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 브래드버리 – 장의사(The Handler)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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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 브래드버리 – 장의사(The Handler) [2부]

http://blog.aladin.co.kr/haesung/9580203

 

 

 

 

 

베네딕트는 시체에서 시체로 돌아다니며 그들 몸 위에 온갖 모욕을 가했다. 마지막으로 맞닥뜨린 것은 메리웰 브라이스라는 간질병 발작이 지병인 노인이었다. 브라이스 노인은 지금까지 몇 번인가 이곳으로 운반되어 왔지만 이장 직전에 되살아난 인물이었다. 베네딕트가 시트를 젖히자 브라이스 노인이 눈을 깜박거렸다.

 

“아아!”

 

베네딕트는 시트 위로 쓰러질 뻔했다.

 

“이봐, 안 일으켜 줄 거야!”

 

시트 밑의 인물이 외쳤다.

 

“그렇고말고, 처음부터 전부 들었지!”

 

노인은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꼼짝도 못하고 이렇게 누워 있는 동안에 네놈이 지껄이는 걸 빠짐없이 들었어! 아아, 네놈은 지독한 놈이다, 무서운 놈이야, 악마, 요괴다. 모독자, 사디스트, 비뚤어진 악마, 무서운 놈이야. 기다리고 있어라, 나는 이곳을 떠나서 시장과 시의원들 모두에게 이 일을 얘기하겠어!”

 

노인은 입에 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안 됩니다!”

 

베네딕트는 무릎을 꿇었다.

 

“여기를 나가게 해 줘! 네놈은 무서운 놈이야. 몇 년 동안이나 이런 일이 이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도 누구 한 사람 그 사실을 몰랐다니! 네놈은 괴물이야!”

 

“아닙니다.”

 

그는 일어서려다가 다시 털썩 주저앉아 공포에 떨었다. 노인은 쌀쌀맞은 모멸감을 담아 말했다.

 

“네놈이 한 그 끔찍한 소리는 다 뭐야. 그리고 그 끔찍한 짓거리들은!”

 

“죄송합니다.”

 

베네딕트는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이 일어서려고 했다.

 

“안 됩니다!”

 

베네딕트는 노인에게 들러붙었다.

 

“안 놔!”

 

“안 됩니다!”

 

베네딕트는 모질게 밀쳐지자 굵은 주사기에 손을 뻗어 그것을 노인의 팔에 찔렀다.

 

“이놈이! 사람 살려!”

 

 

 

 

 

노인은 시트에 뒤덮여서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창문 쪽으로 쓰러질 듯한, 묘석이 늘어진 묘지 쪽으로 보이지 않는 눈을 부릅떴다.[13]

 

“이봐, 거기 묘석 밑에 잠들어 있는 여러분! 도와 줘요, 내 말을 들어 줘!”

 

노인은 입에 거품을 물며 털썩 쓰러졌다. 이제 곧 죽으리라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여러분, 내 말을 들어 줘요. 당신도, 당신도, 그리고 당신도 빠짐없이 모두. 이놈은 오랫동안 이런 끔찍한 짓을 해 왔어. 이 이상 계속하게 할 순 없어!”

 

노인은 입가의 거품을 핥으면서 점점 기력이 쇠퇴해 갔다. 베네딕트는 멍하니 그곳에 서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것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라고, 절대 아무것도 못해.”

 

“모두 무덤을 나와!”

 

노인이 말했다.

 

“도와 줘! 오늘밤이라도, 내일이라도, 언제라도 좋아! 이놈에게 덤벼들어서 없애 줘! 아아, 무서운 놈이야!”

 

노인은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어리석군.”

 

베네딕트는 마비된 혀로 말했다.

 

“당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야. 자, 빨리 뒈져 버려.”

 

“모두 일어나! 모두 나오라고! 도와 줘!”

 

“이제 그만 지껄여. 내 기분이 나빠진다고.”

 

방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밤이었다. 밤이 깊었다. 노인은 큰소리로 떠들다가 점점 기력이 약해져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소 지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자마자 숨을 거두었다.

