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시인선 92
김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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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가을비가 내렸다. 도시에 살면서 가을비의 정취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분주히 살아가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면 반사적으로 우산을 펼치거나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어제 내리는 비 때문이었을까? 문득, 김상미 시인의 『보헤미안 광장에서』라는 시가 떠올랐다.

 

 

 

갑자기 내리는 비

그 비를 피하기 위해

여기저기 펼쳐지는 우산들

 

그러나 우산은 지붕이 아니다

아내 있는 남자가 남편 있는 여자가

몰래 잠깐 피우는 바람 같은 것이다

 

갑자기 내린 비가 멎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러니 사랑을 하려거든

진짜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을 하려거든

한 지붕 아래에서 하라

 

갑자기 내린 비는 금방 지나가고

적은 우산에 묻은 빗방울들은

우산을 접는 순간 다 말라버린다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40쪽)

 

 

 

산 넘어 바다 건너 도시까지 왔을 저 가느다란 빗줄기. 우산 받쳐 들고 무언가에 쫓기듯 걷는 도시인들이 발 딛고 선 이 풍진세상 굽어보며 사선을 긋는다. 세상을 너무 건조하게 살지 말라며, 빗줄기는 광장을 축축이 적신다. 논에 물을 대는 농부처럼 먼지 자욱한 거리 구석구석까지 살며시 다가간다. 빗줄기는 피라미 떼처럼 스멀스멀 사람들 가슴으로 기어들어 와 잔잔한 물결이 되어 아름다운 동행자가 되어준다. 허공에서 빈 가슴으로 하얗게 반짝여 다가온 빗줄기는 어느새 서성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인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비를 피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비 내리는 날이면 사람들은 우산을 찾고, 그것은 비를 막아주는 사람들의 동행자가 된다. 그러나 우리와 동행하는 시간이 짧다. 시인은 ‘진짜 사랑’이라는 행복한 감정을 만드는 방법을 저 빗줄기의 움직임에서 읽는다. ‘진짜 사랑’은 누군가에게 다가가 적셔 드는 빗줄기와 같다. 내가 먼저 진실한 사랑으로 누군가의 가슴을 적실 수 있다면 그것이 순수하고 소박한 행복이다. 비에 젖은 땅에 언젠가 바람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흔적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워갈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곧 멈출 비처럼 행복했던 기억을 흙에 묻을 것이다. 그 위에 ‘추억’이라는 이름의 묘비명을 세우고. 비는 그렇게 슬픔의 상징어이면서, 생명과 행복을 약동하는 힘을 타고 내리는 위대한 자연 현상이다.

 

비가 금방 그친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 없다. 빗방울이 떠난 빈자리에 꽃잎 피는 소리가 남는다. 빗줄기가 이내 큰 강물을 이루어 철썩철썩 힘차게 흘러간다. 자연의 순리는 아무 일 없는 듯 그렇게 지나간다. 자연도, 우리 삶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 생긴다. 시인은 시든 오렌지를 먹는 행위에서 ‘인생의 참맛’을 느낀다. 

 

 

 

시든, 시드는 오렌지를 먹는다

코끝을 찡 울리는 시든, 시드는 향기

그러나 두려워 마라

시든, 시드는 모든 것들이여

시들면서 내뿜는 마지막 사랑이여

켰던 불 끄고 가려는 안간힘이여

 

삶이란 언제나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에도

남아 있는 법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나는 내 사랑의 이로

네 속에 남은 한줌의 삶

흔쾌히 베어먹는다

 

(김상미 『오렌지』,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10쪽)

 

 

 

시간은 우리를 위해 기다려 주지 않는다. 언제인가 우리는 이 모든 소중한 것들과 헤어질 것이다. 우리 삶은 많은 가변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또 머물러야 할 것들이 떠나는 상황에 슬퍼한다. 하지만 삶의 슬픈 의미 앞에 마음을 움츠리는 것보다 두려움 속 멋진 행복을 찾는 것이 낫다. 한 사람의 인생에도 미각이 압축되어 있다. 내가 내 삶을 다스리는 태도에 따라 행복의 열매를 따기도 하고, 상실의 쓴맛을 본다. 그러니 산다는 일은 누굴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아무 말 말고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그 사이만큼만 서로를 사랑하고 즐겨요

얼룩투성이 심연 같은 긴 이별, 짧은 편지 따위는 저 멀리 던져버리고

잘 익어가는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마음 놓고 우리들의 취향대로 아주 작은 왕국을 만들어요

두 켤레 신발이 뜨거운 햇볕 아래 반짝이는!

 

(김상미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사이에서』 중에서,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81쪽)

 

 

 

시인은 ‘현재’에 의미를 두고 있다. 그리고 과거를 돌아보거나 미래를 서둘러 염려하느라 기진하기보다 내가 지나가고 있는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미래의 어느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아무 말 말고, 서로를 사랑하고 즐겨요. 이별 따위 저 멀리 던져버리고.’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 글의 제목은 홍진영의 노래 '산다는 건' 노랫말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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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8 10:35   좋아요 1 | URL
두 사람이 우산 한 개를 써서 걸으면 불편해요. 이동이 불편하니까 옷 한쪽만 젖게 됩니다. 차라리 우산은 포기하고 냅다 뛰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번 주 일요일,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9-08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시에서는 피할 곳이 근처에 있어 피하게 되는 것 같네요. 시골 벌판에서 갑자기 비를 맞게 된다면? 피하기를 포기하고 비를 즐길 것 같습니다^^:

cyrus 2017-09-08 10:36   좋아요 1 | URL
비를 피하는 사람들의 행동으로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겠어요. ^^
 

 

 

 

 

 

 

 

 

 

 

 

 

 

 

 

 

 

* 정태원 역 《나의 꿈꾸는 여자 : 환상 미스테리 걸작선》 (동숭동, 1993) 

 

 

