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장보기 목록을 챙기고 일의 순서를 꼽아본다. 그리고 (속으로) 내던지며 에잇, 하고 승질을 (혼자서) 부린다. 이 짓을 한국 와서 십 몇 년을 했는데도 매년 매년 지겹고 때려치우고 싶다. 사실 음식은 전날 하면 된다. 며칠 전 부터 장을 보고 묵힐 이유가 없다. 당일에 똑 떨어져서 난감하지 않도록 부침가루와 식용유, 간장만 잘 챙기면 된다. 그리고 그날 버틸 내면의 힘, 심, 깡, 참을 인 팔 백 자를 잘 챙겨두면 된다. 그리고 명절 사흘 전까지 열심히 책을 사고 읽는다. 읽는다. 달고 달게 읽는다. 


요즘 좋은 책을 거푸 읽어서 축복받은 심정인데 이게 또 난감한 것이... 책이 너무 좋으면 감히 몇 줄이라도 남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해서 알라딘 이웃분들의 글솜씨와 예리한 분석이 나의 감상과 비교되는 기분도 들어서 위축된다. 고작해서 복숭아 사진이나 올리고 .... (그래도 어쩌란 것이냐, 책 읽다가 먹거리가 나오면 반사작용 처럼 초집중하게 되는걸) 그리고 아침에 시작하는 소설은 <버터>. BTS 노래를 틀어본다. 비건지향이라 버터를 멀리하(려 하지만 크로아상 사랑해요)는 식습관에 냉장고의 버터스틱은 말라비틀어졌다. 서재 친구는 내게 이 책의 위험을 경고했다. 나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달려가보겠어. 해보자고! 어차피 명절이 오고있어! 






그래서 실은 오늘 아침에도 몇 줄 적으려고 앉았다가 명절 이야기 부터 쓰고 그래서 기분이 우울해졌다가 일단 막내가 등교를 했기에 활기찬 하루 목요일 (으악 벌써 목요일이여?!!!!) 을 찐한 에쓰뿌레쏘로 시작하였던 거시다. 책 리뷰는 이따가 쓰겠지. (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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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9-16 09: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 벌써 맛있는 냄새 나는 느낌....

유부만두 2021-09-16 10:32   좋아요 2 | URL
꼬수운 냄새가 책에서 나는 느낌 ....

단발머리 2021-09-16 10: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하는 게 어려운게 아니라 마음 준비가 더 어려워요. 추석 전까지 달콤하고 고소한 독서의 시간 펼치시기를 바랍니다요!!! BTS 아이러브유!

유부만두 2021-09-16 10:32   좋아요 2 | URL
아시는군요. 일하는 것보다 마음준비가 백배 더 어려워요. ㅜ ㅜ
전 토요일까지 열심히 놀거에요. 막 읽고 막 뻬빠 쓰고 막 막 막 (운다)

단발머리 2021-09-16 11:01   좋아요 3 | URL
😭😭😭 (토닥토닥!!!)

페넬로페 2021-09-16 11: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 준비되어 있는 곳에 가서 달랑 몇시간 전만 부치면 되는데 지금부터 스트레스가~~
맞아요.
그냥 그날 뚝딱하면 되는데 여러 날 전부터 느끼는 이 묵직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비틀림 ㅠㅠ
유부만두님, 책 읽고 글 팍팍 올려주세요^^

유부만두 2021-09-17 10:21   좋아요 1 | URL
팍 팍 올리고 싶은데요 불안감이 스물스물 다가와서 절 잡아먹고 있어요. ㅜ ㅜ

얄라알라 2021-09-16 11: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의(?), 출장 직전의 전의가 느껴지는,냄새가 꼬수울 지라도 웃픕니다.
사흘은 그냥 나없다싶은 마음으로^^;;;;저도

유부만두 2021-09-17 10:22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버터의 비중이 꽤 높습니다. 2014년에 일본에서 버터 품귀 현상이 있었대요. 모자라니 더 갈망하게 되는 사람 마음과 살인 사건을 절묘하게 연결시켰어요.

