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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대기 ㅣ 샘터 외국소설선 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구의 위치는 신기하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우연인 이채로운 일이다. 현재의 위치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몹시 덥거나 추워져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 그만큼 지구는 매우 예민한 위치에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지구의 위치는 또한 생명이 가능한 대기를 만들어 주었다. 금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 질소로 이루어진 죽음의 평형상태다. 따라서 금성의 표면이 너무 덥거나 너무 춥다. 지구는 적절한 온도가 나오도록 유지하고 있는 살아있는 별이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은 지구의 절규와는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다. 좀 가혹한 얘기지만, 인간은 지구라는 별에 착 달라붙어 질병을 일으키는 ‘미세 먼지’다. 지금까지 인간이 ‘산업화’와 ‘미래를 위한 진보’ 등의 명분으로 지구에 어떤 일을 해왔는지 돌이켜보면 그럴 법도 하다.
민간 우주 항공사 ‘스페이스 엑스(Space X)’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앞으로 십여 년 내에 화성에 사람을 보내고 궁극적으로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꿈을 밝혀 왔다. 그는 또 저궤도 위성을 수백 개 띄워서 지구 전역을 연결하고, 미래에는 이 시스템을 확장해 화성에서도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화성은 그동안 지구 이외의 태양계에서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행성으로 꼽혀왔다. 무엇보다 화성은 중력, 자전 속도, 대기의 존재 등에서 지구와 가장 흡사한 과학적 조건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화성의 하루는 24시간 37분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물과 산소의 존재이다. 생명체의 존재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비록 극소량이긴 하지만 지난 1976년 미국의 우주선 바이킹 호(Viking spacecraft)의 화성 탐사로 수증기와 산소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화성 표면의 물기 없는 골짜기들과 강바닥, 과거 화성의 기후상태에 대한 흔적들은 화성이 한때는 물로 가득 채워져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줬다.
인간의 화성 거주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우린 ‘낙관적 전망에 파묻힌 의문’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과연 지구를 두고 화성에 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제2의 지구를 만드는 일은 실제로 가능한 것인가. 화성에 ‘화성인’으로 알려진 생명체가 살 수 있다는 상식은 정말 진실일까. 만약 화성인이 살고 있다면 이는 과연 인간에게 유익한 것일까. 책을 펼치면 길이 나온다고들 하지만, 어떤 책에는 광활한 우주가 펼쳐져 있다. 21세기가 된 지금도 마음대로 우주에 여행할 수 있는 시대는 오지 않았지만, 대신 책으로 우주여행을 떠날 수는 있다. 그 책이 바로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화성 연대기》(샘터, 2010)다. 이 책에는 우주의 미래뿐만 아니라 ‘왜 우리는 화성인을 만나야 하는가’라는 아주 소박하면서도 근본적 질문이 압축되어 있다.
《화성 연대기》는 독자들을 인류가 정착한 화성으로 실어주는 타임머신(Time Machine)이다. 타임머신 조종사는 레이 브래드버리다. 그는 능숙하게 타임머신을 조종하여 1999년부터 2006년까지, 그다음에 연도를 훌쩍 건너뛰어 2026년의 우주로 향한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미래의 지구는 예전의 영롱한 푸른빛을 내지 못한다. ‘죽은 행성’이나 다름없다. 화성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인류는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으로 만들기 위해 화성에 나무를 심고, 도시를 세운다. 운명을 개척하기 시작한 지구인들은 ‘화성의 지구화’에 성공했지만,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화성인들에게는 엄청난 재앙이었다. 이 소설은 화성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과 정반대의 관점을 제시하며, “과학으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진실을 끄집어낸다.
지구인들이 지배한 화성은 황량한 아름다움이 고요하게 감돌지 않는다. 인간의 발길이 닿은 그곳은 ‘미지의 세계’가 아니다. 적의에 찬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세계이다.
