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모나리자』(Monna Lisa). 이 그림은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Francesco de Gioconda)의 세 번째 부인을 그린 초상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알쏭달쏭한 미소를 짓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동성애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자신의 자화상을 여성화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모나리자』가 있는 루브르박물관(Musee du Louvre)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 그림이 있다. 벌거벗은 두 여인이 욕조에 들어가서 묘한 행동을 한다. 왼쪽 여인이 오른쪽 여인의 유두를 쥐고 있다. 왼쪽 여인은 마치 뜨거운 것이라도 잡는 양 왼손가락으로 아슬아슬하게 반지를 잡고 있다. 가슴의 유두를 잡은 왼쪽 여인의 자세는 이름 모를 남성 화가가 의도한 연출이다. 저기요, 아재! 당신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다 알고 있어요.

 

 

 

 

 

 

자, 가슴은 그만 보고, 욕조가 있는 방의 구조를 살펴보자. 불이 타오르는 난로 옆에 바느질하는 여인이 있다. 여인의 머리 위에 작은 그림 액자가 걸려 있다. 그런데 액자 크기가 너무 작다. 아무리 두 눈을 크게 떠봐도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다. 난로 위에도 그림 액자가 있는데, 절반이 가려져 있다.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델의 다리만 보일 뿐이다.

 

 

 

 

 

 

 

 

 

 

 

 

 

 

 

 

 

 

 

 

 

 

 

 

 

 

 

 

 

 

* 김복래 《프랑스 왕과 왕비, 왕의 총비들의 불꽃같은 생애》 (북코리아, 2006)

* 나가노 교코 《무서운 그림 2》 (세미콜론, 2009)

* 엘리아 보슈롱 《수수께끼에 싸인 미술관》 (시그마북스, 2014)

* 유경희 《가만히 가까이》 (아트북스, 2016)

 

 

 

작자 미상의 그림을 보는 사람보다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다행히 그림 제목이 알려져서 관람객은 벌거벗은 두 여인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다. 반지를 쥔 오른쪽 여인이 프랑스의 왕 앙리 4세(Henri IV)의 애첩 가브리엘 데스트레(Gabrielle d'Estrées)다. 왼쪽 여인은 가브리엘 데스트레의 동생 빌라르 공작부인(duchesse de villars)이다. 공작부인은 왜 언니의 유두를 쥐고 있을까? 그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관람객들은 저 두 사람을 '수수께끼 자매'라고 불렸을 것이다.

 

이 그림이 제작된 16세기 당시에 가슴의 유두 상태로 여성의 임신 여부를 판단했다. 따라서 동생의 행위는 가브리엘의 임신 사실을 암시하며 바느질하는 여인은 장차 태어날 아기(왕의 자식)가 입게 될 배냇저고리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앙리 4세의 전처는 여왕 마고(La Reine Margot)’로 알려진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Marguerite de Valois)였다. 마르그리트는 왕의 아이를 낳지 못했고, 왕은 매력적이고 자식까지 낳아줄 수 있는 가브리엘과 어울려 다녔다. 왕은 한때 58명의 애첩을 거느린 호색가였다고 한다.

 

 

 

 

 

 

 

 

 

 

 

 

 

 

 

 

 

 

* 다카시 하마모토 《반지의 문화사》 (에디터, 2002)

* 원종옥 《그림에서 보석을 읽다》 (이다미디어, 2009)

 

 

 

가브리엘의 손에 쥔 반지는 앙리 4세와의 약혼을 알리는 의미심장한 상징이다. 반지에 박힌 보석은 사파이어(sapphire)다. 이때 당시 앙리 4세가 교황으로부터 왕비와의 결혼무효 판결을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가브리엘은 ‘왕과 약혼한 애첩’이었다. 그래서 가브리엘은 왕이 준 귀중한 증표를 손가락에 끼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가브리엘의 반지는 단순한 약혼반지가 아니다. 왕권의 존엄성과 명예를 상징하기 때문에 가브리엘의 정치적 권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브리엘은 왕의 조언자가 되었고, 그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권유했다. 따라서 그림 속 반지는 왕과의 약혼을 알리는 증표임 동시에 ‘여왕을 넘어선 애첩’이었던 가브리엘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는 어트리뷰트(속성, attribute)다.

 

 

 

 

 

 

 

 

 

 

 

 

 

 

 

* 진중권 《성의 미학》 (세종서적, 2005)

 

 

 

진중권은 반지를 색다르게 해석했는데, ‘여성의 성기’를 암시하는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자매의 근친상간 관계를 상상하기도 하는데, ‘터무니없는 상상’이다.

 

왕과 가브리엘 사이에 세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1599년에 왕은 가브리엘과 정식으로 결혼하기 위해 마르그리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그러나 결혼식이 거행되기 일주일 전에 가브리엘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임신 6개월이었다. 가브리엘이 사산아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지만, 그녀가 독살당했다고 주장하는 음모론도 있다.

 

 

 

 

 

 

 

 

 

 

 

 

 

 

 

 

 

* 박경성 《레오나르도》 (서문당, 1992)

* 루치아 임펠루소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으로 읽기》 (예경, 2008)

 

 

 

《레오나르도》 (서문당, 1992)라는 책은 가브리엘 자매를 그린 그림에 ‘두 비너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몸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는 여인을 봤을 때 에로틱의 대명사 ‘비너스(Venus)’를 떠올렸던 걸까. 그렇지만 16세기 후반 작자 미상의 프랑스 화가가 그린 그림이 1519년에 세상을 떠난 다 빈치의 작품으로 소개된 내용은 잘못된 정보다.