알라딘에 표지 사진이 없는(No image) ‘오래된 책’이 많다. 작년에 표지 사진 없는 책을 위해 알라딘 회원이 직접 찍은 표지 사진을 추가하는 것을 서재지기님에게 제안한 적이 있다. 처음에 《나의 꿈꾸는 여자》를 검색했을 땐 표지가 없었다. 지금은 표지가 나온다. 표지 사진은 내가 찍은 것이다. 이런 작업이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겠지만, 내겐 정말 고마운 일이다. 오래된 '절판본'에 대한 리뷰를 쓰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레이 브래드버리 장의사(The Handler) [1]

http://blog.aladin.co.kr/haesung/9573458

 

 

 

 

베네딕트는 시트를 씌운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마치 밤늦게 영화를 보고 돌아왔을 때처럼 강력한 기만함과 자신만만함을 느꼈다. 영화관을 나왔을 때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돼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미남이고 단정하고 용감한 영화 주인공의 매력을 빠짐없이 겸비하고 목소리까지. 그렇다, 성량이 풍부하고 맑았으며 왼쪽 눈썹을 약간 치켜 올린 그는 소리내어가며 지팡이를 짚는다‥…. 이러한 영화 최면술이 베네딕트의 경우 자택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까지 죽 지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베네딕트가 그러한 기적적인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베네딕트의 생활에서는 이 두 가지 시간, 즉 영화관과 이‥… 베네딕트 자신의 냉방이 완비된 소극장‥…의 두 가지에서였다.

 

베네딕트는 잠든 사람들의 열을 누비고 다니면서 하얀 명찰에 쓰인 이름을 하나하나 조사했다.

 

월터스 씨. 스미스 씨. 브라운 양. 앤드루스 씨.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분은 어떠신지요, 셀먼드 부인?”

 

그는 침대 밑에 숨은 아이라도 찾듯이 시트를 젖히더니 이렇게 말했다.

 

기분이 좋으신 것 같군요, 부인.”

 

 

 

       

 

 

생전의 셀먼드 부인과는 한 번도 말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스커트 자락에 숨긴 롤러스케이트로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구는 척하며 하얀 조각상처럼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베네딕트는 의자를 끌어당겨 확대경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인, 알고 계십니까. 당신의 모공은 지방 과다 분비입니다. 살아가는 납 인형이었던 거지요. 지방은 모여 여드름이 되지요.[5] 결국은 기름진 식사가 사망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스펀지케이크나 크림 캔디 같은 걸 마구마구 뱃속에 채워 넣은 것이 원인이었던 거지요. 부인은 언제나 좋은 머리가 자랑거리였죠. 나 따위는 마치 신발 밑의 동전쯤으로나 보고‥… 그런데 그 머리라는 게 파르페나 레모네이드나 소다수 속에 떠 있는 것에 불과했지요. 그 대단한 자랑거리였던 머리도 요 모양이 되어서…‥.

 

베네딕트는 그녀에게 훌륭한 수술을 가했다. 두개골을 둥글게 자르고 뚜껑을 열어 골을 꺼냈다. 그리고 과자점에서 사용하는 설탕 짜는 기구로 그녀의 텅 빈 두개골 속으로 생크림과 분홍색, 흰색, 녹색의 장식용 설탕 등을 짜넣고 그 위에 아름다운 핑크빛 글자로 단 꿈이라고 쓴 후 뚜껑을 닫고 두개골을 꿰매 맞추고 솔기를 납 가루로 감추어 버렸다.

 

, 이제 됐다.”

 

베네딕트는 다음 시체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레인 씨. 인종적 편견의 맹장께서는 기분이 어떠신지요? 여러 번 빤 것 같은 순백한 분, 눈처럼, 목면(木棉)처럼 순백한 당신. 레인 씨, 당신은 유태인이나 흑인과 같은 소수 민족을 몹시 싫어하셨죠.”

 

시트를 벗기니 레인 씨가 냉담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보세요, 레인 씨. 나도 그 소수 민족의 한 사람입니다. 열악한 소수 민족입니다.[6] 이야기를 할 때도 큰소리를 내지 않도록 소곤소곤 말하고 쥐 같은 작은 존재에도 겁을 먹는 남자이지요. 이제부터 그런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려 하는지 짐작이 갑니까? 우선 편협한 당신의 몸에서 피를 완전히 뽑아낼 겁니다.”

  

 

 

         

 

 

눈의 순결함과 목면의 깨끗함을 가진 레인 씨의 체내에서 방부 액이 주입되었다. 베네딕트는 배꼽을 움켜쥐고 웃었다. 레인 씨가 새까맣게 된 것이다. 진흙처럼 검게, 밤의 어둠처럼 검게. 그가 사용한 방부 액이라는 것은…‥ 잉크였다.

  

 

아니 이거, 에드먼드 워스 씨 아닙니까!”

 

생전의 워스는 얼마나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고 있었던가! 굵은 뼈와 뼈 사이로 근육이 팽팽하게 뻗어 있어서 힘이 세고 가슴은 마치 바위 같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여자들은 말을 잃었고 남자들의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룻밤 이 육체를 빌려가 자기 아내에게 즐거운 경악을 안겨주고 싶다고 말했다.[7] 하지만 워스의 육체는 어차피 워스의 것, 그는 그러한 종류의 일이나 쾌락에 그 육체를 사용하면서 죄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화제를 풍부하게 했던 것이다.

 

그런 당신이 결국 이곳에 오셨군요.”

 

베네딕트는 일찍이 이런 종류의 기구를 장인방[8]에 달고 그것에 턱을 걸고 매달림으로써 자신의 우스꽝스럽기까지한 작은 키를 잡아 늘리려고 시도해본 일이 있었다.[9] 또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피부가 부끄러워서 햇볕 아래에 누워 있었던 적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물집이 생기고 피부가 분홍빛의 엷은 종이가 되어 벗겨져서 분홍색이 더욱 짙어진 축축하고 민감한 피부를 노출시키는 데 그쳤다. 마음의 창이라고 말들 하지만 너무 가까이 들러붙은데다가 유리구슬 같은 그의 작은 눈에도 손쓸 도리가 없었다. 집이라면 새로 다시 칠하고 휴지라면 태우고 어머니라면 쏴 죽이고 새 옷을 사고 차를 구입하고 돈을 버는 식으로 외부의 환경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피부나 육체나 얼굴색이나 목소리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한 조건에서 불운했던 베네딕트는 턱을 간질이거나 입술에 키스하거나 친구와 악수를 나누거나 향기 좋은 담배를 피우거나 하는 저 넓디넓은 밝은 세계로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추억에 빠지면서 베네딕트는 에드먼드 워스의 늠름한 육체 위에 버티고 섰다.

