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준 21세기 정경연구소장을 딱 한 마디로 평가한다면 그를 악마의 재능이라고 부르고 싶다. 2013, 신 소장은 시사평론가직함을 달고 TV조선의 <장성민의 시사탱크>의 패널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시사평론가로 보일 수 있는데, 그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점 하나 있다. ‘막말이 문제였다. 2015년 그는 연합뉴스TV’에 출연하여 박원순 서울시장의 메르스 대응과 관련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그런데 신 소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향한 막말은 그게 처음은 아니었다. 신 소장은 종편 채널에 출연하여 지방선거를 앞둔 박원순 후보의 친환경 급식 공약에 대해 농약급식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 결국, 신 소장의 발언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연합뉴스TV 측은 그에게 출연 금지를 조치했다.

 

요즘 신 소장은 고전 번역 및 저술 그리고 강연 활동을 열심히 한다. 올해 상반기에 그가 펴낸 책은 총 6. 2015년에 신 소장은 학오재(學吾齋)’라는 전자책 전문 출판사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94종의 전자책을 출판했다. 식지 않는 그의 저술 열정에 존경을 표한다. 종편에 나와서 '극우'에 가까운 막말만 하지 않았으면 그는 방송에 출연하면서 고전 강연을 했을 것이다.

 

 

 

 

 

신 소장이 우리말로 옮긴 고전 일부는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나온 것인데, 이 출판사의 아량이 보통이 아니다. 신 소장이 쓴 책의 정가 대부분은 비싼 편이다. 신 소장이 번역한 한비자(인간사랑, 2012)의 정가는 59,000이다. 그런데 이 책이 올재 클래식스 23차 도서로 나오게 된다. 학오재에서 나온 전자책 한비자의 정가는 29,000이다. 올재 클래식스 한정판으로 나오게 될 한비자의 정가는 1, 2권 합쳐서 5,800이다.

 

올재 클래식스 23차 도서로 선보이는 상군서도 신 소장이 번역한 것이다. 물론, 이 책도 2013년에 인간사랑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다. 정가는 20,000이다. 신 소장의 책이 올재에 나올 때마다 정말 이래도 되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 책을 싸게 살 수 있어서 좋긴 하다.

 

고전연구가 이석명 씨가 옮긴 회남자(소명출판, 2010)는 원래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지원받아 만든 책이다.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로 나온 책들은 전문적인 내용인데다가 책값도 비싸다. 이런 책을 전공자나 연구원이 아닌 이상 일반 독자가 사는 건 부담스럽다. 소명출판사에 나온 회남자를 장만하려면 75,600을 지불해야 한다. 이 가격은 1, 2권을 합친 정가에서 10% 할인된 것이다.

 

내일부터 교보문고에 판매되는 올재 클래식스 23차 도서를 놓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소개된 총 5권의 책을 14,500에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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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0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20 15:32   좋아요 2 | URL
신 소장의 막말 방송을 생각하면 그가 ‘고전을 재해석한 책’은 안 보게 됩니다. 고전을 해석하는 과정에 저자의 정치적 이념이 스며들 수 있거든요. 신동준 씨의 책을 비판한 어느 분의 글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bgkim 2017-07-20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재 출판인이 전 국회의원 홍정욱이라면서요 배우 남궁원씨 아들이구요

cyrus 2017-07-20 17:16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

2017-07-20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20 18:26   좋아요 0 | URL
고전을 오독하지 않으려면 여러 사람들이 쓴 것을 다 읽어봐야 합니다. 힘든 일이지만, 한 사람의 가치관이 반영된 고전에 속지 않으려면 많이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

bgkim 2017-07-20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정도죠

레삭매냐 2017-07-20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론은 사지 말아야겠네요.

cyrus 2017-07-20 23:58   좋아요 0 | URL
김원중 씨가 번역한 《한비자》도 있으니 번역본 선택은 자유입니다. ^^

비로자나 2017-12-08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아시아 고전 연구자 중에서는 참으로 안타깝게 흑화한 케이스인데,
번역서에서 딱히 그런 부분이 투영되지는 않는 편인지라 ... ^^

cyrus 2017-12-08 11:5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제가 신동준 씨가 번역한 고전을 읽어보지 않아서 일종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
 

 

 

 

 

 

 

 

 

코난 도일1887년부터 <스트랜드 매거진>에 연재한 셜록 홈즈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러나 도일은 탐정소설보다는 다른 쪽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는 자신을 역사소설가로 불리기를 원했다. 홈즈 시리즈를 끝내기로 한 도일은 1893마지막 문제(혹은 마지막 사건’, The Final Problem)를 끝으로 홈즈가 죽는 충격적인 결말을 선보인다.

