나가떨어진 게 아닌가 싶다. 기사에서 내가 건진 건 세 가지이다. 먼저, 중1 때의 에피소드. "서강대 옆 중학교를 다녔는데 공덕동에서 48번을 타고 다녔어요. 그때 우리 엄마가 연보라색 벙어리 장갑을 짜 줬는데, 어느날 한 아저씨가 길을 물어보는데 손을 보니까 손이 터져서 막 피가 나는 거예? 그래서 제가 버스 타기 전에 손이 아플 것 같다며 그걸 억지로 드리고 창피해서 막 뛰어서 버스를 탄 기억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돈을 주든지 왜 그 이쁜, 할아버지가 낄 수도 없는 것을 드렸을까. 이것이 어떤 상징일 수 있겠다 싶어요." 맞다, 상징이다. 그것도 그녀의 작가적 세계관을 집약해주는.

그리고 산도르 마라이 소설에 대한 열광: "내가 왜 그렇게 좋아하나 봤더니, 그 사람이 운명과 싸우더라구요. 현대 유럽작가와 다르게 운명이나 비극을 담고 있다는 평을 봤어요. 아마 그런 것이 나를 매료시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제 자신이 마흔이 넘어갈 무렵에 운명이란 게 있구나, 너무 강력해서 내가 피할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었거든요. 나의 노력, 의지, 선의와 상관없는 그런 일들이 내 인생에서 일어나고 있는 꼴을 보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운명이란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수도원 기행> 같은 게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밥벌이'로서의 글쓰기: "나는 진짜 밥을 벌기 위해서 밤 새워가며 앉아서 글 썼어요. 이제껏 결혼을 3번 했지만 지금까지 제가 생활비를 대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23세 이후부터 현재까지 내가 집안의 가장이었고, 사력을 다해 글 쓰는 게 내 밥벌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내가 독자들이 좀 더 좋아할 수 있는 책을 써서 생활비를 댈까 이것이 오직 나의 관건이었죠." 둘러대지 않아서 좋다. 그것이 공지영의 힘이다. 비록 허구를 꾸며대는 소설가이지만, 그녀의 삶과 소설 사이의 관계는 아주 투명해 보인다. 액면 그대로이다. 이 작가는 아직도 쓸어갈 판돈이 더 남아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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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1-02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우행시 영화로 봤는데 좀 아쉬운 게 많더라구요. 근데 나만 그런가봐요. 그래도 공지영 보면 볼수록 참 진솔한 사람 같아 좋으네요. 잘 됐으면 좋겠어요.
한참 읽었네요. 공지영도 공지영이지만 기자의 질문도 명품 같네요.^^

로쟈 2007-01-02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읽을 만한 인터뷰인데, 편집은 좀 엉망입니다.--;

마노아 2007-01-02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지영에 대한 몇몇 편견을 지울 수 있는 인터뷰였어요. 읽고 나니 더 좋아지네요. ^^

로쟈 2007-01-0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자의 표현이지만, '부르주아의 건강성'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의 문학, 그리고 밥벌이, 그렇게 요약될 수 있는...

페일레스 2007-01-03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체에 대한 답변은 일종의 변명처럼 들리기도 했는데, 예전에 남재훈이 김훈을 인터뷰했을 때 "자신의 문장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던 질문에 김훈이 했던 대답이 생각나더군요:
"사람들이 문장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들으면 대개 옳다. 그런데 그런 지적들이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문장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필연성이다. 오류를 알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다른 길이 보여도 발이 그쪽으로 가지지 않는다.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전압에 끌린다. 전압이 높은 문장이 좋다. 전압을 얻으려면 상당히 많은 축적이 필요하다. 또 그만큼 버려야 한다. 버리는 과정에서 전압이 발생한다. 안 버리면 전압이 생길 수 없다."
'문체'를 '한 번 확립되면 바꾸기 힘든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김훈의 대답에 더 공감이 갑니다...

로쟈 2007-01-04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과 달리 공지영은 문체주의자가 아닌 것이죠.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긴 해도, 사실 두 사람 간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란 매우 어려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부 2007-01-04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였던가.. 신경숙과 공지영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신경숙은 '여자'가 얼마나 예쁜 존재인지를 계속 이야기하려는 작가라면 공지영은 '내가'얼마나 예쁜지를 자꾸 말하려는 작가라고 했던 이야기에 박장대소하면서도 좀 씁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음.. 전 공지영에 대한 몇몇 편견들이 강해진 인터뷰였습니다.-_-

로쟈 2007-01-0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답습니다.^^

yoonta 2007-01-0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렇게 꼼꼼히 정리해주시니 생전 관심도 없던 공지영씨 소설도 한번 들춰보고 싶어지네요..^^ 안그래두 읽어야 될 책이 산더미인뎅...책임지세요.. 로쟈님^^

로쟈 2007-01-04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뜻밖입니다. 그런 욕심을 다 내시다니.^^

2007-01-06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06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저도 '삐뚤어진'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7-01-20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뵙는 거 같은데, 종종 의견을 남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