 

 

 

 

 

 

 

 

 

 

 

 

 

 

 

* 에이민 E. 허먼 《우아한 관찰주의자》 (청림출판, 2017)

 

 

 

이 그림을 보는 관객들은 벌거벗은 자매를 쳐다보는데 집중한 나머지 ‘그림 속 그림’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림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자매 뒤에 또 다른 그림이 있다는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뜻밖의 사실을 잘 보지 못하는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에 빠지게 된다. 모델의 하반신만 보이는 그림의 정체와 의미에 대해 자유롭게 추정할 수 있다. 그림 속 모델이 남자라면 전쟁의 신 마르스(Mars,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레스(Ares)’), 아름다운 소년으로 알려진 아도니스(Adonis)일 수 있다. 아도니스는 사냥하는 도중 멧돼지의 엄니에 찔려 죽고 마는데, 땅바닥에 누워 죽어가는 아도니스의 모습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소재였다. 두 사람 모두 공통으로 비너스가 홀딱 반한 남자들이다. 모델이 여자라면 누워 있는 비너스를 그린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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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그림 한번 얄궃구만.ㅋ

cyrus 2017-09-13 16:59   좋아요 0 | URL
아마도 왕을 위해서 야릇하게 그렸을 거예요. ^^;;

sprenown 2017-09-13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군요...미술사학자들이 괜히 있는게 아니구요

cyrus 2017-09-14 13:48   좋아요 0 | URL
미술사학자들이 발견하고, 확인한 내용 중에는 추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을 공부하면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볼 수 있습니다. ^^

페크pek0501 2017-09-1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 중에는 동성애자가 많은 것 같아요. 예술과 동성애,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cyrus 2017-09-14 15:21   좋아요 0 | URL
정말 어려운 질문이군요. 동성애자 예술가는 아웃사이더입니다. 주류가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도전 정신이 있었을 겁니다. ^^

2017-09-13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14 13:50   좋아요 0 | URL
그림 속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미술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

꼬마요정 2017-09-1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의 미학‘이랑 ‘그림에서 보석을 읽다‘ 재밌게 봤습니다. 책과 마찬가지로 그림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는데, 아직도 저는 그림이 어려워요 ^^

cyrus 2017-09-14 13:52   좋아요 0 | URL
제가 책으로만 미술을 공부했는데요, 저도 아직 그림 보는 것을 몰라요. ^^

2017-09-14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14 21:01   좋아요 0 | URL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합니다. 미술 전문가라고 해서 그의 해석이 무조건 볼 수 없죠. ^^
 

 

 

 

제게 저만의 글쓰기 원칙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출판사의 리뷰 청탁을 받으면 그 사실을 반드시 리뷰에 명시할 것. 두 번째, 출판사로부터 받은 홍보용 책에 문제점과 한계가 보이면 그 책이 가루가 될 때까지 비판할 것. 비판도 한 권의 책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세 번째,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간도서를 읽고 나면 항상 마이리뷰를 먼저 쓸 것. 일명 () 마이리뷰, () 마이페이퍼 방식입니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나오는 신간 도서에 저 또한 누구 못지않게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간 도서를 주로 소개하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형 독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의무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책을 읽어야겠다.’라는 생각만 하는 독자와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독자는 다릅니다. 실천에 방점을 두는 독서가 제가 지향하는 독서관(reading viewpoint)입니다. 책을 사지 못하면, 도서관에 빌려서 읽습니다. 원하는 책을 도서관에서 만나려면 적어도 한 달은 기다려야 합니다. 내 손으로 종이를 쓰다듬고, 눈으로 문장을 어루만져야 책이 살아 숨 쉽니다. 책을 가까이하면 내 피부에 와 닿는 책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책의 숨결은 코와 입으로 들어와 우리 뇌와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증발합니다. 그 느낌의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리뷰를 씁니다. 저는 이 단순하고도 시간이 많이 드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 다치바나 다카시 지식의 단련법(청어람미디어, 2009)

 

 

 

어떤 종류의 책에 관심이 있더라도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지식의 단련법(청어람미디어, 2009)에 보면 아무 목적 없이 스크랩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사람의 사례가 나옵니다.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일은 시간 낭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자료만 잔뜩 모아 놓기만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익숙해지면 입력의 양이 출력의 양보다 많아져서 넘치게 됩니다. ‘출력을 전제로 한 독서를 해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면 착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신은 분명히 이 책을 한 번도 읽은 적 없는데 그 책을 읽었다고 믿게 되는 거죠. 지금보다 더 미숙했을 때 제가 이런 착각 속에서 살았습니다. 어리석었던 저를 구제해준 사람이 다치바나 다카시였습니다.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사실은 지난달에 나온 신간도서를 소개하는 글을 써야 해서 미리 사정을 밝혔습니다. 앞서 언급한 세 번째 원칙에 따르면 신간도서를 읽었으면 마이리뷰로 소개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만 특별히 그 원칙을 어기려고 합니다.

 

 

 

 

 

 

 

 

 

 

 

 

 

 

 

 

 

  

* 권택환 맨발 학교(만인사, 2017)

* 유병찬 소리 없는 빛의 노래(만인사, 2015)

* 박진형 고마 됐다(만인사, 2016)

 

 

 

지난주 일요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입니다. 대구시인협회장이자 만인사 대표인 박진형 선생님과 알라딘에서 ‘yureka01(유레카)’이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유병찬 님을 만났습니다. 그 날 세 사람은 달성습지 산책로를 맨발로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박 선생님과 유레카님은 요즘 맨발 걷기에 꽂혀 있습니다. 유레카님은 저에게 맨발 학교(만인사, 2017)라는 한 권의 책을 권했습니다. 이 책이 바로 제가 오늘 소개할 신간도서입니다.

 

사실 저는 일요일 전까지만 해도 맨발 걷기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어요. ‘맨발로 땅을 걸으면 가시가 박혀서 따갑지 않을까?’, ‘잘못 하면 발바닥에 생채기가 생겨서 세균에 감염되면 어쩌지?’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걸어보니까 괜찮았습니다. 처음에는 피부에 닿는 작은 모래 알갱이 때문에 따끔거리는 고통이 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이 점점 줄어듭니다.

 

 

 

       

 

 

맨발로 땅을 걸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몸으로 확인했습니다. 일요일 대구의 낮 기온이 30도를 웃돌았습니다. 세 사람이 달성습지를 걸었던 시간이 정오에서 오후 1시 사이였습니다. 태양 빛을 받아들인 땅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시간대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땅바닥이 뜨겁지 않았습니다. 뜨겁다기보다는 따뜻했습니다. 양말과 신발을 신었을 때 발에서 느끼는 따뜻함과 다릅니다. 양말과 신발을 오래 신은 채 걸으면 발바닥에 땀이 생기고, 답답한 느낌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맨발로 걸으면 발이 시원합니다. 햇볕을 받은 땅을 직접 밟아보면 차가운 기운이 느껴집니다. 발바닥이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과 맨발을 감싸는 바람을 감지하기 때문입니다.