붕붕툐툐 2021-09-17 0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 버터쿠키와 버터 책 표제 찰떡인 거 뭐예용? 쿠키 너무 먹고 싶네용!!! 저도 뭐 걱정될 때 막상 닥쳐서 하는 것보다 그 전의 마음이 젤 힘들더라구요~ 토닥토닥~ 유부만두님 잘 지나갈 거예용!!

유부만두 2021-09-17 10:23   좋아요 0 | URL
잘 지나가겠죠. 매년 매 명절 마다 이 난리를 치르는데 절대 면역이 되지않네요. 애들만 신났어요. 이것들이 눈치도 없거든요.
 

바보 같은 과일 복숭아를 맛있게 먹는 히로타 센세,
오전엔 마들렌 대신 크로아상에 카페오레를 (두 번!) 즐기는 무슈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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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5 22: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두유와 캡슐 커피가 만나면 카페 오레! ㅋㅋ 복슝아는 💓입니다.

페넬로페 2021-09-15 22:54   좋아요 4 | URL
카페오레의 참 맛 ㅋㅋ

유부만두 2021-09-16 10:24   좋아요 3 | URL
네 여름과일 복숭아 곧 헤어질 시간이라 더 애틋하고요. ^^

잠자냥 2021-09-15 22: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버터> 읽으시면 난리나겠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9-16 10:25   좋아요 3 | URL
그정도에요? 이거 겁나는데요? ㅋㅋㅋ
초반에 체중 조절하느라 저녁은 먹지 않는다...라고 나와서 나중에 얼마나 쎄지려고 이러시나 싶었어요. 자자 허리띠 풀고 달려봅니다.

페넬로페 2021-09-15 22: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기차에서 두사람이 복숭아를 우적우적 먹는 모습이 무척 우스웠어요.
저는 잃.사.찾 읽지 않았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넘 우아하게 식사할듯 해요.
근데 산시로쪽이 좀 더 정겹지 않으세요?
엄마가 말씀해주시는 아버지 젊었을 때 이야기들이 소세키의 소설 속 모습과 닮았더라고요^^

유부만두 2021-09-16 10:28   좋아요 4 | URL
그쵸. 그 장면에서 복숭아 물 흐르고, 아 껍질은 그냥 먹는겁니까, 복숭아 안씻으면 따갑지 않아요? 별 걱정을 다하며 읽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나중에 가을이 깊어지면 감을 먹잖아요? 하하 계절 감각 잘 살리는 소세키 작가님 덕에 더 즐겁게, 또 정겹게 읽었어요.

프루스트 소설에도 우아..보다는 거창하게 (상다리 휘어지게) 차린 식탁 묘사가 꽤 나옵니다. 그걸 또 제가 검색하면서 읽잖아요? 네 소설 속엔 다들 열심히 탐하고 먹고 그런 인물들이 나오네요.

라로 2021-09-16 00: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복숭아 사진이 정말 에로틱 입니다만. ㅎㅎㅎ

유부만두 2021-09-16 10:29   좋아요 2 | URL
그렇죠? 오죽하면 도색잡지라는 단어가 복숭아를 품고 있겠습니까. ㅋㅋㅋ
신선과 가까운 과일인 만큼 먹으면 너무 맛있어서 죄짓는 마음까지 들게 한다는 걸까요? 모양도 궁둥이 같....