 

 

 

          

 

베네딕트는 워스의 목을 잘라내서 그것을 관 속에 똑바로 놓고 그것과 함께 190파운드만큼의 벽돌[10]을 채우고 배개 위에서부터 하얀 셔츠와 검은 상의를 싸서 상반신처럼 보이게 하고 턱 부분까지 청색 빌로드로 덮었다. 몸통 쪽은 냉동기 안에 넣었다.

 

  

이것으로 워스 군, 내가 죽으면 몸통과 목을 나눠서 내 목에 당신의 몸통을 이어서 매장시킬 것이오. 미리 조수에게 돈을 줘서 그 일을 시킬 거요. 생전에 아름다운 육체를 갖지 못했던 사람은 하다못해 사후에서나마 그것을 소유하게 되는 거지.”

 

에드먼드 워스의 목 위로 탁 하고 관 뚜껑이 닫혔다.

 

관의 뚜껑을 닫은 채로 장례를 하는 풍습이 이어져 온 것에 베네딕트에게 너무나도 좋은 일이었다. 베네딕트는 시체를 거꾸로 엎드리게 해서 이장하거나 억지로 외설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베네딕트의 흥미를 끈 것은 오후의 차를 마시러 가는 도중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세 명의 노파였다. 이 세 명은 모이기만 하면 소문을 퍼뜨리기로 유명했다. 뚜껑을 닫은 채였기 때문에 참석자는 몰랐지만 사실 세 명은 관 하나에 넣어져 영원히 차가운 수다를 계속하게 되었다. 다른 두 개의 관에는 작은 돌이나 깅엄[11], 쓰레기가 채워져 있었다.

 

저 사이좋은 세 사람이 결국 따로따로 헤어졌군.”

 

그렇게들 말하며 사람들은 울었다.

 

.”

 

베네딕트도 눈물 어린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 또 베네딕트는 정의감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부자는 알몸뚱이로 매장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5달러의 금단추가 달린 황금색 의상을 입히고 양 눈꺼풀에 각각 20달러 금화를 얹어서 이장했다. 어떤 변호사들은 전혀 매장되지도 못하고 진개소각로에서 태워지고 관에는 일요일에 숲에서 잡은 스컹크를 넣기도 했다.

 

오후 근무 중에 쓰러진 어떤 나이든 여자는 끔찍한 계획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녀의 이불 밑에는 어떤 노인의 그것이 함께 매장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차가운 기관에 능욕당해 숨겨진 손이나 그 밖의 것으로 애무를 당하면서 관에 눕혀졌다.

 

그렇게 해서 그날 오후도 베네딕트는 시체에서 시체로 돌아다니며 그들 몸 위에 온갖 모욕을 가했다. 마지막으로 맞닥뜨린 것은 메리웰 브라이스라는 간질병 발작이 지병인 노인이었다. 브라이스 노인은 지금까지 몇 번인가 이곳으로 운반되어 왔지만 이장 직전에 되살아난 인물이었다. 베네딕트가 시트를 젖히자 브라이스 노인이 눈을 깜박거렸다.

 

아아!”

 

베네딕트는 시트 위로 쓰러질 뻔했다.

 

 

 

 

- 3부에 계속 -

 

 

 

 

 

 

 

 

 

* cyrus의 주석

 

 

 

[5] 당, 지방 과다 섭취로 여드름이 생길 수 있다.

 

[6] 베네딕트가 정말로 ‘소수 민족’이라면 그는 유전적으로 어느 혈통에 속할까? 자신의 외톨이 신세를 ‘외면 받고 차별받는 소수 민족’으로 과장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

 

[7] 워스는 마초(macho)다. 베네딕트는 ‘남자다움’, 마초에 대한 열등감과 갈망을 느낀다.

 

[8] 기둥과 기둥 사이의 벽 윗부분에 가로지른 나무 (역자 주)

 

[9]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악당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는 자신의 방에 있는 침대에 사람을 뉘여 놓고 다리가 침대보다 길면 자르고 모자라면 잡아 늘렸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사회를 재단하는 규범이다.

 

 

 

 

 

 

 

 

 

 

 

 

 

 

 

 

 

* 조지 L. 모스 《남자의 이미지》 (문예출판사, 2004)

 

 

베네딕트는 ‘키가 크고, 여자를 유혹할 수 있는 단단한 근육을 가진 남성상’을 원한다. 자기 스스로 몸을 늘리려는 시도는 ‘규범적 남성성’에 맞추기 위해 발버둥치는 불행한 남성의 모습이다. 베네딕트는 워스의 ‘늠름한 육체’에 대리만족을 느꼈고, 자신이 죽으면 워스의 ‘늠름한 몸덩어리’와 자신의 목을 이어 매장할 거라는 망상을 한다.

 

[10] 190파운드를 ‘kg’으로 환산하면 86kg.

 

[11] 번역본에는 ‘깅감’으로 나와 있는데, 현행 외국어 표기법으로 고치면 ‘깅엄(gingham)’이다. 깅엄은 ‘격자무늬가 있는 평직 무명 양복지(역자 주)’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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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7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7 17:55   좋아요 0 | URL
이제부터 절판본 표지 사진 찍을 때 좀 성의 있게 찍어야겠습니다.. ㅎㅎㅎ
 

 

 

 

 

 

 

 

 

 

 

 

 

 

 

 

 

 

 

 

 

 

 

 

 

 

 

 

 

 

 

 

 

 

 

 

* 알프레드 상시에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 (곰, 2014)

* 정진국 《제국과 낭만》 (깊은나무, 2017)

*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 (창해, 2000)

* 스테판 게강 외 《프랑스 낭만주의》 (창해, 2000)

 

 

 

 

《제국과 낭만》 (깊은나무, 2017)이라는 책에 보면 생소한 이름의 화가들이 소개된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알렉상드르 가브리엘 드캉(Alexandre Gabriel Decamps, 1803~1860)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드캉은 1828년에 그리스로 건너갔다. 《제국과 낭만》에서는 드캉이 프랑스를 떠나 여행을 하기 시작한 연도를 ‘1828년’이라고 적혀 있는데, 《프랑스 낭만주의》 (창해, 2000)에는 ‘1827년’으로 나와 있다. 아무튼, 드캉은 그리스와 터키의 이즈미르(Izmir)를 거쳐 중동으로 향했다. 프랑스인 화가는 그곳에서 머물면서 이국적인 동양 문화와 정취에 매료됐다. 오늘날에 드캉은 ‘잊힌 화가’로 남아있지만, 생전에 그의 작품들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유행을 타고 큰 인기를 끌었다.