 

맨발 학교의 저자 권택환 씨는 맨발 걷기 교육 문화 보급에 앞장서는 교육인입니다. 이 분은 지금도 매일 한 시간씩 맨발을 걷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 뇌와 마음 건강에 미치는 맨발 걷기의 긍정적 영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맨발 학교의 책 분량이 얇고,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단순명료합니다. 그냥 걸으면 됩니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보다 흙이 있는 곳에 걸어야 합니다. 흙이 있는 곳에는 분명히 꽃과 나무가 있습니다. 꽃과 나무가 있다면, 그 주변에 곤충이 날아다닐 겁니다. 흙이 있는 곳을 맨발로 걸어 다니면 우리가 살면서 지나쳤던 자연의 진짜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예쁜 꽃을 만나면 다가가서 코끝으로 인사를 나눠도 되고요, 스마트폰으로 굳어진 목을 살짝 위로 올린 채 걸으면 푸르른 하늘 위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볼 수 있어요. 한결 마음이 편해져요. 맨발 걷기는 돈 안 들이면서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운동입니다.

 

맨발 걷기를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맨발로 어떻게 사람들 앞에 걸어요? 창피한 일이에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맨발을 걸으면 못 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invisible gorilla experiment)’는 인지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심리 실험입니다.

 

 

 

 

 

 

 

 

 

 

 

 

 

 

 

 

 

*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보이지 않는 고릴라(김영사, 2011)

* 에이미 E. 하먼 우아한 관찰주의자(청림출판, 2017)

 

 

 

검은 셔츠 셋, 흰 셔츠 셋, 모두 여섯 명의 학생들이 팀을 이뤄 농구시합을 하고 있습니다. 흰 셔츠 팀의 패스 횟수를 세는 게 이 실험의 과제입니다. 1분도 채 안 되는 실험 영상 중에는 고릴라 옷을 입은 학생이 등장해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절반가량은 고릴라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맨발로 걸으면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눈 뜬 장님이 됩니다. 주변 시선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는 맨발 걷기 문화 정착에 찬성하지만, 이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에 창조력 함양을 포함한 저자의 관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저자가 참고한 책 중에 이승헌 씨의 책도 있던데, 책 후반부에 맨발 걷기 교육과 뇌 교육을 연관 지어 설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이승헌 씨의 뇌 교육과 그가 관여한 활동을 과학적인 관점으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책의 구성이 아쉬웠습니다. 처음에 했던 내용을 문장을 바꿔서 재차 강조하는 글쓰기는 독자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책의 가치가 낮아집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맨발 학교를 직접 사서 읽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제 글이 알라디너의 선택에 노출된다고 해도 출판사 판매 수익, 저의 ‘Thanks to 적립금적립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 책마이페이퍼로 소개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맨발 걷기는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에 불과했던 걷는 행위와 다릅니다. 맨발 걷기는 눈을 뜨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명상운동입니다. 호흡과 발걸음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흙과 숲이 있는 곳에서 맨발로 걸으면 주변 풍경이 훨씬 더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 숲 사이로 비치는 따스한 햇살, 새 소리, 풀 향기들이 여러분들의 지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이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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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9-12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걷는 모습에서 맨발로 첨 걸어보는 티가 팍팍 나는 cyrus님 ㅋㅋㅋㅌ

cyrus 2017-09-12 20:40   좋아요 0 | URL
저때가 출발점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걷고 있었습니다. 역시 처음으로 맨발로 걸으니까 발바닥에 통증이 찾아왔어요. 지금도 발바닥이 조금 얼얼합니다.. ㅎㅎㅎ

이하라 2017-09-12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발로 처음 걸어보는 티가 난다면 왼쪽분이 cyrus님이로군요^^

cyrus 2017-09-12 20: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진을 다시 보니까 초짜와 고수의 차이점이 느껴집니다. ^^

stella.K 2017-09-12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뒷모습 얼핏 보니 생각 보다 호리호리 하네.
동안일 것 같군.
뭐 유레카님은 아저씨니까.ㅋㅋ
암튼 좋은 시간이었겠네.^^

cyrus 2017-09-12 23:26   좋아요 0 | URL
한 시간 걷고나서 박진형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시는 화가의 아틀리에도 구경했어요. 정말 특별한 일요일이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9-12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발걷기가 무좀치료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cyrus 2017-09-12 23:28   좋아요 1 | URL
《맨발 학교》에도 맨발 걷기 이후로 무좀이 줄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플라시보 효과인가요? ㅎㅎㅎ

yureka01 2017-09-12 2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흙과 내 발바닥의 촉감의 느낌. 전해져 오는 대지의 온도...대기의 기온 이런 것들의 내재됨.. 좋은 시간이었어요..사진 한장 찍을 수 있는 행복..ㅎㅎㅎㅎㅎ네 그럼요....
인류가 신발은 신었던 기간은 몇천년도 안되죠,맨발은 수만년이었을 겁니다.잃어버린 본질의 촉감이라고나 할까 싶습니다..

cyrus 2017-09-12 23:30   좋아요 1 | URL
제가 유레카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평생 접하기 힘든 경험과 새로운 만남은 없었을 겁니다. ^^

곰토낑 2017-09-12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국 곳곳에 맨발로 산책할수있는 길이 조성되있는건 아는데 실제로 걸어본 적은 없었어요. 곤충이나 돌조각, 유리조각 같이 발바닥을 상처입게할 요소들만 생각해서 저어되더라구요... 그런데 흙길을 맨발로 산책하기엔 여름이 더할나위없이 좋아보이네요. 파삭파삭하고 자근자근한것이...ㅋㅋ 그런데 글을읽다 깜짝 놀랐어요 ^^; 자정에서 1시라고 하셔서 새벽산책이신줄...ㅎㅎㅎ

cyrus 2017-09-12 23:36   좋아요 0 | URL
맨발 산책로가 단순히 건강 증진에 목적을 두고 만들어지는 게 아쉬워요. 그런 길 대부분은 딱딱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어요. 정말로 도시에서 흙길을 만나기가 어려워요.