 

 

 

 

 

 

 

 

 

 

 

 

 

 

 

 

* 아서 코난 도일 셜록 홈즈 전집 2 : 배스커빌의 개(시간과공간사, 2002)

* 아서 코난 도일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문예춘추사, 2012)

 

 

 

하지만 독자들은 격렬한 홈즈 살리기운동에 나섰고 결국 홈즈는 전지전능한 창조주 도일의 부르심을 받고 살아 돌아왔다. 1901, 도일은 홈즈 시리즈의 세 번째 장편 소설 바스커빌 가의 개(The Hound of the Baskervilles)를 발표하며 홈즈를 살려낸다. 바스커빌 가의 개의 시간적 배경은 모리아티 교수와의 대결이 펼쳐지기 전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도일은 홈즈를 살려낸 것이 아니다. ‘죽기 전 홈즈가 맡은 사건이라는 설정으로 바스커빌 가의 개를 쓴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바스커빌 가의 개미친 존재감지옥견(hell hound)’이라는 별명이 붙은 사냥개. 홈즈와 왓슨은 전설로 전해오던 괴물 개로부터 습격을 받아온 바스커빌 가의 저주를 풀기 위해 황량한 황무지로 가득한 다트무어(Dartmoor)로 향한다.

 

유서 깊은 가문을 뒤흔들어 놓은 끔찍한 저주는 청교도 혁명 시대부터 시작된다. 바스커빌 가의 선조 휴고 바스커빌은 포악한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다. 성 미카엘 축일(Michaelmas, 최상급 대천사를 기리는 날)에 휴고는 자신을 따르는 불한당들과 함께 농부의 딸을 납치했다. 그들은 농부의 딸을 감금한 후 술판을 벌였다. 휴고 일행이 한눈판 사이에 농부의 딸이 탈출했다. 이 사실을 안 휴고는 그녀를 잡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넘길 수 있다고 외쳤다. 흥분한 그는 말에 올라타 황무지 쪽으로 이동했고, 휴고와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을 뒤늦게 깨닫고 추격에 나섰다.

 

 

 

 

 

친구들은 지나가던 도중 양치기 목동을 만났다. 그들은 목동에게 휴고를 봤느냐고 물어보는데, 목동은 지옥 견이 휴고를 쫓아가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봤다고 말한다. 친구들은 목동의 증언을 비웃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도 지옥 견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 휴고가 탔던 말이 입에 거품을 문 채 달려갔고, 휴고를 따라나선 사냥개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아직 술이 덜 깬 세 사람은 휴고를 찾기 위해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세 사람은 이미 사망한 농부의 딸의 시체 옆에 거대한 지옥 견이 휴고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광경을 목격한다. 끔찍한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란 세 사람은 도망쳤지만 그중 한 사람은 그날 밤에 죽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정신적 충격을 받아 미치광이가 되었다. 휴고 바스커빌의 죽음 이후로 바스커빌 가와 관련된 지옥 견 전설이 퍼지기 시작한다. 전설을 믿는 다트무어 사람들은 으쓱한 밤에 황무지를 배회하는 지옥 견이 실제로 있으며 그것이 바스커빌 가 사람들을 공격한다고 생각한다.

 

 

 

 

 

 

 

 

 

 

 

 

 

 

 

 

 

* 나다니엘 라첸메이어 세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미신의 숫자 13(창해, 2005)

 

 

 

휴고 바스커빌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바스커빌 가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고문서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고문서를 통해 무시무시한 전설의 유래를 확인하는 묘사는 고딕소설(Gothic novel)의 전형적인 설정이다. 도일은 신비한 느낌과 소름 끼치는 공포감을 유발하기 위해 ‘13의 저주혹은 ‘13 공포증(Triskaidekaphobia)’을 차용했을 수 있다. 서양에서는 13에 얽힌 미신 또는 금기가 있다. 특히 13일이면서 금요일까지 겹쳐진 ‘13일의 금요일은 가장 저주받은 날로 삼는다. 여기에는 예수가 12명의 제자와 최후의 만찬을 벌일 때 13번째 손님이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이기 때문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오늘날까지 13명이 함께 회식을 하면 그 해 안에 한명이 죽음을 당한다는 미신도 전해지고 있다.