‘메뚜기 떼가 이집트 온 땅에 몰려와 이집트 온 영토에 내려앉았다… 그것들이 온 땅을 모두 덮어 땅이 어두워졌다. 그러고는 우박이 남긴 땅의 풀과 나무의 열매를 모조리 먹어버렸다. 그리하여 이집트 온 땅에는 들의 풀이고 나무고 할 것 없이 푸른 것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구약성경의 「출애굽기」 편에 보면 무시무시한 메뚜기 떼의 습격을 언급한 기록이 있다. 메뚜기 떼는 우리에게 공포로 각인돼 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초토화하는 극성의 대명사다. 그것은 10가지 재앙 중의 하나다. 브래드버리는 ‘화성을 파괴하는 침략자’로 변한 지구인들을 ‘메뚜기 떼’에 비유한다.
로켓들은 밤에 치는 북처럼 왔다. 떼거지로 활짝 핀 장밋빛 연기처럼 내려앉는 메뚜기 떼처럼 왔다. 그런 다음 로켓에서 손에 망치를 든 사람들이 뛰어나와 낯선 세계를 두들겨 낯익은 모습으로 바꾸고 모든 미지의 요소를 패서 부수어버렸다. 입에 못들을 여러 가닥의 술처럼 물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쇠 이빨을 가진 육식동물처럼 보였다.
(『2002년 2월 메뚜기 떼』 180쪽)
19세기 사람들은 우주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파동 형태의 빛을 전달한다고 믿었다. 그것은 ‘맑고 깨끗한 대기(大氣)’라는 뜻을 가진 에테르(ether)다. 그러나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Michelson-Morley experiment)이 성공하면서 에테르의 존재를 인정하기 어렵게 되었고, 아인슈타인(Einstein)은 물리학의 구 패러다임(paradigm)이 누워 있는 관에 못을 박았다. 빛을 전달하는 에테르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에테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고독’이라는 감정의 파동을 퍼뜨리는 매질(媒質)이다. 우리는 우주 개발을 꿈꾸면서도 여전히 낯설고 어두컴컴한 우주에 혼자 남은 고독을 무서워한다. 화성을 주제로 한 브래드버리의 작품 속에는 이 ‘고독’이라는 에테르가 스며들어 있다. 화성에 오래 거주한 지구인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지구에 남아있던 고독이 에테르에 실려 우주를 둥둥 떠나디다가 저 멀리 있는 화성 표면에 안착했을지도 모른다.
우주는 마취제였다. 1억 킬로미터의 거리는 사람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기억을 잠들게 하고,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없애버리고, 과거를 지우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일에 전념하며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2005년 11월 지켜보는 사람들』 320~321쪽)
인간의 심장 속에 어둠과 미지에 대한 공포심이 흐르고 있다. 그 흐릿한 대기 속에 홀로 삼켜진 채 화성의 비밀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현실이라 부르던 세계의 존재는 아스라해지기만 한다. 그들은 때때로 솟구쳐 오르는 공포감을 억누르기 위해 화성인에 비협조적으로 대한다. (『2005년 11월 비수기』의 샘 파크힐) 지구인들은 화성을 지구처럼 비슷하게 만들려고 ‘낯선 것’이라고 느껴지는 대상을 가차 없이 파괴한다. 그들의 행동은 우리가 계속 억누르는 어두운 면이다. 미지의 공포에 대항할 수 있어도 일시적 효과에 그칠 뿐이다. 왜곡된 공포심은 이성과 상식마저 억눌러 ‘파괴’ 본능을 깨운다.
인류와 화성의 미래를 그린 동화는 결국 고독으로 수렴한다. 《화성 연대기》의 고독은 좀처럼 지구인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화성인은 좀처럼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지구인이 목격했다던 화성인은 오랜 우주 생활에 지쳐버린 지구인들이 겪는 신기루일 수 있다. 지구 밖에서도 지극히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화성인과 만남을 고대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적막한 우주 속에서 고독하고 쓸쓸하게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화성인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화성 연대기》는 한 번쯤 권해볼 만한 책이다. 눈으로 한 번 읽은 다음에, 책을 덮고 나서 두 눈을 감아보아라. 자신의 고향과 비슷한 화성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작가의 영혼이 독자에게 질문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당신들은 정말로 화성인을 만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