 

“네놈은 모두를 골탕 먹였군, 무서운 놈이야. 하지만 오늘밤에야말로 네놈이 따끔한 맛을 보게 될 걸.”

 

그날 밤은 묘지에서 폭발이 있었다, 라고 전해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일련의 폭발음과 함께 이상한 냄새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노호하는 소리가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주변에서는 빛과 번개가 엇갈리고 교회의 종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지고 묘석은 쓰러지고 만물이 서로 저주하고 물건이 마구 공중을 날아다니고 뒤쫓기는 자의 비명, 갖가지 그림자, 시체 임시 안치장의 불빛이 이리저리 어른거렸고 그곳을 재빨리 출입하는 사물의 모습, 창은 깨지고 문은 경첩에서 떨어지고 나뭇잎은 날아다니고 철문이 삐걱거리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베네딕트의 모습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사라졌나 싶으면 다시 홱 나타났다. 그리고 마침내는 베네딕트의 고통에 찬 절규가 울려 퍼졌다. 그 후에는‥… 잠잠해지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마을 사람들은 시체 임시 안치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과 교회를 빠짐없이 조사한 뒤로 묘지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피가, 엄청난 양의 피가 여기저기 튀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마치 하늘에서 피비가 내린 것 같았다. 그러나 베네딕트의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걸까?”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 게 뭐야.”

 

그것이 모두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그 해답이 발견되었다.

 

묘지를 걷고 있던 그들의 발걸음이 어느 깊은 나무 그늘에서 멈췄다. 그곳에는 옛 시대의 묘석이 죽 늘어서 있었다. 나뭇가지 위에서 지저귀는 작은 새소리도 없다. 두꺼운 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도 여기서는 전구 빛처럼 약하고 가냘프게 마치 연극의 소도구처럼 맥없는 빛에 불과했다. 그들은 어떤 묘석 앞에 멈춰 서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아, 여기다!”

 

사람들은 칙칙하고 이끼가 낀 묘비를 들여다보고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곳에는 마치 손가락으로 급히 새겨 넣기라도 한 것처럼 (사실 손톱으로 새긴 것인지 흔적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음과 같은 묘비명이 새겨져 있었다.

 

 

 

 

베네딕트의 묘

 

 

 

“이것 봐!”

 

누군가가 외쳤다.

 

“이것도, 이 묘석도, 이쪽도, 그리고 이것도, 전부 똑같애!”

 

그 남자는 손가락을 들어 다섯 개의 묘비를 가리켜 보였다. 사람들은 그쪽으로 달려와서 보려고 다가섰다. 묘석의 하나하나에 손톱으로 세게 긁은 듯한 똑같은 묘비명이 있었다.

 

 

 

 

 

베네딕트의 묘

 

 

마을 사람들은 못 박히기라도 한 듯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해.”

 

한 사람이 가냘픈 목소리로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한 사람이 이 다섯 개의 묘지 전부에 매장되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우뚝 서 있었다. 다시 조용해졌다. 나무그늘의 어둠에 겁을 먹으며 그들은 본능적으로 초조하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사람들은 답을 찾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한 사람이 마비된 입술을 겨우 움직여 한 마디 내뱉었다.

 

“안 될 것도 없지.”

 

 

 

 

 

 

- 끝 -

 

 

 

 

 

 

 

 

 

레이 브래드버리 극장(The Ray Bradbury Theater)

Season 6 Ep. 12

(1992년 10월 27일 방영)

 

 

[13] 원작에서 노인은 ‘창문 밖’에 있는 묘지를 바라보면서 죽어간다. 원작을 각색한 TV 드라마 판은 원작과 다르다. 노인은 시체 안치소를 빠져나오지만, 굳게 잠긴 철문에 막혀 탈출에 실패한다. 베네딕트가 주입한 독극물에 맞은 노인은 철문 앞에 쓰러지면서 묘지를 쳐다본다.

 

 

 

 

 

 

 

 

 

 

 

 

 

 

 

 

 

 

 

 

 

※ 출전 : 정태원 역 《나의 꿈꾸는 여자 : 환상 미스테리 걸작선》 (동숭동,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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