 

휴고 바스커빌이 도망간 농부의 딸을 다시 납치하기 위해 혼자 황무지에 갔을 때, 그를 따라가기 위해 나선 일행이 ‘13이다.

 

 

Hugo ran from the house, crying to his grooms that they should saddle his mare and unkennel the pack, and giving the hounds a kerchief of the maid’s, he swung them to the line, and so off full cry in the moonlight over the moor. Now, for some space the revellers stood agape, unable to understand all that had been done in such haste. But anon their bemused wits awoke to the nature of the deed which was like to be done upon the moorlands. Everything was now in an uproar, some calling for their pistols, some for their horses, and some for another flask of wine. But at length some sense came back to their crazed minds, and the whole of them, thirteen in number, took horse and started in pursuit. The moon shone clear above them, and they rode swiftly abreast, taking that course which the maid must needs have taken if she were to reach her own home.

 

 

휴고는 밖으로 달려 나가 자신의 말에 안장을 얹고 사냥개를 풀어 여자의 손수건 냄새를 맡게 한 뒤 표적을 향해 달리게 했다. 휴고는 그들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나서 함성을 지르며 달빛으로 환하게 빛나는 황야를 향해 출발했다. 흥청망청 즐기던 그의 친구들은 갑자기 일어난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황무지에서 벌어질 사태의 본질을 깨달았다. 이제는 모두 야단법석을 떨며 어떤 사람은 총을 가지러 가고, 어떤 사람은 말을 가지러 가고, 어떤 사람은 포도주를 담아 둔 또 다른 병을 가지러 갔다. 그리고 마침내 한자리에 모인 13은 말을 타고 추격하기 시작했다. 달은 밝게 빛나고 있었고, 나란히 말을 탄 그들은 여자가 집에 가기 위해 거쳐 갔을 길을 따라 빠르게 달려갔다.

 

(정태원 역, 24~25쪽, 출판사: 시간과공간사)

 

 

휴고를 찾아 나선 13명의 일행 중 세 사람은 온전하게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이 세 사람은 시선을 압도하는 지옥 견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고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세 사람을 끔찍한 불행의 구덩이로 빠뜨리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은 지옥 견이지만, 그들을 처음부터 불행의 길로 인도하게 한 건 ‘13의 저주이다. 도일은 바스커빌 가의 저주를 더욱 현실감 있게 그려내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미신 ‘13의 저주를 창작 소재로 이용했을 것이다.

 

 

 

 

 

 

 

 

 

 

 

 

 

 

 

 

* 이인식 미래교양사전(갤리온, 2006)

* 리처드 와이즈먼 괴짜심리학(와이즈베리, 2014)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미신에 대한 믿음은 행동의 제약을 안길뿐더러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바스커빌 효과(Baskervilles efffect)라는 말이 있다. 서양인은 13을 불길한 숫자라고 여기지만, 동양인이 생각하는 불길한 숫자는 4. 2001년 영국의 의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매월 4일이면 4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동양인의 수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바스커빌이라는 이름은 당연히 도일이 쓴 소설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가 미신이라 부르는 것들은 분명 처음에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점점 진짜가 되어간다. 비합리적이지만, 개개인의 믿음이 모인 사회 통념이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다. ‘도시전설또는 괴담의 탄생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믿고픈 마음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결과물에 불과하다. 미신이 확실한 근거가 없다고 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여러 요소 중 미신처럼 강한 힘을 지닌 것도 없다. 미신의 허점을 알아도 그것을 믿고 싶어 한다. 우리의 삶을 지배한 미신은 수십 년에 걸쳐 뇌에 굳어진 것들이다. 우리의 뇌가 중요한 것만 쉬이 잊어버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온 미신을 떼어내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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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8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19 20:17   좋아요 1 | URL
복권, 추첨 이벤트에 당첨되는 분들 진짜 부러워요. 가만히 있어도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
 
현대미술 강의 - 순수 미술의 탄생과 죽음
조주연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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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불가능한 것처럼 현대미술 또한 정의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보고 또 봐도 알쏭달쏭한 게 현대미술이다. 사람들은 현대미술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거나 일상의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한다. 미술의 기원에서 본다면 미술은 사람들의 일상과 가까이 있었으며 인간이 소망하는 꿈을 대신해 주는 소망의 표상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미술은 과거 사람들의 필요와 즐거움의 해소와도 관련이 깊다. 우리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고대 그리스 · 로마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있어서 현실을 아름답게 재현하는 수단이자 기호였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미술로 표현될 수 있고, ‘재현하는 기호가 된 모든 미술 작품은 우리가 보는 세계로 다시 해석될 수 있다.