 

 

 

 

 

 

드캉의 대표작은 『이즈미르 순찰대』(1831년)다. 이즈미르는 옛날부터 무역도시로 번성했던 지역이고, 호메로스(Homeros)의 출신지로도 알려졌다. 1426년 오토만제국에 편입되었다가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그리스의 침략을 받아 그리스 영토가 되었다. 1923년에 터키 영토로 복속되었다. 드캉의 그림은 이즈미르 순찰대가 말을 타고 도시를 순찰하는 장면이다. 이 그림으로 드캉은 ‘오리엔트 화풍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동양 문화에 심취했던 작가 겸 미술비평가 테오필 고티에(Theophile Gautier)는 드캉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승승장구했던 드캉은 말년에 파리 근교에 있는 퐁텐블로(Fontainebleau)에 거주한다. 퐁텐블로는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cois Millet)를 포함한 바르비종 화파(Barbizon School)의 근거지였다. 드캉은 밀레가 사는 마을에 정착했다. 그런데 그에게 허울 없이 지내는 친구가 딱 한 명만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밀레였다. 밀레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료인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밀레와 드캉의 ‘은밀한(?)’ 관계를 밀레 전기에 기록했다. 다음 내용은 상시에의 밀레 전기 국역본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 (곰, 2014)에서 인용했다.[1] 이 인용문의 일부는 《제국과 낭만》에도 나오는데[2], 사실 《제국과 낭만》의 저자인 정진국 씨가 밀레 전기를 번역했다.

 

 

 

 밀레의 삶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다. 여러 해 전부터 퐁텐블로에서 살고 있던 드캉과의 관계다. (드캉이 열 살 연상.) 드캉은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일찍이 쿠르베(courbet,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화가-필자 주)의 그림에 푹 빠졌다가 그를 직접 만나고 난 뒤로 금세 멀어졌다. 그는 밀레를 만나보고 싶어할 만큼 그의 예술성에 놀라웠다.

 

어느 날 드캉이 밀레의 화실로 찾아왔다. 수염이 부스스하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화가 드캉이요. 오래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소.”

 

놀란 밀레는 반색을 했다.

 

“당신 그림이 참 좋더구먼. 솔직하고 지칠 줄도 모르고. 그림 좀 봅시다.”

 

 

(중략)

 

 

드캉은 거의 몰래 밀레의 집을 드나들었다. 그는 마을 초입에 자기 말을 매어두고 아무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후원(後園, 집 뒤에 있는 작은 정원-필자 주)으로 드나들었다.

 

“밀렵꾼처럼 당신을 놀래주려 했지. 어떤 화가도 보고 싶지 않거든. 당신만 보려고.”

 

그는 이렇게 매년 수차례씩 아무도 모르게 다녀갔다. 그가 사망하던 1860년까지 계속된 잠행이다. 그는 밀레와 몇 시간씩 그림 이야기를 했다. 당대 화가들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는 밀레의 살림집에는 들어간 적이 없다. 또 퐁텐블로의 자기 집으로 초대하지도 않았다.

 

밀레는 드캉이 특이하고 지성적인 인물이며 과거의 거장들과 당대 화가들을 보는 눈도 건전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감이 부족했다. 기병대원처럼 두꺼운 갑옷 속에 자신의 깊은 약점을 감추고 있었다. 그림에 대한 생각이 너무 많아 단호한 목표보다 수단에 너무 집착했다.

 

“나는 그가 한 번도 진심에서 우러난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그의 말은 독하고, 냉소적이며 정확한 비평을 했다. 자기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도 그랬다. 그는 항상 길을 찾지 못해 고생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 고뇌에 가득한 고상한 사람이었다.”

 

 

 

상시에는 드캉을 ‘친해지기 어려운 괴팍한 사나이’으로 묘사했다. 밀레의 ‘현장매니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상시에는 밀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인물이다. 그가 밀레의 집에 몰래 드나드는 드캉의 기이한 행동을 수상쩍게 여기는 건 당연했다. 밀레의 영향을 받은 드캉은 퐁텐블로의 소박한 정경을 그리는 일에 천착했으나 사냥하는 도중 낙마하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드캉은 동양 문화를 향유하는 유행에 맞춘 그림을 제작하여 일찍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었고, 밀레는 유행을 따르기만 하는 획일적이고 시끄러운 파리의 분위기를 어려워했다. 결국 밀렌는 화가로서의 명예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뒤로 한 채 파리를 떠나 시골에 정착했다. 당연히 밀레의 화풍은 파리지앵(parisien)이 선호하는 미적 취향과 거리가 멀었고, 그가 그린 농촌 그림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인정받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오늘날 두 사람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 에드워드 W.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2015)

* 존 맥켄지 《오리엔탈리즘 예술과 역사》 (문화디자인, 2006)

* 이주헌 《지식의 미술관》 (아트북스, 2009)

* 이주헌 《역사의 미술관》 (아트북스, 2011)

 

 

 