저의 실수를 정확히 발견하셨군요. ‘정오‘라고 써야할 것을 ‘자정‘으로 잘못 쓰고 말았어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은 북플로 작성한 것이 아니라서 지금 당장 수정할 수 없어요.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군요. ㅎㅎㅎ

clavis 2017-09-1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걷고싶어져요^^!!

cyrus 2017-09-12 23:40   좋아요 0 | URL
맨발로 걸으면 발이 시원해집니다. 신발이 없으니까 발이 움직일 때 가벼운 느낌이 들어요. ^^

2017-09-13 0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13 12:57   좋아요 0 | URL
대학생 시절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밤 11시만 되면 졸려서 책을 못 읽겠어요. 이렇다보니 금방 읽을 수 있는 얇은 책만 찾게 됩니다.. ㅎㅎㅎ

뇌호흡을 뇌과학이 인정한 현상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sprenown 2017-09-13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양말을 벗고 싶군요..나도 저렇게 어기적 대면서라도 한번 걸어볼까나?

cyrus 2017-09-13 12:59   좋아요 0 | URL
회사에 있으면 슬리퍼를 신고 다닙니다. 그래야 발이 시원해지고, 발냄새가 날아갑니다.. ^^;;

페크pek0501 2017-09-1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세 분이 만들어낸 작품이네요...

저도 보이지 않는 고릴라, 경험했어요. 글을 읽기 전에 사진만으론 맨발인지 몰랐습니다. ㅋ

cyrus 2017-09-14 13:54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의 글을 읽을 때 정작 중요한 내용을 못 보고, 엉뚱한 내용만 보는 경우가 있어요. 또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는데도 오타를 발견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

오후즈음 2017-09-14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오래 머물렀던 프라이부르크에선 간혹 맨발로 다니는 유럽인들을 볼수 있었는데요. 그들을 볼때마다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도시는 어려우니 간혹 저렇게 자연과 친해지고 싶네요.

cyrus 2017-09-14 13:56   좋아요 0 | URL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자연친화적 장소가 많을 것 같습니다. 맨발로 걸으면 자연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
 
화성 연대기 샘터 외국소설선 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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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구의 위치는 신기하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우연인 이채로운 일이다. 현재의 위치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몹시 덥거나 추워져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 그만큼 지구는 매우 예민한 위치에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지구의 위치는 또한 생명이 가능한 대기를 만들어 주었다. 금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 질소로 이루어진 죽음의 평형상태다. 따라서 금성의 표면이 너무 덥거나 너무 춥다. 지구는 적절한 온도가 나오도록 유지하고 있는 살아있는 별이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은 지구의 절규와는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다. 좀 가혹한 얘기지만, 인간은 지구라는 별에 착 달라붙어 질병을 일으키는 ‘미세 먼지’다. 지금까지 인간이 ‘산업화’와 ‘미래를 위한 진보’ 등의 명분으로 지구에 어떤 일을 해왔는지 돌이켜보면 그럴 법도 하다.

 

민간 우주 항공사 ‘스페이스 엑스(Space X)’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앞으로 십여 년 내에 화성에 사람을 보내고 궁극적으로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꿈을 밝혀 왔다. 그는 또 저궤도 위성을 수백 개 띄워서 지구 전역을 연결하고, 미래에는 이 시스템을 확장해 화성에서도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화성은 그동안 지구 이외의 태양계에서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행성으로 꼽혀왔다. 무엇보다 화성은 중력, 자전 속도, 대기의 존재 등에서 지구와 가장 흡사한 과학적 조건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화성의 하루는 24시간 37분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물과 산소의 존재이다. 생명체의 존재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비록 극소량이긴 하지만 지난 1976년 미국의 우주선 바이킹 호(Viking spacecraft)의 화성 탐사로 수증기와 산소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화성 표면의 물기 없는 골짜기들과 강바닥, 과거 화성의 기후상태에 대한 흔적들은 화성이 한때는 물로 가득 채워져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줬다.

 

인간의 화성 거주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우린 ‘낙관적 전망에 파묻힌 의문’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과연 지구를 두고 화성에 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제2의 지구를 만드는 일은 실제로 가능한 것인가. 화성에 ‘화성인’으로 알려진 생명체가 살 수 있다는 상식은 정말 진실일까. 만약 화성인이 살고 있다면 이는 과연 인간에게 유익한 것일까. 책을 펼치면 길이 나온다고들 하지만, 어떤 책에는 광활한 우주가 펼쳐져 있다. 21세기가 된 지금도 마음대로 우주에 여행할 수 있는 시대는 오지 않았지만, 대신 책으로 우주여행을 떠날 수는 있다. 그 책이 바로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화성 연대기》(샘터, 2010)다. 이 책에는 우주의 미래뿐만 아니라 ‘왜 우리는 화성인을 만나야 하는가’라는 아주 소박하면서도 근본적 질문이 압축되어 있다.

 

《화성 연대기》는 독자들을 인류가 정착한 화성으로 실어주는 타임머신(Time Machine)이다. 타임머신 조종사는 레이 브래드버리다. 그는 능숙하게 타임머신을 조종하여 1999년부터 2006년까지, 그다음에 연도를 훌쩍 건너뛰어 2026년의 우주로 향한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미래의 지구는 예전의 영롱한 푸른빛을 내지 못한다. ‘죽은 행성’이나 다름없다. 화성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인류는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으로 만들기 위해 화성에 나무를 심고, 도시를 세운다. 운명을 개척하기 시작한 지구인들은 ‘화성의 지구화’에 성공했지만,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화성인들에게는 엄청난 재앙이었다. 이 소설은 화성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과 정반대의 관점을 제시하며, “과학으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진실을 끄집어낸다.

 

지구인들이 지배한 화성은 황량한 아름다움이 고요하게 감돌지 않는다. 인간의 발길이 닿은 그곳은 ‘미지의 세계’가 아니다. 적의에 찬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세계이다.

 

‘메뚜기 떼가 이집트 온 땅에 몰려와 이집트 온 영토에 내려앉았다… 그것들이 온 땅을 모두 덮어 땅이 어두워졌다. 그러고는 우박이 남긴 땅의 풀과 나무의 열매를 모조리 먹어버렸다. 그리하여 이집트 온 땅에는 들의 풀이고 나무고 할 것 없이 푸른 것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구약성경의 「출애굽기」 편에 보면 무시무시한 메뚜기 떼의 습격을 언급한 기록이 있다. 메뚜기 떼는 우리에게 공포로 각인돼 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초토화하는 극성의 대명사다. 그것은 10가지 재앙 중의 하나다. 브래드버리는 ‘화성을 파괴하는 침략자’로 변한 지구인들을 ‘메뚜기 떼’에 비유한다.