책읽는나무 2021-09-16 05: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모두 다 내가 좋아하는 먹을 거다!!!
복숭아,크로와상,캡슐,두유ㅋㅋㅋ
요즘 저도 캡슐 커피 마시거든요.
저는 좀 쓴 거 같아 우유 쬐끔 타서 먹는데 두유도 사서 넣어 먹어봐야 겠네요ㅋㅋ
간식 소개도 이리 알차게 팁을???
복숭아도 저 색깔의 접시위에 올려 놓으니 뭔가 더 예쁜 복숭아?? 먹음직스런 복숭아로 보이는 착시 현상??
이게 다 저 책들 속에~^^
읽어야 겠네~읽어야 겠어^^
아...근데 어제 프루스트 안읽었는데 전 마들렌 먹었어요ㅋㅋ

유부만두 2021-09-16 10:31   좋아요 2 | URL
맥콜리프의 책은 세세하게 먹거리 애정관계 또 일상사의 디테일을 언급해서 읽는 재미와 맛이 있어요. ^^

읽어야 알지요. 이 맛과 모든 건요. ^^ 마들렌 말고도 프루스트에는 과자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그것은 여름이라는 단어가 그랬듯이 무언가를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도 책등이 오래되고 해진 펭귄 클래식 페이퍼백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열여섯 살인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여름에 그 책을 읽었다. - P28

애나는 자신이 이토록 수줍음을 타는 사람인지 미처 몰랐다.
애나는 자신이 바깥세상에 나왔을 때 이토록 심하게 이상한 부류임을 발견하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 P60

이걸 찍어 봐, 카메라들아. 내가 오늘 여기 앉아 있는 것을 찍는 것으로 정말로 일어난 일을 아는 것이 얼마만큼이나 가능한지 좀 보자. 자, 찍어서 내가 거기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봐. 내가 거기 있었다는 게 어떤 의미를 띠는지 우리에게 보여줘 봐. - P96

의식하지도 못한 채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맹목적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인간은 얼마나 적응력이 뛰어난가. 어느 날 아침에 여름을 느꼈는데 그다음에 눈을 떠 보면 일 년이 후딱 지나가 있다. 어느 한순간 서른 살인데 다음엔 예순이 돼 있고, 그다음 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후딱 지나간다. 모든 게 너무 빨랐다. 생각해 보면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는 게 너무 빠르고 너무 매끄러웠으며 한편으로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 P124

겨울, 겨울은 사물을 눈에 보이게 해 준다. - P125

구글은 이상하다. 구글은 모든 것을 약속하지만 거기엔 찾는 게 없고, 우리가 원하는 것의 단어를 입력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순식간에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된다. 우리가 정말 원하느 것이 어렴풋이 아픈거리기만 하고, 구글은 아무것도 답을 할 수 없다. - P206

하지만 그와 동시에 브룩은 이 농담에서 뱃속이 싸한 느낌을 받는다. 그 느낌은 폭탄을 가지고 공원에 간 남자에 관한 책 같은 것을 읽을 때의 느낌과도 비슷하며, 임의의 문장을 생각할 때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문장 말이다. 소녀는 공원을 달렸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수식어를 덧붙이지 않는다면 소녀는, 또는 남자든 누구든 명백히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다. 아무도 백인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마치 기사 제목에서 더the를 빼도 사람들은 거기에 더가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 P390

책꽂이에 놓인 책은 얼마나 조용한지 생각해 보렴, 그가 말했다. 펼쳐 보는 사람 없이 거기에 가만히 놓여 있을 때 말이다. 그런 다음 네가 그 책을 펼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 봐. - P420

당신이 남자다운 남자라면 얼마나 좋겠어,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로닌>에 슈워제네거는 안 나온다고. 맞아, 하지만 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온다면 굉장할 거야, 아빠가 말했다. 그리고 우린 그처럼 훌륭한 롤모델을 우리에게 제공한 데 대해 위대한 작가들에게 감사할 따름이겠지. 실베스터 스완. -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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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아직 우리 곁에 있지…만
여름이여 곧 안녕 aurevoir.
그리고 가을이여 안녕 bonj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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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1 20: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진 세버그 ♡ㅅ♡

유부만두 2021-09-11 21:00   좋아요 4 | URL
배우는 멋진데 (아줌마 눈에) 캐릭터는 밉상 화상이네요;;;

새파랑 2021-09-11 21:3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사강˝과 ˝진세버그˝ 외모 차이가 느껴지지 않네요 😅 저도 슬픔이여 안녕 완전 좋아해요~!!