 

미술의 역사는 19세기까지 대체로 두 흐름에 따라 엎치락뒤치락 흘러왔다. 르네상스 고전주의처럼 옛 규범과의 완벽한 조화를 중시하는 형식 미술이 기본이라면 바로크, 낭만주의와 같이 개성과 감정을 중시하는 감성 미술이 번갈아 지배 사조로 등극했다.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획기적인 인식 전환이 일어나게 됐다. 화가들이 재현이라는 고전 미술의 전통을 거부하게 된 것이다. 사실주의(realism)에서 모더니즘(modernism)으로 넘어가는 시기다. 여기서부터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서막이 오른다. 현대미술 강의(글항아리, 2017)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올랭피아(1863)를 현대미술의 뿌리로 보고 있다.

 

오늘날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고 너무나 익숙해 있어 인상주의는 마치 서양회화의 전형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인상주의가 등장할 당시 그것이 얼마나 혁명적인 생각이었고 도발적인 행위였는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인상주의자들은 자연의 한복판에서 쉬지 않고 변화하는 자연의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하기 위해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 인상주의 그림은 빛의 기록이니만큼 그림 속에 칠해져 있는 색들은 모두 빛을 재현하고 있었다. 또한,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반사하는 빛의 색을 기록하려 했기 때문에 사물을 똑같이 그릴 필요가 없었고 사물이 반사하는 빛과 거기서 받은 인상을 그리고 칠했다. 따라서 인상주의가 이룬 모더니즘 미학은 재현을 중시하는 전통미술의 가치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렸다. 이제 모더니즘 화가들이 그릴 수 있는 것은 형태가 아닌 선과 면이다. 모더니즘의 성과는 재현하는 기호가 완전히 사라진 순수미술의 등장이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고전주의 미학은 산산이 깨져버린다. 산업화에 따른 사회 격변과 자본의 세계화, 잇따른 전쟁의 혼란 속에서 이성이 일군 고전미의 규범이 통째로 부정되고, 독창적 발상을 좇는 무한 경쟁이 미술의 본질을 형성했다. 아방가르드(avant garde)의 서막이 오르면서 예술가들은 순수미술마저 거부하기 시작한다. 미술이 태동한 이래 인간이 그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그렸다. 나무, 바다, , 누드까지…‥. 그리고 한 단계 더 나가 그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추상미술까지 미술의 영역을 넓혔다. 더 이상 그려낼 대상이 없어졌다. 공장에서 작품을 대량으로 찍어내고 변기까지 미술품으로 등장했다. 다다이즘(dadaism), 팝 아트(pop art), 미니멀아트(minimal art)는 모더니즘의 반작용으로 형성된 반 예술 운동이다. 그렇지만 아방가르드 예술은 자신들이 거부하고자 했던 모더니즘 미학에서 완전히 결별하는 데 실패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일상의 저 낮은 곳에 있는 변기에 예술의 지위를 부여했다. 그는 일상의 세계와는 분리된 고상한 그 무엇만이 예술이 될 수 있다(‘예술을 위한 예술’)는 모더니즘 미학에 항변했다. 그런데 뒤샹의 변기 작품이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연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으며 대형 미술관의 중심에 모셔졌다. 모더니즘을 거부하던 뒤샹의 변기 작품이 모더니즘 작가들의 홈그라운드(home ground)라고 할 수 있는 미술관의 중심에 서는 역설이 생겼다. 미술사가 핼 포스터(Hal Foster)가 지적한 대로 아방가르드는 모더니즘의 관례를 비판하는 데 성공했으나 제도 비판에 소극적이었다.

 

현대미술이 더 이상 기상천외한 미술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하던 터에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서막이 올랐다.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은 미술이라는 시각적 표현물이 실재의 삶과 사회 및 자연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다. 이러한 흐름은 회화나 조각은 물론 사진과 영상, 설치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서 재료, 즉 물질성은 중요하지 않다. 낱말, 사진, 쓰레기, 그리고 심지어 작가 자신의 신체마저 미술을 위한 재료가 된다.