 

 

로켓들은 밤에 치는 북처럼 왔다. 떼거지로 활짝 핀 장밋빛 연기처럼 내려앉는 메뚜기 떼처럼 왔다. 그런 다음 로켓에서 손에 망치를 든 사람들이 뛰어나와 낯선 세계를 두들겨 낯익은 모습으로 바꾸고 모든 미지의 요소를 패서 부수어버렸다. 입에 못들을 여러 가닥의 술처럼 물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쇠 이빨을 가진 육식동물처럼 보였다.

 

(『2002년 2월 메뚜기 떼』 180쪽)

 

 

19세기 사람들은 우주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파동 형태의 빛을 전달한다고 믿었다. 그것은 ‘맑고 깨끗한 대기(大氣)’라는 뜻을 가진 에테르(ether)다. 그러나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Michelson-Morley experiment)이 성공하면서 에테르의 존재를 인정하기 어렵게 되었고, 아인슈타인(Einstein)은 물리학의 구 패러다임(paradigm)이 누워 있는 관에 못을 박았다. 빛을 전달하는 에테르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에테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고독’이라는 감정의 파동을 퍼뜨리는 매질(媒質)이다. 우리는 우주 개발을 꿈꾸면서도 여전히 낯설고 어두컴컴한 우주에 혼자 남은 고독을 무서워한다. 화성을 주제로 한 브래드버리의 작품 속에는 이 ‘고독’이라는 에테르가 스며들어 있다. 화성에 오래 거주한 지구인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지구에 남아있던 고독이 에테르에 실려 우주를 둥둥 떠나디다가 저 멀리 있는 화성 표면에 안착했을지도 모른다.

 

 

우주는 마취제였다. 1억 킬로미터의 거리는 사람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기억을 잠들게 하고,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없애버리고, 과거를 지우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일에 전념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2005년 11월 지켜보는 사람들』 320~321쪽)

 

 

인간의 심장 속에 어둠과 미지에 대한 공포심이 흐르고 있다. 그 흐릿한 대기 속에 홀로 삼켜진 채 화성의 비밀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현실이라 부르던 세계의 존재는 아스라해지기만 한다. 그들은 때때로 솟구쳐 오르는 공포감을 억누르기 위해 화성인에 비협조적으로 대한다. (『2005년 11월 비수기』의 샘 파크힐) 지구인들은 화성을 지구처럼 비슷하게 만들려고 ‘낯선 것’이라고 느껴지는 대상을 가차 없이 파괴한다. 그들의 행동은 우리가 계속 억누르는 어두운 면이다. 미지의 공포에 대항할 수 있어도 일시적 효과에 그칠 뿐이다. 왜곡된 공포심은 이성과 상식마저 억눌러 ‘파괴’ 본능을 깨운다.

 

인류와 화성의 미래를 그린 동화는 결국 고독으로 수렴한다. 《화성 연대기》의 고독은 좀처럼 지구인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화성인은 좀처럼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지구인이 목격했다던 화성인은 오랜 우주 생활에 지쳐버린 지구인들이 겪는 신기루일 수 있다. 지구 밖에서도 지극히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화성인과 만남을 고대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적막한 우주 속에서 고독하고 쓸쓸하게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화성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화성 연대기》는 한 번쯤 권해볼 만한 책이다. 눈으로 한 번 읽은 다음에, 책을 덮고 나서 두 눈을 감아보아라. 자신의 고향과 비슷한 화성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작가의 영혼이 독자에게 질문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당신들은 정말로 화성인을 만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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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09-12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만나기 싫어요..2026년이면 10년후인데 그때도 좋은 책 읽고 이렿게 댓글달고 싶어요.ㅎㅎ

cyrus 2017-09-12 20:00   좋아요 0 | URL
만약에 지구인이 화성에 거주하면 거기 책 읽는 사람이 있을까요?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7-09-12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 브래드버리는 ‘화씨451‘로 알게 됐어요.
이 책도 재밌을 것 같아요.
님의 문제제기도 호기심을 자극하구요~^^

cyrus 2017-09-12 19:42   좋아요 0 | URL
제가 브래드버리의 진가를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몇 년 전에 브래드버리가 영면했을 때 네이버 블로거들이 추모 글을 남겼습니다. 그분들의 심정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이번에 나온 책 두 권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

sprenown 2017-09-12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화씨451을 트뤼포 영화로 봤습니다. 솔직히 이런 공상과학소설을 쓰는 사람인지도 몰랐어요. 종이책없는 세상은 끔찍합니다. 검지에 침묻혀서 휘리릭 넘기는 질감과 소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yrus 2017-09-13 16:37   좋아요 0 | URL
《화성 연대기》에는 상상력이 허용되는 문학(판타지, 호러)을 규제하는 미래 세상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중에 《화씨 451》과 비교해보고 싶습니다.

카스피 2017-09-13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성하면 재작년인가 화성에서 홀로 살아남기를 그린 마션이란 영화가 알려지기 전까지는 보통 화성인의 침략을 다룬 우주 전쟁의 이미지가 상당히 강한 편이죠.
화성연대기에서 인간은 이미 1999년에 화성에 가게되는데 아직까지 인간이 화성에 가기에는 무척 요원해 보입니다(이 책은 1950년도에 나왔는데 저자는 한 50년뒤면 인간이 화성에 닿을거란 낭마적인 상상을 한 셈이죠)
화성연대기는 70년대 후반 동서추리문고,1980년대 모음사에서 나왔고 샘터에서도 다시 재간될 정도로 SF명작중의 한권인데 ㅎㅎ 전 이 세 출판사 책을 모두 갖고 있네요^^

cyrus 2017-09-13 16:37   좋아요 0 | URL
박상준 씨가 쓴《화성 연대기》서문에 보면 2013년에 원작이 영화화된다고 나와 있어요. 아직 소식이 없는 걸로 봐서는 제작 준비 중이거나 소리 소문 없이 무산되었을 것 같습니다. ^^;;

카스피 2017-09-13 18:34   좋아요 0 | URL
읽아보셔 잘아시겠지만 일종의 연작 단편 형식이라 영화로 만들기 좀 애매합니다.차라리 드라마로 만드는 것이 아마 나을 듯 싶어요.

AgalmA 2017-09-13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두려움을 기필코 대상화해서 보려는 특징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야 구체적인 방도를 살필 수 있어서겠죠. 생존본능에 기인하는 거겠지만 화성이나 외계인에 대한 지구인의 공포는 사실보다 우리 감정에 기인하는 게 더 크죠.
이런 문학이 시야를 더 넓혀주는 역할을 해서 좋아요 :)

cyrus 2017-09-13 16:3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불명확하고 낯선 대상을 만나면서 생기는 두려운 감정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 소설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감정이 심해지면 자신과 다른 대상을 ‘비정상적’으로 인식해서 ‘차별’하고 ‘혐오’하게 됩니다.
 