미술 서적에서 ‘드캉’이라는 이름을 찾기가 어렵다. 내가 지금까지 확인된 드캉을 언급한 책이 총 다섯 권이다. 앞서 나온 정진국 씨가 쓴 《제국과 낭만》과 밀레 전기, ‘창해 ABC북 시리즈’《밀레》(창해, 2000)《프랑스 낭만주의》, 그리고 존 맥켄지의 《오리엔탈리즘, 예술과 역사》(문화디자인, 2006)이다. 《제국과 낭만》을 제외하면 나머지 네 권은 품절, 절판되었다. 어차피 네 권의 책들은 드캉을 이해하는 데 깊이 있는 문헌이 되지 못한다. 품절, 절판된 네 권의 책에 드캉이 언급된 내용을 모두 합쳐봤자 고작 문장 한 줄 나온다. 그래서 이 글을 썼을 때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국내에 ‘오리엔탈리즘 미술’을 소개한 문헌이 부족한 편이다. 맥켄지의 저서가 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오리엔탈리즘 미술을 배제한 에드워드 사이드’ 때문이었다. 맥켄지는 그림 속에 감춰진 오리엔탈리즘을 심도 있게 분석하여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2015)이 놓친 부분을 보완했다. 아쉽게도 맥켄지는 자신의 책에 드캉을 딱 한 번만 소환했다.[3] 그는 드캉의 작품을 들라크루아와 함께 ‘열정적이고 활기 가득한 낭만주의’[4]로 규정했다.

 

 

 

 

 

[1]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 210~211쪽

 

[2] 《제국과 낭만》 137~138쪽

 

[3] 《오리엔탈리즘, 역사와 예술》에 ‘인명 색인’이 없다. 이 좋은 책의 치명적인 단점,, 그래서 ‘드캉’을 찾기 위해 3장 ‘미술에서의 오리엔탈리즘’ 편을 무한 반복해서 읽었다... ‘책에서 드캉 서방(?) 찾기’였다.

 

[4] 《오리엔탈리즘, 역사와 예술》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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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2
권김현영 엮음, 권김현영.루인.엄기호 외 지음 / 교양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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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가부장적 아버지상의 해체는 90년대 말 압축 성장 신화가 붕괴한 IMF 체제를 통과하며 이루어졌다. 한국의 남성은 경제성장의 주체였고, 그들의 퇴장은 가부장제의 몰락이기도 했다. 때맞춰 발간된 김정현《아버지》(문이당, 1996)는 외환위기를 거치며 직장과 가정에서 동시에 밀려나 갈 곳을 잃고 몰락한 가부장의 뒷모습을 애처롭게 조명했다. 그러나 성의 경계, 전통적 가부장이 몰락한 최근에도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가부장 아버지들이 대중문화에 등장하기도 한다. 아직도 TV 드라마는 왕좌 같은 소파에 근엄하게 앉아 버럭 소리를 지름으로써 모든 갈등을 일시에 중지시키거나 해결하는 힘을 과시하는 아버지들을 등장시킨다.

 

드라마 속 아버지의 모습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거칠고 권위적인) 남성성’을 지키려 하는 한국 남성의 모습을 닮았다. 잃어버린 남성성을 회복하고 싶은 한국 남성들은 여권 신장 등 사회적 변화를 거부하고 ‘남성의 위기’를 불러온 원인을 여성에게 돌린다. 한국 남성은 자신의 시들어가는 남성성을 확인하기 위해 여성을 혐오하고 물리적 · 언어적 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자신들이야말로 여권 신장 시대가 낳은 희생양이며 점점 설 자리가 잃어서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그동안 책과 언론은 ‘남성성의 허상’에 대해 끊임없이 제기해왔지만, 대부분 한국 남성들은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교양인, 2017)는 한국 남성들이 어떻게 남자로 만들어져 가는지를 규명한 흥미로운 책이다. 정희진권김현영‘식민지 남성성’이 어떤 방식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의 조선 남성들에게 영향을 줬는지 논의했고, 루인한채윤, 준우는 트랜스젠더 남성 · 여성과 레즈비언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게 만드는 ‘남자다움’과 이성애 제도의 문제점을 들춰낸다. 엄기호는 남성성을 ‘어디서나 통할 수 있는 보편성’으로 인식하는 남성 권력을 분석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 남성 지식인들은 ‘피식민지인’의 설움을 강한 남자의 힘으로 극복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동경한 것은 ‘일제가 조선에 이식한 근대화’였고, 나라를 빼앗긴 수치심을 참지 못한 조선 남성들은 자신을 ‘식민지 남성(일본)에게 패배한 피해자’로 인식했다. 거대한 제국주의 앞에 한없이 쪼그라든 식민지 남성들이 자기 비하감에 젖어 드는 것은 당연한 일. 조선 지식인 및 문필가들은 자신의 위축된 남성성을 자조하며 시대의 아픔을 기록했고 문학과 예술로 승화시켰다.[1]

 

남의 나라 식민지 노예가 되고 동족끼리 피 흘리는 전쟁을 경험한 한국 남성들은 ‘강인한 남성성’을 원했고, 우리나라 특유의 군사 문화는 한국 남성의 남성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국가의 부름을 거절하는 남성은 국가 정책에 거스르는 ‘비(非) 국민’이 된다. 군대를 다닌 남성은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핵심 노동 자원이 되는 순간 ‘한국 남성’으로 개조된다. ‘남성적 민족성’이 강조되면서 여성은 노동하는 능력이 있음에도 ‘한국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지 못한다.[2] 미필 남성, 동성애자 남성, 장애인 남성 등은 ‘한국 남성’을 상징하는 지배적 남성성보다 아래에 있는 ‘주변적 남성(성)’으로 전락한다.[3] 군대를 다녔고, 노동함으로써 ‘국민’으로 인정받은 한국 남성들은 자신의 위치를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고 청춘을 군대에서 보내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군대에서 허비한 시간과 경험’을 보상받기를 원했다. 군대 간 남성들이 군 가산점제 부활을 요구하는 것도, 잊을 때마다 여성 징병제를 주장했던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다. 한국 남성은 사회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구획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남성성을 위협하는 동성애와 트렌스젠더를 인정하지 않았다. 트랜스남성(female-to-male transgender: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남성 성 정체성을 가진 트랜스젠더)은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남성 집단으로부터 배척받는 주변적 남성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한국 남성’이 되기 위해 단련된 근육으로 섹스어필하는 남성상, 가부장적 남성성을 모방한다.[4]

 