 

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거품이 빠져 신선함을 잃어버렸고, 변화가 멈춰진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과거 현대미술의 주축인 모더니즘 미술을 파괴하지 못했고, 여전히 모더니즘의 아이디어를 잊지 못한다. ‘순수 미술의 죽음은 관객이 공유할 수 있는 미적 가치의 파괴로 귀결된다. 이렇다 보니 현대미술은 더욱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오늘의 현대미술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현대미술은 정답 없는 물음의 연속이다. 그래서 미술은 어렵지만 참으로 매력적인 분야다.

 

 

 

 

 

Tri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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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7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18 08:06   좋아요 1 | URL
요즘에 나오는 미술은 과거를 조금씩 모방하고 있습니다. 작품들을 잘 살펴보면 과거에 시도했던 방식이 보여요. 그래서 고전을 비틀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

2020-02-01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2-01 17:50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metarkr님이 언급한 문장은 책에 있는 문장이 아니에요. 인상주의 미술이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혁명적인 출발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 제가 쓴 문장입니다. ^^

2020-02-02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02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토록 황홀한 블랙 - 세속과 신성의 두 얼굴, 검은색에 대하여
존 하비 지음, 윤영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세울세라.

청강에 좋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포은 정몽주의 어머니가 지었다는 이 시조는 옛 선비들의 정결한 마음을 알 수 있다. 선비가 명리를 다투는 곳에 들어가면 깨끗한 깃털을 더럽히고 선비의 이름을 다치게 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까마귀는 시커멓다. 속도 겉도 검은 까마귀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어려웠다. 지금의 까마귀는 그다지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옛날에는 상당히 신비한 새로 인식되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까마귀는 예언의 능력을 갖춘 예언의 신 아폴론(Apollon)의 성조였다. 아폴론의 까마귀는 원래 검지 않았다. 그런데 까마귀의 거짓말이 아폴론에게 발각되었고, 분노한 아폴론은 까마귀의 깃털을 새까맣게 만들었다.

 

우리는 색과 더불어 산다. 아니, 색에 꼭 붙어산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지 싶다. 어디를 봐도 색이 아닌 건 없다. 색으로 건물을 평가하고 옷을 평가하고 사람을 평가한다. 각기 다른 색에는 특유의 감정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토록 황홀한 블랙(위즈덤하우스, 2017)은 색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 주관적이고 문화적인 산물인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검은색이 현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 될 때까지 서구사회에서 얼마나 천대받는 색이었던가를 추적했다. 검은색의 역사가 이리 방대했던가. 시대와 분야를 넘나드는 서술 방식을 소화하기 힘들긴 하지만, 검은색의 억울한 사연(?)을 알기 위해선 천천히 읽어야 한다.

 

아직 색이냐 아니냐?’로 논쟁을 벌이는 것이 검은색이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색,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색. 검은색의 정체는 모호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검은색은 색이 아니다라고 정의했다. 그는 검은색을 아무것도 없는 공간 상태, ‘()’의 실체를 나타내는 색이라고 생각했다. 검은색은 어둠의 색깔이다. 검은색은 죄의식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기독교가 등장하기 전에는 속죄로 말끔히 제거할 수 있는 죄의 얼룩으로 비유했다. 기독교가 지배적인 종교로 부상하면서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이원론적 교리가 정립되면서 검은색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기독교가 설정한 악마는 보통 검은색이다. 피부가 검거나 검은 옷을 입고 있다.

 

검은 피부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기독교의 선악 이분법을 제멋대로 버무려서 만들어진 위험한 도그마(dogma). 기독교는 인간의 원초적 죄의식을 부각해 왔다. 그래서 기독교 설교자들은 아프리카인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그들을 죄악의 살아 있는 증거로 봤다. 검은색의 부정성이 강조될수록 아프리카인에 대한 경멸적인 시각이 형성되었다. 미국의 흑인은 건국 초기 아프리칸(African)’이라고 불렸다. 노예제도가 심화하면서 니그로(negro, 깜둥이)’라는 경멸적 단어가 보편화했다.

 

권력과 지위를 가진 남성들이 검은색 옷을 시작했다. 검은색 옷은 정치적 권력의 상징이 됐다. 무솔리니(Mussolini)와 그의 친위부대원들이 검은색 유니폼을 입기 시작하면서부터 검은색은 이탈리아 파시스트를 상징하는 색깔이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자 옷에서 검은색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둡고 무거운 기운에 가려져 있던 검은색을 클래식 패션코드로 끌어올린 디자이너가 바로 코코 샤넬(Coco Chanel)이다. 1926년 샤넬은 지나친 장식을 덜어낸 과감하고 단순한 디자인으로 리틀 블랙 드레스를 선보였다. 그녀는 옷을 입은 여성이 주인공이 되도록 했고, 오히려 여성의 우아한 매력을 더욱 돋보이도록 만들었다. 세련된 옷을 원하던 여성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미국판 <보그>는 리틀 블랙 드레스를 세상 사람 누구나 입게 될 옷이라고 소개할 정도였다.