유부만두 2021-09-12 07:55   좋아요 3 | URL
느낌이 많이 비슷하죠?! 전 영화는 이번에 처음 봤는데 꽤 좋았어요.

붕붕툐툐 2021-09-12 0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슬픔이여, 안녕」의 안녕이 만날 때 인사라는 걸 알고 신기했어요~ 전 헤어질 때 인사라고 생각했거든요~ 전 읽으려다 아직이네용!ㅎㅎ

유부만두 2021-09-12 07:57   좋아요 2 | URL
이제 주인공이 슬픔을 만나서 안녕, 인사하고 배우게 된 걸까요. 그래도 슬픔은 살짝 맛만 보곤 그냥 예전 대로 씬나게 사는 건지도 몰라요.

파이버 2021-09-13 12:01   좋아요 2 | URL
툐툐님 저두요 툐툐님이랑 똑같이 생각했어요
저는 유부만두님 덕에 불어로 두 가지 안녕을 배웠네요~! 언어의 세계란 신기해용
 

영화 디비디는 사놨는데 (존 말코비치와 알랭 들롱이 샤를뤼스 남작;;;) 그래도 책을 읽은 다음에 봐야할 것 같아서 비니루도 안 벗기고 모셔놨다. 나 진심인가봐. 완독하면 잃어버린 시간 찾고, 좀 젊어지고 그러는 거야? (응, 아니야. 프루스트 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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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09-10 10: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넘 귀여우셔서 이미 많이 젊어지셨어요^^

유부만두 2021-09-10 12:16   좋아요 2 | URL
옴머! 감사합니다! ^^

잠자냥 2021-09-10 11: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아 진짜 별게 다 있네요? 놀라운 프루스트의 세계

유부만두 2021-09-10 12:17   좋아요 2 | URL
피규어도 나올 테세죠? 프랑스에선 온갖 굿즈가 있더라고요. ㅎㅎ

잠자냥 2021-09-10 12:33   좋아요 2 | URL
근데 피규어가 마들렌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9-10 12:46   좋아요 2 | URL
좋네요! 홍차 티백에 마들렌 함께 ‘프루스트 셋트메뉴’ ㅋㅋㅋ

scott 2021-09-10 15:11   좋아요 2 | URL
마르셀 티세트 있습니다
2-3년전에 파리 포숑 매장에서 판매 하는 거 봤어요 ㅎㅎ

청아 2021-09-10 13: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걸 다 갖추셨군요!! 역시 예상대로 존 말코비치가 샤를뤼스♡ㅋㅋㅋㅋ저는 유튭에서 영상 몇개로 맛만 봤어요. 저도 찾아봐야겠습니다!

유부만두 2021-09-12 07:59   좋아요 0 | URL
전 이건 책 마지막 권을 읽은 다음에 보려고 아끼고 있어요. 만화책 버전으로 봤을 때 처럼 시각적으로 호강하는 (그리고 더 잘 이해하는) 경험이 되겠지요?
존 말코비치의 샤를뤼스 연기가 제일 기대되고요. ^^

scott 2021-09-10 15: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저 🖐이 영화 봤습니다

책에서 이해 안갔던 (시대 문화 역사적배경) 부분 이해 하면서 전쟁전 벨에포크 시절 파리의 퇴폐스러움에 놀람 ^ㅅ^

유부만두 2021-09-12 08:00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 역시 시청각자료의 힘도 무시 못하지요?!
퇴폐스러움에 저도 놀라지만 그 시절 이야기를 또 계속 징그러 하면서 들춰보고 있어요;;;;

붕붕툐툐 2021-09-10 22: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유부만두님~ 진심이 팍팍 느껴져요! 사두고 안 보시는 거 완전 존경!!!♡

유부만두 2021-09-12 08:00   좋아요 1 | URL
사두고 안 보는 책 많아요;;;;;