현대의 남성성은 오랜 기간에 걸쳐 제도화되었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다방면에 걸쳐 형성된 ‘남자다움’에 대한 오해와 허상으로 인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도 자유롭지 못했다. 21세기는 남성성이 소용없는 시대다. 남성들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남성성’을 죽이고 ‘남성’이 아닌 또 한 명의 좋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한국 남성의 적은 여성이 아니다. 남성성은 ‘남성’을 치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편협하고 이기적인 환영(幻影)이다. 남성성을 죽이자! 남성성은 우리 모두(남성, 여성, 동성애자, 트랜스젠더)의 원수다.[5]

 

 

 

 

 

 

[1] 2장 근대 전환기 한국의 남성성 (권김현영)

 

[2] 4장 보편성의 정치와 한국의 남성성 (엄기호)

 

[3] 1장 한국 남성의 식민성과 여성주의 이론 (정희진)

 

[4] 6장 트랜스남성은 어떻게 한국 남자가 되는가 (준우)

 

[5] 디시 인사이드 갤러리에 유행했던 짤방에서 나온 말 ‘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를 패러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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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7-09-06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성에 집착하는 마초나 메갈 모두 사회부적응자들이죠.

cyrus 2017-09-06 17:32   좋아요 0 | URL
저는 메갈리안의 미러링 스피칭에 한 번도 동참한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 미러링 스피치를 부정적으로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미러링의 의도를 이해한다면 메갈리안을 ‘사회적 부적응자’, ‘반 페미니스트’로 볼 수가 없습니다. 어제 쓴 <그럼에도 페미니즘> 리뷰에서 미러링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미러링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메갈리안에서 나온 워마드가 남성 동성애자의 여성 혐오 발언을 미러링한 점(여성 혐오 발언을 한 남성 동성애자도 비판 받아야 합니다. 제가 언급한 내용들 모두 <메갈리아의 반란>이라는 책에 나옵니다), 독립운동가를 ‘고인 모독’하는 표현 행위는 미러링 스피치의 의도에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워마드가 메갈리아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메갈리아를 부정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분’만 가지고 ‘전체’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워마드로 가지 않은 메갈리안은 남성 동성애자의 여성 혐오 발언을 미러링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저는 워마드에 반대한 메갈리안의 태도에서 ‘성 소수자들도 안고 가야 할 페미니즘’의 가능성을 봤습니다.

2017-09-06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06 17:40   좋아요 2 | URL
아직 우리 사회는 남성과 여성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성애적 사회’입니다. 그렇다 보니 지금도 여전히 ‘비혼’, ‘1인 가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2017-09-06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6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6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6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6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6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7-09-07 0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인든 극단적인 건 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메갈의 미러링도 일정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있으나 그 대상이 무차별적으로 넓어지면서 이상해졌죠. 게다가 사람이 여럿 모이면 늘 말썽분자가 섞이는 것도 있구요. 남성적인 것도 여성적인 것도 있는 그래도 좋습니다. 다만 상징이 되고 거기에 기댄 정치성이나 우월성을 부각시키면 문제가 되겠죠. 완벽한 것은 없기에 서로간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락방 2017-09-07 06:42   좋아요 1 | URL
무엇이든 극단적인 걸 조심해야 하는 것은 타당하게 들리지만 메갈에 대해서라면 그 말은 좀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간 얼마나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하고 비하했는지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었고, 그러므로 거울 앞의 똥을 치우면 자연스레 거울에서도 똥도 찾아볼 수 없었을겁니다. 지저분한 원본을 없애기 보다 ‘얘네도 잘못했지만 니네도 나빠‘ 해버리는 건 기득권과 이미 있던 것에 대해 힘을 실어주는 것밖에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면서 말하기는 무척 쉽죠. 왜 그 울분에 찬 미러링이 나왔는지 이해한다면 ‘뭐든 나빠‘란 말은 나올 수 없다고 봅니다. 나쁜 게 아니라 그동안 한 말을 돌려듣기가 불편했다는 게 맞다고 보여집니다. 메갈에 가면 실제로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남성으로부터 당했던 성추행과 성폭력에 대한 얘기들이 쏟아지고 거기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을 주고 위로해주는 글이 많습니다. 그간 사회에서는 다 내 잘못이라고 퉁쳐왓던 부분들에 대해서요. 메갈에 대한 정당성은 남성이 부여하고 말고 할 건 아니라고 봅니다.

transient-guest 2017-09-07 07:15   좋아요 0 | URL
제가 남자인 것과 제가 쓴 글과 연관을 지어서 특정주제에 대해 언급할 자격유무를 말씀하시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메갈의 활동에 큰 관심이 없지만, 여성 모두가 메갈을 지지한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구요. 남성이 여성에게 행사한 온갖 폭력, 그리고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써의 의미는 공감하지만, 미러링이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미국에 와서 경험했던 차별을 그대로 미러링하는 것이 인종갈등해소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극단적인 비유지만, 일제 35년간 한국사람들에게 저지른 온갖 악행을 우리가 그래도 미러링한다고 할 때 거기에 대해 일본사람은 아무말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글의 특성상 표정도 볼 수 없고, 톤을 들을 수도 없어 그냥 보았을 땐 아주 불쾌하게 보신 듯 하고, 저 역시 조금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관점이 다를수도 있고 꼭 모두 다 agree하지 못해도 그만이지만, 적어도 ‘남성‘이라서 메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취지로 들리는 말씀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메갈에서 서로 감싸주고 문제를 나누고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미러링으로 represent되는, 흔히 뉴스에서 접하는 그런 극단적인 수준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거기에 대해 ‘정당‘하다 아니다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불쾌하게 느끼실지도 모르겠어요.

PS 비밀 댓글로 해놨는데, 그러면 서재주인만 볼 수 있다는 걸 갑자기 깨닫고 수정합니다...-_-:: 제가 이래요..ㅎ

syo 2017-09-07 08:02   좋아요 0 | URL
갑자기 튀어나와서 죄송합니다. 그냥 몇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다락방님의 진짜 뜻이야 제가 함부로 단정할 순 없겠으나 남자는 무조건 메갈에 대해서 입을 다물어라- 라는 말씀을 하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메갈의 미러링에 대한 ‘정당성‘을 말씀하시려면 최소한 메갈이 제기하는 문제의식과 그들이 받은 피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 다음에 하라는 말씀 같아요.