 

인간은 시각을 통해 전달된 정보를 가장 신뢰하지만, 인간의 시각적 능력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단순한 색깔이라도 보이는 것에 대한 반응은 저마다 다르다. 반응이 다른 이유는 색깔에 대한 저변의 지식이나 경험의 차이일 수 있으며 색깔에 대한 감정의 기복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검은색은 억울하다. 어둡다는 이유로 색깔로 인정받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다른 색깔들보다 더 천대받고 공격당했으니까. 검은색은 죄가 없다. 문화적 의미와 편견으로 덧칠해온 우리가 잘못했다. 못난 인간의 곁에 있어준 검은색에게 정말 미안하드아아악!

 

 

 

 

 

 

 

Tri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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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5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15 20:29   좋아요 0 | URL
흑백 사진이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유니크한 매력이 있어요. ^^

꼬마요정 2017-07-1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검은색 좋아합니다. 세련된 느낌이에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달까요... 까만색의 역사가 참으로 고달픕니다.

cyrus 2017-07-15 20:33   좋아요 0 | URL
검은색 때문에 피해를 많이 받은 존재가 동물입니다. 불길한 검은색을 띠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받고,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이하라 2017-07-1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색깔이 경멸의 뜻으로 전이된 것이 신기하군요 종교적으로 까지 인식되고 악용된 것도 그렇구요

cyrus 2017-07-15 20:35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보면서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무섭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감은빛 2017-07-16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덧이름 감은빛이 순 우리말로 ‘윤기나는 검은색‘이라는 뜻이죠.

검은색은 무정부주의를 상징하는 색이라 좋아해요.

가만보니 제 옷 중에도 유독 검은색 옷이 많네요.

cyrus 2017-07-17 11:34   좋아요 0 | URL
처음에 제가 감은빛님의 글을 읽었을 때 이름의 의미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감미로운 은빛‘. ㅎㅎㅎ
 

 

 

죽은 모리아티가 라이헨바흐에서 꿈꾸며 기다린다

(1, 2017713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9457819

 

    

 

1부의 글에서 홈즈의 숙적 모리아티 교수의 정체와 그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가지 가설을 소개해봤다. 2부는 모리아티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 셜록 홈즈 전집 6 : 셜록 홈즈의 회상록(황금가지, 2002)

* 셜록 홈즈 전집 6 : 셜록 홈즈의 회상(시간과 공간사, 2002)

* 셜록 홈즈의 회상록(문예춘추사, 2012)

* 주석 달린 셜록 홈즈 2 : 셜록 홈즈 회고록(현대문학, 2013)

* 셜록 홈즈의 회고록(코너스톤, 2016)

* 셜록 홈스의 회상록(엘릭시르, 2016)

 

 

    

 

모리아티는 홈즈의 도플갱어(Doppelgänger).

 

 

홈즈와 모리아티의 외모를 비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홈즈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에 왓슨이 홈즈의 모습을 묘사한 내용이 나온다.

 

 

 

 

 

 

 

 

 

 

 

 

 

 

 

 

 

 

 

 

 

 

 

 

 

 

 

 

 

* 셜록 홈즈 전집 1 : 주홍색 연구(황금가지, 2002)

* 셜록 홈즈 전집 3 : 주홍색 연구, 네 명의 기호(시간과 공간사, 2002)

* 진홍색 연구(문예춘추사, 2012)

*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 주홍색 연구, 네 사람의 서명(현대문학, 2013)

* 주홍색 연구(코너스톤, 2016)

* 주홍색 연구(엘릭시르, 2016)

    

 

키는 6피트가 넘었지만 너무 말라서 6피트보다 더 커 보였다. 그의 두 눈은 남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이 날카로웠다. 홈즈의 가느다란 매부리코는 그가 항상 경계하고 있고, 결단력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그의 턱 역시 결단력이 있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듯이 돌출되어 있었고 각이 져 있었다. (주홍색 연구중에서, 정태원 역, 26)

 

6피트는 180cm 이상.