극한의 경험 - 유발 하라리의 전쟁 문화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희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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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이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금언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실감케 하는 말이다. 이 말의 배경에는 과학이 예술이나 종교와는 달리 주관적 가치 판단에서 벗어나서 사물의 본질과 현상의 구조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과학관이 깔려있다. 서구 문명은 이성을 가진 인간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데카르트(Descartes)생각하는 나’, 즉 이성을 가진 인간을 존재하는 대상에 관한 모범 답안으로 제시한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무기 삼아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게 세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자, 이제 인간은 세계를 인간을 위한 세계로 개조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다. 그렇게 성립한 것이 바로 인본주의.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에 따르면 과학혁명은 인간이 신(종교)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이제 인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로 자리 잡게 되고, ‘중심의 중세사회에서 인간중심의 근대사회로 이행한다. 하라리는 근대 사회에서 지식을 얻는 방법을 한눈에 보여주는 자신만의 공식을 내세운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은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 2015),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에 나오는 것들이다. 최근에 나온 하라리의 신작 극한의 경험(김영사, 2017)을 읽기 전에 이 두 권의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신작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사실 극한의 경험따끈따끈한 신작이라고 소개하기가 애매하다. 극한의 경험사피엔스호모 데우스보다 먼저 나온 책이다. 극한의 경험2008년에 출간되었고, 2014년과 2016년에 각각 사피엔스호모 데우스가 나왔다. 하라리의 전공 분야는 중세사와 군사 역사다. 하라리는 자신의 두 가지 전공 분야를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엮어 나가면서 인류에게 영향을 끼친 전쟁 문화가 무엇인지 살핀다.

     

하라리는 근대인들이 전쟁에 대해 낭만적으로 접근한 것에 주목한다. 근대 이전 중세 사회에서 전쟁은 지옥을 방불케 하는 재앙이다. 중세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켜 패배하면 신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전쟁을 피하거나 전쟁터에서 살아남고 싶어서 자신에게 신의 은총이 내리길 간절히 기도했다. 18세기 후반부터 낭만주의가 등장함으로써 전쟁을 바라보는 근대인들의 눈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나온 전쟁 회고록을 살펴보면 대다수 전쟁을 혐오하지 않는 관점을 취한다. 오히려 전쟁 회고록 글쓴이들은 전투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치중한다. 이러한 글쓰기 전략은 전쟁이 인간의 감정을 압도하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낭만주의자들은 자연에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황홀한 감정을 숭고로 명명했고, 숭고의 개념을 광활한 자연이 아닌 전쟁터에서 찾으려고 했다. 참전 군인들은 참호에서 생활하고, 군사 훈련을 받고, 전우와 적군이 총탄에 맞아 쓰러져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다. 군인은 마음이 아닌 몸으로 전쟁 경험을 체득한다. 총소리만 듣고도 무서워서 벌벌 떨었던 곱상한 청년이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생활하면 극한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전사가 된다.

 

하라리는 군인들이 전쟁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거나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 특이점을 계시라고 말한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신의 눈치 받지 않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전쟁을 긍정적 계시 경험[1]으로 받아들인다. 종전 이후에 참전 군인들은 나라를 지킨 영웅으로 대접받고, 전사자들은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쳐 희생한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사회는 참전 용사, 전사자들의 전쟁 경험권위를 공적으로 부여한다. 전쟁을 경험한 자는 전쟁 회고록을 써서 전쟁이 숭고한 경험을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극한 상황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전쟁의 교훈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전쟁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품게 되고, 억제된 감정의 해방을 분출하기 위해 직접 전쟁터에 뛰어든다. 앞서 소개한 지식=경험X감수성 공식이 전쟁을 바라보는 인식까지 바꿔 놓은 것이다. 베이컨의 금언을 빌리자면 근대인들은 전쟁을 아는 것이 힘이라고 생각했다.

     

하라리는 전쟁의 역사를 지식=경험X감수성공식으로 설명한 서술 방식에도 결함이 있다고 밝힌다. 나는 이 책에서 하라리가 놓친 변수 하나남성성(masculinity)’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전쟁 회고록 집필에 열중하는 낭만주의자 남성들의 모습은 군대 경험담을 로 푸는 한국 남성의 모습과 조금 비슷하다. ‘국가의 아들이 된 한국 남성은 각종 군사 훈련을 받는 동안 간접적으로나마 전쟁 분위기를 느껴보고, 국가 수호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국방의 의무를 질 수 있는 건장한 남자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이다. 군대를 경험한 남성들은 자신들이 국방의 의무를 지켰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당연히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인식한다. 군대가 가지는 남성성의 강요 및 군대 자체가 만들어내는 남근주의적 인식이 군대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 즉 군 미필 남성, 성 소수자 그리고 여성의 사회 참여를 배제한다. 군대를 경험한 남성이 군 가산점제 도입을 반대하는 여성을 비난하는 전략은 매번 한결같다. “여성은 군대 경험을 하지 않았으니, 군대 생활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군 가산점제 찬성하는 남성들의 주장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2]는 낭만주의자들의 금언과 일맥상통하다. 이 말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보편적 남성성으로 남아 있다. 전쟁을 특별한 경험적 계시로 미화하는 시각이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게 하는 변수가 바로 군대와 남성성의 찰떡같은 조합이다. 따라서 나는 하라리의 공식에 '새로운 변수'를 추가해서 이렇게 바꾸고 싶다.