미러링이 인종차별에 대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하셨는데, 미국은 아직 인종차별 문제가 있긴 해도, 시민사회 전반에 차별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꽤 넓게 형성되어 있고 사람들도 문제의식을 두텁게 가지고 있는지라 미러링의 효과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을수도 있겠네요. 미러링은 주의를 환기시키는 효과가 가장 크니까요ㅡ 라고 미국에 살아본적도 없는 제가, 어디서 뉴스나 책이나 드라마 같은데서 보던 지식만 가지고 인종차별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비교적 잘 정착되어 있으므로 어쩌주 저쩌구 진단하는 식의 말을 하면, 미국에 살고 직접 인종차별을 겪으셨다는 transient님은 제 발언에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다락방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의 의미가 그런데 있는 건 아닐까요?

극단적인 비유는 정말 극단적이셨습니다. 맞지도 않구요. 메갈의 미러링은 과거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증언이고 환기가 아닐까요. 이미 지나갔으며 지금은 벌어지고 있지 않은 일제 35년간의 만행에 대해 미러링을 한다면 당연히 말씀대로 일본 사람들이 아무말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겠지요. 그건 사과와 배상의 문제니까요. 님의 비유는 여성혐오가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 여성들이 만약 과거의 잘못에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뜻에서 미러링을 전개하는 상황에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튀어나와서 죄송합니다.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다락방 2017-09-07 08:28   좋아요 1 | URL
안그래도 트랜짓님의 비댓이 달린 걸 보고 저를 향한 것 같은데 볼 수 없어 공개로 변경해달라 요청드릴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바꿔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제가 트랜짓님의 첫댓글에서 받은 건, 님이 생각하신 것처럼 ‘불쾌함‘은 아니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불쾌함을 느끼진 않았어요. 다만, ‘의미없는 예쁜말‘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남성이라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동떨어진 느낌, 거기에서 오는 ‘얘도 나쁜데 너도 나빠‘하는 느낌이요. 이 점에 대해서 그렇게 판단하면 안된다고 저는 생각하니까요.

일단 제 위에 syo 님이 제 댓글의 의도를 잘 파악해주셨는데요,
트랜짓님 말씀처럼, 여성이라고 다 메갈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남성이라고 다 지지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제가 언급했듯이,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비난하기가 너무 쉽다는 말을 한것입니다. 트랜짓님도 댓글에서 언급하셨죠. ‘큰 관심이 없다‘고요. 큰 관심이 없는 것,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정당성을 얘기한다는 것이야말로 좀 아니지 않나 생각한 겁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메갈을 일베처럼 낙인찍어 놓았고, 메갈은 없어진 지 한참 되었죠.
일례로, 꼴페미를 극혐한다는 사람들은 페미니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속 페미니스트를 혐오하죠. 저 역시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를 때 많은 것들을 오해했던 것처럼요.


미국에서 경험한 인종차별을 미러링하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냐, 해소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 하셨는데, 저는 미러링이 가져온 효과가 엄청 많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이 드디어 말하기를 선택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고, 소라넷을 없애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피해자 탓을 했던 용어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하지 않고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아주 많이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생각한 방법을 최대한 시도하고 해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꾸 악법을 고쳐나가려고 하고 악습을 없애려한다고 생각해요. 미러링은 거기에 불을 붙였고요. 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지 않으면서 그게 무슨 효과가 있는지, 그 방법 나쁘다, 등의 얘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나쁜 걸 바꿔나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Nina 2017-09-11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학습과 실천을 열심히 하시는 건 좋지만..
양비론을 비판하는 이런 논리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메갈과 미러링, 한남충론 등등에 대해 전적인 찬성 대 전적인 반대만을 강요하며 이탈을 억압/단속하려는 전형적인 찬반 이분법적 흑백논리로서 위기에 몰린 워마드 잔당들 같은 메갈 후진분자들의 궁색하기 그지없는 초라한 방어논리이자 ’유일한’ 자위 논리라는 것입니다.

’미러링’의 긍정적 효과들만 일면적으로 과장하면서 결국 자기 믿음만을 고집하며 복잡다단한 사회적 효과들과 다채다양한 피드백들에 의한 자기수정을 회피하는 전형적인 확증편향과 단순화 오류를 범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 ˝꼴페미 비판자들이 페미니즘 책은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용감한 주장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하고 계시는 건지... .
현실의 저질 페미니즘은 절대 비판해서는 안되고 무조건 일방적으로 옹호해줘야만 하는, 이미-완성형이고 완전체입니까??
’미러링’이란 그럴싸한 미명에 도취되어 모든 혐오를 대량생산함으로써 더 큰 백래쉬를 불러들였고 여혐을 오히려 비교불가능할 정도로 전사회적으로 증폭시켰으며, 모든 평범한 남성들을 일베화시켜 파시즘을 낳게 된다는 생각은 못해보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실망스러운 자기성찰능력의 부재 전시행위를 멈추고 제발 ’더 나은 페미니즘’ 발명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모색을 포기하는 안주에 머물지 마시기 바라며,
그런 의미에서 이하 진보정당 여성분과위에서도 수년 간 재직하신 이영희 사회연대네트워크 공동대표께서 르몽드디플로마띠끄에 발표했던 다음 기고문을 일독해주십시오.

¶˝뭐, 메갈리안이 페미니스트라고?˝
http://m.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6321

그리고 transient는 트랜짓이 아니고 트랜젼트입니다

cyrus 2017-09-11 19:10   좋아요 0 | URL
저는 워마드의 미러링은 반대합니다. 저 위에 박균호님의 댓글에 달린 답글이 있습니다. 워마드에 대한 반대 입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워마드가 여성혐오를 한 남성 동성애자를 미러링한 시도, 페미니즘 논점에 완전히 벗어난 과격 발언 등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메갈리아 지지자들 중에도 워마드를 비판하고, 메갈리아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메갈리아의 반란》을 쓴 유민석 씨가 있고, 저도 유 씨의 노선과 같습니다.