    

 

홈즈는 누구를 경계하고 있었을까. 홈즈가 두려워하는 인물, 모리아티 교수다. 홈즈는 왓슨을 만나기 전부터 또 하나의 자신모리아티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고, 그가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범죄를 일으킬까 봐 두려워했다.

 

 

 

 

 

 

 

 

시드니 패짓이 그린 모리아티의 모습은 늙은 홈즈를 연상시킨다. 홈즈와 모리아티가 서로 대치하는 상황을 묘사한 그림을 보자. 이 두 사람은 마른 체형, 움푹 들어간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비상한 두뇌를 가진 것까지 서로 이상하리만치 닮았다.

 

 

 

 

 

 

 

 

 

 

 

 

 

 

 

 

 

 

 

* 다케루베 노부아키 판타지의 주인공들(들녘, 2000)

* 구사노 다쿠미 환상동물사전(들녘, 2001)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상상동물 이야기(민음사, 2016)

 

 

 

도플갱어 현상을 경험한 사람은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미신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미신에 의하면 죽음을 앞둔 사람은 자신과 닮은 영혼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정신의학에서는 도플갱어를 정신적으로 불안정할 때 생기는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보고 있다. 이것을 자기상 환시(Autoscopy)라고 한다. 자기상 환시에 시달리면 육체적 · 정신적 피로에 시달린다. 피로를 풀기 위해 알코올 또는 약물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알코올과 약물에 의존할수록 더 피로해지고,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환각 증상을 경험한다.

 

홈즈는 약물 중독자. 사건 의뢰가 뜸할 때 코카인이나 모르핀을 팔뚝에 찌른다. 네 개의 서명(The Sign of Four)은 다소 충격적인 내용으로 시작된다. 홈즈가 7%의 코카인 용액이 있는 주사기를 혼자서 투약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 셜록 홈즈 전집 2 : 네 사람의 서명(황금가지, 2002)

* 네 개의 서명(문예춘추사, 2012)

* 네 사람의 서명(코너스톤, 2016)

* 네 사람의 서명(엘릭시르, 2016)

    

 

셜록 홈즈는 벽난로 선반 구석에서 병을 내리고, 예쁜 모로코 가죽 케이스에서 피하 주사기를 꺼냈다. 하얗고 긴 손가락을 신경질적으로 움직여 주사기에 약을 채우고, 정교한 바늘 끝을 다듬고 나서 셔츠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한순간 생각에 잠긴 그의 시선이 수많은 주사 바늘 자국으로 뒤덮인, 힘줄이 불거진 팔뚝과 손목에 쏠렸다. 이윽고 날카로운 바늘 끝을 피부에 푹 찌르고 작은 피스톤을 누르더니 만족스런 한숨을 길게 내쉬며 벨벳을 씌운 긴 의자에 깊숙이 파묻었다. (정태원 역, 205)

    

 

홈즈는 무료할 때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약물을 즐긴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는 모리아티에 대한 검고 깊은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약물에 손댔고, 결국 심각한 중독 수준에 이르고 말았다. 홈즈는 도플갱어의 미신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비과학적인 현상을 무시하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던 홈즈도 자신 주변을 배회하는 죽음의 그림자를 두려워했다. 홈즈는 피할 수 없는 파멸을 막을 방법을 생각해냈다. 모리아티를 직접 쓰러뜨리는 것.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분신과의 혈전을 치르기 위해 왓슨과 함께 런던을 떠나게 되고, 고심 끝에 홈즈가 선택한 결전 장소가 스위스의 라이헨바흐 폭포.

 

내 주장에 대한 다음과 같은 반론을 예상할 수 있다.

 

 

모리아티가 정말로 홈즈의 도플갱어라면, 홈즈를 아주 완벽하게 닮은 모습이어야 한다. 그런데 모리아티는 홈즈보다 나이가 많다. 그리고 홈즈와 전혀 닮은 구석이 없다.” (리더스북다이제스터)

 

 

흔히 도플갱어라면 닮은 정도가 거의 완벽한 쌍둥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 자신의 미래 모습을 닮은 영혼을 만나는 것도 도플갱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21세의 괴테8년 후 자신의 모습을 닮은 영혼을 만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괴테가 정확히 8년 후에 세상을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괴테는 도플갱어의 저주를 피했고, 83세까지 장수했다. 괴테의 사례를 볼 때, 모리아티는 홈즈의 미래 모습과 흡사한 도플갱어이며 홈즈도 도플갱어의 저주에서 벗어났다.