 

 

지식 = 경험 X 남성성

 

 

 

 

 

[1] 극한의 경험391

 

[2] 같은 책,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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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9-0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현재도 있죠.
말씀처럼 남성이 아닌 남성성이 문제인거 같습니다.
남성성도 인본주의 영향인지 궁금해집니다. ^^

cyrus 2017-09-09 07:28   좋아요 0 | URL
남성성과 인본주의의 관계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

2017-09-08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9 07:33   좋아요 1 | URL
최근 북핵 위기가 고조되니까 ‘전쟁을 하자‘, ‘우리나라도 핵무기를 개발하자‘ 등 호전적인 주장의 댓글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이런 주장들이야말로 ‘행동없는 지식‘입니다. 사실 ‘지식‘이라고 보긴 어렵고, 생각없는 개소리입니다.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저런 개소리들이 나옵니다.

sprenown 2017-09-12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피엔스 밖에 읽어보지 못해서 저자의 정확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잘모르겠습니만,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전쟁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품게 되고, 억제된 감정의 해방을 분출하기 위해 직접 전쟁터에 뛰어든다.라는 표현은 너무 지나치지 않나 생각합니다.(전쟁에 참여하는 남성들은 애국적 지원병보다 강제징집병들이 훨씬 많지 않았을까요? 또, 2차대전시 레지스탕스와 일제강점기 우리 무장독립군도 환상과 경험을 위해 전쟁터에 뛰어 들었을까요?) 저도 물론 현역으로 전방에서 군복무를 했습니다만, 전쟁은 두렵고 무섭습니다.포탄이 난무하고 총알이 빗발치는곳에서 언제죽을지 모르는데 두렵지요..제가 남성성이 부족한, ‘찌질한 남자‘여서 그럴까요? 요즘 여기 알라딘서재에 웬 페미니즘 바람이 불어서 인지, 기획에 의한 마케팅(책을 구매하는 20대후반내지 30초반의 여성들을 타킷으로하는)인지 페미니즘관련서와 그에 대한 의도된 서평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성평등이슈를 공론화해서 이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겠다는 순수한 의도에서 그런거라면 적극 찬성합니다만...

cyrus 2017-09-10 19:07   좋아요 1 | URL
《극한의 경험》을 비판하는 독자평도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sprenown님처럼 저자의 입장에 문제를 제기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책이 서양 전쟁사에 국한되어 있어서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남성성(강하고, 용기 있고, 마초 같은)이 없다고 해서 ‘찌질한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자들만 있는 사회 집단 내에서 ‘남자‘로 인정받으려면 ‘남성성‘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예를 들면 ‘남자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면 안 된다‘, ‘남자는 울면 안 돼!‘ 등이 있어요. 이를 어기면 ‘남자답지 않은 여자‘로 놀림거리 받았어요.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남성성의 실체와 문제점을 바라보기 위해서입니다. 사회가 은연중에 강요하는 남성성은 남성, 여성 그리고 성 소수자들 모두 악영향을 끼칩니다. 저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성을 비판하는 것이지 ‘남자‘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성성에 갇혀 있거나 남성성이 낳은 편견에 사로잡힌 남성은 비판합니다. 그러나 이를 남자 전체를 비난하고, 혐오한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지금도 페미니스트들의 순수한 의도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매도하는 인식이 남아있습니다.

sprenown 2017-09-12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뿌리깊은 문화적 전통이라는게 의식변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양문화의 뿌리라 할수 있는 기독교, 성경자체가 굉장히 남성우위, 가부장적으로 기술되었고, 우리나라 역시 조선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내훈을 편찬한 이후 급격히 남존여비사상이 확산되었죠. 결국 의식의 확장과 공감을 통한 제도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법상 호주제폐지나 형법상 혼인빙자간음죄, 간통죄폐지,정책상의 양성평등제도 등도 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보완이었다고 할수 있겠습니다만 보다 많은 분야에서 제도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죠. 관심있는 시민사회단체간의 연대를 통한 입법화,제도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얘기가 되겠지만 여성스스로도 통렬한 자각을 통해 스스로의 자존을 무너뜨리는 언행을 삼가는 것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cyrus 2017-11-16 16:56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남존여비사상의 기원과 그 배경을 거의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남성이 사회적 · 문화적 전통이 낳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남녀가 처한 부당한 상황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인데요, ‘공감을 통한 제도화’에 찬성합니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차별적인 제도를 보완하는 대안을 주장합니다만, 급진적 페미니스트가 지적하는 한계가 되기도 합니다.

sprenown 2017-09-12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그러나 희생은 하지 마세요.

cyrus 2017-09-12 15:12   좋아요 1 | URL
sprenown님.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생각날 때마다 페미니즘 관련 글을 쓰려고 합니다. 비판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

sprenown 2017-09-12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관련 서적 한권 읽지도 않았는데...땡길때 몇권 읽고,공부도 좀 해서 비판다운 비판해 보겠습니다.

cyrus 2017-09-12 19:45   좋아요 1 | URL
sprenown님을 만나기 전에는 글 쓰는 것에 매너리즘을 느꼈어요. 최근 sprenown님을 만나게 되니까 의욕이 생깁니다. 저는 적극적인 ‘반응‘을 원했습니다. ^^
 

 

 

 

※ 레이 브래드버리 – 장의사(The Handler) [1부]

http://blog.aladin.co.kr/haesung/9573458

 

 

※ 레이 브래드버리 – 장의사(The Handler) [2부]

http://blog.aladin.co.kr/haesung/9580203

 

 

 

 

 

베네딕트는 시체에서 시체로 돌아다니며 그들 몸 위에 온갖 모욕을 가했다. 마지막으로 맞닥뜨린 것은 메리웰 브라이스라는 간질병 발작이 지병인 노인이었다. 브라이스 노인은 지금까지 몇 번인가 이곳으로 운반되어 왔지만 이장 직전에 되살아난 인물이었다. 베네딕트가 시트를 젖히자 브라이스 노인이 눈을 깜박거렸다.

 

“아아!”

 

베네딕트는 시트 위로 쓰러질 뻔했다.

 

“이봐, 안 일으켜 줄 거야!”

 

시트 밑의 인물이 외쳤다.

 

“그렇고말고, 처음부터 전부 들었지!”

 

노인은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꼼짝도 못하고 이렇게 누워 있는 동안에 네놈이 지껄이는 걸 빠짐없이 들었어! 아아, 네놈은 지독한 놈이다, 무서운 놈이야, 악마, 요괴다. 모독자, 사디스트, 비뚤어진 악마, 무서운 놈이야. 기다리고 있어라, 나는 이곳을 떠나서 시장과 시의원들 모두에게 이 일을 얘기하겠어!”

 

노인은 입에 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안 됩니다!”

 

베네딕트는 무릎을 꿇었다.

 

“여기를 나가게 해 줘! 네놈은 무서운 놈이야. 몇 년 동안이나 이런 일이 이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도 누구 한 사람 그 사실을 몰랐다니! 네놈은 괴물이야!”

 

“아닙니다.”