저는 예전에 《페미니즘, 무엇이 문제인가》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이 책은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를 비판한 책입니다. 사실 저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에 가깝습니다. 급진주의 페미니스트가 지적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한계를 알고 있습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장단점도 확실히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어딘가에 ‘더 나은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분들이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Nina님이 소개한 글을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읽을거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 일상을 뒤집어보는 페미니즘의 열두 가지 질문들
김보화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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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오죽했으면 성폭력을 당했겠어.’, ‘옷을 야하게 입고 다니니까 성폭력을 당했지.’ 성폭력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친구들에게까지 상처를 준다. 가해자 못지않게 피해자에게도 사회적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언어적 폭력이다. 이미 상처를 당한 피해자에게 이중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 피해자의 행동과 태도가 사건을 유발한 것이 아니므로 사건 당시 피해자의 행동을 책망해서는 안 된다. 어떤 때는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방지하지 못한 데 대해 죄의식이 들 수도 있다. 편견이나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엉뚱한 도움 등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악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잘못된 사회적 통념에서 빚어지는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성폭력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강간은 낯선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 ‘강간범은 정신 이상자거나 사이코패스다.’, ‘부부간에 강간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믿는 남자들이 있다. 우리 사회는 성폭력이 일어나기 쉬운 사회다. 과거의 남성은 힘이 세고 주먹을 휘둘러야 강인한 남자로 인정받았고, 여성을 남성보다 아래인 나약한 인간으로 봤다. 남성에게 성적인 문제가 생기면 쉽게 용서되나 여성에게 성적인 문제가 생기면 이혼을 당한다든지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이 처한 끔찍한 상황을 주변 관계에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피해자로 인정하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성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전환하려면 일상적이었던 것을 뒤집어 볼 수 있는언어화가 필요하다.[1] 과거 아내 폭력은 칼로 물 베는 부부싸움으로 인식되는 바람에 남편의 아내 구타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 대중화되어 확산되고 있는 데이트 폭력은 여성 혐오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언어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오랫동안 쌓인 남녀 불평등과 여성 혐오에 무감각한 사회적 분위기에 저항했고, 이를 공론화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신이 처한 개인적 상황(일상 속 성차별, 아는 사람에게 당한 성폭력 등)을 언어화하는 일은 그 상황을 변화시키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메갈리아의 미러링(Mirroring)’은 여성 혐오에 저항하는 추세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은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표현할 기회의 땅이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에서도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가 팽배하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남성의 적대행위가 비일비재하다. 인터넷 공간상에서 여성들에게 폭력적인 언어로 인신공격을 일삼는 일베 회원은 사이버 마초(Cyber Macho)’들이다. 여성의 발언권 기회를 축소하는 남성 중심 인터넷 문화에 대부분 여성은 침묵을 지키거나 그 공간을 떠나버렸다. 성숙한 인터넷 토론문화를 만들기 위해 남성 중심의 인터넷 문화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여성들의 연대 운동도 진행되었다. 하지만 남성 유저들의 묵살이 계속되자 메갈리안(메갈리아 회원)을 중심으로 한 미러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발화를 남성들이 했던 것 똑같이 하는 것이다. 남성은 동성끼리 모인 은밀한 장소에서 여성을 소재로 성적 농담을 주고받는다. 메갈리안은 남성만이 향유할 수 있는 농담을 미러링하여 공개된 농담으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따라서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전복시킨 급진적인 여성의 유머이다.[2] 미러링은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 미러링이 남성 혐오를 부추기기 때문에반 여성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권력의 억압과 위선을 깨부수는 웃음, 농담의 효과를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은폐한다. 페니스는 남성의 서열이나 권력과 같은 사회적인 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메갈리안은 미러링 스피치(Mirroring Speech)를 통해 상징의 전복을 시도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런 말을 했다. 권위에 가장 강력한 적은 경멸이며, 권위를 훼손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웃음이라고.

     

그럼에도 페미니즘(은행나무, 2017)은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만 설파하는 책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성 평등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놓칠 수 있는 문제점(레즈비언 여성, 트랜스젠더 여성이 차별받는 사회적 구조)도 명확하게 알려준다.[3] 성노동 비범죄화를 바라보는 두 필자의 상반된 글[4]을 배치함으로써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푸는 성노동 비범죄화의 장단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집필진에 참여한 김홍미리페미니즘을 남녀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녀는 여성이 처한 문제를 외면하는 남성 진보 논객뿐만 아니라 남성 모두 페미니즘과 같은 방향을 서보는 연습을 시작할 것을 권한다.[5] 앞으로 남성들은 여성에게 잘 해주겠다, 행동에 반성하겠다는 식으로 공약을 내세우기보다는 여성 혐오, 성 평등 문제 등에 여성과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한다. 말보다 행동이 우선이다.

 

 

 

 

 

[1] 그럼에도 페미니즘3치정과 멜로, 그 경계에서 데이트 폭력을 묻다, 김보화

 

[2] 같은 책, 1메갈리아의 거울이 비추는 몇 가지 질문들, 윤보라

 

[3] 같은 책, 7여성을 사랑하는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나영

 

[4] 같은 책, 8성노동 비범죄화, 한국에서는 안 될 일인가?, 박이은실 / 9성매매 비범죄화, 안 될 일이다, 박은하

 

[5] 같은 책, 4남성 진보 논객과 담론 헤게모니, 김홍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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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05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성폭력은 꼭 젊은 여성만 당하는 게 아니야.
여성 노인이 당하는 성폭력은 제외되어 있지.
그들은 늙고 힘없다는 이유로 더 많이 노출되어 있을 수 있는데
그거 생각하면 아찔하다.

난 어떤 면에서 여성을 혐오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나 싶기도 해.
겉으로 여성을 옹호하는 척 하면서 결정적일 때 본색 들어내는
남자들 보면 좀 웃긴다 싶어.

cyrus 2017-09-05 18:15   좋아요 1 | URL
황혼 부부의 가정 폭력, 노년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 · 성폭력 문제도 공론화되어야 해요.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 또 다른 사회 문제로 대두될 거예요. 여성 혐오가 팽배한 사회일수록 여성이 피해 받는 문제들이 발생할 것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9-05 1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위의 댓글은 역대급이네요.. ㅎㅎ어떻게 저런 사고가 가능하지 ?!

2017-09-05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5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