 

 

도플갱어는 인간의 몸에서 빠져나간 영혼이다. 그렇다면 영혼을 잃은 육체나 다름없는 홈즈가 가까스로 살아남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정말로 모리아티가 폭포수 아래로 추락해서 사망했다면, 홈즈는 두 번 죽는 상황이 된다.” (시이쏘우)

 

 

홈즈와 모리아티는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싸웠다. 서로 부둥켜안으면서 몸싸움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중심을 잃은 두 사람이 동시에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두 사람이 껴안은 상태로 떨어지는 중에 모리아티는 홈즈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됐고, 비로소 완전한 영혼을 가진 홈즈는 살아남으려는 의지를 느꼈다. 도플갱어로서의 위력이 상실된 모리아티는 죽은 거나 다름없다. 위기에서 벗어난 홈즈는 필사적으로 절벽을 기어올라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빈 집의 모험[The Adventure of the Empty House] 참조)

 

 

 

 

 

 

 

 

 

 

 

 

 

 

 

 

 

 

 

 

 

 

 

 

 

 

 

 

 

 

 

 

 

 

* 더 레이븐 :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RHK, 2012)

*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민음사, 2013)

* 붉은 죽음의 가면(더스타일, 2013)

*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2(코너스톤, 2015)

* 포 단편집(지만지, 2015)

    

 

 

도일은 근대 추리소설을 확립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영향을 받아 셜록 홈즈를 만들어냈다. 코난 도일이 모리아티를 홈즈의 도플갱어로 설정했다면, 도플갱어가 등장하는 포의 윌리엄 윌슨을 참고했을 것이다. 윌리엄 윌슨은 생년월일과 외형이 똑같은 2의 윌슨을 알게 된다. 그런데 화자로 설정된 진짜 윌슨은 악인이고, ‘2의 윌슨은 선인이다. 화자는 2의 윌슨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낸다. 실제로 도일은 유령, 심령술을 진지하게 믿었다. 그는 신비한 초자연적 현상에 쩔쩔매는 인간홈즈의 모습을 한 번쯤은 묘사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모리아티는 홈즈의 죽음을 겨냥해 만들어진 초자연적 존재라고 상상해볼 수 있다.

 

 

 

 

 

 

 

 

 

 

 

 

 

 

 

 

 

 

* 러브크래프트 전집 1(황금가지, 2009)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 크툴루의 부름 외 12(현대문학, 2014)

 

 

글의 제목은 러브크래프트크툴루의 부름에 나오는 고대 주문을 패러디한 것이다. 원문은 Ph'nglui Mglw'nafh Cthulhu R'lyeh Wgah'nagl Fhtagn. (판글루 글루나파 크툴루 르뤼에 가나글 파탄. 죽은 크툴루가 그의 처소 르뤼에[리예]에서 꿈꾸며 기다린다.)

 

모리아티와 크툴루는 지배자의 위치에 있는 막강한 캐릭터다. 모리아티는 범죄의 나폴레옹이라면 크툴루는 위대한 옛 존재(Great old one)’이다. 그런데 이 최종 보스급인 두 캐릭터가 죽는 과정은 안습 그 자체. 그렇지만 이들은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 라이헨바흐 폭포수 속에 잠들었던 모리아티는 백 년이 지난 후에야 눈을 뜨는 데 성공했다. 그는 셜록의 강력한 적수 짐 모리아티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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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14 18:14   좋아요 1 | URL
아동용 번역본에는 홈즈의 약물 중독에 대한 언급이 없을 것이다. 저도 홈즈의 약물 중독을 처음 알았을 때 충격 받았습니다. 순화된 ‘아동용 홈즈’에 익숙해지다가 까칠한 ‘성인용 홈즈’를 만나니까 기분이 묘했습니다. ^^;;

레삭매냐 2017-07-14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토믹 블로든 개봉에 즈음해서 제임스 매카보이(!)
의 프로필을 뒤지다가 작년에 나온 <빅터 프랑켄슈타인>
이라는 비교적 덜 알려진 영화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에서 모리아티를 보고 어찌나 반가웠는지요.

리뷰하고는 별로 관계 없는 내용입니다만.

cyrus 2017-07-14 18:19   좋아요 0 | URL
홈즈와 아르센 뤼뺑이 같이 나온 이야기가 나왔듯이(도일은 그걸 싫어했지만) 홈즈를 다른 작품에 접목시키는 시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홈즈가 드라큘라와 크툴루를 만나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