 

그는 일어서려다가 다시 털썩 주저앉아 공포에 떨었다. 노인은 쌀쌀맞은 모멸감을 담아 말했다.

 

“네놈이 한 그 끔찍한 소리는 다 뭐야. 그리고 그 끔찍한 짓거리들은!”

 

“죄송합니다.”

 

베네딕트는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이 일어서려고 했다.

 

“안 됩니다!”

 

베네딕트는 노인에게 들러붙었다.

 

“안 놔!”

 

“안 됩니다!”

 

베네딕트는 모질게 밀쳐지자 굵은 주사기에 손을 뻗어 그것을 노인의 팔에 찔렀다.

 

“이놈이! 사람 살려!”

 

 

 

 

 

노인은 시트에 뒤덮여서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창문 쪽으로 쓰러질 듯한, 묘석이 늘어진 묘지 쪽으로 보이지 않는 눈을 부릅떴다.[13]

 

“이봐, 거기 묘석 밑에 잠들어 있는 여러분! 도와 줘요, 내 말을 들어 줘!”

 

노인은 입에 거품을 물며 털썩 쓰러졌다. 이제 곧 죽으리라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여러분, 내 말을 들어 줘요. 당신도, 당신도, 그리고 당신도 빠짐없이 모두. 이놈은 오랫동안 이런 끔찍한 짓을 해 왔어. 이 이상 계속하게 할 순 없어!”

 

노인은 입가의 거품을 핥으면서 점점 기력이 쇠퇴해 갔다. 베네딕트는 멍하니 그곳에 서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것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라고, 절대 아무것도 못해.”

 

“모두 무덤을 나와!”

 

노인이 말했다.

 

“도와 줘! 오늘밤이라도, 내일이라도, 언제라도 좋아! 이놈에게 덤벼들어서 없애 줘! 아아, 무서운 놈이야!”

 

노인은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어리석군.”

 

베네딕트는 마비된 혀로 말했다.

 

“당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야. 자, 빨리 뒈져 버려.”

 

“모두 일어나! 모두 나오라고! 도와 줘!”

 

“이제 그만 지껄여. 내 기분이 나빠진다고.”

 

방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밤이었다. 밤이 깊었다. 노인은 큰소리로 떠들다가 점점 기력이 약해져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소 지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자마자 숨을 거두었다.

 

“네놈은 모두를 골탕 먹였군, 무서운 놈이야. 하지만 오늘밤에야말로 네놈이 따끔한 맛을 보게 될 걸.”

 

그날 밤은 묘지에서 폭발이 있었다, 라고 전해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일련의 폭발음과 함께 이상한 냄새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노호하는 소리가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주변에서는 빛과 번개가 엇갈리고 교회의 종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지고 묘석은 쓰러지고 만물이 서로 저주하고 물건이 마구 공중을 날아다니고 뒤쫓기는 자의 비명, 갖가지 그림자, 시체 임시 안치장의 불빛이 이리저리 어른거렸고 그곳을 재빨리 출입하는 사물의 모습, 창은 깨지고 문은 경첩에서 떨어지고 나뭇잎은 날아다니고 철문이 삐걱거리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베네딕트의 모습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사라졌나 싶으면 다시 홱 나타났다. 그리고 마침내는 베네딕트의 고통에 찬 절규가 울려 퍼졌다. 그 후에는‥… 잠잠해지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마을 사람들은 시체 임시 안치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과 교회를 빠짐없이 조사한 뒤로 묘지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피가, 엄청난 양의 피가 여기저기 튀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마치 하늘에서 피비가 내린 것 같았다. 그러나 베네딕트의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걸까?”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 게 뭐야.”

 

그것이 모두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그 해답이 발견되었다.

 

묘지를 걷고 있던 그들의 발걸음이 어느 깊은 나무 그늘에서 멈췄다. 그곳에는 옛 시대의 묘석이 죽 늘어서 있었다. 나뭇가지 위에서 지저귀는 작은 새소리도 없다. 두꺼운 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도 여기서는 전구 빛처럼 약하고 가냘프게 마치 연극의 소도구처럼 맥없는 빛에 불과했다. 그들은 어떤 묘석 앞에 멈춰 서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아, 여기다!”

 

사람들은 칙칙하고 이끼가 낀 묘비를 들여다보고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곳에는 마치 손가락으로 급히 새겨 넣기라도 한 것처럼 (사실 손톱으로 새긴 것인지 흔적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음과 같은 묘비명이 새겨져 있었다.

 

 

 

 

베네딕트의 묘

 

 

 

“이것 봐!”

 

누군가가 외쳤다.

 

“이것도, 이 묘석도, 이쪽도, 그리고 이것도, 전부 똑같애!”

 

그 남자는 손가락을 들어 다섯 개의 묘비를 가리켜 보였다. 사람들은 그쪽으로 달려와서 보려고 다가섰다. 묘석의 하나하나에 손톱으로 세게 긁은 듯한 똑같은 묘비명이 있었다.

 

 

 

 

 

베네딕트의 묘

 

 

마을 사람들은 못 박히기라도 한 듯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해.”

 

한 사람이 가냘픈 목소리로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한 사람이 이 다섯 개의 묘지 전부에 매장되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우뚝 서 있었다. 다시 조용해졌다. 나무그늘의 어둠에 겁을 먹으며 그들은 본능적으로 초조하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사람들은 답을 찾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한 사람이 마비된 입술을 겨우 움직여 한 마디 내뱉었다.

 

“안 될 것도 없지.”

 

 

 

 

 

 

- 끝 -

 

 

 

 

 

 

 

 

 

레이 브래드버리 극장(The Ray Bradbury Theater)

Season 6 Ep. 12

(1992년 10월 27일 방영)

 

 

[13] 원작에서 노인은 ‘창문 밖’에 있는 묘지를 바라보면서 죽어간다. 원작을 각색한 TV 드라마 판은 원작과 다르다. 노인은 시체 안치소를 빠져나오지만, 굳게 잠긴 철문에 막혀 탈출에 실패한다. 베네딕트가 주입한 독극물에 맞은 노인은 철문 앞에 쓰러지면서 묘지를 쳐다본다.

 

 

 

 

 

 

 

 

 

 

 

 

 

 

 

 

 

 

 

 

 

※ 출전 : 정태원 역 《나의 꿈꾸는 여자 : 환상 미스테리 걸작선》 (동숭동,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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